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리조트.하예정은 신혼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온 방에 결혼식 분위기로 잘 꾸며져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았지만 방으로 돌아와 보니 그녀의 결혼식을 올린 지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할머니를 모시고 산기슭에서 노동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예정도 노동자들 가족의 가십거리를 듣게 되었다.할머니가 왜 노동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런 재미있는 가십거리들을 엿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도 이런 생활이 좋았다.하지만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퇴직하시고 집에서 노년을 보내시는 어르신이라 매일 산기슭에 가서 가십거리를 들을 수 있었다.하예정은 아직 젊기에 이런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열심히 사업을 운영해 나가야 했다.나중에 백발노인이 되어 전태윤과 함께 퇴직하고 부부가 함께 여기저기 여행 다닐 것이다. 그러다가 나이가 더 들면 할머니를 따라 배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가정의 사소한 일들을 들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살맛이 날 것이다.무지개 컬러 시트가 깔린 침대 위에 하예정 남편이 누워있었다.잠꾸러기였다.하예정은 걸어가서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았다.그녀는 손을 뻗어 전태윤을 깨우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그를 깨우지 않고 잘생긴 얼굴을 부드럽게 만졌다.“평소 굳은 얼굴로 다녀서 몰랐는데 피부 관리가 잘 되어있네. 매끄러워 촉감이 좋고.”갑자기 큰 손 하나가 그녀의 손을 잡았고 전태윤은 눈을 뜨면서 웃었다.“촉감이 좋으면 키스라도 해주던가.”“일찍 깼는데 자는 척하면서 저를 속인 거죠?”전태윤은 또 웃었다.“잠에서 깨자마자 우리 부인이 돌아오길래 침대에 도로 누웠지. 나에게 뽀뽀를 할지 안 할지 확인하려고.”하예정도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이제 태윤 씨는 제 남편이고 제 남자인데 제가 하고 싶으면 뽀뽀하는 거죠. 정정당당하게 뽀뽀를 하지 왜 몰래 뽀뽀를 해야 해요?”“그럼 정정당당하게 뽀뽀해 줘. 어젯밤이 우리 신혼 밤인데 나에게 뽀뽀도
하예정은 일어나 앉아 전태윤을 안아주었다.“여보, 수고하셨어요.”“널 위해서라면 난 힘들어도 상관없어. 앞으로 힘든 일은 나에게 맡겨. 네가 행복하고 즐거우면 그걸로 난 만족해.”“제가 우빈이처럼 정말로 걱정 없이 살 줄 아세요? 빨리 씻고 오세요. 점심 드셔야죠. 다들 일어나셨어요. 태윤 씨가 오전 내내 주무셨는데 배고프지 않으세요?”하예정은 남편을 가볍게 밀어내어 빨리 씻으라고 했다.전태윤은 침대에서 겨우겨우 일어나 세수하러 갔다.“여보, 당신은 나에 대한 미련이 적어진 것 같아. 예전에는 늘 한 시간 동안 방에서 나와 함께 지내다가 나왔는데, 지금은 몇 분 만에 날 재촉해서 일어나라고 하다니.”하예정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부끄럽게도 예전에 그녀가 전태윤을 깨우러 가면 그는 늘 하예정을 침대로 끌고 가 한 시간 동안 아기를 만들곤 했다.그는 항상 엄숙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지만, 침대에서는 매우 열정적이었다. 하예정은 당해낼 수 없었다.항상 그녀는 전태윤에게 그만하자고 사정했다.“옷 한 벌 가져다줘. 옷 갈아입고 올게.”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대에서 내려와 남편의 옷을 가지러 갔다.지금 남편은 결혼 휴가를 내서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기에 편안한 옷을 가져다주었다.전태윤의 옷들은 늘 단조로웠다. 하얀 반소매 셔츠에 검은색 바지, 운동복만 있었다.하예정도 전태윤에게 7푼 바지를 사줬지만, 그는 입지 않았다.전태윤은 그의 다리에 털이 너무 많다고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니면 다리의 털이 드러나 그의 이미지를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하예정은 그제야 남편도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었고 또 그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후, 그녀는 더는 남편에게 반바지를 사주지 않았다.“늦가을이 되었지만, 관성은 여전히 덥기에 반바지를 입어야 편해요. 근데 반바지를 입기 싫어하다니. 호영 도련님은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까지 입으려고 하는데 태윤 씨는 제가 산 7푼 바지도 다리털이 드러날까 봐 입지 않잖아요.”
