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밤새도록 서로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다음날 이른 아침, 예정은 일어난 후 베란다에 가서 화분에 물을 주며 꽃들을 감상했다.매일 아침 일어나 이 작은 화원을 보면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것 같았다. 태윤에 대한 불만도 사라지는 듯했다.왜냐하면 이 화원을 완성시킨 것이 태윤이 사 온 꽃들 덕분이기 때문이다.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후 주방으로 가 둘을 위한 아침을 준비했다.태윤도 일어났다. 그는 주방 앞으로 걸어가 예정의 분주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꾹 다물었던 입술을 움직였다.“좋은 아침.”예정은 고개를 돌려 태윤을 쳐다봤다.“네, 좋은 아침이에요.”“뭐 도와줄 거 있어?”“없어요. 그렇게 심심하면, 옷이나 좀 널어주고 청소기나 한번 돌려요.”태윤은 순간 멍해졌다.‘이제 막 나가자는 거야?’그러나 입으로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어. 알았어.”그는 몸을 돌려 거실로 걸어가 옷도 널고 청소기로 거실도 밀었다.이렇게 큰 집에 부부만 살고 있다. 게다가 둘 다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와서 사실 집은 아주 깨끗했다. 그래서 태윤은 청소기로 구석을 위주로 밀었다.예정이 아침밥을 다 만들었으나, 태윤은 아직도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왜 이렇게 느려요?”예정은 중얼거리며 태윤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있던 청소기를 뺏었다.“…….”그녀의 움직임은 아주 빨랐다. 몇 분 만에 청소가 끝났다.태윤은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정의 얼굴을 몇 번이나 흠칫흠칫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오해받은 그녀는 화가 나서 태윤을 때리기까지 했다.다행인 건 오늘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아침 밤을 차려주었고, 안색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 이 여자, 진짜 쉽지 않네!’태윤은 예정의 성격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얼굴 보고 해결하고, 뒤끝이 없다. 바로 해결할 수 없다면,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그녀를 억울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녀의 성격이 꽤 괜찮은 사람이
태윤은 예정의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김진우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전태윤과 비교가 되냔 말이다!전태윤이 김진우보다 훨씬 잘생겼다.예정 주소록에 태윤은 어떻게 저장되어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태윤은 순간 아주 궁금해졌다.예정이 진우의 전화를 받았다.“예정 누나, 좋은 아침이야.”“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누나, 아침 먹었어? 내가 가게에 데려다줄게. 가게 가는 길에 아침도 먹고 가자. 누나가 사주면 더 좋고!”진우는 조금 기대하는 듯했다.그는 어젯밤 예정에게 큰 도움을 줬다. 그러니 오늘 예정을 데려다줄 핑곗거리를 찾은 셈이다. 아침도 같이 먹을 수 있고!“아냐, 괜찮아. 방금 아침을 만들어 먹었어. 이따가 남편이 가게에 데려다주기로 했고. 그러니 굳이 먼 길 올 필요 없어.”예정은 진우가 자신을 짝사랑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녀는 단순하게 김진우 집이 발렌시아 아파트와 꽤 멀고, 아침 출근길에 차도 막히니까 진우에게 먼 길을 오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차가 막혀 길 위에 서 있게 될 테니까.김진우의 기대는 “남편이 데려다주기로 했어.”라는 말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다.그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듯 했다.김진우는 예정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예정 누나는 계속 남자친구 하나 없었는데, 갑자기 초고속으로 결혼하다니. 결혼 상대도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라던데……. 날 기다리지도 않고…….’진우가 어리긴 해도 그녀의 초고속 결혼의 상대가 되고 싶었다. 안타까운 것은 예정은 아직 진우를 남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친한 동생으로 대할 뿐이다.알고 지낸지 몇 년 된 진우가 사랑을 알기 시작할 때부터, 예정을 결혼 상대로 생각했다.안타깝게도 모두 무산되었지만….“잘됐네, 그럼. 누나 오토바이 다 고쳐지면 가게로 가져다주라고 할게.”진우는 마음속으로는 씁쓸했지만, 예정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평정심을 유지했다.“응, 고마워.”“고맙긴 무슨, 그럼 얼른 아침 먹어, 더 방해 안 할게.”진우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가 간암으로 입원했어, 그런데 다행히 초기야.""