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서 얘기해. 더치페이 취소하고 앞으로 생활비 더 줄 테니까 이혼하지 말자고. 현주랑 함께 있을 때도 최대한 예진이한테 들키지 않도록 해.”“엄마, 나 반드시 이혼할 거야!”주형인이 단호하게 말했다.“현주는 결혼도 안 한 애가 나만 믿고 따라왔어. 나 반드시 현주 책임져야 해. 두 번 다시 현주 가슴 아프게 안 해.”김은희가 한심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예진이도 너랑 처음 결혼했어! 왜 예진이는 끝까지 책임 안 져? 지금 딴 여자 때문에 네 와이프 속상하게 하는 건 괜찮고?”“엄만 대체 누구 편이야?”김은희가 입을 삐죽거렸다.서현주는 달콤한 말로 그들의 마음을 살살 녹였지만 함께 살림을 차려 나가는 건 그래도 예진이가 더 나았다. 하예진은 고생을 겪어본 아이라 마음이 강하고 단단하지만 서현주는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과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고생이라곤 전혀 해보지 못했다.이런 여자는 함께 행복을 누릴 순 있어도 함께 역경을 파헤치기엔 역부족이다.“예진이한테 요 이틀 서로 시간을 갖자고 얘기했어. 모레 다시 찾아가서 이혼을 상의할 거야. 일단 조건부터 의논해보고 합의가 안 되면 그땐 날 고소하라고 하지 뭐. 어차피 난 무조건 이혼할 거야. 진작 예진이한테 질렸어.”주형인은 무언가에 홀린 듯 이혼하지 못해 안달이었다.예진에게 돈을 보상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그의 재산 일부에 불과했다.아빠 명의하에 있는 돈이야말로 그의 재산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금액은 무려 2억 원이고 하예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설사 그녀가 안다고 해도 증거가 없으니 제 앞으로 돌릴 순 없다.주형인의 부모님은 서로를 마주 봤다. 결국 주경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네가 이미 결정했다니 우리도 더 할 말이 없구나. 예진이한테 제대로 사과하고 이혼 합의 잘 봐. 돈을 좀 나눠주는 것 말곤 다른 물건은 일절 주지 마. 돈도 최대한 적게 줄 수 없을까? 400만 원 정도면 안 되겠니? 4천만 원은 너무 많아.”“그래. 결혼하고 나서 일전 한 푼 안 벌어들이고
주경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예진이한테 돈을 좀 더 줘도 돼. 너무 모질게 굴지 마. 너한테 여지를 남겨둬야지 않겠어? 앞으로 서로 볼 날이 더 많아. 다만 우빈이는 반드시 우리가 데려와야 해!”주우빈은 주씨 집안의 보물이나 다름없다!“약속할게, 아빠. 우빈이 양육권은 내가 반드시 가져와.”“너희 부부 이혼하기 전까진 네 맹세 믿을 수 없어. 그러니까 우빈이 데려와. 우리가 옆에 두고 있어야만 안심이 돼.”주형인이 막연한 표정으로 물었다.“엄마, 아빠는 우빈이 돌본 적이 없잖아. 무작정 데려와서 애가 적응하지 못하고 울면 어떡해?”김은희가 대답했다.“돌본 적이 없으니까 데려와서 친해지자는 거지. 너 이후에 재혼하면 현주가 우빈이 키워줄 것 같아? 아이는 우리한테 남을 거야. 적어도 우린 우빈의 친할머니, 할아버지잖니. 마음 착한 계모가 몇이나 돼? 게다가 너랑 현주가 아직 젊어서 둘이 또 애 가질 거 아니야? 우빈이는 현주 친자식이 아니니 걔가 절대 우빈이한테 잘해줄 리가 없어.”두 사람은 비록 우빈을 제대로 돌본 적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손자가 계모에게 학대 당할까 봐 걱정됐다.요즘 들어 새엄마가 전처의 자식을 학대하는 뉴스가 너무 많아졌고 심지어 어린 애들이 새엄마에게 맞아 죽은 사례들도 있었다.새엄마가 생기면 친아빠라 해도 아이에게 무덤덤해질 테니 주형인이 우빈을 잘 키울 거란 보장은 없다.주우빈은 주씨 집안의 첫 손주라 주경진 부부는 몹시 중히 여겼다.“나랑 네 아빠는 퇴직금도 좀 있고 아직 너무 늙진 않았으니 몸이 닿는 한 우빈이 잘 키울 수 있어. 넌 앞으로 생활비랑 우빈이 교육비만 보내주면 돼.”주형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 오늘 밤에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바로 우빈이 데려올게.”주경진 부부는 아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하예진 자매는 주씨 집안 사람들이 이혼 얘기를 꺼내면 막무가내로 굴 거라고 진작 예상했었다.하예정이 가게에서 눈 좀 붙이다가 깨어보니 어느덧 열한 시가 넘었다.심효진이 한
