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 언니.”여운초는 웃으며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유청하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운초 씨, 오셨어요? 얼른 앉으세요.”유청하는 여운초를 부축해 앉히려고 했지만, 여운초는 스스로 손을 뻗어 의자를 당겨 앉았다.유청하는 여운초 그녀의 동작을 지켜보다가 울고 있는 아들을 돌보는 것도 잊었다. 그리고 여운초에게 물었다.“이제 잘 보이나요?”유청하는 정겨울이 여운초에게 눈을 치료해 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잘 몰랐다.임신 말기에 정겨울은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 것 외에는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성기현도 아내에게 다른 사람의 일을 거의 말해주지 않았다.지난번에 시누이한테 정겨울이 여운초의 눈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한 것 같았다. 유청하도 그 말을 듣고 정겨울이 확신한다면 더없는 좋은 일이라고 대답까지 한 기억이 있었다.다만 여운초가 너무 불쌍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모두 여운초가 다시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네, 가까운 거리의 사물들은 잘 보여요. 하지만 먼 곳은 여전히 어렴풋이 보여요. 근시처럼요.”여운초도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언니, 얼른 누워서 쉬세요. 제가 듣기로는 산후조리 기간에는 적게 앉고 많이 누워야 한다고 했어요. 아니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어요.”“보인다니 정말 잘된 일이에요. 천천히 치료받으면 완전히 나아질 거예요. 나야 괜찮지만, 우리 아들이 너무 울어서 기현 씨가 어찌할 바를 몰라요. 일어나서 아기가 대변을 보았나 확인하려고 앉았어요.”여운초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한 유청하는 기쁘기만 했다. 그녀는 남편의 손에서 아들을 받아 안은 다음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아들의 기저귀를 검사하더니 입을 열었다.“정말 응가 했네요. 기현 씨, 기저귀 갈아줘요. 이 아이는 깨끗한 걸 좋아해서 응가만 하면 울어요. 그리고 또 미지근한 물로 씻겨주어 편안하게 해주어야 잠을 잘 자요.”모두 초보 엄마, 아빠였지만 유청하는 남편보다 더 능숙했다.성기현이 기저귀를 가져왔고 아들의 엉덩이
“정 선생님 의술은 정말 훌륭하죠. 이진 씨가 오기 전에 정 선생님께서도 오셨어요. 너무 바빠서 10분도 못 머무르고 떠났지만요.”정겨울은 예준하의 넷째 형수이고 또 성소현과 예준하가 커플이었기에 성씨 가문과 예씨 가문은 앞으로 사돈이 될 것이다. 하여 유청하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정겨울도 자연스레 아기 보러 병원으로 왔다.“맞아요. 또 환자들에게 진찰해 주어야 하니까요.”전이진은 늘 정겨울에게 감사했다. 정겨울은 의사 선배의 덕에 여운초의 눈이 이미 반쯤 치료되었다고 말했고 그녀가 여운초에게 약을 조금만 더 쓰면 여운초가 금방 빛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전이진은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이진 씨와 운초 씨 결혼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죠?”“네, 얼마 안 남았어요.”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전이진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형수님은 언제 퇴원하세요?”“순산이라 이틀이면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전이진은 또 알았다고 대답했다.전이진과 성기현은 서로 나눌 얘기가 별로 없었다. 주로 과거에 성씨 가문과 전씨 가문은 서로 적대적 관계였기 때문이다.그 뒤로 하예정이 이모를 되찾은 후 친척 관계가 맺어지자 두 가문도 하예정을 위해 이전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가문이 서로 협력하거나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불가능했다.가끔 뒤에서 서로를 찌르기도 했지만, 너무 깊게 찌르지 못했다. 하예정이 알게 되면 중간에 끼여 난처해지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곧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지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성기현은 전이진에게 물었다.“TV 볼래요? 제가 TV를 켜드릴게요.”“괜찮아요. 이따가 리조트로 돌아갈 거에요.”“네.”또 할 말이 없어졌다.다행히 여운초가 안에서 빨리 나왔다.아기가 잠든 후 그녀는 아기를 유청하의 옆에 눕혀 엄마 옆에서 자도록 했다. 아기가 더 오래 잘 수 있기 때문이다.여운초가 나오자 전이진은 몸을 일으켜 약혼녀를 맞이하러 일어섰다.여운초가 입을 열었다.“청하 언니가 쉬
