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죠.”태윤은 속으로 그녀를 한바탕 욕했지만,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그녀는 명의상 그의 아내이지만, 그들은 사실 낯선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기사 아저씨는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다시 차를 옮기었다.예정은 자신이 조금 전 남편의 고급차에 부딪힐 뻔했다는 것을 모르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로 돌아왔다.효진의 집은 바로 근처여서 항상 예정보다 먼저 가게에 도착하여 있었다.바쁜 일을 끝낸 효진은 아침 식사를 주문하여 먹고 있다가, 절친이 오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너 밥은 먹었어?""응.""너주려고 과자 가져왔어. 맛있으니 먹어봐.”예정은 오토바이 열쇠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앉아 사양하지 않고 과자봉지를 가져갔다.”난 단 거라면 다 좋아. 근데 효진아, 아까 오는 길에 롤스로이스를 봤어.”"관성에서 롤스로이스를 보는 것은 흔치는 않은 일인데....차에 타고 있는 사람 봤어?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재벌 집 잘생긴 미혼남?"“…...”"소설에서는 젊고 잘생긴 재벌들이 사방에 쫙 널려 있는데 왜 우리 눈에는 안 띄우는거야?""소설은 모두 구독자 시선에 맞추기 위해 지어낸 것이잖아, 큰 재벌이 아니어도 적어도 각 계층의 엘리트 정도는 돼야지....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을 쓴다면 누가 보겠니?" 예정의 말에 효진은 또 웃었다."참, 예정아, 너 저녁에 시간 있어?""매일 가게랑 집만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많지. 무슨 일 있어?"예정의 생활패턴은 매우 간단하다, 가게의 장사를 관리하는 것 외에 언니를 도와 조카를 돌보는 것 뿐이다."저녁에 연회가 있어. 상류사회의 연회인데, 같이 가서 구경하지 않을래?."예정은 일단 거절부터 하였다. "거긴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별로 가고 싶지 않아."예정의 월수입은 적지 않지만, 상류사회의 그 울타리는 너무 높아서 그녀는 비집고 들어가고 싶지 않고, 비집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듣기 싫은 소리지만, 자기 같은 신분이 그런 고급 연회에
연회가 열리는 곳은 관성 호텔, 이 도시에서 가장 고급 호텔 중 하나이며, 7성급 호텔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예정은 이 호텔이 도대체 7성급 호텔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온 적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예정네보다 먼저 호텔에 도착한 효진 고모는 구면인 부인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들딸을 먼저 호텔로 보내놓고 호텔 입구에 남아 친정 조카가 오기를 기다렸다.조카딸을 태우러 가기로 한 자신의 차가 다른 차량 뒤를 따라 천천히 오는 것을 보고 효진 고모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고모.""효진 고모."예정은 친구를 따라 효진 고모에게 인사를 드렸다.효진 고모는 조카딸이 예정을 데리고 온 것을 알고, 원래는 좀 심기가 불편했었다. 전에 예정을 본 적이 있는데, 부모 없는 이 아이가 자기 조카딸보다 더 이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보통 집안 딸인데, 온몸에서 모두 명문가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예정이 조카딸의 인기를 빼앗을까 봐 걱정되었던 효진 고모는 예정이 시집갔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드레스가 아닌 평범한 옷을 입고 눈에 띄지 않는 옅은 화장을 하고 악세서리도 착용하지 않은 예정이 예쁘고 화사하게 단장한 조카딸에게 타고난 미모가 가려진 것을 보고 효진 고모는 속으로 예정이 눈치가 빠르고 철이 든 아이구나 하며 만족스럽게 생각했다."자,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들어갈게. 효진아, 초대장을 꺼내, 들어가려면 초대장을 검사 맞히고 등록해야 해.""이제 들어가면 너희 둘은 많이 보고 적게 얘기해 알았지? 적당한 때 내가 다시 사람들을 소개해 줄게. 예정아, 넌 항상 효진보다 더 침착하니까 잘 지켜보고 있어, 얘가 사고를 치지 못하게 해. 관성 호텔은 전씨 가문의 많은 호텔 중 하나인데 그 집 도련님들도 오늘 밤 연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효진 고모는 조카딸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효진아, 네가 재벌 집 도련님 눈에 든다면 정말 우리 심씨 집안의 큰 복이 될 거야. 다른 재벌 집보다 조용
