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도 바보가 아닌지라 진작 눈치챘다.할머니와 숙희 아주머니는 그들 부부에게 둘만의 공간을 마련해주느라 멀리 가버렸다.전태윤도 차갑고 싸늘한 모습을 뒤로했고 하예정도 달콤한 데이트를 즐겼다.부부는 손을 잡고 고전적인 원림을 구경했다. 하예정은 이런 고전적인 느낌의 원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태윤 씨.”“응?”전태윤은 풍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꾸 몰래 옆에 있는 하예정을 훔쳐봤다.하예정이 부르자 그는 또 아무렇지 않은 듯 걸음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풍경을 보다가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는 척했다.“태윤 씨가 전씨 그룹에 출근하니 회사 산하에 어떤 산업이 있는지 잘 알고 있죠? 전씨 그룹 대표님은 이런 펜션을 몇 개나 더 투자하셨대요?”전태윤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우리 회사는 여러 도시에 지사가 있고 각 분야로 투자 경영을 진행해. 다만 이런 펜션은 두 곳만 투자 건설했을 거야. 입지가 매우 어려웠거든. 이런 펜션을 만들자면 자금 투여도 어마어마해. 이 펜션은 우리 회사가 단독 투자한 곳이야. 멀리 강성에 있는 펜션은 강성 재벌 1위와 함께 투자해서 지었어. 거리가 멀다 보니 그쪽에 운영을 맡기고 우린 주식으로만 배당을 받아.”하예정이 멀리 바라보며 생각했다. 펜션 전체가 아니라 고전적인 원림만 해도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였다. 전태윤도 말했듯이 종일 돌아다녀도 대충 구경만 될 뿐이니 이 펜션이 얼마나 클지 가히 짐작됐다.“태윤 씨네 대표님은 명실상부 관성의 갑부라 재력이 어마어마하네요. 곳곳에 전씨 그룹의 산업이잖아요.”전태윤은 아무 말도 없었다.전씨 일가는 관성에서 여러 세대가 가업을 이어받았고 자산도 대대로 축적된 것이었다. 게다가 집안에 사치와 향락만 즐기는 자가 없어 재부가 점점 더 늘어났다.지금 그에게 전씨 일가의 자산이 얼마냐고 묻는다면 전태윤도 아마 정확하게 알지 못할 것이다. 어찌 됐든 팩트는 억만장자라는 것이다.하예정이 불쑥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전태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태윤
다들 재벌가의 할머니라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달랐다. 일반 할머니처럼 평소 옷차림도 수수했고 재벌가의 할머니 같지 않았다.전태윤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넌 현실적인 사람이야. 꿈 같은 거 꾸지 않더라고.”“난 현실에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꿈도 꿈 나름이죠.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꿈은 꿔봤자 시간이나 낭비하고 수면에 영향 주잖아요.”전태윤은 입술만 삐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동안 구경하고 나서야 두 부부는 할머니 일행과 다시 만났다.점심은 어느 한 식당에서 해결했는데 옛 모습 그대로의 분위기를 간직한 식당이었다. 식당 안의 시설이 현대적이지 않았더라면 하예정은 과거의 객잔으로 타임슬립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오늘따라 주우빈이 무척 신나 보였다. 할머니와 숙희 아주머니는 주우빈과 함께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러 갔다. 주우빈이 원하는 물고기 사료라면 뭐든지 다 사주었고 아무튼 유감없이 실컷 먹이게 했다.신나게 놀다 보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주우빈은 밥도 채 먹지 않고 하예정의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태윤아, 할머니 이젠 나이가 많아서 오래 걷지도 못해. 오후에는 예정이랑 둘이서 구경해. 나랑 숙희는 이 근처에서 쉬면서 우빈이 보고 있을게. 너희 둘이 다 돌고 나면 그때 다시 돌아가자. 이런 곳에 왔으면 하룻밤이라도 묵고 가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전태윤이 덤덤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자 하예정이 한마디 했다.“아니면 그냥 돌아갈까요?”할머니가 말했다.“여기까지 왔는데 다 구경하고 가야지. 절반만 구경하고 가면 티켓 값이 아깝잖아. 걱정하지 마, 예정아. 너랑 태윤이는 가서 프랑스식 원림 구경해. 할머니는 여러 번 와봐서 굳이 구경 안 해도 돼. 우빈이는 나랑 숙희가 챙길 테니까 마음 놓고 돌아보고 와.”할머니의 설득에 하예정도 이대로 티켓을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식사를 마치고 잠깐 휴식한 후 전태윤과 함께 계속 돌아보았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났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저물었다.