전태윤이 고개를 들었더니 하예정의 초롱초롱한 큰 눈이 자신의 몸매를 훑어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전태윤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그가 말을 꺼내려고 하던 참에 그의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태윤 씨 몸매와 얼굴로 여자로 분장하면 아마도 경국지색일걸요. 하지만 당신은 키가 너무 커요. 이목구비가 예쁘지만 윤곽이 뚜렷하기에 여자로 분장하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호영 도련님은 태윤 씨보다 윤곽이 부드러워 여성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 들통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전태윤은 아내 대감님께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벌써 짐작했고 허리를 곧게 펴며 입을 열었다.“나와 같은 건장한 남자는 여자로 분장하면 어울리지 않아. 우리를 호영이와 비교하면 안 돼. 호영이는 우리와 같은 남자들에게 살길조차 주지 않잖아. 고 대표님을 위해서라면 여장할 수도 있는 사람이야. 너무 과해.”하예정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그렇게 한 행동이 바로 고 대표님을 감동하게 한 거죠. 고 대표님도 호영 도련님 요구대로 여성 옷을 갈아입고 호영 도련님께 보여드렸잖아요.”전태윤은 팔로 아내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방에서 나갔다.“그러니까 셋째가 너무 세게 나오니까 다른 남자들에게 살길을 주지 않는다는 거지. 조만간 얻어맞을 수도 있을걸.”전호영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었다.“엄청나게 노력하시는 분이죠. 올해 고 대표님과 약혼할 희망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고 대표님도 호영 도련님에게 감동했다고는 하지만, 도련님의 감정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여자의 신분을 회복하지 않으셨잖아요.”“사랑이 아직 깊지 못한 거지. 게다가 고 대표님은 20년 넘게 남장을 해왔기에 그런 생활방식에 익숙해져서 단번에 고치기 어려울 거야. 호영이를 위해 여장을 한 번 입어 보인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해. 호영이가 더 노력하면 설 쇠기 전에 약혼식은 올릴 수 있겠어. 혼인신고는 언제할지 모르지만. 내년 연초에 우리 가문에서 연이어 결혼식을 치를지도 모르지.”전이진은 약혼을 했지만, 여운초의 시력이 회복한 뒤에
전씨 가문에서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이 비밀도 아니었다.외부인 없었기에 전씨 할머니도 고현의 신분을 폭로했다. 하지만 고현은 태연자약하게 밥을 먹을 뿐 조금도 불쾌한 내색을 드러내지 않았다.“이모! 이모.”위층에서 갑자기 우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온 집안의 사람들은 그제야 우빈이 녀석이 생각났다. 다들 녀석의 존재를 깜빡 잊어버렸다.하예정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우빈이를 깜빡할 뻔했네요. 제가 위로 올라가서 태윤 씨만 부르고 내려와서 우빈이 깨우러 간다는 것을 까먹었어요.”우빈은 전태윤과 함께 잠을 보충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처음에 두 사람은 함께 잤지만, 전태윤은 우빈이를 아이 방으로 돌려보냈다.너무 깊이 잠들어 우빈이를 깔아 납작하게 만들까 봐 걱정했다.전태윤도 아내의 뒤를 이어 올라갔다.우빈은 이미 문을 열고 나와서 울면서 이모에게 달려갔다.“괜찮아, 이모 여기 있어.”하예정은 위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조카에게 달려갔다.우빈은 이모님을 보고 나서야 울지 않았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하예정의 다리를 껴안았다.하예정이 그를 안으려 했지만, 전태윤이 먼저 우빈을 안으며 말했다.“녀석이 좀 무거우니 내가 안을게. 넌 안지 마.”“이모부.”녀석은 눈가에 눈물을 흘리면서 전태윤에게 안겨 부드럽게 소리 냈다.“왜 울어?”전태윤은 부드럽게 녀석의 얼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우빈이가 대답했다.“깨어났는데 이모와 이모부가 없어서 울었어요.”전태윤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내 탓이야. 이모부가 우리 우빈이를 깨우지 않았어.”그는 녀석을 안고 어린이 방으로 돌아갔고 하예정은 수건을 씻어 우빈이 얼굴을 닦아주었다. 정신을 더 차릴 수 있도록 말이다.전태윤은 우빈이를 다시 화장실로 데려가 손을 씻겨주었고 그제야 두 사람은 우빈을 데리고 내려가 식사를 했다.이모와 이모부의 손을 잡은 우빈은 다시 즐거워하며 퐁퐁 뛰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모두 멋쩍게 웃었다.알콩달콩 연애만 하다가 우빈이를 뒤로하고 녀석을 굶길
