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진은 이런 좋은 날들이 끝나갈 것을 생각하며 못내 아쉬웠다.통화를 끝낸 소정남은 휴대폰을 심효진에게 돌려주며 웃으며 말했다.“오늘 밤, 같이 당신 고모 댁에 가서 식사하는데 내가 뭘 준비해야 하죠? 지금 내 컨디션은 어떤가요?”심효진은 디저트를 먹으며 그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 고모네 눈에는 가장 훌륭한 사람일 거예요.”전 씨 그룹의 이사이자 재벌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신분은 심효진의 고모가 가장 원하는 조카사위 감이다.절친 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과 초고속 결혼을 하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심효진의 어머니와 고모는 그녀 앞에서 하예정의 팔자가 좋아 관성에서 가장 우수한 남성을 남편으로 맞았다고 부러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녀들은 하예정을 칭찬하고 부러워할 때마다 심효진을 쳐다보았는데, 그게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 눈빛인지, 심효진은 다 알고 있다.“글쎄 내가 자기 자랑을 하는 게 아니고, 온 관성을 보아도 나보다 훌륭한 남자가 몇 명 없을 거예요.”“소 이사님께서 저를 좋아하시다니, 제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는가 봐요.”“그건 우리 둘이 전생에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이번 생에 만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러니 우리 이번 생에도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해요,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있게요.”‘누가 당신과 다음 생에도 만나고 싶대요? 얼굴엔 항상 웃고 있지만 실로는 무서운 사람이면서...’심효진은 결국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다음 생이고 뭐고 이번 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우린 아직 정식으로 사귀지도 않았는데, 정남 씨는 벌써부터 엄마한테 그런 말을...”“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효진 씨 어머니와 고모가 계속 소개팅을 주선해 주실까 봐 그랬어요. 만약 당신이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난 어떡하죠? 그리고 정말 말하길 잘했죠, 그렇지 않으면 효진 씨 어머니는 내가 줄곧 당신의 동생과 사귀고 싶어한다고 오해하셨을거에요.”“콜록콜록!”과자에 사레들
“당신이 원한다면야 언제든지요! 그 집들과 가게들은 모두 우리 엄마 아빠 것이지 내 것이 아니에요. 엄마는 직접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나한테 심부름비를 백만 원 정도 주시며 집세 받는 거 도와달라고 한 거뿐이에요.”부모님의 돈은 언제나 부모님의 것이고 스스로 돈을 벌 능력이 있어야 한다.“당신 고모가 식사를 같이하자고 요청한 것은 김진우가 돌아와서래요.”“진우는 그저 방학에 고모를 보러온 것뿐이에요. 다시는 예정이를 집착하지 않을 거니 당신과 전 대표님도 더는 김 씨 그룹에 손대지 말아요.”전태윤이 전 씨 그룹의 대표라는 사실을 안 후로부터 심효진은 모든 일이 이해되었다. 소정남도 무조건 김 씨 그룹에 손대는 일에 참여했을 것이다.소정남은 떳떳하게 말했다.“태윤이도 우릴 봐서 김 씨 그룹에 협력 중지 이유를 알려준 거예요. 아니면 어떻게 도산할지도 모를걸요.”‘우릴 봐서? 당신이 김 씨 그룹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잠깐! 그러니까 나때문에...’전태윤도 소문처럼 무정한 사람은 아니었다.“진우가 예정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예정이가 전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마음을 접었어요.”심효진은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이 지난 후 고모는 김진우를 평범한 사원의 신분으로 H 시의 계열사에 보내기로 했는데, 카드도 용돈도 모두 다 끊었다고 한다.엄마의 강요하에 하예정을 보러 갈 수도 없고, 전화도 허용되지 않고, 서점에 찾아갈 수도 없어 그리움에 미칠 것만 같았던 김진우는 이런 자신을 H 시로 보내려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그 당시 김진우는 분노에 차 엄마한테 물었다.“엄마, 나는 이미 엄마가 말한 대로 다 했는데 뭘 더 바라시는 거예요? 날 꼭 그곳으로 보내야겠어요? 엄마 아들이 불쌍하지도 않아요?”그 말에 심미란은 벌떡 일어나 아들의 뺨을 치려고 손을 치켜들었다가 결국은 그 손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아들의 마른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파 났다.더 사랑하는 쪽이 상처받기 일쑤라고...비록 하예정 때문에
