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우가 입을 열었다.“형부, 지금 저 밥통이라고 놀리는 거예요?”“내가 언제 놀렸다고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나 보지. 천우는 뭐든 안 가리고 잘 먹잖아, 맞지?”여천우는 말문이 막혔다. 비록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지만 밥통이라고 암시하면서 놀리면 안 되었다. “형부, 시간 될 때 요리 좀 가르쳐 주세요.”“난 아무 때나 상관없으니까 네 시간에 맞춰서 가르쳐줄게. 넌 대학생이라 학교에 가야 하잖아.”전이진은 요리를 배우려면 시간을 잘 배정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여천우는 어쩔 수 없이 방학에 배워야 했다.“그럼 겨울 방학에 돌아오면 가르쳐 주세요.”“그래, 네가 배우고 싶은 건 다 가르쳐줄게. 내가 아는 건 너한테 다 전수해 줄 거야.”여천우가 형부라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 전이진은 여천우한테 요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요리란 자고로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연습하고 연구하고 스스로 깨쳐야만 맛도 영양도 있는 요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씨 가문 형제들은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가르침 하에 요리를 시작했고 어느덧 2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었다.여천우는 겨울 방학이 되어야 돌아오기에 몇 년 동안 연습해도 전이진만큼 잘하지 못할 것이다.“형부, 고마워요! 누나는 정말 복 받았다니까요.”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고말고.”“형부, 앞으로 누나 잘 부탁할게요.”“내 여자를 보살피는 건 나의 의무야. 난 애처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여천우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흥,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니잖아요.”“네 누나가 시력을 회복하면 결혼한다고 그랬어. 지금 천천히 회복 중이고 정 선생님도 새해가 밝아올 때 거의 회복할 거라고 하셨으니 그때 결혼하면 돼. 혹은 연말이거나 내년 초에 해도 되거든.”어차피 두 사람은 약혼식을 치렀기에 여운초는 도망갈 수 없었다. 전이진은 할머니가 내준 임무를 착실히 완성했고 그 과정에서 예쁜 여자를 품에 안았기에 아주 만족스러웠다.그에 비해 전호영은 강성에서
전이진은 약혼녀 여운초를 아주 사랑했기에 여운초가 앞을 보지 못할 때 직접 밥을 먹여주곤 했었다. 여운초는 생선 요리를 좋아했고 전이진이 직접 가시를 발라서 먹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전이진은 여운초를 보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오늘도 본능적으로 여운초 접시에 반찬을 집어주었다. 그러자 여운초는 여천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네 형부가 한 것 좀 먹어봐. 오성급 호텔 셰프 못지않은 실력인걸.”여천우는 허겁지겁 먹었고 식사를 마친 뒤 불룩 튀어나온 배를 만지면서 소파에 기대앉았다. 전이진은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 주방에서 걸어 나왔고 여천우의 배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앞으로도 계속 먹을 수 있는 건데 왜 급하게 먹었어? 이 배 좀 봐, 귀여워.”“형부, 누나가 자꾸 반찬을 집어주니까 먹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형부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너무 맛있었다고요!”여천우는 두 사람과 함께 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매일 집에서 형부가 해준 밥을 먹으면 살이 찔 것이 분명했다.“앉아 있다가 나가서 소화할 겸 산책이라도 하자.”여운초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다 큰 애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어야지, 이게 뭐야.”“누나가 자꾸 반찬을 집어줘서 받아먹다 보니 너무 맛있어서 멈추지 못한 거야.”“내 탓 하지 마, 난 그저 네 형부가 한 요리를 하나씩 집어준 것뿐인데 네가 한 입 먹고는 맛있다 하면서 다 먹었잖아.”여천우는 동그란 배를 만지면서 말했다.“그래, 다 내 탓이야! 조금 있다가 나가서 걸어야겠어.”밥을 먹은 뒤에 산책하면 백 세까지 산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한편, 강성.전이진의 말에 의하면 전이진과 여운초가 애틋한 사랑을 할 때, 전호영은 아직도 고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고현이 전호영의 요구대로 여성스러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건 전호영의 마음을 받아준다는 뜻이었지만 아직 깊이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었다.고성 호텔의 한 프라이빗 룸에서 술을 가득 마시고 취한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혼잣말
