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제 아들이 아내에게 이토록 자상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다행히 며느리가 아들보다 더 살가웠다.“그래, 맛 좀 보자.”장소민은 하예정이 집어준 요리를 흔쾌히 한 입 먹었다.아들이 한 요리가 며느리가 한 것보다 더 맛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는 건 너무 양심에 찔렸다. 그녀는 잠시 고민한 후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태윤의 요리 솜씨는 예정이보다 못해. 앞으로 시간 나면 좀 더 많이 연습해서 예정이한테 맛있는 음식을 차려줘.”그렇게 하면 부부의 감정도 더 승화할 테니까.“다만 평소엔 출근하느라 업무가 바쁘다 보니...”“그건 걱정 말아요, 어머님. 평일엔 절대 태윤 씨를 주방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할 거예요.”두 사람은 현재 숙희 아주머니와 함께 지낸다.하예정의 말을 들은 장소민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엄마, 이 새우 드시려고요?”전태윤이 엄마한테 물었다.“엄마는 밥 다 먹고 왔어. 예정이가 너희 부부 요리 솜씨를 평가해달라고 해서 맛본 거야. 두 사람 먹고 있어. 난 TV 보러 간다.”장소민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다 먹은 후 수저를 내려놓고 주방에서 나왔다.전태윤은 엄마가 나가자 다 바른 새우 한 접시를 하예정의 앞에 내밀며 다정하게 말했다.“여보, 천천히 먹어. 이 국물도 많이 마셔야 해. 몸보신하는 거야.”그는 눈썹을 들썩거리며 하예정에게 말했다.그런 그의 표정에 하예정은 너무 웃겨 하마터면 밥을 내뿜을 뻔했다.진지하기만 하던 그가 눈썹을 들썩거리는 날이 오다니.하예정은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재빨리 거실 쪽을 바라봤다. 장소민이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또다시 감탄을 연발했다.‘어머님은 기품이 차 넘쳐. 드라마에 나오는 사모님들보다 더 고고하셔. 앉아 있는 제스처까지 어떻게 저리도 우아하지?’전태윤이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괜찮아, 우리 엄마 몰래 훔쳐보지 않아.”할머니가 계시면 두 사람을 곁눈질할 수도 있다.다만 장소민은 어릴
식사를 마친 후.전태윤이 그릇을 치우고 하예정이 식탁을 닦았다. 그녀는 의자까지 가지런히 정리한 후에야 주방에서 나와 시어머니의 맞은편에 앉았다.그녀는 시계를 보며 어머님께 말했다.“어머님, 차를 마당에 들여오고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세요.”“아니야, 이따가 돌아갈 거야. 내가 집에 없으면 네 아빠가 적응 못 해.”큰아들이 회사를 전수한 후 그녀의 남편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부부가 종일 함께 지냈다. 아내가 집에 없는 건 진짜 적응하기 어려웠다.하예정은 시부모님의 감정이 너무 부러웠다.젊은 시절부터 함께 해온 부부가 늙어서도 옆에 있어 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결국 옆에 남는 건 배우자일 뿐이다.“어머님, 전에 태윤 씨가 이 별장을 샀다는 걸 아예 몰랐어요. 저한테 줄곧 안 알려줬거든요. 며칠 전에 겨우 말하더라고요. 이 별장은 발렌시아 아파트보다 훨씬 커서 저희 두 사람이 지내기엔 텅 빈 느낌이 들어요. 어머님, 아버님도 오셔서 함께 지내면 안 될까요?”장소민은 살짝 의외인 듯싶었다.“너 정말 시댁 식구랑 함께 살고 싶어?”대부분 젊은 며느리들은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걸 꺼린다.며느리가 아니라 제가 낳은 세 아들도 어른이 되니 뿔뿔이 독립하고 본가에 돌아와 그들과 함께 있으려 하지 않는다.젊은 세대의 삶과 노년의 삶은 엄연히 다르니까.“네, 저는 괜찮아요.”장소민이 웃으며 말했다.“다만 태윤이가 우리랑 함께 지내는 걸 안 좋아해. 우린 그냥 본가에서 지내는 게 나아. 너희 젊은이들 방해하지 않고 말이야.”장소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예정을 탐탁지 않게 느끼는데 함께 지내다 보면 단점들이 더 확대될 것이고 며느리가 더 싫어질 수 있다.차라리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낫다. 하예정도 시어머니를 좋게 생각하고 그녀도 종일 며느리의 단점만 따지고 들지 않을 테니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다.전태윤이 나온 후 장소민도 자리를 뜨려 했다.“태윤아, 엄마 바래다줘.”하예정이 자동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시어머니
장소민은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엄마는 단지 미리 충고할 뿐이야. 이만 돌아갈게, 네 아빠가 걱정하시겠어. 구정 때 너희 부부 돌아올 거지?”“할머니께서 말씀 안 하셨어요? 저 구정 전날에 예정이 데리고 본가로 가서 설 연휴 보낼 거예요.”“본가? 아, 그 본가를 말하는 거야? 어쩐지 요즘 너희 할머니가 자주 그리로 다니시더라니.”전태윤이 하예정을 데리고 전씨 일가의 진정한 본가에 돌아가 설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 그곳은 아주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낡고 색이 바랬다.“너 언제까지 숨길 셈이야?”“엄마, 내가 다 생각이 있어요. 나중에 관성 전체에 나랑 예정이가 부부 사이란 걸 알릴 거예요.”그리고 결혼 준비도 이어갈 계획이다.전태윤의 계획은 완벽하나 현실은 어떻게 될지 미지수다.장소민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이만 돌아갈게.”“운전 조심하세요. 