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이 아직도 떠나지 않은 것을 본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요?"입술을 감쳐 물은 전태윤이 말했다."괜찮아.""나, 먼저 회사로 갈게.""그래요."하예정은 대충 대답한 뒤 고개를 돌려 계속해서 설거지를 이어갔다.전태윤은 그녀의 뒷모습을 그윽하게 몇 번 보고 나서야 주방을 나섰다.주우빈과 놀던 전씨 가문 할머니는 손자가 나온 것을 보자 퍽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태윤아, 예정이 설거지하는 거 돕지 않고 뭐해. 점심 내내 요리하느라 힘들 텐데."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아내를 참 아꼈다. 그녀가 보기에 그녀의 아들들은 며느리에게 다정하고 사랑을 듬뿍 주는 것 같은데 왜 손자에게로 오니 손자며느리를 아끼는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예정이가 제 도움은 필요 없대요. 할머니, 저 먼저 회사로 돌아가 볼게요."전태윤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 뒤 할머니 앞을 지나쳐 걸어갔다.전씨 가문 할머니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전태윤은 빠른 걸음으로 이미 서점 밖으로 나간 뒤였다. 그녀는 끝내 속으로 한숨만 내쉬며 말을 삼켰다.이내 전태윤은 차를 몰고 관성중학교 입구를 벗어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정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무슨 일이야?"마침 전태윤은 신호에 걸려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었다."네 막내 처남이라고 할 수 있는 하지철 잡혀갔는데?""그거 내 처남 아니야."전태윤은 차가운 목소리로 친구가 말한 호칭을 정정했다.그와 하예정의 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 부부 관계가 얼마나 더 유지될지 알 수 없어, 하씨 집안 사람들은 그는 친척으로 여기지 않았다.하예정마저도 친가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그래, 그래. 네 처남 아니야."소정남은 하씨 집안 사람이 하예정 자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어 자신이 방금 전에 한 농담은 확실히 과했다고 생각했다."하지철이 양아치들을 데리고 하예정을 막았는데 도리어 얻어만 맞고, 신고당해서 같이 구류 당했대."하예정은 다치지 않았기
어쩐지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 했더니, 둘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조금 속되지만 곧장 돈을 주는 방법이라.가게에 있을 때에 전태윤은 이미 하예정에게 성소현이 주는 해산물을 받으면 빚을 지는 것이니 그냥 받으면 안 된다고 돈을 보낼 테니 다시 성소현에게 주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하예정의 반박에는 받아칠 구석이 없었다.두 사람은 이미 서로 친구를 삭제했고 하예정은 아예 그의 번호까지 차단했다.친구를 추가하지 않으면 어떻게 돈을 보낸단 말인가?전태윤은 조금 후회가 됐다. 아량이 넓지 못하고 속이 좁아 아주 조그마한 오해로 아내와 냉전하며 그녀를 삭제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됐다.이제 다시 추가를 하고 싶어도, 깔린 멍석이 없었다.…...유진 테크.대표 사무실에서 나오는 주형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상사가 밝은 얼굴로 돌아온 것을 본 서현주는 얼른 그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서며 사무실의 문을 자연스레 닫았다."주 사장님, 대표님이 뭐라고 했는데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요?"대표가 사인한 서류를 내려놓은 주형인은 서현주의 팔을 잡고는 가까이 끌어당긴 뒤 그녀의 허리를 안고 배시시 웃었다."맞혀봐, 현주야.""승진 시켜준대요? 아니면 연봉 인상?"주형인은 고개를 저었다.그의 위로 두 명의 부대표가 있었다. 그 부대표 중 하나는 대표의 친구였고 다른 하나는 대표의 친동생이라 주형인이 부대표로 승진할 리가 없었다.사장까지 된 것만 해도 주형인은 이미 만족했다.연봉 인상도 불가능했다. 기껏 해 봐야 상여금이 더 는 정도였고, 게다가 부수입까지 있어 상여금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뭐예요, 싫어요. 얼른 말해줘요, 무슨 일인데요?"서현주는 애교를 부리며 물었다.주형인은 그런 서현주의 뺨에 입을 맞춘 뒤 조용히 말했다."키스하게 해주면 알려줄게.""뭐예요, 방금 했잖아요."주형인은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서현주는 주형인의 눈빛에 마음이 흔들려 끝내 주형인의 목을 끌어안고 아래로 당겨 먼저 입술을 맞췄다.프렌치 키
