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희는 부소경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그녀와 서 씨 어르신이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부소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하지만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전에는 단지 추측일 뿐이었던 일이 확신이 생겼다. 예전에 그는 신세희가 임지강과 서 씨 어르신이 잃어버린 딸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생각이 맞았어.’부소경의 가슴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임지강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그저 평소처럼 차갑고 냉랭한 표정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그가 이 정도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서 씨 어르신 덕분이었다.그들 사이에는 임 씨 가문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이 있었다.부소경은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사람이었다.신세희가 어르신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임지강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어르신께서 임서아를 손녀라고 계속 오해하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임서아 일가에게 뼈에 사무친 배신을 당하게 될 텐데 그것 역시 처신을 잘못한 어르신이 받아야 할 대가였다.신세희와 밖으로 걷던 부소경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병실 앞에 서 있는 임지강 내외와 서 씨 어르신을 바라보았다.그는 어르신에게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어르신, 그럼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신세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다시 걸음을 돌렸다.복도 모퉁이를 돌아 엘리베이터까지 도착한 신세희는 드디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속 상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곪고 곪아서 이미 딱지가 앉아버린 상처를 누가 다시 헤집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숨쉬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처음 상처받았을 때보다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불러세웠다.“부 대표, 세희 씨, 잠시만요.”한 중년
신세희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이때, 서준명이 신세희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신세희 씨, 겁내지 말아요. 제 부모님은 진짜 조카를 찾고 싶어 하셨던 사람들이에요.”“그래, 맞아!”서준명의 부친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꼭 찾고 싶었어! 내 여동생의 핏줄인데 당연하지! 아가, 전에는 우리가 너한테 많이 잘못한 것 같구나. 네가 고모를 닮았다고 준명이가 여러 번 말을 했는데 그때는 믿기지가 않았어. 그래서….”서준명의 부친은 구슬픈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었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 중년 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우린… 나랑 네 외숙모는 귀가 너무 얇아서 약아빠진 인간들의 말에 속아 너를 몰라본 것 같구나….”서준명의 모친도 미안한 얼굴로 신세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외숙모도 잘못이 커. 아가, 우리가 그 인간들의 말만 듣고 편견을 가지고 너를 바라본 것 같아서 미안해. 네 외삼촌이랑, 나, 그리고 준명이는 너를 지지한단다. 절대 임서아한테 신장을 기증해 주지 마.”신세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이때 서준명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세희야, 나를 오빠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네 마음도 이해할게. 내 부모님을 인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넌 가족이 없는 게 아니야. 이제 우리가 네 가족이니 우리가 너를 지켜줄게. 네가 임서아를 위해 신장을 내놓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신세희의 눈가가 붉어졌다.외숙모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아가, 똑똑하지 않은 우리도 눈치챌 수 있었는데 영감님은 뭐에 홀렸는지 모르겠다.”신세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솔직히 저 조금 감동했어요. 하지만 서 대표님, 그리고 두 분… 저는….”그녀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저는 당신들이 찾는 조카가 아닙니다. 그래서 서 대표님의 고모라는
“엄마, 정말 이곳에 있어? 6년이나 찾아가 보지 않았다고 나한테 화나서 안 나타나는 거야? 미안해, 엄마. 세희가 정말 미안해…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줬는데 나는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혼자 어떻게 사는지 너무 걱정돼, 엄마…. 줄곧 떠돌이 생활을 한 거야?”“엄마… 난 정말 나쁜 딸이야.”신세희는 결국 울며 바닥에 쓰러졌다.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그녀가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엄선희였다.원래대로라면 오늘은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아침부터 서 씨 어르신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갔다가 상처만 입고 정신을 못 차리느라 출근해야 한다는 것도 깜빡하고 있었다.신세희는 다급히 눈물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미안해, 선희 씨. 오늘 집에 일이 좀 있어서 출근은 힘들 것 같아.”“무슨 소리야?”엄선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재촉하려고 전화한 거 아니야. 유리가 선물한 액세서리 박스 있지? 회사 어린 후배들이 그걸 엄청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 글쎄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엄선희는 너무 들뜬 탓에 신세희의 약간 울적한 말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신세희도 걱정 끼치기 싫었기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후배들이 보는 눈이 있네.”