김진우는 그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엄마, 거짓말이죠? 나를 단념시키려고 일부러 나를 속인 거 맞죠? 예정 누나의 남편이 어떻게 전씨 가문의 도련님일 수 있어요? 저는...”그는 문득 하예정이 초고속 결혼을 한 후 그녀의 남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엄마는 너를 속일 필요 없어, 엄마도 안 지 얼마 안 됐어, 전 대표가 직접 우리에게 말한 거야. 네가 전 대표의 와이프한테 마음을 두고 있어, 전 대표가 우리 김 씨 그룹에 손을 댄 거야. 진우야, 너 계속 예정이한테 집착하면 우리 김씨 가문 전체가 너 때문에 궁지에 몰리게 될 거야.”심미란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가문에 이익을 못 가져올지언정 발목을 붙잡지는 마.”“전태윤... 전씨 가문 도련님의 이름이 전태윤이에요?”김진우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전 대표가 하예정 누나의 남편이라니...“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전 대표의 이름을 네가 모르는 것도 당연한 거야. 하지만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 것은 그가 예정이의 남편이라는 거다. 그의 신분과 지위, 권세를 떠나서, 그가 예정이의 남편인 이상, 너는 더 이상 예정이에게 매달려서는 안 되는거야.”“...”“예정인 남편이 있는 여자야, 네 집착은 결국 예정이한테 해만 줄 거야! 그래서 네 아버지랑 얘기해 봤어, 우린 널 H 시 계열사에 보내 경험 좀 쌓게 하기로 결정했어. 네가 경험을 쌓아서 우리 김씨 가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는 너 자신에게 달린 거야.”심미란은 한숨을 내쉬며 아들에게 일깨워 줬다.“진우야, 네 또래에 너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야. 네가 노력하지 않으면 네 것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될지도 몰라. 엄마도 알아, 네가 지금 너무 괴로워하고 있다는걸. 하지만 아들아, 긴 아픔은 짧은 아픔보다 못하다고, 너는 아직 젊고, 나이도 23살밖에 안 되었어. 앞으로 긴긴 세월 동안 너는 분명 예정이보다 더 좋은 여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야.”“...”“
전태윤은 하마터면 휴대폰을 땅에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급히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예정이 지금 어느 병원이야?”그는 자신의 한마디가 그녀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입힐 줄은 몰랐다.자신의 나쁜 성격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되었다.“나도 어느 병원인지 몰라. 가게에 효진이 혼자 있는 걸 보고 물었더니 상처를 입은 후 성소현 씨가 병원에 데려갔다고 들었어.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 물어보던지.”전태윤은 곧바로 소정남과의 전화를 끊고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한참 지나서야 전화가 통했다.“예정아, 어느 병원이야? 많이 다친 거야? 나 금방 갈게.”하예정이 링거를 맞고 있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성소현이었다.병원에 도착한 후에야 성소현은 하예정의 상처가 꽤 깊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소현은 의사가 그 상처를 처치할 때 땅에 흘러내리는 시뻘건 피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져 섰다. 피를 무서워하는 그녀는 보기만 하여도 힘이 빠지는 것만 같았다. 하예정이 사용한 가위가 오래되고 녹이 슨 거라 의사는 파상풍 주사와 소염작용을 하는 링거를 맞을 것을 제안했다.왼쪽 손에 상처를 입고 오른손에 링거를 맞고 있어 전화 받기가 불편했던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대신 전화를 받아달라 부탁했다.성소현은 전태윤의 긴장한 질문에 마음이 조금 따끔했다.그녀도 그녀의 가족들처럼 전태윤이 왜 하예정을 택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내가 어디가 예정이보다 못하다고...’하지만 이것도 한순간이었고 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상처는 이미 잘 처치했고 파상풍 주사도 맞았어요, 지금은 소염 작용을 하는 링거를 맞고 있어요.”그녀는 링거병을 보며 말을 이었다.“아마도 다 맞으려면 20분쯤 걸릴 거예요.”“어떻게 소현 씨가 전화를... 예정이는요?”“제가 전화를 받으면 안 돼요? 예정이는 지금 링거를 맞고 있어 전화 받기가 좀 불편해요. 다른 일 없죠? 그럼, 이만 끊을게요.”“지금 어느 병원이에요?”“그 대단한 능력으로 어디 한번 잘 찾아봐