의사 선생님이 관성의 큰 병원에서 입원하고 치료받는 게 좋다고 권했어. 너희 자매들 거기에서 자리 잡았으니 상황 잘 알 거 아니야. 병원 예약하고 미리 준비해. 우리 지금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곧 출발할 거야." 하지명은 전화에서 말했다."그럼 할머니가 도착하면 바로 입원하고 치료받을 수 있잖아. 그리고 예약금을 선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까먹지 말고. 너희 엄마 아빠가 안 계시다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챙기는데 너희 몫도 있어. 그리고 너희 둘은 여태껏 돈 한 푼 준 적 없잖아. 그러니 이번에 할머니가 병원비는 너희 자매가 책임져, 그동안 안 준 부양비라 생각하고."하지명의 말을 듣고 하예정의 얼굴은 새파래졌다.두 자매의 부모님은 그가 열 살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모님이 목숨으로 바꾼 배상금은 총 2억 원이었는데 친 부모님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그 돈을 나눠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두 자매의 나이는 어렸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훨씬 많은 배상금을 가져갔다.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눠간 1억 원은 큰아버지와 삼촌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것도 하예정은 잘 알고 있다. 삼촌 한 분, 큰아버지 두 분 그리고 고모 두 분이 그 돈을 나누어 가져갔다. 큰아버지와 삼촌들은 인당 2,500만 원, 고모들은 인당 300만 원씩 가져갔고 나머지 돈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노후 자금이었다.열 살인 하예정은 어렸었지만,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더 많은 배상금을 가지기 위해 마을 간부와 어머니의 친정집 사람들 앞에서 나중에 늙어서 두 자매들이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와 삼촌들 그리고 두 자매까지 모두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었다. 이 일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계약서는 총 세 몫으로 나누었고 두 자매에게 한몫,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한몫, 그리고 마지막 한몫은 마을 회관에 보관하였다.그 당시 그렇게 많은 사람
부부는 묵묵히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전태윤은 정말로 하예정이 출근하는데 데려다주었다.그들이 함께 아파트 아래로 내려오니 대기하고 있었던 경호 팀원들은 행인 행세를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하예정은 아파트 단지에 고급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중에는 롤스로이스가 있었다. 그는 전태윤에게 말했다."여기가 고급 아파트 단지이지만 롤스로이스를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이렇게 비싼 차를 살 수 있는데 왜 큰 별장 같은 데서 살지 않고,아파트에 살고 있는 거지? 혹시 출퇴근이나 아이들이 등교하는데 편해서 그런 걸까?그녀는 부자들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전태윤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숨은 부자야. 돈은 많지만, 티 내지 않지."이 말을 듣고 하예정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롤스로이스를 모는데 뭐가 티를 안 낸다는 거야?’전태윤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국산 승용차를 운전하고 하예정을 데려다주었다.두 사람이 떠난 후 경호팀의 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바를 몰라 하였다.결국 그들은 차를 운전해 슬그머니 전태윤을 쫓아가기로 했다. 전태윤이 하예진을 데려다준 후 다시 전태윤을 회사로 모시고 가는 것이다.하예정은 그의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남자가 진짜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롤스로이스 같은 고급 차를 가지고 있으면서 2천만 원짜리 차로 데려다주니 말이야.하예정은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하씨 집안사람들이 할머니를 관성의 병원으로 모시고 와 입원한다고 전화로 알렸다. 그리고 하예진한테 절대로 마음이 약해서 타협하고 치료비를 내주지 말라고 당부하였다.두 자매는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 보지 않았지만 뻔한 일들이었다. 그들의 사촌 형제들은 직장에서 출근을 하나 혼자서 장사를 하나 돈을 잘 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큰아버지와 삼촌들이 아주 호강하며 살고 있다고 들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효성이 넘치는 아들과 손주들이 많은데 두 자매가 치료비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하예진은 하예정보다 5살