하예정은 우빈의 뒤를 따라서 집을 나오더니 조카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리쳤다.“우빈아, 그렇게 빨리 뛰지 마! 넘어져!”“안 넘어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우빈은 장난감 가득 들어있는 큰 가방을 들고 한 무리의 아이들을 따라 뛰어갔다.우빈의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하예정은 자신을 따라 나온 전태윤에게 말을 건넸다.“이 녀석, 워낙 성격이 좋아서 아무하고 잘 놀아요.”그러자 전태윤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그러면 좋은 거지. 만약 우빈이가 누구와도 놀지 못하고 온종일 어른들에게만 달라붙는다면 모두 두통이 발작할지도 몰라.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은 참 어려워. 애들도 얼마나 어렵겠어. 활발하면 장난꾸러기 소리를 듣고 조용하면 무뚝뚝하다고 평가받잖아. 애들이 뭘 해도 어른들에게 꾸지람듣고 있어.”흠...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듯했다.“좀 더 쉴래요?”하예정이 물었다.전태윤은 아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면서 웃었다.“내가 잠꾸러기도 아니고. 오전 내내 잤는데 더 자면 밤에 잠이 안 올 거야.”“넌 휴식하고 싶어?”하예정이 대답했다.“네. 조금 있다가 다시 자려고요. 지금 너무 배불러서 바로 자면 불편할 것 같아요.”“마침 잘됐네. 그럼 나랑 산책도 할 겸 소화도 좀 시키자. 그러다가 돌아와서 쉬면 되겠네.”하예정도 동의했다.그녀는 먼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찾아 걸어갔다. 한 무리의 아이들은 모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고 우빈은 가지고 나온 장난감 한 가방을 구석에 둔 채 정신없이 친구들이랑 놀았다.전태윤 부부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아이들의 노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이 가까이 간다면 노동자들의 아이들은 마음껏 놀지 못할 것이다.“정자 밑에 가서 앉아 바람 좀 쐬자. 오늘 날씨도 참 상쾌하네. 태양도 나오지 않았지만 어두운 편도 아니고. 바람도 불고 정말 편안하고 시원한 날씨야.”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를 이끌고 근처 정자에 가서 앉았다.잠시 앉아 있던 하예정은 핸드폰을 꺼내 모멘트를 뚜졌고 뉴스 실시간
도차연의 능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도기범이 두각을 뚜렷하게 나타내기 전까지 도씨 가문과 그룹의 사람들은 도차연이 도씨 그룹의 후계자로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전태윤 씨, 이 뉴스 좀 봐요.”하예정은 휴대전화를 남편에게 건네주었다.전태윤이 아내를 나무랐다.“여보라고 불러줘. 네가 전태윤 씨라고 부를 때마다 내가 긴장돼. 또 잘못해서 너에게 꾸지람 듣는 것 같단 말이야.”전태윤은 말하면서 아내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건네받으면서 물었다.“무슨 뉴스야?”그는 휴대전화를 한 번 보더니 아내에게 돌려주며 얼굴빛이 약간 굳어지며 말을 건넸다.“이 여자 뉴스가 뭐가 재미있다고. 이 여자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여자 아버지뿐이야.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이 여자 아버지가 잘 관리할 거야.”만약 도윤표가 그의 딸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정말 전태윤이 어쩔 수 없이 손을 쓰게 된다면 도씨 그룹은 분명 큰 타격 입을 것이 틀림없다.감히 그와 하예정의 결혼을 깨뜨리게 될 사람이 나타난다면 전태윤은 분명 마음을 독하게 먹을 것이다.그리고 전태윤과 같은 별장에 사는 낯선 여자도 그는 안면이 없었기에 이름조차 기억나지는 않았다.전태윤은 그 여자가 언제 전태윤을 만나 그에게 빠졌는지도 모른다.때때로 전태윤은 자신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그는 여태껏 적극적으로 그 여자들을 건드린 적이 없는데 그녀들은 그를 스스로 좋아했다. 그와 뭔 상관이랴!다른 사람의 마음을 통제할 수도 없는데.전태윤은 자신의 마음을 잘 통제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하예정에게 빼앗겼다.전태윤은 평생 하예정의 남자로 살고 싶었다. 다른 여자를 더는 마음에 담을 공간이 없었기에 그녀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희생해도 헛수고일 뿐이다.“도기범 씨가 도 대표님 조카예요?”“맞아. 도 대표님 큰 형의 아들이자 도 대표님 가장 큰 조카야. 도기범은 사업 수단도 있고 눈에 독기가 있어. 능력도 도차연처럼 강해. 도씨 그룹에서도 도 대표님 오른팔이야.”“도차연 씨가 입사하기 전