종일 밖에서 돌아다닌 하예정은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마치고 바로 곯아떨어졌다.할머니는 하예정이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오늘 밤에도 연기를 펼치려 했지만 할머니가 방에 들어갔을 때 하예정은 이미 단잠에 빠진 뒤였다.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기회가 사라졌다.하예정의 방에서 나온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전태윤을 보고 있자니 분통이 터졌다. 할머니는 전태윤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TV 리모컨을 확 빼앗았다.“집에 와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해야 할 일도 안 할 셈이야?”전태윤은 할머니를 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집에 왔는데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해요? 해야 할 일은 뭐고요?”오늘 그래도 수확이 꽤 컸다. 온종일 하예정과 손을 잡고 다녔으니 말이다. 하예정도 무슨 일이 있으면 그에게 얘기했고 그에 대한 믿음이 점점 깊어졌다.손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말문이 막혀버렸다.“할머니, 오늘 종일 돌아다녀서 힘드시죠? 아주머니한테 게스트룸 좀 치워달라고 할까요?”할머니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러라고 했다. 전태윤이 분부하기도 전에 숙희 아주머니는 진작 게스트룸을 깨끗하게 정리했다.“너도 일찍 쉬어.”할머니는 당부의 말을 한마디 남기고는 게스트룸으로 갔다. 전태윤은 거실에서 한참 동안 앉아있다가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간 그는 곧장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안 그래도 지금 통화 가능한지 문자 보내려고 하던 찰나에 네가 전화 왔어. 역시 우린 서로 통해.”전태윤은 방의 소파에 앉아 덤덤하게 물었다.“나한테 무슨 얘기 하려 했는데?”“내일 오전 10시에 소이 카페에서 효진 씨를 기다릴 거야. 형수님더러 효진 씨한테 알려주라고 해줘.”전태윤이 피식 웃었다.“이번 소개팅이 아주 많이 기대되나 봐?”“네가 주선해주는 건데 적극적이지 않고서야 되겠어?”“알았어. 이따가 예정이한테 말해서 효진 씨한테 알려주라고 할게. 너 잘해야 할 거야. 효진 씨
소정남이 시원하게 말했다.“증거 언제까지 주면 돼?”“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내일까지 줘도 돼?”“응.”내일 마침 이혼 문제를 상의하는 날이라 주형인의 재산 증거를 갖고 있으면 더욱 당당할 수 있다.“너의 처형 이혼 문제에 엄청 마음을 쓰는구나. 너의 회사를 위해 이렇게나 마음 쓰는 걸 본 적이 없는데.”전태윤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예정이 지금 나한테 엄청 고마워해.”“고마워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형수님이 널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지. 하지만 처형의 일을 해결해준다면 네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고 너한테 점점 의지하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을 줄 거야.”소정남은 여자친구가 없었지만 아주 일리 있게 분석했다. 분석을 마친 그는 전태윤에게 되물었다.“넌 형수님 사랑해? 형수님이 널 사랑하게 할 궁리만 하고 정작 넌 마음을 줄 생각이 없다면 그건 형수님의 마음을 갖고 장난치는 거야.”전태윤이 말했다.“그럼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증명해? 손만 잡아도 엄청 떨리고 흥분돼. 이건 사랑이야? 그 사람이 웃는 모습만 봐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키스하고 싶어. 사랑이 맞아?”“와, 전태윤, 대박이구나 너. 벌써 이렇게까지 발전했어? 난 네가 맨날 표정을 찡그리고 눈만 부릅뜰 줄 알았더니.”전태윤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의 앞에서 대놓고 그를 비웃는 건 아마 소정남밖에 없을 것이다. 소정남에게 조사해달라고 부탁했으니 전태윤도 달리 어쩌진 못했다.“네가 형수님한테 마음을 쓴다고 내가 진작 얘기했었지?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떼더니. 형수님이 김진우랑 그저 밥 한 끼 했을 뿐인데도 넌 며칠이나 화를 냈어. 그러면서 뭐? 질투 아니라고? 있잖아, 너 질투할 때 정말 사람 피곤하게 해.”전태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난 질투한 적 없어!”“이젠 아무도 네 말 안 믿어. 일단 주형인의 명의로 된 재산과 주형인 가족의 명의로 된 적금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할게. 네가 질투했는지 안 했는지는 다음날에 다
