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건물 앞에서 전태윤을 기다리던 소정남이 전태윤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난 오늘 네가 회사에 안 나오는 줄 알았어.”소정남은 전태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건물 앞까지만 동행했다.“내가 회사에 안 나오고 너한테 회의 사회를 맡겼다간 전생에 나한테 빚진 걸 이번 생에 갚는다느니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 아니야.”“네가 날 계속 노예처럼 부려 먹는다는 걸 알긴 아네.”전태윤은 그를 힐끗 째려보았다.“난 너한테 능력을 선보일 기회를 주는 거야. 내가 너한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너희 가문의 중시를 받을 수나 있었겠어?”소씨 가문의 젊은 세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 못지않게 능력이 뛰어났다. 소정남이 젊은 세대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건 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전태윤과 가까이 지내면서 전씨 그룹의 핵심 임원이 되었기 때문이다.그는 가주의 아들이 아님에도 가주의 중시를 받았고 소씨 가문의 중요한 조카였기에 소씨 가문에서 소정남의 지위가 아주 높았다. 게다가 가주 자리에도 관심이 없어 가주 아들의 신임을 얻었고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냈다.소정남이 배시시 웃었다.“그건 네가 날 너의 정보통으로 키우기 위해서 그런 거지. 마침 내가 또 가십거리에 관심이 많잖아. 네가 나한테 부탁하는 사적인 일들은 전부 흥미로운 뉴스거리들이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돈이 부족해서 너의 개인적인 일을 연예 전문 기자한테 아무거나 말해도 엄청 많은 돈을 벌걸?”두 사람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후 전태윤이 말했다.“너의 재산을 몽땅 나한테 넘기지 않는 이상 네가 돈이 부족할 일은 없어.”소정남은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고 구경하길 좋아하지만 그래도 입은 아주 무거운 사람이었다. 안 그러면 전태윤이 그에게 믿고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성기현이 소정남을 여러 번이나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정남을 빼앗아가려 했는지 모른다. 소정남에게서 전씨 그룹 내부의 기밀을 빼내려 했지만 전부 실패했
전태윤은 어이가 없는지 소정남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정남이 멋쩍게 코를 만지작거렸다.“갑자기 효진 씨와의 소개팅이 엄청 기대되네.”“토요일 오후로 약속 잡았어. 장소는 네가 정해서 나한테 알려줘. 예정이더러 효진 씨한테 알려주라고 할게.”“그럼 모레네. 전태윤, 나 지금 멋있어? 얼굴에 여드름은 없어? 수염은 안 길고?”두 사람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맨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전태윤은 재잘거리는 소정남을 내팽개치고 얼른 내렸다. 소정남이 재빨리 그의 뒤를 따랐다.“전 대표님, 소 이사님.”조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조 비서의 인사에 답했다.대표 사무실에 들어온 전태윤은 휴게실 문 앞을 가리키며 소정남에게 말했다.“휴게실 안에 거울 있어. 들어가서 거울 봐봐.”소정남이 의자를 빼서 그의 테이블 앞에 앉으며 웃었다.“내 비주얼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어. 효진 씨가 날 보면 무조건 첫눈에 반할 거야.”“예정이가 내 얼굴을 보고도 아직 완전히 빠지지 않았어. 효진 씨는 예정이 절친이니까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성격이 비슷할 거야.”그러자 소정남이 말했다.“네가 그러니까 자신감이 사라지잖아. 너처럼 주선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효진 씨를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늘어놓아도 모자랄 판에.”“싫은데?”소정남은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을 쩍 벌렸다. 한참 후 그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전태윤, 넌 될수록 입을 열지 마. 입만 열면 너무 날카로워서 내가 다 찔려죽을 것 같아.”“주형인이랑 서현주네 가족을 잘 지켜봐. 그 자식 처형한테 이혼하자고 했으니까 흠집을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을 거야.”“그건 걱정하지 마. 사람 붙여서 계속 지켜보고 있어.”“계속 여기 앉아있을 작정이야?”“다른 얘기 할 건 없고?”소정남은 원하는 가십거리를 듣지 못해 불만이 가득했고 전태윤은 한시라도 빨리 소정남을 내쫓고