다음에 올 땐 미리 전화 주세요. 엄마 며느리를 놀라게 하지 말고요.”장소민이 겨우 말을 이었다.“날 악덕 시어머니로 몰아가지 마. 예정이 걔 호락호락한 애가 아니던데, 나랑 기 싸움까지 하고 말이야. 내가 어찌 걔를 놀라게 할 수 있겠어?”전태윤은 침묵하다가 엄마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새삼스럽게 왜 이래?”“며느리 흠집 찾지 않아서 고맙다고요.”장소민은 참지 못하고 발로 그를 가볍게 찼다.“엄마도 네가 잘 살길 바라. 너만 행복하면 돼. 예정이가 좋고 걔가 널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면 온몸에 단점투성이라도 엄마는 다 참을 수 있어. 기껏해야 친절하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겠지. 일부러 흠집 찾는 일은 없어.”화기애애한 전씨 일가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다 보니 원래 심성이 착한 장소민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젊었을 때보다 더 사리가 밝아졌다.굳이 흠집을 찾아내라면 큰아들네 부부가 서로 집안 배경이 너무 차이나고 그래서 하예정이 전태윤을 위해 조금 변화해주길 바랄 뿐이다. 예를 들어 예의범절을 배우고 재주도 여러 가지
성기현도 전화기 너머로 차갑게 말했다.“안 나오면 예정이한테 당신 정체 다 밝힐 거예요. 다른 건 숨겨도 다 괜찮지만 전씨 그룹 대표라는 사실을 숨기면 예정이 분명 엄청나게 화낼 거예요. 소현이까지 연루되는 일이니까요.”전태윤이 점점 더 일그러진 표정으로 쌀쌀맞게 말했다.“내가 간다고 했잖아요. 기다리기만 해요.”‘감히 날 협박해?!’“난 당신 사촌 형이에요. 먼저 가서 날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전태윤이 싸늘하게 말했다.“더하루 호텔은 그쪽 집안 호텔이라 언제든지 갈 수 있잖아요. 장소 바꿔요 그럼. 관성 호텔에서 내가 미리 로얄 스위트룸 준비해서 당신 열렬하게 환영할게요.”“왜요? 찔렸어요? 두려워요? 일부러 이 형을 기다리게 하려고요?”“성기현 씨, 내 앞에서 형 노릇 작작 해요!”성기현이 하찮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난 원래 당신보다 나이도 많고 이젠 예정이까지 내 동생이 됐어요. 당신이 예정의 남편이 아니면 날 형이라 부르든 말든 아무 상관 안 해요. 하지만 예정의 남편이면서 날 형이라 부르지 않는 건 너무 예의 없는 행동이죠. 내가 예정이 앞에서 당신 해코지 할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봐요?”“감히 그러기만 해봐요!”성기현이 더 기고만장하게 웃었다.“못 그럴 게 또 뭔데요? 내가 정말 당신 같은 사촌 매부를 우러러보면서 한편으로 쩔쩔매는 것 같아요? 당장이라도 당신을 갈아치우고 싶다니까요. 내 동생한테 더 좋은 남자를 소개해주고 싶다고요.”“관성 전체에 나보다 더 훌륭하고 괜찮은 남자가 또 어디 있어요?”전태윤은 성기현이 그를 당장이라도 갈아치우고 싶어 한다는 걸 굳게 믿는다.지금 이 국면은 아무도 원하지 않으니까.“전 대표,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뻔뻔스러워졌어요? 당신이 관성 상업계에서 손꼽히는 인물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관성에서 가장 잘난 남자인 건 아니죠.”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유부남이 되면 다 뻔뻔스러워지는 법이에요.”성기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전태윤의 변화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
그는 전태윤과 전화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마누라에게 알려주었다. 마누라는 그제야 의심을 풀었고 그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전태윤은 성기현이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하예정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는 방으로 돌아간 후 그녀와 함께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한참을 보다가 하예정이 하품하자 그는 바로 TV를 끄고 그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 돌아간 후 그는 그녀와 함께 침대에 누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더는 대답이 없자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이미 꿈나라로 간듯하였다.전태윤은 몸을 반쯤 일으키며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하예정을 불렀다.“예정아, 예정아.”아무 반응이 없는 거로 봐서는 깊게 잠이 든 것 같았다.전태윤은 안심하며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나지막이 말했다.“예정아, 잘 자.”그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조용히 내려와 다시 하예정을 도와 이불을 덮고는 외투를 집어 들고 방을 나갔다.별장을 나온 후, 전태윤은 운전기사와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어 더하루 호텔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라고 분부했다.성기현을 만나야 하는데 외적인 조건에서 상대방에게 져서는 안 되었다.성기현은 전태윤에게 새벽 0시에 더하루 호텔에 도착하라고 했고, 전태윤은 정말 1초도 늦지 않고 0시에 딱 맞춰 도착했다.“도련님.”경호팀은 전태윤을 보고 마중 나왔다.“가자.”전태윤은 차에서 내린 후 곧장 안으로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즉시 전태윤을 따라 더하루 호텔로 들어갔다.새벽이라 그런지 호텔 안은 조용했다.아니면 성기현이 미리 분부했는지 호텔 사람들은 전태윤의 도착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전태윤은 귀빈 통로를 통하여 호텔 맨 위층에 도착했다.관성 호텔과 마찬가지로 더하루 호텔의 맨 위층에는 로얄 스위트룸이 있는데, 특별히 성기현을 위해 사용된다.맨 위층에 도착하자 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로얄 스위트룸의 방문 앞에 도착했다.입구에는 검은 옷차림의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 두 명