전태윤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태윤 씨, 오전에 버틸 만 했어요? 힘들면 회의 끝나고 반 차 내서 돌아와 휴식해요.”그녀의 관심 어린 말투에 전태윤은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검은색 회전의자에 기대어 빙글빙글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회사 돌아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지금까지 버텼어. 곧 퇴근이니까 눈 좀 붙이면 돼.”“밥은 안 먹어요?”“피곤하니 입맛 없어. 안 먹을래.”“그럼 안되죠. 오전에도 일하느라 바빴는데 점심까지 안 챙겨 먹으면 위 다 버려요.”전태윤이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먹고 싶지 않은 걸 어떡해.”“퇴근하고 일단 좀 자요. 이따가 내가 도시락 챙겨갈게요. 회사 문 앞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요.”전태윤은 그녀의 언니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하예정은 절대 그를 끼니를 거르게 할 수 없었다.“그래, 그럼 나 회사에서 눈 좀 붙이고 있을게. 도착하면 전화해. 운전 조심하고.”“난 가게에서 반나절 자고 나니 정신이 좀 들어요. 내 걱정 말고 태윤 씨 볼일 보고 좀 자요.”말을 마친 하예정이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주방으로 들어가 도시락을 꺼내 깨끗이 씻으며 숙희 아주머니에게 말했다.“아주머니, 태윤 씨 밥 먹으러 안 온대요. 이따가 도시락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 다들 먼저 드시고 음식 좀 남겨주세요. 난 돌아와서 먹을게요.”숙희 아주머니가 얼른 대답했다.“음식 다 만들었어요. 언니분 오시거든 함께 드시면 돼요. 아니면 그냥 예정 씨 먼저 드세요. 다녀오노라면 아마 오후 한 시가 다 될 거예요. 그때까지 배고파서 어떡해요.”하예정도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숙희 아주머니에게 전태윤이 먹을 밥과 국, 그리고 요리까지 도시락에 가득 담아달라고 했다.그러고는 재빨리 국 한 그릇과 밥 한 그릇 떠서 부랴부랴 먹었다.대충 배를 채운 후 그녀는 도시락을 들고 아주머니께 말했다.“나 먼저 갈게요. 이따가 가게 바쁠 때 우빈이 돌봐주시면 돼요.”학생들은 모두 자각적이라 딱히 지켜보지 않아도
어르신은 캐리어를 끌고 소파 쪽으로 걸어가더니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태윤아, 나 너랑 예정이네 집으로 들어가서 살 거야.”전태윤의 표정이 확 굳었다.“할머니, 나랑 약속했잖아요...”“내가 방해하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긴장해? 뭐가 걱정되는 거야?”할머니가 반박하더니 곧바로 당당하게 쏘아붙였다.“네 아빠랑 삼촌이 집에서 날 쫓아냈어. 갈 곳이 없어서 손자를 찾아왔는데 왜 안 돼? 너도 네 아빠랑 삼촌처럼 이 할미를 내쫓으려고? 아이고, 사람이 늙으면 다 싫어하는 법이지. 어딜 가나 내쫓는구려. 아들 키워서 뭔 소용이야, 손자 길러서 뭔 소용이냐고? 착하고 다정한 손녀나 키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전태윤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 아빠랑 삼촌은 절대 할머니를 내쫓을 리가 없어요.”아무리 손자랑 함께 지내고 싶어도 어떻게 아빠와 삼촌에게 불효의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냐는 말이다.어르신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렇다고 며느리가 내쫓았다고 할 순 없잖니? 아들은 내가 낳은 자식이라 아무렇게 말해도 괜찮지만 며느리는 친자식이 아니야. 함부로 며느리에게 먹칠할 순 없지.”전태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얘기 다 들었어.”전태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얘기를 들으셨는데요?”“네 처형이 이혼한다면서. 지금이 바로 네가 점수를 딸 좋은 기회야. 처형을 도와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면 예정이도 너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할 거야. 그렇게 되면 나도 곧 증손녀를 안을 수 있겠지. 이 할미가 너무 많은 볼거리를 놓쳤어. 이번엔 누가 뭐래도 놓치지 않아. 반드시 너희 집에 이사 가서 함께 지낼 거다. 네가 허락 안 하면 예정이 찾아가서 이를 거야. 네가 불효자라 이 할미가 갈 곳 없는데도 문전박대한다고 말이야.”전태윤의 표정이 한없이 어두워졌다.“할머니, 너무 막무가내세요.”“너한테 무슨 도리를 따져.”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짐도 다 챙겨왔는데 못 들어가게 하면 너희 집 문 앞에 돗자리 펴야지 어쩌겠어. 예정이가 널 불효자