“문제는 몸이 너무 뚱뚱해. 내가 매일 출근 전에 회사 건물 앞 작은 공원을 다섯 바퀴 뛰고 출근하라고 했거든. 못 뛰면 출근하지 말라고 했어. 이렇게라도 다이어트하게 하려고. 한 달이면 효과가 별로 없으니까 수습 기간 3개월로 한 거야.”전태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동명이가 꽤 신경 많이 썼네? 일자리를 마련해준 것도 모자라 비주얼과 몸매까지 걱정하다니. 정말 이 세상에 얘보다 더 좋은 대표는 없을 거야.”“동명아, 수습 기간을 한 달로 줄이고 수습 기간이 끝나면 월급도 올려줘. 만약 처형의 능력이 월급을 올려줄 정도로 뛰어나지 않다면 매달 올린 월급은 내가 따로 너한테 줄게.”“예진 씨 아직은 그냥 재무팀 팀원이라 월급을 올려줘도 얼마 못 올려줘. 많아봤자 이삼십만 원이야. 그걸로 되겠어?”그러자 전태윤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삼십만 원이 너한테는 보잘것없겠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엄청 큰돈이야. 처형이 지금 이혼 준비하는데 아들의 양육권을 가지려면 안정적인 직장에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양육권을 가져올 수 있거든.”“예전에 유진 테크에서 최고재무관리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능력은 뭐 말할 것도 없어. 오히려 지금 재무팀 팀원 자리를 준 게 미안할 정도야. 수습 기간이 끝나고 월급을 올려주는 건 그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괜찮을 거야. 내가 그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따로 안 줘도 돼.”노동명은 소정남만큼 가십거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얘기의 중점을 잘 캐치한 노동명은 전태윤이 자연스럽게 ‘처형’ 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하예진은 하예정의 언니이고 하예정은 전태윤의 아내이다. 하여 전태윤이 하예진을 ‘처형’ 이라고 부르는 건 당연했다.“고마워, 동명아.”“고맙긴. 예진 씨 지금은 우리 회사 직원인데 당연히 월급 줘야지. 예진 씨 이혼한대?”“남편이 바람 피웠어.”노동명의 얼굴에 전혀 놀란 기색이 없이 덤덤했다.“예전에 우연히 두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혼자 애를 데리고 길거리를 거닐더라고. 두 번째 만났을 땐
“우빈이 괜찮니?”김은희는 그런 일을 해놓고 돌아오니 손자가 조금 걱정됐다.정한의 감기로 온 집안이 바람 잘 날 없었다. 반복적인 고열만으로도 어른들의 가슴을 졸였다.우빈은 정한보다 한 살 어려 진짜 감염되면 얼마나 들볶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다.“나 아직 집에 안 들어가서 우빈이 못 봤어. 아마 괜찮을 거야. 아파트 근처에서 보니까 예진이가 전처럼 출근하던데.”밤새 난리를 피우고 그와 서현주를 두들겨 패기까지 했는데 다음날 하예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출근했다.주형인은 그나마 괜찮지만 서현주는 지금까지 호텔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대문짝만한 손찌검 자국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어젯밤 하예진 자매가 떠난 후 서현주는 그를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모든 굴욕이 전부 주형인 때문이라고 원망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우는 모습에 주형인은 가슴이 아팠다.이 일로 그는 이혼할 마음을 더욱 굳혔다.“그럼 다행이네. 나도 시름이 놓이는구나. 그런 일을 하니 이 어미의 마음도 몹시 불편했단다. 우빈이는 어찌 됐든 내 손주 녀석이잖니. 예진이는 참 독해. 그렇게 어린 애를 내버려 두고 출근하다니.”김은희는 잘못을 하예진에게 돌렸다.“형인아, 왜 꼭 지금 이혼하려고 해? 엄마한테 말해줄 수 있어?”주형인은 또다시 담배를 두어 모금 빨고 고개 들어 난감한 표정으로 부모님을 쳐다보았다.“어젯밤에 현주랑 함께 호텔에 있다가 예진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급한 일인 줄 알고 현주가 대신 받았어. 그런데 뜻밖에도 예진이가 호텔로 찾아온 거야. 처제까지 데리고 와서 나랑 현주 현장을 잡았다니까...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고 현주는 예진이한테 심하게 맞아서 아직도 호텔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어. 엄마, 나 더이상 예진이랑 못 살겠어. 하루도 지낼 수 없어. 당장 이혼할래!”그의 부모님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주경진이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아들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주형인은 아빠가 그에게 손댈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는 가차
보아하니 아들 녀석은 이혼할 마음을 굳힌 듯싶었다. 서현주와 호텔까지 갔고 하예진에게 외도 현장까지 들켰으니 하예진의 성격상 절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김은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형인아, 너랑 예진이 결혼하고 나서 줄곧 너만 출근해서 돈 벌었어. 걔는 수입이 아예 없었어. 이혼하게 되면 절차만 밟고 옷이랑 짐 챙겨서 나가라고 해. 다른 물건은 일절 못 가져가!”이미 정해진 이혼이니 최대한 손실을 줄여야 한다.“엄마, 아무것도 못 가져간다는 건 불가능해. 예진이가 원한다면 모를까. 어떻게 맨몸으로 나가겠어. 결혼하고 나서 예진이가 출근은 안 했지만 내 수입도 부부 공동 재산에 속해. 예진이가 이혼 소송 걸면 재산의 절반을 나눠줘야 해. 이 집 대출은 결혼 뒤 내 월급으로 갚고 있지만 내 월급도 혼후 재산이라 예진이 몫이 있어. 이혼하고 걔한테 집을 안 줘도 일정한 금액을 보상해야 해. 내가 계산해봤는데 너무 많이 줄 필요는 없더라고. 인테리어 비용은 예진이가 냈어. 걔가 전에 나한테 한 말이 있거든. 나중에 이혼하면 인테리어 비용은 돌려달라고 했어.”“그 집은 인테리어랑 가전제품까지 포함해서 8400만 원이 들었는데 전부 예진이가 냈어. 그렇지만 나도 전에 똑똑히 얘기했어. 인테리어 비용은 일전 한 푼 돌려줄 수 없다고 말이야. 걔가 원해서 낸 돈이지 내가 협박한 건 아니잖아. 난 절대 돌려주지 않을 거야.”김은희가 말했다.“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받는 게 어디 있어? 그건 신경 쓰지 마. 예진이가 무슨 난리를 치든 거들떠보지도 마. 너희 둘 혼후 재산 똑똑히 계산해봤니? 정말 예진이한테 절반 나눠줘야 한다면 대체 얼마를 줘야 해?”“4천만 원 좌우야.”“4천만 원!”김은희가 고함을 질렀다.“안 돼, 형인아. 걔한테 4천만 원 줄 수 없어. 결혼하고 일전 한 푼 벌지 않았는데 무슨 자격으로 네 돈을 4천만 원이나 가져가! 딱 40만 원만 줘. 갖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라고 해.”4천만 원은 살을 도려내는 거나 다름없었다.주형인도 하예진에게
