임서아가 다급히 물었다.“걔가 그러자고 할까요?”“당연하지!”어르신의 자신 있는 대답에 임서아가 활짝 웃었다.“정말 든든해요, 외할아버지.”어르신은 임서아를 위로한 뒤, 병원을 나가 집으로 향했다.서준명은 거실에서 어르신을 기다리고 있었다.집으로 돌아온 어르신을 보자 그는 차갑게 식은 시선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어르신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네 동생 일 때문에 상의할 게 있다고 나를 집으로 부르지 않았니? 오늘 소경이네 집에 갔었다면서? 신세희가 서아한테 신장을 내준다고 한 게 사실이냐?”서준명이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할아버지는 양심의 가책도 안 드세요?”어르신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평생 옳은 일만 하면서 살았는데 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니?”“그런데 세희한테는 왜 그러셨어요!”서준명이 분노한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여자가 네 동생 남편 될 사람을 빼앗았잖니! 그리고 너도 그런 애한테 빠져서 지금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그래서 나는 걔가 싫어! 역겨워!”어르신은 대놓고 욕설을 퍼부었다.“역겨운 사람한테 어떻게 신장을 내놓으라고 해요!”“그건 안 되지!”어르신이 광기 어린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애의 장기로 서아를 구할 거야! 걔가 서아한테 한 짓이 있으니까! 속죄하는 셈이지 뭐!”“할아버지!”서준명은 이가 갈렸다.“부 대표랑 한 약속 때문에 세희를 괴롭히는 거잖아요!”“그래!”어르신도 솔직히 인정했다.그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말했다.“소경이는 나한테 큰 은혜를 입었다. 예전이라면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소경이도 나한테 빚진 게 있잖니! 전에는 빚을 갚으라는 말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네 동생은 지금 죽을 날짜를 받고 병원에 누워 있는데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야?”“좋아요! 그렇다면 제 신장을 가져가세요! 두 개 다 가져가서 그렇게 아끼는 외손녀한테 주시라고요!”말을 마친 서준명이 품
그날 밤, 서준명과 임 씨 가문 사람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어르신의 잔인한 계획을 몰랐다.부소경, 신세희는 당연히 그걸 알 방법이 없었다.그날 밤, 신세희는 점차 열이 내렸다.오후까지 열이 펄펄 끓던 신세희의 옆을 지킨 사람은 신유리였다. 아이는 엄마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앳된 목소리로 엄마의 귓가에 대고 그녀를 불러주었다.아이는 주기적으로 면봉에 물을 적셔 엄마의 마른 입술을 닦아주기도 했다.부소경을 비롯한 집안 가정부가 얼른 가서 자라고 달랬지만 신유리는 끝까지 안 피곤하다고 고집을 피웠다.아이는 엄마를 보살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내가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보살폈으니까 지금은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지.’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민정아와 엄선희는 뒤돌아서서 눈물을 닦았다.아이의 정성이 닿았던 걸까, 그날 밤 신세희는 열이 내렸다.얼굴은 창백했지만 서서히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신세희가 천천히 눈을 떴다.참 오래 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중간에 악몽을 꾸기도 했다.수많은 사람들이 칼을 들고 그녀의 뒤를 쫓아오는 꿈이었다. 하지만 임신해서 배가 부른 그녀는 힘들게 도망치다가 벼랑 끝까지 몰렸다.한발만 걸음을 내디디면 추락할 상황이었다.등 뒤에는 칼을 든 사람들이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그리고 그들이 든 칼이 그녀의 허리에 꽂혔다.그들은 그녀를 차갑게 비웃으며 그녀의 몸에서 신장을 꺼내갔다.죽음의 상황에 처한 그녀는 아이 생각부터 들었다.“유리, 우리 유리 어떡하지? 내가 죽으면 우리 유리는 어떡해? 유리야….”여섯 살밖에 안 된 신유리가 면봉으로 그녀의 입술을 닦아주고 있을 때, 신세희는 꿈에서 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그러면서도 이건 꿈이라고, 지독한 악몽이라고, 빨리 깨어나야 한다고 자신에게 되뇌었다.‘그래, 난 아직 살아 있어. 유리가 내 옆에 있어.’‘난 엄마야. 이렇게 슬퍼할 시간이 없어.’‘어린 유리가 슬퍼할 거야.’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고개를 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신세희는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엄마가 살아 있는 한, 아무도 너를 못 건드리게 할 거야! 서 씨 영감? 그 인간이 네 아빠의 은인은 맞지만 최근 우리한테 한 짓으로 빚은 다 갚았어! 오늘 당장 병원에 가서 말할 거야! 내 신장 노릴 생각하지 말라고! 계속 우리를 괴롭히면 다 죽여버릴 거야!”