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는 웃으며 말했다.“나도 잘 몰라, 누나, 그냥 나한테 맡겨. 내가 내일 멀쩡한 오토바이 타게 해줄 테니까.”절친의 사촌 동생이기도 하고 알게 된 지 꽤 된 사이라서, 예정은 김진우를 믿었다.“그래, 그럼, 부탁 좀 할게.”김진우는 자기가 예정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뻐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누구한테 전화하는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다.그리고 둘은 오토바이를 견인해 갈 때까지 기다렸다. “도련님!”기사는 눈썰미가 좋아 신호등 건너에 있는 여자를 보았다. 보기에는 사모님인 듯 했다.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는 틈을 타 고개를 돌려 눈 감고 쉬고 있는 도련님을 향해 말했다.“도련님 저기, 저분 사모님 아닌가요?”태윤은 기사의 말을 듣자마자 눈을 뜨고 앞쪽을 보았다. 길가에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좀 멀어서 그런지 남자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여자는 진짜 예정을 닮은 듯했다.아무래도 한집에서 살다 보니 태윤도 점점 그녀의 모습이 익숙해진듯 싶다.“지나갈 때 조금 천천히 가요. 와이프가 맞는지 확인 좀 하게요.”태윤은 핸드폰을 꺼내 예정에게 전화하려고 했다가, 다시 핸드폰을 넣어두었다.신호등은 빨간색에서 녹색으로 변했다.기사는 천천히 그곳을 지나갔다. 태윤이 자기 아내 예정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태윤의 차가 그곳을 지나가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김진우잖아! 나쁜 새끼.’‘잠깐, 예정이 김진우랑 같이 있다고? 심지어 공교롭게 딱 거리에서 마주쳤다고?’태윤의 마음속은 의문 덩어리로 가득 찼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예정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다.태윤의 차는 점점 멀어졌다.김진우는 멀리 지나가는 외제 차들을 보고 예정에게 말했다.“아까 지나간 차들 있잖아. 그중 한대가 전씨 가문 손자가 평소에 타고 다니는 전용차야.”차들이 지나가고 나자 김진우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어느 전씨?”“그 재벌가 손자 있잖아. 사람들이 부잣집 도령이라고 부르는. 전 씨
“그 사람이 일반적이라고 해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랑은 만나주지도 않을 거야.”예정은 기껏해야 그날 저녁 그 부잣집 도련님 얘기를 몇 마디 했을 뿐이다. 그 후에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예정이 한 말처럼 그 부잣집 도련님이 아무리 평범해도 그녀같이 평범한 사람을 만날 리 없다.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이다. 아무리 잘나가도 거기서 거기다. 게다가 아는 사람 중 진짜 돈이 많은 사람은 절친 심효진 말고는 김진우뿐이고.김진우도 사실 어떻게 보면 부잣집 도령에 속한다.부잣집 도령은 그녀와 같은 세계에 있지 않다. 이번 생에는 어떤 관계로도 엮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진우는 웃으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한 번도 예정을 얕본 적 없다. 그러나 다른 부잣집 도령들까지 그녀를 얕보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상류사회라는 집단이 대부분 집안 배경과 신분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걸 알고 있다..큰 행사에 참석하면 이 김씨 도령조차도 꽤 주동적으로 대표들과 교류하는데, 사실 그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차 왔다!”김진우가 부른 차는 길가에 섰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은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고 김진우를 도련님이라고 불렀다.예정은 그제야 김진우가 자기 기사를 불렀다는 것을 알았다.왕 기사님이 누구에게 트럭을 빌렸는지는 모르지만, 그와 김진우는 힘을 합쳐 예정의 움직이지 않는 오토바이를 트럭에 실었다. 트럭 위에서 김진우는 예정에게 말했다.“누나,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수리점이 문을 닫았으니까, 왕 기사님이 내일 수리점에 맡기고, 다 고쳐지면 가게로 가져다줄 거야.”“응, 고마워.”예정은 진심으로 김진우에게 고마웠다. 만약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예정은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오토바이를 끌고 해가 뜰 때까지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김진우는 싱글 벙글거리고 있었다.“우리 사이에 고맙긴 무슨.”“누나, 얼른 차에 타. 지금 집으로 데려다줄게. 아직도 예진 누나 집에 살아?”“아니, 나 발렌시