“네가 가서 얘기해. 더치페이 취소하고 앞으로 생활비 더 줄 테니까 이혼하지 말자고. 현주랑 함께 있을 때도 최대한 예진이한테 들키지 않도록 해.”“엄마, 나 반드시 이혼할 거야!”주형인이 단호하게 말했다.“현주는 결혼도 안 한 애가 나만 믿고 따라왔어. 나 반드시 현주 책임져야 해. 두 번 다시 현주 가슴 아프게 안 해.”김은희가 한심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예진이도 너랑 처음 결혼했어! 왜 예진이는 끝까지 책임 안 져? 지금 딴 여자 때문에 네 와이프 속상하게 하는 건 괜찮고?”“엄만 대체 누구 편이야?”김은희가 입을 삐죽거렸다.서현주는 달콤한 말로 그들의 마음을 살살 녹였지만 함께 살림을 차려 나가는 건 그래도 예진이가 더 나았다. 하예진은 고생을 겪어본 아이라 마음이 강하고 단단하지만 서현주는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과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고생이라곤 전혀 해보지 못했다.이런 여자는 함께 행복을 누릴 순 있어도 함께 역경을 파헤치기엔 역부족이다.“예진이한테 요 이틀 서로 시간을 갖자고 얘기했어. 모레 다시 찾아가서 이혼을 상의할 거야. 일단 조건부터 의논해보고 합의가 안 되면 그땐 날 고소하라고 하지 뭐. 어차피 난 무조건 이혼할 거야. 진작 예진이한테 질렸어.”주형인은 무언가에 홀린 듯 이혼하지 못해 안달이었다.예진에게 돈을 보상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그의 재산 일부에 불과했다.아빠 명의하에 있는 돈이야말로 그의 재산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금액은 무려 2억 원이고 하예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설사 그녀가 안다고 해도 증거가 없으니 제 앞으로 돌릴 순 없다.주형인의 부모님은 서로를 마주 봤다. 결국 주경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네가 이미 결정했다니 우리도 더 할 말이 없구나. 예진이한테 제대로 사과하고 이혼 합의 잘 봐. 돈을 좀 나눠주는 것 말곤 다른 물건은 일절 주지 마. 돈도 최대한 적게 줄 수 없을까? 400만 원 정도면 안 되겠니? 4천만 원은 너무 많아.”“그래. 결혼하고 나서 일전 한 푼 안 벌어들이고
주경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예진이한테 돈을 좀 더 줘도 돼. 너무 모질게 굴지 마. 너한테 여지를 남겨둬야지 않겠어? 앞으로 서로 볼 날이 더 많아. 다만 우빈이는 반드시 우리가 데려와야 해!”주우빈은 주씨 집안의 보물이나 다름없다!“약속할게, 아빠. 우빈이 양육권은 내가 반드시 가져와.”“너희 부부 이혼하기 전까진 네 맹세 믿을 수 없어. 그러니까 우빈이 데려와. 우리가 옆에 두고 있어야만 안심이 돼.”주형인이 막연한 표정으로 물었다.“엄마, 아빠는 우빈이 돌본 적이 없잖아. 무작정 데려와서 애가 적응하지 못하고 울면 어떡해?”김은희가 대답했다.“돌본 적이 없으니까 데려와서 친해지자는 거지. 너 이후에 재혼하면 현주가 우빈이 키워줄 것 같아? 아이는 우리한테 남을 거야. 적어도 우린 우빈의 친할머니, 할아버지잖니. 마음 착한 계모가 몇이나 돼? 게다가 너랑 현주가 아직 젊어서 둘이 또 애 가질 거 아니야? 우빈이는 현주 친자식이 아니니 걔가 절대 우빈이한테 잘해줄 리가 없어.”두 사람은 비록 우빈을 제대로 돌본 적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손자가 계모에게 학대 당할까 봐 걱정됐다.요즘 들어 새엄마가 전처의 자식을 학대하는 뉴스가 너무 많아졌고 심지어 어린 애들이 새엄마에게 맞아 죽은 사례들도 있었다.새엄마가 생기면 친아빠라 해도 아이에게 무덤덤해질 테니 주형인이 우빈을 잘 키울 거란 보장은 없다.주우빈은 주씨 집안의 첫 손주라 주경진 부부는 몹시 중히 여겼다.“나랑 네 아빠는 퇴직금도 좀 있고 아직 너무 늙진 않았으니 몸이 닿는 한 우빈이 잘 키울 수 있어. 넌 앞으로 생활비랑 우빈이 교육비만 보내주면 돼.”주형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 오늘 밤에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바로 우빈이 데려올게.”주경진 부부는 아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하예진 자매는 주씨 집안 사람들이 이혼 얘기를 꺼내면 막무가내로 굴 거라고 진작 예상했었다.하예정이 가게에서 눈 좀 붙이다가 깨어보니 어느덧 열한 시가 넘었다.심효진이 한
