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윤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성소현은 성씨 그룹 회장의 보배딸이자 총재인 성기현의 친동생으로 성씨 가문에서 총애를 듬뿍 받고 있는, 관성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아가씨이다."태윤 오빠, 조금만 기다려 줘."소현은 뭔가 생각난 듯 몸을 돌려 스포츠카로 달려가더니 산뜻한 장미꽃다발을 손에 들고나온다. 그녀는 꽃다발을 태윤의 차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한다. "태윤 오빠, 이 꽃을 좀 받아줘. 난 오빠를 사랑해. 오빠에 대한 나의 사랑이 진짜라는 걸 이제는 고백해야겠어. 태윤 오빠가 큰오빠랑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알겠지만, 오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없어.”성씨 그룹과 전씨 그룹은 딱히 라이벌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일부 업종은 같은 업종으로 경쟁하는 관계라 두 집안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기현의 친동생인 소현은 몇 년 전 한 연회에서 태윤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지만 두 집안이 사업상 관계가 좋지 않은 탓으로 오빠는 물론 그녀를 총애하는 부모님까지 그녀가 태윤을 쫓아다니는것을 동의하지 않았다.비록 제멋대로 하면서 자란 소현이지만 가족을 생각하여 태윤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안타깝게도 몇 년이 걸려도 태윤을 잊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감정이 더 깊어졌다.특히 태윤의 차도남 기질에 푹 빠진 소현은 너무 쿨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태윤은 젊은 여성이 접근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그걸 본 소현은 오히려 이 남자를 내가 정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태윤을 잊지 못할 바엔 과감하게 고백하기로 했다.’오늘부터 이 소현이가 공식적으로 태윤을 쫒아다닐 거야!’태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는 한 손으로 그 꽃다발을 멀리 던져버리고는 창문을 올리며 운전사에게 분부한다."어서 운전해요!""태윤 오빠~ 태윤 오빠~ 사랑해!"소현은 차를 따라가며 창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앞에 성씨 아가씨 차인데요?”“들이박아요!”기사 아저씨가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자 뒤에 있던 경호원 차가 가속을
“오늘 일은 아내가 알면 안 돼요.”태윤은 경호원들에게 일러두었다.이 부잣집 도련님은 이미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성소현이 공개적으로 고백을 하다니, 당연히 아내가 알면 안 된다.성소현의 고백 때문에 전 씨 그룹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됐다. 태윤이 회사 로비로 걸어 들어갔을 때 직원들은 슬쩍 태윤을 쳐다보았다.그러나 태윤은 평소처럼 차가웠고 입술도 꾹 다물고 있었다. 경호원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그 멋있는 자태, 마치 왕이 행차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남자는 젊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아주 쉬울 것이다.회사안에도 많은 젊은 여직원들이 태윤의 실물을 보고 감탄했다. 그러나 당연히 고백하는 사람은 없었다. 태윤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더욱이 없었다.전씨 가문의 문턱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높다. 전씨 가문의 아들이 일편단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무나 전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넘볼 수 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전씨 가문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태윤은 핸드폰을 꺼내 성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전화를 받았다.“이야,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전 대표가 전화를 다 하고, 무슨 일이길래?”성기현은 히죽거리며 놀렸다. “야, 성기현, 네 여동생 관리 좀 잘해!”태윤이 여동생을 언급하자 성기현은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었다.“소현이가 왜?”성기현은 여동생이 태윤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짝사랑한 지 벌써 몇 년째란걸 안다. 사실 최근 소현은 태윤에게 고백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이 일이 떠오른 성기현은 심장이 마구 뛰었다.‘설마 소현이가 정말로 태윤한테 고백한 건 아니겠지? 아니, 대체 왜 그렇게 나무토막처럼 생긴 태윤을 좋아하는 거지?’“걔가 지금 사고 치고 있다고! 아직 회사 앞에 있으니까, 네가 와서 데려가! 아니면 내가 사람 시켜서 쫓아내라고 한다?”“아냐, 아냐. 내가 아내한테 데리고 오라고 할게. 전 대표 귀찮게 할 순 없지. 알아서