‘깨워야 하나? 할머니가 태윤 씨가 잘 때 전화하면 엄청나게 화낸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시간을 보니 이미 자정이 넘었다.‘태윤 씨가 평소의 집에 오면 보통 이 시간이었으니, 아마 아직 안 자지 않을까?’예정은 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이 안 자고 있다면 일부러 문을 잠갔다는 건데, 왜 이렇게 한 것인지 예정은 알 리가 없었다.아무튼 예정이 김진우와 함께 있었고, 둘이 또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바로 이 때문에 태윤은 꽤 불쾌한 것이 틀림없다.‘꽃뱀한테 걸린 게 분명해. 막상 시집와서 보니 나한테서 가져갈 것이 없다고 생각되니까, 급하게 다른 남자를 찾는 거 아냐?’할머니가 그 꽃뱀한테 속은 게 분명하다.따지고 보면, 할머니도 예정을 안지 석 달밖에 안됐는데, 알면 얼마나 잘 알겠는가.하필이면 할머니가 예정에게 은혜를 입어, 감사한 마음에 그녀를 믿고 태윤을 장가보낸 것인데….핸드폰이 계속 울렸으나 태윤은 예정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자 예정은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몇분 지나지 않아 또 전화를 걸어왔다.세 번째 전화하자 그제야 전화를 받았다.“태윤 씨, 자요?”“무슨 일인데?”태윤은 차갑게 되물었다.“당신이 문을 잠궈서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태윤은 잠시 침묵한 후, 여전히 차갑고 가시 박힌 말투로 말했다.“나는 당신이 오늘 밤 7성급 호텔에 간 줄 알았네.”예정은 가시 박힌 듯한 말을 듣고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다. 그녀가 왜 그런 고급 호텔에 가서 잔단 말인가. ‘나한테 갑자기 왜 날을 세우는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예정은 성격이 좋아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지 따지지 않았다.태윤은 말이 없었다.몇초간의 적막이 흐르고 예정은 말했다.“태윤 씨, 나보고 호텔가서 자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아무튼 난 항상 당신이 준 카드를 가지고 다니니까. 그럼, 관성 호텔가서 자죠, 뭐.”태윤은 말이 없었다.“기다려봐!”차갑게 한마디 던지고는 전화를 끊었다.몇분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문이 열
“우리 이미 계약서 썼잖아. 반년만 버티면 이혼할 수 있어. 이혼하고 나서 다른 남자 만나면 되는데, 꼭 지금 그래야겠어? 우리 아직 법적으로 부부잖아. 지금 그렇게 하는 건 날 바람 맞히는 꼴인 거 알지?”“솔직히 내가 널 좋아하지도 않고, 널 사랑하게 될 일은 더더욱 없지만, 남자라면, 정상적인 남자라면, 바람맞는 걸 절대 좋아할 리가 없잖아?”다시 말해 태윤은 예정이 진우와 함께 있는 게 싫었다.그는 마치 약이라도 먹은 듯이 말을 했다.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예정이 이렇게 빠르게 다른 남자를 만나 그를 바람 맞혔기 때문이다.김진우는 예정을 짝사랑하고 있다.바로 태윤의 라이벌이라는 뜻이다!이것은 사랑과는 상관없는 일이고, 체면이 걸린 문제다. 한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말이다.예정은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으나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결국 그녀는 열쇠와 핸드폰이 든 손가방을 손에 쥐고 태윤의 가슴을 향해 힘껏 밀며 내리쳤다. 그녀는 킥복싱을 배운 적이 있어서 그런지 내리치는 자세도, 힘도 모두 수준급이었다.태윤은 예정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전혀 눈치채지 못 한 체 그녀의 손가방으로 맞고 말았다.가방 안에 열쇠와 핸드폰이 있어서 가방이 꽤 무거웠다. 가방은 하필이면 태윤의 입에 맞았다.태윤은 매우 아파하며 시퍼레진 얼굴로 예정을 노려봤다.지금까지 단 한 명도 감히 태윤을 이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다.예정은 걸어서 다가와 허리를 굽혀 손가방을 주웠다. 말투도 거침없었다.“태윤씨, 그거 알아요? 허튼소리 지껄이기 좋아하는 입은 좀 맞아야 해요!”“이유도 안 묻고, 달린 입이라고 그렇게 맘대로 생각해도 되는 거예요? 태윤씨, 평소에도 이렇게 막무가내에요?태윤은 아픈 입술을 만지며,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노려봤다.“노려보긴 뭘 노려봐요? 누가 눈 큰지 내기하자는거에요? 나도 당신한테는 안 질 걸요?”예정은 퉁명스럽게 손가방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또… 또 때리……?”‘이 여자 용기가 어디서 났길래 감히
태윤의 표정이 굳어졌고, 귀도 빨개졌다. 왜냐하면 그가 예정을 완전히 오해했기 때문이다. 결코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태윤이 감히 부끄러움을?“이건 남자의 자존심 문제야!”“흥!”이 순간 태윤의 얼굴이 붉어졌다.“생각을 좀 해봐. 나는 널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는 건 더더욱 아닌데 질투는 무슨! 당신이 불륜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이 누구랑 있던 무슨 상관이야?”“날 안 좋아한다고, 안 사랑한다고 계속 반복해서 강조할 필요 없어요. 나는 뭐 당신 좋아하는 줄 알아요? 마치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처럼 말하네요. 우리가 혼인신고는 했지만, 기껏해야 한솥밥 먹는 것뿐이에요. 솔직히 말하는 건데요, 언니가 나 때문에 형부랑 싸우는 게 싫어서 급하게 언니 집을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제야 당신 할머니가 당신이랑 결혼하라고 하신 것에 응한 거고요. 그럼, 일단 묵을 곳은 생기잖아요.”“의도가 있다면 바로 내가 당신이 집이 있다는 걸 노린 거예요. 내가 돈 안 내고 살 수 있으니까요. 방값도 아끼고 언니도 마음 놓고.”태윤은 할 말이 없었다.태윤의 집이 태윤 자신보다 더 매력이 있다니. “그녀를 좋아하지 않아. 태윤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뭔가 라임이 맞는 것 같다.그러나 “예정은 그를 좋아하지 않아. 예정은 그를 사랑하지 않아.” 이 말은 굉장히 귀에 거슬렸다.“나도 불륜 같은 짓은 안 해요. 당신이 아까 한 말처럼, 반년 뒤에 우리 이혼 후 당신이 진짜로 나한테 차랑 집을 준다면, 그때까지 참았다가 나는 당신이 나에게 준 집에 아예 들어앉고 당신이 나한테 준 차도 운전해보고. 당당하게 다른 남자도 좀 만나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뭐하러 지금 내가 당신한테 억울하게 바람피웠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런짓을 하겠어요?”태윤은 역시나 아무 말이 없었다.한참 지나자, 태윤은 자세를 낮추어 예정에게 사과했다.“미안해, 내가 오해했어.”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하나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저 사과만 할 뿐이었다.“다음부