전태윤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태윤 씨, 오전에 버틸 만 했어요? 힘들면 회의 끝나고 반 차 내서 돌아와 휴식해요.”그녀의 관심 어린 말투에 전태윤은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검은색 회전의자에 기대어 빙글빙글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회사 돌아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지금까지 버텼어. 곧 퇴근이니까 눈 좀 붙이면 돼.”“밥은 안 먹어요?”“피곤하니 입맛 없어. 안 먹을래.”“그럼 안되죠. 오전에도 일하느라 바빴는데 점심까지 안 챙겨 먹으면 위 다 버려요.”전태윤이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먹고 싶지 않은 걸 어떡해.”“퇴근하고 일단 좀 자요. 이따가 내가 도시락 챙겨갈게요. 회사 문 앞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요.”전태윤은 그녀의 언니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하예정은 절대 그를 끼니를 거르게 할 수 없었다.“그래, 그럼 나 회사에서 눈 좀 붙이고 있을게. 도착하면 전화해. 운전 조심하고.”“난 가게에서 반나절 자고 나니 정신이 좀 들어요. 내 걱정 말고 태윤 씨 볼일 보고 좀 자요.”말을 마친 하예정이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주방으로 들어가 도시락을 꺼내 깨끗이 씻으며 숙희 아주머니에게 말했다.“아주머니, 태윤 씨 밥 먹으러 안 온대요. 이따가 도시락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 다들 먼저 드시고 음식 좀 남겨주세요. 난 돌아와서 먹을게요.”숙희 아주머니가 얼른 대답했다.“음식 다 만들었어요. 언니분 오시거든 함께 드시면 돼요. 아니면 그냥 예정 씨 먼저 드세요. 다녀오노라면 아마 오후 한 시가 다 될 거예요. 그때까지 배고파서 어떡해요.”하예정도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숙희 아주머니에게 전태윤이 먹을 밥과 국, 그리고 요리까지 도시락에 가득 담아달라고 했다.그러고는 재빨리 국 한 그릇과 밥 한 그릇 떠서 부랴부랴 먹었다.대충 배를 채운 후 그녀는 도시락을 들고 아주머니께 말했다.“나 먼저 갈게요. 이따가 가게 바쁠 때 우빈이 돌봐주시면 돼요.”학생들은 모두 자각적이라 딱히 지켜보지 않아도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
전태윤은 그를 속인 거였다. 하예정은 주우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눈이 왔구나. 우빈이 운이 좋네, 갔는데 바로 눈이 와서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됐구나.] [눈사람도 만들 수 있네. 이모는 지금까지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아침 맛있게 먹었어? 옷 많이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너희 셋째 작은 아버지는 여행 갔는데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있어야 돌아올 거야. 네가 따라가면 유치원에 못 가잖아.] 다행히 전호영은 빨리 도망친 덕분에 주우빈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하예정의 답장을 받은 주우빈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하예정과 주우빈은 30분 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전태윤은 중얼거렸다. “오늘에서야 우빈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랑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다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는 앞으로 수다쟁이가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따뜻한 남자가 될 거예요.” 따뜻한 남자에다 수다쟁이라니... “9시가 넘었네요. 부모님과 할머니도 일어나셨을 거예요. 우리도 얼른 서둘러야죠. 창빈 도련님은 오늘 원림성의 A 시로 가는 거예요?” 전태윤은 먼저 그녀의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월요일에 갈 거야. 이틀 정도는 집에서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려고.” 10여 분 후, 부부는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거실 소파에는 전현림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씨 할머니와 장소민, 그리고 어제 형의 집에서 잔 전창빈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님.” 부부는 전현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전현림은 부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어났구나. 아침 식사 준비해 뒀어. 아직 따뜻할 거야. 먹으러 가.” “엄마랑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전태윤이 물었다. “창빈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는데 창빈이도 같이 갔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시다니.” 전태윤이 말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예진아, 늦었어. 얼른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내일 아침 같이 먹자.” 노동명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 하예진은 그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동명 씨, 잘 자요.” “잘자.” 