성씨 가문 별장 대문 앞에 세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선두에 선 그 차의 운전사는 경적을 울렸다.곧 집사가 나왔다.집사는 먼저 문을 열고 차창 앞으로 다가갔고 운전사가 제때 차창을 내리눌렀다.“누구를 찾으세요?”집사는 차 뒷좌석의 사람을 보았다. 늙은 여자가 앉아있었지만, 집사가 여태껏 본 적 없는 모르는 사람이었다.집사는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감히 별장 안으로 쉽게 들여보내지 못했다.그러자 운전기사가 대답했다.“우리 가주님께서 성씨 가문의 큰 사모님께서 출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이곳으로 축하드리러 왔어요. 우리 집 가주의 성씨는 이씨 성입니다.”이씨 성이라고?집사는 조금 더 분명히 묻고 싶었지만, 갑자기 이윤미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억났고 집사도 무언가 깨달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들어가서 우리 사모님께 말씀드릴게요.”운전사가 고개를 돌려 이은화를 보았고 이은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운전사가 알았다고 대답했다.집사는 몸을 돌려 들어갔다.몇 분 후, 집사가 나왔다.집사는 별장의 문을 열어 이은화의 차가 별장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집사의 도움으로 이은화의 차량은 주차장에 잘 주차되었다. 이은화가 곧 차에서 내렸고 그녀의 경호원들도 뒤를 따랐다.“선물을 들여보내고 바로 나와. 내가 여기서 기다릴게.”이은화가 경호원들에게 엄숙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경호원들도 공손하게 대답했다.집사가 이은화 일행을 집안으로 모셨다.이은화는 급하게 방에 들어오지 않고 성씨 가문의 정원 환경을 둘러보다가 한참 후에야 집사를 따라갔다.화장한 덕에 이은화의 늙은 얼굴을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 쓰인 불쾌함도 잘 감추었다. 그러나 집사는 그 표정을 포착하지 못했다.이은화는 이경혜가 직접 마중 나오지 않아 조금 불쾌했다. 이은화는 자신이 귀한 손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게다가 그녀는 이경혜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이기도 했다.비록 이은화는 이경혜가 자신의 조카딸이라고 백
이은화도 이경혜를 보면서 자신의 맏언니의 그림자를 찾으려고 애썼다. 듬직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맏언니를 닮았다는 것 빼고는 외모는 별로 안 닮았다. 하지만 형부를 많이 닮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그 누구도 나서서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한참 후에야 이경혜가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앉으세요.”이은화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이경혜의 앞에서 멈추어 섰고 이경혜에게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우리 형부를 많이 닮았네. 어렸을 적 넌 네 아빠를 많이 닮았고 네 동생이 우리 맏언니를 많이 닮았는데.”“무슨 뜻이죠?”이경혜가 냉랭하게 물었다.이은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도 이미 많이 알고 있다는 걸 나도 알아. 강성에서 돌아다니는 헛소문을 너도 모를 리가 없겠지.”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은 강성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었다.다들 이씨 가문 전임 가주의 두 딸이 관성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그녀의 친딸까지 몰래 관성에 와서 그 일에 관해 조사했다.이은화도 그녀가 관성에 온 지 보름 만에 알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전부 알아냈다.주로 관성에서 이씨 성을 가지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연령대가 이은화의 조카딸에게 맞는 사람은 이경혜뿐이었다.게다가 이경혜의 젊은 시절의 위대한 업적으로 놓고 봐도 이은화는 의심할 필요 없이 이경혜가 바로 그녀의 조카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업계에서 장사하는 이경혜의 야무진 모습에는 맏언니의 그림자가 보였다.그 당시, 맏언니가 아이를 낳고 나서도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회사와 가족 일로 바삐 돌아쳐 이은화에게 부분적인 일을 맡기지 않았더라면 맏언니와 여동생을 쓰러뜨리고 가주 자리에 앉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이경혜는 여전히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알죠. 사람들은 모두 말하죠. 저와 제 여동생을 제외한 제 가족들이 모두 당신 손에 죽었다고. 그리고 제 이모도 당신 손에 죽었죠.”이은화의 표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파 앞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경호원들에게 그녀가 가져온