"지금은 뚱뚱하고 못생겨서 데리고 가면 내 체면만 깎이고 우스갯거리나 되고 말 거야."말을 마친 주형인은 서현주의 예쁜 얼굴을 감싸 쥐며 칭찬했다."그 사람 지금 어디 너만 하겠어? 현주야, 난 지금 온통 너뿐이야. 그 사람에게 정말 일 말의 감정도 없어.""지난번에 칼을 들고 내 뒤를 쫓아왔던 일을 난 지금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어. 비록 나한테 사과도 하고 전보다 더 잘해준다지만 난 도무지 용서가 안 돼. 만약 내가 빨리 도망가지 않았다면 그날, 분명 날 찔러 죽였을 거야.""그 여자는 악독한 여자야.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면서 그렇게 악독한 사람인지 그날에서야 깨달았어. 우빈이만 아니었다면 정말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엄마랑 누나도 그러는데, 그 집은 내가 선금을 내고 결혼 전에 산 데다 대출도 내가 갚고 있는데 왜 나 말고 하예진 혼자 지내는 건데?""하예진은 우리 가족과도 사이가 안 좋아. 현주야, 너 우리 부모님이랑 누나 만나봤었잖아. 어떤 것 같았어?"서현주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되게 좋은 분들 같았어요. 부모님이든 누나, 매형이든 다 편하고 예의 발랐어요."그녀는 주씨 집안 사람들 앞에서 주형인에게 세심하게 대하고 지극정성으로 살펴주었었다. 주씨 집안 사람들이 눈이 먼 것도 아니니 주형인과 그녀의 관계를 못 알아 봤을 리가 없었다.비록 주씨 집안 사람들은 그녀에게 열정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내연녀라는 이유로 불친절하게 대하지는 않을 정도로 교양은 있었다.그러다 그녀가 주형인에게 아주 해주는 것을 보자 김은희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고, 주서인은 아예 그녀를 데리고 쇼핑을 하며 아주 비싼 새 옷도 여러 벌 사줬었다."우리 가족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데, 평소에 하예진에게도 엄청 잘해줬어. 하지만 하예진은 우리 가족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지. 우리 부모님이 못 해준다고 하도 우리 누나가 나쁘다고 하고, 어찌 됐든 하예진의 눈에 우리 가족은 다 나쁜 사람이고 자기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었다니까."
주형인은 곧바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서현주를 데리고 나갔다.그는 사장이었고 서현주는 비서라 평소 외근을 할 때면 늘 서현주를 데리고 나가 두 사람이 함께 회사를 나간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다만 청소를 하는 이모는 회사 입구에서 주형인이 서현주를 태우고 떠나는 것을 보자 나이 든 경비원에게 말했다."주 사장은 매일 서 비서랑 같이 다니는데 예진이는 주 사장이 바람피울까 봐 걱정도 안 된대요?"하예진도 예전에 이 회사에서 일한 터라 오래된 직원들은 아직도 하예진을 기억하고 있었다.그 말에 청소 이모를 보는 경비원의 표정은 소식 참 느리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주변에 사람이 있나 둘러본 다음에야 소리를 낮춰 청소 이모에게 말했다."당신은 매일 청소하면서 회사 모든 곳에 다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이 정도도 모르는 거야? 주 사장이랑 서 비서 진작부터 만나고 있었어. 모르고 있었어?"청소 이모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았대?""눈이 있는 사람은 다 알지. 퇴근하고 나면 서 비서는 늘 예쁘게 차려입잖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고, 몇 백만 원짜리 루이비통 가방을 메고 다니는데 서 비서 월급으로 그게 가당키나 해? 서 비서는 평범한 집이란 말이야.""당연히 주 사장이 옷이며 가방이며 목걸이며 이것저것 사준 거지. 퇴근한 뒤에 두 사람이 밤에 같이 밥 먹는 걸 본 사람도 있어. 어쨌든 저렇게 가까워 보이는데 안 만난다면 누가 믿어?"청소 이모가 말했다."예진이는 아직 모르고 있는 거겠지? 당시 두 사람이 결혼할 때 온 회사 사람을 하객으로 불렀는데. 우린 그때 예진이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다 기억하고 있단 말이야. 결혼식 날 정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예뻤지.""이제 몇 년이나 지났다고 주 사장은 마음이 변해. 남자는, 역시 돈깨나 만지면 다 나빠져."그녀는 하예진이 못내 가여웠다."예진이는 요 몇 년 주 사장 자주 안 찾아와서 주 사장의 일은 모를걸. 아마 주 사장이 바람피우는 건