“태윤은 걔가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냥 마음 접으라고 설득 좀 해봐. 태윤은 자기 주위에 가족 빼고는, 한 번도 젊은 여자 문제에 얽힌 적이 없어. 정도 없고 배려도 없는 사람이라니까. 아무리 말해도 소현이 걔는 안 들리나 봐.“성기현은 여동생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지금 일이 좀 있어서, 내가 갈 수 없으니까 당신한테 부탁 좀 할게.”“그래, 당신 일 봐. 지금 아가씨한테 가볼게. 아가씨 데리고 어머니랑 같이 쇼핑하지 뭐. 어머니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계신 것 같아....”성기현의 아내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아주 좋다. 요즘 시어머니가 우울해하는 것 같아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쇼핑하러 나왔다. 쇼핑하다 보면 어머니 기분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기현은 순간 침묵했다.기현의 엄마, 이경혜가 우울한 이유가 바로 자기 여동생, 즉 기현의 이모인 이경희가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평생 여동생을 그리워했다.이경혜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녀가 어렸을 때 가족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 그녀와 네 살짜리 여동생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 자매는 그렇게 보육원에 보내졌고 나중에 돈 많은 부부가 입양할 아이를 찾으러 보육원에 왔다.그 부부는 이 자매 중 여동생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경혜는 당시 8살이였고 여동생은 4살이였다. 그녀는 동생을 매우 아꼈지만, 여동생이 부잣집에 입양된다는 사실을 알고 보육원에서 자라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부부가 동생을 입양하는 것을 찬성했다. 자매는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남겼다. 그날 이후로 자매는 헤어졌고, 몇십 년이 흘렀다.이경혜는 성인이 된 후 보육원을 나왔다. 그녀는 똑똑하고 강인한 사람이어서 자신의 노력으로 비즈니스계의 엘리트가 되었다. 사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으며, 사장 아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결국 재벌 집에 시집가 성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다.이경혜는 여유가 생긴 후, 여동생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나 몇십 년이 지나도록 소식 하나 없었
성소현은 결국 올케언니에게 끌려갔고, 부서진 스포츠카는 보험회사에 전화해 견인차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올케언니에게 끌려갈 때, 성소현은 말했다. “태윤이 내 차를 박았어요. 딱 내가 그 사람의 빌미를 잡은 셈이 된 거지. 언니, 내가 이미 이렇게 한 걸음 내디딘 이상, 계속 밀고 나가볼까 해요. 한 삼사 년 정도 노력할 거예요. 안되면 어쩔 수 없죠. 할 수 있는 만큼 해볼 거예요.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언니, 언니가 나한테 제일 잘해주는 거 알아요. 우리 오빠도 언니 말을 제일 잘 듣고요. 그러니까 언니가 우리 오빠한테 말 좀 전해줘요. 내가 행복할 권리를 추구하는 거, 그거 간섭하지 말아달라고요.”성소현은 올케언니의 열정이 부러웠다. 결혼 전 올케언니는 오빠에게 열심히 대시했다. 1년 정도 오빠를 따라다녔으나 결혼 후에는 반대가 되어 지금은 성기현이 올케언니를 여왕 모시듯 한다.올케언니는 그때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용감히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은 없었을 것이라고 언니가 한두 번 말한 것이 아니다.기현의 아내는 운전하며 말했다.“아가씨, 나는 아가씨의 행복을 응원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태윤은요, 우리 관성시에서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으로 소문났잖아요. 태윤 근처에 젊은 여자 있는 거 봤어요?” “우리 집이랑 전씨 가문이랑은 라이벌이잖아요. 남편이랑 태윤이 원수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경쟁하는 사이라서 서로 잘되는 꼴을 못 볼 걸요? 그래서 나는 태윤이 아가씨를 이용할까 봐, 혹시 학대라도 할까 봐 그게 걱정돼요.”“설마 학대하겠어요? 전씨 가문도 꽤 고상한 집안이잖아요. 전씨 가문 아들들은 아내에게 잘하기로 아주 소문 났던데.”성소현은 오빠와 올케언니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도결혼하고 나면 남편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관성의 상류사회에서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이 아내에게 잘하기로 가장 소문 나 있다.“어찌
