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명의 말을 들은 하예진은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녀는 식욕이 차 넘치고 종일 먹기만 할 뿐 운동할 생각이 없어서 점점 더 뚱뚱해졌다.“알겠습니다, 대표님. 수습 기간에 반드시 살을 빼겠습니다.”앞으론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달리기하기로 다짐했다.‘난 꼭 할 수 있어. 다이어트 성공하고 말 거야.’“그래, 수습 기간을 한 달로 줄일 테니까 앞으로 잘해.”노동명은 간결한 이 한마디만 남긴 채 하예진을 남겨두고 그의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건장한 체구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말끔히 사라졌다.그가 떠난 후에야 하예진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는데 상사가 한창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하예진은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재무팀으로 향했다.그녀는 전에 재무총괄직을 맡았었고 지금은 또 노동명과 친분이 있는 것 같아 재무총괄 담당자가 늘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비록 아직은 재무팀의 신입사원이지만 조만간 본인 자리까지 꿰차고 올라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하여 암암리에서 하예정에게 수많은 함정을 파놓아 그녀가 업무상 실수를 저지르게 하려고 애를 썼다. 수습 기간도 채우지 못한 채 실격을 당하여 떨어져 나앉게 할 작정이었다.만약 예전의 하예진이라면 동료들에게 이런 괴롭힘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했을 때 진작 때려치웠을 것이다.다만 지금은 꾹 참아야 한다. 적어도 이혼하고 우빈의 양육권을 가져올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그녀가 나간 후 재무팀의 다른 직원들이 총괄 담당자 곁으로 다가가 수군거렸다.“제 주제도 모르고 감히 대표님께 끼를 부려요? 게다가 노 대표님도 왜 예진 씨한테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 거예요?”하예진은 노동명과 대화할 때 그를 정면으로 보고 있어 다들 그녀가 대표님께 야릇한 눈빛으로 끼를 부렸을 거라고 떠들어댔다.“예진 씨는 결혼도 했고 두 살짜리 아들도 있어.”재무총괄 담당자가 담담하게 말했다.“대표님은 예진 씨를 좋아할 리 없어.”“물론이죠. 꼴 좀 보세요. 대표님이
...서교 펜션으로 가는 길에서 하예정은 심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효진아, 나 오늘 할머니 모시고 바람 쐬러 가. 가게 하루만 너한테 맡길게.”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알았어. 할머니 즐겁게 해드려. 가게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어차피 내일이 주말이라 가게도 문을 열지 않는다. 굳이 연다면 하예정이 가게 안에서 출고를 다그칠 것이다.통화를 마친 후 심효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예정이 결혼생활이 점점 더 다채로워지네.”“누나.”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환하던 심효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는 김진우를 바라보며 하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진우야, 누나가 저번에 한 말 귓등으로 흘려들었어? 가게로 찾아오지 말랬잖아. 너랑 예정이는 불가능하다고!”며칠 안 본 사이에 김진우는 훌쩍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다크서클도 심하고 수염까지 삐죽삐죽 자라났다. 22살 젊은 남자의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런 사촌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효진도 매우 속상했다.사랑의 상처는 이토록 혹독한 법이었다.김진우는 수년간 하예정을 짝사랑해왔기에 당장 포기하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누나.”김진우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을 꺼냈다.“나 며칠 동안 가게에 찾아오지 않으려고 애써 참아봤는데 견디기가 너무 어려워. 마음을 가라앉히면 예정 누나가 저절로 생각나. 나 예정 누나 너무 사랑하나 봐. 이젠 어떡해? 누나 나 좀 도와줘!”김진우는 심효진의 양쪽 어깨를 꽉 잡고 애원 섞인 말투로 말했다.“나 누나 동생이잖아. 누나 말곤 날 도와줄 사람이 없어.”심효진은 자신의 어깨를 꽉 잡은 김진우의 손을 내려놓으며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김진우, 누나가 몇 번을 얘기해? 예정이는 이미 결혼했어. 유부녀를 아무리 사랑해봤자 이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아. 그러니까 네가 마음 접어. 예정이는 너랑 안 어울려. 널 사랑할 리도 없고.”이어서 그녀는 또 사악한 눈빛으로 김진우에게 경고장을 날렸다.“너 감히 뻔뻔스럽게
