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어려워? 너희들은 혼인신고까지 하였잖아, 태윤이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네가 먼저 밀어붙이면 되지 뭐. 할머니는 빨리 증손주 안아보고 싶구나." "할머니, 이건 할머니께서 조급해하셔도 별 방법이 없는거예요, 제가 태윤의 엄숙한 얼굴을 보면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어요.""…."태윤은 그의 할아버지를 닮아 엄숙하고 차가운 사람이다. 전씨 할머니도 젊었을 때 남편에게 꽂혀 몇 년을 쫓아다녔었다, 온갖 방법을 다 해서야 겨우 남편을 얻었던것이다."할머니, 저와 태윤씨의 일에 마음 쓰지 마시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시간이 흐르면 차차 좋아지겠죠 뭐."전씨 할머니는 속으로 되뇌였다.‘내가 걱정 안 하게 생겼느냐, 내가 마음에 들어 직접 고른 손자며느리이고, 어떻게 성사시킨 혼사인데.... 만약 예정이 네가 행복하지 않으면 난 죽을 때까지 자책할게 될 거야.’"그래, 마음 편한 대로 해, 할머니가 너 대신 가게 치워줄 테니 넌 일이나 봐."할머니는 집에서도 한가할 새 없이 바삐 움직이는 분으로서, 늘 원예사들의 화초 손질을 도와주셨다. 전에는 바깥 정원의 밭까지 손질하려 하셨는데, 가족들의 거듭된 권유로 그만두셨고, 또 자기 회사에 청소부로 들어가려고 하셨는데, 말을 꺼내자마자 태윤의 어두운 낯색에 생각을 접게 되셨다.할머니는 가게에 처음 놀러 오셨지만, 반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오신 할머니께서 한가하게 보내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이 든 예정은 별로 힘이 들지 않는 책 정돈을 할머니에게 부탁하고는, 자기는 수공예품을 만드는 데 전념했다.먼지털이로 책장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던 할머니는 문득 일에 몰두하는 예정이가 너무 이뻐 보여서 휴대폰을 꺼내 책장 뒤에 숨어서 몰래 동영상을 찍었다. 그러고는 바로 보배 손자한테 보냈다.물론 태윤은 답장을 보낼 리가 없었다.전씨 할머니는 그가 답장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가 동영상을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예정은 한 권의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놀라운 새로운 발견과도
효진은 더욱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귀여운 할머니가 마음에 들었다.그녀는 아직 태윤 본인과 만난 적이 없지만, 친한 친구의 입에서 그 사람은 엄숙하고 차가운 사람이라는 것을 전해 들었다. 전씨 할머니 밑에서 어떻게 할머니와 전혀 닮지 않은 성격의 손자가 자랐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좀 지나자 전씨 가문 둘째인 전혁진이 마중 왔다.그는 보통 사람으로 위장하고 있는 할머니를 모시러 오기 위하여 특별히 할머니의 부탁대로 저렴한 차를 몰고 왔다.그의 차고에서 가장 저렴한 차는 평소 하인이 장 보러 가는 BMW 차인데, 그 차도 2억 정도 되었다. 당장 차를 사러 가기는 시간이 되지 않아, 혁진은 할 수 없이 화단 가꾸는 아저씨한테서 보통차를 빌려 할머니를 모시러 왔다."형수님, 할머니 모시러 왔어요."혁진은 가게에 들어오며 예정에게 인사를 건넸다."네, 조심히 가세요. 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문자 주시고요."예정은 할머니와 혁진에게 오늘 자신이 짠 수공예품 두 개를 건넸다. 그녀가 혁진에게 준 것은 구리줄로 짠 화분이었다.혁진은 거절하지 않고 냉큼 받았다. 그는 가게에서 형수가 만들어 놓은 수공예품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돈으로 치면 얼마 안 되지만 매우 아름답다고 느꼈었다."이 차는 어디서 구한 것이냐?""재범 아저씨가 평소에 화학비료나 화분을 나르는 데 쓰던 것을 제가 빌렸어요. 형수는 절대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큰형이 가난한 척하고 있기에 다른 가족들도 어쩔 수 없이 함께 가난한 척을 해야 하였는데, 혁진은 오히려 재미있었다. 어느 날인가 형님이 형수님을 정말 사랑하게 되고 또 형수님이 형님한테 속은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궁금했다.다시 말해서, 그는 큰형이 형수한테 혼나는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어쩐지 이 차가 낯이 익다고 했더니 재범이 거였구나."할머니는 휴대폰을 꺼내 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아, 내가 갑자기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지금 바로 찬이 카페에 가서 과자 좀 사 오너
"네가 뭘 알아? 다 생각이 있어 그러는 거야.""할머니, 또 우리 형 놀리시려고요?!!!""한 마디만 더 물어보기만 해!"혁진은 형님을 매우 동정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님을 못살게 구는 것이 자기가 괴로운 것보다 나은 것이다.할머니는 장난이 심하시고 어린이 같으셔서 손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가장 큰 재미로 여기신다.한편 예정은 서점 문을 닫고 친구에게서 헬멧을 받아 쓰고는 말했다. "내가 앞에 탈게!"효진은 오토바이 뒤에 얌전히 앉아 자연스럽게 예정의 허리를 껴안았다. "예정아, 네가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난 너와 결혼할 거야, 엄마에게 매일 재촉당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얌전히 가만있어. 마구 만지지 말고, 안 그러면 차에서 떨어뜨릴 거야!"