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 별장 대문 입구에 있는 전 여씨 가문의 큰 아가씨와 둘째 아가씨는 옛날의 오만과 고귀함을 버린 지 오래였다.지금 그들의 몸에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고 반짝이던 비싼 보석들도 보이지 않았으며 들고 다니던 에르메스 가방도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그들 뒤에는 자가용 자동차조차 없이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왔다.빚을 갚기 위해 두 가족은 팔 수 있는 물건들은 다 팔았다.집까지 판 그들은 전세를 맡았다.두 고모가 태어났을 때 여씨 가문은 지금처럼 재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유한 축에 속해서 근심 없이 자랐다.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도 집안이 일떠섰기에 넉넉한 혼숫감을 가지고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며느리에서 할머니가 되었지만, 이제는 부화방탕한 생활로부터 다시 가난뱅이로 돌아가서 고생해야만 했다.나이가 많고 밖에서 일한 경험조차 없는 두 고모는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부밖에 없었다.하지만 청소부의 봉급은 너무 적어서 며칠도 못가서 다 써버리고 없었다.검소함에서 사치로 갈기는 쉽지만, 사치에서 검소함으로 가는 것은 어렵다고들 했다.이 말은 아마도 이 한 쌍의 자매에게 가장 적합한 듯했다.이런 고생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두 고모는 제발 저희를 좀 봐 달라고 여운초한테 절이라도 할 듯이 쫓아왔다.그들은 비로소 여씨 가문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오빠와 형님이 아니라 장인 여운초라는 것을 늦게야 알게 됐다.여운초는 운이 좋게도 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가령 앞 20년 동안을 여운초가 신데렐라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남은 인생은 호의호식하는 부잣집 사모님의 삶을 살 수 있었다.하느님이 그녀에게 내린 보상인 것처럼.“운초야, 문 열어, 우린 네 고모야!”“운초야, 다 우리 잘못이야. 더는 집안 재산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좀 살려줘라!”여운초의 둘째 고모도 큰소리로 외쳤다.여씨 가문의 이웃들은 두 고모가 친정집에 돌아가 가족 재산을 빼앗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여씨 가족
정박사가 신의의 자제면 어때? 신의도 사람인데 고칠 수 없는 질병도 있기 마련이다.“천우야, 천우야!”여운초 뒤에 따라 나오는 사람이 여천우인 걸 발견하자 두 고모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조카가 당연히 조카보다 호락호락할 테니깐.옛날에 그들은 오빠와 형수랑 한 패거리가 되어 여운초를 학대하고 괴롭혔었다. 여운초가 피해를 보고도 가만히 있자 매일 여운초가 죽기만 기다렸다.여운초가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앙심을 품어 그들한테 보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하나뿐인 조카 여천우는 어릴 때부터 두 고모가 애지중지했다.친정집에 유일한 남자애니까.친정집의 재산을 탐내기 전에는 여씨 그룹이 잘되길 바랐다. 그래야 남들이 그들을 업신여기지 못하니깐."천우 부르지 말아요. 걔는 지금 아무런 실권도 없어요."여운초가 걸어 나와서 두 고모 앞에서 문틈 사이로 맞대고 두 눈을 부릅떴다.전이진은 따라 나오지 않았다. 여운초가 혼자 해결할 수 있으니 필요 없다면서 말렸다.전이진은 사랑하는 여운초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러 주방에 갔다.두 고모는 여운초가 앞을 보지 못하는 줄 알고 악독하고 원한이 가득한 눈길로 여운초를 째려보았다.만일 눈빛이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두 고모의 눈빛은 여운초를 천 번, 만 번도 죽였을 거다."그렇게 지독한 눈으로 볼 필요가 없어요."여운초가 쌀쌀맞게 말했다.“눈길로 날 못 죽여요. 너만 힘들지."큰고모는 말문이 막혔다.그는 두 손을 문살 사이로 내밀고 여운초의 눈앞에 대고 흔들어 보았다."큰고모, 손 흔들지 않아도 돼요. 나 다 보이거든. 큰고모 요즘 살 많이 쪘네요. 내 기억 속에 큰고모가 무척 날씬했었는데, 지금은 뚱뚱하고 작달막하네요."큰고모의 키는 원래부터 크지 않았고 약 150㎝밖에 안되었다. 형제 중에서 키가 제일 작았다.그녀의 몸은 옆으로만 퍼지기만 하여 지금은 마침 호박 같았다.큰고모는 여운초의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연실색해서 물었다.“운초야, 너 진짜 볼 수 있어?”'그