전태윤은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을 뿐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몰래 그런 짓까지 하기에는 도무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뒤척인 끝에 겨우 잠이 들었다.그 시각 어느 한 아파트.주형인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담배 한 통에서 한 대를 뽑아 불을 붙이려는데 옆에 있던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나도 한 대 줘봐요.”주형인은 담배를 서현주에게 건넨 후 불까지 붙여주었다.“가끔 한 대씩 피우는 건 괜찮아.”주형인은 골초가 아니라서 고객과 사업을 논하거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피는 것 외에는 평소에 별로 피지 않았다.하예진은 담배를 피우면 입에서 냄새가 난다면서 담배를 자주 피우는 남자를 싫어했다. 서현주도 담배를 피울 줄 알았다. 하지만 평소에 숙녀인 척해야 해서 주형인의 앞에서는 한 번도 피질 않았다. 이젠 주형인과 마지막 선을 넘었고 주형인도 하예진과 이혼하겠다고 했으니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 같이 살다 보면 주형인도 알게 될 테니 말이다.그녀는 담배를 반쯤 피운 후 주형인에게 기대어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걱정이 있어요?”“없어.”서현주가 피식 웃더니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가슴팍을 어루만졌다.“뚱뚱한 마누라랑 이혼하기 아쉬워요?”“그럴 리가. 이혼 합의서를 어떻게 쓸까 고민 중이야. 예진이한테 4천만 원을 주겠다고 부모님께 얘기했더니 너무 많다고 하더라고. 우리 누나도 내가 개뿔도 없으면서 너무 많이 준다고 욕했어. 예진이 결혼 후에 일전 한 푼 벌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많이 주지 말래.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부부로 살아왔고 잘못도 내가 먼저 저질렀으니까 4천만 원 주고 좋게 좋게 끝낼 생각이야. 그 돈 받으면 예진이도 난리 치지 않을 거야. 혹시라도 걔가 우리 둘 사이 일 까발리기라도 한다면 우리 둘 명성은 한순간에 무너져.”서현주가 담뱃불을 끄며 말했다.“형인 씨 부모님과 누나야말로 형인 씨 가족이고 진심으로 형인 씨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에요. 그분들의 의견을 잘 고려해봤으면 좋겠어요.”그러더니 또 애교를
서현주는 내키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직은 와이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기에 뭐라 얘기할 수도 없었다. 괜히 뭐라 했다가 주형인의 반감을 사고 미래의 시대 식구들도 그녀를 아니꼽게 생각할 수 있다.주우빈은 인제 고작 두 살이라 철이 없고 자립 능력도 없다. 그녀의 밑에서 자란다면 앞으로 주우빈을 다스릴 기회가 많을 테니 급할 건 없었다.“문제없어요.”서현주는 이혼 합의서를 주형인에게 건넸다.“내가 두 부 프린트해줄 테니까 내일 예진 씨한테 사인하라고 한 다음 한 부씩 가져요. 그리고 월요일에 이혼 신고하러 가요.”주형인이 웃으며 말했다.“너보다 더 급한 건 나야.”“난 급하지 않아요.”서현주는 웃으며 이혼 합의서를 프린트했다.그날 밤 두 사람은 결혼 후의 행복한 생활을 꿈꾸며 단잠에 빠졌다.이튿날, 잠에서 깬 하예정은 전태윤이 화장대에 놓고 간 쪽지를 확인하고는 바로 휴대 전화를 들어 심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예정아, 나 아직 눈도 못 떴어.”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심효진이 두 눈을 비비며 하품했다.“어젯밤에 늦게 잤거든.”그러자 하예정이 히죽 웃었다.“아직 안 깬 것 같아서 문자 보내면 못 볼까 봐 전화한 거야. 태윤 씨가 나한테 쪽지 남겼는데 태윤 씨 동료가 오늘 오전 10시에 소이 카페에서 널 기다리겠다고 했대. 손에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든 남자를 찾으면 돼.”“네가 얘기 안 했으면 오늘 소개팅이 있는지도 깜빡할 뻔했어.”심효진이 두 눈을 뜨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또 소이 카페야? 알았어. 늦지 않게 갈게.”조퇴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없었다.“그럼 알람 놓고 조금 더 자. 방해하지 않을게.”“예정아, 너 나랑 같이 안 갈 거야?”심효진은 매번 소개팅할 때마다 하예정과 함께 갔었다. 하예정의 말투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오늘 언니가 주형인이랑 이혼을 상의한다고 했어. 하나밖에 없는 언니인데 내가 가봐야지.”“하긴. 예진 언니 기를 살려줘야지. 더는 주씨 가문 사람들이 괴롭히게 해선