“전 대표님.”그 경호원이 또 입을 열자, 전태윤은 그를 쳐다봤다.“저희 대표님께서 다른 이에게 심부름시키지 말고 직접 사 오면 더 성의 있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전 대표님께서 저희 대표님을 얼마나 존중하는가에 따라 하예정 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말인즉, 전태윤이 직접 나가서 물건을 사지 않으면 성기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즉 하예정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뜻이다.전태윤은 성기현의 괴롭힘에 이를 갈았는데, 하필 약점을 잡힌 셈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비록 하예정은 이경혜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들 사이에 혈연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성씨 가문을 마음에 두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전태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 첫 대면 선물을 사러 갔다.대형 슈퍼는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았기에 24시간 영업하는 작은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다.그는 경호원을 데리고 들어가 별생각 없이 보이는 대로 카트에 주어 넣었다.슈퍼의 점원은 갑자기 한 무리의 남자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심지어 아이돌 스타처럼 잘생긴 전태윤의 얼굴을 보고도 혹시나 조폭을 만난 건 아닌가 하며 두려워했다.점원은 경계하며 수시로 경찰에 신고할 준비를 하였다.다행히도, 그들은 그저 진열대의 상품들을 한바탕 쓸어 카운터에 가득 쌓아 놓았고, 가장 잘생긴 얼굴에 가장 굳은 표정의 한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계산!”조폭이 아닌 걸 확인한 점원은 마음을 놓았다.몇 분 후.전태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슈퍼를 떠났고, 경호원 모두가 손에 큰 주머니를 들었다.점원이 가게 안의 진열대를 훑어보니 그 사람들에 의해 거의 다 비워진 셈이었다.‘그 상품 중에는 생리대도 있는 거로 기억하는데, 남자 몇 명이 생리대를 사서 무얼 하려는 거지?’20분 후.전태윤은 비로소 성기현을 만났다.전태윤이 경호원을 데리고 물건들을 소탕하러 나간 동안, 성기현은 소파에 앉아 주전부리를 먹으며 TV를 틀어놓고 아주 한가하
무슨 물건인지 똑똑히 본 전태윤의 얼굴에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성기현의 괴롭힘에 마지못해 슈퍼에 갔고, 어떤 물건인지도 똑똑히 보지 않고 진열대를 깡그리 쓸어 가져왔다. 물건이 너무 많은 탓에 그중에 생리대가 끼어있는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아내가 있으니 가져다 써도 될 것 같네요.”전태윤이 생리대 봉지를 다시 성기현에게 던지자, 성기현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그 웃음소리에 전태윤은 당장이라도 일어나 덤벼들어 그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오랜 세월 동안 성기현을 상대하였지만, 그의 앞에서 이 정도로 난처한 경우는 없었다.성기현은 한참을 웃다가 겨우 웃음을 그쳤고,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전태윤에게 말했다.“혹시 절 웃겨 죽이고 제 재산을 물려받을 계획은 아니겠죠? 너무 웃어 배가 아플 정도네요.”“그럼 웃겨 죽기 전에 먼저 유언장을 작성하여 모든 재산을 저에게 상속해 줘요, 그다음 죽을 정도로 웃는다 해도 상관하지 않을게요.”이 말에 성기현은 또 웃었다.“제 재산이 마음에 차기나 하겠어요? 당신만큼 재산이 많지 않아서요.”“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래도 자그마치 수천억이 되는데, 마음에 차다 말 다요.”더 앉아 있으면 진짜 웃겨 죽을 것 같던 성기현은 얼른 일어나 차를 타 주러 갔다.잠시 후, 그는 소파로 돌아와 차 한 잔을 진하게 따라 전태윤의 앞에 놓았고 자신한테는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따랐다.한밤중에 차를 마시면 수면에 영향을 미쳐 잠을 못 자고 이튿날 출근할 정신이 없어질 것이다.전태윤은 마음속으로 성기현을 욕했다.이 정도로 진한 차라면 한 모금을 마셔도 밤에 잘 생각을 포기해야 할 것인데, 성기현은 스스로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전태윤은 용이 개천에 빠지면 모기붙이 새끼가 엉겨 붙는다는 생각이 들었다.“절 이곳까지 부른 이유가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는 건가요”전태윤은 그 차를 마시지 않았다.여기서 몇 시간을 허비한다지만 그 차만 안 마시면 돌아가서는 아내를 껴안고 몇 시간 더 자고 출근할 수 있다.하지