“전에 누가 ‘난 질투 같은 거 유치해서 안 해!’ 라고 했는데 태윤이 넌 그게 누군지 알아?”전태윤은 낯빛이 어두워지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가 아무 말도 잇지 못하자 어르신은 드디어 화제를 돌렸다.“성소현은 계속 널 기다리고 있어?”“그 사람은 더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아요.”성소현은 요 이틀 더는 회사에 찾아와 전태윤을 기다리지 않았다.그리고 하예정에게도 분명히 말해두었다. 전태윤에게 여자친구가 있거나 결혼을 했다면 절대 그에게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이다.이 얘기를 전해 들은 전태윤은 성소현을 다시 보게 되었다.제 사랑을 좇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진 않았다. 교만하고 제멋대로인 성소현은 이 방면에서 많은 사람보다 나았다.“성소현은 너랑 예정이 사이를 알고 있어?”“아니요. 그저 제 왼손 좀 보여주니까 알아서 물러서던데요.”어르신이 혀를 끌끌 찼다.“네 왼손이 뭐라고 한번 보여줬을 뿐인데 알아서 물러서겠니? 한심한 녀석.”전태윤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금반지를 꺼내 조용히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할머니께 흔들어 보였다.할머니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할머니, 이진이 불러올 테니 함께 식사하러 가요. 캐리어도 챙기고요. 식사 다하시거든 이진이더러 예정이 가게로 할머니 모셔드리라고 할게요.”어르신이 뭐라 말하려 할 때 전태윤이 한마디 더 보탰다.“할머니, 이진이도 이젠 어린 나이가 아니에요. 종일 저만 지켜보지 마세요. 적어도 저는 결혼해서 와이프가 있는데 이진이는 아직 싱글이잖아요. 인제 그만 목표 바꾸세요. 이진이도 맨날 할머니가 저만 편애한다고 뭐라 하잖아요.”어르신이 입을 삐죽거렸다.“내가 아직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지 못했잖니.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거든 네 그 동생들,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할 줄 알아. 이진이 부를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말을 마친 어르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문밖을 나서려 했다.전태윤은 여전히 동생에게 알려 어르신을 모시고 가라고 했다
전이진은 할머니를 모시고 로비로 내려갔다. 두 사람은 나란히 호텔로 식사하러 갔다.문밖을 나서자마자 눈치 빠른 전이진이 바로 하예정을 발견했다.“할머니, 태윤 형이 왜 나더러 할머니 모시고 식사하러 가라고 했는지 드디어 알았어요.”그는 회사 문 앞을 가리키며 할머니께 말했다.“형수님이 오셨어요. 도시락까지 들고 온 걸 보니 태윤 형한테 주는 건가 봐요.”‘어쩐지 태윤 형이 성급하게 나더러 할머니 모셔가라고 하더라니, 할머니가 방해꾼이 될까 봐 그런 거였어.’어르신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정말 예정이네. 얼른 태윤이한테 전화해서 사무실 바꾸라고 해. 네 사무실로 가면 되겠다. 절대 예정이한테 들켜선 안 돼.”전이진은 알겠다고 말한 후 곧바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그가 알리지 않아도 전태윤은 진작 하예정이 올 걸 알고 있었다.그의 서랍 속에 망원경이 있어 할머니를 보내자마자 망원경을 들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하예정의 차가 들어온 걸 확인한 후 그는 망원경을 제자리에 넣어놓고 곧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전이진은 할머니를 모시고 직접 운전했다.그는 회사 입구에서 차를 세우고 도어를 내리며 하예정에게 인사했다.“할머니, 이진 씨.”하예정이 웃으며 다가와 물었다.“할머니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어르신은 일부러 표정을 찡그리며 대답했다.“한두 마디로 얘기하기 힘들 것 같구나. 예정아, 우리 먼저 밥 먹으러 갈게. 나 너무 배고파. 저녁에 다시 얘기해.”“무슨 일이신데요? 알겠어요, 할머니. 얼른 가서 식사하세요.”“형수님, 저 할머니 모시고 밥 먹으러 가요. 태윤 형은 아직 사무실에 있어요. 전화하시면 바로 마중 나올 거예요.”말을 마친 전이진은 할머니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멀리 운전해서 나간 후 그가 웃으며 말했다.“나 매일 이 차 타고 출근하는 거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혹여나 형수님이 회사로 찾아왔다가 내가 고급 외제차 타는 거 보시면 바로 나부터 의심할 거 아니에요. 그때 되면 태윤 형이 날 아작낼