성문철이 차를 끓여왔다.이경혜는 이은화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었고 그 찻잔을 이은화 앞에 놓으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은화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우리가 나타났으니 그럼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우리에게 양보할 겁니까?”이경혜의 여동생은 죽었지만, 이경혜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또 두 자매가 모두 딸을 낳았다.이씨 가문의 규칙에 따르면, 이경혜의 딸은 이씨 성을 따서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계승해야 하지만 성소현이 원하지 않으면 이경혜의 여동생의 후손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이은화는 이경혜가 이런 물음을 물어볼 줄은 몰랐다.두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만났지만, 조카는 이은화와 이야기할 때 항상 말속에 가시 달린 말을 내뱉었고 이은화의 말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이은화도 조카가 믿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이은화는 관성에 있는 이경혜의 전설도 낱낱이 조사했다.하지만 이은화는 여전히 이경혜가 그렇게 예리하게 말을 내뱉을 줄 몰랐다.이은화는 잠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이경혜는 똑바로 앉아 이은화를 빤히 쳐다보면서 입꼬리를 위로 약간 올렸다. 마치 이은화의 허위를 풍자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이은화는 속으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맏언니와 여동생을 꺾어버리고 가주 자리에 오른 뒤로 아무도 감히 이런 태도로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고 모두 공손한 태도로 이은화를 대했다.다른 사람의 존중과 공손함에 익숙해진 이은화는 이경혜에게 이런 소리 없는 수모를 겪었기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화를 내지 못했다.이곳은 성씨 가문의 저택이었다. 그것도 관성이었다. 이씨 가문의 땅이 아니었기에 이은화는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했다.“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가주님께서 우리 자매를 찾으셨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도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가주님께서 우리 자매를 찾아 잘 보살피려고 하는지 아니면 아예 뿌리를 뽑고 싶은지 누가 알겠어요.”“경혜야!“이은화는 낮고 묵직한 소리로 말했다.이은
“네 여동생이... 잘 지내지 못한 것도 난 정말 마음이 아파. 내가 소용없어서 너희들을 이제야 겨우 찾았어. 좀 더 일찍 찾았더라면, 너의 여동생도 그렇게 비참하게 살지 않았을 건데. 그러면 하예진 자매도 기댈 곳도 생겼을 텐데.”“경혜야, 수십 년 전과 지금은 다르잖아. 잘 생각해 봐. 예전에는 사람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 휴대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먼 길을 떠나는 것도 엄청 어려웠고. 게다가 카메라도 얼마 없었어. 인터넷도 안 되는 시대라서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어.”이경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이은화가 연기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이은화의 말이 끝나자 이경혜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제 엄마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제가 우리 엄마의 장녀로서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이어받아야 할 겁니다. 그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 이모도 이윤정도 아닌 저라고요. 참, 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혈육도 아니죠? 이모도 정말 대단하세요. 딸이 바뀐 줄도 모르고 이십여 년을 키우시다니.”이은화의 안색은 더 안 좋아졌다. 그러나 이경혜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후회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윤미가 태어났을 때 집안에 일이 복잡했어. 내가 어쩔 수 없이 약한 몸을 이끌고 집안일을 처리해야 했기에 윤미를 소홀히 대한거지. 그래서 전 집사에게 기회가 주어진 거고.”“그 뒤로 다시 아기를 보았을 때 아기가 좀 달라진 것 같았는데 며칠 못 봐서 모양이 변했나 싶었어. 갓 태어난 아기들이 다 똑같게 생겼으니 더는 의심하지도 않은 거지. 그런데 정말 전 집사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꾸미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가장 노릇을 하는 것도 엄청 힘들어. 곳곳에 모두 신경을 써야 하거든. 우리 언니가 살아계셨을 때 너를 후계자로 삼아 키운 것도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일이었는데...”이은화는 그 찻물로 목을 추긴 후 계속 말을 이었다.“언니에게 사고가 생겼고 여동생도 따라서 떠났던 그 시절은 정말 우리 이씨 가문의 가장 어두운 기간이었어.
