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과는 상관없어. 내가 부주의로 찌른 것뿐이야.”하예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성소현에게도 말했다.“언니, 저랑 태윤 씨 일은...”“예정아, 난 널 탓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내게 해명할 필요 없고 사과할 필요도 없어. 우리가 알고 지낸 지 하루 이틀이니? 난 그저 태윤 씨가 양쪽 모두 숨겨가며 우릴 농락한 게 화날 뿐이야.”방금 심효진이 성소현에게 그간 하예정이 전태윤의 진짜 신분을 알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조리 알려주었다. 성소현은 사촌 동생이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었다.전태윤에게 감쪽같이 속아버렸으니 말이다.“예정아, 난 일찌감치 태윤 씨한테 마음 접었어. 태윤 씨가 결혼한 걸 알았을 때부터 바로 마음 접었고 한동안은 찾아가서 집착하지도 않고 생각조차 안 하려고 애썼어. 지금은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어. 나 때문에 네 진심을 외면하지는 마. 태윤 씨가 널 속인 걸 떠나 그 사람은 네가 평생을 믿고 맡길 가치가 있어. 물론 널 감쪽같이 속였으니 나도 네가 너무 빨리 용서해주는 건 원치 않아. 이참에 따끔하게 혼나야 해.”성소현은 다음에 전태윤을 만나면 바로 호칭을 고쳐서 누나라고 부르게 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사촌 동생을 대신해 전태윤을 제대로 한번 다스려야 할 듯싶었다.“이건 단지 내 생각이고 네가 어떻게 할지는 네가 결정해. 난 절대 간섭 안 해.”성소현은 그녀의 다친 손가락을 살펴보았다.“아직도 피가 안 멈춘 것 같은데 얼른 병원 가서 꿰매야겠다. 너 안색이 다 창백해졌어. 내가 병원까지 데려다줄게.”하예정은 상처가 얼마나 아프던 한사코 거절했다.손이 아픈들 마음만 할까. 그녀는 방금 가위로 너무 세게 찔러서 하마터면 손가락이 잘릴 뻔했다.“내가 네 언니야. 내 말 들어.”성소현은 강제로 그녀를 끌고 나갔다.심효진도 성소현과 한편이 되어 하예정에게 얼른 병원 가서 상처를 다시 소독하고 꿰매라고 다그쳤다.두 친구의 설득에 못 이겨 하예정은 결국 순순히 성소현을 따라 병원에 갔다.한편 전태윤은 거만을 떨며 서점을
전태윤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었다.이를 본 소정남도 더는 설득하기 귀찮아 그에게 제안했다.“아니면 너 그냥 회사에 남아있어. 내가 가서 염탐해볼게. 넌 지금 뭐라도 해서 주의력을 분산시켜야 해. 너랑 예정 씨의 모순은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니 급해도 소용없어. 급할수록 실수만 더 늘어나.”전태윤은 지금 확실히 무언가를 해서 주의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그는 약간 무기력해진 말투로 말했다.“땡땡이치고 싶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해. 날 위해 염탐하러 간다는 식으로 말 돌리지 말고.”소정남은 배시시 웃었다.“내가 널 위해 수년간 소처럼 일만 해왔는데 인제 두 날 정도는 쉬게 해줘야지.”그와 심효진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어쩌면 전태윤과 하예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정남은 심효진이 늘 그를 지켜보고 호감도 있지만 이 감정을 꾹 짓누르고 감히 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다.‘어휴! 다 내 팔자지 뭐. 효진 씨를 향한 내 마음을 계속 보여줘야지 어쩌겠어.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고 시간이 오래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듯이 그 언젠가 효진 씨도 내 마음을 받아들일 날이 오겠지.’소정남은 흐뭇하게 웃으며 걸어갔다.그는 수중의 업무를 모조리 전태윤에게 넘기고 우선 꽃가게에 들러 꽃 한 다발 산 뒤 케이크 가게에서 심효진이 잘 먹는 디저트도 몇 개 사서 서점으로 출발했다.성소현과 하예정은 상처를 꿰매러 병원에 갔고 심효진은 홀로 남아 가게를 지켰다. 그녀는 책상에 묻은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 카운터에 앉아 소설을 봤다.“꽤 한가하네요?”이때 익숙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심효진은 고개를 들고 소정남을 보더니 책을 내려놓으며 활짝 웃었다.“정남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오늘은 스케줄 없어요?”“설 연휴가 막 지났고 설전에 밀린 업무가 너무 많아서 아직 처리하지 못했어요. 오늘 야근해야 내일 쉴 수 있어요.”심효진은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난 또 주말 이틀은 다 쉬는 줄 알았어요.”“평상시엔 다