신유리도 두 주먹을 꼭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나쁜 인간은 다 죽어야 해!”신세희는 씁쓸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엄마는 절대 죽지 않아. 엄마는 건강하게 유리 옆에 있을 거야. 우리 아이는 내가 지켜야지!”말을 마친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침대를 내렸다. 이마를 만져보니 뜨겁지는 않았다.그녀는 먹을 것부터 찾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내가 건강해져야 그 인간들을 상대하지!’신세희가 건강을 회복한 모습을 보자 다들 기뻐했다.“소경 씨, 나 배고파요.”그녀는 방을 나오자마자 남편부터 찾았다.“그래. 바로 준비해 줄게.”부소경은 직접 주방으로 가서 죽과 밑반찬들을 꺼내 식탁에 놓아주었다.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내가 생각해 봤는데….”“소경 씨, 내 생각에는….”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신세희가 웃으며 말했다.“소경 씨가 먼저 말해요.”“나는 결정을 이미 내렸어.”이 결정을 위해 그는 밤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부소경은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난 이미 결정했어. 그집 어르신이 나와 내 엄마의 목숨을 구해준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 인간이 나를 협박할 이유가 될 수는 없어.”신세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남편을 바라보았다.그에게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부소경이 계속해서 말했다.“이따가 식사 끝나면 의사가 올 거야. 당신은 집에서 쉬고 있어. 유리도 좀 자게 하고. 어젯밤 제대로 잠을 못 잤거든.”“소경 씨….”부소경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침착하고 담담했다.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
아파트 입구에는 수십 명의 기자들이 에워싸고 있었다.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 마이크를 든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기자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목을 길게 빼고 아파트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성질 급한 기자들은 경비실 직원을 귀찮게 하고 있었다.“부 대표님 부부는 그래서 언제 나와요?”그 장면을 본 부소경도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냉혹하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부소경이었기에 사전에 연락도 없이 기자들이 집에 들이닥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어떻게 된 거죠?”그가 경비실 직원에게 묻자, 직원이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나타났거든요. 서 씨 어르신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 대표님도 인터뷰를 수락하실 거라고 했대요.”부소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어제 오전, 회사에서 신세희와 임서아 사건에 대해 의논할 때 서 씨 어르신에게서 전화가 왔던 것이 떠올랐다.내용은 아주 간단했다.“소경아, 정말 신세희가 서아한테 신장 기증하는 것을 반대할 셈이냐?”부소경은 단호하게 거절했다.“네! 절대 안 줍니다!”어르신이 말했다.“소경아, 사람은 신장 한쪽이 사라진다고 죽지 않아.”“그래도 안 됩니다!”“사람이 죽어가는데 끝까지 그럴 작정이냐?”어르신이 구슬픈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어르신, 그럼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입장 바꿔서 세희가 죽을 상황이고 임서아의 신장 한쪽이 필요하다면 어르신은 기증하는데 동의하실 겁니까?”서 씨 어르신은 답이 없었다.부소경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바로 답을 달라는 건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고 답하세요! 평생 거짓말 한번 안 하고 사신 분 아닙니까!”서 씨 어르신은 한참을 답이 없었다.사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는 절대 임서아의 신장을 신세희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잠시 머뭇거리던 어르신이 말했다.“소경아,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내 앞에 위급한 사람이 있고 꼭 신장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난 내 손녀를 설득해서 그 사람을 살