이은화는 할 말이 없었다.하예진도 함께 교육하라고 말했다.이은화는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미 집주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고 그녀가 일할 수 없게 되면 틀림없이 친딸에게 집주인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이윤미는 이은화의 핏줄이었기 때문에 이윤정과 달리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 개를 알았다.이윤미는 교활했다. 돼지 분장을 한 호랑이였기에 지금 강성의 사람들 모두 그 계집애에게 속고 있었다.다들 이윤미가 연약하고 만만하다고 생각했다.이윤미가 시골에서 자라 시야가 넓지 못해 이씨 가문으로 돌아온다 해도 능력이 없어서 성과를 얻는다고 해도 모두 그녀 팀원들의 덕분이라고 여겼다.겉으로 이은화가 친딸에 대한 태도가 항상 안 좋게 보였고 여전히 이윤정이라는 양녀를 더 아낀듯했다.이윤정이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은화는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이윤미라는 친딸을 받아들였다.이윤미가 그녀의 곁에서 자라지 않았고 또 이은화도 나이도 많아 몇 년만 더 버티고 퇴직해야 했다. 보편적으로 가주들은 아무리 건강해도 80세 이전에 은퇴했다. 늙을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의사결정 또한 대가족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윤미가 빨리 모든 것을 익히게 하려고, 이윤미가 돼지로 분장한 호랑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은화는 친딸을 협조해 함께 연기하게 되었다.그녀는 언니와 여동생을 죽이고 비로소 가주 자리에 올랐고 또 수십 년을 거쳐 후계자를 길러냈는데 다시 이 모든 것을 언니의 후손에게 물려주라고 하면 그녀는 분명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이은화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을 보더니 이경혜는 또 “호호”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이은화의 귀를 푹푹 찌르는 것만 같았다.그녀의 이 조카는 어렸을 때 매우 대단했다. 그녀의 맏언니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십 년 후에 다시 만나도 여전히 대단했다.이경혜는 자신의 딸을 떠올렸다. 이윤미가 이윤정보다 더 자질이 있다고 해도 이경혜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이경혜는 성씨 가문에 시집간 후 시아버지와 남편의 신
적을 놓치면 자신을 해치는 거나 다름없다.“우리 집에 보양식이 부족하지는 않아요.”이경혜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네 집에 보양식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도 난 잘 알아. 그런데 이 물건들은 내 마음을 대표하는걸. 우라 수십 년을 서로 못 봤잖아. 이젠 내가 널 찾게 되었으니 앞으로 우라 자주 만나자.”“얼마 전부터 확인하러 오고 싶었지만, 항상 시간이 없었어. 이번 전 대표님 결혼식에 참석하러 오는 김에 네가 내 조카딸이라는 것을 확인했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이은화는 이 말을 내뱉을 때 아주 부드럽고 자애로운 말투로 말했다.이경혜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한 둘째 이모에 대해 열정을 가질 수 없었고 심지어 가족 상봉에 대한 설렘도 찾아볼 수 없었다.“예정이가 전씨 가문에 시집갈 수 있다니 너무 좋은 소식이야.”이경혜가 무뚝뚝하게 앉아만 있는 것을 본 이은화는 스스로 화제를 찾아야 했다.“네 여동생도 이제 저승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두 딸이 지금 매우 잘 지내고 있으니 말이야. 우리도 어른으로서도 안심할 수 있고.”전태윤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이은화는 하예정에게서 큰 언니의 그림자를 찾으려고 했지만, 하예정은 큰 언니와 닮지 않았다고 느꼈다. 오히려 꽃을 뿌리던 우빈이가 그녀의 맏언니와 아주 비슷하다고 느꼈다.당시 이은화는 요행을 바라면서 하예정이 맏언니의 후손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수소문하고 사실을 확인한 그녀는 결국 실망하고 말았다.이경혜가 바로 그녀의 큰 조카였다.그리고 하예정 자매는 맏언니의 후손이었다.하예정은 관성의 갑부 전씨 가문에 시집갔고 이경혜는 성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살고 있었다. 관성에서는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이 가장 큰 가문이었다. 만약 두 가문이 서로 손을 맞잡는다면 이씨 가문은 아마도 패배하고 말 것이다.심사숙고 끝에 이은화는 결국 성씨 가문을 방문하여 허심탄회하게 조카딸과 관계를 인정하려 했다.그 깊은 원한은 수십 년이 흘렀는데 누가 맏언니를 죽였다는
