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희는 여자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차림으로 보아 어디 경호원이나 훈련을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하지만 그건 옷 색깔이 어두워서 그런 것일 수 있었다.“누구신지….”처음 보는 얼굴이라 고윤희는 당황스러웠다.그녀와 구경민이 함께 거주하는 이곳 별장은 평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그들도 평소에는 거의 서울에 있었기에 이곳을 아는 사람이 몇 없었다. 그들은 가성섬에 간 부소경과 신세희를 기다리느라 이곳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택배 왔습니다.”여자가 말했다.“여자가 택배 배달을요? 하지만… 저는 물건을 주문한 적 없는걸요?”고윤희는 원래 쇼핑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평소 필요한 액세서리나 옷들은 구경민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한 적 없었다.여자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죠. 당신 같이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가정주부가 할 얘기는 아닌 듯 싶네요.”고윤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적의가 느껴지는 건 단지 느낌일까?고윤희는 심성이 착하고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구경민은 지금 한창 부소경과 긴급회의를 하고 있을 테고 집에는 그녀 혼자 있으니 괜히 말싸움을 벌여봤자 좋을 게 없었다.“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죠?”“말했잖아요! 택배 배달 왔다고!”여자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죄송하지만 저는 물건을 주문한 적 없으니 당장 돌아가세요!”여자가 피식 웃더니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꾸했다.“구 대표님이 주문한 택배인데요? 이거 국제택배예요. 저는 중요한 국제 택배만 전담하거든요. 받아두는 게 좋을 텐데요?”고윤희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는 구경민이 하는 일에 한 번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요한 기밀문건이라면서 왜 서울로 보내지 않고 휴가용으로 잠시 머무르는 별장에 주문했는지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다.그녀는 여자에게서 서류를 건네 받으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죄송해요. 그리고 배달
집안으로 돌아온 그녀는 엄선희와 민정아를 기다렸다.고윤희와 구경민이 휴가용으로 거주하는 별장은 주변에 산과 호수로 둘러싸여서 풍경이 아주 아름다웠다. 하지만 엄선희, 민정아는 이 아름다운 곳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두 사람은 곧장 거실로 가서 고윤희를 찾았다. 그리고 신세희가 당한 일들을 그녀에게 간략해서 설명했다.설명을 다 들은 고윤희는 화가 나서 얼굴까지 하얗게 질렸다.“윤희 언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우리는 친구로서 세희 씨가 이렇게 괴롭힘 당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겠어요.”엄선희가 새빨개진 눈으로 말했다.신세희의 몰골을 보지 못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기절한 듯 잠들어 있는 신세희를 보았을 때, 그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고윤희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뱉었다.어떻게 해야 할까?사실 고윤희도 답을 찾지 못했다.그녀를 포함해 민정아, 엄선희, 그리고 신세희까지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었다.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는 옛말이 있다.고윤희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한 적 없었고 일방적으로 상처를 받는 쪽에 가까웠다. 물론 나중에 구경민이 나타나서 그녀를 구해주고 그의 보호를 받으며 지금은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녀의 과거도 신세희 못지 않게 참담했다.그런 세 사람이 갑자기 모여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할 방법을 찾자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어렸을 때 빈민가에서 힘들게 살았던 민정아는 어렸을 때부터 받은 만큼 돌려주는 성격이었다. 신세희를 만나기 전에는 꽤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닌 시절도 있었다.“나한테… 생각이 있긴 한데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민정아가 입을 열었다.그러자 엄선희가 눈을 반짝이며 환호를 질렀다.“빨리 말해! 그 집안을 박살낼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괜찮아!”고윤희가 엄선희를 말렸다.“그런 소리하지 말아요. 남한테 해를 가하면 우리도 그에 따르는 처벌을 받아야 해요.”“우리가 다치지 않고 적당히 분풀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민정아가 생글생글 웃으
구경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소경이 회사에 갔다가 얘기 들었어.”고윤희가 물었다.“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사람들이 심성이 굳고 어진 분이라고 극찬하던 서 씨 어르신이 왜 세희 씨한테만 이렇게 못된 짓을 하는 걸까?”구경민은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고윤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하지만 온 신경이 신세희에게 집중되어 있는 그녀를 보자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속으로 삼켰다.“경민 씨!”고윤희가 그를 재차 불렀다.“듣고 있어.”“소경 씨랑 얘기는 해봤어? 그 집안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이건 너무하잖아!”고윤희는 구경민 앞에서 한 번도 이렇게 화가 난 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구경민이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물었다.“세희 씨가 많이 걱정돼?”“당연하지! 친구니까!”구경민이 웃으며 말했다.“안지 며칠이나 됐다고?”“오래 알았다고 다 친구는 아니야. 마음이 맞는 친구는 알고 지낸 세월과 상관없다고.”잠시 숨을 고른 고윤희가 다시 말했다.“세희 씨랑 알고 지낸 시간은 길지 않지만 세희 씨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줬어. 유리까지 나한테 잘해줘. 이번에 가성섬에서 선물도 가져왔더라고….”고윤희는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신유리가 그녀에게 준 선물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신세희와 신유리가 그녀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 선물은 아이를 상징했기에 구경민에게 사실대로 말해줄 수 없었다. 구경민이 영원히 그녀에게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녀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비록 최근에 만난 사람이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온화한 분위기에 끌렸어.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는 아주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기 쉬운 건 아니잖아. 그러니 당연히 걱정이 되지.”신세희에 관한 얘기만 늘어놓는 고윤희를 보자 구경민은 말했다.“소경이 회사에 간 것도 그일 때문이었어.”“어떻게 됐어? 소경 씨는 뭐래?”고윤희가 물었다.구경민은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말했다.“다른 놈들이었다