프라이빗 룸에 단둘이 남자 고현은 자신의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 썼지만 전호영이 손을 놓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호영 씨, 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전호영은 식탁에 엎드린 채 고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자, 한 잔 더 해요. 좋아요, 한 잔만 더!”고현은 굳어진 얼굴로 전호영을 노려보았다. 전호영이 진짜 취했든 연기를 한 것이든 상관없이 전호영을 맞은편에 있는 하루 호텔로 데려다주어야 했다. 고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뻗어있는 전호영을 일으켜 세웠고 하루 호텔로 향했다.10여 분 후, 고현은 전호영을 부축한 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고현을 잡고 있던 전호영의 손이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고현은 침대에 누워 쿨쿨 자는 전호영을 보면서 취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고현은 전호영의 신발과 양말을 벗겨주었고 베개를 머리 아래에 놓은 뒤 이불을 덮어주고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고현은 저도 모르게 전호영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호영 씨 여자 친구 신분으로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한 것뿐이잖아요. 그렇다고 이렇게 많이 마시면 어떡해요? 물처럼 술을 마시니까 취하죠. 저는 신부 들러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호영 씨 형수님의 들러리를 하지 않겠다고 한 거예요.”하예정이 고현한테 신부 들러리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었다. 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여자 신분을 드러내도 될지 고민되었고 신부 들러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거절한 것이다.고현은 신랑 들러리로 결혼식에 참가한 적이 많았다. 강성 상업계 거장의 아들이 결혼할 때 고현한테 부탁했고 두 그룹은 오래전부터 합작을 이어왔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신랑 들러리만 해본 고현이 신부 들러리를 할 리 없었기에 하예정은 이해해 주었지만 전호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날 고현이 여성스러운 옷차림을 하고서 전호영과 데이트를 했고 전호영은 고현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호영이 갑자기 기분이 좋지 않은 건 고현이 신부 들러리를 하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에 든 전호영은 고현의 말을 듣지 못했
고현의 부모님과 남동생은 전호영을 응원했고 하루빨리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랐다. 고현은 전호영을 싫어하던 데로부터 받아들이게 되었고 달라붙는 전호영을 떼어내지 못했다.“호영 씨는 내가 여자라는 걸 알고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여자 신분을 밝히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다면 호영 씨는 저한테 이렇게까지 매달리지 않았겠죠. 남들이 뭐라 하든 우리 두 사람의 행복만 신경 쓰고 싶어요. 만약 우리가 정말 결혼하게 된다면 그날은 완전한 여자가 되어 드레스를 입을게요. 그럼 세상 사람들한테 당신이 평범한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나 다름없잖아요.”고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설마 호영 씨가 저한테 여장하라고 강요한 줄 아는 건 아니겠죠?”전호영은 꿈을 꾸는지 조용히 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호영이 주도권을 쥔 줄 알았다. 지난번에 전호영이 고현에게 여성용 선물을 주는 것을 본 사람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고현은 허리를 숙여 전호영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고 단잠에 빠진 전호영의 입술에도 입을 맞추었다. “저는 이만 회사로 가 볼 테니 푹 쉬어요. 저녁에 만약 깨어나면 호영 씨랑 밥을 먹고 아니라면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잡을 거예요.”고현은 침대맡에서 일어나 바지 주머니에 있던 비행기 티켓을 몇 장 꺼내 책상에 올려두었다. 고현이 미리 구매한 비행기 티켓이었다. 내일 아침 8시 20분 비행기로 점심에 관성에 도착해 전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개인 전용 비행기가 있다고 했지만 고현은 결혼식 전에 도착하면 되기에 급히 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에 참가 하기 위해 전씨 가문 개인 전용 비행장에 정착할 비행기만 해도 수백 대일 것이고 소정남과 심효진보다 더 많은 상업계 거장이 오기 때문에 비행장에 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고현에게도 개인 전용 비행기가 있었는데 급한 업무를 볼 때가 아니면 굳이 타지 않았다.고현은 전호영의 로열 스위트룸을 나와 하루