우빈이가 툭하면 어린이집에 안 가는 데 익숙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명확하게 일러둬야 한다고 하예정은 생각했다. 이번에는 용정이 모처럼 놀러 왔고 또 용정이 관성에서 친구란 우빈이밖에 없으니, 이번만은 응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우빈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을 약속했다.용정도 따라서 말했다.“아주머니, 다음번에는 제가 여름방학 혹은 겨울방학을 하는 틈을 타서 올 게요. 그러면 누구도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잖아요.”“이모, 지금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서 얘기하면 안 돼요?”우빈이한테는 지금 휴가를 내는 일이 급선무였다.그래야 시름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째려보았다. 전태윤은 일부러 하예정의 시선을 피하여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쳐다보는 척했다. 하혜정은 속으로 남편이 우빈이의 일을 자신한테 떠밀었다고 투덜댔다.“알았어.”하예정은 마지못해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예진이 전화를 받자 하예정이 말했다.“언니, 우빈이가 할 얘기 있대.”그러고 나서 휴대폰을 우빈이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우빈아, 네가 직접 엄마하고 얘기해.”우빈이는 전화를 받아쥐고 하예진에게 휴가를 내려는 사유를 자초지종 말했다.하예진도 하예정과 똑같은 말을 하고 나서 우빈이가 하루 휴가를 내서 모처럼 찾아온 친구랑 노는 것에 응낙했다.그러자 우빈이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돌려준 후 용정의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했다. 그러고는 대결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용정에게 말했다.“용정아, 나 요즘 아주 열심히 무술을 연마했어. 우리 한 번 대결해.”용정이 자신만만해서 말했다.“넌 나한테 질 거야. 나한테 져서 화내면 안 돼. 알았지?”지난 여름방학 때 두 사람이 함께 놀 때 우빈이가 항상 져서 기분이 언짢아했었다.용정은 그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모연정이 용정이보고 우빈이는 손님인데 왜 양보하지 않았냐고 핀잔했다.하지만 용정은 어떻게 양보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 자연스럽게 져주는 법을 모르
전태윤이 말하면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예준성도 뒤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다행히 평소에 우리 두 집이 서로 가깝게 지냈고 또 앞으로 친척이 될 사이니 말이죠. 그렇지 않고야 제가 미안해서 어찌 이렇게 이른 아침에 찾아와서 폐를 끼치겠어요.”별장 구역은 아주 조용했다. 가끔 조깅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였다.“용정이 모처럼 왔는데 한시 급히 친구와 놀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용정의 무술 실력이 아주 많이 는 거 같아요. 아까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과 달리는 속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 우빈이는 아무리 용을 써도 용정을 못 따라잡아요.”“사람마다 다 장점과 약점이 있어요. 용정의 약점은 식탐이 많아요. 매번 집에만 돌아오면 준영이를 얼려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다 해달라 해요. 번마다 배를 두드리면서 먹어요.”