전태윤은 표정이 굳어졌다.그가 하예정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안 후부터 두 남매는 모두 형, 누나 노릇을 하려 하고 있다.그는 전화를 끊었다.관성 중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관성 종합병원이다. 알아보지 않아도 성소현이 하예정을 그 병원으로 데려갔을게 분명하다.성소현은 전태윤이 먼저 전화를 끊어도 화를 내지 않고 휴대폰을 하예정의 주머니에 넣어주며 말했다.“예정아, 네 엄마는 내 친 이모이고 우리 둘의 사촌 관계는 부정할 수 없는 일이야.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 네가 날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거 맞지? 태윤 씨는 네 남편이니 날 누나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미리 말하는데, 넌 꼭 태윤 씨더러 날 누나라고 부르게 해, 알겠어? 내 속이 후련해지게 말이야”그 말에 하예정은 웃음이 나왔다.“그 사람 입이 내 몸에 붙은 것도 아니고, 뭐라 부르던지 내가 그걸 어떻게 단속하겠어요?”“아니, 너 꼭 그렇게 시켜! 아니면 날 볼 때마다 어두운 표정으로 ‘성소현’이라고 차갑게 부르는데... 너무 싫어! 비록 와이프가 되는 건 글렀지만, 누나가 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하하하, 날 누나라고 부르는 걸 보고 싶어!”성소현은 하예정 옆의 빈자리에 앉으며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손에 난 상처를 가슴 아픈 눈길로 쳐다봤다.“너 아까 너무 화난 나머지 자기 손을 전태윤이라 생각하며 벤 거 맞지?”“아니에요, 아무리 화가 난다고 자기 손을 베겠어요? 정말 이외에요, 그때 홧김에 힘 조절을 못 하고 이렇게 된 거예요.”“사실 말이지, 전태윤 씨는 정말 좋은 남자야. 전씨 가문도 가풍이 아주 좋은 가문이고 말이야. 나도 재벌 집에서 태어나 다른 재벌 집들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전국에 놓고 말해도 전씨 가문처럼 가풍이 좋은 재벌 집은 아주 드물어.”“...”“A 시의 예씨 가문도 그 부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외에 가풍이 좋은 재벌 집이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전씨 가문처럼 최고의 재벌 집이면서도 온 가족이 똘똘 뭉쳐서는
하예정은 조용히 성소현을 바라보았다.성소현은 말하다 말고는 일어났다.“입이 말라서 말이야, 물 한 잔 따라올게. 물 마실래?”“그럼, 저도 한 잔 주세요. 고마워요.”성소현은 손을 뻗어 하예정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자매끼리 그렇게 엄숙할 필요 없어. 예정아, 너 피부 관리 너무 잘했어. 촉감이 좋아. 네 남편, 네 얼굴 만지는 걸 좋아하지?”성소현은 하예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웃으며 가버렸다.그녀는 하예정과 자신에게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따랐다.하예정이 다친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물컵을 손에 건네주지 않고 입가에 갖다 대주며 친절하게 말했다.“내가 먹여줄게.”“저 직접 할 수 있어요. 손가락이 이렇게 싸여 있어서 다른 일은 할 수 없지만 물컵을 들고 마시는 것쯤은 할 수 있어요.”하예정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성소현의 마음을 거절하지는 않았다.두 사람 모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 후, 성소현은 다시 자리에 앉아 말을 이었다.“난 먼저 너에게 이 정도까지만 말할게. 스스로 잘 생각해 봐. 만약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자신감이 없다면 태윤 씨에게 분명히 말해줘. 만약 그와 그의 집안이 이런 널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너희들 이참에 일찍 헤어지는 게 좋을 거야.”“그들 집안은 내가 이렇게 가난하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에요.”하예정은 시댁을 대신해서 말했다. 전씨 집안은 처음부터 그녀가 어떤 조건인지 알고 있었다.성소현은 웃으며 말했다.“하긴, 전씨 집안은 대대로 모두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라 마음속으로 너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너를 어떻게 대하지는 않을 거야. 그들은 젊은이들의 결정을 존중해. 너는 태윤 씨의 생각이 어떤지만 고려하면 돼. 네가 헤어지겠다고 해도 난 어쩐지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아. 그가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태윤 씨의 그 차가우면서도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성격으로는 아마 다음 생에 가서야 헤어질 수 있을 거야.”하예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소현 언니, 나도 그와