돈이 없으면 다시 월세방에서 살까 봐 두려웠고 일자리를 찾으러 나간 자식들은 전씨 그룹에 밉보인 사람이라는 소식이 퍼져서 어느 회사도 감히 고용하지 못했다.“천우야, 고모 대신 잘 좀 얘기해 줘. 고모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니? 네 고모가 운초한테 쫓겨나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여천우는 두 고모가 이 지경이 된 것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여운초는 동정심 따위 없었고 여전히 엄숙한 표정을 한 걸 봐서는 여천우가 관성에 없을 때 고모가 여운초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이 분명했다.“큰고모, 둘째 고모. 우리 집 일은 누나 뜻에 따르기로 했어요. 누나가 고모한테 왜 그러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누나는 악독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은혜는 은혜대로 갚고 원한은 두 배로 갚아 줄 뿐이에요. 혹시 우리 누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여천우는 여운초를 굳게 믿기에 두 고모가 먼저 여운초한테 도를 넘는 짓을 해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다. 두 고모의 꼴은 말이 아니었으니 벌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았다.“두 분이 저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죠? 저를 악독하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네요. 내 목숨을 앗아가려고 악독한 마음을 먹은 건 고모잖아요. 저는 저를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가만히 있어요. 하지만 저를 건드리면서 선을 넘는다면 두 배, 세 배 갚아 줄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봐준 거고요.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아닌데 유난 떨지 마세요. 모두 건강한 것 같으니 직접 돈을 벌어도 되잖아요?”김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오늘 같은 지경에 이른 것은 전이진과 여운초의 계획이었다. 여운초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 고모를 내버려둘 수 없었고 당한 것의 두세 배는 돌려주는 성격이었다.“우리는 친고모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당신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두 누나를 깍듯이 모실 거라고요.”“우리 아빠에 대해 말하지 마세요, 두 분 모두 그럴 자격 없으니까요!”여운초는 솟구쳐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누나, 심호흡하면서
여천우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예전에 고모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여운초와 맞설 뻔했지만 정의감이 결국 악의를 짓밟았기에 고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 고모는 여운초의 용서를 빌다가 소용이 없자 여천우와 여운초 사이를 이간질했다.“누굴 원망하고 미워할지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고모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건 다 자초한 일이니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마세요. 아, 저를 탓해도 뭐라 하지 않을게요. 저는 고모가 타락한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거든요. 고모의 것이 아닌 건 절대 빼앗을 수 없고 강제적으로 빼앗는다면 지금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겠죠.”두 고모가 타락한 모습을 본 여운초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었다. 어느 정도 만족한 여운초는 여천우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천우야, 가자.”“여운초, 넌 지옥에 떨어져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거야!”여미란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여운초는 문 앞에서 집사한테 당부했다.“저 사람들이 또 와서 난동을 부리면 뒷마당에서 키우는 셰퍼드 두 마리를 풀어놓으세요. 아, 오늘부터 저랑 천우는 저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으니 외부인이 소란을 피우면 절대 봐주지 마세요.”집사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띠는 여운초를 바라보면서 어쩐지 뿌듯해 났다. 방으로 들어간 여운초는 여천우한테 말했다.“20여 년 전, 우리 아빠가 죽은 뒤 저 사람들은 알면서도 범인을 감싸고 돌았기에 공범이나 마찬가지야. 그때는 내가 두 살밖에 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몰랐고 고소하지 못했어. 지금 하려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서 아무것도 못 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이곳까지 와서 난동을 부리는 걸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 천우야, 네 부모님이 지은 죄는 20여 년 전에 우리 아빠를 죽인 것에 그치지 않고 건달들과 손을 잡고 사람을 납치하고 때린 것도 포함돼. 예전에는 이 일에 대해 말하기 꺼렸지만 오늘 전부 알려줄게.”여운초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기 싫어서 여천우의 부모님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한 말은 전부 헛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 가족보다 더 친한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들 말을 더더욱 믿어서는 안 돼.”