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아, 태윤 씨 평소에 널 어떻게 속였어? 자기가 일반 직장인이라고 늘 그렇게 말했지?”하예정은 성소현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엄청 화내며 그녀와도 사이가 틀어질 줄 알았는데 정작 성소현이 화난 이유는 전태윤이 양쪽 모두 속인 것 때문이다. 그가 만약 기혼 사실을 밝혔다면 성소현은 바로 마음을 접었을 텐데 줄곧 아무 말 없이 있으니 싱글인 줄 알고 끈질기게 집착했다. 결국 그녀만 남의 결혼에 끼어든 제삼자가 돼버렸고 게다가 친구 같은 사촌 여동생의 결혼생활을 훼방한 격이 되었다.“예정아, 두 사람 언제 혼인 신고했어?”성소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하예정이 대답했다.“추석 연휴 끝나고 다음 날인가 사흘째인가 그쯤이었어요.”그 당시 하예정은 대충 함께 살 사람이 필요해서 초고속결혼을 한 것뿐이니 혼인신고 날짜를 일부러 새겨두지 않았다. 그저 추석 연휴가 지나고 며칠 안 돼 혼인신고를 마쳤다는 것만 알고 있다.“예정아, 우리 결혼기념일은 매년 10월 10일이야.”성소현에게 질책당하던 전태윤이 대신 말했다. 그는 이젠 결혼기념일을 단단히 외워놓았다.“그러니까 두 사람 혼인 신고한 후에야 내가 공개 고백을 한 거네요. 태윤 씨 아주 작정을 했군요!”성소현은 자신이 먼저 고백하고 전태윤이 혼인신고를 했다면 이해라도 할 텐데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후에야 그에게 고백했다.전태윤은 그녀의 진심 어린 고백을 거절하긴 했지만 본인의 기혼 사실을 알리진 않았다. 후에 성소현이 하도 집착해서 결혼반지를 보여줬고 그제야 그녀도 마음을 접었다.전태윤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물었다.“나랑 예정이 사이의 일을 성소현 씨한테 보고해야 해요?”“그럴 필요는 없지만 태윤 씨가 유부남이니 나더러 멀리 꺼지라고 했어야죠. 결혼했으면서 아무 내색 안 하고 내가 집착하는 걸 귀찮아하면서도 그냥 내버려 뒀잖아요. 이런 식으로 남자의 자존심을 채운 거예요?”전태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한 눈빛으로 하예정을 바라봤다.하예정도 그를 마주 보았다.“예정아, 우리가 처음에 잠시 비
하예정이 고개 들어 그를 쳐다볼 때 전태윤은 몸을 홱 돌리고 가버렸다.하예정은 성큼성큼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슴이 쿡 찔린 듯 아팠다.다만 그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심효진과 성소현이 밖에서 얘기를 나눌 때 전태윤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점을 나왔다. 그는 두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늘 타던 롤스로이스로 곧게 걸어갔다.경호팀은 그의 명령대로 다 가고 없지만 기사는 전태윤이 차를 쓸까 봐 감히 떠나지 못했다.전태윤이 다가오자 기사는 얼른 차에서 내려 그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2분도 안 될 사이에 전태윤은 롤스로이스를 타고 성소현과 심효진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두 여자는 서로 마주 보다가 곧장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카운터에 하예정은 안 보이고 그녀가 공예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공구들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테이블 위에 피가 몇 방울 떨어졌고 가위에도 핏자국이 있었다.하예정이 다친 걸까?“예정아.”“예정아.”심효진과 성소현은 그녀를 애타게 부르며 안으로 걸어갔다.하예정은 화장실에 있었다.방금 전태윤이 갑자기 그녀에게 버럭 화냈고 그녀가 고개 들어 그를 마주 보려 할 때 전태윤은 몸을 홱 돌리고 서점을 나섰다.하예정은 순간 정신이 팔려 가위로 손가락을 찔렀는데 상처가 꽤 깊어 그 자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녀는 재빨리 서랍에서 늘 쟁여뒀던 지혈제와 밴드, 소독약을 꺼내고 면봉으로 간단히 소독한 후 상처에 지혈 크림을 바르고는 밴드를 붙였다.피가 너무 많이 흘러 책상에도 떨어지고 그녀의 다른 손가락에도 잔뜩 묻었다.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가 손에 묻은 핏자국을 씻고 있었다.“나 여기 있어.”하예정이 대답하며 화장실에서 나왔다.“어디 다쳤어?”심효진이 관심 조로 물었다.“이리 봐봐.”하예정은 밴드를 붙인 손가락을 보여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가끔 가위에 찔릴 때도 있어. 피를 몇 방울 흘렸을 뿐이야.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니까.”심효진은 하예정의 다친