“난 이미 먹었어요.”하예정은 곧바로 대답하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그럼 내가 옆에 있어 줄게요. 태윤 씨 다 먹으면 돌아갈게요.”전태윤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우리 사무실로 가.”하예정은 또다시 붐비는 인파를 바라보며 떠보듯이 물었다.“난 태윤 씨 회사 직원도 아닌데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어요?”“나랑 함께 들어가면 돼.”그가 손을 내밀자 하예정은 머뭇거리다가 살며시 손을 잡았다.전태윤은 그녀의 손을 잡고 몰래 웃음을 훔쳤다. 물론 하예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전태윤은 한 손에 그녀가 준 도시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다들 놀라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대표님.”“대표님.”다들 전태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하예정에게도 인사치레로 머리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의 정체를 추측하기에 바빴다.대표님께서 손까지 잡았으니 대표님이 좋아하는 사람일 게 틀림없었다.그나저나 전 대표한테 언제 여자친구가 생겼었지?그야말로 철통 보안이었다. 오늘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다들 전 대표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믿지 않을 것이다. 어쩐지 성소현도 더는 전 대표를 찾아오지 않더라니,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그런 듯싶었다.성소현은 비록 교만하고 제멋대로지만 그녀도 나름대로 재벌 출신이라 딴사람과 한 남자를 빼앗으려 하진 않는다.누군가가 휴대폰으로 전태윤과 하예정을 찍으려 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황급히 말렸다.“죽고 싶어 환장했어? 감히 대표님을 도촬하려 해?”그 사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정면을 찍은 것도 아니고 뒷모습만 찍겠다잖아. 우리 대표님이 드디어 연애하시는데 이런 빅 뉴스가 어디 있어. 카카오 스토리에 올리고 싶단 말이야.”“뒷모습도 안돼. 대표님께서 공개하지 않은 이상 절대 촬영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서도 안 돼.”그 사람은 잠시 생각하더니 사색이 되어 재빨리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말려준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전 대표의
전태윤은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말했다.“우리 회사에서 출근해보면 알아. 여긴 대표, 부대표가 엄청 많아. 다들 책임진 구역이 다르거든. 아무튼 회사에서 내 위치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하예정이 혀를 쏙 내밀었다.“내가 이 회사에 들어올 실력이 없어서 참 다행이네요. 입사했더라면 그 많은 대표님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요.”전태윤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넌 지금 이대로가 좋아. 자유롭지, 수입도 낮은 편이 아니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 같은 자영업자를 부러워하는지 알아?”“난 누군가에게 속박당하는 느낌이 싫어서 졸업하자마자 효진이랑 함께 가게를 꾸렸어요. 효진의 집에서 도와줬으니 망정이지 우리 하마터면 경영권을 못 가져올 뻔했다니까요.”학교 근처에서 가게를 꾸리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저 파키라는 내 온라인 스토어에서 샀어요?”하예정은 전이진의 책상에 놓인 파키라를 바라보며 물었다.전태윤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전이진의 파키라가 너무 눈에 거슬렸다. 왜냐하면 둘째가 일전 한 푼 안 쓰고 얻어왔으니까.“아까 큰 칸 사무실 지나오면서 못 발견했어? 다들 책상에 파키라나 머니 트리 공예품을 하나씩 놓았어. 혹은 뭐 럭키 캣도 있고, 아무튼 전부 다 네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매한 거야.”하예정은 문득 성취감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이게 다 태윤 씨랑 이진 씨 덕분이에요. 소현 씨 공로도 크고요.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서 홍보도 해주었고 소현 씨 오빠한테도 내 공예품을 사서 사무실에 놓으라고 했어요. 매출을 올려주겠다고 엄청 신경 써줬죠. 지금은 온라인 스토어 매출이 서점을 훌쩍 뛰어넘었다니까요.”친구가 많으면 길이 많이 트이는 법이고 성소현처럼 전폭적으로 도와주는 친구가 있으면 나아갈 길이 탄탄대로가 될 것이다.전태윤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와이프의 공예품이 라이벌의 사무실에까지 놓이다니.그도 아직은 성씨 그룹에 성공적으로 투입되지 못했는데 와이프가 그보다 유능하여 먼저 성씨 그룹에 침입해 들어갔다.‘역시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