예천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고 여운초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누나, 난 절대 고모한테 속지 않을 거야.”여운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가문에서 제일 착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은 바로 너야. 넌 부모님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자신의 원칙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야.”여천우의 엄마는 여천우가 어릴 적부터 여운별과 오누이 사이라고 말하면서 가깝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여천우는 처음부터 여운초가 더 편했고 누가 뭐라고 해도 여운초의 곁에 달라붙어 있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누나, 내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여천우는 여운초가 독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지만 상대를 완전히 말려 죽이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고모도 어느 정도 봐주려고 했고 본가로 돌아와서 재산을 뺏지 않는다면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김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사촌 형을 여씨 그룹에서 쫓아낸 건, 예전부터 여씨 그룹에서 행세를 부리며 수수료를 떼어 가졌기 때문이다. 회사의 돈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것을 여운초의 아버지는 알고 있었지만 삼촌으로서 조카가 저지른 잘못을 관대하게 포용해 주었고 사촌 오빠들도 한동안 잠잠했다. 하지만 여운초가 아버지의 자리를 이은 뒤,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배후에 어느 가문이 있든 상관하지 않고 전부 해임했다. 더 책임을 묻지 않고 해임했지만 여천우가 돌아왔을 때 두 고모가 여운초한테 울면서 비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여천우는 두 가문에서 여운초한테 무슨 수를 썼기 때문에 여운초가 김씨 가문과 최씨 가문을 파산하게 한 것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용서를 구하러 온 고모는 화장기도 없는 민낯과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사람 같았고 형편이 어려워진 것이 분명했다.여운초가 담담하게 말했다.“지나간 일은 다시 얘기하고 싶지 않아. 결국 내가
여씨 가문 둘째 아가씨 여운별은 진작에 사람들한테 잊혔기에 다시 돌아온다 해도 재기하기 힘들 것이다. 여운초는 자신을 해하려 드는 이부동생을 손 좀 봐주려고 했다.여운별이 여운초에게 했던 것을 고작 두 배로 돌려주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누이가 여운별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전이진은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었다. 음식 냄새를 맡은 여천우가 입을 열었다.“누나, 형부 진짜 요리 잘하나 봐. 냄새만 맡아도 침이 흐르는걸?”여운초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맞아, 이진 씨 할머니는 재벌가 사모님들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했는데 네 형부 가문에 사촌 형제가 모두 9명이거든. 이진 씨가 그러는데 모두 요리를 잘 한대. 할머니가 그렇게 가르친 거지,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드시기 좋아해서 손자들한테 요리를 배우라고 강요하셨대. 겉보기에는 식욕 넘치는 할머니인 것 같지만 사실 손자들의 독립 능력을 키워주신 거야. 아무도 지금의 부가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깐 말이야. 독립 능력이 강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줄 알게 되면 앞으로 어디에 가서도 굶어 죽지 않을 거고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잖아. 그중에서 요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여섯 번째 도련님 전창빈이었는데 큰오빠 어머니가 나은 친동생이래.”전창빈은 잘 나타나지 않아서 여운초도 전창빈과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여운초와 전이진의 약혼식이 있은 날, 전창빈은 다른 지역의 요리 대회에 참가하느라 약혼식에 불참했다. 하지만 두 날 뒤에 있을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에는 반드시 참가할 것이다. 여운초뿐만 아니라 형수 하예정도 전창빈과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하예진이 이혼하기 전에 주씨 가문에서 우빈을 데리고 사라지자 관성에 있던 전씨 가문 사람들이 전부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때 전창빈도 관성에 있었으니 함께 도왔을 것이다.그때만 해도 하예정은 우빈을 관심하느라 전창빈을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여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전씨 할머니는 관성에 지혜로운 분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어.