고현은 이윤정을 차갑게 쳐다보고는 뒤돌아갔다. 보디가드중 한 사람은 이윤정 앞을 막고 서서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고 다른 사람은 고현이 안전하게 호텔을 나설 수 있게 보호해 주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호텔 앞에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미 익숙해진 호텔 카운터 직원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하루 호텔의 직원들은 전호영이 수많은 재벌가 아가씨를 제치고 고현의 마음을 얻은 것이 자랑스럽기만 했다.“고현 도련님, 가지 마세요!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갈게요!”이윤정은 고씨 가문 보디가드를 뿌리치고 고현을 따라잡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보디가드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실패한 이윤정은 고현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굳어졌고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질렀다.“고현 도련님, 저는 도련님이랑 같이 관성에 가서 결혼식에 참가하고 싶을 뿐이에요!”이윤정은 고현이 관성에서 열리는 전태윤의 결혼식에 참가할 때 함께할 파트너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현의 파트너로 동행해서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을 보려고 했었다. 비록 전태윤은 연적 전호영의 사촌 형이지만 전태윤의 결혼식에 명성이 자자한 거장이 몰려들기 때문에 미래의 입지를 위해서 반드시 참가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현은 이윤정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보디가드의 보호 속에서 고현은 인행도로를 건넜고 고성 호텔 앞에 세워진 마이바흐에 올라탔다. 고씨 가문 보디가드가 이윤정을 놓아주자 이윤정은 차도를 가로질러 길을 건넜고 깜짝 놀란 운전자들이 브레이크를 밟고는 클랙슨을 마구 눌러댔다.차에 치일 각오까지 한 이윤정은 곧바로 고성 호텔로 향했고 문 앞에 세워진 보디가드 차량과 고현의 차량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또 놓쳤어.”이윤정은 정교한 화장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굴렀다. 고현이 나올 때까지 고성 호텔 앞에서 10여 분 동안 기다렸지만 고현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이윤정은 얼굴을 쓰다듬더니 자신의 몸매를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나 이래 봬도 전호영보다 몸매 하나
이은화의 비서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부대표님, 이 대표님께서 찾으세요. 업무를 중단하고 사무실로 빨리 오라고 하셨어요.”“알겠어요.”이윤미는 전화를 끊고는 부대표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이 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차기 가주로 자리매김했고 이씨 그룹의 부대표로 임명받았다. 앞으로 이윤미가 이씨 가문과 이씨 그룹을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이윤미는 이씨 그룹을 이모의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이 그룹은 원래부터 이윤미의 소유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윤미의 사촌 언니와 하예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윤미는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관성 쪽에서 잠잠할 거라고 생각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은 곧 깨질 것이다. 이윤미는 사촌 언니와 다시 친하게 지내서 하예진 자매한테서 ‘이모’라는 말도 듣고 싶어졌다.이은화의 사무실 앞에 도착한 이윤미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저 이윤미예요.”회사에서는 이은화를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되었다. 이씨 가문 가주 이은화가 허락하지 않는 한, 회사에서 두 사람은 상사와 부하 사이이지 모녀 사이가 아니었다.“들어와.”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는 이은화는 오래전에 받은 청첩장을 지그시 쳐다보았다.“편하게 앉아.”이은화는 이윤미와 함께 소파에 앉았고 청첩장을 책상에 올려놓았다.“관성 전씨 가문에서 보낸 청첩장인가요?”