김진우는 웃으며 말했다.“나도 잘 몰라, 누나, 그냥 나한테 맡겨. 내가 내일 멀쩡한 오토바이 타게 해줄 테니까.”절친의 사촌 동생이기도 하고 알게 된 지 꽤 된 사이라서, 예정은 김진우를 믿었다.“그래, 그럼, 부탁 좀 할게.”김진우는 자기가 예정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뻐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누구한테 전화하는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다.그리고 둘은 오토바이를 견인해 갈 때까지 기다렸다. “도련님!”기사는 눈썰미가 좋아 신호등 건너에 있는 여자를 보았다. 보기에는 사모님인 듯 했다.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는 틈을 타 고개를 돌려 눈 감고 쉬고 있는 도련님을 향해 말했다.“도련님 저기, 저분 사모님 아닌가요?”태윤은 기사의 말을 듣자마자 눈을 뜨고 앞쪽을 보았다. 길가에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좀 멀어서 그런지 남자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여자는 진짜 예정을 닮은 듯했다.아무래도 한집에서 살다 보니 태윤도 점점 그녀의 모습이 익숙해진듯 싶다.“지나갈 때 조금 천천히 가요. 와이프가 맞는지 확인 좀 하게요.”태윤은 핸드폰을 꺼내 예정에게 전화하려고 했다가, 다시 핸드폰을 넣어두었다.신호등은 빨간색에서 녹색으로 변했다.기사는 천천히 그곳을 지나갔다. 태윤이 자기 아내 예정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태윤의 차가 그곳을 지나가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김진우잖아! 나쁜 새끼.’‘잠깐, 예정이 김진우랑 같이 있다고? 심지어 공교롭게 딱 거리에서 마주쳤다고?’태윤의 마음속은 의문 덩어리로 가득 찼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예정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다.태윤의 차는 점점 멀어졌다.김진우는 멀리 지나가는 외제 차들을 보고 예정에게 말했다.“아까 지나간 차들 있잖아. 그중 한대가 전씨 가문 손자가 평소에 타고 다니는 전용차야.”차들이 지나가고 나자 김진우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어느 전씨?”“그 재벌가 손자 있잖아. 사람들이 부잣집 도령이라고 부르는. 전 씨
“그 사람이 일반적이라고 해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랑은 만나주지도 않을 거야.”예정은 기껏해야 그날 저녁 그 부잣집 도련님 얘기를 몇 마디 했을 뿐이다. 그 후에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예정이 한 말처럼 그 부잣집 도련님이 아무리 평범해도 그녀같이 평범한 사람을 만날 리 없다.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이다. 아무리 잘나가도 거기서 거기다. 게다가 아는 사람 중 진짜 돈이 많은 사람은 절친 심효진 말고는 김진우뿐이고.김진우도 사실 어떻게 보면 부잣집 도령에 속한다.부잣집 도령은 그녀와 같은 세계에 있지 않다. 이번 생에는 어떤 관계로도 엮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진우는 웃으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한 번도 예정을 얕본 적 없다. 그러나 다른 부잣집 도령들까지 그녀를 얕보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상류사회라는 집단이 대부분 집안 배경과 신분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걸 알고 있다..큰 행사에 참석하면 이 김씨 도령조차도 꽤 주동적으로 대표들과 교류하는데, 사실 그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차 왔다!”김진우가 부른 차는 길가에 섰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은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고 김진우를 도련님이라고 불렀다.예정은 그제야 김진우가 자기 기사를 불렀다는 것을 알았다.왕 기사님이 누구에게 트럭을 빌렸는지는 모르지만, 그와 김진우는 힘을 합쳐 예정의 움직이지 않는 오토바이를 트럭에 실었다. 트럭 위에서 김진우는 예정에게 말했다.“누나,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수리점이 문을 닫았으니까, 왕 기사님이 내일 수리점에 맡기고, 다 고쳐지면 가게로 가져다줄 거야.”“응, 고마워.”예정은 진심으로 김진우에게 고마웠다. 만약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예정은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오토바이를 끌고 해가 뜰 때까지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김진우는 싱글 벙글거리고 있었다.“우리 사이에 고맙긴 무슨.”“누나, 얼른 차에 타. 지금 집으로 데려다줄게. 아직도 예진 누나 집에 살아?”“아니, 나 발렌시
‘깨워야 하나? 할머니가 태윤 씨가 잘 때 전화하면 엄청나게 화낸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시간을 보니 이미 자정이 넘었다.‘태윤 씨가 평소의 집에 오면 보통 이 시간이었으니, 아마 아직 안 자지 않을까?’예정은 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이 안 자고 있다면 일부러 문을 잠갔다는 건데, 왜 이렇게 한 것인지 예정은 알 리가 없었다.아무튼 예정이 김진우와 함께 있었고, 둘이 또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바로 이 때문에 태윤은 꽤 불쾌한 것이 틀림없다.‘꽃뱀한테 걸린 게 분명해. 막상 시집와서 보니 나한테서 가져갈 것이 없다고 생각되니까, 급하게 다른 남자를 찾는 거 아냐?’할머니가 그 꽃뱀한테 속은 게 분명하다.따지고 보면, 할머니도 예정을 안지 석 달밖에 안됐는데, 알면 얼마나 잘 알겠는가.하필이면 할머니가 예정에게 은혜를 입어, 감사한 마음에 그녀를 믿고 태윤을 장가보낸 것인데….핸드폰이 계속 울렸으나 태윤은 예정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자 예정은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몇분 지나지 않아 또 전화를 걸어왔다.세 번째 전화하자 그제야 전화를 받았다.“태윤 씨, 자요?”“무슨 일인데?”태윤은 차갑게 되물었다.