소정남이 이 시점에 온 걸 보니 전태윤은 아마도 서점을 떠나 회사로 돌아간 모양이다.“소현 씨는 태윤이가 예정 씨 남편인 걸 알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하네요.”소정남은 사진을 찍고 곧장 전태윤에게 전송하지 않았다.어차피 성소현이 하예정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다시 처치하고 있으니 지금 이 사진을 보내면 전태윤은 그를 당장 회사로 불러들이고 본인만 병원에 달려가 아내를 챙겨줄 게 뻔하다.소정남은 이기적으로 생각했다.‘반나절만 내 시간을 가질 거야.’그는 일단 심효진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다가 회사에 돌아가 전태윤의 일꾼이 되기로 했다.‘내가 전생에 태윤이한테 신세 진 게 많아서 그래. 이번 생에 태윤이를 위해 수많은 일을 하면서도 달갑게 받아들이잖아.’“그저 태윤 씨가 예정이를 속여서는 안 된다고 질책만 했어요. 다른 건 딱히 없어요. 태윤 씨도 더 해명하지 않았고 해명할 것도 없었겠죠. 거짓말한 건 사실이니까요.”심효진은 소정남을 빤히 쳐다봤다.“당신들처럼 돈 많고 세력 있는 남자들은 작정하고 거짓말할 때 연기가 남우주연상 급이라니까요.”이들은 주로 딴사람들의 입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충분히 갖고 있어 속은 사람은 계속 속고만 산다.일반인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숨길 능력이 없다.“효진 씨, 난 효진 씨를 속인 적 없어요. 내가 이사라는 신분으로 다가오는 게 싫다고 해서 전부 내려놨어요. 효진 씨 앞에서 난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요.”심효진은 디저트를 한 조각 먹으며 말했다.“정남 씨는 이미 내 뒷조사를 깔끔하게 마쳤잖아요. 인제 와서 이사 신분을 내려놓았다고 해도 이미 나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있잖아요.”소정남은 배시시 웃었다.그는 어느덧 습관이 돼버렸다.한 사람을 눈여겨보기 시작하면 바로 인맥을 동원하여 그 사람의 내막을 싹 다 캐낸다.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니까.“요즘 뭐 새로운 가십거리 없어요?”심효진은 디저트를 한입 먹은 후 한 조각 더 집고는 박스를 소정남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도 함께 먹으라는 뜻이
소정남의 잘생긴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효진과 몇 번이나 데이트 약속을 잡고 함께 밥을 먹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여전히 그가 심효진에게 대시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다.아마 심효진의 엄마는 소정남이 심서준에게 밥 사주는 거로 생각할 듯싶다.여기까지 생각한 소정남은 말문이 막혔다.심효진이 전화를 받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여보세요, 어마마마께서 무슨 분부이신가요?”“장난 그만 치고 저녁에 일찍 돌아와. 너희 고모 집에 가서 밥 먹을 거야.”심효진이 경계하며 되물었다.“오늘 무슨 날이에요? 왜 고모네 집에서 밥 먹어요?”심효진의 엄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목소리를 내리깔고 물었다.“예정이 지금 옆에 있어?”“아니요, 없어요.”“다행이네. 진우 돌아왔거든. 두세 날만 있다가 바로 간대. 걔 H시에 간 이후로 너희 고모 밤낮없이 그리워했어. 엄마는 다 그래, 멀리 떠난 자식 걱정뿐이지. 진우가 오랜만에 돌아왔다고 너희 고모가 우릴 집으로 초대했어.”심효진은 안색이 살짝 변하면서 소정남을 힐긋 보다가 결국 질문을 건넸다.“엄마, 진우 돌아온 거 다른 뜻은 없죠?”전태윤과 하예정이 아직 화해도 못 했는데 바보 같은 동생 진우가 끼어들면 비참하게 죽을 게 뻔하다.어쨌거나 사촌지간이니 심효진은 진우가 너무 비참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고모 말로는 진우를 H시 계열사로 보내고 김씨 집안 도련님이란 신분을 숨긴 채 밑바닥부터 시작하게 했다고 한다. 김진우는 절대 H시를 마음대로 떠날 수 없고 관성에 돌아오는 것도 사전에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걸쳐야 한다.고모는 진우의 은행카드를 전부 정지하고 용돈도 안 주고 차도 안 줬다. 돈을 쓰고 싶으면 열심히 출근해서 성실하게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라고 했다.계열사에서도 진우에게 숙박을 제공하지 않아 반드시 셋집을 구해야만 했다. 매달 집세와 전기세, 수도세는 전부 그의 월급에서 지출해야 한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김진우에게 이보다 더 힘든 나날은 없었다.다만 그의 부모님은 이렇게 혹독한 방식으
김진우가 계속 하예정에게 집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효진의 엄마도 찬성하지 않았다.아무리 사랑해도 상대가 이미 결혼을 했는데 계속 집착하는 건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다!“아 참, 고모가 너한테도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줬으니 저녁 먹을 때 한번 만나. 이번엔 재벌 2세가 아니래. 네가 재벌가를 싫어하는 걸 알고 고모도 포기했나 봐.”사실 심효진이 도씨 사모님 생일 연회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이름을 날렸을 때부터 심미란은 효진이가 재벌가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고모는 또다시 그녀의 결혼을 신경 쓰고 있었다.조카가 26살인데 남자친구도 없으니 고모가 대신 마음이 초조했다.심효진의 엄마도 조급한 건 마찬가지이니 시누와 올케는 만날 때마다 심효진의 선 자리를 의논했다.“네 고모가 말하길 오늘 밤에 네가 만날 사람은 고모네 회사 직원이래. 회사에서 일한 지 몇 년 됐고 네 고모부도 그 사람 성품을 잘 알고 있대. 전에 8년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3개월 전에 헤어졌대. 네 고모부도 그제야 너희 두 사람 선 자리를 마련해준 거야.”심효진이 물었다.“8년이나 만났는데 왜 헤어졌대요?”“여자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대. 딴 남자랑 결혼하려고 그랬나 봐. 아무튼 헤어진 건 확실해.”심효진은 그 여자가 8년이나 기다렸지만 결혼할 희망이 안 보이자 결국 마음 접고 딴 사람에게 시집간 거로 여겼다.“엄마, 나 소개팅하기 싫어요.”심효진은 고모가 소개한 남자를 거절했다.8년을 기다리고도 마음이 재가 되어 딴 남자에게 시집갔다고 하니 이 남자가 얼마나 매정할지 만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녀는 벌써 상대에게 호감이 떨어졌다.“그 사람 업무가 너무 바빠서 여자친구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대. 그래서 여자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야.”심효진의 엄마가 말했다.“고모부가 소개한 사람인데 나쁠 리 있겠어? 남자가 별로면 고모부도 네게 소개하지 않았을 거야. 소개팅도 하기 싫으면 대체 결혼은 어떻게 할 건데? 너 인제 26살이야!