예정은 찬이 카페를 자주 지나다녔지만 들어가서 커피를 마신 적은 없었다. 커피보다 장미꽃차나 국화차를 즐겨 마셨기 때문이다.찬이 카페에 도착하니, 상대방 남자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인지, 남자는 양복 차림에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넥타이를 매고, 손에 장미꽃을 든 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효진은 친구의 옷을 잡아끌면서 그에게로 다가갔다."혹시 나사장님?"나 사장은 효진과 예정을 번갈아 가며 훑어보았지만, 어느 쪽이 오늘 밤 그의 소개팅 상대인지 한동안 알수가 없었다.소개팅 전 효진의 사진을 보긴 하였지만, 자세히 보지 못한 탓에 여자가 매우 예쁘게 생겼다는 것만 기억했을 뿐이다. 그래서 장미 꽃다발을 들고 문 앞에서 기다리면서 효진이가 그를 알아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효진씨?""네, 저예요."나사장은 웃으면서 두 사람을 예약해 놓은 바깥의 풍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자리에 앉은 후, 효진은 절친 예정을 나사장에게 소개했다. 예정이 이미 결혼한 것을 알고, 나사장은 마음속으로 못내 아쉬웠다. 금방 예정을 첫눈에 보자마자 마음에 든 그
"효진씨, 좀 더 앉아 계시지....?"우월감을 뽐내면서 열변을 토하던 나사장은 효진이 떠나는 걸 못내 아쉬워햇다."나사장님, 미안하지만 우리 둘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이제 그만 얘기해요."효진은 솔직하게 말하고 나서 예정을 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앞으로 걸어가던 예정이 갑자기 멈춰 섰다."예정아, 왜 그래?""내 남편....""뭐라고?"효진이 아직 반응도 보이기 전에, 태윤은 이미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검은 눈동자로 예정을 깊게 주시하며 입꼬리를 약간 올리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예정은 왠지 그의 비웃음을 느낄 수 있었다.‘왜 날 비웃는거지?’고개를 돌려 쫓아오는 나사장을 쳐다보던 예정은 남편이 왜 그러는지 금방 눈치챘다.“효진이 소개팅하러 오는데 함께 따라왔어요."태윤은 속으로 그녀가 급하게 다른 남자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대꾸를 안 했다.효진은 드디어 그렇게 궁금해하던 절친의 남편을 보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 잘생기고 매력 있지?’태윤이 예정을 오해할까 봐 걱정된 효진은 태윤한테 금방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다."일찍 집으로 돌아가."태윤은 그제야 차갑게 입을 열었다."네. 알겠어요. 근데 왜 여기 계세요?""할머니가 과자 사 오라고 하셨어, 여기 과자가 드시고 싶으시데."태윤은 할머니께서 일부러 과자를 사오라고 시킨 걸 알게 되었다.설마 내가 질투할 줄 알고?"아 그래요?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당신도 할머니께 과자 갖다 드리고 오세요, 문 잠그지 않을게요.""알았어."예정은 효진이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고, 태윤은 과자를 포장한 후, 차에 앉아 찬이 카페를 떠났다. 그는 곧장 차를 몰고 전씨네 장원으로 갔다.할머니는 아직 안 주무시고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계셨다.태윤은 포장해 온 과자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와 과자를 탁상 위에 올려놓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머니, 나와 예정의 결혼생활에 더는 끼어들지
예정은 태윤과 할머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래서 찬이 카페에서 태윤과 마주치자 조금 놀랐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께서 효진을 동반해 갈것을 권유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왜 태윤이 그곳에 나타났는지 알아차렸다.’그런데 할머니께선 왜 이런 일을 하신 거지? 태윤이가 오해하게끔 하기 위해서?’그녀가 소개팅에 간 것도 아니고, 효진이랑 같이 간 것뿐인데....태윤이가 보기에도 그렇겠지?방금 카페에서 태윤을 봤을 때 그의 표정이 평소보다도 더 차갑던 것을 생각해보니 아무리 무딘 예정이라도, 태윤이 오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 그때는 효진이 화장실에 가서, 그녀 혼자만 나사장을 마주하고 있었을 때였다.다행히 나중에 화장실에서 나온 효진이가 설명하니 태윤의 안색도 조금 누그러들었다.예정은 할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할머니를 구해드렸지만, 결코 은인을 자처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할머니께서 항상 그녀를 은인으로 생각하시고 평소에도 잘 대해주셨다. 절대 그녀를 속일 이유가 없었다.이러저러한 추측만 잔뜩 하며 예정은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베란다에 있는 그네 의자에 앉아 조용히 바깥의 밤하늘을 바라본다.태윤은 밤늦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을 때, 예정은 그네 의자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태윤은 예정의 방문이 닫혀 있고, 집 안에 불빛이 없는 것을 보며 그녀가 이미 방안에서 잠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켰다. 방에 잠들어 있는 예정이 깰까 봐 볼륨도 매우 낮게 조절해놓았다. 태윤은 평소에 티비를 거의 안 보는 축이다. 집이 너무 조용해서 티비를 켰을 뿐이다.따르릉…둘째가 걸어온 전화였다. “그래, 혁진아.”"형, 괜찮아?"혁진의 관심 어린 말투가 들려온다."할머니가 날 혼내실 줄로 알고 있었어?""형, 할머니가 왜 형을 혼내겠어? 할머니께선 그냥 찬이 카페에 가서 과자를 사오라고 전화하셨을 뿐인데, 할머니가 그곳 과자를 좋아하시는 건 형