“당신이 문을 잠궈서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태윤은 잠시 침묵한 후, 여전히 차갑고 가시 박힌 말투로 말했다.“나는 당신이 오늘 밤 7성급 호텔에 간 줄 알았네.”예정은 가시 박힌 듯한 말을 듣고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다. 그녀가 왜 그런 고급 호텔에 가서 잔단 말인가. ‘나한테 갑자기 왜 날을 세우는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예정은 성격이 좋아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지 따지지 않았다.태윤은 말이 없었다.몇초간의 적막이 흐르고 예정은 말했다.“태윤 씨, 나보고 호텔가서 자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아무튼 난 항상 당신이 준 카드를 가지고 다니니까. 그럼, 관성 호텔가서 자죠, 뭐.”태윤은 말이 없었다.“기다려봐!”차갑게 한마디 던지고는 전화를 끊었다.몇분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문이 열
“우리 이미 계약서 썼잖아. 반년만 버티면 이혼할 수 있어. 이혼하고 나서 다른 남자 만나면 되는데, 꼭 지금 그래야겠어? 우리 아직 법적으로 부부잖아. 지금 그렇게 하는 건 날 바람 맞히는 꼴인 거 알지?”“솔직히 내가 널 좋아하지도 않고, 널 사랑하게 될 일은 더더욱 없지만, 남자라면, 정상적인 남자라면, 바람맞는 걸 절대 좋아할 리가 없잖아?”다시 말해 태윤은 예정이 진우와 함께 있는 게 싫었다.그는 마치 약이라도 먹은 듯이 말을 했다.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예정이 이렇게 빠르게 다른 남자를 만나 그를 바람 맞혔기 때문이다.김진우는 예정을 짝사랑하고 있다.바로 태윤의 라이벌이라는 뜻이다!이것은 사랑과는 상관없는 일이고, 체면이 걸린 문제다. 한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말이다.예정은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으나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결국 그녀는 열쇠와 핸드폰이 든 손가방을 손에 쥐고 태윤의 가슴을 향해 힘껏 밀며 내리쳤다. 그녀는 킥복싱을 배운 적이 있어서 그런지 내리치는 자세도, 힘도 모두 수준급이었다.태윤은 예정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전혀 눈치채지 못 한 체 그녀의 손가방으로 맞고 말았다.가방 안에 열쇠와 핸드폰이 있어서 가방이 꽤 무거웠다. 가방은 하필이면 태윤의 입에 맞았다.태윤은 매우 아파하며 시퍼레진 얼굴로 예정을 노려봤다.지금까지 단 한 명도 감히 태윤을 이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다.예정은 걸어서 다가와 허리를 굽혀 손가방을 주웠다. 말투도 거침없었다.“태윤씨, 그거 알아요? 허튼소리 지껄이기 좋아하는 입은 좀 맞아야 해요!”“이유도 안 묻고, 달린 입이라고 그렇게 맘대로 생각해도 되는 거예요? 태윤씨, 평소에도 이렇게 막무가내에요?태윤은 아픈 입술을 만지며,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노려봤다.“노려보긴 뭘 노려봐요? 누가 눈 큰지 내기하자는거에요? 나도 당신한테는 안 질 걸요?”예정은 퉁명스럽게 손가방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또… 또 때리……?”‘이 여자 용기가 어디서 났길래 감히
하지만 하예정은 아직 용씨 가문 사모님과 여운별이 한자리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가 여운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두 사람이 동시에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의혹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여운별은 애초에 하예정을 기다리지 않았다.지금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어야 했다. 만약 그녀가 미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지나친 의도는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겼을 것이다.하예정이 그녀를 조사하고 있다고 용태호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물론, 아무리 뒤져도 쓸 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하예정은 이미 그녀가 여운별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여운별은 문득 가장 증오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마주했던 언니의 목소리, 그 익숙한 울림이.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긴 것은 분명 여운초의 말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다행히도 용태호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다.하예정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찾아낼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빚어진 허상일 뿐이었다.그러나 하예정이 심효진과 친밀한 사이라는 점은 우려할 만했다. 심효진은 소씨 가문의 며느리였고, 소씨 가문은 정보망이 촘촘하기로 유명했다.하예정이 누구를 조사하려면 소씨 가문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하예정은 빈손이었다. 여운별이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운별은 마음 한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그리고 그 여유는 곧 그녀의 표정에 스며들어 하예정을 마주할 때면 그녀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마치 자신이 진짜 용씨 가문 사모님인 것처럼, 여운별이라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말이다.용태호는 그녀한테 내일 밤에 있을 연회에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참석하라고 말했다. 용씨 가문 사모님의 신분으로 참석하라는 것이었다.그 연회에는 관성시 상류 사회의 귀부인들이 모일 터였다.전씨 가문의 명해은도 내일 밤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며 며느리인 여운초도 데려갈