그 후 밤새도록 서로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다음날 이른 아침, 예정은 일어난 후 베란다에 가서 화분에 물을 주며 꽃들을 감상했다.매일 아침 일어나 이 작은 화원을 보면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것 같았다. 태윤에 대한 불만도 사라지는 듯했다.왜냐하면 이 화원을 완성시킨 것이 태윤이 사 온 꽃들 덕분이기 때문이다.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후 주방으로 가 둘을 위한 아침을 준비했다.태윤도 일어났다. 그는 주방 앞으로 걸어가 예정의 분주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꾹 다물었던 입술을 움직였다.“좋은 아침.”예정은 고개를 돌려 태윤을 쳐다봤다.“네, 좋은 아침이에요.”“뭐 도와줄 거 있어?”“없어요. 그렇게 심심하면, 옷이나 좀 널어주고 청소기나 한번 돌려요.”태윤은 순간 멍해졌다.‘이제 막 나가자는 거야?’그러나 입으로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어. 알았어.”그는 몸을 돌려 거실로 걸어가 옷도 널고 청소기로 거실도 밀었다.이렇게 큰 집에 부부만 살고 있다. 게다가 둘 다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와서 사실 집은 아주 깨끗했다. 그래서 태윤은 청소기로 구석을 위주로 밀었다.예정이 아침밥을 다 만들었으나, 태윤은 아직도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왜 이렇게 느려요?”예정은 중얼거리며 태윤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있던 청소기를 뺏었다.“…….”그녀의 움직임은 아주 빨랐다. 몇 분 만에 청소가 끝났다.태윤은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정의 얼굴을 몇 번이나 흠칫흠칫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오해받은 그녀는 화가 나서 태윤을 때리기까지 했다.다행인 건 오늘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아침 밤을 차려주었고, 안색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 이 여자, 진짜 쉽지 않네!’태윤은 예정의 성격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얼굴 보고 해결하고, 뒤끝이 없다. 바로 해결할 수 없다면,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그녀를 억울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녀의 성격이 꽤 괜찮은 사람이
태윤은 예정의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김진우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전태윤과 비교가 되냔 말이다!전태윤이 김진우보다 훨씬 잘생겼다.예정 주소록에 태윤은 어떻게 저장되어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태윤은 순간 아주 궁금해졌다.예정이 진우의 전화를 받았다.“예정 누나, 좋은 아침이야.”“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누나, 아침 먹었어? 내가 가게에 데려다줄게. 가게 가는 길에 아침도 먹고 가자. 누나가 사주면 더 좋고!”진우는 조금 기대하는 듯했다.그는 어젯밤 예정에게 큰 도움을 줬다. 그러니 오늘 예정을 데려다줄 핑곗거리를 찾은 셈이다. 아침도 같이 먹을 수 있고!“아냐, 괜찮아. 방금 아침을 만들어 먹었어. 이따가 남편이 가게에 데려다주기로 했고. 그러니 굳이 먼 길 올 필요 없어.”예정은 진우가 자신을 짝사랑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녀는 단순하게 김진우 집이 발렌시아 아파트와 꽤 멀고, 아침 출근길에 차도 막히니까 진우에게 먼 길을 오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차가 막혀 길 위에 서 있게 될 테니까.김진우의 기대는 “남편이 데려다주기로 했어.”라는 말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다.그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듯 했다.김진우는 예정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예정 누나는 계속 남자친구 하나 없었는데, 갑자기 초고속으로 결혼하다니. 결혼 상대도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라던데……. 날 기다리지도 않고…….’진우가 어리긴 해도 그녀의 초고속 결혼의 상대가 되고 싶었다. 안타까운 것은 예정은 아직 진우를 남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친한 동생으로 대할 뿐이다.알고 지낸지 몇 년 된 진우가 사랑을 알기 시작할 때부터, 예정을 결혼 상대로 생각했다.안타깝게도 모두 무산되었지만….“잘됐네, 그럼. 누나 오토바이 다 고쳐지면 가게로 가져다주라고 할게.”진우는 마음속으로는 씁쓸했지만, 예정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평정심을 유지했다.“응, 고마워.”“고맙긴 무슨, 그럼 얼른 아침 먹어, 더 방해 안 할게.”진우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가 간암으로 입원했어, 그런데 다행히 초기야.""