한편 소정남도 제법 훌륭한 녀석이다.그녀는 매번 소정남이 심서준에게 밥을 사줄 때면 속으로 한탄했다. 만약 심효진에게 밥을 사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번졌다.소정남은 진지하게 대답했다.“아주머니, 저 위장한 거 아니고요 제가 바로 효진 씨 남자친구예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아직은 효진 씨에게 대시하는 중이라 제 여자친구가 돼주겠다는 확답은 얻지 못했어요.”심효진의 엄마는 문득 휴대폰을 내려놓고 지금 딸과 통화하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는 귀까지 파고 나서야 휴대폰을 다시 귓가에 갖다 댔다.“너 진짜 소정남이야?”“네, 저예요, 아주머니.”“지금 효진이한테 대시하는 중이라고? 서준이가 아니라?”“아주머니... 저 취향 확고해요. 여자만 좋아한다고요.”그는 속으로 구시렁댔다.‘미래의 장모님이 될 분도 효진 씨랑 같은 생각이었어?! 어떻게 내가 서준 씨한테 호감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지?’웃기는 것은 심효진의 엄마가 이렇게 그를 의심하면서도 계속 제 아들과 만나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이토록 오픈 마인드란 말인가?“난 또 네가 서준이한테 너무 잘해줘서 우리 서준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 안 그래도 항상 서준의 아빠랑 어떡하냐고, 우리 이러다 남자를 며느리로 삼는 건 아니냐고 걱정했었어. 서준 아빠는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낯빛이 확 어두워지셨어.”소정남은 말을 잇지 못했다.“아주머니.”그는 이마를 짚으며 해명에 나섰다.“저는 쭉 효진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서준 씨한테 그토록 잘해준 것도 다 서준 씨가 효진 씨 친동생이라 미래의 처남에게 잘 보여 점수 따려고 그런 거예요. 제가 서준 씨한테 밥을 사줄 때마다 효진 씨가 항상 따라 나왔잖아요!”심효진의 엄마는 호탕하게 웃었다.“그랬구나, 그런 거였네. 서준이가 아니라니 다행이야. 나도 더는 남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겠어. 여보, 이리 와봐요. 좋은 소식 알려줄게요. 당신 아들 남자랑 결혼할 일 없으니까 인제 걱정 안 해도 돼
심효진은 이런 좋은 날들이 끝나갈 것을 생각하며 못내 아쉬웠다.통화를 끝낸 소정남은 휴대폰을 심효진에게 돌려주며 웃으며 말했다.“오늘 밤, 같이 당신 고모 댁에 가서 식사하는데 내가 뭘 준비해야 하죠? 지금 내 컨디션은 어떤가요?”심효진은 디저트를 먹으며 그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 고모네 눈에는 가장 훌륭한 사람일 거예요.”전 씨 그룹의 이사이자 재벌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신분은 심효진의 고모가 가장 원하는 조카사위 감이다.절친 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과 초고속 결혼을 하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심효진의 어머니와 고모는 그녀 앞에서 하예정의 팔자가 좋아 관성에서 가장 우수한 남성을 남편으로 맞았다고 부러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녀들은 하예정을 칭찬하고 부러워할 때마다 심효진을 쳐다보았는데, 그게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 눈빛인지, 심효진은 다 알고 있다.“글쎄 내가 자기 자랑을 하는 게 아니고, 온 관성을 보아도 나보다 훌륭한 남자가 몇 명 없을 거예요.”“소 이사님께서 저를 좋아하시다니, 제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는가 봐요.”“그건 우리 둘이 전생에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이번 생에 만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러니 우리 이번 생에도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해요,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있게요.”‘누가 당신과 다음 생에도 만나고 싶대요? 얼굴엔 항상 웃고 있지만 실로는 무서운 사람이면서...’심효진은 결국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다음 생이고 뭐고 이번 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우린 아직 정식으로 사귀지도 않았는데, 정남 씨는 벌써부터 엄마한테 그런 말을...”“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효진 씨 어머니와 고모가 계속 소개팅을 주선해 주실까 봐 그랬어요. 만약 당신이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난 어떡하죠? 그리고 정말 말하길 잘했죠, 그렇지 않으면 효진 씨 어머니는 내가 줄곧 당신의 동생과 사귀고 싶어한다고 오해하셨을거에요.”“콜록콜록!”과자에 사레들
