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인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뭐라 속삭이자 서현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다행히 그래도 잔머리는 있네.’그와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을 누리면서 살 거라는 생각에 서현주는 마음이 놓였다. 물론 완전히 경계심을 늦춘 건 아니었다. 나중에 결혼한 후 월급은 그녀가 관리하고 집문서에도 그녀 이름을 넣겠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그대로 이행하게 할 것이다. 아무튼 하예진보다 훨씬 누리면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예진한테 일전 한 푼 안 주고 빈털터리로 내보내려면 사실 엄청 쉬워.”“어떻게요?”주형인의 명의로 된 적금이 얼마 되진 않지만 나눠주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면 무조건 시도해볼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서현주가 그 돈으로 더 누릴 수 있으니까.“재산을 가질 건지, 우빈이 양육권을 가질 건지 둘 중에서 택하라고 하면 돼. 그러면 무조건 우빈이를 선택하고 재산 분할은 포기할 거야.”그의 말에 서현주가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형인 씨 아들의 양육권을 포기할 수 있어요? 우빈이는 주씨 가문의 유일한 손자잖아요. 형인 씨가 포기한다고 해도 형인 씨 부모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주형인이 말했다.“우빈이는 내 아들이야. 절대 포기 못 해.”서현주가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해요!”주형인이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했다.“만약... 네가 아들을 가진다면 우리 부모님도 우빈이를 예진한테 보내라고 하실 거야.”두 사람은 인제야 관계를 했고 게다가 서현주는 이따가 피임약을 사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 말인즉슨 아직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현재 그에게는 아들 주우빈 뿐이었고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있었다. 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주우빈의 양육권을 하예진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주우빈은 영특하고 귀여운 아이인데 그와 서현주의 아이는 어떨지 누가 알겠는가? 주형인은 아직 그 도박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서현주가 나중에 딸을 낳을 수도 있기에 주우빈의 양육권은 반드시 그가 가져야 했다.“내가 딸 낳으면 미워할 거예요?
“이 늦은 시간에 누구야?”주형인이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러 나갔다. 문을 연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뚱뚱한 여자를 본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제자리에 굳어버렸다.‘하예진이 왔어?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두 부부는 서로 빤히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예진은 웃통을 벗은 그를 본 순간 십여 년 동안의 감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남자가 여자를 배신하는 건 아주 빠르고 쉬운 일이었다.정신을 차린 주형인이 굳은 얼굴로 하예진에게 물었다.“여긴 어떻게 왔어? 우빈이는? 이 늦은 밤에 우빈이 옆에 있지 않고 여긴 왜...”“형인 씨, 누구예요? 누군데 문을 그렇게 세게 두드린 거예요?”주형인이 하예진을 탓하는 와중에 서현주가 다가왔다. 그녀는 잠옷 차림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었다. 조금 전 두 사람이 뜨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목에도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상황을 목격한다면 바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번에 알아챌 것이다.“여우 같은 년!”하예진이 뚱뚱한 몸으로 문을 막고 있는 주형인을 밀어내더니 신속하게 안으로 달려 들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서현주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서현주의 긴 머리를 냅다 잡고 다른 한 손을 들었다.“짝짝짝짝!”서현주에게 연거푸 따귀 네 대를 날리는 그녀의 동작은 그야말로 거침없었다.“으악!”서현주가 비명을 질렀다.“나 대신 내 남편을 챙겨주겠다더니. 천한 년! 이렇게 챙겨준 거였어? 와이프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네가 뭔데 챙겨? 오늘 절대 가만 안 둬, 이 여우년아!”하예진은 욕설을 퍼부으며 서현주에게 손찌검했다. 서현주가 반항하려 했지만 하예진이 먼저 기선을 제압한 바람에 반항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힘이 센 하예진은 서현주를 단숨에 바닥으로 넘어뜨리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 연신 따귀를 때렸다.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어찌나 쨍쨍한지 귀청이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그때 현장에 도착한 하예정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넋을 놓았다. 하지