김씨 일가는 심효진 고모의 시댁이다. 심효진은 어릴 때부터 고모가 그 집안에서 겪은 모진 고통을 직접 목격해왔다. 심씨 일가는 집 철거로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아 벼락부자가 되었다. 가게도 꽤 많이 세를 주어 자산이 무려 200억에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모는 재벌가에 시집가기가 너무 어려웠다.그러니 하예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심효진은 친구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현실을 얘기했을 뿐이다.“예정 누나는?”“남편이랑 데이트하러 갔어.”김진우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곧이어 그는 방안 곳곳을 수색하며 하예정의 종적을 찾아 헤맸다. 심효진은 그가 실컷 찾도록 내버려 두었다.하예정을 찾지 못한 김진우는 그제야 사촌 누나의 말을 믿었다. 예정 누나는 진짜 가게에 없었다.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여 가게를 떠났다.심효진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동생이 하루빨리 단념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사랑 때문에 바보처럼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말길 바랐다.두 사람 사이에 낀 심효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깊은 감정의 늪에 빠진 동생도 안쓰러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친구를 지켜줘야 했다. 김진우가 하예정의 결혼생활에 끼어드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다.서교 펜션.전태윤과 할머니는 전씨 일가의 어르신과 도련님의 신분으로 찾아온 게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로 향했다.이 펜션은 대외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라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전태윤은 입장권을 끊어 하예정에게 건네더니 그녀의 품에서 주우빈을 안아왔다.“우빈이 내가 안을게.”하예정이 힘들면 안 되니까.“우빈이 유모차 가져와서 안에 앉혀야겠어요. 유모차 밀면 훨씬 간편할 것 같아요.”전태윤은 곧바로 차 키를 숙희 아주머니께 건넸다. 아주머니는 차에서 주우빈의 유모차를 내렸다.검표를 마친 후 그들 일행은 펜션으로 들어갔다.펜션에 들어서자마자 하예정은 이곳의 수려한 풍경에 확 사로잡혔다. 그녀는 안으로 걸어가면서 물었다.“여긴 원림 식인가요?”“맞아. 원림
하예정은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본능적으로 전태윤을 끌고 갔다.이건 절호의 기회였다.전태윤도 곧장 그녀의 손을 잡았다.두 사람은 서서히 걸어가며 깍지를 꼈다.와이프와 손잡고 걸으니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전태윤은 연애 경험도 없고 또 하필 츤데레 같은 남자라 와이프와 손을 잡으니 그 무엇보다 기분이 달콤했다.하예정은 서로 맞잡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느덧 전태윤이 그녀의 손을 더 꽉 잡고 있었다.고개 들어 전태윤을 바라보니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구시렁댔다.‘이젠 대놓고 스킨십하네.’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동그라미를 몇 번 그렸다. 전태윤이 힐긋 쳐다볼 때 그녀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앞만 보며 걸어갔다.대놓고 스킨십하는 건 하예정도 만만치 않았다.전태윤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는 하예정의 이런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쑥스러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그녀가 너무 좋았다.“처형의 일이 다 해결되거든 나중에 이리로 와서 며칠 묵자.”그는 먼 곳의 나무집 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런 집에 살면 참 괜찮을 것 같아.”“약속 지켜요.”“내가 언제 약속 어긴 적 있어?”하예정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날 속여도 당신이 인정하지 않으면 나도 딱히 어쩔 수 없잖아요.”전태윤은 문득 할 말을 잃었다.그는 정말 하예정을 감쪽같이 속였으니까.갑자기 침묵한 전태윤을 바라보며 하예정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설마 진짜 날 속인 건 아니죠?”전태윤은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때마침 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리며 그를 한 번 구해줬다. 전태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성소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예정 씨, 오늘 가게 안 나갔어요?”성소현이 서점으로 찾아갔지만 하예정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네, 오늘 하루 바람 쐬러 나왔어요.”성소현이 흥미진진하게 물었다.“어디로 갔는데요? 나도 마침 한가한데 주소 보내줘요. 바로 갈게요. 우리 함께 놀아요.”“서교 펜션에
