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윤 씨를 아무리 믿어도 그렇지, 어떻게 제사상의 술을 훔쳐 마신 창피한 일까지 얘기할 수 있어.’전태윤이 하예정을 빤히 쳐다보자 하예정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언니, 그게 몇 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 얘기야.”그것도 전태윤의 앞에서 말이다. 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너 그날 밥 먹고 침대에서 종일 잤어. 주량이 약하면서 마시기는 좋아한다니까. 술만 마시면 아주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떨어져. 제부, 그냥 엄청난 경사가 아니면 얘한테 술 먹이지 말아요.”전태윤이 입꼬리를 실룩이며 대답했다.“네, 처형. 명심할게요.”하예진이 꺼낸 옛날얘기로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이혼하면 이혼했지, 그게 뭐가 큰일이라고!지구에 누구 하나 사라진다고 자전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주형인과 헤어진다고 해도 하예진은 여전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다.호텔에 나선 하예진은 어두운 밤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더니 동생네 부부를 불렀다.“가자, 언니가 맛있는 야식 사줄게. 아니지, 아침 먹을 때가 다 됐네. 언니가 싱글이 된 걸 미리 축하하자.”시간은 벌써 새벽 다섯 시가 되었다. 하예정과 전태윤이 눈빛을 주고받더니 언니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세 사람은 곧장 아침을 먹으러 갔다. 식사를 마친 후 전태윤은 먼저 하예진을 광명 아파트에 데려다준 다음에 하예정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왔을 땐 날도 훤히 밝았다.“태윤 씨.”전태윤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고마워요, 태윤 씨.”전태윤은 그녀에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두 팔을 잡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려는 순간 자신의 품에 와락 끌어안은 후 나지막이 말했다.“우린 부부야. 나한테 이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하예정은 그를 한참 동안 빤히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그의 목을 잡고 먼저 키스했다. 그런데 이번에 전태윤은 예전처럼 주객전도한 게 아니라 그녀의 입을 막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보며 물었다.“지금 이 키스는 나한테 주는 보수야? 아니면 날 좋아해서 하는
빤히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하예정은 뭔가 깨달은 듯 떠보듯이 물었다.“태윤 씨, 설마 나더러 얼굴 씻겨달라는 건 아니죠?”“너 때문에 얼굴에 검게 칠한 건데.”그 말인즉슨 그녀에게 책임을 지라는 뜻이었다. 하예정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왜 점점 뻔뻔스럽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지?’“알았어요, 나 때문에 얼굴에 검게 칠한 거니까 씻겨줄게요. 차라리 온 얼굴에 다 칠하지 그랬어요?”그러면서 그를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전태윤은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두어 걸음 옮기다가 이내 멈추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주방에는 왜 가?”“주방에 물이 있잖아요. 태윤 씨 방은 금지 구역이라 들어갈 수 없으니 주방에서 안 씻으면 어디서 씻어요?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래요? 내가 젖은 수건을 가져와서 닦아줄게요. 닦아질지는 모르겠지만.”전태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결국에는 제 발등을 제가 찍는 격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태윤이 한동안 입을 꾹 다물다가 덤덤하게 말했다.“내 방 화장실에 내가 평소에 쓰는 남성용 클렌징이 있어. 그걸로 지워질 거야.”그러고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방문을 열던 그때 다시 고개를 돌려 명령조로 말했다.“얼른 와서 씻겨주지 않고 뭐해!”하예정은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태윤 씨가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간 거예요. 내가 함부로 쳐들어간 게 아니라. 앞으로 싸우게 되면 이 일로 뭐라 하지 말아요. 난 늘 약속을 지키고 약속대로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그녀의 말에 전태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갈 때 전태윤이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앞으로 또 싸우길 바라나 보지?”“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 싸우기 마련이에요.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어요?”그녀는 속으로 투덜거렸다.‘속은 좁아서 싸울 때마다 카톡 연락처를 지우고 그러잖아. 그러고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랑 냉전하고.’그녀는 앞으로 함께 살면서 싸우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었다. 일리 있는 그녀의 말에 전태윤은 아무런 반박도