하예정은 바로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정신을 차린 주형인은 쏜살같이 달려가 서현주를 깔고 앉은 하예진을 발로 확 차버렸다. 그 모습에 분노가 끓어오른 하예정은 거침없이 주형인에게 킥을 날렸다.산타를 배운 적이 있는 그녀는 하지철 같은 건달을 상대할 때도 쉽게 해결했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한 킥에 맞은 주형인은 맥없이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언니.”하예정이 다가가 언니를 부축했고 주형인도 재빨리 일어나 서현주를 부축하고는 두 자매를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하예진, 지금 뭐 하는 거야?”서현주를 두드려 패느라 진이 빠진 하예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남편의 고함에 그녀의 분노도 다시 한번 끓어올라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주형인,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난 당신 때문에 일까지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만 했고 아들까지 낳아줬어. 그런데 날 배신하고 이 천한 년이랑 붙어먹어? 내가 지금 뭐 하냐고? 천한 년한테 본때를 보여주려고 그런다, 왜!”그러더니 또다시 서현주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주형인은 하예진이 더는 서현주를 때리지 못하게 앞에 막아서며 욕설을 퍼부었다.“그만해, 하예진! 내 말 잘 들어. 난 진작부터 널 사랑하지 않았어, 너만 보면 역겨울 정도라고. 지금 네 꼴을 봐봐! 막돼먹은 여자 같으니라고! 공부도 많이 했다는 사람이 교양이라곤 없어!”하예진은 너무도 화난 나머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서현주를 때릴 수 없었던 그녀는 그 대신 주형인의 뺨을 힘껏 때렸다.“내가 막돼먹은 여자가 된 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도 공부 많이 했으면서 왜 이렇게 파렴치해? 저년도 배운 게 많겠는데 도덕을 말아먹었나? 그러니까 공부 얘기 하지 마. 그건 이 세상의 지식인들을 모욕하는 거니까.”뺨을 맞은 주형인이 본능적으로 되받아치려 하자 하예정은 재빨리 언니를 잡아당겼다.“주형인, 언니를 때렸다간 절대 가만 안 둬!”하예정이 주형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언니를 배신하고 가정을 깬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우리 언니를 탓해?
하예진이 동생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와 주형인이 심하게 싸우든 말든 그건 부부의 일이다. 주씨 가문 사람들은 아마 지난번처럼 주형인더러 본가로 들어오라고 할 것이다.그녀가 서현주를 때린 건 조강지처가 내연녀를 때린 것이라 다른 사람들도 잘 때렸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에 서현주도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동생이 주형인과 서현주를 때린다면 그녀 대신 화풀이한 격이 되기에 주씨 가문 사람의 성격에 동생을 고소하여 치료비를 물어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서현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동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하예진은 하예정을 말리며 나지막이 말했다.“언니 믿어. 언니가 해결할 수 있어.”동생 부부가 증거만 촬영해주면 되었다.“주형인.”하예진이 눈물을 닦으며 그에게 물었다.“진짜 나랑 이혼할 생각이야?”그러자 주형인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래. 이혼해!”“우빈이 아직 어린데 우리 모자를 버릴 셈이야?”주형인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하예진, 진정하고 먼저 집에 가 있어. 이틀 뒤면 토요일이니까 그때 다시 이혼 얘기해.”하예진이 이를 꽉 깨물고 서현주를 노려보자 주형인은 하예진이 또 미친 듯이 달려와 때릴까 봐 서현주의 앞을 막아섰다.“언니, 내가...”“예정아, 그만 가자!”하예진이 동생의 팔을 잡고 두 년놈을 째려보며 말했다.“주형인, 그럼 토요일에 다시 얘기해!”그러고는 동생을 끌고 호텔 방을 나서며 전태윤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다 찍었어요?”사실 그녀는 제부가 촬영하고 있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그녀의 질문에 전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만 가요.”하예진이 동생과 함께 앞장섰고 그 뒤로 전태윤이 묵묵히 따라갔다.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조금 전까지 드세던 하예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무기력하게 엘리베이터에 기대고 있었다.이 모든 게 이혼을 위한 준비이긴 하지만 주형인이 서현주를 감싸고 서현주를 위하여 자신을 때리고 욕하는 것도 모자라 이혼하자고 하는 걸 직접 마주
오늘 밤 이후로 하예진은 더는 주형인 때문에 속상해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우빈이.”문득 떠오른 아들 생각에 하예진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언니, 숙희 아주머니한테 우빈이 챙기러 가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우빈이도 보통 밤에 깨지 않잖아.”주우빈은 장난기가 많을 때는 그야말로 개구쟁이가 되어 장난감을 온 바닥에 널브러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얌전할 때는 또 무척이나 얌전했다. 특히 밤에 잘 때 불편한 데만 없으면 거의 깨질 않는다.하예진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예정아, 제부, 두 사람은 여길 어떻게 찾았어요?”아들 걱정이 사라지니 하예진도 그제야 다른 질문을 할 여유가 생겼다. 하예정이 언니를 탓했다.“언니, 우린 친자매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자매끼리 서로 의지하며 15년을 살았어. 