하예진은 그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직접 휠체어를 조종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달콤한 미소였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 출근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평소 일찍 일어나던 전태윤도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져 아내의 따뜻한 핫팩이 되어 주었다. 관성의 기온이 떨어져 정말 추웠지만 사실 기온은 아직 10도 정도였다. 낮에는 최대로 10도 중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관성 사람들은 너무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인터넷으로 두꺼운 옷을 주문했다. 관성 사람들이 옷을 주문하면 판매자들은 재빨리 발송했다. 며칠 후 주문이 취소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관성의 추위는 찬 공기가 남하할 때 며칠 동안 추워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발송이 늦으면 날씨가 풀리고 나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문을 취소하게 된다.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가장 추운 며칠 동안 전태윤은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그는 보일러를 켜면 하예정이 더워서 자신의 품에 안기지 않을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다. 그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예정이에게 들키면 안 돼. 아니면 또 교활하다고 할 거야.’ ‘카톡!’ 하예정의 카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지만 움직이기 싫어서 전태윤에게 말했다. “여보,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 좀 봐줘요. 너무 시끄러워요.” 전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빈일 거야.” “우빈이는 엄마랑 있어서 이렇게 일찍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직 꿈나라에 있을지도 몰라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꺼내 그녀에게 먹여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하예진은 그가 챙겨준 음식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그를 보고 말했다. “이제 됐네요. 야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또 산책하면서 소화라도 좀 시켜야겠어요.” 노동명이 일어나자 하예진과 보디가드가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를 밀면서 호텔까지 걸어가. 산책하면서 소화 시키는 거지.” 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걸어가면 길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길을 잘못 들면 우리 둘 다 강성의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돌아다녀야 할 거예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럴 리 없어.” 지금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관을 나오니 거리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천천히 밀며 걸었다. 보디가드들은 두 사람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보호했다. 걷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명 씨, 눈이 오네요. 빨리 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요.” 어느 정도 걷자 하예진은 더 이상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었다. “그래.” 노동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에게는 그녀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우빈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일구는 주우빈과 함께 있었다. 하예진이 돌아오자 강일구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빈이 자고 있어?” 노동명은 방에 들어와 주우빈을 보았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불을 살짝 덮어주며 말했다. “보일러 온도는 적당하면 돼, 너무 높일 필요 없어. 우빈이가 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이는 더우면 이불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다. 하예진은 온도를 조금 낮췄다. 노동명은 주우빈의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 더 덥지 않게 했다. 노동명의 행동을 보며 하예진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주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