하예정이 자주 타는 차는 이미 집 앞에 멈춰 서 있었다.경호원은 우빈에게 차 문을 열어주곤 그를 차에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주었다.하예정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하이힐을 벗고 편안한 신발을 갈아 신고는 말했다. “우빈이 안전벨트 다 맸어?”하예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아저씨가 우빈이 도와서 안전벨트 다 매주셨어요. 작은이모, 이제 출발하셔도 돼요.”하예정은 웃으며 고개를 돌린 뒤 시동을 걸었다.20분 뒤 두 대의 차가 유치원 앞 주차장에 멈춰 섰다.하예정은 차에서 내렸다.우빈이는 이미 스스로 안전벨트를 풀고 작은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하예정이 차 문을 열자 우빈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이모, 오후에 아저씨가 데리러 올 때 내 캐리어도 챙겨달라고 부탁해 주세요.”“집에 먼저 들르지 않을 거니?”하예정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집에 가서 밥부터 먼저 먹고 갈래?”우빈은 큰 눈을 반짝이며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아저씨는 절대 나를 배고프게 하지 않아요. 아저씨랑 가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우빈에게 있어서 노동명은 이미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거대한 나무와 같아서 그 곁에 있으면 세상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게 된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우빈이 노동명에게 전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하예정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노동명과 하예진이 결혼을 한다면 세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하지만 이혼 후 아이를 홀로 키우며 재혼하는 여자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두 번째 남편 또는 그의 가족들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인다 해도 그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명과 그의 가족들은 우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바로 하예진이 노동명에게 마음을 열게 된 이유였다.노씨 가문은 노동명이 평생토록 우빈만을 아들처럼 생각하며 지내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비록 우빈은 노동명의 친아들이
“잘 자요.”하예정은 남편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 뒤, 문을 살며시 닫았다.전태윤은 문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그가 먼저 서재에서 자겠다고 말했지만 아내에게 밀려 나가며 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쫓겨난 기분이 들었다.전태윤은 콧등을 문지르며 어쩔 수 없이 서재로 발걸음을 돌렸다.그날 밤은 그렇게 고요하게 보냈다.다음 날 아침, 전태윤이 일어났을 때 그의 아내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를 위한 꿀물도 준비해 놓았다.“여보, 좋은 아침이에요.”하예정은 조카 우빈이가 아침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우빈의 작은 책가방을 들고 우빈이와 부엌을 나오던 참에 막 내려온 전태윤을 마주쳤다.그녀는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꿀물을 준비했어요. 마시는 거 잊지 마요.”전태윤은 어젯밤 술에 취하지 않았지만 독한 술을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숙취로 인한 두통을 걱정한 하예정은 그를 위해 세심하게 꿀물을 준비한 것이다.전태윤이 이렇게 다정하고 배려 깊은 아내를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하예정은 그렇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알겠어, 좀 있다 마실게. 오늘 꽤 일찍 일어났네.”평소에는 항상 그가 먼저 일어났었다.“네, 우빈이가 일찍 일어나서요.”“이모부!”우빈은 맑은 목소리로 전태윤을 불렀다.전태윤은 다가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유치원에서 말 잘 들어야 해.”우빈은 대답했다.“저 말 잘 들어요. 아주 잘 듣고 있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저를 엄청 좋아해요.”“그래, 그래, 모두가 너를 좋아하고말고.”전태윤은 웃으며 우빈의 작은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우빈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럼요, 남녀노소 누구나 다 저를 좋아해요. 관성에서 가장 잘나가는 어린이라고요.”하예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우빈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그거, 지율 삼촌한테서 배운 거지?”전지율은“관성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늘 입에 달고 다녔다.우빈은 전지율과 자주 놀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이런 말장난을 배운