무슨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서로에게 알려서 상의해야지. 그런데 이번에 언니는 나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어. 그러니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 태윤 씨 친구가 주형인의 외도 증거를 모아줬었어. 아주 능력이 있는 분이라 그분한테 물어보니까 주형인이 이곳에 있다고 바로 알아내더라고. 그래서 나랑 태윤 씨 당장 달려왔지.”“언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다 나한테 말해, 알았지? 혼자서 해결하려고만 하지 말고. 나 이젠 다 컸어. 예전에 언니가 지켜주던 꼬맹이가 아니야.”하예진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아까 두 년놈을 때리지 말라고 말린 건 그것들이 상해죄로 널 고소해서 치료비를 물어내라고 할까 봐 그랬어. 걔네들이 나한테 미안한 짓을 했더라도 네가 폭행을 저지르면 법적으로는 너한테 불리해. 하지만 언니가 직접 때리면 달라. 도둑이 제 발 저리니까 나한테 맞아도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지, 절대 배상해라고는 못해. 예정아, 언니를 믿어. 언니가 알아서 잘 해결할 수 있어. 정말로 너의 도움이 필요할 땐 언니가 직접 너한테 얘기할게.”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녀는 고작 15살이었다. 어린 그녀는 극성 친척들의 괴롭힘을 당하면서
‘태윤 씨를 아무리 믿어도 그렇지, 어떻게 제사상의 술을 훔쳐 마신 창피한 일까지 얘기할 수 있어.’전태윤이 하예정을 빤히 쳐다보자 하예정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언니, 그게 몇 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 얘기야.”그것도 전태윤의 앞에서 말이다. 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너 그날 밥 먹고 침대에서 종일 잤어. 주량이 약하면서 마시기는 좋아한다니까. 술만 마시면 아주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떨어져. 제부, 그냥 엄청난 경사가 아니면 얘한테 술 먹이지 말아요.”전태윤이 입꼬리를 실룩이며 대답했다.“네, 처형. 명심할게요.”하예진이 꺼낸 옛날얘기로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이혼하면 이혼했지, 그게 뭐가 큰일이라고!지구에 누구 하나 사라진다고 자전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주형인과 헤어진다고 해도 하예진은 여전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다.호텔에 나선 하예진은 어두운 밤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더니 동생네 부부를 불렀다.“가자, 언니가 맛있는 야식 사줄게. 아니지, 아침 먹을 때가 다 됐네. 언니가 싱글이 된 걸 미리 축하하자.”시간은 벌써 새벽 다섯 시가 되었다. 하예정과 전태윤이 눈빛을 주고받더니 언니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세 사람은 곧장 아침을 먹으러 갔다. 식사를 마친 후 전태윤은 먼저 하예진을 광명 아파트에 데려다준 다음에 하예정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왔을 땐 날도 훤히 밝았다.“태윤 씨.”전태윤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고마워요, 태윤 씨.”전태윤은 그녀에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두 팔을 잡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려는 순간 자신의 품에 와락 끌어안은 후 나지막이 말했다.“우린 부부야. 나한테 이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하예정은 그를 한참 동안 빤히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그의 목을 잡고 먼저 키스했다. 그런데 이번에 전태윤은 예전처럼 주객전도한 게 아니라 그녀의 입을 막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보며 물었다.“지금 이 키스는 나한테 주는 보수야? 아니면 날 좋아해서 하는
빤히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하예정은 뭔가 깨달은 듯 떠보듯이 물었다.“태윤 씨, 설마 나더러 얼굴 씻겨달라는 건 아니죠?”“너 때문에 얼굴에 검게 칠한 건데.”그 말인즉슨 그녀에게 책임을 지라는 뜻이었다. 하예정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왜 점점 뻔뻔스럽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지?’“알았어요, 나 때문에 얼굴에 검게 칠한 거니까 씻겨줄게요. 차라리 온 얼굴에 다 칠하지 그랬어요?”그러면서 그를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전태윤은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두어 걸음 옮기다가 이내 멈추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주방에는 왜 가?”“주방에 물이 있잖아요. 태윤 씨 방은 금지 구역이라 들어갈 수 없으니 주방에서 안 씻으면 어디서 씻어요?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래요? 내가 젖은 수건을 가져와서 닦아줄게요. 닦아질지는 모르겠지만.”전태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결국에는 제 발등을 제가 찍는 격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태윤이 한동안 입을 꾹 다물다가 덤덤하게 말했다.“내 방 화장실에 내가 평소에 쓰는 남성용 클렌징이 있어. 그걸로 지워질 거야.”그러고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방문을 열던 그때 다시 고개를 돌려 명령조로 말했다.“얼른 와서 씻겨주지 않고 뭐해!”