그는 대놓고 어르신에게 불쾌감을 드러냈다.“어르신, 무슨 말을 하셔도 제가 어르신을 탓하지 않을 거라 자신하시는 겁니까?”“그래!”서 씨 어르신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난 네 엄마를 잘 알아! 품성이 단정한 아이였어! 그런 애가 키워낸 아들이 원칙도 줏대도 없는 머저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은혜를 입었으면 갚을 줄도 알겠지!”부소경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소경아, 난 네가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어. 네 성격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넌 잔인하고 차가운 성격을 지녔지만 그만큼 의리와 신용을 지키는 아이야.”서 씨 어르신의 말에 틀린 건 없었다.부소경은 의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부소경이 말이 없자 어르신이 계속해서 말했다.“네가 의리를 모르는 놈이었다면 경민이랑 사이가 좋았겠어? 정문재, 장진혁은 또 어떻고?”부소경은 쓸데없는 논리를 펼치는 서 씨 어르신에게 헛웃음만 나왔다.“제 친구들까지 전부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까?”“너한테 친구가 몇 명 있고 그들 중에 누구랑 사이가 각별한지 다 알아.”역시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라고 부소경은 생각했다.한참을 고민하던 부소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르신 말씀이 다 맞아요.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잠시 숨을 고른 그가 다시 말했다.“의리도 중요하죠. 아내와 아이가 생긴 뒤로는 관대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문제가 달라요. 어르신이 원하는 건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너….”부소경은 어르신이 뭐라고 하기 전에 단호하게 그의 말을 달랐다.“속죄라고 하셨습니까? 신세희는 아무에게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죄를 지었죠! 신세희에게 죄를 지은 사람은 임 씨 가문 사람들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무도 그 여자 못 건드리게 할 거예요!”“소경아!”“어르신, 외손녀가 위독하게 된 건 유감이지만 다른 기증자를 알아보세요. 지금 당장 알아보지 않으면 정말 늦어버릴지도 몰라요.”말을 마친 부소경은 전화를 끊었다.옆에서 통화를 듣
“부 대표님, 한 말씀만 해주세요. 대표님께서 대답하기 곤란하신 질문이라면 사모님 좀 불러주세요.”“부 대표님, 사모님께서는 임 씨 가문에서 8년이나 신세를 졌다고 들었습니다. 8년이면 신장 한쪽 정도는 기증해 줄 수도 있지 않나요?”“대표님….”부소경은 냉랭한 시선으로 무례한 질문을 서슴없이 하는 기자들을 바라보았다.당장이라도 이들을 쓸어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그리고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서 씨 어르신이었다.부소경은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소경아, 문 앞에 기자들이 찾아갔지?”어르신이 물었다.“어르신께서 보낸 사람들입니까?”“그래, 내가 보냈다. 여럿이 같이 덤비면 아무리 너라도 어쩌지 못할 거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더구나. 내가 그들의 뒤를 봐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아마 아무 거리낌없이 너한테 질문 공세를 퍼부었겠지.”부소경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소경아,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신세희가 기증서에 사인만 하면 된단다.”“내 아내를 피 말려 죽일 작정이십니까?”“그러면 더 좋고.”어르신이 계속해서 말했다.“네 아비가 너를 어쩌지 못하고 네 할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셔서 네 고집을 꺾지 못하겠지만 나는 다르단다. 네 아비가 죄책감 때문에 너한테 말도 못 꺼내고 있지만 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어.”“내가 네 가족들을 대신해서 악인을 자처하마. 신세희가 죽으면 더 좋은 여자를 소개해 주지!”양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말투였다.부소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넌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을 죽이거나 협박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 왜 그런 줄 아느냐?”“왜죠?”“유리가 있잖니!”부소경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아이도 있는데 예전처럼 누구를 죽이고 싶다고 죽이면 앞으로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하겠어? 다른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면 네 아이는 뭘 보고 자라겠니? 유리는 네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이 되었지. 유리가 있는 이상, 넌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