“당신이 원한다면야 언제든지요! 그 집들과 가게들은 모두 우리 엄마 아빠 것이지 내 것이 아니에요. 엄마는 직접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나한테 심부름비를 백만 원 정도 주시며 집세 받는 거 도와달라고 한 거뿐이에요.”부모님의 돈은 언제나 부모님의 것이고 스스로 돈을 벌 능력이 있어야 한다.“당신 고모가 식사를 같이하자고 요청한 것은 김진우가 돌아와서래요.”“진우는 그저 방학에 고모를 보러온 것뿐이에요. 다시는 예정이를 집착하지 않을 거니 당신과 전 대표님도 더는 김 씨 그룹에 손대지 말아요.”전태윤이 전 씨 그룹의 대표라는 사실을 안 후로부터 심효진은 모든 일이 이해되었다. 소정남도 무조건 김 씨 그룹에 손대는 일에 참여했을 것이다.소정남은 떳떳하게 말했다.“태윤이도 우릴 봐서 김 씨 그룹에 협력 중지 이유를 알려준 거예요. 아니면 어떻게 도산할지도 모를걸요.”‘우릴 봐서? 당신이 김 씨 그룹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잠깐! 그러니까 나때문에...’전태윤도 소문처럼 무정한 사람은 아니었다.“진우가 예정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예정이가 전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마음을 접었어요.”심효진은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이 지난 후 고모는 김진우를 평범한 사원의 신분으로 H 시의 계열사에 보내기로 했는데, 카드도 용돈도 모두 다 끊었다고 한다.엄마의 강요하에 하예정을 보러 갈 수도 없고, 전화도 허용되지 않고, 서점에 찾아갈 수도 없어 그리움에 미칠 것만 같았던 김진우는 이런 자신을 H 시로 보내려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그 당시 김진우는 분노에 차 엄마한테 물었다.“엄마, 나는 이미 엄마가 말한 대로 다 했는데 뭘 더 바라시는 거예요? 날 꼭 그곳으로 보내야겠어요? 엄마 아들이 불쌍하지도 않아요?”그 말에 심미란은 벌떡 일어나 아들의 뺨을 치려고 손을 치켜들었다가 결국은 그 손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아들의 마른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파 났다.더 사랑하는 쪽이 상처받기 일쑤라고...비록 하예정 때문에
“아버지, 만약 윤정이가 끝내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죠?”거의 삼십 년을 이윤정과 남매로 지내왔기에 정일범은 그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는 이윤정이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녀는 아직도 어머니의 용서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지금 이윤정에게는 수입원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더러 강성을 떠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물론 이윤정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 안락한 환경에서 자라며 콧대를 높여왔다. 그런 그녀가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잠시 침묵하던 정군호가 입을 열었다.“더 이상 강성에 머물게 하지 말고 최대한 설득해서 보내도록 해.”“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윤정이를 찾아보고, 찾으면 몰래 돈을 쥐여주고 강성을 떠나게 하죠.”“아버지, 이젠 좀 쉬세요. 저도 좀 피곤해서 잠깐 쉬려고요.”정일범이 말했다.“그래, 밖의 소파에서 눈 좀 붙이렴.”정군호는 그래도 아들을 생각하는 듯했다. 정군호는 아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거실 소파에서 편히 쉬라고 권했다.그리고 정군호도 곧 잠에 빠져들었다.관성은 어느덧 오후 세 시 반이 되었다. 하예정이 심효진에게 말했다.“효진아, 나 우빈이 데리러 유치원 좀 갔다 올게.”심효진이 가볍게 답했다.“그래, 다녀와. 우빈이 데리고 바로 집에 가. 여기서는 사람들이 도와줄 거니까 굳이 다시 오지 않아도 돼.”심효진은 친구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게 마음에 걸렸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응, 우빈이 데리고 큰이모 집에 들를 거야. 아기도 보고.”겸사겸사 아기도 볼 수 있었다.우빈은 아기 보는 걸 참 좋아했다.매번 아기를 보고 나면, 그 작은 생명은 언제 나와서 자신과 함께 놀 수 있을지 묻곤 했다.그러면서 자신의 많은 장난감들을 아기한테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하예정은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서점을 나섰다. 떠나기 전, 심
