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명의 말을 들은 하예진은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녀는 식욕이 차 넘치고 종일 먹기만 할 뿐 운동할 생각이 없어서 점점 더 뚱뚱해졌다.“알겠습니다, 대표님. 수습 기간에 반드시 살을 빼겠습니다.”앞으론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달리기하기로 다짐했다.‘난 꼭 할 수 있어. 다이어트 성공하고 말 거야.’“그래, 수습 기간을 한 달로 줄일 테니까 앞으로 잘해.”노동명은 간결한 이 한마디만 남긴 채 하예진을 남겨두고 그의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건장한 체구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말끔히 사라졌다.그가 떠난 후에야 하예진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는데 상사가 한창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하예진은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재무팀으로 향했다.그녀는 전에 재무총괄직을 맡았었고 지금은 또 노동명과 친분이 있는 것 같아 재무총괄 담당자가 늘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비록 아직은 재무팀의 신입사원이지만 조만간 본인 자리까지 꿰차고 올라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하여 암암리에서 하예정에게 수많은 함정을 파놓아 그녀가 업무상 실수를 저지르게 하려고 애를 썼다. 수습 기간도 채우지 못한 채 실격을 당하여 떨어져 나앉게 할 작정이었다.만약 예전의 하예진이라면 동료들에게 이런 괴롭힘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했을 때 진작 때려치웠을 것이다.다만 지금은 꾹 참아야 한다. 적어도 이혼하고 우빈의 양육권을 가져올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그녀가 나간 후 재무팀의 다른 직원들이 총괄 담당자 곁으로 다가가 수군거렸다.“제 주제도 모르고 감히 대표님께 끼를 부려요? 게다가 노 대표님도 왜 예진 씨한테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 거예요?”하예진은 노동명과 대화할 때 그를 정면으로 보고 있어 다들 그녀가 대표님께 야릇한 눈빛으로 끼를 부렸을 거라고 떠들어댔다.“예진 씨는 결혼도 했고 두 살짜리 아들도 있어.”재무총괄 담당자가 담담하게 말했다.“대표님은 예진 씨를 좋아할 리 없어.”“물론이죠. 꼴 좀 보세요. 대표님이
...서교 펜션으로 가는 길에서 하예정은 심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효진아, 나 오늘 할머니 모시고 바람 쐬러 가. 가게 하루만 너한테 맡길게.”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알았어. 할머니 즐겁게 해드려. 가게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어차피 내일이 주말이라 가게도 문을 열지 않는다. 굳이 연다면 하예정이 가게 안에서 출고를 다그칠 것이다.통화를 마친 후 심효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예정이 결혼생활이 점점 더 다채로워지네.”“누나.”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환하던 심효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는 김진우를 바라보며 하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진우야, 누나가 저번에 한 말 귓등으로 흘려들었어? 가게로 찾아오지 말랬잖아. 너랑 예정이는 불가능하다고!”며칠 안 본 사이에 김진우는 훌쩍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다크서클도 심하고 수염까지 삐죽삐죽 자라났다. 22살 젊은 남자의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런 사촌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효진도 매우 속상했다.사랑의 상처는 이토록 혹독한 법이었다.김진우는 수년간 하예정을 짝사랑해왔기에 당장 포기하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누나.”김진우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을 꺼냈다.“나 며칠 동안 가게에 찾아오지 않으려고 애써 참아봤는데 견디기가 너무 어려워. 마음을 가라앉히면 예정 누나가 저절로 생각나. 나 예정 누나 너무 사랑하나 봐. 이젠 어떡해? 누나 나 좀 도와줘!”김진우는 심효진의 양쪽 어깨를 꽉 잡고 애원 섞인 말투로 말했다.“나 누나 동생이잖아. 누나 말곤 날 도와줄 사람이 없어.”심효진은 자신의 어깨를 꽉 잡은 김진우의 손을 내려놓으며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김진우, 누나가 몇 번을 얘기해? 예정이는 이미 결혼했어. 유부녀를 아무리 사랑해봤자 이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아. 그러니까 네가 마음 접어. 예정이는 너랑 안 어울려. 널 사랑할 리도 없고.”이어서 그녀는 또 사악한 눈빛으로 김진우에게 경고장을 날렸다.“너 감히 뻔뻔스럽게