이은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전태윤 도련님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 청첩장을 받기 위해 일부러 관성에 집을 사는 가문도 있는데, 우리 가문은 운 좋게도 도련님한테서 청첩장을 받았어.”이은화는 두 가문이 교류가 적었기에 전태윤이 직접 청첩장을 보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윤정은 고현을 좋아했기에 전호영과 연적이 된 사이가 된 마당에 갑자기 받게 되어서 관성에 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은화는 전태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체면이 구겨질까 봐 걱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괜히 관성에 갔다가 연락 두절
이은화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넌 이곳에 남아서 회사의 일과 가문의 일을 잘 해결하거라. 엄마가 돌아왔을 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으면 좋겠구나.”이은화는 관성에 가서 두 조카의 행방을 조사할 생각이었다. 가문 사람들은 관성의 이경혜가 이은화의 큰조카라고 소문을 퍼뜨렸지만 이은화는 모르는 척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침 관성에 전태윤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야 하니 이참에 제대로 조사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이윤미는 이은화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엄마, 아빠랑 같이 안 가고 혼자 가시게요? 사실 저는 엄마랑 같이 가고 싶었어요. 관성은 번화한 큰 도시니까 기회도 많을 것 같아서요. 그럼 이씨 그룹의 사업을 관성에 가져가서 추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이윤미는 관성에 남몰래 다녀왔지만 이은화는 이윤미가 관성에서의 소비 내역을 발견했다. 다행인 것은 이윤미가 성씨 가문에 다녀온 것을 들키지 않았다. 하예진이 가게를 차려서 방윤림에게 부탁해 축하금을 전달했다. 만약 직접 갔더라면 이경혜를 만난 목적을 들킬 수도 있었다. 이경혜는 이윤미와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를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다.이윤미는 이경혜가 이은화의 사촌 언니라는 것을 이은화가 일부러 숨겼다고 생각했다. 혹은 의심이 들어 관성에 결혼식을 빌미로 가서 조사할 것이 분명했기에 적어도 두 주일 정도 있어야 돌아올 것이다. 이때 이은화가 차분하게 대답했다.“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윤미야, 본사의 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으니 영역을 넓히려는 욕심은 접는 게 좋아. 관성의 각 업계는 이미 포화 상태에 들어섰고 전씨 그룹과 상씨 그룹이 자리 잡고 있고 예진 그룹 지사, 예씨 가문 다섯 번째 도련님이 각자의 영역을 주름잡고 있어서 우리가 낄 자리는 없단다.”이은화가 말을 이었다.“이곳의 흐름만 잡아도 크게 발전할 거야. 예전에 이씨 가문은 강성에서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뒤로 세어봐야 할 정도지. 네가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가문은 재벌가의 행렬에서 곧
“윤미야, 엄마는 네가 앞으로 우리 가문을 부흥시켜서 다시 최고봉의 자리에 오르길 바란다. 그래야만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거야. 지금 각 행사에 참여할 때 사람들이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우리 가문을 욕할지도 몰라.”이윤미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가 평생 노력해도 이씨 가문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지 못했는데 저라고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이씨 그룹 내부의 문제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에요. 하지만 문제가 있는 부서와 부서의 담당자는 오빠들과 가문 어르신의 자손들이죠.”이윤미의 입지에 굳건해지지 못했기에 그 사람들을 이씨 그룹에서 잘라낼 수 없었다.“그분들이 있는 한, 이씨 그룹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어요. 죄다 자신의 재산을 불릴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유리한 일을 하겠어요?”이은화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이윤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은화는 대대로 내려온 원칙을 지키긴 했지만 가주의 자리를 이윤미에게 넘기는 동시에 아들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주었기에 이윤미의 입지가 불안정했다. 