하예정은 하예진에게 전태윤과 함께 저녁 먹으러 간다고 답을 했다.두 자매의 통화가 끝난 후 전태윤은 그녀에게 물었다. "너 고향 친척과 관계가 안 좋아?""네, 안 좋아요."하예정은 숨기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10살 때 부모님이 차 사고로 돌아가고 친가 쪽이랑 외가 쪽에서는 누구도 우릴 돌봐 주려 하지 않았어요.""그런데 우리가 부모님의 배상금을 받자, 그들은 다시 찾아왔어요. 형제나 사촌들은 배상금을 나눌 자격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어르신을 시켰지요. 우리 아버지가 넷째 아들이었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버지를 별로 예뻐하지 않았고 큰아버지와 삼촌들을 더 좋아했어요.""그때 당시 그들은 배상금을 더 많이 얻기 위하여 두 어르신은 나중에 늙어서 우리 자매가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며 계약서까지 작성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은 새집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져갔어요.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 집도 그들 것이라고 했지요.""저희 자매는 여자아이고, 결국 시집을 갈 것이니 집과 땅을 나눌 자격이 없다고 했어요. 그때 우리는 어렸었고 또 누구도 편들어 주지 않았어요. 집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았고 우리는 방학 때만 돌아와서 있었는데도 구박받고 눈치를 봐야 했어요. 마치 우리가 집을 빼앗으러 온 것처럼.""언니는 나한테 그랬어요. 그 집문서에는 우리 아빠랑 엄마의 이름이 적혀있으니 두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소송을 걸고 집을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요. 절대 큰아버지와 삼촌들이 덕 보게 놔두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소송 걸 때 필요하면 말해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하고. 내가 아는 변호사가 꽤 있어." 전태윤은 그녀에게 말했다.전씨 그룹에는 전문적인 법무팀이 있다."필요하면 말할게요." 하예정은 고마운 마음으로 답하였다.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직 몇 년은 더 버티겠지.그리고 진작 소송할 때가 되더라도 그들이 여전히 부부관계를 맺고 있을지 그녀는 모른다."근데 외가 쪽에서도 너희를
그는 하예정이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돈을 주나 안 주나 불효라고 욕할 것이니 차라리 안 주고 욕 먹는 게 훨씬 낫다.그 당시 두 자매는 미성년자였고 그들의 친척들은 모질게도 누구도 자매를 거두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 많은 배상금을 가져갔고 부모님이 남긴 집까지 차지하였다. 그때 하예진이 철이 좀 들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자매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하예정은 전태윤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태윤 씨, 당신 말이 맞아요. 태윤 씨 말대로 그들이 뭐라고 하든 돈 한 푼도 안 줄 거예요."그들은 그때 그런 짓을 해놓고도 두려워하지 않는데,하예정이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혹시 누군가가 어르신은 나이가 많고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인데 그만 따지라 한다면 그녀는 자기과 입장을 바꾸어 직접 겪고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얘기하라고 반박하고 욕할 것이다. 남의 고통을 겪지 않은 이상 남에게 선을 권하지 마라.그녀는 끌려다니는 것을 제일 질색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태윤은 하예정을 관성 중학교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이 시간에 학생들은 이미 수업을 시작하여 주변 상가에는 별사람이 없었다.심효진은 계산대에서 휴대폰을 놀고 있었는데 전태윤이 하예정을 데려다주는 것을 보고 급히 뛰어나왔다."태윤 씨."심효진은 전태윤을 보고 그에게 인사를 했다.전태윤은 차창만 내리고 차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가게를 들여다보고 심효진이 인사를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웃음을 짜내었다. 그것이 바로 인사에 대한 답장이었다."얼른 출근하러 가요. 그리고 회사에 도착하면 문자 주고요.""알았어."전태윤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차창을 올린 후 떠났다."너 스쿠터는?""이후에도 계속 남편이 데려다주는 거야? 두 사람이 알콩달콩 잘 지낸다는 거 티 나는데.""응, 그런 셈이지."그는 그녀의 인내심의 한계를 터치하지 않고 그녀는 그의 뜻에 반대하지 않았을 때 알콩달콩한 부부이다."어제저녁에 스쿠터가 갑자기 고