김씨 일가는 심효진 고모의 시댁이다. 심효진은 어릴 때부터 고모가 그 집안에서 겪은 모진 고통을 직접 목격해왔다. 심씨 일가는 집 철거로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아 벼락부자가 되었다. 가게도 꽤 많이 세를 주어 자산이 무려 200억에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모는 재벌가에 시집가기가 너무 어려웠다.그러니 하예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심효진은 친구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현실을 얘기했을 뿐이다.“예정 누나는?”“남편이랑 데이트하러 갔어.”김진우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곧이어 그는 방안 곳곳을 수색하며 하예정의 종적을 찾아 헤맸다. 심효진은 그가 실컷 찾도록 내버려 두었다.하예정을 찾지 못한 김진우는 그제야 사촌 누나의 말을 믿었다. 예정 누나는 진짜 가게에 없었다.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여 가게를 떠났다.심효진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동생이 하루빨리 단념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사랑 때문에 바보처럼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말길 바랐다.두 사람 사이에 낀 심효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깊은 감정의 늪에 빠진 동생도 안쓰러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친구를 지켜줘야 했다. 김진우가 하예정의 결혼생활에 끼어드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다.서교 펜션.전태윤과 할머니는 전씨 일가의 어르신과 도련님의 신분으로 찾아온 게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로 향했다.이 펜션은 대외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라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전태윤은 입장권을 끊어 하예정에게 건네더니 그녀의 품에서 주우빈을 안아왔다.“우빈이 내가 안을게.”하예정이 힘들면 안 되니까.“우빈이 유모차 가져와서 안에 앉혀야겠어요. 유모차 밀면 훨씬 간편할 것 같아요.”전태윤은 곧바로 차 키를 숙희 아주머니께 건넸다. 아주머니는 차에서 주우빈의 유모차를 내렸다.검표를 마친 후 그들 일행은 펜션으로 들어갔다.펜션에 들어서자마자 하예정은 이곳의 수려한 풍경에 확 사로잡혔다. 그녀는 안으로 걸어가면서 물었다.“여긴 원림 식인가요?”“맞아. 원림
하예정은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본능적으로 전태윤을 끌고 갔다.이건 절호의 기회였다.전태윤도 곧장 그녀의 손을 잡았다.두 사람은 서서히 걸어가며 깍지를 꼈다.와이프와 손잡고 걸으니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전태윤은 연애 경험도 없고 또 하필 츤데레 같은 남자라 와이프와 손을 잡으니 그 무엇보다 기분이 달콤했다.하예정은 서로 맞잡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느덧 전태윤이 그녀의 손을 더 꽉 잡고 있었다.고개 들어 전태윤을 바라보니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구시렁댔다.‘이젠 대놓고 스킨십하네.’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동그라미를 몇 번 그렸다. 전태윤이 힐긋 쳐다볼 때 그녀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앞만 보며 걸어갔다.대놓고 스킨십하는 건 하예정도 만만치 않았다.전태윤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는 하예정의 이런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쑥스러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그녀가 너무 좋았다.“처형의 일이 다 해결되거든 나중에 이리로 와서 며칠 묵자.”그는 먼 곳의 나무집 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런 집에 살면 참 괜찮을 것 같아.”“약속 지켜요.”“내가 언제 약속 어긴 적 있어?”하예정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날 속여도 당신이 인정하지 않으면 나도 딱히 어쩔 수 없잖아요.”전태윤은 문득 할 말을 잃었다.그는 정말 하예정을 감쪽같이 속였으니까.갑자기 침묵한 전태윤을 바라보며 하예정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설마 진짜 날 속인 건 아니죠?”전태윤은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때마침 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리며 그를 한 번 구해줬다. 전태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성소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예정 씨, 오늘 가게 안 나갔어요?”성소현이 서점으로 찾아갔지만 하예정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네, 오늘 하루 바람 쐬러 나왔어요.”성소현이 흥미진진하게 물었다.“어디로 갔는데요? 나도 마침 한가한데 주소 보내줘요. 바로 갈게요. 우리 함께 놀아요.”“서교 펜션에