하예정은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태윤 씨가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간 거예요. 내가 함부로 쳐들어간 게 아니라. 앞으로 싸우게 되면 이 일로 뭐라 하지 말아요. 난 늘 약속을 지키고 약속대로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그녀의 말에 전태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갈 때 전태윤이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앞으로 또 싸우길 바라나 보지?”“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 싸우기 마련이에요.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어요?”그녀는 속으로 투덜거렸다.‘속은 좁아서 싸울 때마다 카톡 연락처를 지우고 그러잖아. 그러고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랑 냉전하고.’그녀는 앞으로 함께 살면서 싸우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었다. 일리 있는 그녀의 말에 전태윤은 아무런 반박도
웃옷을 벗은 전태윤은 아주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는 하예정을 발견했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하예정이 그에게 물었다.“더 벗어요?”그러더니 아직 벗지 않은 그의 바지를 가리켰다. 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세수하다가 웃옷이 젖을까 봐 벗은 거였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전태윤이 하예정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하예정은 저도 모르게 그의 탄탄한 가슴 근육을 만지작거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역시 평소 운동하는 남자의 몸매는 다르네요.”전태윤은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만지지 못 하게 했다. 그러고는 굳은 얼굴로 경고했다.“하예정, 내 몸을 만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한 가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적응이 됐는지 전태윤은 하예정의 이마에 딱밤을 여러 번 때린 후 재미를 들였다. 물론 아프지 않게 살짝만 때렸다. 세게 때렸다가 아프다고 그와 등을 돌리면 안 되니까.하예정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날 감상하라고 옷 벗은 거 아니었어요? 그거 좀 만진다고 살가죽이 벗겨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내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 했어요?”“난 네가 내 얼굴을 씻겨주다가 옷이 젖을까 봐 벗은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아니면 다시 입을까? 내 얼굴 씻겨주다가 옷이 다 젖어서 나중에 옷까지 빨아줄래?”“그냥 벗어요.”전태윤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째려보았다.‘방심했네.’그녀는 예전부터 가끔 유혹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그녀 앞에서 옷을 벗었는데 그를 놀리지 않으면 하예정이 아니지.“하하하!”하예정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전태윤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방자한 그녀를 통제하려면 뭔가 본때를 보여줘야 했다.전태윤은 깔깔거리며 자신을 비웃는 하예정을 꽉 잡고 세면대 앞으로 확 당겼다. 순간 하예정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전태윤은 그녀를 꽉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제대로 세운 후 자주 쓰는
고빈은 친누나 고현을 바라보았다.고현은 그녀의 커피 한 잔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더니 우아하게 커피를 음미했다.“누나, 호영 씨가 누나 사무실에 있는데도 왜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어?.”고빈은 작은 소리로 고현에게 속삭였다.고현은 억울한 어조로 대답했다.“네가 들어오자마자 쉴 새 없이 말했잖아.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은 건 너야. 호영 씨가 나와서 내가 계속 눈을 깜빡이는데도 넌 눈치 없이 내 눈에 문제 있는 줄 알고 깨닫지 못하다니. 너에게 귀띔해 주는데도 모르는데 누굴 탓할 수 있겠어?”“내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는 말은 글쎄 걱정은 안 되지만 내가 누나에게 호영 씨를 버리라고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둘까 봐 그러지. 그 자식 평소에는 빙그레 웃으며 마냥 부드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척 음흉하잖아. 우리 부모님께 그 말을 일러바치면 난 집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단 말이야.”고빈은 자신의 수다스러운 입을 원망했다. 고현의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녀에게 헛소리를 그토록 많이 하다니!이때 고현이 제안했다.“네가 요즘 출장 좀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아. 방금 호영 씨가 휴대전화까지 꺼내서 녹음했어. 네가 한 말 다 녹음한 것 같던데. 분명 우리 부모님께 들려드릴 거야. 그때 가서 엄마 아빠가 너에게 결혼 재촉하지 않으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어.”고빈도 말을 이었다.“호영 씨가 음흉한 사람이라 우리 엄마 아빠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야. 누나, 내가 내일 비행기 표를 예약해서 가장 먼 도시로 출장을 갈게. 반달이나 한 달 뒤에 돌아올게.”그러자 고현은 문득 의문을 품었다.“갑자기 생각난 건데, 우리 지사에는 본사 직원이 가서 처리해야 할 큰일이 없어. 네가 출장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가서 뭐 하게? 게다가 강성이 바로 너의 집인데 너도 조만간 집으로 돌아와야 할 거 아니야. 난 언젠가 호영 씨에게 시집갈 텐데, 그도 너의 형부로 될 테고. 네가 나랑 혈연관계를 끊지 않는 이상 호영 씨와 연락을 해야 할걸.”“