하예정은 성소현이 대표님께 감정이 깊다는 걸 알고 있어 이 화제에 관하여 더 많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성소현만 마음 아파할까 봐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한참 얘기를 나눈 후 성소현은 지금 해야 할 일들에 관해 말을 꺼냈다.“큰 오빠는 내가 한가할 때마다 대표님을 떠올리며 힘들어할까 봐 일을 좀 맡겼어요. 나보고 최선을 다해 이모를 찾아보라고 했어요.”“소현 씨 이모요?”하예정은 성씨 집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전씨 일가에 버금가는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성씨 일가에서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바로 성소현이었다.“예정 씨, 실은 우리 엄마랑 예정 씨네 자매분 매우 닮았어요. 우리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무 친척도 우리 엄마랑 이모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어요. 결국 엄마랑 이모는 보육원에서 한동안 생활했어요. 우리 이모가 그땐 나이가 어려 철들지 않았고 또 귀엽게 생기다 보니 결혼 뒤 아이를 낳지 못한 부잣집에 입양됐어요.”“엄마는 계속 보육원에 남아 있었는데 늘 이모를 그리워하며 지냈어요. 나중에 커서 능력이 생기자 이모를 찾아 나섰지만 그 시절엔 사람 한 명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게시물을 올리고 이모를 찾았으면 훨씬 쉬웠을 텐데 말이죠.”“우리 엄마는 아직도 이모를 못 찾았어요. 얼마 전엔 그 당시 이모를 입양했던 부부를 찾게 되어 이모도 보게 될 줄 알고 다들 엄청 기뻐했는데 정작 엄마랑 함께 그 집으로 찾아가니 부부가 이모의 행방을 모르더라고요.”하예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모를 수 있죠? 그분들이 소현 씨 이모님을 입양했잖아요. 혹시 소현 씨 이모랑 엄마가 만나는 게 두려워 일부러 숨긴 건 아닐까요?”“아니요.”성소현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우리 이모를 입양한 지 1년 만에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그때부터 이모가 눈엣가시로 여겨져 모질게 학대했어요. 심지어 이모가 커서 그들이 낳은 자식과 재산을 뺏을까
“우리 엄마랑 이모가 헤어질 때 둘이서 사진 한 장 찍었는데 각자 한 장씩 챙겼대요. 이후에 사진으로 서로를 확인하려 했나 봐요. 다만 아쉽게도 이모를 처음 입양했던 부부가 그 사진을 불태워버렸어요. 엄마는 아직 사진을 잘 간직하고 있지만 수십 년이 지나다 보니 아무리 잘 보관해도 어렴풋해지기 마련이에요. 오빠도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었는데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에요. 이모가 낳은 자식들이 이모를 쏙 빼닮았고 또 우연히 엄마와 마주쳐야만 겨우 찾아낼 수 있어요.”그렇지 않으면 찾아낼 희망이 없다.다만 우연히 마주칠 기회도 거의 0에 가깝다.“하늘은 간절한 자를 도와줘요. 소현 씨네 가족분들 반드시 이모님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하예정은 성소현에게 힘내라는 말만 해줄 뿐 딱히 도움이 되지 못했다.성씨 일가는 재력, 권력, 인맥까지 전부 갖추고 있지만 수년을 찾아 헤매도 이모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하예정처럼 권력도, 세력도, 인맥도 없는 자가 대체 무슨 능력으로 찾아준단 말인가?“하루빨리 이모를 찾아서 엄마와 만나게 해드렸으면 좋겠어요. 예정 씨, 주변에 혹시 누군가 입양된 분이 계시거든 꼭 나한테 알려요. 일말의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하예정은 문득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다.그녀가 성소현에게 물었다.“소현 씨 이모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죠?”“54살이요. 우리 엄마랑 이모는 50년을 떨어져 살았어요.”하예정이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우리 엄마도 만약 살아계시면 54살일 텐데. 실은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께서 낳은 친자식이 아니거든요. 우연히 엄마를 발견해서 길러주셨어요. 엄마는 생전에 나랑 우리 언니만 낳으셨고요. 소현 씨도 우리 언니 봤었죠.”입양된 사람들이 많고 많아 하예정은 자신의 어머니가 성소현의 이모와 겹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성소현도 하예정 자매를 만났었는데 언니 하예진이 유난히 엄마를 많이 닮았다. 성소현은 그런 하예진을 마주하면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니 당연히