“그 사람과는 상관없어. 내가 부주의로 찌른 것뿐이야.”하예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성소현에게도 말했다.“언니, 저랑 태윤 씨 일은...”“예정아, 난 널 탓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내게 해명할 필요 없고 사과할 필요도 없어. 우리가 알고 지낸 지 하루 이틀이니? 난 그저 태윤 씨가 양쪽 모두 숨겨가며 우릴 농락한 게 화날 뿐이야.”방금 심효진이 성소현에게 그간 하예정이 전태윤의 진짜 신분을 알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조리 알려주었다. 성소현은 사촌 동생이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었다.전태윤에게 감쪽같이 속아버렸으니 말이다.“예정아, 난 일찌감치 태윤 씨한테 마음 접었어. 태윤 씨가 결혼한 걸 알았을 때부터 바로 마음 접었고 한동안은 찾아가서 집착하지도 않고 생각조차 안 하려고 애썼어. 지금은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어. 나 때문에 네 진심을 외면하지는 마. 태윤 씨가 널 속인 걸 떠나 그 사람은 네가 평생을 믿고 맡길 가치가 있어. 물론 널 감쪽같이 속였으니 나도 네가 너무 빨리 용서해주는 건 원치 않아. 이참에 따끔하게 혼나야 해.”성소현은 다음에 전태윤을 만나면 바로 호칭을 고쳐서 누나라고 부르게 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사촌 동생을 대신해 전태윤을 제대로 한번 다스려야 할 듯싶었다.“이건 단지 내 생각이고 네가 어떻게 할지는 네가 결정해. 난 절대 간섭 안 해.”성소현은 그녀의 다친 손가락을 살펴보았다.“아직도 피가 안 멈춘 것 같은데 얼른 병원 가서 꿰매야겠다. 너 안색이 다 창백해졌어. 내가 병원까지 데려다줄게.”하예정은 상처가 얼마나 아프던 한사코 거절했다.손이 아픈들 마음만 할까. 그녀는 방금 가위로 너무 세게 찔러서 하마터면 손가락이 잘릴 뻔했다.“내가 네 언니야. 내 말 들어.”성소현은 강제로 그녀를 끌고 나갔다.심효진도 성소현과 한편이 되어 하예정에게 얼른 병원 가서 상처를 다시 소독하고 꿰매라고 다그쳤다.두 친구의 설득에 못 이겨 하예정은 결국 순순히 성소현을 따라 병원에 갔다.한편 전태윤은 거만을 떨며 서점을
전태윤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었다.이를 본 소정남도 더는 설득하기 귀찮아 그에게 제안했다.“아니면 너 그냥 회사에 남아있어. 내가 가서 염탐해볼게. 넌 지금 뭐라도 해서 주의력을 분산시켜야 해. 너랑 예정 씨의 모순은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니 급해도 소용없어. 급할수록 실수만 더 늘어나.”전태윤은 지금 확실히 무언가를 해서 주의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그는 약간 무기력해진 말투로 말했다.“땡땡이치고 싶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해. 날 위해 염탐하러 간다는 식으로 말 돌리지 말고.”소정남은 배시시 웃었다.“내가 널 위해 수년간 소처럼 일만 해왔는데 인제 두 날 정도는 쉬게 해줘야지.”그와 심효진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어쩌면 전태윤과 하예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정남은 심효진이 늘 그를 지켜보고 호감도 있지만 이 감정을 꾹 짓누르고 감히 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다.‘어휴! 다 내 팔자지 뭐. 효진 씨를 향한 내 마음을 계속 보여줘야지 어쩌겠어.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고 시간이 오래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듯이 그 언젠가 효진 씨도 내 마음을 받아들일 날이 오겠지.’소정남은 흐뭇하게 웃으며 걸어갔다.그는 수중의 업무를 모조리 전태윤에게 넘기고 우선 꽃가게에 들러 꽃 한 다발 산 뒤 케이크 가게에서 심효진이 잘 먹는 디저트도 몇 개 사서 서점으로 출발했다.성소현과 하예정은 상처를 꿰매러 병원에 갔고 심효진은 홀로 남아 가게를 지켰다. 그녀는 책상에 묻은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 카운터에 앉아 소설을 봤다.“꽤 한가하네요?”이때 익숙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심효진은 고개를 들고 소정남을 보더니 책을 내려놓으며 활짝 웃었다.“정남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오늘은 스케줄 없어요?”“설 연휴가 막 지났고 설전에 밀린 업무가 너무 많아서 아직 처리하지 못했어요. 오늘 야근해야 내일 쉴 수 있어요.”심효진은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난 또 주말 이틀은 다 쉬는 줄 알았어요.”“평상시엔 다
