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몸이 너무 뚱뚱해. 내가 매일 출근 전에 회사 건물 앞 작은 공원을 다섯 바퀴 뛰고 출근하라고 했거든. 못 뛰면 출근하지 말라고 했어. 이렇게라도 다이어트하게 하려고. 한 달이면 효과가 별로 없으니까 수습 기간 3개월로 한 거야.”전태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동명이가 꽤 신경 많이 썼네? 일자리를 마련해준 것도 모자라 비주얼과 몸매까지 걱정하다니. 정말 이 세상에 얘보다 더 좋은 대표는 없을 거야.”“동명아, 수습 기간을 한 달로 줄이고 수습 기간이 끝나면 월급도 올려줘. 만약 처형의 능력이 월급을 올려줄 정도로 뛰어나지 않다면 매달 올린 월급은 내가 따로 너한테 줄게.”“예진 씨 아직은 그냥 재무팀 팀원이라 월급을 올려줘도 얼마 못 올려줘. 많아봤자 이삼십만 원이야. 그걸로 되겠어?”그러자 전태윤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삼십만 원이 너한테는 보잘것없겠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엄청 큰돈이야. 처형이 지금 이혼 준비하는데 아들의 양육권을 가지려면 안정적인 직장에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양육권을 가져올 수 있거든.”“예전에 유진 테크에서 최고재무관리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능력은 뭐 말할 것도 없어. 오히려 지금 재무팀 팀원 자리를 준 게 미안할 정도야. 수습 기간이 끝나고 월급을 올려주는 건 그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괜찮을 거야. 내가 그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따로 안 줘도 돼.”노동명은 소정남만큼 가십거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얘기의 중점을 잘 캐치한 노동명은 전태윤이 자연스럽게 ‘처형’ 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하예진은 하예정의 언니이고 하예정은 전태윤의 아내이다. 하여 전태윤이 하예진을 ‘처형’ 이라고 부르는 건 당연했다.“고마워, 동명아.”“고맙긴. 예진 씨 지금은 우리 회사 직원인데 당연히 월급 줘야지. 예진 씨 이혼한대?”“남편이 바람 피웠어.”노동명의 얼굴에 전혀 놀란 기색이 없이 덤덤했다.“예전에 우연히 두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혼자 애를 데리고 길거리를 거닐더라고. 두 번째 만났을 땐
“우빈이 괜찮니?”김은희는 그런 일을 해놓고 돌아오니 손자가 조금 걱정됐다.정한의 감기로 온 집안이 바람 잘 날 없었다. 반복적인 고열만으로도 어른들의 가슴을 졸였다.우빈은 정한보다 한 살 어려 진짜 감염되면 얼마나 들볶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다.“나 아직 집에 안 들어가서 우빈이 못 봤어. 아마 괜찮을 거야. 아파트 근처에서 보니까 예진이가 전처럼 출근하던데.”밤새 난리를 피우고 그와 서현주를 두들겨 패기까지 했는데 다음날 하예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출근했다.주형인은 그나마 괜찮지만 서현주는 지금까지 호텔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대문짝만한 손찌검 자국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어젯밤 하예진 자매가 떠난 후 서현주는 그를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모든 굴욕이 전부 주형인 때문이라고 원망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우는 모습에 주형인은 가슴이 아팠다.이 일로 그는 이혼할 마음을 더욱 굳혔다.“그럼 다행이네. 나도 시름이 놓이는구나. 그런 일을 하니 이 어미의 마음도 몹시 불편했단다. 우빈이는 어찌 됐든 내 손주 녀석이잖니. 예진이는 참 독해. 그렇게 어린 애를 내버려 두고 출근하다니.”김은희는 잘못을 하예진에게 돌렸다.“형인아, 왜 꼭 지금 이혼하려고 해? 엄마한테 말해줄 수 있어?”주형인은 또다시 담배를 두어 모금 빨고 고개 들어 난감한 표정으로 부모님을 쳐다보았다.“어젯밤에 현주랑 함께 호텔에 있다가 예진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급한 일인 줄 알고 현주가 대신 받았어. 그런데 뜻밖에도 예진이가 호텔로 찾아온 거야. 처제까지 데리고 와서 나랑 현주 현장을 잡았다니까...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고 현주는 예진이한테 심하게 맞아서 아직도 호텔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어. 엄마, 나 더이상 예진이랑 못 살겠어. 하루도 지낼 수 없어. 당장 이혼할래!”그의 부모님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주경진이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아들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주형인은 아빠가 그에게 손댈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는 가차