남자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거친 키스를 이어갔다.한참 뒤, 고윤희는 힘없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그녀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오늘 늦게 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오자마자 다른 사람 얘기만 하고 있어? 다른 사람 생각하느라 내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다는 건가?”고윤희가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진지한 얘기 하고 있었잖아….”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다시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구경민은 바로 그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고윤희에게 반항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오늘 해외에서 택배가 왔었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녀는 지쳐 잠이 들 때까지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그날 밤, 남자는 마치 굶주린 늑대 같았다.고윤희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온몸에서 느껴지는 근육통이 남자가 어젯밤 얼마나 거칠었는지 설명해 주고 있었다.마치 한참을 굶은 사람 같았고 또 마치 오늘 밤이 지나면 다음은 없는 것처럼 굴었다.침대에 누운 고윤희는 어젯밤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못된 사람이야.”그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언니! 출발했어요? 나랑 정아 씨는 이미 준비 다했거든요.”‘이런!’고윤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어제 엄선희, 민정아와 오늘 움직이기로 약속했는데 구경민한테 밤새 시달리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여덟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조금만 기다려 줘요! 바로 갈게요!”고윤희가 다급히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온몸에서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마치 돌에 깔린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그녀는 아픔을 참으며 일어나서 재빨리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화장도 생략한 채, 핸드백만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가는 길에 그녀는 구경민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민 씨, 어디야?”“일이 있어서 나왔어.”수화기 너머로 구경민의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침대에 누운 임서아는 세 사람을 알아보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임지강을 비롯한 그녀의 가족들은 이 황당한 소리에 많이 놀란 듯했다.“정아 네가 어쩐 일이야?”서준명의 모친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너도 네 동생 보러 온 거니?”민정아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이모, 임서아가 죽게 생겼다고 해서 미리 추도회를 열어주러 왔어요.”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못된 것들… 다 나가서 죽어버려! 외할아버지, 저 여자들 다 죽여버리라고 해요. 어떻게 저한테 저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죠?”안 그래도 두려웠던 임서아인데 민정아의 말을 듣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서 씨 어르신은 너무 화가 나서 말까지 더듬었다.“신세희가 보내서 온 거냐?”임지강도 버럭 화를 냈다.“예의도 모르는 것들!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소란이야? 당장 안 꺼져?”허영은 핸드폰을 엄선희에게 던졌다.세 사람은 급히 몸을 피했다.소란을 피우거나 욕을 하는 건 고윤희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냥 머릿수라도 채우려고 동참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세희만 괴롭히는 임 씨 가문 사람들이 괘씸하기도 했다.하지만 엄선희나 민정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민정아는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는 성격이었다.“임서아, 너 혈액에 독소가 가득하다면서? 네가 왜 이런 꼴이 났는지 알려줘?”그녀는 임서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한 짓이 많아서 그래. 넌 원래 사회의 암 같은 존재였잖아. 그 독들이 돌고 돌아 네 몸에 쌓인 거지. 인과응보야. 설마 독소를 배출하지 못해서 나중에 피부가 다 썩는 거 아니야? 아유, 징그러워!”“민정아!”임서아가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았다.“지금 네 꼴이 어떤지 알아? 온몸이 썩고 있어. 그 얼굴 보면 한 달도 살기 힘들겠네. 그 모습 구경하려고 우리가 온 거야.”“당장 꺼져! 빨리 저 인간들을 내쫓아요!”임서아가 바르르 떨며 소리쳤다.하지만 서준명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도