“술 냄새도 별로 안 나요. 제가 잠들면 천둥이 쳐도 깨지 못할걸요. 이렇게 고생스레 서재에서 밤을 보낼 필요 없어요.”하예정은 그녀의 아랫배에 올려놓은 전태윤의 큰 손을 잡으며 말했다.“내가 샤워도 하고 따뜻한 물도 마시고 껌 두 알을 먹어서 술 냄새를 좀 없앴어... 창빈이가 그러는데 내 몸에 술 냄새가 심하다고 그러던데.”하예정은 작은 소리로 전창빈을 몇 마디 욕했다.전창빈은 진실만 말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전창빈은 전태윤이 입만 열면 술 냄새가 확 난다고 느꼈다. 그리고 전태윤 본인도 자신의 몸에서 술 냄새가 풍겨 하예정이 맡을까 봐 걱정한다고 생각했다.“창빈 도련님이 태윤 씨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만났어요?”하예정이 물었다.전태윤이 대답했다.“응. 원림성의 A시로 선우씨 가문에서 가정 요리사에 지원하겠다고 했어. 예정아, 할머니께서 창빈에게 골라주신 아내가 바로 선우씨 가문의 큰손녀 선우민아 씨라고 해.”“저도 알아요. 어머님이 이 사실을 얘기하자마자 우리 할머니가 창빈 도련님을 위해 아내를 정해주셨다는 사실을 눈치챘어요..”전태윤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역시 내 아내답게 똑똑하네.”“저는 멍청하지 않거든요.”“그럼. 내 아내는 늘 똑똑하지.”만약 멍청하다면 전태윤의 마음에 들지도 않을 것이다.“우리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사람은 전부 멀리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하예정과 여운초만 관성 출신이었다.전태윤은 한참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할머니께서는 나와 이진이를 가장 아끼셨구나. 우리에게 관성의 아내를 골라주셨잖아.”그는 말하면서 또 하예정의 입술에 몇 번 뽀뽀했다.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를 침대에 데려가고 싶었다.그러나 아기를 위해 그는 또 애써 참았다.“이혁 도련님과 전우 도련님의 아내는 어디 분이세요?”“몰라.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어. 어차피 관성의 사람 아닐 거야. 요즘 두 사람 다 관성에 있는 걸 못 봤어.”전태윤은 하예정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그는 아내를 방으로 데려다주며 부드럽게 말을 건
“형, 너무 늦었어. 형도 힘들 텐데 그만 쉬어 나도 이만 돌아갈게.”전태윤과 얘기를 다 마친 전창빈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전태윤이 말을 건넸다.“너무 늦었는데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가. 묵을 곳이 없는 것도 아닌데.”전창빈이 말을 이었다.“안 멀어. 여기 방은 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그래. 그리고 잠자리를 바꾸면 잠도 잘 안 오고.”전창빈은 장소를 옮기면 새로운 거주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침대를 가리는 사람이 잠자리를 바꾸면 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한다.전창빈의 개인 별장이 그리 멀지 않고 잠자리를 가리는 전창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태윤도 더는 전창빈을 만류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천천히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가 문자를 보내라고 당부했다.“그럼 얼른 쉬어.”전태윤은 배웅하러 일어나지 않았다.전창빈이 멀리 떠난 뒤 전태윤은 물을 반 잔 더 마시고는 다시 몸의 냄새를 맡았지만, 여전히 술 냄새가 났다.그는 하예정에게 영향을 줄까 봐, 그녀가 깨어날까 봐 서재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그는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 입구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을 밀어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잠시 안을 바라만 보다가 몸을 돌려 서재로 들어갔다.하예정은 한밤중까지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 했다.자기 전에 우유 한 잔을 마시면 한밤중에 일어나곤 한다.화장실에 다녀온 하예정은 잠에서 깼다.그녀는 그제야 전태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침대 앞으로 돌아와 앉아 침대 머리맡에서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세 시가 넘었다.전태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인가!‘돌아오지 않은 건가? 언제 돌아오는지 문자도 없고.’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후에야 전태윤이 전화를 받았다.“여보, 아직 안 왔어요? 많이 바빠요?”하예정은 관심 있게 물었다.그는 예전에 아무리 바빠도 새벽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왔다.그러나 지금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사업에 관한 일이