그녀는 할머니와 전태윤에게 속히 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자기 남편이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고 재벌 집 큰 도련님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소설 속에서만 보았던 이야기가 현실로 되자 하예정은 완전히 멍해졌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헤어질 수 없었고, 떠나갈 수도 없어 갈등에 휩싸였다.하지만 이모가 걸었던 길을 다시 걷기엔 너무 어려웠다.이모가 젊었을 때는 성공하기 좋은 시기여서 기회를 잡기만 하면 바로 일어설 수 있었는데 지금 그녀가 처한 시기와는 완전히 달랐다.그녀도 당연히 여자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에게 의지해서 평생을 살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니의 결혼생활에서 그녀는 남자의 ‘넌 내가 책임질게’와 같은 헛소리 따위는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지내면서 변해버리는 것이다.이때, 정장 차림의 남자 여러 명이 한 남자를 둘러싸고 주사실로 들어왔다.그들의 출현은 하예정의 주의를 현실로 돌리게 했다.두 사람 모두 저도 모르게 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성소현은 전태윤일 줄로 알았다가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그 남자를 보고 눈을 깜박이며 중얼댔다.“왜 저 사람이?”병원에서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하예정은 중얼거리는 성소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들을 알아요?”“한 사람밖에 몰라. 주위 사람들은 그의 경호원들이야. ”“저 사람 누구예요?”하예정은 호기심에 차 물었다.“마찬가지로 대단한 인물이야. 웃는 얼굴 속에 칼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야. 겉보기에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독한 사람이야.”‘...이름은 말 안 해주네.'“너희 집 전태윤과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는 파트너야. A 시의 예진 그룹 사람이야. 바로 내가 전에 말했던 전씨 집안만큼 좋은 가풍을 가지고 있는 예씨 집안 말이야. 그는 예씨 집안의 다섯째고 예씨 집안의 현재 가주의 친동생이야. 문을 나설 때면 태윤 씨만큼 위풍당당해. 다만 태윤 씨는 나 같은 팬 때문에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지만, 저 사
“참, 그 가문의 가주도 너처럼 초고속 결혼을 했어. 그 집 사모님은 비록 시골에서 자랐지만, 너보다 운이 아주 좋았어. 양부모님이 주워다 키우셨지만, 친자식처럼 아주 잘 키워줬거든. 진심으로 아껴주는 양부모가 있고 예뻐해 주는 오빠도 있었는데, 게다가 나중에 친부모를 되찾고 보니 뜻밖에도 만성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이었지 뭐야. 단번에 농촌 출신을 벗어나 만성의 남 씨 집안의 아가씨가 되어 신분과 지위 상관없이 예씨 집안의 식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어.”성소현은 재벌 집의 아가씨로서 다른 재벌 집의 일들을 훤히 알고 있었다.자기 사촌 여동생인 하예정은 예씨 집안의 사모님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예정아, 나가서 인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 저 사람이랑 몇 번 만난 적이 있어.”하예정은 웃으면서 말했다.“아는 사이면 가서 인사하는 게 좋을 거예요.”“나도 가서 인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넌 여기 앉아 있어, 내가 가서 인사할게. 병원에 경호원들을 저렇게 많이 데리고 오다니, 간호사가 주삿바늘로 찔러 죽일까 봐 그러는 건지.”하예정은 넘어갈 듯 웃었다.성소현은 예준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면서 그를 향해 걸어갔다.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예준하는 갑자기 몸을 돌려 화장실로 달려갔다.그의 경호원들은 긴장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너희 집 도련님 왜 이러는 거야?”성소현이 궁금한 듯 물었다. 예준하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설사인 듯싶다.예준하의 경호팀도 성소현을 보고 의외인 듯한 표정들이었다. 아마 예준하가 설사해 병원에 오게 되었을 때 성씨 집안의 아가씨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성소현 아가씨는 왜 여기 계신 겁니까?”경호원 중 한 명이 묻자, 성소현은 대답했다.“사촌 동생이 다쳐서 함께 링거를 맞으러 왔어요. 그쪽 도련님은 속이 안 좋아 온 거에요?”그 경호원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는 보았어요?”“네. 약도 처방받았습니다. 링거를 맞아야 한답니다.”