한편 회사에 도착한 전태윤은 비서에게 말했다. "비서실장 좀 불러줘요."비서는 인터폰으로 비서실장인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전 대표께서 찾으십니다. 지금 바로 올라오시라고 합니다."소정남은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응하며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몇 분 후 소정남은 대표실의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전태윤은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소정남이 들어오자, 전태윤는 펜을 놓고 그에게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보냈다."무슨 급한 일 있어?"소정남과 전태윤은 동창이다. 전태윤은 그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졸업도 하기 전에 소정남을 미리 스카우트하였고 그는 이내 전 씨 그룹의 엘리트가 되었다. 소정남은 스스로 성과를 내고 한 걸음 한 걸음 비서실장의 자리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또 전태윤의 신뢰도 얻게 되었다."급한 일은 아니고 사적인 일이야. 너랑 따로 말하려고 불렀어."소정남은 소파에 앉은 후 웃으며 말했다. "전화로 얘기해도 되잖아."소정남은 비서실장이지만 전태윤은 가끔 그에게 사적인 일을 부탁한다. 소정남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다."뭐 좀 알아봐 줄래?""내가 알아봐 준 일이 어디 한두 가지야? 뭔데, 말해 봐."소씨 가문은 엄청 미스터리하다. 그들은 재벌 집안이지만 아주 겸손하다. 전씨 집안보다도 더 겸손한 편이다. 그래서 소씨 가문이 재벌 집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소정남은 장남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집안일을 물려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형제 중에서도 꽤 위상이 있었다. 그리고 소씨 가문이 제일 잘하는 일이 바로 정보를 캐는 일이다. 그들의 정보 통신망은 큰 도시에 쫙 깔려있다.특히 관성에서는 그들이 모르는 일이 없을 정도다.하지만 누구나 소씨 가문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태윤이 소정남과 친구이자 상사와 부하의 관계이기에 소씨 가문의 가주도 전태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다. 매번 전태윤이 도움을 청할 때마다 소씨 가문의 가주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우리 할머니가
"소정남!"전태윤은 부끄러워 화를 냈다.그는 정말로 자기의 체면 때문이었다.하예정은 그의 아내이고 누군가 그를 괴롭히는 것은 자신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전태윤은 절대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알았어, 안 웃을게. 다 네 얼굴을 위한 거지. 내가 알아 올게. 이름이 하예정 맞지? 실은 이동명을 시켜서 해도 됐었잖아. 나는 비서실장이고 전 회사의 일을 책임져야 하는데 바빠서 물 마실 시간도 없어. 그런데 나한테 이런 소소한 일을 시키다니."전태윤은 일어서서 소정남에게 물을 한 잔 따라주었다. "그러면 지금 마셔, 바빠서 물 마실 시간 없다 하지 말고.""내가 들어온 지가 언젠데?""난 또 목 안 마른 줄 알았지, 우리의 어떤 사인데 마시고 싶으면 알아서 마시겠지. 언제 너더러 나한테 사양하고 그랬어?"소정남은 헤헤하고 웃었다."동명이의 입은 너만큼 무겁지 못하잖아.""그건 그렇지, 이동명은 가끔 보면 말이 너무 많아."소정남은 잘난 척 한번 했다."하씨 집안 모든 사람의 정보 다 가져와." 하예정한데서 하씨 집안사람들이 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듣고 전태윤은 두 자매가 꼭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라는 감이 왔다.하예진의 일은 자기가 관여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예정의 일은 절대 모른 척할 수 없다.그러니 상대방 정보를 자세히 알아야 하고 그래야 백전백승할 수 있는 것이다.전태윤은 절대로 자신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그들이 어떤 수를 써도 그가 있는 한, 하예정이 당하는 일은 없다."너 아내는 언니만 있는 게 아니었어?""고향에 만만치 않은 친척들이 한가득 있어."소정남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네가 신분을 숨기고 결혼도 숨기는구나, 그 만만치 않은 친척들이 꽤 골치 아프겠어."전태윤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그가 신분을 숨기고 결혼도 숨기는 것은 친척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예정의 인품이 어떤지 지켜보려고 그런 것이다. 전태윤은 할머니가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할 때부터 하예정의 인성을 의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