“연정 씨는 애가 하도 많이 먹길래 배에 탈이라도 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다행히도 매일 무술을 연습하느라 많은 열량을 뺐지요. 그렇지 않으면 진작 뚱보가 되었을 겁니다.”“애들은 다 그래요. 크면 저절로 다 낫는 법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저도 어린 시절에 먹길 엄청나게 좋아했대요. 하지만 커서 난 식탐 많은 사람으로 취급받은 적 없어요.”커서는 혼자 통제할 수 있으니 제멋대로 먹지 않았을 뿐이었다.예준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식탐 때문에 손해 볼 수도 있어요.”두 어른과 두 어린이는 반 시간 남짓이 달린 후 방향을 바꿔서 집으로 달렸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할 무렵에 하예정은 이미 일어나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빈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대문 입구로 마중 나갔다.“이모!”두 꼬맹이가 먼저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예정을 본 우빈이는 깡충거리면서 뛰어갔다.용정도 우빈이 뒤를 따라 뛰어갔다.“아주머니.”“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니?”하예정은 용정을 보고 반색하며 맞았다.비록 마당에 세워진 예준하의 차를 보긴 했지만
전태윤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이러니 두 사람이 친구로 될 수 있는 거네요. 두 사람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니 말이죠. 저도 꼭두새벽에 우빈이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함께 조깅하러 나가는 중입니다.”“같이 나가는 건 어때요? 같이 산책해요.”전태윤이 예준성 부자한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제안했다.예준성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럽시다. 어차피 저도 이제 더 잘 수도 없는데요.” 예준성은 용정을 보면서 말했다.“우빈이 데리고 앞에서 놀아야 해.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알았지?”“우빈이더러 용정을 잘 데리고 놀라고 해야죠. 당신들은 멀리서 온 손님이니 응당히 우리가 주인답게 잘 대접해 드려야죠.”두 아이는 진작 손잡고 앞으로 뛰어 가버렸다.예준성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용정은 낯 갈이도 잘 안 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숙해져요. 기억력도 참 좋아요. 한 번 다녀갔던 길은 절대 안 잊어요. 길옆에 있는 화초까지 똑똑히 기억할 수 있어요. 걔는 식물 종류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용정의 스승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의술이 최고인 정 선생님이잖아요.”정겨울은 바빠서 직접 용정을 가르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용정이 신의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약재의 이름을 기억했다.용정의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용정은 성격이 참 좋아요.”“그건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성격이 좋을 땐 좋아도 녀석이 횡포한 면도 있어요. 금방 집에 데리고 왔을 때는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말도 잘 안 하기에 똑똑하지 못한 먹보인가 했어요.”“정말 잘못 봤어요.”예준성이 겉으로는 양아들의 단점을 말하는 것 같지만 두 눈은 애틋한 눈빛으로 가득 찼다. 용정은 예준성을 약간 어려워하기에 여태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저씨라고만 불렀고 모연정을 엄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자신이 모연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모연정을 모 엄마라고 불렀다.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운이 좋은 줄 아세요.