전태윤은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당신 남편은 절대로 살인 방화 등 법을 어기는 행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 전씨 가문이 하는 사업도 합법적이고 정당한 사업이야. 나의 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단지 사업적인 경쟁을 통해 상대방을 천천히 패배시킬 거야.”“그러나 만약 상대방이 대단한 실력을 갖춘 자라면 내가 몇 년을 싸워도 그들을 쓰러뜨릴 수 없을 거야. 우리 그룹과 당신 사촌 오빠네 그룹도 예전에 서로 적대적 관계로 몇 년 동안 싸웠지만 난 여전히 성씨 그룹을 이기지 못했어. 하지만 성씨 그룹도 우리 전씨 그룹을 먹어치우지도 못했지.”“일 분 만에 상대방을 파산시킬 수 있는 재주는 난 아직 키우지 못했어.”전태윤은 자신이 소설 속 남자 주인공처럼 상대방을 일 분 만에 파산시킬 만큼 대단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그는 적수를 무너뜨리는 데는 과정이 필요했다.“당신이 나섰으니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난 지금 그런 일에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없어. 어쨌든 난 당신을 믿으니까!”하예정은 머리를 전태윤의 어깨에 기대었고 2분도 채 안 되어 다시 똑바로 앉아 도차연의 뉴스를 보았다.“지난번에 태윤 씨가 도 대표님께 고자질한 뒤로 도 대표님도 외국에서 돌아왔을 거예요. 이치대로라면 도차연 씨도 마음을 거두어들여야 하고 아버지에게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어쨌든 도 대표님도 단 한 명의 딸밖에 없는데 부녀 사이에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를 리가 없어요. 혹시 또 다른 일이 발생한 거예요? 태윤 씨가 저한테 숨기는 거 있어요?”전태윤이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 단지 도차연 씨가 찾던 그 대역 남자가 도씨 가문의 재산을 탐냈을 뿐이야. 그 대역 남자가 어렵게 부잣집과 접촉할 기회를 잡았기에 도씨 가문에서 내쫓기 어려웠을 거야. 도차연 씨는 그로 인해 도 대표님과 다툼을 벌인 거고.”“부녀 사이가 갈등은 생긴 데다 도기범 씨가 뒤에서 몰래 부추겨 부녀 사이의 균열이 점점 커진 거지. 도차연 씨와 도차연 씨의 어머니도 도 대표님을 많이 원망했던 모양이야. 도
전호영은 그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히죽히죽 웃었다.“우리 할머니께서 제가 말재주가 좋지만, 고현 씨는 말수가 적어서 우리를 짝지어주셨어요. 그러면 고현 씨도 외롭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잖아요. 만약 우리 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으면 집에는 아무런 생기가 없을걸요.”“저도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그냥 우리 큰형과 형수님의 금슬이 부러울 뿐이에요. 우리 형수님 입은 치마가 참 이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한번 입어보시겠어요? 제가 또 고현 씨한테 새 치마를 여러 벌 더 샀는데 고현 씨한테 분명 잘 어울릴 거에요.”고현은 치마를 입어서 그에게 보여주며 그에게만 입어 보이겠다고 말했다.그는 만족해야 했다.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탐욕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그는 고현의 여성 차림을 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너무 아름다웠다.전호영은 매일 그녀가 여성 옷을 입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그래서 별장에서 나온 전호영은 고현의 곁을 따라다니며 여성 옷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성 옷이 남성 옷보다 더 다양하다고 말하면서 고현의 몸매가 좋다고, 고현이 여성 옷으로 갈아입은 것은 그야말로 여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과 다름없다고 칭찬했다.전호영은 고현이 여성 옷차림할 때 그 도도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그의 두 형수도 모두 아름답지만,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역시 그의 고현이라고 생각했다.“저는 더는 여성 옷을 안 입는다고 말씀드렸어요. 저번에 보여줬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욕심부리지 마세요!”고현은 이를 악물며 아주 작게 말했다. 전호영이 욕심이 너무 많다고 여겼다. 며칠 동안 조용히 있더니 또다시 그녀에게 여성 옷차림으로 돌아가라고 조르기 시작했다.그녀가 여성 옷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그녀를 안 좋아하는 건가?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일 것이다.귓가가 조용하니 얼마나 좋은 생활인가!맨날 잔소리만 하는 모습이 마치 아줌마 같았다.전호영은 말주변이 좋고 입만 번지르르하다.전호영과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