태윤은 구석에 숨어있는 아내를 발견하지 못한 채 많은 사람한테 둘러싸여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예정도 시선이 겹겹이 쌓인 사람들한테 막혀 태윤을 볼 수가 없었다.한참을 까치발을 하고 쳐다보았지만, 주인공을 보지 못하자 흥미를 잃고 다시 자리에 앉으며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사람이 너무 많아 하나도 안 보여. 안 봐도 되니까 먹기나 하자." 오늘 저녁 예정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마음껏 먹는 것이다."예정아, 여기서 기다려, 내가 고모한테 물어보고 올게....방금 누가 왔길래 상감마마 왕림처럼 이렇게 요란인지? “호기심 많은 효진이 혼자서 떠나자 예정은 빈 접시를 들고 일어섰다. 모두가 큰 인물을 구경하는 틈을 타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가 있었다.태윤이 들어와서 먼저 오늘 저녁 연회를 안배한 사장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의 주변의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큰 도련님은 여자가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들이 매번 큰 도련님을 따라 연회에 참석하는 주요 임무는 큰 도련님한테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다.현장을 둘러보던 경호원 중 가장 키가 큰 경호원이 큰 사모님의 모습을 발견했다.전씨 할머니 외에 예정을 아는 사람은 바로 태윤의 경호원들이었다. 태윤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예정과 혼인신고를 하였지만, 태윤의 경호원으로서 큰 사모님을 모를 수가 없었다.그 경호원은 자기의 눈을 의심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틀림없이 큰 사모님이었다.큰 사모님은 양손에 접시를 들고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고 있었다. 접시 두 개가 가득 차자,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태윤이 몇몇 사장과 이야기를 마치자 그 경호원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큰 도련님, 방금 사모님을 보았습니다." 태윤
효진은 와인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넌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어. 세상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성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어느 재벌 집의 성이 이씨면, 세상의 모든 이씨는 모두 그의 가족인 거니? 우리 집 그 사람, 그냥 사무직이야. 그가 운전하는 차도 겨우 3천만 정도의 상무용 차고....전씨 집 도련님이 이런 차를 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예정은 종래로 자기가 신데렐라가 되는 현실과 동떨어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었다."그건 그렇고, 젊고 예쁜 여자애한테 관심 없는걸 보면, 전씨 도련님 혹시 게이 아니야? 그것도 아니면 품절남?""그의 결혼 소식을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어. 전씨 가문 후계자인 전씨 큰 도련님이 결혼하게 되면 결혼식 소식은 틀림없이 온 관성을 뒤흔들 텐데....인터넷과 신문에도 온통 그의 결혼 소식으로 뒤덮일 거야. 아무리 우리가 밑바닥이라고 해도 그걸 모를 수가 있겠니? 아무리 봐도 미혼이야.”효진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네 말 들으니 나도 그가 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훌륭한 남자가 여자친구도 없다는 것이 정상 아니지." "부자들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누가 알겠어? 상관 말고 얼른 먹고 가자."말을 마친 두 여자애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윈 전혀 신경 쓰고 않고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처녀애들이 교양 없이 이렇게 게걸스레 먹다니? 한 800년 굶고 온 사람처럼 말이야. 아마도 어느 집 아가씨가 데리고 온 하녀들이겠지....많은 사람이 그들 둘을 보면서 비웃었다. "효진 누나."효진 고모의 아들 김진우가 다가왔다. 효진보다 세 살 어린데 어려서부터 사촌 남매 사이가 각별했다.파티장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문득 효진 생각이 난 고모가 누나를 찾아보라고 보낸 것이었다.“진우야, 여기 앉아.”효진은 의자를 당겨 사촌 동생을 자리에 앉혔다.예정이 진우를 보며 미소를 짓자 진우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예정을 향해 잔을 들