전태윤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성소현을 어떻게 피할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해야 할 것 같네요.”그는 정력을 들여 성소현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저희가 안배할 테니 그저 오기 전에 미리 메시지를 보내 주시면 돼요. 그러면 제가 소현을 다른 곳으로 보내 당신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우리 부모님께도 미리 말해놓을 거예요.”전태윤도 성소현이 자기와 하예정의 관계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 계획에 대해 따로 의견이 없었다.지금처럼 달콤한 시기에 만약 성소현이 알게 된다면, 그녀가 미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설날 전에는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구정이 지난 후에 다시 시간을 내어 예정 씨와 함께 댁을 방문할 생각이에요.”하예정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고향의 망나니 친척들과는 거의 연락을 끊고 살기에 큰이모 외에는 성씨 가문과만 오가고 있다.“그쪽 회사는 설날 전부터 이미 휴가인 거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일로 바쁘신 거죠?”성씨 그룹도 큰 회사이고 일이 많은 관계로 거의 동일한 시기에 휴가를 내고 있다.“요 며칠은 일정이 매우 바쁠 것 같아요, 그다음은 회사 송년회이고, 송년회 다음 날, 저는 예진 그룹 대표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A시에 가야 해요. 아마 설날이 다 되어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네요.”성기현도 예진 그룹의 대표가 결혼식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예진 그룹과 거래가 없는 관계로, 상대방으로부터 청첩장을 받지 못했다.전씨 그룹과 예진 그룹 사이에는 거래가 있고, 전태윤도 예준하와 친한 사이이니, 직접 A 시로 가서 참석할 만도 했다.“부럽군요.”성기현이 한마디 하자 잔태윤은 그의 숨은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예준성 그 사람들과 알고 지낼 수 있는 것이 부럽다는 뜻이었다.예준성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도 모두 대단한 사람이라, 예씨 가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처남인 만성 남씨 가문의 가주와 교제를 맺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질투가 날 만했다.“당신은 항상 저보다 운이 조금 더 좋은 것 같
“이씨 가문을 잘 꾸려나가려면 젊은 세대에게 의존해야죠. 우리 가문의 젊은 세대들도 능력만 있으면 모두 중히 여겨야 하는 거죠. 숙모님들, 맞죠?”이씨 가문의 셋째 삼촌 이지후는 야망이 있지만 이제 분투할 정력이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다만 그들의 후손의 앞날일 뿐이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승낙한 거나 다름없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가 하예진 쪽으로 돌아간다면, 가문의 젊은 세대들은 능력만 있다면 모두 적당한 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의미이다.하예진은 자신이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두 사모님이 눈을 마주치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씨 가문의 넷째 숙모 김연희가 입을 열었다.“맞아요. 역시 전임 가주의 후손답네요. 전임 가주가 이씨 가문을 다스릴 때 우리 이씨 가문은 강성에서 그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존재였죠.”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이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전임 가주 이은숙이 여전히 이씨 가문을 운영했을 때 김연희와 최순자는 아직 이씨 가문으로 시집오지 않았다. 당시 그녀들의 나이는 6세에서 12세 사이였고 가문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러나 그녀들의 남편들은 어느 정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적어도 학창시절에 이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도 괴롭히지 못했다.그 후, 가문의 어르신들 이야기를 통해 자주 듣게 되었다.전임 가주 이은숙의 인간 됨됨이나 일 처리 방면에서는 매우 훌륭했지만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 낳은 탓으로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하루가 멀다고 병으로 앓게 되어 이은화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그리고 두 숙모분께서도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씨 가문에서 떠벌리며 다니지 않는 한 강성에서의 안전은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어요.”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무슨 일을 하든 너무 날뛰지 않고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으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만약 그들이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한다면 하예진이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감히 협력하지