“알았어요. 제가 지금 태윤 씨 집 앞에 있어요. 집사가 문 열려고 나오네요. 그러면 만나서 얘기해요.”말을 마친 예준성은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은 멍하니 서 있었다.전태윤이 어리둥절하여 머리를 숙여 우빈이를 쳐다보니 마침 우빈이도 머리를 들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이모부, 왜 그래요? 무슨 일 생겼나요?”전태윤은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누군가 우빈이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또 아침 일찍 찾아왔단다.”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혹시 예준하와 성소현의 혼사에 문제가 생겨 예준성이 자신더러 로비스트 되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건 아닐지 생각했다. 하예정은 그럴 재주가 있지만, 자신은 로비스트로 될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이윽고 예준성이 동생이 평소에 타고 다니던 차를 운전해서 대문을 지나 마당에 세웠다.예준성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뒷좌석의 차 문이 열리면서 작고 탄탄한 몸매를 가진 어린애가 차에서 날렵하게 뛰어내리더니 전태윤이 서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뛰어왔다.“우빈아, 우빈아, 내가 왔어!”전태윤이 눈여겨보니 용정이었다.“용정!”용정을 알아본 우빈이는 잡고 있던 전태윤의 손을 뿌리치고 용정이 뛰어오는 방향을 향해 깡충깡충 뛰어갔다.두 꼬맹이는 만나자마자 반갑다는 듯 어른들처럼 상대방한테 커다란 포옹을 해주었다.여름방학 때 작별한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두 아이의 키는 눈에 띄게 컸다.용정은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서 무술을 연마했기에 키가 우빈이보다 훨씬 더 컸으며 신체도 우빈이보다 퍽 탄탄해 보였다.방금 용정이가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을 통하여 전태윤은 용정의 무술 실력이 또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 용정의 무술 솜씨는 우빈이 셋을 합쳐도 못 당할 것이었다. 이 아이는 무술 배우는 방면에서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어?”친구를 만난 우빈이는 기뻐하면서 물었다.“나는 할아버지 따라서 모 엄마와 아저씨 보러 왔어. 사공이 유치원에 일주일 동안 휴가를 신청해
이날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돌아오는 날은 일요일이었다.휴식날인데 우빈이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우빈이는 일어난 후 곧장 하예정이 자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전태윤이 안에서 방문을 열어주었다.“이모부, 이모 일어났어요? 들어가서 이모랑 같이 놀래요.”전태윤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꼬맹이와 화내지 말자고 스스로 가슴을 달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지? 평소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 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더니 쉬는 날만 되면 아주 일찍 일어나더라.”우빈이가 입을 뾰족이 내밀면서 말했다.“이모부, 나는 한 번 깨어나면 더는 못 자요. 나랑 놀아 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심심해요. 이모 찾아와서 노는 수밖에 없어요.”현재 우빈이는 시 중심에 자리 잡은 전태윤의 개인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 서원 리조트에 있을 때는 그나마 함께 놀아 주는 어린이들이 있었기에 이모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우빈이를 부쩍 들어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이모는 아직도 자고 있어. 이모부가 우빈이랑 같이 놀아 줄게. 뭐 놀까?”“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좋지 않을까?”우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싫어요. 혼자 놀면 재미가 없어요. 이모부는 장난감도 안 놀 거잖아요.”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이모부랑 같이 아침 조깅하러 나갈까? 이모부가 가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올 테니 얌전하게 기다려야 해?”그는 우빈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내려놓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신신당부했다.“침실에 들어가서 이모를 깨우면 안 돼. 알았지? 이모부가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우빈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전태윤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서 먼저 운동복 바지부터 바꿔 입고 우빈이가 그사이에 침실에 들어가서 하예정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웃옷을 입으면서 밖으로 나왔다.우빈이가 조용하게 제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야 전태윤은 안도의
윤미라는 아들 노동명이 무서웠다.“알았어. 꾸준히 재활 치료할 거야. 네가 돌아올 때면 내가 2~3m나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참, 언제 돌아올 거야?”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대답했다.“설까지 있을 계획에요. 설날이 되면 제가 돌아갈게요.”“그렇게 오래 있겠다고? 우빈이는 어쩌려고?”“예정이가 돌봐주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우빈이 보러 가주세요. 시간이 없으면 제부한테 부탁해서 우빈이를 저한테 데려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고요.”하예진은 점점 더 바빠질 것이다.당분간 아들 우빈과 함께할 시간이 적을 것이다.“우빈이가 태어날 때부터 예정이가 곁에서 보살펴서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요.”“사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노동명이 한 마디 내뱉었다.우빈이는 핑계일 뿐, 사실 노동명이 그녀가 그리웠다.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리면 노동명은 자신이 하예진이 무척 보고싶을 것으로 예상했다.전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만 그리움의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우빈은 어려서부터 녀석을 키워준 하예정이 있어서 하예진이 곁에 없다고 해도 바로 적응할 수 있지만 노동명은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요즘 그는 매일 하예진을 보는 것에 익숙했다.