수십 년이 지난 탓으로 법률조차도 이은화의 사형을 선고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윤미는 적어도 그녀가 큰이모의 후손에게 주인 자리를 돌려줄 수 있었다.그녀는 이씨 가문을 떠나 자신의 회사로 돌아가 생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이윤미는 이런 원한과 복수에 관한 일을 멀리하고 싶었고 그녀의 소소한 삶을 더 좋아했다.이은화가 옛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이윤미는 이은화가 그 해에 정말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믿었다.단지 가주 자리의 권력을 탐내는 것뿐만이 아닌 사랑 때문에 벌인 짓일 수도 있다.이은화는 지금 70세이고 정군호와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며 아들딸도 네 명이나 낳았다.하지만 이은화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능력이 뛰어난 남자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은숙의 특별 비서일 것이다.“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제 행동으로 제가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게요.”하예진은 한참 동안 이윤미를 바라보며 웃었다.“윤미 씨의 진지한 얼굴은 정말 멋있고 아름다워요. 당신 엄마가 보신다면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지만요. 이씨 가문의 상황은 어때요? 윤미 씨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다가 이 대표님께 붙잡혔다고 들었는데. 요 며칠 동안 윤미 씨 아버지는 모습조차 내놓지 않는다면서요.”하예진은 이은화와 정군호의 일을 알고 있었다.강성에서 이 불륜 사건은 빅뉴스였다.평소에 정군호랑 같이 다니던 늙은 남자들은 대부분 정군호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이은화가 정군호를 너무 엄하게 관리하여 그에게 자유로울 틈도 주지 않고 용돈도 적게 준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사이좋은 부부 사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일에 얽매이게 되면 감정이 깨지기도 한다.여자들은 대부분 이은화의 편을 들었다. 이은화가 남편을 관리하는 것이 좀 엄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군호가 만약 이은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닌 이은화에게 이혼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정군호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우리 엄마가 예진 씨가 오신 것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없는데. 조심하세요. 아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제가 모르는 일은 할 수 없지만요.”하예진은 웃음을 거두며 한참 동안 이윤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윤미 씨, 우리 만난 적 있잖아요. 저도 윤미 씨가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대표님 결국 윤미 씨와 피가 섞인 모녀지간인데, 저는 윤미 씨가 이 대표님과 맞서지 못한다고 생각해요.”이윤미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글쎄요. 우리 두 사람은 모녀 맞아요. 저를 저의 어머니와 같은 편에 서지 말라고 하면 제가 분명 스트레스도 받고 또 엄청나게 큰 용기도 필요하겠죠. 예진 씨가 저를 경계하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정말 예진 씨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마음이 너무 독하세요. 해본 말이 아니에요. 예진 씨가 여전히 저를 경계하면 저도 더는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맞서게 되면 저를 찾아오셔도 돼요.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까.”“사실 저와 엄마는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어요. 저는 엄마의 곁에서 자라지 않았고 또 이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스무 살이 넘었거든요. 윤정이가 아직 이씨 가문에 남겨졌고 여전히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요. 제가 저의 엄마와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다고 해도 우리 두 사람이 친 모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아요.”“만약 당신들이 없다면 제 생각에는 제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짊어지고 리더가 되어 우리 가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을 거예요.”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규정을 수정하고 싶었다.그렇게 딱딱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비록 대가가 좀 클 수도 있지만, 이씨 가문을 더 멀리, 더 잘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정하고 싶었다.이윤미는 명함 한 장을 꺼내 하예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은 제 다른 전화번호에요. 아는 사람이 적으니 무슨