몇 분 후, 방에서 하예진을 기다리고 있던 전호영은 예진이 도착하자 바로 나와서 문을 열었다.“예진 누나.”“고마워요, 호영 씨.”“우리 사이에 무슨, 천천히 얘기 나눠요, 저는 일 보러 나가볼게요.”방을 나온 전호영은 하예진을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일구를 포함한 경호원들에게 아무도 못 들어가게 단단히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했다.펜트하우스가 출입이 통제되긴 하나 경각심을 높여서 나쁠 것은 없었다.일구와 다른 경호원들은 전호영의 말에 깍듯이 응했고 전호영은 자리를 떴다.하예진이 방으로 들어가자 두 숙모님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들을 위한 과자와 과일들이 놓여 있었고 따뜻한 물도 준비해져 있었다.“예진 씨.”하예진이 들어오자 두 숙모는 소파에서 일어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인사했다.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했으니 두 사람은 이제 본모습을 보일 때가 된 것이다.두 분은 나이가 있는 분들이셨지만 보양을 잘한 덕분에 겉보기에는 훨씬 젊어 보였다.“두 분 앉아계세요.”하예진은 차를 내와 찻잔에 부으면서 말했다. “차를 마시면 정신도 맑아지고 좋더라고요.”“우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차를 별로 안 마셔요. 차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셋째 숙모가 웃으면서 답했다.하예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간식을 권했지만 두 분은 사양했다.“두 분께서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하예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두 분과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니 다룰 얘깃거리도 별로 없었다.“예진 씨가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우리 그이가 그러더군요. 우리 두 집안이 기꺼이 힘을 합쳐 도와드리겠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셋째 숙모가 입을 열자 넷째 숙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속으로는 하예진 앞에서 이 가주에 대해 불평하고 싶었지만 집을 나설 때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그녀에게 신신당부했기에 꾹 참고 있었다. 그저 두 집안의 의사를 전달하고 다른 말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하예진은 관성의 대표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하루 호텔은 안전 레벨이 아주 높은 곳으로 그곳에 가면 숙모님들이 마음을 좀 더 내려 놓을 수가 있었다.이에 하예진도 동의를 표하였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방을 예약 해놓을게요.”그녀는 뒤돌아서서 휴대폰을 꺼내어 전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루 호텔에서 제일 안전한 방이 어느 방이에요? 누가 엿듣거나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곳으로 빌리려고요.”전호영은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그야 무조건 펜트하우스에 있는 스위트룸이죠. 지금 제가 묵고 있어요, 누나가 필요하다면 제가 빌려드릴게요.”“고마워요, 이씨네 숙모님 두 분이 먼저 가실 거예요, 믿을만한 사람을 시켜서 조용히 두 분을 방까지 모셔드리도록 해줘요.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주의해 주시고요.”전호영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안배할게요. 두 분 호텔로 이동하시게 하세요, 거의 도착할 때 저희 쪽에 연락 주시면 돼요.”그러고는 하예진에게 번호 하나를 알려주었다.“누나, 조금 있다가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돼요, 펜트하우스까지 에스코트해 줄 거예요. 저도 조금 있다가 바로 돌아갈게요.”현재 그 방은 전호영이 지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방문을 열 수가 없었기에 호영이 호텔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부탁드릴게요.”“별말씀을요.”하예진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하던 일 계속 해요, 제가 두 분께 말해놓을게요. 여기서 호텔까지 가려면 약 20분 정도 걸릴거에요. 저는 30분 뒤쯤에 도착할 것 같아요.”“알겠어요.”통화를 마친 예진은 두 숙모한테 다가가 말했다.“제가 이미 말해놓았으니 두 분께서 지금 그쪽으로 출발하시면 되세요. 거의 도착할 즈음 이 번호에 전화하시면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분들이 두 분을 방까지 에스코트해 주실 거예요.”하예진은 전호영이 알려주었던 번호를 셋째 숙모한테 말해주었다.“먼저 가 계시면 돼요. 저는 십 분 뒤에 바로 출발할게요.”“그래요.”두 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지체없이 바로 출발했다.