“예진아,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내가 혼자 널 보러 가도 돼? 걱정하지 마. 우리 집에 개인 비행기가 있어서 내가 그 비행기를 타고 경호원들과 함께 가면 돼. 경호원들이 날 돌봐줄 거야. 네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거고. 널 보러 갈 뿐이야. 너랑 밥 먹고 얘기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주말마다 널 보러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게. 나도 출근해야 하니까.”하예진은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럼 주말에 우빈이도 데리고 오세요.”“난 너와 단둘이 주말을 보내고 싶은데 우빈이 녀석도 데리고 가야 해?”하예진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동명 씨가 혼자 온 걸 알게 되면 우빈이가 삐질걸
“앞으로 더는 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저는 단 한 번도 동명 씨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제가 돼지처럼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도 동명 씨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처럼요.”노동명은 급히 끼어들었다.“넌 못생기지 않았어. 전혀! 예전에 통통할 때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거든. 복스러워 보였어.”“못생긴 거 맞아요. 저는 거울만 봐도 뚱뚱한 제가 너무 싫었어요.”바보 같은 짓은 한 번만 하면 충분했다. 하예진은 다시는 예전처럼 폭식하지 않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살을 빼기 전에 하예진은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지방간뿐만 아니라 요산 수치도 높았다.체중 감량 후 요산뿐만 아니라 지방간 수치도 모두 많이 좋아졌다.“하예진아, 우빈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옷도 사줬는데 나한테는 뭐 사준 거 없어?”노동명이 화제를 바꾸어 질투하기 시작했다.“동명 씨는 부족한 게 없잖아요. 우빈이는 아이라서 너무 빨리 커요. 해마다 새 옷을 사줘야 하지만 동명 씨는 이젠 다 큰 성인이라 작년의 옷을 올해에도 입을 수 있잖아요. 돌아가게 되면 강성의 특산 제품을 가져다드릴게요.”노동명은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빈이는 크면 남의 집 남편으로 되어 우빈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게 될걸. 결국,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을 텐데 나를 더 관심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새 옷 사줘. 네가 사준 옷이면 난 다 좋아.”하예진은 하예정에게 거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지난번 하예진은 재혼하고 싶지 않다며 노동명의 감정을 거절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이 시집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나 다름없다. 모두의 눈에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보였다.노동명도 자연스레 하예진의 남편 역할을 하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여생을 함께하려고 한다.하예정이 끝까지 노동명에게 시집가지 않더라도, 그가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남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선물을 너무 받고 싶었다. 가격을 따지
이윤미가 말을 꺼냈다.“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을 뿐이에요. 사람들을 몰래 예진 씨를 따르라고 한 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뒤를 따라가서 예진 씨의 몸매를 익히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앞으로 예진 씨가 변장하더라도 그녀의 몸매에 대한 인상으로 분장한 예진 씨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예진 씨와 만날 때마다 예진 씨의 안전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니까요.”“만약 그녀가 저를 만나러 오는 도중에 사고가 나면 하예정 일행은 아마 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예진 씨가 강성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몰래 그녀를 도와주세요. 그저 우리 엄마와 그 늙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도와주면 돼요.”이윤미가 말하는 늙은 남자는 정군호가 아닌 이은화의 특별 비서였다.방윤림은 예의 갖추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밤이 점점 깊어지는데 얼른 돌아가세요.”이윤미는 한숨을 쉬었다.“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집에는 따뜻함이 없어요.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눈치 보면서...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방윤림은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랐다.주인의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일개 비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이윤미는 곧 방윤림과 함께 떠났다.한 시간 후.하루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한 뒤 가발을 쓰고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이윤미가 선물한 인간 얼굴 가죽을 쓰기 아까웠다.그렇게 전업적인 도구는 가장 필요한 곳에 써야 낭비하지 않는다.하루 호텔은 전호영이 강성에서 소유하고 있는 호텔 본점이다. 하예진이 분장한 이유는 전호영에게 폐를 끼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 그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가죽을 쓸 필요 없었다.하예정은 그녀가 묵고 있던 룸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근 뒤에야 휴대전화를 꺼내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노동명이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주무세요?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