보아하니 아들 녀석은 이혼할 마음을 굳힌 듯싶었다. 서현주와 호텔까지 갔고 하예진에게 외도 현장까지 들켰으니 하예진의 성격상 절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김은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형인아, 너랑 예진이 결혼하고 나서 줄곧 너만 출근해서 돈 벌었어. 걔는 수입이 아예 없었어. 이혼하게 되면 절차만 밟고 옷이랑 짐 챙겨서 나가라고 해. 다른 물건은 일절 못 가져가!”이미 정해진 이혼이니 최대한 손실을 줄여야 한다.“엄마, 아무것도 못 가져간다는 건 불가능해. 예진이가 원한다면 모를까. 어떻게 맨몸으로 나가겠어. 결혼하고 나서 예진이가 출근은 안 했지만 내 수입도 부부 공동 재산에 속해. 예진이가 이혼 소송 걸면 재산의 절반을 나눠줘야 해. 이 집 대출은 결혼 뒤 내 월급으로 갚고 있지만 내 월급도 혼후 재산이라 예진이 몫이 있어. 이혼하고 걔한테 집을 안 줘도 일정한 금액을 보상해야 해. 내가 계산해봤는데 너무 많이 줄 필요는 없더라고. 인테리어 비용은 예진이가 냈어. 걔가 전에 나한테 한 말이 있거든. 나중에 이혼하면 인테리어 비용은 돌려달라고 했어.”“그 집은 인테리어랑 가전제품까지 포함해서 8400만 원이 들었는데 전부 예진이가 냈어. 그렇지만 나도 전에 똑똑히 얘기했어. 인테리어 비용은 일전 한 푼 돌려줄 수 없다고 말이야. 걔가 원해서 낸 돈이지 내가 협박한 건 아니잖아. 난 절대 돌려주지 않을 거야.”김은희가 말했다.“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받는 게 어디 있어? 그건 신경 쓰지 마. 예진이가 무슨 난리를 치든 거들떠보지도 마. 너희 둘 혼후 재산 똑똑히 계산해봤니? 정말 예진이한테 절반 나눠줘야 한다면 대체 얼마를 줘야 해?”“4천만 원 좌우야.”“4천만 원!”김은희가 고함을 질렀다.“안 돼, 형인아. 걔한테 4천만 원 줄 수 없어. 결혼하고 일전 한 푼 벌지 않았는데 무슨 자격으로 네 돈을 4천만 원이나 가져가! 딱 40만 원만 줘. 갖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라고 해.”4천만 원은 살을 도려내는 거나 다름없었다.주형인도 하예진에게
“네가 가서 얘기해. 더치페이 취소하고 앞으로 생활비 더 줄 테니까 이혼하지 말자고. 현주랑 함께 있을 때도 최대한 예진이한테 들키지 않도록 해.”“엄마, 나 반드시 이혼할 거야!”주형인이 단호하게 말했다.“현주는 결혼도 안 한 애가 나만 믿고 따라왔어. 나 반드시 현주 책임져야 해. 두 번 다시 현주 가슴 아프게 안 해.”김은희가 한심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예진이도 너랑 처음 결혼했어! 왜 예진이는 끝까지 책임 안 져? 지금 딴 여자 때문에 네 와이프 속상하게 하는 건 괜찮고?”“엄만 대체 누구 편이야?”김은희가 입을 삐죽거렸다.서현주는 달콤한 말로 그들의 마음을 살살 녹였지만 함께 살림을 차려 나가는 건 그래도 예진이가 더 나았다. 하예진은 고생을 겪어본 아이라 마음이 강하고 단단하지만 서현주는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과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고생이라곤 전혀 해보지 못했다.이런 여자는 함께 행복을 누릴 순 있어도 함께 역경을 파헤치기엔 역부족이다.“예진이한테 요 이틀 서로 시간을 갖자고 얘기했어. 모레 다시 찾아가서 이혼을 상의할 거야. 일단 조건부터 의논해보고 합의가 안 되면 그땐 날 고소하라고 하지 뭐. 어차피 난 무조건 이혼할 거야. 진작 예진이한테 질렸어.”주형인은 무언가에 홀린 듯 이혼하지 못해 안달이었다.예진에게 돈을 보상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그의 재산 일부에 불과했다.아빠 명의하에 있는 돈이야말로 그의 재산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금액은 무려 2억 원이고 하예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설사 그녀가 안다고 해도 증거가 없으니 제 앞으로 돌릴 순 없다.주형인의 부모님은 서로를 마주 봤다. 결국 주경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네가 이미 결정했다니 우리도 더 할 말이 없구나. 예진이한테 제대로 사과하고 이혼 합의 잘 봐. 돈을 좀 나눠주는 것 말곤 다른 물건은 일절 주지 마. 돈도 최대한 적게 줄 수 없을까? 400만 원 정도면 안 되겠니? 4천만 원은 너무 많아.”“그래. 결혼하고 나서 일전 한 푼 안 벌어들이고