저녁 퇴근 시간이 되자 소정남은 서류 뭉치를 들고 대표 사무실을 찾았다.전태윤은 고개를 들고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소정남이 자리에 앉자 전태윤이 무심하게 물었다."비서는 어디 가고 네가 왔어?""우리 비서가 임신했잖아. 왔다 갔다 하는 게 피곤할까 봐 내가 직접 왔지. 남편이 와이프 괴롭힌다고 나한테 뭐라고 하면 어떡해."소정남은 서류뭉치를 친구의 앞에 내밀었다."확인해 봤는데 별문제 없어. 사인만 하면 돼."서류를 내려놓은 소정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른 뒤, 느긋하게 물을 마시며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전태윤은 참 잘생겼다. 매일 인상만 쓰고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잘생긴 외모는 그럼에도 가려지지 않았다.이 외모지상주의의 시대에 그와 스쳤던 여자들은 대부분 그에게 빠져 잊지 못했다.하지만 예외인 여자도 있었다. 바로 그들의 대표 사모님이었다.소정남은 속으로 감탄했다. 하예정은 불과 한 달 사이에 전씨 그룹에서 가장 냉철하기로 소문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가장 중요한 건, 하예정 본인은 전태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도대체 어떻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거지?전태윤은 그녀에게 못 해준 것도 없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전태윤과 눈만 마주쳐도 며칠을 끙끙 앓아댔다. 성소현이 그러고 있지 않은가. 몇 년 동안 거절당하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전태윤은 하예정을 위해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많이 했는데도 하예정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소정남은 그게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뭘 봐."정수리에서 뜨거운 시선을 느낀 전태윤이 고개도 들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잘생겨서 좀 봤어. 전태윤, 너 진짜 잘생긴 거 알아? 성격이 거지 같아서 그렇지 네가 좀만 다정다감한 성격이었으면 사람들이 널 여자로 오해했을 거야. 너가 여자였으면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근데 네가 여자였으면 아마 나도 너한테 꼭 달라붙어서 결혼하자고 졸랐을걸."전태윤은 소정남이
"같이 갈래?"전태윤이 가는 곳에는 그게 어디든 비싼 술이 소장돼 있었다."아니, 취할 것 같아서 싫어. 넌 취하면 챙겨줄 와이프라도 있지. 난 솔로잖아. 취해서 길바닥에 뻗어도 챙겨줄 사람 하나 없다고.""불쌍한 척하지 말고 너도 선봐서 결혼하면 되잖아."소정남이 까칠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너를 보니까 그냥 얌전하게 인연을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아.""내가 뭐? 나 잘 지내거든?""그래, 그래. 잘 지내긴 하지. 요 며칠 너 얼굴이 펴진 적이 없는데 일하는 효율은 전보다 많이 상승했어. 그래서 부하직원들은 고생이지. 요 며칠 자발적으로 새벽까지 야근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전씨 그룹은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자기가 할 일만 마무리하면 야근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조기퇴근도 가능했다.하지만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면 알아서 야근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날 일은 그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이 회사의 원칙이었다.전태윤과 하예정의 냉전이 지속되면서 그가 기분이 안 좋다 보니 자연히 모든 정력을 업무에 쏟았다. 워낙 일 처리 속도가 빠른데 집중력까지 뛰어나다 보니 사흘이 걸릴 업무를 하루 안에 마무리해 버렸다.그러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그의 부하직원들이었다."조 비서는 요즘 바빠서 물 마실 시간도 없대."전태윤이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그래서 힘들대?"그룹에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대표인 전태윤은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상사였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으면 가끔 소정남을 찾아 얘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소정남은 전태윤처럼 까칠하지도 않고 다정다감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소정남은 전태윤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고 둘이 절친이기도 했다.소정남에게 이야기하면 전태윤에게도 의견이 전달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그건 아닌데 나도 보는 눈이 있잖아. 태윤아, 내 말 들어서 손해 볼 게 없다니까. 오늘은 선물 좀 사서 집에 가서 부인분이나 잘 달래줘."'네가 며칠째 이러고 있으니 나도 힘들어 죽겠다고!'