비록 하예진과 고현이 위층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해도 전호영이 위층에 올라갔기 때문에 분명 그 일을 그녀들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다.정군호가 입을 열었다.“하예진은 네 큰이모의 후손이야. 분명 가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이지. 하예진은 반드시 우리 이씨 가문의 이런 일들을 남에게 알려줄 거야. 우리 가문을 망신시켜 경쟁자를 하나라도 줄이려고. 윤정은 비록 내 친딸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 자라온 아이야. 2년 전, 윤정이가 우리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 때만 해도 20여 년 동안의 감정도 있고 하니 네 엄마가 윤정이를 가주 자리에 앉혀 놓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기회가 이제 없을 것 같아.”정일범이 말을 건넸다.“아빠, 우리 형제들에게도 기회가 있을까요? 우리가 바람을 피우다 발견된 후로 엄마는 윤미를 더욱 중히 여기세요. 이제 윤미 곁에 방 비서가 배정되었으니 방 비서의 도움으로 윤미가 이씨 가문에서 자리를 잘 잡고 있어요. 하여 우리도 중심 세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고요. 윤미는 우리에게 잘해주지 않거든요. 윤미의 마음속에서 저의 지위는 아마 매우 낮을걸요. 저도 윤미를 동생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요. 윤미가 정말로 가주 자리에 앉게 된다면 우리는 더 잘 지내지 못할 거예요.”정군호가 말을 이었다.“윤미가 가주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하예진이 그룹을 이어받는 것보다는 나아. 하예진은 네 큰이모의 후손이야. 사람들이 네 엄마가 큰이모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어. 하예진이 이번에 강성으로 온 이유도 가주 자리를 빼앗으려는 것 외에도 진실을 조사하고 복수하려고 왔을 거야. 그런데 윤미는 너의 친동생이잖아. 너희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여기에서 무사히 살아갈 수는 있을걸.”정군호는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말했다.“이씨 가문의 규정이라 어쩔 수도 없어. 이씨 가문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닌 딸에게 물려주는 규정이 대대로 지켜왔거든. 너희들이 엄마 뱃속에서 이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정군호는 이윤미를 바라보며 말했다.“윤미야, 일범도 왔으니 얼른 가봐. 요즘 네 엄마가 기분이 안 좋으셔서 회사에 돌아가지도 않으시고 집안일도 신경 쓰지 않으셨어. 너도 힘들 테니 얼른 가서 쉬어.”정일범도 맞장구쳤다.“그래, 윤미야. 내가 여기서 아빠랑 같이 있으면 돼.”이윤미도 더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정군호와 부녀간의 정이 없었다.이윤미가 만약 정군호의 친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 늙은 영감을 만나기도 싫었을 것이다.“오빠, 그럼 난 가볼게.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전화 줘.”“알았어. 차 조심하고.”정일범은 한 마디 당부하면서 이윤미와 방윤림을 배웅했다.두 사람이 멀리 떠난 뒤에야 정일범은 몸을 돌려 정군호에게 말했다.“아빠, 윤미와 방 비서가 돌아갔어요.”정군호가 다시 말을 건넸다.“2분 후에 다시 한번 둘러봐.”정일범은 정군호가 이윤정에 관해 묻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몇 분 후, 정일범은 밖으로 나가 병실 근처를 모두 둘러본 후, 이윤미와 방윤림이 모두 떠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병실로 돌아왔다.“아빠, 정말 갔어요. 몸은 좀 어때요? 엄마가 뭘 하셨는데요?”정일범은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가면서 정군호에게 말했다.정일범은 병상 앞에 앉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엄마가 아빠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해서 우리는 아빠가 다친 것 외 얼마나 심하게 다치셨는지 몰랐어요.”정일범은 정구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지만 어디가 아픈지 전혀 찾지 못했다.팔다리는 멀쩡하고, 얼굴의 손바닥 자국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신 상태가 조금 나빴을 뿐이다.정군호는 정일범에 자신이 내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가벼운 말만 꺼냈다.“내 몸이 좀 불편해서 며칠 입원했는데 회복도 잘 되어서 며칠 후면 퇴원할 수 있을 거야. 네 엄마가 그 당시 너무 화가 나서 나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신 것뿐이야. 내가 다치자 네 엄마도 무척 가슴 아파하셨어. 날 병원에 데려다주고 직접 밥도 먹여 주면서 잘
이윤미에 대한 방윤림의 마음을 이윤미는 전혀 몰랐다.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윤미가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야만 방윤림도 그의 마음을 드러낼 것이다.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덕분에 방윤림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묵묵히 이윤미를 돌보고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만약 이윤미가 나중에 다른 남자랑 결혼한다고 해도, 방윤림은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축복할 것이고 여전히 이윤미의 가장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특별 비서로 일할 것이다.