주경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예진이한테 돈을 좀 더 줘도 돼. 너무 모질게 굴지 마. 너한테 여지를 남겨둬야지 않겠어? 앞으로 서로 볼 날이 더 많아. 다만 우빈이는 반드시 우리가 데려와야 해!”주우빈은 주씨 집안의 보물이나 다름없다!“약속할게, 아빠. 우빈이 양육권은 내가 반드시 가져와.”“너희 부부 이혼하기 전까진 네 맹세 믿을 수 없어. 그러니까 우빈이 데려와. 우리가 옆에 두고 있어야만 안심이 돼.”주형인이 막연한 표정으로 물었다.“엄마, 아빠는 우빈이 돌본 적이 없잖아. 무작정 데려와서 애가 적응하지 못하고 울면 어떡해?”김은희가 대답했다.“돌본 적이 없으니까 데려와서 친해지자는 거지. 너 이후에 재혼하면 현주가 우빈이 키워줄 것 같아? 아이는 우리한테 남을 거야. 적어도 우린 우빈의 친할머니, 할아버지잖니. 마음 착한 계모가 몇이나 돼? 게다가 너랑 현주가 아직 젊어서 둘이 또 애 가질 거 아니야? 우빈이는 현주 친자식이 아니니 걔가 절대 우빈이한테 잘해줄 리가 없어.”두 사람은 비록 우빈을 제대로 돌본 적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손자가 계모에게 학대 당할까 봐 걱정됐다.요즘 들어 새엄마가 전처의 자식을 학대하는 뉴스가 너무 많아졌고 심지어 어린 애들이 새엄마에게 맞아 죽은 사례들도 있었다.새엄마가 생기면 친아빠라 해도 아이에게 무덤덤해질 테니 주형인이 우빈을 잘 키울 거란 보장은 없다.주우빈은 주씨 집안의 첫 손주라 주경진 부부는 몹시 중히 여겼다.“나랑 네 아빠는 퇴직금도 좀 있고 아직 너무 늙진 않았으니 몸이 닿는 한 우빈이 잘 키울 수 있어. 넌 앞으로 생활비랑 우빈이 교육비만 보내주면 돼.”주형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 오늘 밤에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바로 우빈이 데려올게.”주경진 부부는 아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하예진 자매는 주씨 집안 사람들이 이혼 얘기를 꺼내면 막무가내로 굴 거라고 진작 예상했었다.하예정이 가게에서 눈 좀 붙이다가 깨어보니 어느덧 열한 시가 넘었다.심효진이 한
전태윤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태윤 씨, 오전에 버틸 만 했어요? 힘들면 회의 끝나고 반 차 내서 돌아와 휴식해요.”그녀의 관심 어린 말투에 전태윤은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검은색 회전의자에 기대어 빙글빙글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회사 돌아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지금까지 버텼어. 곧 퇴근이니까 눈 좀 붙이면 돼.”“밥은 안 먹어요?”“피곤하니 입맛 없어. 안 먹을래.”“그럼 안되죠. 오전에도 일하느라 바빴는데 점심까지 안 챙겨 먹으면 위 다 버려요.”전태윤이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먹고 싶지 않은 걸 어떡해.”“퇴근하고 일단 좀 자요. 이따가 내가 도시락 챙겨갈게요. 회사 문 앞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요.”전태윤은 그녀의 언니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하예정은 절대 그를 끼니를 거르게 할 수 없었다.“그래, 그럼 나 회사에서 눈 좀 붙이고 있을게. 도착하면 전화해. 운전 조심하고.”“난 가게에서 반나절 자고 나니 정신이 좀 들어요. 내 걱정 말고 태윤 씨 볼일 보고 좀 자요.”말을 마친 하예정이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주방으로 들어가 도시락을 꺼내 깨끗이 씻으며 숙희 아주머니에게 말했다.“아주머니, 태윤 씨 밥 먹으러 안 온대요. 이따가 도시락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 다들 먼저 드시고 음식 좀 남겨주세요. 난 돌아와서 먹을게요.”숙희 아주머니가 얼른 대답했다.“음식 다 만들었어요. 언니분 오시거든 함께 드시면 돼요. 아니면 그냥 예정 씨 먼저 드세요. 다녀오노라면 아마 오후 한 시가 다 될 거예요. 그때까지 배고파서 어떡해요.”하예정도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숙희 아주머니에게 전태윤이 먹을 밥과 국, 그리고 요리까지 도시락에 가득 담아달라고 했다.그러고는 재빨리 국 한 그릇과 밥 한 그릇 떠서 부랴부랴 먹었다.대충 배를 채운 후 그녀는 도시락을 들고 아주머니께 말했다.“나 먼저 갈게요. 이따가 가게 바쁠 때 우빈이 돌봐주시면 돼요.”학생들은 모두 자각적이라 딱히 지켜보지 않아도