우빈은 새 장난감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 놀고 싶었다.아직 강성의 밤 구경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일구 삼촌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서 놀아달라고 할래? 엄마랑 아저씨랑 좀 더 돌아다니다가 돌아갈게.”우빈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하여 강일구는 우빈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계속 돌아다녔다. 이는 두 사람만의 데이트나 다름없다.“동명 씨,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이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그 영화관 입구를 지나다녔는데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노동명이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그는 즉시 경호원에게 먼저 영화표를 사라고 지시했고 그와 하예진은 천천히 걸어갔다.십여 분 후, 두 사람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다.경호원은 표를 끊고 간식도 사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단지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고 구매한 표도 곧 시작하게 된다.영화관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면 곧 들어갈 수 있었다.노동명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한 손으로 경호원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하예진이 부축하여 들어갔다.자리에 앉은 노동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그와 하예진,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노동명은 자리에 앉은 뒤 감개무량하게 한마디 했다.하예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몇 년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요.”결혼한 뒤로 영화를 보기는커녕 주형인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것조차 점점 더 짜증을 냈다.그는 하예진이 물건을 살 때 항상 물건을 이리저리 비교하여 싼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싫어했다.하예진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배속의 태아를 돌봐야 했다. 저축한 돈은 모두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기에 돈 가방
하예진은 아들의 이마를 톡 쳤다.“뭐라고 한 거야?”우빈은 하예진이 때린 곳을 만지며 노동명에게 말했다.“아저씨, 엄마가 절 아프게 때렸어요. ‘호’ 해주세요.”노동명은 재빨리 불어주고는 다시 어루만져주며 하예진을 나무랐다.“예진아, 우빈 이마를 자꾸 치지 마. 똑똑한 애가 멍청해지면 어떡해.”“똑똑하면 똑똑하고 멍청하면 멍청한 아이인 거예요. 제가 몇 번 쳤다고 멍청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멍청한 건 녀석이 원래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우리 우빈은 똑똑하거든 멍청하지 않는단 말이야.”우빈은 하예진에게 혀를 내밀고는 얼른 노동명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노동명 아저씨가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빈을 아껴주던 노동명은 결국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가게에 들어간 우빈은 노동명 품으로부터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와 먼저 몇 권의 유아용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하예진의 앞에서 귀여운 얼굴을 들고 물었다.“엄마, 이거요. 저 장난감을 더 사도 돼요?”노동명이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녀석은 엄마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하예진이 그에게 새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고집한다면 그도 사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이 대답했다.“하나만 사.”우빈이가 대답했다.“네.”우빈은 장난감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하예진이 한 가지만 살 수 있다고 하니 하나만 사는 수밖에!녀석은 얼른 가서 그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노동명은 우빈이가 여러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전부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이 좋아하는 건 다 사자. 내가 선물로 사줄게.”“동명 씨, 너무 아이 뜻에만 따르면 안 돼요. 한 가지만 고르게 해요. 장난감도 가지고 왔던데.”그러나 하예진은 아들에게 장난감 하나만 사주겠다고 고집했다.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하예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빈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서 우빈에게 주고 싶었다.“우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아껴