태윤은 할머니가 보내준 동영상 속에서 열심히 수공예품을 짜고 있는 예정의 매력적인 모습을 떠올렸다. 이미 동영상을 여러 번이나 반복해서 보면서, 마음속으로도 인정했지만, 한 가지 일에 전념하며 자신감이 우러나오는 여자는, 온몸에서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풍기며, 마치 커다란 자석처럼, 다른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다.사람들은 늘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예정은 확실히 자신감 넘치는 매력적인 여자이다."난 지금까지 질투에 질 자조차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어? 잠 안 자냐...?"태윤은 문득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예정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형, 나 지금 자려고 준비 중이야, 자기 전에 형 생각나서 형한테 전화 좀 한 거지, 이따 잘 거....”태윤은 혁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통화를 끊어버렸다."….""베란다에 앉아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당신의 전화소리를 듣고 깼어요.” "밤이 차가우니 감기 조심해!"“관심 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먼저 들어가 잘게요.”예정은 하품하며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태윤에게 더 말하지 않았다. 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그와 혁진이 한 말을 들었을까, 또 얼마나 들었는지?자신의 공간에 아내라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기면서 태윤은 자신의 사생활이 조금씩 보호를 잃어간다고 느껴졌다.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할 때, 태윤은 예정이 어느 만큼 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아침 식사상 위에 복통에 먹는 약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예정이 오늘 준비한 아침 식사는 국수였다부부앞에, 달걀 후라이를 하나씩 얹은 국수 한 그릇이 각각 놓여 있었다.그 위에 파, 고수풀, 채를 썬 고기도 곁들여져 있었다.예정은 주방에서 매운 불닭 비빔장을 꺼내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국수에 조금 덜어낸 뒤 태윤에게 내밀었다. 그러면 국수가 더 맛있을 거라고."아니, 됐어."예정은 그 위에 또
예정은 국수를 다 먹고 나서 여느 때처럼 주방을 깨끗이 치우고 나서 태윤에게 말했다. "먼저 가볼게요. 나갈 때 집 문을 잠그는 것 잊지 마시고요."태윤은 그녀의 두 눈을 한번 쳐다보더니 또 고개를 숙여 국수를 먹었다."참, 집에 있는 과일 언니한테 좀 가져다줘도 괜찮죠?"그녀는 그날 과일을 좀 많이 산 것 같았다. 시댁 식구들이 가고 난 뒤 과일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나머지를 둘이 다 먹을 수도 없고, 냉장고에 넣어둔 채로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상하고 말것이다."처형이 남도 아닌데 그래?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일부러 나한테 묻지 않아도 돼, 이 집에서는 큰일이 아닌 이상 당신이 알아서 처리하면 되.""우리는 아직 상대방을 잘 알고 있지도 않고. 또 지금 태윤씨 집에 살고 있으니, 태윤씨의 의견을 묻는 것은 남편에 대한 존중이에요.""저는 좋은 물건이라면 다 친정에 가져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날 산 과일이 좀 많은 것 같아서 오래 두면 상할 수도 있으니, 언니에게 조금 가져다주려고요, 낭비는 나쁘잖아요." “음, 당신이 알아서 해.”예정은 그가 따로 의견이 없자 과일 두 봉지를 담아 언니에게 가져갔다."아무것도 친정에 가져오지 말어. 먹고 싶으면 언니가 사 먹으면 되지....""집에 과일이 너무 많아, 집엔 남편이랑 나 둘밖에 없는데 말이야. 그리고 난 가끔이라도 먹는데 태윤은 과일 먹는 걸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놔둬서 상하면 오히려 낭비야. 태윤씨도 언니한테 가져가라고 했어, 언니는 남이 아니라고 하면서...."그녀는 태윤이 과일을 먹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고 돌아오자마자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가는 다음날 다시 나오는데, 아예 집에서 음식을 가져가 먹지 않았다.예정은 자신이 아침을 차리지 않는다면, 그는 예전처럼 밖에 나가서 먹고, 집에 끓인 물 한 잔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동생이 이렇게 말하자 예진은 그제야 과일을 건네받았다. 예