“그 분들이랑은 어떻게 되는 사이신지?”하예진이 물었다.두 사람은 자신들의 남편 정체를 말한 후 하예진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녀가 침묵하자 두 사람은 하예진이 자신의 남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서둘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넷째 숙모고 이분이 셋째에요.”하예진은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실 때 뒤따르는 사람이 없었나요?”“없어요, 뒤처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예진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하예진은 미소를 지었다. “저야 아무 걱정이 없지만 두 분께서 저를 찾아온 일이 이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 두 분께서 불리해질까 봐 걱정이에요.”하예진은 원래부터 이씨 집안을 노리고 있었으니 이씨 가족 사람들과 접촉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오히려 아무 접촉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씨 집안 사람들이 그녀를 먼저 찾아왔다면 이 가주가 그 사실을 알고 응징할 수도 있기에 그 후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지만 이내 다시 물었다.“예진 씨, 잠깐 따로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좋아요, 저는 아무 때나 괜찮아요. 어디서 얘기할까요? 장소를 알려주시면 제가 곧 갈게요. 함께 이동하면 눈에 뜨일 수 있으니까 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진의 말에 그 두 사람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두 사람은 마음이 놓였다.두 사람의 남편들은 집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이 가주는 그들을 비롯한 직계가 아닌 가족들에게 아주 인색하고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오히려 이 가주의 억압을 받아 두각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두 가족은 몰래 모여 이틀 동안이나 상의를 했고 결국에는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하예진이 이길 것이라고 배팅을 한 것이다. 만약 하예진이 이긴다면 그들이 하예진을 처음부터 지지해 온 사람들로서 앞으로의 발전이 나쁘
하예진은 경계심에 차 물었다.“날 스토킹하기라도 하는 건가?”그녀는 단지 공장을 보러 왔을 뿐 오래 머물지 않을 텐데 이씨 집안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니, 그녀가 이씨 집안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그녀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곳 강성에 온 목적은 하나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 이씨 집안을 장악하는 것이다.이는 큰 이모가 그녀에게 맡긴 중대한 임무였다.곧 하예진은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이씨 집안에서 아무런 경계가 없다면 더 이상한 것이었다.“내가 나가 볼게.”그녀는 아마도 이씨 집안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의 부인이겠거니 생각했다.그날,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남녀 반반이었고 예진은 일구랑 함께 참석했었기에 만찬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일구는 얼굴이 익을 것이었다.예진은 경호원과 함께 나갔다.공장 입구에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차에 앉은 사람들은 내리지 않았다. 하예진이 나오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녀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마도 남들이 그녀들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하예진은 그녀들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강성 시민 중에는 그녀들을 알아볼 사람이 많았다.하예진이 다가가자 한 분이 눈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건네왔다.“예진 씨, 잠깐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예진은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누구신지? 얘기를 나누려면 누구신지 알아야죠”그들은 예진이랑 같이 따라 나온 사람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성분이 말을 건넸다.“혹시 이씨네 셋째 큰아버지랑 넷째 큰아버지를 기억하시나요?”그 두 사람은 이 가주랑 동년배지만 직계가 아니고 데릴사위도 아니기에 자신들의 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엄격히 말하면 셋째 큰아버지는 이 가주의 집안 동생이고 이 가주는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데릴사위를 들이기 때문에 그녀의 자식들은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보, 나도 이십몇 년 간의 남매 정을 생각해서 도와준 거야. 