소정남이 이 시점에 온 걸 보니 전태윤은 아마도 서점을 떠나 회사로 돌아간 모양이다.“소현 씨는 태윤이가 예정 씨 남편인 걸 알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하네요.”소정남은 사진을 찍고 곧장 전태윤에게 전송하지 않았다.어차피 성소현이 하예정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다시 처치하고 있으니 지금 이 사진을 보내면 전태윤은 그를 당장 회사로 불러들이고 본인만 병원에 달려가 아내를 챙겨줄 게 뻔하다.소정남은 이기적으로 생각했다.‘반나절만 내 시간을 가질 거야.’그는 일단 심효진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다가 회사에 돌아가 전태윤의 일꾼이 되기로 했다.‘내가 전생에 태윤이한테 신세 진 게 많아서 그래. 이번 생에 태윤이를 위해 수많은 일을 하면서도 달갑게 받아들이잖아.’“그저 태윤 씨가 예정이를 속여서는 안 된다고 질책만 했어요. 다른 건 딱히 없어요. 태윤 씨도 더 해명하지 않았고 해명할 것도 없었겠죠. 거짓말한 건 사실이니까요.”심효진은 소정남을 빤히 쳐다봤다.“당신들처럼 돈 많고 세력 있는 남자들은 작정하고 거짓말할 때 연기가 남우주연상 급이라니까요.”이들은 주로 딴사람들의 입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충분히 갖고 있어 속은 사람은 계속 속고만 산다.일반인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숨길 능력이 없다.“효진 씨, 난 효진 씨를 속인 적 없어요. 내가 이사라는 신분으로 다가오는 게 싫다고 해서 전부 내려놨어요. 효진 씨 앞에서 난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요.”심효진은 디저트를 한 조각 먹으며 말했다.“정남 씨는 이미 내 뒷조사를 깔끔하게 마쳤잖아요. 인제 와서 이사 신분을 내려놓았다고 해도 이미 나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있잖아요.”소정남은 배시시 웃었다.그는 어느덧 습관이 돼버렸다.한 사람을 눈여겨보기 시작하면 바로 인맥을 동원하여 그 사람의 내막을 싹 다 캐낸다.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니까.“요즘 뭐 새로운 가십거리 없어요?”심효진은 디저트를 한입 먹은 후 한 조각 더 집고는 박스를 소정남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도 함께 먹으라는 뜻이
소정남의 잘생긴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효진과 몇 번이나 데이트 약속을 잡고 함께 밥을 먹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여전히 그가 심효진에게 대시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다.아마 심효진의 엄마는 소정남이 심서준에게 밥 사주는 거로 생각할 듯싶다.여기까지 생각한 소정남은 말문이 막혔다.심효진이 전화를 받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여보세요, 어마마마께서 무슨 분부이신가요?”“장난 그만 치고 저녁에 일찍 돌아와. 너희 고모 집에 가서 밥 먹을 거야.”심효진이 경계하며 되물었다.“오늘 무슨 날이에요? 왜 고모네 집에서 밥 먹어요?”심효진의 엄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목소리를 내리깔고 물었다.“예정이 지금 옆에 있어?”“아니요, 없어요.”“다행이네. 진우 돌아왔거든. 두세 날만 있다가 바로 간대. 걔 H시에 간 이후로 너희 고모 밤낮없이 그리워했어. 엄마는 다 그래, 멀리 떠난 자식 걱정뿐이지. 진우가 오랜만에 돌아왔다고 너희 고모가 우릴 집으로 초대했어.”심효진은 안색이 살짝 변하면서 소정남을 힐긋 보다가 결국 질문을 건넸다.“엄마, 진우 돌아온 거 다른 뜻은 없죠?”전태윤과 하예정이 아직 화해도 못 했는데 바보 같은 동생 진우가 끼어들면 비참하게 죽을 게 뻔하다.어쨌거나 사촌지간이니 심효진은 진우가 너무 비참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고모 말로는 진우를 H시 계열사로 보내고 김씨 집안 도련님이란 신분을 숨긴 채 밑바닥부터 시작하게 했다고 한다. 김진우는 절대 H시를 마음대로 떠날 수 없고 관성에 돌아오는 것도 사전에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걸쳐야 한다.고모는 진우의 은행카드를 전부 정지하고 용돈도 안 주고 차도 안 줬다. 돈을 쓰고 싶으면 열심히 출근해서 성실하게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라고 했다.계열사에서도 진우에게 숙박을 제공하지 않아 반드시 셋집을 구해야만 했다. 매달 집세와 전기세, 수도세는 전부 그의 월급에서 지출해야 한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김진우에게 이보다 더 힘든 나날은 없었다.다만 그의 부모님은 이렇게 혹독한 방식으