화분과 꽃들을 감상한 하예정은 소파에 다시 앉았다.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하예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언니, 동명 오빠가 우빈을 데리고 공항에 갔어요. 저녁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하예정이 곧 전화를 걸어왔다.“언니. ”“나도 동명 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어. 두 사람 곧 공항에 도착할 거라고 했어. 좀 이따가 도착하면 함께 식사하려고 기다리고 있어.”금요일에 우빈은 일찍 하교했다. 관성에서 강성으로 날아가려면 몇 시간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하예진은 조금만 더 기다려 노동명과 우빈과 함께 밥 먹을 수 있었다.“우빈이 아빠가 데리러 갔다고?”하예진이 하예정에게 물었다.“아침에 우빈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다가 주형인 씨를 만났어. 마침 손님을 근처로 데려다주다가 들렸다고 하더라고. 겸사겸사 유치원에 들러서 우빈이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는데 그때 우빈이가 이미 유치원에 들어갔거든.”그러나 하예정은 주형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난 형인 씨가 일부러 유치원으로 갔다고 느껴져. 방금 형인 씨가 우빈과 동명 오빠가 부자처럼 친해진 걸 보더니 질투하고 있는 것 같았어. 우빈을 데려가겠다고 하는 거 있지. 근데 우빈은 형인 씨에게 끌려갈까 봐 동명 오빠와 함께 강성으로 가겠다고 조르더라고. 내가 보기엔 우빈이는 이제 점점 주씨 집안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 같아.”하예정은 비꼬며 말했다.주씨 집안은 유일한 손자 우빈을 매우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으로 보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깊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경우에 우빈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그러나 주형인은 우빈에게 진심이었다. 어쨌든 친부 자이니까.하지만 주형인은 먼저 바람을 피우고 이혼까지 했으며 바람난 상대와도 결혼까지 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과 노동명의 일을 알게 된 후로 마음이 불편해져서 하예진에게 다시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우빈 앞에서는 노동명의 온갖 험담을 했다.우빈은 똑똑한 아이라 누가 그에게 잘해주는지 마음속으로 잘 알
“네. 우빈아, 안녕! 잘 다녀와.”“이모 안녕히 계세요.”우빈은 노동명에 의해 차에 올라타게 되었고 고개를 돌려 하예정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주형인을 바라보며 입술을 약간 오므리다가 작별 인사했다.“아빠. 다녀올게요.”주형인은 웃으면 지었다.노동명은 우빈을 데리고 경호원과 함께 곧바로 떠났다.여운별은 들통날까 봐 모두가 그녀를 주목하지 않는 틈을 타서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어린이를 데리러 온 부모님들은 픽업 카드를 선생님께 제출하기만 하면 어린이들은 곧 선생님의 안내로 나올 수 있었다.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그러나 그녀가 여기서 계속 기다리면 소위 시누이라는 존재를 데려오지 못하면 하예정의 의심을 받을 것이다.노동명의 차가 멀어지고 나서야 하예정은 자신의 차로 돌아와 차를 몰고 곧 유치원을 떠났다.주형인만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서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는 친아들이 자신과 점점 멀어지는 것을 종종 느끼고 있다.때때로 그는 우빈의 양육권을 되돌려 받으려고 다시 소송을 제기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함께 사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마련이니까.주경진 부부도 찬성했다.하지만 충동은 충동일 뿐, 방금 진정되었다.우빈의 양육권을 가져오면 우빈이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니까.주형인의 세계와 하예진의 지금 세계는 너무 큰 차이가 났다.우빈의 미래를 고려하여서라도 주형인은 아들의 양육권을 다시 쟁탈할 생각을 단념했다.우빈이 주형인과 친하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의 친자식이었다.앞으로 우빈에게 큰 능력이 생기면 주형인도 체면이 크게 설 것이다.하예정은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전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태윤은 손님을 만나러 밖으로 나가고 회사에 없었다. 그러나 곧 돌아올 거라 하예정은 대표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전태윤의 사무실은 예전보다 조금 변했다. 간식 캐비닛이 하나와 화분 몇 개가 늘었으며 인형도 몇 개 더 생겼다.화분은 부자 나무, 돈나무, 부귀 나무 등이 놓여있었다.물론 하예정이 그녀의 남편을 위해
그리고 주형인의 집에 가면 우빈은 늘 주경진이 자신을 보며 한숨만 내쉬는 장면을 봐야 했다.김은희는 우빈에게 집에 돌아가서 하예진과 주형인이 재혼하도록 설득하라고 가르치곤 했다.우빈은 아직 어려서 재혼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하자 김은희는 아빠와 엄마가 다시 함께 살게 하는 거라고 자상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우빈은 스스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엄마와 함께 살고 싶을 뿐 아빠와 살고 싶지 않다고 명백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는 주형인 집에 있으면 임정한이 늘 우빈의 장난감을 빼앗았다. 지금은 주경진 부부가 임정한의 편을 들지 않지만, 주서인은 여전히 우빈에게 그의 집에 돈과 장난감이 그토록 많은데 인색하게 임정한에게 놀게 하지 않는다고 잔소리 했다.어리석은 주서인은 심지어 돌려쓸 자금이 모자란다고 어린 우빈에게 돈을 가져다 달라고 설득했다!그러나 우빈은 그에게는 돈이 없다고 거절했다. 그의 돈은 전부 하예진이 도맡아 저축해 주었다면서 말이다.주서인은 그 말을 듣더니 우빈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냐면서, 왜 자신이 돈을 손에 넣어두지 않느냐고 따졌다.하여 우빈은 점점 더 주서인을 싫어했다.주씨 집안은 더 이상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빈이가 보고 싶을 때면 항상 하예진에게 우빈을 데려다 달라고 하거나, 그들의 주씨 집안 사람이 직접 유치원 입구에서 우빈을 데리러 간 후 전화로 하예진에게 알리곤 했다.하예진의 동의 없이 우빈을 유치원에서 데려갈 수 없었다.하예진이 동의하지 않으면 친아버지인 주형인이 데리러 간다고 해도 우빈을 데려갈 수 없었다.누가 예전에 주씨 집안 사람더러 우빈을 따돌려 숨겨놓고 하예진이 아들을 못 보게 숨기라고 했는가!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특히 주서인과 김은희는 매우 못마땅했지만, 하예진 앞에서는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우빈은 똑똑한 아이인지라 주씨 집안의 사람들이 전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주형인이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그와 함께 놀아주지 않는 한 주형인의 집에 가는 것을 꺼렸다.