어르신은 캐리어를 끌고 소파 쪽으로 걸어가더니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태윤아, 나 너랑 예정이네 집으로 들어가서 살 거야.”전태윤의 표정이 확 굳었다.“할머니, 나랑 약속했잖아요...”“내가 방해하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긴장해? 뭐가 걱정되는 거야?”할머니가 반박하더니 곧바로 당당하게 쏘아붙였다.“네 아빠랑 삼촌이 집에서 날 쫓아냈어. 갈 곳이 없어서 손자를 찾아왔는데 왜 안 돼? 너도 네 아빠랑 삼촌처럼 이 할미를 내쫓으려고? 아이고, 사람이 늙으면 다 싫어하는 법이지. 어딜 가나 내쫓는구려. 아들 키워서 뭔 소용이야, 손자 길러서 뭔 소용이냐고? 착하고 다정한 손녀나 키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전태윤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 아빠랑 삼촌은 절대 할머니를 내쫓을 리가 없어요.”아무리 손자랑 함께 지내고 싶어도 어떻게 아빠와 삼촌에게 불효의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냐는 말이다.어르신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렇다고 며느리가 내쫓았다고 할 순 없잖니? 아들은 내가 낳은 자식이라 아무렇게 말해도 괜찮지만 며느리는 친자식이 아니야. 함부로 며느리에게 먹칠할 순 없지.”전태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얘기 다 들었어.”전태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얘기를 들으셨는데요?”“네 처형이 이혼한다면서. 지금이 바로 네가 점수를 딸 좋은 기회야. 처형을 도와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면 예정이도 너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할 거야. 그렇게 되면 나도 곧 증손녀를 안을 수 있겠지. 이 할미가 너무 많은 볼거리를 놓쳤어. 이번엔 누가 뭐래도 놓치지 않아. 반드시 너희 집에 이사 가서 함께 지낼 거다. 네가 허락 안 하면 예정이 찾아가서 이를 거야. 네가 불효자라 이 할미가 갈 곳 없는데도 문전박대한다고 말이야.”전태윤의 표정이 한없이 어두워졌다.“할머니, 너무 막무가내세요.”“너한테 무슨 도리를 따져.”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짐도 다 챙겨왔는데 못 들어가게 하면 너희 집 문 앞에 돗자리 펴야지 어쩌겠어. 예정이가 널 불효자
“전에 누가 ‘난 질투 같은 거 유치해서 안 해!’ 라고 했는데 태윤이 넌 그게 누군지 알아?”전태윤은 낯빛이 어두워지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가 아무 말도 잇지 못하자 어르신은 드디어 화제를 돌렸다.“성소현은 계속 널 기다리고 있어?”“그 사람은 더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아요.”성소현은 요 이틀 더는 회사에 찾아와 전태윤을 기다리지 않았다.그리고 하예정에게도 분명히 말해두었다. 전태윤에게 여자친구가 있거나 결혼을 했다면 절대 그에게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이다.이 얘기를 전해 들은 전태윤은 성소현을 다시 보게 되었다.제 사랑을 좇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진 않았다. 교만하고 제멋대로인 성소현은 이 방면에서 많은 사람보다 나았다.“성소현은 너랑 예정이 사이를 알고 있어?”“아니요. 그저 제 왼손 좀 보여주니까 알아서 물러서던데요.”어르신이 혀를 끌끌 찼다.“네 왼손이 뭐라고 한번 보여줬을 뿐인데 알아서 물러서겠니? 한심한 녀석.”전태윤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금반지를 꺼내 조용히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할머니께 흔들어 보였다.할머니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할머니, 이진이 불러올 테니 함께 식사하러 가요. 캐리어도 챙기고요. 식사 다하시거든 이진이더러 예정이 가게로 할머니 모셔드리라고 할게요.”어르신이 뭐라 말하려 할 때 전태윤이 한마디 더 보탰다.“할머니, 이진이도 이젠 어린 나이가 아니에요. 종일 저만 지켜보지 마세요. 적어도 저는 결혼해서 와이프가 있는데 이진이는 아직 싱글이잖아요. 인제 그만 목표 바꾸세요. 이진이도 맨날 할머니가 저만 편애한다고 뭐라 하잖아요.”어르신이 입을 삐죽거렸다.“내가 아직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지 못했잖니.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거든 네 그 동생들,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할 줄 알아. 이진이 부를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말을 마친 어르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문밖을 나서려 했다.전태윤은 여전히 동생에게 알려 어르신을 모시고 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