웃옷을 벗은 전태윤은 아주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는 하예정을 발견했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하예정이 그에게 물었다.“더 벗어요?”그러더니 아직 벗지 않은 그의 바지를 가리켰다. 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세수하다가 웃옷이 젖을까 봐 벗은 거였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전태윤이 하예정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하예정은 저도 모르게 그의 탄탄한 가슴 근육을 만지작거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역시 평소 운동하는 남자의 몸매는 다르네요.”전태윤은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만지지 못 하게 했다. 그러고는 굳은 얼굴로 경고했다.“하예정, 내 몸을 만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한 가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적응이 됐는지 전태윤은 하예정의 이마에 딱밤을 여러 번 때린 후 재미를 들였다. 물론 아프지 않게 살짝만 때렸다. 세게 때렸다가 아프다고 그와 등을 돌리면 안 되니까.하예정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날 감상하라고 옷 벗은 거 아니었어요? 그거 좀 만진다고 살가죽이 벗겨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내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 했어요?”“난 네가 내 얼굴을 씻겨주다가 옷이 젖을까 봐 벗은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아니면 다시 입을까? 내 얼굴 씻겨주다가 옷이 다 젖어서 나중에 옷까지 빨아줄래?”“그냥 벗어요.”전태윤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째려보았다.‘방심했네.’그녀는 예전부터 가끔 유혹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그녀 앞에서 옷을 벗었는데 그를 놀리지 않으면 하예정이 아니지.“하하하!”하예정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전태윤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방자한 그녀를 통제하려면 뭔가 본때를 보여줘야 했다.전태윤은 깔깔거리며 자신을 비웃는 하예정을 꽉 잡고 세면대 앞으로 확 당겼다. 순간 하예정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전태윤은 그녀를 꽉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제대로 세운 후 자주 쓰는
“어르신들은 퇴직해서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장사라도 하는 게 좋아. 힘들지 않고 돈도 얼마 되진 않겠지만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실 수 있잖아. 나도 전에는 부모님한테 용돈을 드렸었어. 그런데 기어코 싫다고 하더라고. 한번 드릴 때마다 오히려 배로 다시 주셨어. 마누라한테나 주라면서.”하예정은 지난번에 전태윤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시아버지는 나이가 지긋하지만 부드럽고 점잖았고 관리도 아주 잘한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조금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래도 교양이 있어 난처하게 굴진 않았다. 그녀와 얘기할 때도 나긋나긋한 말투를 잊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훨씬 더 관리를 잘하였기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걷는다면 자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이젠 결혼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하예정이 시댁 식구 중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이 그래도 할머니였다. 다른 가족은 그저 지난번에 식사 자리에서 잠깐 만났을 뿐 그 후에는 별로 만난 적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시댁이 정확히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다.할머니와 사이가 가까운 하예정이 할머니에게 물었지만 할머니는 산 이름을 알려주면서 산꼭대기에 집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집이 엄청 많다면서 대충 어느 집이라고 얘기하셨지만 하예정은 더욱 어리둥절했다.결국 할머니는 전태윤이 데리고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전태윤은 그녀에게 집으로 가자는 얘기를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계약서 생각에 하예정은 더는 시댁에 관해 묻지 않았다. 