우빈은 고개를 돌려 하예정에게 물었다.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챙겼어. 걱정하지 마. 동명 아저씨가 시간 아끼려고 여기까지 마중 나온 거야. 가자! 너희 엄마가 강성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우빈은 기뻐하며 노동명에게 말을 건넸다.“아저씨, 그럼 우리 빨리 가요. 우리 엄마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돼요.”노동명은 녀석을 끌어안고 자신의 허벅지에 앉히며 말을 건넸다.“자, 그럼 지금 출발했다!”노동명은 경호원에게 앞으로 가라고 손짓했다.개인 비행기가 유치원 입구에 주차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노동명은 우빈을 데리고 공항으로 가야 했다.“우빈이 안 배고파?”노동명이 묻고 있었다.“유치원에서 간식 좀 먹었어요.”점심 휴식시간이 지나면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늘 간식을 제공한다.우빈은 먼 길을 떠날 것을 알고 간식을 많이 먹었던지라 녀석은 지금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노동명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배고프면 차나 비행기 위에서 간식 좀 먹자. 우리 밥 먹지 말고 네 엄마를 만나면 함께 식사하자.”“네.”노동명은 우빈이가 배고플까 봐 다정하게 여러 쥬스와 간식을 많이 준비해 놓았다.하예정도 두 사람을 위해 간식들을 준비해 왔다.그녀는 먼저 차에 가서 우빈의 작은 여행 가방을 꺼내 노동명의 경호원에게 건네주었다.“예정 씨, 우빈이를 제 차에 태워요.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 힘들어요. 오다 다가 시간도 한참 걸릴텐데. 제가 우빈을 데리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우빈이 머리카락 한 올도 빠지지 않으리라고 맹세할 수 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저는 배웅하러 가지 않을게요. 우빈아, 도착해서 엄마 만나면 이모한테 문자 한 통 보내라고 전해줘. 그리고 이모도 많이 생각해야 해.”우빈은 하예정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이모, 그리고 이모부, 다른 이모들도 많이 생각할게요.”노동명은 농담하며 말을 건넸다.“우빈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다 생각할 수 있겠어?”모두가 빵 터졌다.우빈은 진지
“이모! 아저씨!”우빈이가 달려 나왔다.그는 멀리서 하예정과 노동명을 보자마자 바로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고 작은 가방을 멘 채로 빠르게 달려왔다.선생님은 깜짝 놀라 재빨리 그의 뒤를 쫓아왔다.“우빈아, 너무 빨리 뛰지 마. 넘어져! 조심해야지.”하예정이 몇 발짝 앞으로 나가며 소리쳤다.눈 깜짝할 사이에 우빈은 하예정의 곁으로 달려갔다.하예정은 쪼그리고 앉아 그를 안아 주었다. 그러다가 곧 몸부림치며 내려왔다.“이모 뱃속에는 제 동생이 있어요. 동생이 지금 자라는 중이라 이모가 저를 안아 주면 제가 이 동생을 누를지도 몰라요.”우빈은 가끔 이모의 배를 만지면서 하예정 배속의 동생과 인사 나누기도 했다.심지어 배속의 동생에게 왜 여동생이 아니고 남동생이냐고 묻기까지 했다.안타깝게도 그 동생은 아직 그에게 답을 줄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녀석에게 한 달 후, 동생에게 인사를 건네면 움직일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그때면 태아의 움직임이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하예정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괜찮아. 우리 우빈이 전혀 무겁지 않은걸. 동생을 누르지 않을 거야.”임신해도 우빈이 정도는 거뜬하게 안을 수 있었다.다만 다들 우빈이가 함부로 움직여 실수로 그녀의 배를 다치게 할까 봐 안게 하지 못했을 뿐이다.우빈도 철이 든 아이였다.하예진이 그에게 다시는 하예정 품에 안기지 말라고 한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아까는 너무 기뻐서 참지 못하고 하예정에게 안긴 것이다. 하하!“아저씨.“우빈은 즐겁게 노동명의 앞으로 뛰어갔다.그는 자연스레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두 손으로 노동명의 목을 껴안으며 달콤하게 소리쳤다.“아저씨, 보고 싶었어요.”“아저씨도 우리 우빈 너무 보고 싶었어.”노동명은 어린 녀석을 껴안으며 마음이 따스해졌다.“어제 아저씨를 못 봤더니 태윤 이모부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 못 봤더니 일... 일...”우빈은 전태윤이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그 뒷부분의 구절이 기억나지 않았다.“하루 못 보니 일 년이나