갈 데도 없고 돈도 없는데 불쌍하잖아. 당신이 싫다면 내가 내보낼게.”정일범은 아내 조윤이 엄마한테 이를까 봐 겁이 났다.외도 사실이 들통난 후 윤정이가 오빠들을 도와줬기에 조윤은 윤정이를 무척이나 미워했다.윤정의 처지가 딱하게 된 지금, 조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더욱 심하게 굴 것이 뻔했다.하지만 조윤 탓을 할 수가 없었다. 반병 남짓 남았던 술을 아버지에게 갖다준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조윤은 차갑게 쏘아붙였다.“지금 당장 내보내요. 이후에도 연락하지 말고요, 그 애는 당신들의 동생이 아니잖아요. 당신들의 동생은 윤미라고요. 그 애 친아빠 때문에 당신들이랑 윤미가 이십 년이나 떨어져 살았는데 당연히 그 사람들을 싫어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윤미가 그 집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 사람들이 윤미한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봐요. 일범씨, 당신도 딸을 가진 아빠잖아요. 우리 딸이 다른 집에 바뀌어 가서 학대를 당했다고 생각해 봐요, 어떨 거 같아요?”정일범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곧 하인 부부에게 지시했다. “가서 윤정의 짐을 모두 정리해서 줘.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해, 다시는 여기에 나타나지 말고.”윤미의 둘째 형수랑 셋째 형수도 자기 남편에게 눈치를 주었다.두 남자는 와이프한테 찰싹 붙어 실실 웃어대며 낮은 목소리로 다시는 윤정이를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사과했다.윤정이는 절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이제 진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오빠들도 도와주지 않고 일전한 푼도 없는 상황에 어떡하지?이제 진짜로 친엄마한테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형편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고 시골과 도시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그녀가 시골로 돌아가 생활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돌아가지 않으면 클럽에서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기
이윤정은 조윤을 노려보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조윤은 이윤정에게 더는 해명하지 않고 그 사실을 이윤정에게 알려준 다음 두 동서에게 걱정스레 말했다.“가요. 우리 들어가요. 밖이 추워 죽겠어요.”조윤은 몸을 돌려 뒤따라 나오는 김숙자에게 지시했다.“앞으로 제 동의 없이 이 천한 X을 우리 별장 안에 들여보내지 마세요. 일범 씨가 다시 감히 윤정이를 여기로 끌어들인다면 우리 어머님의 노여움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한 번 물어 보세요.”이윤정은 넋을 잃고 주저앉아버렸다.얼마 후 정일범 형제가 도착했다.그들은 땅바닥에 앉아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 이윤정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손가락 자국들로 가득했고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리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있었으며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옷도 너무 얇게 입어 입술이 퍼렇게 변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정일범은 무척 가슴 아팠다.“윤정아.“세 형제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구경꾼들은 조윤이 자리를 뜨자마자 흩어졌다.물론 이윤정에 대한 소문은 곧 강성에서 널리 퍼졌다.정일범은 양복 외투를 벗어 이윤정의 몸에 걸쳐주었고 그의 두 동생은 이윤정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오빠.”이윤정은 정신을 차리더니 정일범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형수님, 형수님들이 나를 이렇게 때렸어.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내가 오빠들이 바람피울 때 오빠 편을 들었다고 지금 내가 초라해진 틈을 타서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분명 이윤미일 거야. 이윤미와 형수님들이 연합해서 나를 상대하는 거라고. 오빠, 나와 아빠는 단지 오빠가 준 술 반병을 마신 것뿐인데 그렇게... 오빠가 나와 아빠를 함정에 빠뜨릴 리가 없잖아. 그럼 분명 형수님이 우리 술에 약을 탔을 거야.”정일범은 다급하게 이윤정의 말을 끊었다.“윤정아. 이런 일은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 엄마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거든.”정일범도 조윤이 이윤정을 함정에 빠뜨린 사실을 알고 있다.지금 이윤정은 이