태윤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성소현은 성씨 그룹 회장의 보배딸이자 총재인 성기현의 친동생으로 성씨 가문에서 총애를 듬뿍 받고 있는, 관성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아가씨이다."태윤 오빠, 조금만 기다려 줘."소현은 뭔가 생각난 듯 몸을 돌려 스포츠카로 달려가더니 산뜻한 장미꽃다발을 손에 들고나온다. 그녀는 꽃다발을 태윤의 차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한다. "태윤 오빠, 이 꽃을 좀 받아줘. 난 오빠를 사랑해. 오빠에 대한 나의 사랑이 진짜라는 걸 이제는 고백해야겠어. 태윤 오빠가 큰오빠랑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알겠지만, 오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없어.”성씨 그룹과 전씨 그룹은 딱히 라이벌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일부 업종은 같은 업종으로 경쟁하는 관계라 두 집안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기현의 친동생인 소현은 몇 년 전 한 연회에서 태윤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지만 두 집안이 사업상 관계가 좋지 않은 탓으로 오빠는 물론 그녀를 총애하는 부모님까지 그녀가 태윤을 쫓아다니는것을 동의하지 않았다.비록 제멋대로 하면서 자란 소현이지만 가족을 생각하여 태윤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안타깝게도 몇 년이 걸려도 태윤을 잊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감정이 더 깊어졌다.특히 태윤의 차도남 기질에 푹 빠진 소현은 너무 쿨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태윤은 젊은 여성이 접근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그걸 본 소현은 오히려 이 남자를 내가 정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태윤을 잊지 못할 바엔 과감하게 고백하기로 했다.’오늘부터 이 소현이가 공식적으로 태윤을 쫒아다닐 거야!’태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는 한 손으로 그 꽃다발을 멀리 던져버리고는 창문을 올리며 운전사에게 분부한다."어서 운전해요!""태윤 오빠~ 태윤 오빠~ 사랑해!"소현은 차를 따라가며 창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앞에 성씨 아가씨 차인데요?”“들이박아요!”기사 아저씨가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자 뒤에 있던 경호원 차가 가속을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
“다 좋대. 오늘 오전에 병원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아기가 잘 자라고 있대. 초음파를 찍을 때 옆에 서서 봤는데 아기가 움직이더라니까. 그런데 효진이는 느끼지 못한대.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적으로 16주 때부터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해.”소지훈은 마음속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간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목 안으로 삼켰다. 그러나 그도 처음 아빠로 되는 소정남을 이해해 주었다.만약 소지훈도 정윤하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그도 소정남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하지만 그건 아직 머나먼 일이다. 그는 아직 고백도 안 했다.언제쯤이면 결혼하여 애 아빠로 될 수 있을지!마흔이 되기 전에 아빠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어떤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 40대 초반부터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소지훈의 소원은 단지 40대 전에 아빠로 되는 것뿐이다.소지훈은 자신이 바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형, 무슨 일 있어?”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 관계로 사이가 좋지만, 평소 별일 없을 때면 서로 연락이 뜸했다.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소지훈이 먼저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관성에서 멀리 떨어진 소정남은 곧바로 차의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조수석에 앉아있던 심효진이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대?”소정남은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몰랐기에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형, 우물쭈물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이렇게 뜸 들이니 내가 너무 무섭잖아.”소지훈은 소씨 가문의 장남으로서 관성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그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소지훈을 본 소정남은 무척 놀랐다.“정남야. 나... 좀 부끄러운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어.”“뭐가 부끄러울 게 있다고. 형제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어. 설마 윤하 씨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