앞으로 이윤미가 한 아이의 어머니로 되면 방윤림은 그 작은 주인마저 돌봐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번 생에 그는 이윤미의 사람이었다.그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이윤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네.”이윤미는 정일범일 것으로 추측했지만 가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가 직접 들어오게 했다.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역시 정일범이었다.그는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다른 손에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는데 이윤미와 방윤림이 병실 안방이 아닌 거실에 있는 모습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윤미야, 아빠는?”이윤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침대에서 누워 계시는 데 주무셨을 거예요.”정일범은 방윤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꽃다발과 과일 바구니를 든 채로 안으로 걸어갔다.이윤미도 따라 들어갔다.정군호는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소리가 꽤 크게 켜 놓은 것으로 보면 이윤미와 방윤림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들리지도 않았다.이윤미와 방윤림이 말하는 소리가 크지 않았다. 정군호는 결국 70대 노인이었기에 청력에 다소 문제가 있어서 조금 전에 이윤미와 방윤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을 수 없었다. 들리지 않을 거면 차라리 동영상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재미있게 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정일범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군호는 휴대전화 볼륨을 조금 낮추며 아들에게 말했다.“일범아, 진짜로 왔구나.”정일범은 과일 바
이윤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방윤림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방윤림에게 물었다“방 비서,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방윤림은 이은화가 이윤미에게 배정해준 사람이었다. 이은화는 이윤미에게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머문 순간부터 방윤림을 믿을 수 있고 그 또한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윤미가 앞으로 이씨 가문의 가주가 되지 못하더라도 방윤림은 그녀와 평생 함께할 것이며 다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이윤미는 여러 번 방윤림을 시험한 뒤에야 방윤림을 믿기로 했다.역시 방윤림은 특별 비서직을 맡기 위해 특별히 양성된 사람답게 정말 못 하는 것이 없었다.아주 유능한 사람이었다.이윤미는 이씨 그룹이 점점 못해지고 있지만, 선조들이 세운 훈련 기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훈련 기지의 책임자가 어디서 이렇게 대단한 아이를 찾아 기지로 데려와서 조금씩 유능한 비서로 양성했는지 모른다.문무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비주얼도 아주 훌륭했다.방윤림은 비록 전씨 가문의 도련님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잘생긴 남자라고 칭찬받을 만큼 멋지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온 지 2년이나 되었지만, 이씨 가문의 비서를 양성하는 훈련 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그녀는 이은화에게 물었지만, 이은화는 그녀에게 훈련 기지가 어디인지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 훈련 기지를 담당하는 사람은 이씨 가문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이고 가문의 사람들과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 알면 된다고 했다.전심전력으로 역대 가주들을 위해 최고의 특별 비서를 양성했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재무 보고서를 보았지만, 교육 기지에 돈을 썼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하지만 매년 이씨 가문에서는 큰돈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지만, 돈의 행방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단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한 적 없었다.이윤미는 그 돈이 바로 훈련 기지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지급되리라 추측했다.훈련 기지도 자급