“그럼!”엄선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세희 씨, 조사해 보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어제 집에 가서 검색해 봤더니 글쎄 가성섬 흑금목 소재가 금보다 더 비싸다면서?”신세희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설마 그거 팔아서 현금으로 바꾸려는 건 아니지?”“당연히 아니지! 사실 나한테 왜 이렇게 귀한 걸 선물로 줬는지 알 것 같아.”엄선희가 말했다.“그건 유리가 고른 건데….”“세희 씨가 동의하지 않았으면 어린 유리한테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선물을 샀겠어? 립스틱이랑 매니큐어는 유리가 골랐다는 거 믿겠어. 하지만 이 액세서리 박스는 아무리 봐도 세희 씨가 추천한 것 같단 말이지.”신세희도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선희 씨, 걱정하지 말고 일 해. 조금 쉬면 낫겠지 뭐.”엄선희는 점점 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녀가 어리둥절한 말투로 물었다.“세희 씨, 혹시 울어?”마침 옆을 그녀의 옆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관심조로 물었다.“아가씨, 무슨 슬픈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울상을 하고 있어? 이 할미한테 말해봐. 혹시라도 내가 도와줄 수 있잖아.”신세희는 더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세희 씨! 무슨 일이야? 그냥 몸살 아니었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걱정돼서 미치겠네!”엄선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신세희는 목 놓아 울며 하소연했다.“선희 씨, 그 인간들이… 나한테 신장을 내놓으래! 정말 몹쓸 사람들 아니야? 양아치 같은 놈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엄선희는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신세희는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 세 명 중 신세희가 리더 역할을 맡아서 했다.그녀는 화를 낸 적이 거의 없었으며 충동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나약한 사람도 아니었다.그런데 그런 그녀가 아이처럼 울고 있다.“세희 씨, 울지 말고 나한테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그래? 누가 세희 씨 괴롭혔어?”“임지강… 그 인간이 처음으로 나를 딸이라고 인정했어. 그런데 그러면서 자기 딸을 위해 신장을 기증해 달래. 그 인간이 허영이랑 낳은 딸… 임서아가 심각한 신부전증을 앓고 있거든. 신장을 이식 받지 못하면 한 달을 못 넘긴대. 그래서 나한테 신장을 내놓으라는 거야.”“이런 몹쓸 것들…. 임지강 그 인간, 그리고 그 집안 사람들 정말 곱게 봐줄래도 봐줄 수가 없네.”엄선희도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말했다.“세희 씨, 바로 갈 테니까 울지 마.”말을 마친 엄선희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는 급하게 회사에 연차를 낸 뒤, 디자인 부서로 가서 민정아를 찾았다.일에 파묻혀 있던 민정아가 씩씩거리며
“부소경 씨 친척인데요.”여자가 말했다.잠시 당황하던 아주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문앞을 가로막았다.“저는 당신 얼굴 본 적 없습니다!”여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나도 아줌마 얼굴 몰라!”아주머니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지만 방에서 쉬고 있는 신세희를 방해할까 봐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도대체 누굽니까? 여긴 함부로 출입할 수 있는 평범한 아파트 단지가 아닌데 어떻게 들어왔죠?”여자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말했잖아. 나 부소경 친척이라고. 감히 누가 내 앞을 가로 막아?”“당장 가세요! 안 그러면 신고하겠어요!”아주머니도 지지 않고 말했다.여자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안 들여보내주면 어쩔 수 없지. 아줌마가 나 따라와.”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자를 따라갔다. 밖으로 나가자 부성웅의 차가 보였다.차에는 가문의 그의 아내인 진문옥도 같이 타고 있었다.아주머니는 급히 다가가서 인사했다.“어르신, 사모님, 두 분이 어떻게… 이곳에 방문하시는 건 참 오랜만이네요.”부정웅이 다짜고짜 물었다.“가성섬에서 돌아왔으면서 본가에 인사도 오지 않으니 내가 직접 올 수 밖에. 서 씨 영감이 한 말이 사실이야?”“무… 무슨 말씀이요?”서 씨 어르신과 부소경 두 사람 사이에 비밀이 오갔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하지만 둘이 도대체 무슨 비밀을 공유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원래는 서 씨 어르신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가장 아끼는 외손녀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어르신도 병원에 거의 있다시피 하는 신세라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부성웅도 할 수만 있다면 아들의 집까지 찾아오고 싶지 않았다.아들이 낮에는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회사로 찾아갔지만, 문전박대 당했다.지금도 아들의 비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대표님은 긴급회의 중이시니 일단 돌아가시죠, 어르신.”부성웅은 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냉대뿐이었다.“급한 일만 해결하면 찾아 뵙죠! 따져야 할 것도 있고
하지만 가정부는 신세희라는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가정부의 입장에서 그녀는 어질고 착한 사람이었다.그래서 그녀가 절망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방해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본능적으로 신세희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부성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신세희한테 가서 전해! 앞으로 우리 가문에 계속 발을 들이고 싶으면 소경이 설득해서 본가에 한번 오라고 하라고! 가성섬에 다녀왔으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족들한테 먼저 얘기해 주는 게 도리 아니야?”“네, 어르신. 그렇게 전하겠습니다.”부성웅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진상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상희야, 가자!”진상희는 부성웅을 따라 차에 올랐다.