다행인 것은 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오기 전에 상업계에서 자신만의 성과를 내었고 사회의 암묵적인 규칙에 익숙해졌기에 오빠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때 이은화가 입을 열었다.“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하는 거야. 윤미야, 이건 내가 너에게 내준 시험과도 같아. 엄마가 자리에서 내려오면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너한테 달렸어. 친오빠도 해임할 만큼 네가 냉철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이 널 얕잡아보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거야. 하지만 상사는 부하를 꽉 잡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베풀기도 해야 한단다. 팽팽한 긴장감을 못 이기고 회사를 나가는 인재들이 종종 있거든.”이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엄마가 혼자 관성에 가서 결혼식에 참가할 동안 너는 가문과 회사를 지켜줘. 몇 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키는 게 힘들었으니 나도 숨 좀 쉬려고... 이번
전이진이 급급히 해명했다.“여보, 나 밖에서 여자 건드린 적 없어.”“알아. 난 당신이 밖에서 바람피웠다고 말한 적 없어. 단지 당신이 너무 멋지고 훌륭해서 수많은 여자를 매료시켰다고 말했을 뿐인데. 남자도 미녀를 볼 때 몇 번이고 더 보고 싶어 하고 심지어 첫눈에 반하잖아. 여자들도 마찬가지야. 멋진 남자를 보면 참지 못하고 눈길 한 번 더 주면서 설레하는걸. 연회에서 가희 씨가 날 친구에게 소개해 주셨는데 그 친구분은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너무 냉담하게 대하는 거야. 심지어 험한 말까지 나에게 하더라고. 너무 이상했어. 건드린 적도 없는데... 나중에 알았는데 당신을 짝사랑했더라고. 내가 그 친구분의 연적으로 된 거지.”전이진의 멋진 얼굴은 이내 굳어졌고 나지막이 물었다.“누구야?”그의 아내가상대방과 인사를 나누는 것만 해도 이미 상대방의 체면을 충분히 세워준 셈이다.그러나 그 여자가 의외로 여운초를 아랑곳하지 않았다.여운초는 전이진의 예쁜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남편은 내 나쁜 소식만 들어도 얼굴이 어두워진다니까. 이진 씨는 늘 부드러운 사람인데 차가운 표정을 지으면 당신 큰형과 겨루어 볼만 해. 여보, 난 당신의 어두운 얼굴이 싫어.”전에 그녀는 전이진을 볼 수 없었기에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표정이 어땠는지도 몰랐다.전이진과 지내면서 느낌상으로 그가 부드럽고 지적인 남자라고 결론지었다.외부 사람들 눈에도 전이진은 우아하고 지적인 남자로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전씨 가문의 횡포함이 들어있었다.때때로 화가 날 때면 그의 냉담한 표정이 전태윤과 겨룰 수 있을 정도다.전태윤은 차가운 얼굴에 익숙해져 있지만, 전이진은 차가운 표정을 거의 짓지 않았다. 하여 전이진이 갑자기 차가운 얼굴로 나타나면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곤 한다.“내가 뭐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거든.”여운초는 웃으며 전이진의 찌푸린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난 단지 당신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말
“얼어 죽을 장님! 전부 네 탓이야. 너 아니었다면 내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거야.”여운별은 잘 지내지 못하기만 하면 모든 잘못을 여운초에게 밀게 되었고 여운초에 대한 원망이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그리고 하예정도 끌어내 하루에 수없이 욕했다.여운초는 갑자기 재채기를 몇 번 했다.방금 욕실에서 나온 전이진은 여운초가 재채기하는 소리를 듣더니 다급하게 걸어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감기에 걸렸어? 샤워하고 나올 때도 옷을 걸치지 않고 나오더니. 왜 난방도 안 틀고 있어? 날씨가 추우면 얼른 틀어야지.”전이진은 난방을 켜며 말했다.여운초가 대답했다.“얼마나 춥다고 난방을 켜? 창문도 꼭 닫았는데 안 추워. 옷도 두껍게 입고 이불도 덮고 있는걸. 내가 추위를 타는 게 아닌 누군가가 내 뒷담화 하고 있는 거야.”문씨 가문 연회에 참석할 때 드레스를 입고 있어도 여운초는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문씨 가문은 따뜻했다.“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누군가가 꿈에서 널 욕하기라도 하게?”전이진은 여운초의 외투를 가져와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그는 여운초를 따라 침대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주었다.“리조트는 그래도 추워.”전이진은 난방을 다시 켜지 않았다. 실내가 춥지 않으면 여운초는 전이진이 그녀를 안고 자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면서 밀어낼 테니까.전태윤에게서 배운 수작인데 아내를 껴안고 잠들려면 난방을 틀면 안 된다고 한다.관성의 겨울은 추운 편은 아니었다.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오면 실내 온도는 낮지 않았다.십여 도의 온도는 정말로 난방을 켤 필요가 없다.“우리 엄마가 연회에서 문제가 좀 생겼는데 당신이 잘 처리했다고 칭찬하시더라고.”여운초 연회에서 돌아오자마자 먼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기에 전이진에게 연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아직 알려주지 못했다.명해은은 돌아오자마자 전이진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문씨 가문의 연회에서 운초가 연적을 만났는데 이따가 운초에게 잘 해명해. 오해하게 하