주형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소정남은 이미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네 처형은 결혼한 뒤에 너무 많이 바뀌었지. 주형인은 이제 직급이 높아졌으니 주위에 있는 아무 여자와 비겨도 다 처형보다 예쁘고 어리겠지. 그렇게 오래 지나다 보니 자연스레 네 처형이 못마땅해졌을 거야."전태윤은 차가운 표정에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처형이 왜 그렇게 많이 바뀌었는데? 다 남편을 사랑하니까 몸매가 변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준 거지. 아이가 생긴 뒤에는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게 자신이 아이를 챙기고 온 가족을 돌봤던 거야. 처형이 희생한 건 처형의 청춘과 미모라고."그도 처형의 결혼 전후 변화가 너무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적어도 다이어트를 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하지만 그게 주형인이 바람을 피워도 된다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 몰인정한 성격은 주형인의 속에 숨어 있었고 전에는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제 출세를 해 직장에서도 잘 나가니 우쭐거리기 시작해 자신의 아내를 무시하는 것이었다.하예진의 지금 모습이 너무 별로라면 하예진에게 다이어트를 하라고 할 수도 있었다.하예진은 아직도 주형인을 사랑하고 있으니, 사랑하는 남자가 다이어트를 권유한다면 하예진은 열심히 다이어트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주형인은 결혼 생활 내내 하예진을 억압하고 그녀를 질책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생활비도 더치페이를 하자고 했다.하예진에게 지금 직장이 없어 수입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그건 너의 말이 맞아. 정말로 인정이 있는 남자라면 아내가 100kg가 넘는다고 해도 마음이 변하지는 않겠지."일편단심인 남자는 아내가 못생겨지고 뚱뚱해졌다고 바람을 피우지는 않았다.뭐가 됐든, 주형인은 하예진에게 질린 것이었다.어쩌면 그는 하예진을 일부러 살을 찌우고 살찐 하예진이 싫어졌다는 핑계로 바람을 피웠을지도 모른다."주형인이 모르게 움직여야 돼."소정남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나한테 맡겨 놓고도 마음이 안 놓여? 일부러 정보를
"형수님, 이게 다 뭐예요?"비릿한 해산물 냄새를 맡은 전혁진이 물었다."해산물이에요. 친구가 바닷가에 여행 다녀오면서 선물록 가져왔어요. 아주 신선하더라고요. 남편과 저는 다 못 먹으니까, 보내 드리는 거예요."할머니를 힐끔 쳐다본 전혁진은 그녀가 거절하지 않자 입을 뗐다."이렇게 많이요?"그들의 집에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것이 바로 해산물이다.하지만 형수님이 준 것이니 그래도 집으로 가져가야만 한다."할머니, 가족들에게 조금씩 다 드셔보시라고 하세요."하예정은 세심하게 모든 사람의 것을 그물주머니에 똑같이 나눠 담았고, 돌아가면 전씨 가문 할머니는 그저 꺼내 나눠주기만 하면 되었다."그래, 그러마."전씨 가문 할머니는 혁진이가 차에 해산물을 모두 싣는 것을 보고 나서야 차에 올라탔다. 그러면서 하예정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예정아, 조금 전에 내가 태윤이에게 문자를 보냈어. 같이 저녁 먹고 나서 다시 회사 가라고 했어.""지금 아마 오는 길일 거야. 태윤이와 같은 회사에 출근하는 혁진이도 이미 왔으니 너도 빨리 들어가서 저녁 준비해. 멀리 안 나와도 돼."하예정이 말했다."... 할머니, 미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점심에 남은 반찬을 데워 먹을 생각이었단 말이에요. 저 혼자 먹을 양밖에 없단 말이에요."할머니가 말했다."지금 준비해도 충분해. 얼른 들어가서 준비하거라. 태윤이는 항상 늦게 퇴근하니까 반찬을 여러 가지 신경 써서 준비하고 배부르게 먹이도록 해."하예정은 할머니 앞이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할머니를 배웅하고 나니, 서점에는 하예정 혼자만 남았다.전태윤에게 밥을 차려주기가 귀찮았던 그녀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카톡을 열어보고 나서야 이미 그를 지웠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니, 그가 먼저 그녀를 지웠다.고민 끝에 하예정은 전태윤의 번호를 차단 목록에서 꺼냈다.처음으로 어두운 방에 갇혔던 번호는 끝끝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그리고 하예정은 전태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