하예정의 차는 노씨 그룹 입구에 멈춰 서서 노동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정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2분도 채 되지 않아 차를 타고 나왔다.“예정 씨.”노동명은 차창을 내리누르고는 웃으며 말했다.“우빈의 여행용 가방은 저에게 맡기면 돼요.”하예정이 대답했다.“어차피 저도 바래다 드려야 해요. 오빠, 우빈이 물건들도 전부 제 차에 있으니 먼저 우빈이 데리러 유치원에 가보세요. 유치원에서 곧 하학해요.”“네.”그러자 노동명이 물었다.“태윤이는 안 왔어요?”“너무 바빠서 얘기도 안 꺼냈어요.”노동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는 정말 바쁜 친구였다.하예정이 먼저 차를 몰았고 노동명의 차도 곧 뒤를 따랐다.그런데 유치원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여운별을 만나게 되었다.여운별은 매일 유치원 입구에서 하예정과 우연히 만날 기회를 잡고 있었다.“사모님, 또 조카 데리러 오신 거예요?”여운별은 입가에 우아한 웃음을 머금으며 걸어오는 하예정에게 물었다.하예정과 함께 있는 노동명을 보는 여운별은 아름다운 눈을 반짝거렸다. 하예정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면 여운별은 아마 노동명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전태윤이 하예정을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는데, 그녀가 그의 좋은 형제와 함께 다니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네, 사모님도 시누이를 데리러 오신 거예요?”“네,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만 매일 제가 데려다줘야 하거든요. 내일 주말이니까 이틀 쉬어도 되겠네요. 참, 쉬지도 못하겠네요. 애가 자꾸 놀이터에 가겠다고 조를 테니까요. 저희 시부모님께서는 집에서 쉬고는 계시지만 매일 수많은 사업을 해야 하거든요. 손님께 음식 대접도 해야 하고 고객과 함께 골프도 치러 가야 해서 너무 바쁘세요.”여운별은 거짓말을 점점 더 자연스럽게 했다.너무 잘해서 그런지 자신조차 사실 같다고 느껴졌다.마치 그녀가 정말로 용씨 사모님인 듯, 정말로 시누이와 시동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우리 시누이도 시부모님과 함께 놀지 않고 매일 저에게 달라붙어서
여운초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아주 꿀이 떨어지네요.”하예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웃음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자꾸 새어 나왔다.그녀도 가볍게 답장을 보냈다.“운초 씨도 도련님 사랑 듬뿍 받으시잖아요.”둘은 마치 꿀단지에 잠긴 듯, 사랑의 달콤함에 흠뻑 젖어 있었다.여운초가 바빠 보였기에 하예정은 더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그녀가 천천히 제 차로 돌아와 막 차에 오르려는 찰나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주형인이 서 있었다.“처제.”주형인은 다가오며 그녀가 혼자인 것을 보고 물었다.“우빈이는 안에 데려다줬어?”“네. 우빈이 보고 싶으세요?”주형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손님 모시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빈이 얼굴이나 볼까 해서 왔어. 아직 안 왔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찍일 줄이야.”“우빈이는 잘 지내요.”하예정은 전 형부에게 무심한 태도로 대꾸했다.주형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우빈이는 잘 지낼 거라 믿어. 네가 돌보고 있으니 나랑 너희 언니도 마음 놓고 있어. 우빈이한테 들었는데 너희 언니 출장 갔다며? 오래 걸린다고 하던데.”“그건 왜요?”“아, 별일은 아니고 그냥 물어봤어.”잠시 침묵하던 주형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출장, 정말 오래 걸려?”“정확히는 몰라요.”“아, 그렇구나.”주형인의 얼굴엔 아쉬움이 스쳤다.하예정은 차갑게 말했다.“더 할 얘기 없으시면, 저 먼저 가볼게요.”“아, 그래.”주형인은 무언가 말하려다 끝내 삼켰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하예정이 차에 올라 떠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그녀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천천히 발길을 돌려 자신의 차로 향했다.주형인은 그때 이후로 다시 회사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젠 갈 곳도, 그를 받아줄 곳도 없었다.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관성시에서 그는 이미 유명했다. 나쁜 쪽으로 유명했다. 그 이름에 따라붙는 것은 조롱뿐이었다.사람들은 그를 두고 인과응보라며 혀를 찼다. 뿌린 대로 거