배불리 먹고 난 효진은 웃으면서 진우에게 말했다.“난 여기 있는 젊은 남성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그냥 구경하고 음식 맛만 보러 왔어. 역시 칠성급 호텔이야, 음식 진짜 맛있어, 이걸로도 너무 만족해.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 먼저 간다고 고모께 전해줘.”“효진 누나 벌써 가려고? 파티 이제 금방 시작인데 말이야. 열한 시 되야 끝나!” 마음이 조급해 난 진우는 예정을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말했다.“우린 내일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어야 해. 열한 시까진 무리야.”“가게 문 좀 늦게 열면 되잖아?”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효진과 예정의 뒤를 부지런히 뒤따르며 어떻게든 만류하려고 애를 썻다.”그건 안돼. 우린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의 손님으로 벌어 먹고사는 장사인데 아침 손님을 놓치면 큰 손해 아니니? 넌 잘 놀다 와, 맘에 드는 여자애가 있는지 잘 여겨보고. 아직 좀 이르긴 하지만 먼저 데이트해 보는 건 괜찮지 않아?”효진은 사촌 동생의 어깨를 토닥이며 농담을 던졌다.예정을 몰래 훔쳐보던 진우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수줍은 어투로 말한다.”나 이제 금방 대학원 마쳤잖아, 일 좀 하다가 몇 년 뒤에 다시 결혼 생각해 보려고.””남자들은 서두르지 않아도 돼, 진우 너 이제 스물둘이었더라? 몇 년 뒤에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애송이였던 우리 진우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예정의 말에 연속 고개를 끄덕이던 진우는 뒤에 붙은 말에 또다시 얼굴을 붉히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누나, 차는? 가지고 왔어?’진우는 두 사람을 더는 만류하지 못하고 호텔 밖으로 배웅하러 나갔다.호텔 입구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서로 익숙하지 않은지라 누구도 말 거는 사람이 없었다.”여기 올 땐 너 엄마가 보내주신 차에 앉아 왔어. 택시 부르면 되니까 넌 재미있게 놀아, 그럼 먼저 갈게.” 진우는 택시 타고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호텔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관성 시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태윤의 눈빛만 봐도 앞길이 뻥 뚫린 듯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행사에 참석한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왔다. 자식들의 탄탄대로를 위해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진우가 방금 막…….”“방금 두 누님들 택시 태워 보내고 막 돌아왔어요.”태윤의 말이 끝나기 전에 김진우는 방금 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왔는지 설명했다. 혹시 태윤이 자신이 이런 모임을 안 좋아하거나 호텔의 서비스가 나빠서 자리를 뜬 것이라고 오해할까 봐였다.관성 호텔은 전씨 가문의 관성그룹 계열사 중 하나 였다.태윤은 짧게 대답 후 김진우 앞을 지나쳐 갔다. 예의상 인사하는 것처럼 보였다.김진우는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 무리의 인파가 태윤을 지나쳐갔고, 김진우는 그저 자신이 엑스트라가 되어버렸다는 사실만 인지했을 뿐이다. 태윤은 행사에 참여하면 보통은 얼굴만 비추고 가버렸고, 그런 상황이 사람들은 이미 익숙했다. 방금 태윤과 사업 얘기를 할 기회를 노리던 대표들은 그가 호텔에 잠시 머물러 있자 내심 기뻐했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기회를 잡았다.차량번호가 “XX8888”인 롤스로이스는 경호 차량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관성 호텔을 빠져나갔다.“도련님, 어디로 모실까요?”기사는 운전하며 물었다.태윤은 손을 돌려 손목시계를 보았다. 겨우 저녁 9시반 밖에 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발렌시아 아파트로 가죠.”“네, 알겠습니다.”태윤은 자신이 하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것에 의아해했다. 온기 하나 없이 텅텅 비어있는 집에 돌아온 태윤은 소파 위에 앉았다. 티비를 보면서 자신보다 일찍 호텔을 나왔으나,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아내를 기다렸다.경호원들은 호텔에서 예정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카메라로 찍어 태윤의 핸드폰으로 보냈다. 태윤은 사진을 한장 한장 살펴봤다. 사진 속에는 한 백 년쯤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처럼 전부 먹는 모습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구석에