조금 전 잠에서 깬 신유리는 급하게 아빠를 찾는 경비실 직원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아이는 문이 닫히기 전, 재빨리 계단을 내려와 그의 뒤를 따라왔다.등 뒤에서 가정부와 신세희가 애타게 불렀지만 아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유리야, 어디 가?”나이 든 가정부는 아이를 따라잡지 못했다.신세희는 비록 열은 내렸지만 밤새 고열에 시달렸기에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숨을 헐떡였다.그녀는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거실에 있던 엄선희와 민정아도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몸집도 작은 신유리는 달리기만큼은 아주 빨랐다.네 어른이 뒤에서 따라갔지만 아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아이는 마이크를 들고 아빠를 에워싼 기자들을 바라보았다.기자들의 황당한 질문에 아이의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부소경은 통화 중이었다.신유리는 기자들의 질문을 통해 그들이 신세희에게 신장 기증을 요구한다는 것을 눈치챘다.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아이는 왜 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엄마를 괴롭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꼭 엄마의 신장이어야만 할까?여섯 살 신유리는 신장이 뭔지도 알지 못했다.아이는 뒤에서 부소경의 옷깃을 잡아당겼다.“아빠….”갑자기 나타난 딸을 보자 부소경은 속이 뒤집히는 것처럼 괴로웠다.“아빠, 저 사람들도 엄마한테 신장을 내놓으라고 저러는 거야?”아이가 울먹울먹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며 물었다.“유리야, 집에 들어가 있어! 아빠 말 들어. 당장 집에 돌아가!”부소경은 정색하며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아이를 기자들 앞에 내세울 수는 없었다.하지만 신유리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내가 엄마를 지킬 거야. 엄마가 저 사람들한테 신장을 빚졌어?”부소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빠, 아무리 엄마가 빚진 거라고 해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유리 때문에 그런 거지?”과거를 생각하자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나랑 엄마 오랫동안 힘들게 살았어. 엄마는 유리한테
기자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기자들을 제외하고도 주변에 서 있던 구경꾼들마저 입을 다물어 버렸다.아이는 막 잠에서 깬 듯,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벚꽃 무늬의 잠옷 원피스에 앙증맞은 토끼 모양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티없이 맑은 눈동자, 그리고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은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아이는 진지하면서도 순수한 눈망울로 기자들을 바라보았다.사람들이 말이 없자 신유리가 계속해서 말했다.“엄마는 밤새 고열에 시달렸어요. 아침부터 무슨 일로 엄마를 찾아오셨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엄마가 당신들에게 신장을 빚졌다면 제 거 줄 테니까 가져가세요.”참다 못한 구경꾼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겠네. 본인이 기증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지, 왜들 문 앞까지 와서 이 난리여? 저 집 사모님이 댁들한테 빚진 거 있어?”다른 행인들도 맞장구를 쳤다.“인터넷 폭력이라고 말만 들었는데 실제로 존재하네요.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자극적인 기사만 써대는 기자 양반들도 똑 같아. 장기 기증을 사람한테 강요하다니….”“아이가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얼마나 놀랐겠어? 저런 딸이 있었으면 나도 소원이 없겠네.”“애가 불쌍해요….”“난 못 보겠어. 돌아갈래.”“한두 시간만 지나면 전국민이 저 집 사모님을 욕하겠네. 양심도 없이 친동생이 죽어가는데 그까짓 신장을 안 떼준다고….”“친동생이면 꼭 장기를 떼어줘야 한다는 법이 있어요? 당사자가 싫으면 싫은 거죠!”“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둘째를 낳기 싫어한다니까!”“요즘 세상 참 무서워졌어!”“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망정이지,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만 봤으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환자만 불쌍하다고 저 집 사모님을 욕했을 거야. 세상에나….”사람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신유리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떴다.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자신의 신장을 내놓겠다고 했을 때, 그 순진한 말투에서도 엄마를 위한 마음이 느껴져서 더 안타까웠다.기자들도 아이의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