한참을 울다가 이윤정은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일어섰다. 그녀는 40만 원을 세어보더니 더도 말고 딱 40만 원이었다.과거에는 40만 원은 그녀의 눈에는 돈에 속하지도 않았다.그러나 지금 40만 원이라는 돈은 이윤미의 한 달 숙박비와 식비일 수도 있다.지금의 이윤정은 관성의 여운별도 더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여운별은 비록 용태호에게 이용당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친동생 여천우가 매달 그녀에게 생활비를 주기 때문에 굶지는 않았다.그러나 이윤정이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강성을 떠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이윤정은 돌아가서 그녀의 세 형수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했다.정군호 형제는 정군호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밖에서 내연녀를 두기 좋아했다.이윤정은 그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성질도 잘 알고 있었다. 정일범 형제 또한 이윤정에 대한 정도 깊었기 때문에 그녀가 조금만 꼬드겨도 금세 넘어올 것이다.그들 형제가 전부 이윤정에게 빠져들게 해서 세 형수님이 죽도록 화나게 하고 싶었다.어차피 이윤정의 몸은 이제 깨끗하지 않으니까.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정일범 형제와도 혈연관계가 없었다.그들이 이윤정에게 돈을 주고 그녀를 내연녀로 삼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면 조윤 일행도 기가 막혀 죽을 지경일 것이다.이윤정은 될 대로 되라고 중얼거리면서 병원을 떠났다.고급 병실의 거실 창문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윤미는 이윤정이 이은화를 쫓아다니며 해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윤정은 큰 소리로 울며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이은화가 경호원에게 이윤정 손에 돈을 좀 쥐여주라고 하고 자리를 떠난 모습을 본 이윤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저 모습을 보니 아마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요.”이윤미 옆에 서 있는 방윤림이 이윤미의 반응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이윤미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했다.“윤정이는 지금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건 바로 세 오빠일 거
“엄마, 누가 저와 아버지를 해쳤는지 알아요. 세 형수님이에요. 그 술은 큰오빠가 방에서 아버지께 가져다드린 술인데 큰오빠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분명 형수님들일 거예요. 엄마!”이은화가 차에 올랐다.이윤정이 앞으로 덤벼들었지만 차 문도 만질 수 없었다.운전기사가 차를 몰기 전에 이은화는 창문을 눌러 경호원들에게 이윤정을 풀어주고 이윤정이 가까이 오도록 지시했다.이윤정은 웃음 지으며 경호원을 물리치고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엄마, 저 믿으시는 거죠? 제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에요. 엄마는 계속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아직 조사할 시간이 없으셨겠지만, 집으로 돌아가셔서 조사하기만 하면 금방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이은화는 이윤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너와 군호 씨가 남의 계략에 빠졌다는 사실을 나도 알아.”이윤정이 더욱 기뻐했다.이은화의 아이큐로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하지만 뭐? 너희 두 사람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될 수는 없잖아.”이윤정의 희망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엄마.”이윤정의 눈시울이 바로 붉어졌다.그녀는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다.이윤정의 처음은 한 영감탱이에게 빼앗겨버리고 말았다.“넌 내 딸이 아니야. 네 몸에는 우리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도 않고 정씨 집안의 피도 없어. 넌 나와 군호 씨 딸이 아니거든.”“하지만, 저는 엄마와 아빠가 키운 딸인걸요. 한때 저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면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셨잖아요.”이은화는 피식 웃었다.“그건 우리가 네 친아버지한테 속았기 때문이야. 원망하려면 네 친아버지를 원망해. 날 원망하면 안 되지. 넌 시종 우리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일범이는 내 친아들이고 일범의 아내도 내 며느리야. 너의 형수님들이 널 모함했는데, 그래서 뭐? 나에게는 핏줄이 가장 중요해.”이은화는 이윤정의 창백한 얼굴을 무시하고 경호원에게 분부했다.“얘한테 돈 40만 원 줘서 보내. 얼른 가자!”이은화도 속으로 화가 났지만, 조윤과 이윤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정군호는 이윤미가 자신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이었다.“영화도 좀 보고 쉬어야겠어.”이윤미는 아버지를 눕히고 싶어 했고 방윤림이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 대신 정군호를 눕혀 주었다.