“호영 씨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난 왠지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려.”고현은 친누나로서 고빈에게 치마를 입어 보인 적 없지만, 전호영에게 입어 보였고 또 전호영을 위해 모두에게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고빈은 질투가 났다. 비록 고현이 여자 신분을 회복하고 좋은 시댁에 시집가기를 바라고 있지만, 막상 그녀가 시집갈 준비를 하니 고빈은 또 너무 아쉬웠다.“누나, 호영 씨에게 데릴사위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건 어때? 난 누나가 멀리 시집가는 것이 정말 아쉬워. 난 누나 한 명뿐이고 우리 부모님도 딸 하나뿐인데 정말 우리를 버리고 멀리 떠나려고? 호영 씨가 데릴사위로 장가오고 싶지 않아 하면 바로 차버려. 누나 같은 조건이라면 달려드는 남자들이 아주 많을걸. 누나, 눈이 왜 그래? 왜 자꾸 눈을 깜빡깜빡해? 눈에 뭐 들어간 거 아니야?”고현이 자신에게 계속 윙크를 하는 것을 본 고빈은 걱정스레 물었다.고현은 고빈을 노려보았다.이 녀석은 평소에는 매우 약삭빠르지만, 오늘은 유난히 둔했다.고현은 아예 일어나 책상을 에둘러 고빈의 팔뚝을 툭툭치고는 전호영의 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받아 들으며 전호영에게 말했다.“호영 씨, 빈이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도 빈이 말을 듣지 않을 테니까요.”고현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전호영의 어두워진 눈과 마주쳤다.전호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호영을 등지고 그의 험담을 하며 고현에게 그를 차버리라고 한 사실을 본인에게 들켜버리다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전호영이 다 들은 건 아니겠지?혹시 조금만 들은 건 아닐까?고현도 그에게 귀띔해주지 않았다.맞다! 고현이 주의를 시키었지만, 고빈이 너무 둔해 눈치채지 못했다.고현이 계속 윙크를 보냈지만, 고빈은 그녀의 눈에 병이 난 줄로만 알았다.고빈은 속으로 몇 번이고 울부짖었다.‘난 오늘따라 왜 이리 멍청하지? 으악!’“고빈 씨는 저한테 불만이 많으신가 봐요. 제가 고빈 씨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고 제가 눈에 거슬린
그는 휴게실로 들어갔다.“호영 씨, 따뜻한 물 한 잔 주세요.”고현은 목이 말랐다.그러자 전호영이 대답했다.“알았어요.”곧 전호영은 그녀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면서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고현은 궁금한 듯 물었다.“왜 이렇게 쳐다봐요? 제가 낯설어 보여요?”“저는 현이 씨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너무 멋있어요.”고현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노려보고는 다시 앉았다.그리고 우아하게 물을 마셔 목을 축인 후 물잔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켜면서 말했다.“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저의 일이지, 그들의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요. 제가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기만 하면 수많은 질문이 또 끊임없이 쏟아질걸요.”“그렇죠. 1년 후에 답을 얻게 된다고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나요?”전호영이 웃음을 머금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생각한 1년 후의 답은 바로 두 사람이 합법적인 부부로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노력하여 고현의 뱃속에 작은 전호영이 들어있기만 하면 그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든 오해가 풀릴 것이다.고현은 그의 물음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마음대로 생각하세요.”“헤헤, 제가 생각했던 게 맞는 모양이네요. 그렇게 되면 해명할 필요도 없겠네요. 그럼 가서 커피 내려줄게요.”전호영은 흐뭇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그의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커피 내려주러 들어갔다.고현이 중얼거렸다.“매일 바르지 못하기는...”생각해 보니 이 일은 고현 본인이 먼저 전호영에게 귀띔해 준 거나 다름없었기에 그를 원망할 수는 없다.전호영은 평소에 말로만 까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의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고현이 먼저 신체접촉을 원한다면 전호영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고 그녀의 모든 것을 독차지할 것이다.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문밖의 사람은 고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밀고 들어왔다.고빈이었다.고빈은 고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형,너무한 거 아니야?