하예정은 성소현이 대표님께 감정이 깊다는 걸 알고 있어 이 화제에 관하여 더 많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성소현만 마음 아파할까 봐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한참 얘기를 나눈 후 성소현은 지금 해야 할 일들에 관해 말을 꺼냈다.“큰 오빠는 내가 한가할 때마다 대표님을 떠올리며 힘들어할까 봐 일을 좀 맡겼어요. 나보고 최선을 다해 이모를 찾아보라고 했어요.”“소현 씨 이모요?”하예정은 성씨 집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전씨 일가에 버금가는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성씨 일가에서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바로 성소현이었다.“예정 씨, 실은 우리 엄마랑 예정 씨네 자매분 매우 닮았어요. 우리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무 친척도 우리 엄마랑 이모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어요. 결국 엄마랑 이모는 보육원에서 한동안 생활했어요. 우리 이모가 그땐 나이가 어려 철들지 않았고 또 귀엽게 생기다 보니 결혼 뒤 아이를 낳지 못한 부잣집에 입양됐어요.”“엄마는 계속 보육원에 남아 있었는데 늘 이모를 그리워하며 지냈어요. 나중에 커서 능력이 생기자 이모를 찾아 나섰지만 그 시절엔 사람 한 명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게시물을 올리고 이모를 찾았으면 훨씬 쉬웠을 텐데 말이죠.”“우리 엄마는 아직도 이모를 못 찾았어요. 얼마 전엔 그 당시 이모를 입양했던 부부를 찾게 되어 이모도 보게 될 줄 알고 다들 엄청 기뻐했는데 정작 엄마랑 함께 그 집으로 찾아가니 부부가 이모의 행방을 모르더라고요.”하예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모를 수 있죠? 그분들이 소현 씨 이모님을 입양했잖아요. 혹시 소현 씨 이모랑 엄마가 만나는 게 두려워 일부러 숨긴 건 아닐까요?”“아니요.”성소현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우리 이모를 입양한 지 1년 만에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그때부터 이모가 눈엣가시로 여겨져 모질게 학대했어요. 심지어 이모가 커서 그들이 낳은 자식과 재산을 뺏을까
“우리 엄마랑 이모가 헤어질 때 둘이서 사진 한 장 찍었는데 각자 한 장씩 챙겼대요. 이후에 사진으로 서로를 확인하려 했나 봐요. 다만 아쉽게도 이모를 처음 입양했던 부부가 그 사진을 불태워버렸어요. 엄마는 아직 사진을 잘 간직하고 있지만 수십 년이 지나다 보니 아무리 잘 보관해도 어렴풋해지기 마련이에요. 오빠도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었는데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에요. 이모가 낳은 자식들이 이모를 쏙 빼닮았고 또 우연히 엄마와 마주쳐야만 겨우 찾아낼 수 있어요.”그렇지 않으면 찾아낼 희망이 없다.다만 우연히 마주칠 기회도 거의 0에 가깝다.“하늘은 간절한 자를 도와줘요. 소현 씨네 가족분들 반드시 이모님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하예정은 성소현에게 힘내라는 말만 해줄 뿐 딱히 도움이 되지 못했다.성씨 일가는 재력, 권력, 인맥까지 전부 갖추고 있지만 수년을 찾아 헤매도 이모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하예정처럼 권력도, 세력도, 인맥도 없는 자가 대체 무슨 능력으로 찾아준단 말인가?“하루빨리 이모를 찾아서 엄마와 만나게 해드렸으면 좋겠어요. 예정 씨, 주변에 혹시 누군가 입양된 분이 계시거든 꼭 나한테 알려요. 일말의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하예정은 문득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다.그녀가 성소현에게 물었다.“소현 씨 이모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죠?”“54살이요. 우리 엄마랑 이모는 50년을 떨어져 살았어요.”하예정이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우리 엄마도 만약 살아계시면 54살일 텐데. 실은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께서 낳은 친자식이 아니거든요. 우연히 엄마를 발견해서 길러주셨어요. 엄마는 생전에 나랑 우리 언니만 낳으셨고요. 소현 씨도 우리 언니 봤었죠.”입양된 사람들이 많고 많아 하예정은 자신의 어머니가 성소현의 이모와 겹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성소현도 하예정 자매를 만났었는데 언니 하예진이 유난히 엄마를 많이 닮았다. 성소현은 그런 하예진을 마주하면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니 당연히