“아버지, 저와 방 비서는 거실에 있을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이따가 큰오빠도 오실 거에요.”정군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네 오빠가 왜 와? 네가 날 이틀 동안 돌보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돌보기 싫어서 그래?”“큰오빠도 아버지 아들인데 아버지께서 입원하셨는데 오빠가 와서 돌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제가 돌보기 싫은 것과 상관없는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저 혼자만의 아버지가 아니잖아요.”정군호는 목이 메어 잠시 할 말을 잃었다.“네 오빠는 출근하시잖아.”“저도 출근해야죠. 제가 큰오빠보다 더 바빠요.”정군호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이윤미는 이은화를 내세우며 계속해서 말했다.“엄마가 저 보고 병원으로 와서 아빠와 좀 이야기도 나누라고 했어요. 한 시간 뒤에 오빠가 오신다고 하셨고요.”정군호는 이은화의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군호는 이윤정의 정황을 묻고 싶었지만 감히 이윤미에게 묻지 못했다.이윤정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그녀는 지금 입원 병동 입구 근처에 숨어 대문을 바라보며 이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드디어 이은화가 나타났다!이은화가 경호원들과 함께 입원 병동을 나서자 이윤정은 재빨리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갔다.이은화 곁의 경호원들도 만만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이윤정이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발을 내밀었다.다행히 이윤정은 반응이 빨라 경호원이 날린 발차기를 재빨리 피했다.“엄마, 나야. 윤정이.”이윤정은 큰소리로 외쳤다.이윤정이라는 말을 들은 경호원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윤정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엄마, 엄마!”이은화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자 이윤정은 소리를 지르며 따라갔다.“엄마,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엄마,
이윤미가 입을 열었다.“삼촌들의 삶은 여전히 행복하게 살고 계세요.”이윤미는 정군호가 정씨 집안의 미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씨 집안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이은화의 복수 수단을 두려워했던 정군호는 스스로 그 부분을 잘라 혼인 생활을 지키기로 했다. 앞으로 같은 침대에 있더라도 아무 짓도 못 하는 점에 대해 정군호도 받아들였다.조심했어야 했는데.“그럼 됐어. 윤미야, 비록 넌 네 엄마의 이씨 성을 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정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거든. 앞으로 정씨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로 수수방관해서는 안 돼. 네 삼촌과 고모들도 너에게 잘 대해 주시잖아.”이윤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분들도 지금 그들만의 일자리가 있잖아요. 그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안전하게 지내시기만 한다면 생활이 나쁘지 않을 거예요. 만약 급한 일이 생기면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려야죠.”만약 이윤미가 도울 수 없는 일이라면 예외가 없을 것이다.정군호도 이윤미의 말뜻을 알아챘다.이윤미는 이은화처럼 매우 냉정하고 정씨 집안 사람들과 감정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정씨 집안에 가장 정이 깊은 사람이 바로 이윤정이였다.이윤정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정군호는 부드럽게 웃었다.“성실하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셔. 그리고 저의 사촌 형제들도 전부 성실한 사람들이지.”성실하거나 말거나 이윤미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이 이씨 가문의 명목으로 함부로 행동하면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이윤미는 남들이 그녀를 바둑판의 바둑알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아버지, 저도 알아요.”정군호는 이윤미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방윤림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군호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고 그의 모습을 본 이윤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버지,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우리가 친부녀 사이인데 못할 말이 어디 있겠어요?”“윤미야, 사실 네 엄마 마음속에도 한 남자가 들어있어. 다만 그 남자가 자취를 감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