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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약속하였으니 지킬게요."

예정도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린 거라 다시 후회할 생각은 없었다.

태윤은 이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주민등록증를 꺼내 앞에 내놓았다.

예정도 마찬가지로 주민등록증을 꺼내 놓았다.

두 사람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재빠르게 결혼 절차를 밟았다.

혼인 신고가 끝나자 태윤은 바지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둔 열쇠를 꺼내 예정에게 건넸다.

"주택은 발렌시아 아파트구에 있는데 할머니한테서 관성 중학교 입구에 서점을 차렸다고 들었어, 그쪽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깐 버스로 십여 분이면 갈 수 있을 거야."

"운전면허증은 있어? 운전면허가 있으면 차 한 대를 제공해 줄게, 계약금은 내가 내줄 테니 매달 차 대출금을 갚아, 차를 가지고 다니면 출퇴근이 편할 거야."

"나는 일이 바빠 보통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와, 그리고 때로는 출장을 가기도 하는데, 자기 절로 제 몸만 잘 챙기면 돼. 생활비는 매달 10일에 급여 받으면 넘겨줄게."

"그리고 시끄럽지 않게 결혼한 사실은 잠시 비밀로 해줘."

태윤은 회사에서 남을 부리는 게 습관이 됐는지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연달아 분부하였다.

예정이 초고속 결혼을 한 이유는 언니가 형부와 다투는 것을 원치 않아 하루빨리 결혼하여 언니 집에서 나와 언니를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녀에게 이 결혼은 그저 계약 결혼에 지나지 않았다.

태윤이 집 열쇠를 주자 예정은 사양치 않고 열쇠를 건너 받았다.

"운전면허증은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분간은 차를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평소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고 다녔었는데 금방 새 오토바이로 바꿨어요."

“저기...... 태윤씨, 우리도 생활비를 더치페이로 할까요 ?"

언니와 형부는 좋은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형부가 더치페이란 말을 꺼내는 걸 보면...... 아마도 형부는 언니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아이 하나 잘 돌보고, 장보고, 밥하고 거기에 집 청소까지 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줄은 모르는 것 같다. 이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남자들은 아내가 집에서 그저 아이랑 놀아주고, 가볍게 요리나 하고 아주 홀가분한 줄로만 아는 것 같다.

전에 태윤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이 순식간에 한 결혼이라 아무래도 더치페이가 더 편할 거라 예정은 생각했다.

태윤은 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난 내 가정을 책임 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서 한 결혼이니 더치페이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봐."

"그럼 태윤씨 말대로 해요."

말을 이렇게 하여도 예정도 그저 받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한집에 살면서 다른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구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집세는 절약하였으니....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이 결혼생활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태윤은 또다시 오른손을 들어 시간을 보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바빠서 먼저 회사에 가야 해, 내 차를 빌려서 운전하여 집에 가든지 아니면 택시 타고 가도록 해, 차비는 내가 줄 테니깐....할머니는 내가 동생한테로 모셔다드릴께"

"참, 일단은 카톡부터 추가해."

예정은 휴대폰를 꺼내 태윤의 카톡을 추가했다.

"알아서 택시 잡을 테니 어서 가서 일 보세요"

"그래, 일 있으면 다시 연락해."

태윤은 떠나기 전에 예정에게 택시비로 4만 원을 주었는데, 예정은 받으려 하지 않았다. 태윤이 화를 내려는 듯하자 자기도 모르게 그 돈을 건네받았다.

막 혼인신고를 마친 젊은 부부는 함께 떠나지 않았고 태윤은 홀로 먼저 나왔다.

태윤은 나온 후 곧장 차로 돌아왔다.

"내 손자며느리는?"

전씨 할머니는 손자 혼자만 나오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둘이 같이 들어갔는데 왜 같이 안 나왔어? 네가 후회한 거냐? 아니면 예정이 후회한거냐?"

태윤은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야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다.

"혼인신고는 이미 끝냈어요. 회사가 바빠서 전 빨리 회의하러 가봐야겠어요. 예정에게 4만 원을 주었으니 스스로 택시를 타고 돌아갈거예요."

"할머니, 제가 앞에 길목까지 모셔다드리고 경호원더러 집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할게요."

"아무리 바빠도 예정을 혼자 두고 가는 건 아니지, 일단 출발하지 말고 예정이 나오면 데려다주고 나서 다시 출근해."

전씨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차에서 내리려고 하였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할머니, 제가 이미 약속대로 결혼하였으니 다른 일은 상관하지 마세요, 제 마누라니 어떻게 지낼지는 제가 결정하는 게 옳다고 봐요. 인품이 어떤지도 천천히 지내면서 봐야겠어요, 그전에 진짜 부부 생활은 무리예요. "

"…....우리 전씨 가문의 남자는 절대 이혼 같은 건 하지 않아!"

"그거야 할머니가 골라준 마누라가 어떤지, 제 평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에 달렸죠."

태윤은 이렇게 말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너 이 자식! 너 같은 남편이 또 있냐?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지 마누라를 두고 혼자 차를 몰고 떠나다니...."

전씨 할머니는 큰 손자가 자기 말을 듣고 혼인신고를 하는 것까지가 한계지 더는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너무 세게 밀어붙이면 혹여나 예정을 평생 과부로 살게 할까 봐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태윤은 할머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예정이 정말 좋은 사람이면 앞으로 함께 행복하게 살고, 좋은 사람인 척 할머니를 속인거면 반년 후에 이혼할 생각이었다. 태윤은 그전에 예정을 건드릴 생각도 없고, 어차피 결혼도 비밀로 하기로 하였으니 설사 이혼한다고 하여도 다시 좋은데 시집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차가 10여 분 정도 가더니 한 길목에서 멈췄다.

그곳에는 여러 대의 고급차가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대는 롤스로이스였다.

태윤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 한 명에게 차 열쇠를 던지며 할머니를 모셔다드리라고 시켰다.

"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손자며느리랑 함께 있을 거야."

그러나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큰 손자는 이미 롤스로이스에 올라타며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큰 손자가 차를 타고 훌쩍 떠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태윤은 사실상 관성 상업계의 태자이자, 관성 갑부 가문의 가장이고 재산은 억만 대에 달하였다!

”독한 녀석!”

전씨 할머니는 큰손자에게 욕설을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네가 예정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날이 올 거야, 내가 꼭 그걸 봐야겠어"

아무리 화가 나도 큰 손자를 다시 불러올 수가 없던 할머니는 서둘러 예정에게 전화를 하였다. 예정은 이미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예정아, 태윤이가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러니 네가 그냥 이해해."

"전 할머니, 전 이런 건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저한테 택시비를 줬고 전 벌써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결혼을 하고서도 전 할머니라고 불러?"

예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을 바꿔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에 전씨 할머니는 기뻐하며 응하였다.

"예정아, 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 된거다, 윤이가 감히 널 괴롭히면 바로 할머니한테 알려줘 알겠지? 할머니가 대신 혼내줄게."

겨우 얻은 손자며느리인데....

할머니는 태윤이 예정을 절대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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