성소현이 감격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예정 씨가 정말 우리 이모를 찾아준다면 우리 가족의 은인이나 다름없어요. 저희가 무조건 보답해드릴게요.”“우린 친구니까 도울 만큼 도와야죠. 나도 엄마 생각나서 그래요. 우리 엄마가 살아계신다면 나랑 언니도 최선을 다해 엄마의 가족을 찾아드렸을 거예요.”엄마가 돌아가신 지 십수 년이 지나 하예정은 이젠 엄마의 얼굴도 희미해졌다. 다행히 하예진이 엄마를 매우 닮아 언니를 보면서 엄마의 모습을 겨우 되새긴다.“예정 씨 데이트 마저 해요. 내가 괜히 방해만 된 것 같네요. 즐겁게 놀다 와요. 결혼식에 나 꼭 불러요. 무조건 참석할 거예요.”성소현은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또 그 성소현 씨야?”전태윤이 무심코 물었다.“맞아요. 소현 씨도 원래 이리로 오려 했는데 내가 태윤 씨랑 함께 있다고 하니까 안 오겠다더라고요.”전태윤이 속으로 구시렁댔다.‘그런 눈치는 있네!’“소현 씨 참 괜찮은 분인데, 태윤 씨네 대표님...”전씨 그룹의 도련님이 결혼반지를 낀 걸 되새기며 하예정은 저도 몰래 한숨이 새어 나왔다.“두 분 참 인연이 안 닿는단 말이죠.”“두 사람 무슨 얘기 했어? 얼핏 들어보니 우리 장모님을 언급하는 것 같던데?”전태윤이 금세 화제를 돌렸다.그는 더이상 자신의 가십거리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하예정은 그와 손잡고 나란히 걸으며 대답했다.“소현 씨는 지금 최선을 다해 이모를 찾고 있대요.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종일 전씨 그룹 도련님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소현 씨 어머니가 보육원에서 자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여동생이 한 분 계셨는데 입양됐대요. 그런데 여러 번 입양되다 보니 이젠 소식이 끊겼대요.”“우리 엄마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입양해서 키우셨어요. 하지만 엄마를 찾는 가족은 없었죠. 어린 시절 기억도 별로 없고요. 그전에 입양했던 양부모가 엄마를 너무 학대해서 못 견디고 도망친 것만 기억이 난댔어요. 그때 엄마는 고
“물론이죠. 난 그 사람들과 소송을 걸어서라도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을 돌려받을 거예요!”“좋아, 그럴 자신 있다면 인제 그만 기분 펴. 오늘은 놀러 왔으니 즐겁게 놀다 가야지. 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하나씩 해결하면 돼. 꼭 다 해결될 거야.”그는 하예정을 품에 꼭 껴안으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있잖아.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지켜줄 테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마.”하예정은 얌전히 그에게 안겨 있다가 잠시 후에야 품에서 일어났다.그녀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사람이 너무 많아요.”전태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손을 잡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우린 부부야, 몰래 바람피우는 것도 아닌데 뭐가 두려워?”하예정은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이래서 언니가 항상 나보고 태윤 씨한테 잘해주라고 한 거였네요.”전태윤은 진작 행동으로 하예진에게 점수를 땄었다.초고속 결혼을 마친 후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하예정은 진작 알아챘다. 전태윤은 비록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아 단점을 커버할 정도였다. 게다가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조차도 온몸에 단점투성이인 것을.큰일 앞에서 전태윤은 인간쓰레기 주형인보다 몇백 배 더 훌륭했다.하예정은 또다시 전태윤 때문에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그녀는 조만간 전태윤의 계약서를 훔쳐 와 없애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도 마음껏 전태윤을 유혹할 수 있고, 그가 유혹에 넘어와 진정한 부부가 된다면 6개월 전의 계약도 까마득히 잊을 테니까.하예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늘 진지한 표정의 전태윤을 빤히 쳐다봤다.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본인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옷을 발가벗겼을 때 여전히 싸늘한 저 얼굴을 마주할 걸 상상하니 불타오르던 그녀의 몸도 확 식어버릴 것 같았으니까.“그럼 나한테 좀 잘해줘 봐.”“내가 얼마나 더 잘해줘야 하는데요?”전태윤이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그들 부부는 서로 베풀어주고 있었다. 하예정은 늘 받기만 하고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