어차피 부부가 백년해로할 것도 아닌데 시댁이 어디인지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시댁 식구들이 전부 교양이 넘친다는 것이다. 동년배의 시댁 식구들도 맏형수인 그녀에게 아주 깍듯하게 대했다.“태윤 씨 부모님들은 상당히 깨어 있는 분들이에요.”전태윤이 피식 웃었다.“우리 집 어른들이 다 그래.”하예정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한참 동안 씻고 나서야 겨우 깨끗하게 씻어냈다.“다음부터는 이렇게 칠하지 말아요. 우리가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은 후 문에 기댄 채 얼굴을 만져보았다. 얼굴이 아직도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도 왜 얼굴이 빨개졌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어젯밤에 간통 현장을 잡으러 갔다가 귀신이라도 씌었나...’하예정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샤워하러 들어갔다. 이따가 전태윤에게 아침을 준비해줘야 하니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오른 숙희 아주머니 생각에 하예정은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주머니, 이따가 우빈이 데리고 바로 가게로 오시면 돼요. 집에 들를 필요 없어요.”“알았어요.”“언니는 어때요?”“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요. 이따가 아침 먹고 출근해야 한다고 해서 지금 커피 한잔 타고 있어요.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자고 출근해야 하니까 커피라도 마시면 정신이 들까 해서요.”하예정은 그런 언니가 마음 아팠지만 출근한 지 며칠 안 되어 휴가 내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언니한테 스쿠터 조심해서 타라고 전해주세요.”“그럴게요.”전화를 끊은 하예정은 곧장 샤워하러 들어갔다.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습관적으로 화장대 앞으로 가서 머리를 빗었다. 그런데 문득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뭔가가 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내가 그린 금비녀 어디 갔지?’그건 그녀가 직접 만들어서 인터넷에서 팔려고 그린 비녀 샘플이었는데 족히 이틀 저녁이라는 시간을 들여 그린 것이었다.하예정은 빗으로 머리를 빗으며 그림을 찾았다. 그런데 한참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왜 없어졌지? 분명 화장대 위에 놓았었는데? 내 방에 들어온 사람도 없는데...”그런데 문득 어젯밤 그녀가 곯아떨어져 아무리 깨워도 깨지 않는 바람에 안고 올라와 침대에 눕혔다는 전태윤의 말이 떠올랐다.전태윤이 그녀의 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사내대장부인 전태윤이 금비녀를 가져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진짜도 아니고 그림인데 말이다.숙희 아주머니가 출근하신 후로 낮에는 줄곧 그녀와 함께 가게에 있었다.‘어젯밤에 먼저 들어가긴 했지만 설마 폐지라
하지만 그녀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고작 맥주 두 병에? 맥주 마시고 깊이 곯아떨어졌다고 해도 취하진 않았는데 왜 토했지? 너무 많이 먹어서 토했나?’하예정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 그림 한 장인데 전태윤이 그녀를 속일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알겠다고 한 후 더는 캐묻지 않았다.‘역시 언니 말 들어야 해. 앞으론 술 적게 마셔야겠어.’“다시 찾아줄까?”“그걸 어떻게 찾아요? 찾아도 다 망가졌을 텐데. 괜찮아요. 나중에 시간 되면 다시 그리면 돼요.”전태윤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그 그림이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어. 그냥 아무거나 잡다 보니까 네 그림이더라고. 다음에 다 그리면 화장대 위에 놓지 마. 침대랑 너무 가까워.”“네.”하예정이 속으로 생각했다.‘그런 일이 맨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맨날 술 마시는 것도 아닌데, 뭐.’“태윤 씨, 자책하지 말아요.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내 책임이에요. 다시 그리면 되니까 괜찮아요.”“아니면 샘플로 쓰게 진짜 금비녀 하나 사줄까?”하예정이 황급히 거절했다.“괜찮아요. 내가 알아서 그리면 돼요.”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포기했다.‘왜 예정이가 내 재산 보고 나랑 초고속 결혼했다고 의심했었지? 아마 할머니가 맨날 뭐라 하신 것도 있고 할머니를 구한 적도 있어서 할머니를 구한 보수를 얻으려고 했다고 색안경 끼고 봤을 거야.’지금까지 계속 그녀를 오해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원래는 계약서를 써서 그녀를 통제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계약서대로 잘 지키는 바람에 오히려 통제를 당하는 건 그였다.어젯밤 계약서를 없애버렸다는 생각에 전태윤은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었다. 마음속의 돌덩이가 쑥 내려갔으니 앞으로는 아무 스트레스도 없을 것 같다.아침 식사 후, 하예정은 설거지를 했고 전태윤은 하예정이 내려준 커피를 들고 발코니로 가더니 그네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사실 인스턴트 커피였지만 그가 지금까지 마셨던 그 어떤 커피보다도 맛있었다