고윤희는 엄선희나 민정아처럼 저주의 말을 퍼붓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만으로 임지강을 압박하기는 충분했다.병실 안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임서아, 이게 뭔지 알아? 너 죽는 날 장례식에 보낼 화환이야. 몇십만 원이나 들여서 구매했다고.”“윽….”임서아는 분해서 울기만 할 뿐이었다.민정아는 노트 하나를 꺼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이건 공동묘지 리스트를 하나 뽑아왔는데 어디가 좋을지 네가 한번 골라 볼래? 넌 세희 씨 이복동생이잖아. 우린 세희 씨 친구니까 당연히 도와야지. 북쪽이 좋아? 아니면 남쪽이 좋아?”“푸흡….”임서아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민정아 일행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돌아갈 준비를 했다.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 빨리 도망가는 게 상책이었다.이 일로 경찰서에 불려갈지 몰라도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어차피 기증자가 나서지 않으면 임서아는 죽을 목숨이고 미리 꽃을 준비해 왔을 뿐이었다.세 사람이 걸음을 돌리는데 등 뒤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거기 서!”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엄선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르신, 어르신께 신세를 진 사람은 부소경 대표지 우리가 아니거든요? 그러니 당신은 우리한테 명령할 자격이 없어요!”“준명이랑 결혼하기 싫은 게냐?”어르신이 물었다.“내가 누구랑 결혼하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죠? 어르신과 결혼할 것도 아닌데!”엄선희는 두려울 게 없었다.“너….”그녀는 냉소를 머금고 어르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래! 말 한번 잘했다!”어르신이 차갑게 웃었다.“신세희 대신 복수를 하러 온 거구나! 맞지?”민정아도 지지 않고 맞섰다.“어르신! 당신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진짜 내가 아니죠! 나를 사칭한 어떤 나쁜 년이지. 난 당신들 집안에 신세 진 거 없거든요? 그러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서 씨 어르신은 할 말을 잃었다.“나는 누가 내 친구 괴롭히는 거 못 보거든요!”어르신은 고개를 돌려 고윤희를 바라보았다.그녀가 구경민의 애인인 줄
민정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서 씨 어르신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서아가 신세희와 자매 사이라는 걸 알면 됐어.”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다들 돌아가.”어르신이 말했다.“내가 힘없는 노인네라고 하지만 당장 경찰서에 전화 한 통 넣으면 바로 달려올 형사들이 차고 넘쳐. 이번 일은 철없는 젊은이들이 벌인 일이라고 문제 삼지 않을 테니 돌아가.”어르신이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진 쪽은 민정아 일행이었다.엄선희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안 그래도 가려고 했거든요?”말을 마친 세 사람은 바로 걸음을 돌렸다.큰 충격을 받은 임서아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코에서는 코피가 멎지 않았다.허영이 울부짖었다.“빨리 의사 좀 불러와요! 우리 딸 살려야죠!”임지강이 이를 갈며 말했다.“서아 잘못되면 저 여자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임서아는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잠시 후, 의사들이 들이닥쳤다.그들은 급히 임서아를 수술실로 옮겼고 가족들도 부랴부랴 뒤를 따라갔다.네 명의 의사들이 한참을 바쁘게 응급조치를 진행해서야 임서아는 안정을 찾았다.피곤한 기색을 한 의사가 수술실을 나오며 말했다.“어르신께서 서울 병원에 연락해서 진귀한 약품들을 많이 가져왔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서 씨 어르신이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고맙네.”의사는 어르신을 위로하며 말했다.“임서아 환자 상태로는 병세가 점점 악화될 겁니다. 빨리 기증자를 찾아야 해요. 그리고 앞으로 특히 안정을 취해야 하니 아무 사람이나 병실에 들이지 마세요.”잠시 머뭇거리던 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르신, 사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었습니다. 병실에 난입해서 난동을 부린 것도 죄가 된다고요!”서 씨 어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지금은 내 손녀 목숨을 살리는 게 우선이야. 아직까지 별다른 위험은 없는 거지?”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지금은 꽤 안정적입니다.”“수고했네.”말을 마친
잠시 뜸을 들이던 서준명이 담담하게 말했다.“할아버지, 벌레도 밟으면 꿈틀해요. 하물며 신세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걸요.”어르신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니? 둘은 친자매야! 동생이 죽게 생겼는데 언니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신장 하나 내놓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니?”서 씨 어르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그 순간 그는 과거에 자신이 신세희를 얼마나 싫어하고 혐오했는지, 얼마나 그녀를 괴롭혔었는지 전부 잊은 듯했다.신세희가 나약한 사람이었다면 그의 괴롭힘을 못 이겨 지금쯤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죽은 사람이 어떻게 그들을 위해 신장을 내놓을까?서준명은 어르신의 말에 화가 나서 헛웃음만 나왔다.“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거예요?”“둘은 피를 나눈 자매이니까!”서준명은 할 말을 잃었다.어르신과 더 대화를 이어갈 가치가 없다고 느낀 그는 차갑게 등을 돌렸다.“준명아….”그의 모친이 그를 불렀다.서준명은 걸음을 멈추고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다른 하실 말씀 있으세요?”그의 어머니가 말했다.“정아 좀 말려봐. 이건 정아가 나설만한 일이 아니잖아. 이러다가….”서준명이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세희가 무슨 심정일지 생각이나 해봤어요? 우리 가족들 세희를 6년이나 괴롭혔잖아요. 그랬으면서 지금 신장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입장 바꿔서 누가 나한테 그랬으면 엄마는 어떤 심정일까요? 그 부탁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그의 어머니는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당연히 거절하지! 무슨 염치로!”“그럼 된 거잖아요.”말을 마친 서준명은 미련 없이 병실을 나갔다.그는 지금 당장 부소경의 집으로 가서 신세희를 만나볼 생각이었다.병원을 나온 서준명은 바로 엄선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 밖으로 엄선희는 빨리 전화를 받았다.“귀하신 도련님이 어쩐 일이세요?”서준명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왜 나한테 그래요?”엄선희가 차갑게 대꾸했다.“서준명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