“그럼 안전에 유의하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저에게 전화하세요.”방윤림이 이윤미에게 당부했다.이윤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항상 방 비서에게 의지할 수는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암살을 당하더라도 이윤미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을 갖추었다.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면 이렇게 자라지 못하고 일찍이 양어머니의 학대를 받아 죽었을 것이다.방윤림과의 통화를 마친 이윤미는 곧바로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하예진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하예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누군가의 차가 오는 것을 보더니 창문을 조금 눌렀고 이윤미가 하예진의 차 옆에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선글라스를 먼저 벗은 이윤미는 얼굴의 가죽을 벗어 던져 본모습을 드러냈고 차에서 내려 하예진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하예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어떻게 저인 것을 알았어요? 두렵지 않아요?”“지금 이 시각에, 또 이렇게 외진 곳에 주변에 주택도 없는데 겁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 밤에 이런 곳으로 오지 못할걸요. 그리고 저기에 묘지도 있는데 이런 곳에 예진 씨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윤미가 온 후에야 약속 장소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다.하예진도 한참 후에야 차를 세울 곳을 찾아 이윤미가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그녀들이 주차한 곳은 방윤림이 그녀들에게 준 주소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묘지에서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어요. 만약 제가 알았더라면 아마 혼자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귀신이 무서워서요.”이윤미도 웃었다.“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사람이 더 무섭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 못 들어보셨어요? 예진 씨 분장 기술도 꽤 좋네요. 제가 제 부하들을 하루 호텔 입구에 보내 예진 씨를 기다리게 했거든요. 여기로 오시는 길에 예진 씨를 몰래 보호하라고 지시했는데 예진 씨가 나오는 것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곧 하예진은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왔다.하예진은 방윤림이 그녀에게 준 그 주소대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를 몰았다.노동명이 전화했다.하예진은 차의 속도를 늦춘 다음 노동명의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저 지금 나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해요. 지금 운전 중이니 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요.”“알았어. 운전 조심하고.”“네.”하예진은 하예정과 달리 천천히 차를 몰았다.다행히 하예정이 시내에 살고 있어서 차를 빨리 몰지 못했다. 만약 차가 적은 외진 곳으로 가게 되면 하예정은 비행기를 운전하는 것처럼 매우 빨리 몰 것이다. 전태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지, 그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 하예정이 운전대조차 잡지 못하게 할 것이다.차를 몰고 있는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동명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하예진이 변장하고 남몰래 혼자 차를 몰고 이윤미를 만나러 간 것을 알면 노동명은 아마도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고 있어서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방윤림이 준 그 주소는 가까운 곳이 아닌 꽤 외진 곳에 있었기에 내비게이션에는 차로 한 시간 이상 가야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하예진이 차를 몰고 호텔을 나서자 이윤미가 방윤림에게 물었다.“예진 씨 나오는 거 봤어요?”방윤림이 대답했다.“제가 종업원에게 부탁해서 쪽지를 보냈으니 바로 떠날 겁니다. 하예진 씨가 방금 관성에서 왔기 때문에 낯선 곳이고 차량도 없으니 택시를 탈 것 같습니다. 아가씨도 출발하시면 됩니다. 하예진 씨가 곧 약속 장소로 갈 겁니다.”방윤림은 하예진을 만난 적 있었는데 하예진이 대담하고 세심하다고 추측했다. 하예진이 강성으로 온 목적이 이씨 가문과 연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방윤림은 하예진이 이씨 가문 때문에 강성으로 왔으니, 이윤미가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만나러 갈 것으로 생각했다.“사람을 시켜 예진 씨를 은밀히 보호하라고 하세요.