김진우가 계속 하예정에게 집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효진의 엄마도 찬성하지 않았다.아무리 사랑해도 상대가 이미 결혼을 했는데 계속 집착하는 건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다!“아 참, 고모가 너한테도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줬으니 저녁 먹을 때 한번 만나. 이번엔 재벌 2세가 아니래. 네가 재벌가를 싫어하는 걸 알고 고모도 포기했나 봐.”사실 심효진이 도씨 사모님 생일 연회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이름을 날렸을 때부터 심미란은 효진이가 재벌가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고모는 또다시 그녀의 결혼을 신경 쓰고 있었다.조카가 26살인데 남자친구도 없으니 고모가 대신 마음이 초조했다.심효진의 엄마도 조급한 건 마찬가지이니 시누와 올케는 만날 때마다 심효진의 선 자리를 의논했다.“네 고모가 말하길 오늘 밤에 네가 만날 사람은 고모네 회사 직원이래. 회사에서 일한 지 몇 년 됐고 네 고모부도 그 사람 성품을 잘 알고 있대. 전에 8년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3개월 전에 헤어졌대. 네 고모부도 그제야 너희 두 사람 선 자리를 마련해준 거야.”심효진이 물었다.“8년이나 만났는데 왜 헤어졌대요?”“여자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대. 딴 남자랑 결혼하려고 그랬나 봐. 아무튼 헤어진 건 확실해.”심효진은 그 여자가 8년이나 기다렸지만 결혼할 희망이 안 보이자 결국 마음 접고 딴 사람에게 시집간 거로 여겼다.“엄마, 나 소개팅하기 싫어요.”심효진은 고모가 소개한 남자를 거절했다.8년을 기다리고도 마음이 재가 되어 딴 남자에게 시집갔다고 하니 이 남자가 얼마나 매정할지 만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녀는 벌써 상대에게 호감이 떨어졌다.“그 사람 업무가 너무 바빠서 여자친구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대. 그래서 여자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야.”심효진의 엄마가 말했다.“고모부가 소개한 사람인데 나쁠 리 있겠어? 남자가 별로면 고모부도 네게 소개하지 않았을 거야. 소개팅도 하기 싫으면 대체 결혼은 어떻게 할 건데? 너 인제 26살이야!
한편 소정남도 제법 훌륭한 녀석이다.그녀는 매번 소정남이 심서준에게 밥을 사줄 때면 속으로 한탄했다. 만약 심효진에게 밥을 사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번졌다.소정남은 진지하게 대답했다.“아주머니, 저 위장한 거 아니고요 제가 바로 효진 씨 남자친구예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아직은 효진 씨에게 대시하는 중이라 제 여자친구가 돼주겠다는 확답은 얻지 못했어요.”심효진의 엄마는 문득 휴대폰을 내려놓고 지금 딸과 통화하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는 귀까지 파고 나서야 휴대폰을 다시 귓가에 갖다 댔다.“너 진짜 소정남이야?”“네, 저예요, 아주머니.”“지금 효진이한테 대시하는 중이라고? 서준이가 아니라?”“아주머니... 저 취향 확고해요. 여자만 좋아한다고요.”그는 속으로 구시렁댔다.‘미래의 장모님이 될 분도 효진 씨랑 같은 생각이었어?! 어떻게 내가 서준 씨한테 호감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지?’웃기는 것은 심효진의 엄마가 이렇게 그를 의심하면서도 계속 제 아들과 만나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이토록 오픈 마인드란 말인가?“난 또 네가 서준이한테 너무 잘해줘서 우리 서준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 안 그래도 항상 서준의 아빠랑 어떡하냐고, 우리 이러다 남자를 며느리로 삼는 건 아니냐고 걱정했었어. 서준 아빠는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낯빛이 확 어두워지셨어.”소정남은 말을 잇지 못했다.“아주머니.”그는 이마를 짚으며 해명에 나섰다.“저는 쭉 효진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서준 씨한테 그토록 잘해준 것도 다 서준 씨가 효진 씨 친동생이라 미래의 처남에게 잘 보여 점수 따려고 그런 거예요. 제가 서준 씨한테 밥을 사줄 때마다 효진 씨가 항상 따라 나왔잖아요!”심효진의 엄마는 호탕하게 웃었다.“그랬구나, 그런 거였네. 서준이가 아니라니 다행이야. 나도 더는 남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겠어. 여보, 이리 와봐요. 좋은 소식 알려줄게요. 당신 아들 남자랑 결혼할 일 없으니까 인제 걱정 안 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