장소민이 먼저 집으로 오고 그 뒤로 전현림이 또 왔다.그리고 자기가 사고 쳤다고 생각한 전창빈이 또 따라왔다.전태윤은 묻지 않아도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전창빈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으셨어. 엄마는 내가 이미 사업을 하고 있고 잘 경영하고 있는 데다 올해부터 가족 사업을 돕고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요리를 좋아하면 집에서 하거나 호텔에서 해도 되는데 굳이 가정 요리사로 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거든. 근데 아버지는 날 지지해 주셨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고 하셨지. 그러다가 두 분이 서로 말싸움하다가 엄마가 이기지 못해서 홧김에 방에 돌아가셔서 문을 닫으셨거든. 아빠가 몇 번이고 오랫동안 문을 두드렸는데도 들어가지 못해서 엄마가 화가 좀 풀리면 다시 들어가려고 했어. 근데 엄마는 아빠가 떠난 틈을 타서 조용히 집에서 나와 형 집으로 오셨지 뭐야. 나랑 아빠는 엄마가 여전히 방에 계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엄마가 화가 풀리고 나서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엄마가 여기로 오신 것을 알게 됐어. 그래서 따라온 거고.”전창빈은 미안한 듯 계속해서 말했다.“부모님께서 항상 감정이 좋으셨는데 내 결정 때문에 불쾌하게 지내시니 내가 너무 불효자인 것 같아.”전창빈은 자신이 불효하다고 느꼈지만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하기로 한 결정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부부싸움도 안 하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 나와 네 형수님도 많이 다투었거든. 부부간에도 소통이 필요한 법이지. 한쪽이 막무가내로 나오지 않는 한 잘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풀릴 거야. 우리도 그런 억지를 부리고 소통할 수 없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상황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고.”전창빈은 전태윤이 그에게 말한 부부간의 관계에 관한 얘기들을 잘 듣고 있었다.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모두 금실이 좋으셨다. 전창빈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말들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사실 이미 부부 관계에 대한 일들에 대
잠시 후, 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할머니께서 나에게 임무를 맡기셨는데 나도 이제 움직이려고. 호영 형처럼 반년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아내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몰라.”전창빈은 그들이 동생으로 태어난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형들의 교훈을 잘 섭취하고 피할 수 있을 테니까.“할머니께서 골라주신 여인은 보통 성품이 좋은 사람이야. 너의 성격에 잘 맞게 골라주셨을 거야. 언제 출발하려고?”전태윤이 문득 물었다.“다음 주 월요일에 출발하려고. 이틀 동안 손에 있는 일을 먼저 정리하려고. 중요한 일들은 형에게 맡길게. 알아서 처리해 줘.”“그렇게 급해?”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전창빈은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선우씨 가문은 A시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야. 그 가문에 들어가서 일하면 급여와 대우가 나쁘지 않을걸. 그리고 선우민아 씨가 입맛이 까다롭다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가서 도전해 보고 싶어 하거든. 그곳에는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대. 가정 요리사가 선우씨 가문에서 석 달 동안 일하고 나오면 일자를 걱정할 필요 없고 반년 이상 버티고 나오면 큰 호텔들이 앞다투어 요구한다고 해. 몇 년 동안 일을 해도 해고되지 않는다면 아마 신으로 불릴지도 모르지.”전태윤은 실소했다!“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그분 입맛이 그렇게 까다롭대?”“선우민아 씨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아가씨들 입맛도 까다롭대. 전부 먹는 것에 매우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 요리 실력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누군가는 일반적인 야채 볶음 하나에도 통과되지 못한다고 해.”전태윤이 피식 웃었다.“도전해 볼 만하군.”전태윤은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고 추측했다.어쨌든 사진만 보았을 뿐 실물을 본 적도 없고 함께 지내본 적도 없다. 전창빈은 그렇게 쉽게 마음이 흔들릴 남자가 아니었다.하지만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가 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마침 전창빈은 요리를 가장 좋아했다. 그는 아마 십여 년 동안 키워온 요리 실력으로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가 될