고현은 전호영을 흘겨보았다.전호영은 코를 만지며 웃었다.“현이 씨가 만든 요리가 당연히 맛있죠.”“그럼 저는 뻔뻔스럽게 얻어먹으러 갈게요.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서 쉴게요.”하예진은 눈치껏 두 사람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하예진은 그녀가 묵고 있는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자마자 노동명의 메시지에 답장하려고 했다.그러나 답장하기도 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하예진은 일어나 문을 열러 갔다.“호텔 종업원입니다.”종업원은 그녀가 문을 열자 웃으며 말했다.“실례지만 하예진 씨 맞습니까? 누군가가 당신에게 편지 한 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종업원은 하예진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하예진은 봉투를 받아들고 종업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방에 돌아온 그녀는 호기심에 봉투를 뜯었고 그 안에는 작은 편지 한 장만 들어있었다.편지의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강성의 어느 주소가 들어있었다.주소 밑에는 말 한마디만 남겨져 있었다.[예정 씨,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혼자 오세요. 제가 예정 씨 안전을 보장해 드릴게요.]오른쪽 아래 끝에 “방”이라는 글자가 쓰였다.‘방? 방씨? 이름은 뭐지?’하예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방”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녀는 “방”이라는 글자가 이름은 아닐 것으로 추측했고 아마도 성씨가 “방”씨 일 것으로 짐작했다.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이윤미 주변에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하예진이 하루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날 이윤미가 방윤림을 보내 그녀에게 선물을 전해주도록 했다.하예진은 아마도 이윤미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되었다.시간을 보던 하예진은 망설임 없이 캐리어에서 단독으로 포장된 검은색 마스크와 선글라스, 눈에 띄지 않는 낡은 옷 그리고 가발을 꺼냈다.그녀는 변장하고 나서 휴대전화와 편지를 들고 조용히 룸을 나섰다.다행히 그녀가
하루 호텔.맨 위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하예진과 고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전호영은 두 여자에게 물과 과일을 가져다주러 갔다.“언니, 우리 집에 묵는 건 어때요? 저 혼자 살아요. 집도 크고 방도 많아서 저랑 같이 살면 편하실 거예요”고현은 하예진을 그녀의 개인 별장에 초대했다.하예진은 그녀를 보며 웃었다.“제가 고 대표님 집에 가면 강성의 연예 기자들은 고 대표님이 호영 씨와의 감정이 깨졌다고 보도할걸요. 호영 씨가 헛수고했다면서, 고 대표님은 여전히 여자를 좋아하는 거라면서 기사를 낼 거에요.”고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 차림으로 다녔기에 하예진이 그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보도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하예진은 강성에 막 왔기 때문에 사업도 일으키지 못한 채 사람들의 원한을 사게 되면 그녀에게도 좋은 점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현을 사모하는 여자가 너무 많기에 그녀들이 전호영을 이길 수는 없지만, 하예진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적어도 그녀들은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대표님과 호영 씨 감정도 이제 점점 안정되고 있는데 저는 적절한 시기에 고 대표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외부에 솔직하게 말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항상 두 사람이 동성애자라고 오해하잖아요. 사실도 아닌데.”고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외부 사람들에게 해명할 필요 없어요. 언젠가 호영 씨와 결혼하게 된다면 제가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면 사람들도 진실을 알게 될 거에요.”하예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람들이 고 대표님이 여자 분장을 하고 나온 줄로 알 거예요. 고 대표님이 여자 행세를 한다고 여전히 오해하실 거예요. 저는 보통 다른 사람에게 결혼이나 이혼을 권유하지는 않거든요. 저도 과거에 결혼생활 때문에 소란을 피우다가 이혼을 당했거든요.”