의사 선생님이 관성의 큰 병원에서 입원하고 치료받는 게 좋다고 권했어. 너희 자매들 거기에서 자리 잡았으니 상황 잘 알 거 아니야. 병원 예약하고 미리 준비해. 우리 지금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곧 출발할 거야." 하지명은 전화에서 말했다."그럼 할머니가 도착하면 바로 입원하고 치료받을 수 있잖아. 그리고 예약금을 선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까먹지 말고. 너희 엄마 아빠가 안 계시다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챙기는데 너희 몫도 있어. 그리고 너희 둘은 여태껏 돈 한 푼 준 적 없잖아. 그러니 이번에 할머니가 병원비는 너희 자매가 책임져, 그동안 안 준 부양비라 생각하고."하지명의 말을 듣고 하예정의 얼굴은 새파래졌다.두 자매의 부모님은 그가 열 살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모님이 목숨으로 바꾼 배상금은 총 2억 원이었는데 친 부모님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그 돈을 나눠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두 자매의 나이는 어렸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훨씬 많은 배상금을 가져갔다.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눠간 1억 원은 큰아버지와 삼촌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것도 하예정은 잘 알고 있다. 삼촌 한 분, 큰아버지 두 분 그리고 고모 두 분이 그 돈을 나누어 가져갔다. 큰아버지와 삼촌들은 인당 2,500만 원, 고모들은 인당 300만 원씩 가져갔고 나머지 돈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노후 자금이었다.열 살인 하예정은 어렸었지만,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더 많은 배상금을 가지기 위해 마을 간부와 어머니의 친정집 사람들 앞에서 나중에 늙어서 두 자매들이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와 삼촌들 그리고 두 자매까지 모두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었다. 이 일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계약서는 총 세 몫으로 나누었고 두 자매에게 한몫,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한몫, 그리고 마지막 한몫은 마을 회관에 보관하였다.그 당시 그렇게 많은 사람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
“다 좋대. 오늘 오전에 병원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아기가 잘 자라고 있대. 초음파를 찍을 때 옆에 서서 봤는데 아기가 움직이더라니까. 그런데 효진이는 느끼지 못한대.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적으로 16주 때부터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해.”소지훈은 마음속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간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목 안으로 삼켰다. 그러나 그도 처음 아빠로 되는 소정남을 이해해 주었다.만약 소지훈도 정윤하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그도 소정남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하지만 그건 아직 머나먼 일이다. 그는 아직 고백도 안 했다.언제쯤이면 결혼하여 애 아빠로 될 수 있을지!마흔이 되기 전에 아빠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어떤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 40대 초반부터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소지훈의 소원은 단지 40대 전에 아빠로 되는 것뿐이다.소지훈은 자신이 바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형, 무슨 일 있어?”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 관계로 사이가 좋지만, 평소 별일 없을 때면 서로 연락이 뜸했다.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소지훈이 먼저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관성에서 멀리 떨어진 소정남은 곧바로 차의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조수석에 앉아있던 심효진이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대?”소정남은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몰랐기에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형, 우물쭈물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이렇게 뜸 들이니 내가 너무 무섭잖아.”소지훈은 소씨 가문의 장남으로서 관성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그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소지훈을 본 소정남은 무척 놀랐다.“정남야. 나... 좀 부끄러운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어.”“뭐가 부끄러울 게 있다고. 형제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어. 설마 윤하 씨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