“응.”태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집으로 들어온 예정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들어오는 길에 청국장을 좀 포장했는데, 먹어볼래요?”태윤은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호텔에서 그렇게 먹어놓고 또 먹는단 말이야? 진짜 먹보 아냐?“청국장은 냄새가 좀 고약하긴 해도 먹을수록 맛있더라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 남자분은 청국장을 아주 좋아했데요.”예정은 태윤 옆에 앉아 비닐을 열었다. 청국장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태윤은 슬쩍 자리를 옆으로 피했다. 거리를 좀 두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를 일부러 맡을 필요는 없으니까.“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남자?”“아, 만 원짜리에 있는 그 남자요.”“…….”태윤이 돈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은행카드의 일련번호뿐이다.“한 입맛 좀 봐요. 맛있다니까. 진짜로, 보기랑 달라요. 먹으면 맛있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예요.”“당신이나 먹어, 그리고 말이야, 베란다에 가서 먹으면 안 돼? 냄새 못 참겠어.”예정은 태윤의 토할 것 같은 표정을 보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돈 잘 버는 사람들은 좀 까다롭고 예민하게 사는 것 같아.’ 예정은 베란다에서 맛있게 청국장을 먹어 치웠다.태윤은 방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잘생긴 얼굴이 다 일그러졌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은 모두 다 다른 법이니까.“태윤씨, 오늘 저녁에 야근할 필요 없으면 내일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날 수 있나요?”예정은 베란다에서 물었다.태윤은 잠시 침묵했다가 차갑게 물었다.“무슨 일?”‘아마 선천적으로 타고난 차가운 사람인 것 같아.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차갑잖아.’예정은 속으로 투덜거렸다.그런데 이런 사람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 어느 날 더 이상 못 참겠으면, 이혼하면 그만이다.“내일 꽃가게까지 좀 태워다 줘요. 화분 몇 개 좀 사서 베란다에 두고 키우려고요. 당신이 차가 있으니까 편하잖아요.”태윤은 말이 없었다.“일찍 못 일어나겠으
“오늘 저녁에 가게 안 나갔어요. 친구가 저녁 행사에 나간데서 저보고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아 맞다! 태윤씨,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은지 모르겠네요.”예정은 태윤 맞은편에 앉아 예쁘고 큰 눈으로 자신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태윤이 좀 냉정하고 예정을 대하는 태도가 별로인 것은 그의 마음속에 벽을 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경계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그렇다는 것.그러나 태윤은 너무 잘생겨서 마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듯 눈이 아주 즐거웠다. “저녁 행사는 관성 호텔에서 열린 거예요. 관성 호텔이 대기업 꺼 라던데, 근데 그 대기업 손자가 늦게 다녀갔어요. 성도 전 씨라고 하던데. 당신이랑 그 대기업이랑 무슨 관계있는 거 아니죠?”태윤은 태연하고 냉랭하게 대답했다.“조상은 같겠지 뭐.”예정은 큰 숨을 내쉬며 웃었다.“당신과 그 대기업이 상관없다는 거 알고 있어요.”예정이 한숨 돌리며 기뻐하는 듯한 모습을 본 태윤은 황당해하며 물었다.“내가 그 집안사람들과 엮기는 게 싫은 거야?”예정은 웃으면서 말했다.“지금 저녁이에요. 헛된 꿈 꾸지 마요. 만약 관성 그룹 전씨 가문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면 당신이 나랑 결혼했겠어요?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겠다. 전씨 가문의 문턱이 아무리 낮아도 나랑은 비교도 안 되잖아요. 설령 당신이 전씨 가문과 진짜로 눈곱만큼이라도 관계가 있다면 난 좀 불편할 것 같아요. 당신만 그쪽과 관련 없으면 나는 우리가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해요. 그럼, 딱히 신경쓰이는 것도 없고요.”태윤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머니 말을 들어보니 당신도 대기업에 다닌다면서요. 그럼, 그 관성 그룹 손자 얘기 못 들어봤어요? 그 사람이 오늘 행사장에 왔는데 아주 왕이 행차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나랑 효진이는 그 사람 뒤꽁무니도 못 봤어요.”태윤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저 더욱 차갑게 변하고 있는 예정의 눈빛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