하예정이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갈 데 어디 있어?”주형인은 그녀의 거처를 알고 있었고 친정에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녀조차 마음이 놓이지 않는데 언니는 오죽하겠는가 말이다.심효진이 그녀에게 제안했다.“소현 씨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해. 성씨 가문의 딸이라 안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별장에서 산단 말이야. 게다가 성씨 그룹의 명성까지 있어서 주씨 가문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성씨 가문에 깽판 치러 못 갈 거야. 그리고 우빈이가 성씨 가문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해. 소현 씨가 우빈이를 예뻐하니까 우빈이가 거기 있으면 아마 잘 챙겨줄 거야.”심효진의 말에 하예정의 두 눈이 반짝였다.“그래. 내가 왜 소현 씨를 잊었지? 이따가 언니한테 얘기해볼게. 언니가 허락하면 소현 씨한테 우빈이 좀 봐달라고 부탁해봐야겠어.”“소현 씨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했잖아. 우린 가끔 현실에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해.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일 처리 하는 게 쉬운 건 사실이야.”심효진은 이 얘기까지는 꺼내지 않았다.‘소현 씨한테 기댈 수 있을 때 망설이지 말고 기대야지.’일리 있는 절친의 말에 하예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통화를 마친 후 하예정은 카톡 대화창을 열었다. 성소현이 어제 이경혜 자매의 어릴 적 사진을 보내왔다. 그때 한창 펜션에서 노는 중이라 하예정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지금 그 사진을 다시 보니 성소현의 이모가 어릴 적에는 참으로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예쁜 치마에 양갈래 머리를 한 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한참 뚫어져라 들여다보니 왠지 성소현의 이모와 주우빈이 조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애들은 어릴 적에 다 비슷하게 생겼나?’“따르릉...”다급한 휴대 전화 벨 소리에 하예정은 하던 생각을 멈췄다. 언니의 전화인 걸 확인하고는 황급히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울먹거리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예정아, 그 사람들이 우빈이를
“언니, 소용 있든 없든 신고부터 해야 해.”“알았어. 지금 바로 신고할게.”“언니네 시부모는?”“우빈이를 데려간 다음에 바로 갔어. 아마 형인 씨를 찾으러 갔을 거야. 형인 씨 어젯밤에 집에 안 들어왔어.”하예정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언니, 일단 신고해. 나랑 태윤 씨가 지금 당장 주형인의 본가랑 주형인의 누나 집에 가볼게. 우빈이를 본가로 데려갔을 가능성이 커.”하예진과 주형인의 이혼 얘기가 오가고 양육권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 주씨 가문에서는 주우빈을 빼앗아갔다. 신고하더라도 그저 중재만 해줄 것이다. 만약 중재가 실패한다면 이혼 소송을 해서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주씨 가문 사람도 주우빈의 가족이긴 하지만 주우빈이 태어난 그날부터 쭉 하예진네 자매가 돌보았다. 하여 주씨 가문 사람과 감정이 깊지 않은 주우빈이 낯선 곳에 가서 엄마와 이모가 보이지 않는다면 두려움에 떨며 엉엉 울 것이다.주씨 가문 사람들이 주우빈을 어떻게 대할지 누가 알겠는가?“언니, 그 사람들이 우빈이를 데려가는 걸 본 사람이 있어?”하예정은 그녀와 전태윤이 찾으러 갔을 때 주우빈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데려가지 않았다고 잡아뗄까 봐 걱정됐다. 오히려 언니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서 잃어버렸다고 모함할지도 모른다.“있어. 어머님이 내가 손주를 못 보게 했다면서 손주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렇게라도 데려가겠다고 했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남의 집안 일인 걸 알고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어. 아마 증언해주지도 않을 거야.”“당황해하지 말고 침착해, 언니. 일단 신고하고 나랑 태윤 씨가 가볼게. 신고한 다음에 주형인한테 전화해서 이러는 건 우빈이한테 안 좋다고, 우빈이가 놀랄 거라고 얘기해.”하예진이 이를 꽉 깨물었다.“이미 전화했었어. 전화하니까 우빈이가 주씨 가문의 손자라면서 어머님 아버님이 손주를 보고 싶어 하신대. 내가 출근하느라 우빈이 돌볼 시간이 없다면서 앞으로 어머님 아버님한테 우빈이를 맡기겠다고 했어. 예정아, 내가 일단 신고부터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