회사 건물 앞에서 전태윤을 기다리던 소정남이 전태윤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난 오늘 네가 회사에 안 나오는 줄 알았어.”소정남은 전태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건물 앞까지만 동행했다.“내가 회사에 안 나오고 너한테 회의 사회를 맡겼다간 전생에 나한테 빚진 걸 이번 생에 갚는다느니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 아니야.”“네가 날 계속 노예처럼 부려 먹는다는 걸 알긴 아네.”전태윤은 그를 힐끗 째려보았다.“난 너한테 능력을 선보일 기회를 주는 거야. 내가 너한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너희 가문의 중시를 받을 수나 있었겠어?”소씨 가문의 젊은 세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 못지않게 능력이 뛰어났다. 소정남이 젊은 세대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건 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전태윤과 가까이 지내면서 전씨 그룹의 핵심 임원이 되었기 때문이다.그는 가주의 아들이 아님에도 가주의 중시를 받았고 소씨 가문의 중요한 조카였기에 소씨 가문에서 소정남의 지위가 아주 높았다. 게다가 가주 자리에도 관심이 없어 가주 아들의 신임을 얻었고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냈다.소정남이 배시시 웃었다.“그건 네가 날 너의 정보통으로 키우기 위해서 그런 거지. 마침 내가 또 가십거리에 관심이 많잖아. 네가 나한테 부탁하는 사적인 일들은 전부 흥미로운 뉴스거리들이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돈이 부족해서 너의 개인적인 일을 연예 전문 기자한테 아무거나 말해도 엄청 많은 돈을 벌걸?”두 사람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후 전태윤이 말했다.“너의 재산을 몽땅 나한테 넘기지 않는 이상 네가 돈이 부족할 일은 없어.”소정남은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고 구경하길 좋아하지만 그래도 입은 아주 무거운 사람이었다. 안 그러면 전태윤이 그에게 믿고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성기현이 소정남을 여러 번이나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정남을 빼앗아가려 했는지 모른다. 소정남에게서 전씨 그룹 내부의 기밀을 빼내려 했지만 전부 실패했
전태윤은 어이가 없는지 소정남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정남이 멋쩍게 코를 만지작거렸다.“갑자기 효진 씨와의 소개팅이 엄청 기대되네.”“토요일 오후로 약속 잡았어. 장소는 네가 정해서 나한테 알려줘. 예정이더러 효진 씨한테 알려주라고 할게.”“그럼 모레네. 전태윤, 나 지금 멋있어? 얼굴에 여드름은 없어? 수염은 안 길고?”두 사람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맨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전태윤은 재잘거리는 소정남을 내팽개치고 얼른 내렸다. 소정남이 재빨리 그의 뒤를 따랐다.“전 대표님, 소 이사님.”조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조 비서의 인사에 답했다.대표 사무실에 들어온 전태윤은 휴게실 문 앞을 가리키며 소정남에게 말했다.“휴게실 안에 거울 있어. 들어가서 거울 봐봐.”소정남이 의자를 빼서 그의 테이블 앞에 앉으며 웃었다.“내 비주얼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어. 효진 씨가 날 보면 무조건 첫눈에 반할 거야.”“예정이가 내 얼굴을 보고도 아직 완전히 빠지지 않았어. 효진 씨는 예정이 절친이니까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성격이 비슷할 거야.”그러자 소정남이 말했다.“네가 그러니까 자신감이 사라지잖아. 너처럼 주선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효진 씨를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늘어놓아도 모자랄 판에.”“싫은데?”소정남은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을 쩍 벌렸다. 한참 후 그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전태윤, 넌 될수록 입을 열지 마. 입만 열면 너무 날카로워서 내가 다 찔려죽을 것 같아.”“주형인이랑 서현주네 가족을 잘 지켜봐. 그 자식 처형한테 이혼하자고 했으니까 흠집을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을 거야.”“그건 걱정하지 마. 사람 붙여서 계속 지켜보고 있어.”“계속 여기 앉아있을 작정이야?”“다른 얘기 할 건 없고?”소정남은 원하는 가십거리를 듣지 못해 불만이 가득했고 전태윤은 한시라도 빨리 소정남을 내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