가정부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지금은 돌아가서 신세희의 상태를 한번 더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온순하던 분이 저러시지?’가정부가 위층으로 올라가려는데 경비실 직원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아주머니.”고개를 돌리자 경비 직원의 등 뒤에 두 여자도 함께 서 있는 것이 보였다.“아주머니, 이 아가씨들이 댁 손님이라는데 아는 얼굴인가요?”경비실 직원이 물었다.가정부는 엄선희와 민정아를 만난 적 있었다.성질 급한 엄선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주머니, 세희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가정부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조금 전에 어르신이 다녀갔어요. 뭔가 알고 따지러 오신 것 같은데 제가 집에 없다고 돌려보냈거든요. 사모님께서는….”신세희의 얼굴을 떠올린 가정부가 눈물을 글썽였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엄선희와 민정아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신세희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밖에서 한참을 우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다.극심한 피로를 느꼈던 탓인지 깊은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그러는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엄선희와 민정아도 속이 좋지 않았다.“어떡하지?”민정아가 울먹이며 말했다.“세희 씨가 괴롭힘을 당했는데 가만히
고윤희는 여자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차림으로 보아 어디 경호원이나 훈련을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하지만 그건 옷 색깔이 어두워서 그런 것일 수 있었다.“누구신지….”처음 보는 얼굴이라 고윤희는 당황스러웠다.그녀와 구경민이 함께 거주하는 이곳 별장은 평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그들도 평소에는 거의 서울에 있었기에 이곳을 아는 사람이 몇 없었다. 그들은 가성섬에 간 부소경과 신세희를 기다리느라 이곳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택배 왔습니다.”여자가 말했다.“여자가 택배 배달을요? 하지만… 저는 물건을 주문한 적 없는걸요?”고윤희는 원래 쇼핑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평소 필요한 액세서리나 옷들은 구경민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한 적 없었다.여자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죠. 당신 같이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가정주부가 할 얘기는 아닌 듯 싶네요.”고윤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적의가 느껴지는 건 단지 느낌일까?고윤희는 심성이 착하고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구경민은 지금 한창 부소경과 긴급회의를 하고 있을 테고 집에는 그녀 혼자 있으니 괜히 말싸움을 벌여봤자 좋을 게 없었다.“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죠?”“말했잖아요! 택배 배달 왔다고!”여자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죄송하지만 저는 물건을 주문한 적 없으니 당장 돌아가세요!”여자가 피식 웃더니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꾸했다.“구 대표님이 주문한 택배인데요? 이거 국제택배예요. 저는 중요한 국제 택배만 전담하거든요. 받아두는 게 좋을 텐데요?”고윤희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는 구경민이 하는 일에 한 번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요한 기밀문건이라면서 왜 서울로 보내지 않고 휴가용으로 잠시 머무르는 별장에 주문했는지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다.그녀는 여자에게서 서류를 건네 받으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죄송해요. 그리고 배달
집안으로 돌아온 그녀는 엄선희와 민정아를 기다렸다.고윤희와 구경민이 휴가용으로 거주하는 별장은 주변에 산과 호수로 둘러싸여서 풍경이 아주 아름다웠다. 하지만 엄선희, 민정아는 이 아름다운 곳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두 사람은 곧장 거실로 가서 고윤희를 찾았다. 그리고 신세희가 당한 일들을 그녀에게 간략해서 설명했다.설명을 다 들은 고윤희는 화가 나서 얼굴까지 하얗게 질렸다.“윤희 언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우리는 친구로서 세희 씨가 이렇게 괴롭힘 당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겠어요.”엄선희가 새빨개진 눈으로 말했다.신세희의 몰골을 보지 못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기절한 듯 잠들어 있는 신세희를 보았을 때, 그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고윤희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뱉었다.어떻게 해야 할까?사실 고윤희도 답을 찾지 못했다.그녀를 포함해 민정아, 엄선희, 그리고 신세희까지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었다.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는 옛말이 있다.고윤희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한 적 없었고 일방적으로 상처를 받는 쪽에 가까웠다. 물론 나중에 구경민이 나타나서 그녀를 구해주고 그의 보호를 받으며 지금은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녀의 과거도 신세희 못지 않게 참담했다.그런 세 사람이 갑자기 모여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할 방법을 찾자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어렸을 때 빈민가에서 힘들게 살았던 민정아는 어렸을 때부터 받은 만큼 돌려주는 성격이었다. 신세희를 만나기 전에는 꽤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닌 시절도 있었다.“나한테… 생각이 있긴 한데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민정아가 입을 열었다.그러자 엄선희가 눈을 반짝이며 환호를 질렀다.“빨리 말해! 그 집안을 박살낼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괜찮아!”고윤희가 엄선희를 말렸다.“그런 소리하지 말아요. 남한테 해를 가하면 우리도 그에 따르는 처벌을 받아야 해요.”“우리가 다치지 않고 적당히 분풀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민정아가 생글생글 웃으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