“여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또 뭐해요? 여자 분장한 걸 알면 또 뭐할건데요? 예전에 제가 치마를 입고 고현 씨를 기분 좋게 하려는 것처럼 고 대표님도 단지 저를 행복하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기자들은 전호영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대로 흩어지는 것도 너무 언짢았다.그들은 단지 답을 원했을 뿐이다.고현이 왜 남자 행세를 하고 다녔는지, 혹은 여자 분장을 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흩어지지 않으실 생각이라면 얼른 길을 비켜주세요. 제가 들어가고 나서 다시 이곳에서 계속 기다리세요.”“고 대표님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호영 도련님께서 들어가신다 해도 고 대표님을 볼 수 없으실 겁니다.”“고 대표님 차가 저의 바로 뒤에 있는데 못 보셨어요? 기자님들은 저의 차를 막을 수는 있어도 고 대표님의 차들을 감히 막을 용기가 있기나 하세요?”고개를 돌려보니 고현의 차들이 정말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기자들은 방금 전호영의 차를 포위한 것처럼 한꺼번에 고현의 차에 몰려들고 싶었다.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전호영은 강성의 사람이 아니다.설령 그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 할지라도 조만간 관성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고 또 친근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자들은 전호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러나 고현은 강성의 사람이고 또 강성에서도 냉담한 성격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녀를 건드리게 된다면 아마 강성에서도 무사하게 지내지는 못할 것이다.기자들은 여전히 답을 얻고 싶은 마음에 한꺼번에 몰려들어 고현의 차를 에워싸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차를 막아 보았다.차창을 내린 고현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1년 후에 여러분들도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말뿐입니다.”말을 마친 고현은 바로 차창을 올렸다.1년 후, 고현은 분명 전호영의 아내로 될 것이고 임신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배가 많이 나온 모습을 보면 모두에게 답을 준거나 마찬가지였다.고현은 자신의 사적인 일에 대해 기자들에게 자
전태윤은 또 반 시간 동안 하예정의 사무실에 붙어있다가 아내의 독촉으로 사무실을 떠났다.강성.고씨 그룹, 고씨 가문의 저택, 하루 호텔, 그리고 고성 호텔에는 많은 연예 기자들이 지키고 있었다.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바로 고현 도련님이 진짜 여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고씨 가문의 저택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연예 기자들이 초인종을 눌렀지만 누군가가 나와서 확인만 했을 뿐 여전히 기자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기자들이 확인하러 나오는 사람한테 물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고진호 부부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꺼진 상태였고 고빈의 전화는 연결되지만, 그는 똑똑하게도 모르는 전화가 걸려오면 아예 받지 않았다.지금 고현은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다.물론 전호영도 그녀와 함께 있다.차가 고씨 그룹에 거의 도착했을 때, 전호영의 차가 먼저 앞쪽으로 달려갔다.회사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연예 기자들은 익숙한 마이바흐를 보더니 우르르 몰려갔고 전호영은 결국 급정거할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전호영의 차를 막은 뒤에야 비로소 그 차가 고현의 차가 아님을 깨달았다. 눈앞의 차는 고현 도련님의 차가 아니었다.고현의 차 번호판도 맞지 않거니와 뒤에 고현의 경호원 차들도 따라오지 않았다.이것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다.이때 전호영이 천천히 차창을 눌렀다.“호영 도련님, 고 대표님이 여자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호영 도련님, 혹시 고현 도련님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어젯밤 송씨 가문의 연회에 함께 참석하셨을 때 호영 도련님은 고 대표님께서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어떠셨습니까?”아직 당사자를 잡지 못했지만, 전호영을 잡은 기자들은 전부 모여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전호영은 고현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다.두 사람은 친밀한 일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전호영은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전호영이 대답했다.“저는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 대표님이 여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지