묻지 않아도 전창빈이 조금 전에 여기에서 TV를 보며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전태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전창빈은 곧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왔다.그리고 전태윤의 앞에 따뜻한 물잔을 내려놓고 옆에 서서 전태윤의 분부를 기다리면서 언제든지 시중을 들어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전태윤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앉아.”“고마워.”전창빈은 얼른 자리에 앉았다.“이렇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사고 치지 않았다고? 말해봐,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부모님께서도 의견이 안 맞으시다니.”“형, 나 정말 사고를 치지 않았거든. 그냥 원림성의 A시에 가보고 싶어서 그래.”“가서 뭐 하려고? 설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멀리 가려고 해? 집에서 설을 쇠지 않으려고? 할머니께서 아시면 네가 가장 먼저 얻어맞을걸.”설쯤에 전씨 할머니는 자손들이 모두 돌아와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있는 것을 좋아하셨다.손자며느리가 몇 명 더 있으면 더 좋을 것이지만.이제 고현도 전호영을 따라 돌아올 것이다. 약혼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곧 약혼식도 치를 것으로 보인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그녀의 여자 신분을 폭로해 그가 게이가 아니라는 오해를 풀어주었다.“나 가정 요리사에 지원하고 싶어. A시의 선우씨 가문에서 요리사를 채용하고 있는데 그 가문 아가씨의 입맛이 엄청 까다로워서 요구가 엄청 높대. 나도 도전해 보려고. 좋은 기회야.”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곧 물어보았다.“할머니께서 선우씨 가문의 딸을 정해주셨어?”원림성의 A시는 너무 멀다.아마 H시와 이웃 도시일 것이다.용정도 그곳 사람이었다.설마 전씨 할머니께서 그 진흙탕에 뛰어드실 계획인 건가...전태윤은 그의 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의 사이가 가깝고 여운초의 눈도 예씨 가문의 정겨울이 치료해주고 있는 데다 또 성소현은 앞으로 예씨 가문의 다섯째 사모님으로 될 여자였다. 게다가 성소현은 하예정과 사촌 사이로 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되었다.앞으로 예
전태윤은 저녁 12시에야 집에 도착했다.그는 술도 좀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았다.전태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창빈은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곧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전태윤의 차가 별장 입구에 도착하여 멈추었다.경호원이 차에서 내려 전창빈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안부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곧 전태윤의 차 문을 열어주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안 취했어.”전태윤이 나지막이 말했다.“형.”전창빈이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전태윤을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전태윤은 거절했다.“창빈아, 어쩐 일이야?”친동생을 본 전태윤은 매우 놀랐다.“술 한 잔만 마셨어. 취하지 않았으니까 부축해주지 않아도 돼.”“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전창빈은 여전히 전태윤을 부축해주었다. 전태윤의 술 냄새를 맡은 전창빈이 말을 건넸다.“독한 술을 마셔서 술 냄새가 많이 나네.”“이야기가 잘 풀려서 좀 마셨어.”전태윤은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옷 냄새를 맡아보며 전창빈에게 물었다.“술 냄새가 많이 나? 네 형수님이 술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전태윤은 오늘 밤 서재에서 자야 할지도 모른다.하예정은 그가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때때로 그는 담배 한 대 피워도 껌을 씹어 담배 냄새를 제거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의 아내가 냄새를 맡을까 봐 걱정했다.특히 하예정은 지금 그들의 사랑의 결실을 배속에 품고 있었다.그런 하예정에게 담배 냄새를 맡게 하면 더욱 안 된다.집에는 담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그의 친구들도 그가 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전창빈은 말을 잇기 모호했다.그가 하예정도 아닌데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 잘 몰랐다.전태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냄새가 나는데? 늦었는데 오늘 예정이를 방해하지 말고 서재에서 하룻밤 자야겠어.”전태윤은 문득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전창빈에게 물었다.“아까 우리 부모님 차를 본 것 같은데?”전태윤은 자신이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