“엄마, 하나만 사줘요. 네?”우빈은 계속해서 졸라댔다.“안 돼. 장난감을 사도 여기저기 쌓여 있을 텐데. 네가 놀다가도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대신 치워야 하잖아.”“엄마, 제가 다 치울게요. 앞으로 다 치울게요.”우빈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치우지 않을 때도 있었을 뿐이다.“장난감을 가지고 왔잖아.”하예진은 우빈에게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녀석이 장난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우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댔다.“새 장난감 사고 싶어요. 제가 새것 사 가서 동생에게 줄게요.”“그 동생은 아직 어려서 못 놀아.”“그럼, 스케치북을 사줘요. 글씨를 쓰고 숫자도 적으면서 놀래요. 네?”우빈이는 한발 물러서서 스케치북이라고 사고 싶었다.그 장난감 가게에는 연필들과 책들도 많았다.우빈은 그 가게를 다 돌아본 후에야 엄마를 찾으러 돌아와서 사달라고 졸랐다.강일구는 우빈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녀석은 감히 받지는 못하고 하예진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다.하예진은 항상 우빈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장난감 방도 가득 찼다고 잔소리했다.우빈은 장난감을 매우 사랑했다. 어떤 장난감은 실수로 망가져도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하예진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녀석은 전부 도로 주워왔다.“스케치북은 사줄게.”우빈은 금세 원숭이처럼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하에진이 그들을 밀고 앞으로 가게 했다.“엄마, 그럼 우리 스케치북 사러 가요.”가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었다.우빈은 여러 대의 큰 장난감 차와 강아지 인형이 갖고 싶었다.정말 탐나는 장난감이었다!그는 엄청 좋아했다.“스케치북만 사. 이따가 돌아오면 그림도 그려.”하예진은 그녀의 아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이마를 콕 찔렀다.“엄마가 네 곁에 없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노동명은 다정하게 말했다.“널 위해서 늘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 회사 일은 특히 중요할 때만 나가서 처리하거든. 우리 형도 도와줘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예진아,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로 재활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바보.”“아니거든. 난 단지 너와 우빈을 너무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남들은 네가 이혼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널 알게 되었을 때에도 넌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내가 왜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라... 근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아. 아마 너의 강인함과 감히 자신을 개변시키는 그 능력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난 우빈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난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우빈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저도 알아요. 저도 제 아들 덕을 봤죠.”노동명은 우빈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빈의 엄마, 즉 하예진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그러다가 접촉 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다.“우빈이가 우리 두 사람 중매를 선 거나 다름없어.”노동명은 헤벌쭉 웃었다.“태윤이도 마찬가지야. 태윤 때문이 아니었다면 널 알지도 못했을걸. 예진아, 네가 강성에서 일을 마치면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하예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동명이 계속하게 말했다.“내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도 난 결혼하고 싶어. 난 이미 스스로 설 수 있어. 그리고 몇 걸음 정도는 앞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1년이란 시간을 더 주면 분명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근데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노동명은 지금 36세이고, 2년만 더 기다리면 38세까지 될 것이다.곧 있으면 마흔이 된다.하예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저야 지금 당장이라도 동명 씨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근데 동명 씨가 원하지 않잖아요.”노동명은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