하예정은 웃으면서 해명했다.“동서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물어본 거 아니에요. 단지 할머니께서 어떤 며느릿감을 고르실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그녀는 이런 가십거리를 매우 좋아했다.동서끼리 사이가 안 좋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씨 할머니의 안목은 무척 좋기 때문에 전씨 할머니께서 고르신 아내감은 분명 인성 좋은 사람일 것이다.설령 인성이 나쁘더라도 하예정과 마음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다.그들은 모두 서원 리조트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별장에 살고 있었다. 함께 살지 않으니 마음이 맞으면 서로 좀 더 잘 만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관계만 잘 유지하면 그뿐이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나도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 아마 비주얼은 좋을 것 같아. 어쨌든 우리 사촌 동생들은 전부 다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할머니께서도 못생긴 여자는 고르시지 않을 거야. 이혁이도 오랫동안 날 찾아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전태윤은 심지어 전이혁의 미래 아내의 성씨도 몰랐다. 그의 여자도 아니었기에 너무 많은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언젠가 동생들도 그들의 여자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올 것이다.“그런데 할머니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저는 못생기지 않게 생겼지만, 우리 집안은 부유하지도 않고 전씨 가문의 재력과는 너무 차이 나는 데다 태윤 씨는 전씨 가문의 장남이잖아요, 왜 태윤 씨와 저를 맞세우려고 하셨는지, 또 왜 우리 두 사람을 결혼시키려고 하셨는지... 태윤 씨도 무척 난처했겠네요.”전태윤은 잠자코 있다가 대답했다.“우리는 아마도 그 점쟁이가 점을 쳐 주신 덕분일 거야.”전씨 할머니는 그 점쟁이를 가장 신임하셨다. 점쟁이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부부 인연이 있다면서 만약 그가 하예정을 놓치게 되면 평생 홀아비로 살 것이라고 귀띔해주셨다.전씨 할머니는 장남 전태윤을 가장 아끼시는데 어떻게 그가 홀아비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하여 전씨 할머니는 몰래 하예정의 인성을 관찰하다가 인품이
사람들에게 하예정의 친정집의 실력도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하예진은 이경혜의 지시에 따라 강성에 와서 이은숙 가족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 것 외에도,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되찾아 하예정의 친정집에도 재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강성 이씨 가문은 점점 몰락하고 있지만, 어쨌든 재벌 가문이기 때문에 지금의 하씨 집안보다는 훨씬 나았다.하씨 집안에도 가족들이 많지만, 고향의 그 “일품” 친척들은 하예정의 발목만 잡는 사람들이라 연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통화를 끝내자 하예정은 휴대전화를 들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전태윤은 부드럽게 물었다.“무슨 생각해?”하예정은 빙그레 웃으며 전태윤의 어깨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당신 그래요? 운명이란 게 참 이상해요. 저는 지금 같은 날은 꿈도 꾸지 못했거든요. 우리 엄마가 원래 부잣집 딸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게다가 제가 태윤 씨와 결혼하게 되다니, 사람 사이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해요. 내일 일어나게 될 일을 누구도 모르잖아요.”전태윤은 하예정의 얼굴에 뽀뽀하고 난 뒤 말을 건넸다.“처형이랑 일상적인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왜 이렇게 감회가 새로워졌어? 먼저 회사로 갈 거야? 아니면 서점으로 가려고? 내가 너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갈게.”“일단 회사로 돌아가야죠. 지금 이 시간이면 학생들도 다 수업하고 있을텐데 가게도 별일 없을 거예요. 서점으로 간다 해도 한가해서 파리만 잡을 텐데.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파리도 없겠네요.”“그래.”“참, 저의 언니가 말씀하시는데 어제 고 대표님이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셨다면서요? 호영 도련님께서 드디어 소원을 이루셨네요.”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호영이가 어젯밤에 기뻐하며 나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더라고. 이진이와 호영이가 결실을 보았으니 이제 이혁이와 전우만 남았네.”지난번에 어떤 여자가 전씨 그룹에 가서 전이혁을 찾으러 갔었다. 전이진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훔친 거 아니냐면서 캐물었