여천우가 입을 열었다.“형부, 지금 저 밥통이라고 놀리는 거예요?”“내가 언제 놀렸다고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나 보지. 천우는 뭐든 안 가리고 잘 먹잖아, 맞지?”여천우는 말문이 막혔다. 비록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지만 밥통이라고 암시하면서 놀리면 안 되었다. “형부, 시간 될 때 요리 좀 가르쳐 주세요.”“난 아무 때나 상관없으니까 네 시간에 맞춰서 가르쳐줄게. 넌 대학생이라 학교에 가야 하잖아.”전이진은 요리를 배우려면 시간을 잘 배정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여천우는 어쩔 수 없이 방학에 배워야 했다.“그럼 겨울 방학에 돌아오면 가르쳐 주세요.”“그래, 네가 배우고 싶은 건 다 가르쳐줄게. 내가 아는 건 너한테 다 전수해 줄 거야.”여천우가 형부라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 전이진은 여천우한테 요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요리란 자고로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연습하고 연구하고 스스로 깨쳐야만 맛도 영양도 있는 요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씨 가문 형제들은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가르침 하에 요리를 시작했고 어느덧 2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었다.여천우는 겨울 방학이 되어야 돌아오기에 몇 년 동안 연습해도 전이진만큼 잘하지 못할 것이다.“형부, 고마워요! 누나는 정말 복 받았다니까요.”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고말고.”“형부, 앞으로 누나 잘 부탁할게요.”“내 여자를 보살피는 건 나의 의무야. 난 애처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여천우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흥,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니잖아요.”“네 누나가 시력을 회복하면 결혼한다고 그랬어. 지금 천천히 회복 중이고 정 선생님도 새해가 밝아올 때 거의 회복할 거라고 하셨으니 그때 결혼하면 돼. 혹은 연말이거나 내년 초에 해도 되거든.”어차피 두 사람은 약혼식을 치렀기에 여운초는 도망갈 수 없었다. 전이진은 할머니가 내준 임무를 착실히 완성했고 그 과정에서 예쁜 여자를 품에 안았기에 아주 만족스러웠다.그에 비해 전호영은 강성에서
전이진은 약혼녀 여운초를 아주 사랑했기에 여운초가 앞을 보지 못할 때 직접 밥을 먹여주곤 했었다. 여운초는 생선 요리를 좋아했고 전이진이 직접 가시를 발라서 먹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전이진은 여운초를 보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오늘도 본능적으로 여운초 접시에 반찬을 집어주었다. 그러자 여운초는 여천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네 형부가 한 것 좀 먹어봐. 오성급 호텔 셰프 못지않은 실력인걸.”여천우는 허겁지겁 먹었고 식사를 마친 뒤 불룩 튀어나온 배를 만지면서 소파에 기대앉았다. 전이진은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 주방에서 걸어 나왔고 여천우의 배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앞으로도 계속 먹을 수 있는 건데 왜 급하게 먹었어? 이 배 좀 봐, 귀여워.”“형부, 누나가 자꾸 반찬을 집어주니까 먹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형부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너무 맛있었다고요!”여천우는 두 사람과 함께 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매일 집에서 형부가 해준 밥을 먹으면 살이 찔 것이 분명했다.“앉아 있다가 나가서 소화할 겸 산책이라도 하자.”여운초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다 큰 애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어야지, 이게 뭐야.”“누나가 자꾸 반찬을 집어줘서 받아먹다 보니 너무 맛있어서 멈추지 못한 거야.”“내 탓 하지 마, 난 그저 네 형부가 한 요리를 하나씩 집어준 것뿐인데 네가 한 입 먹고는 맛있다 하면서 다 먹었잖아.”여천우는 동그란 배를 만지면서 말했다.“그래, 다 내 탓이야! 조금 있다가 나가서 걸어야겠어.”밥을 먹은 뒤에 산책하면 백 세까지 산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한편, 강성.전이진의 말에 의하면 전이진과 여운초가 애틋한 사랑을 할 때, 전호영은 아직도 고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고현이 전호영의 요구대로 여성스러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건 전호영의 마음을 받아준다는 뜻이었지만 아직 깊이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었다.고성 호텔의 한 프라이빗 룸에서 술을 가득 마시고 취한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혼잣말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