“넌 내 남편의 친동생이 아니야. 혈연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내 남편이 널 여기로 데려와 살면서도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첩을 이 별장에 몰래 감춘 게 아니면 뭔데! 이 별장은 우리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사주신 신혼 별장이고 부동산 소유증 위에도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나도 알 권리가 있어. 둘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내 남편이 몰래 여기로 널 데려온 것으로 보면 너희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조윤은 이윤정이 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이유를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이윤정에게 죄를 덮어씌웠다.이윤정은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억울하다고 누군가의 음모에 말려든 것이라고 울부짖을 뿐 감히 다른 말은 내뱉지 못했다.이런 모습은 오히려 사람들이 조윤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했고 이윤정을 보는 눈빛에는 혐오와 비난이 물들게만 했다.어떤 사람들은 이씨 가문의 예전 집사였던 이윤정의 친아버지가 나쁜 심보로 딸을 바꾸는 바람에 진정한 이씨 가문의 후계자인 이윤미가 고생하고 구박받으면서 자랐다고 여겼다. 하여 그 집사의 근본적인 인성부터 나쁘다고 비난했고 따라서 이윤정도 그 집사의 핏줄을 이어받아 아무리 이씨 가문에서 자랐다고 해도 환경과 상관없이 그 유전자가 나쁘다고 수군댔다.뿌리에서부터 상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이윤정은 악랄한 표정으로 과거 그녀의 비위를 맞추던 조윤 일행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이제 만족해? 당신들은 날 무너뜨리고 싶어서 날 당신들의 계략에 빠지게 한 거지? 당신들이 진범이지?”사건이 일어난 뒤로 이윤정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약을 타서 자신을 모함한 사람이 바로 조윤 일행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의 술은 정일범이 준 술이고 가져왔을 때 이미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그럼 정일범이 아니라면 분명 조윤일 것이다.조윤은 차가운 웃음을 날렸다.“윤정아,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울어도 소리쳐도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엄청 화나지? 얼마 전에 우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 안
예전에는 우아하고 오만하던 이씨 가문의 후계자였던 이윤정은 지금은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강아지처럼 어디로 가나 사람들에게 쫓겨나고 욕만 먹었다.“윤정이는요?“조윤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뒤 정원에서 그네에 앉아 계세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대로 한참을 앉아 계세요.”김숙자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조윤 일행은 기세등등하게 뒤 정원으로 걸어갔다.김숙자는 정일범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하다가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알렸다. 그녀의 남편도 정일범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했다.결국, 두 사람은 정일범에게 전화를 걸었다.“큰 도련님, 큰사모님께서 둘째 사모님과 셋째 사모님과 함께 여기로 와서 다짜고짜 둘째 아가씨가 여기에 머물고 계시는지 물어보셨어요. 지금은 뒤 정원으로 둘째 아가씨 찾으러 가셨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큰 도련님, 얼른 돌아오세요.”정일범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어떻게 아셨대요? 지금 바로 돌아갈게요.”조윤은 지금 이윤정을 무척 원망하고 있어서 과거의 감정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만약 정일범이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이윤정은 아마 조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김여희와 박수아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정일범은 두 남동생도 불러 함께 별장에 갔다.김숙자 부부는 정일범과의 통화를 마친 뒤로 밖으로 나갔는데 이윤정의 울부짖음과 욕설 소리를 들었다. 물론 욕설 퍼붓는 사람들은 조윤 일행이었다.김숙자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서둘러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대로 달려갔다.조윤 일행과 이윤정의 소리가 너무 컸는지 이웃들은 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걷다 보니 결국 정일범 별장 입구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역시 남의 가십거리를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인가 보다.이윤정이 아무리 오만하고 조윤 일행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고 해도 그녀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이윤정은 조윤에게 머리채까지 잡혀 비참하게 뒤 정원으로부터 앞 정원까지 끌려갔다.아파 죽을 지경이다!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