하예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우빈은 말할 것도 없고 나조차도 아침에 이불 속에서 겨우 일어났어. 언니, 강성은 더 춥지? 인스타에서 보니 사람들이 눈 내리는 영상을 찍어 올렸던데. 우리 관성은 눈은 오지 않지만, 강성 쪽에 눈이 오면 우리 여기도 따라서 추워져.”관성 기온은 낮에는 10도가 넘지만, 밤에는 가장 낮아서 8~9도까지 떨어지곤 한다.이런 기온은 강성 사람들에게는 춥지 않지만, 더위에 길들여진 관성 사람들에게는 매우 추운 날씨다.“옷 좀 더 입혀줘. 유치원에서 나누어준 겨울옷은 너무 두껍지 않으니까.”우빈은 겨우 세 살 남짓 된 어린이였기에 하예진이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입혔어. 그런 걱정하지 마. 언니도 강성에서 감기 조심하고. 많이 입고 다녀.”“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 넌 오늘 회사로 출근했어? 요즘 관성도 추울 텐데, 먼저 집에서 쉬는 건 어때? 제부가 돈 잘 벌잖아. 네가 회사로 뛰어다니면서 돈 벌 필요 없어.”하예진은 너무 바빠서 땅에 발을 내디딜 틈이 없으면서도 여동생에게는 집에서 배 속의 아기를 잘 돌보라고 설득했다.“괜찮아. 우리 회사에도 일이 별로 없어서 그냥 와 본 거야. 좀 이따가 서점에 들러야 해. 정남 씨가 이틀을 휴가 내서 나도 효진에게 쉬라고 했어. 두 사람이 함께 편히 쉬라고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소정남은 늘 전태윤에게 그의 아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고 투덜댔다.하예진도 그냥 잔소리 한 번 해봤을 뿐 하예정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더는 말을 설득하지 않았다.하예진은 과거 임신하여 집에서 쉬면서 사회와 단절되었고 출산한 뒤로도 모든 정력을 우빈에게만 쏟아부어 자기 관리에 소홀해 몸매가 많이 무너졌었다.그러나 전태윤은 주형인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예진의 실패한 결혼은 하예정에게 경적을 울릴 것이고 하예정도 최대한 친언니의 과거 생활을 피해 가려
전호영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당연히 습관 되지 않을 거예요. 현이 씨는 평소 너무 엄숙해요. 너무 부끄러우면 방에 혼자 있을 때 연습해도 되는데. 누구도 듣지 못하면 누가 현이 씨를 비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고현은 전호영이 계속 말하는 모습을 보더니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잘라 포크로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따르릉...전호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하예정이 걸어온 전화였다.전호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예진 누나, 무슨 일 있어요?”“없어요. 그냥 호텔 문 앞에 기자들이 많다고 알려주려고요. 혹시 고현 씨가 혹시 외부에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인정하셨어요? 기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아마도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아요. 하루 호텔에 와서 모여있는 거로 보면 아마 맞은편의 고성 호텔에서도 지키고 있을 거예요. 아까 일구 씨가 가봤는데 확실히 기자들이 몰려들어 있대요. 오늘 호텔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호영 씨, 어제 호영 씨와 고현 씨가 무슨 일을 벌인 거 맞죠?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아침에 식사하러 내려왔는데 저도 벌써 그 소문을 듣게 됐다니까요.”전호영은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마치 저와 현이 씨가 어젯밤에 바람을 피우다가 잡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하! 어젯밤에 저와 현이 씨가 송씨 가문 연회에 참석하러 갔거든요. 현이 씨가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을 뿐이에요. 다른 건 아무 일도 없었어요.”하예진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렇군요. 축하드려요. 고현 씨가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다니, 그녀가 드디어 호영 씨를 사랑하게 됐네요. 저는 두 사람의 결혼 축하주를 마시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요.”고현은 전호영에 대한 감정이 매우 더딘 편이었다.전호영이 고현을 쫓아다닌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녀는 이제야 사람들이 전호영을 오해하는 것이 가슴 아팠고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하여 고현은 자발적으로 치마를 입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가 원래 여자이고 전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