“형인 씨가 저를 폭행했을 때 저는 부엌에 있는 칼을 들고 거리에서 쫓아다녔기도 했고 그 사람을 때려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이은화가 말을 이었다.“난 정말 먹고 싶지 않아. 너라도 얼른 밥 먹으러 가. 엄마는 좀 더 앉았다가 돌아갈 거야. 내가 약속할게. 이 정도 일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거야. 엄마도 이틀 지나면 기분이 금세 좋아질 거야. 내일 나도 네가 알고 있는 엄마로 돌아올게. 약속할게. 늙은 영감탱이 때문에 죽느니 마느니 하면서 난리 피우지 않을 거야. 말이 나온 이상 너한테 좀 물어보자. 예정이가 오면 어떻게 임할 생각이야?”“제 원칙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대처할 거에요.”이은화는 멈칫하더니 칭찬했다.“역시 내 친딸이야! 엄마가 관성에 있을 때 경혜를 만났는데 나한테 원한을 품고 있더라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경혜는 마음속으로 날 진범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나에게 민감하게 말을 하더라고. 경혜가 나보고 예진이한테도 기회를 주어 배양하라고 제안하더군. 예진이와 너를 평등하게 경쟁시켜 예진이가 지면 네가 이씨 가문을 이어받아도 아무런 의견이 없다고 했어. 그런데 예진이가 이기면 우리 모든 사람은 권세 중심에서 손을 떼라고 말하는 거야.”이경혜가 이렇게 명확하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뜻은 비슷했다.이은화는 딸 이윤미에게 말했다.“윤미야, 우리 집을 남에게 양보할 수는 없잖니? 그래서 엄마가 승낙하지 않았어. 예진이가 이번에 강성에 온 목적도 너무 단순하지 않을 거야. 잘 감시해. 예진이가 우리 가문의 친척들과 너무 많이 접촉하게 해서는 안 돼. 강성에서 사업을 펼쳐나가려면 돈이 있어야 할 거야. 예진의 사업의 앞길을 막아 돈을 벌지 못하게 하면 강성에서 버티지 못할 거야.”“강성은 우리 구역이야. 예진의 배후에 큰 세력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여기는 우리 이씨 가문의 구역이니까. 만약 감쪽같이... 그러면 더 좋고.”이은화는 자신의 목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이윤미에게 하예진을 처리하라는 의미였다.“하지만 흔적을 남기면 안 돼. 만약 정말 그렇게 한다면 증거는 반드시 깨끗이 지워야 하거든. 예진의 뒤에 있는 몇몇 세력은 우리가 건
“엄마, 우리 이모의 특별 비서는 아직도 살아 계세요?”이윤미는 화제를 돌렸다.이은화가 가문의 규정을 바꾸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네 이모가 사고를 당한 뒤로 이은숙의 비서도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생사는 누구도 몰라.”이은화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에 오른 후, 사람들을 보내 그 특별 비서를 찾도록 했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다. 마치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은화는 여전히 그 특별 비서를 찾아다녔다.그 당시 사고에 관한 일을 그 비서도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그의 손에도 증거가 있을 것 같았다.그를 찾지 않고 증거를 인멸하지 않으면 폭탄을 남겨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가 언제,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나 이은화의 살인 증거를 내놓을지 누가 알겠는가!비록 어렸을 때 이은화의 짝사랑 상대일지라도, 이은화는 그녀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그 비서를 찾으면 반드시 그를 죽이고 입을 닫게 하려고 했다.수십 년 동안 그 비서의 소식도, 두 조카의 소식도 없었다. 이은화는 자신의 외조카가 죽거나 영원히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그녀는 평안하고 순조롭게 이씨 가문을 그녀의 딸에게 넘겨줄 수 있었으니까.하느님은 여전히 이은화에게 잠재적인 위험을 남겨 주셨다.두 조카 중 비록 한 명이 죽었지만, 죽은 조카가 두 딸을 이 세상에 남겨두었다.살아 있는 조카딸 이경혜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들과 딸을 낳고 권세도 있어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작은 조카 이경희의 두 딸 하예진과 하예정도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였다.그녀들의 배후에는 여러 가문의 큰 세력이 서 있었고 그녀들을 건드리는 것은 그 가문들을 적수로 삼는 거나 다름없었다.요즘 이씨 가문의 실력은 예전만 못하기에 이은화는 그 세력들과 감히 맞서지 못했다.“나는 네 이모 가족의 죽음은 그 비서가 꾸민 음모라고 의심하고 있어. 그 비서는 네 이모를 좋아하지만 네 이모가 이모부와 결혼해서 마음속으로 원한이 맺혔을 거로 생각해. 사람들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