성소현이 감격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예정 씨가 정말 우리 이모를 찾아준다면 우리 가족의 은인이나 다름없어요. 저희가 무조건 보답해드릴게요.”“우린 친구니까 도울 만큼 도와야죠. 나도 엄마 생각나서 그래요. 우리 엄마가 살아계신다면 나랑 언니도 최선을 다해 엄마의 가족을 찾아드렸을 거예요.”엄마가 돌아가신 지 십수 년이 지나 하예정은 이젠 엄마의 얼굴도 희미해졌다. 다행히 하예진이 엄마를 매우 닮아 언니를 보면서 엄마의 모습을 겨우 되새긴다.“예정 씨 데이트 마저 해요. 내가 괜히 방해만 된 것 같네요. 즐겁게 놀다 와요. 결혼식에 나 꼭 불러요. 무조건 참석할 거예요.”성소현은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또 그 성소현 씨야?”전태윤이 무심코 물었다.“맞아요. 소현 씨도 원래 이리로 오려 했는데 내가 태윤 씨랑 함께 있다고 하니까 안 오겠다더라고요.”전태윤이 속으로 구시렁댔다.‘그런 눈치는 있네!’“소현 씨 참 괜찮은 분인데, 태윤 씨네 대표님...”전씨 그룹의 도련님이 결혼반지를 낀 걸 되새기며 하예정은 저도 몰래 한숨이 새어 나왔다.“두 분 참 인연이 안 닿는단 말이죠.”“두 사람 무슨 얘기 했어? 얼핏 들어보니 우리 장모님을 언급하는 것 같던데?”전태윤이 금세 화제를 돌렸다.그는 더이상 자신의 가십거리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하예정은 그와 손잡고 나란히 걸으며 대답했다.“소현 씨는 지금 최선을 다해 이모를 찾고 있대요.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종일 전씨 그룹 도련님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소현 씨 어머니가 보육원에서 자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여동생이 한 분 계셨는데 입양됐대요. 그런데 여러 번 입양되다 보니 이젠 소식이 끊겼대요.”“우리 엄마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입양해서 키우셨어요. 하지만 엄마를 찾는 가족은 없었죠. 어린 시절 기억도 별로 없고요. 그전에 입양했던 양부모가 엄마를 너무 학대해서 못 견디고 도망친 것만 기억이 난댔어요. 그때 엄마는 고
“물론이죠. 난 그 사람들과 소송을 걸어서라도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을 돌려받을 거예요!”“좋아, 그럴 자신 있다면 인제 그만 기분 펴. 오늘은 놀러 왔으니 즐겁게 놀다 가야지. 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하나씩 해결하면 돼. 꼭 다 해결될 거야.”그는 하예정을 품에 꼭 껴안으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있잖아.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지켜줄 테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마.”하예정은 얌전히 그에게 안겨 있다가 잠시 후에야 품에서 일어났다.그녀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사람이 너무 많아요.”전태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손을 잡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우린 부부야, 몰래 바람피우는 것도 아닌데 뭐가 두려워?”하예정은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이래서 언니가 항상 나보고 태윤 씨한테 잘해주라고 한 거였네요.”전태윤은 진작 행동으로 하예진에게 점수를 땄었다.초고속 결혼을 마친 후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하예정은 진작 알아챘다. 전태윤은 비록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아 단점을 커버할 정도였다. 게다가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조차도 온몸에 단점투성이인 것을.큰일 앞에서 전태윤은 인간쓰레기 주형인보다 몇백 배 더 훌륭했다.하예정은 또다시 전태윤 때문에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그녀는 조만간 전태윤의 계약서를 훔쳐 와 없애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도 마음껏 전태윤을 유혹할 수 있고, 그가 유혹에 넘어와 진정한 부부가 된다면 6개월 전의 계약도 까마득히 잊을 테니까.하예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늘 진지한 표정의 전태윤을 빤히 쳐다봤다.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본인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옷을 발가벗겼을 때 여전히 싸늘한 저 얼굴을 마주할 걸 상상하니 불타오르던 그녀의 몸도 확 식어버릴 것 같았으니까.“그럼 나한테 좀 잘해줘 봐.”“내가 얼마나 더 잘해줘야 하는데요?”전태윤이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그들 부부는 서로 베풀어주고 있었다. 하예정은 늘 받기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