그래서 녀석의 짐은 미리 노동명에게 맡겨야 했다.하예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우빈이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점점 멀어지자 하예정은 그제야 주차해 둔 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때, 막 차에 오르는 용씨 가문 사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두 명의 경호원이 그녀의 곁을 바짝 지키고 있었다.한 경호원이 공손히 차 문을 열어주며 예의를 갖췄다.용씨 가문 사모님은 살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하예정을 발견하자 미소를 머금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예의상 하예정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잠시 후 여운별을 태운 고급 승용차는 부드럽게 하예정의 시야에서 멀어졌다.하예정은 시선을 거두며 휴대폰을 꺼내 여운초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운초 씨, 용 사모님을 또 만났어요. 그나저나 동생분께서 찾아와 귀찮게 굴지는 않으셨나요?”여운초는 아직 집을 나서지 않은 상태였다. 오전에는 화상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꽃집에 들를 틈이 없었다.회사에도 처리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통화로 해결할 업무가 많이 남아 있었다.어쨌든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저녁이 되면 남편과 함께 여유롭게 서원 리조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그렇게 또 주말이 다가왔다.주말에는 대체로 업무에서 손을 뗐다. 급한 일이 생기면 한동호가 대신 해결해 주곤 했다.꽃집도 믿음직한 직원들이 지키고 있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주말을 남편과 함께 오롯이 둘만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었다.내일 밤은 시어머니와 함께 연회에 참석할 계획이었다.“네, 괜찮아요. 곧 있다 올지도 모르겠네요.”여운초는 하예정에게 답장을 보냈다.“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용씨 가문 사모님과 여운별이 제 눈에 너무 겹쳐 보이더라고요. 목소리도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여운별은 지금 남자친구도 없고 경호원을 둘 형편도 안 돼요. 고급 승용차라니, 여운별이 타는 차는 제가 익히 알아요.”여운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다음에 용씨 가문 사모님을
하지만 하예정은 아직 용씨 가문 사모님과 여운별이 한자리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가 여운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두 사람이 동시에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의혹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여운별은 애초에 하예정을 기다리지 않았다.지금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어야 했다. 만약 그녀가 미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지나친 의도는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겼을 것이다.하예정이 그녀를 조사하고 있다고 용태호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물론, 아무리 뒤져도 쓸 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하예정은 이미 그녀가 여운별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여운별은 문득 가장 증오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마주했던 언니의 목소리, 그 익숙한 울림이.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긴 것은 분명 여운초의 말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다행히도 용태호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다.하예정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찾아낼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빚어진 허상일 뿐이었다.그러나 하예정이 심효진과 친밀한 사이라는 점은 우려할 만했다. 심효진은 소씨 가문의 며느리였고, 소씨 가문은 정보망이 촘촘하기로 유명했다.하예정이 누구를 조사하려면 소씨 가문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하예정은 빈손이었다. 여운별이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운별은 마음 한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그리고 그 여유는 곧 그녀의 표정에 스며들어 하예정을 마주할 때면 그녀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마치 자신이 진짜 용씨 가문 사모님인 것처럼, 여운별이라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말이다.용태호는 그녀한테 내일 밤에 있을 연회에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참석하라고 말했다. 용씨 가문 사모님의 신분으로 참석하라는 것이었다.그 연회에는 관성시 상류 사회의 귀부인들이 모일 터였다.전씨 가문의 명해은도 내일 밤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며 며느리인 여운초도 데려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