“앞으로 잊지 말고, 약 챙겨 먹어.” 용태호는 혹시 귀찮은 일이 생길까 여운별에 당부했다.“아니면 병원 예약 해줄 테니 그냥 피임 시술받을래? 그럼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약 많이 먹으면 나중에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여운별은 잠시 망설였다.“......”“그냥 약 먹을게요.”피임 시술이라니, 여운별이 아무리 어리고 멍청하다고 해도 용태호의 말대로 했다가는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용태호가 조금이라도 여운별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자신이 피임 조치를 해 여운이 약을 먹는 일도, 낙태를 하게 일도 없었다.“그래, 그렇게 하던가.”어차피 용태호 자기 몸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그는 여운별이 약을 먹든 시술하든 자신의 아이만 낳지 않는다면 전혀 상관이 없었다.용태호는 아내와 낳은 아이들도 이미 다 컸고, 가문의 후계자가 더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비록, 용태호가 아내에 대한 감정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자기 자식들만큼은 끔찍이 생각했다. 그는 온갖 애정을 쏟으며,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잘 자라도록 했다. 물론, 용태호가 혼외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독 좋아하는 두 명의 애인에게만 자신의 아이를 낳게 했다. 그 두 애인은 말도 잘 들었고, 어떠한 야망도 없어 용태호에게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용태호는 대가로 두 애인에게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며, 매달 생활비를 보내줬다.용태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아내가 어떻게 화를 내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애인이 정처의 위치를 차지하려고 아무리 몰래 임신했어도, 아내가 대신 문제를 처리하도록 놔두었다.그나마 여운별은 어리고 예쁘기라도 해 용태호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똑똑함으로는 용태호 자기 아내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절대 여운별에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할 생각이 없었다.“얼른 쉬어. 내일 의사 부를 테니 확인해 봐. 정말 임신이 맞는지...”“정말 임신이 맞다면, 약 처방 해달라고 할 테니 먹
여운별은 용태호가 약을 먹은 게 아닌지 의심하기까지 했다.“이리 와”용태호가 여운별을 향해 손짓했다. 용태호는 금방 씻고 나온 여운별의 살냄새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용태호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태호 씨...”여운별은 부끄러운 듯 달콤한 목소리로 누워있는 용태호의 옆으로 다가갔다.여운별은 비록 몇 번이고 용태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그럴 능력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용태호를 잘 달래는 것뿐이었다. 용태호가 기분이 좋아야 여운별 자신의 삶도 좀 나아질 수 있으니까......제일 이상적인 상황은 용태호가 만족을 느끼고, 빨리 관성을 떠나는 것이었다. 용태호만 곁에 없으면 여운별은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었다.비록, 지루한 에티켓 교육을 받으러 다녀야 했지만, 매일 종잡을 수 없는 용태호를 마주하는 것보다는 낫았다. 용태호는 금방까지도 달콤한 말로 여운별을 아껴주는 듯 하다가도 한순간에 여운별을 죽이기라도 하듯 목을 조이며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했었다.용태호는 여운별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기게 했다. 그리고 몸을 뒤집어 여운별을 아래로 눕히며 움직이지 못하게 압박했다. 용태호가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여운별이 갑자기 있는 힘껏 용태호를 밀쳐 내더니 빠른 속도로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달려갔다.그 뒤로, 화장실에서 여운별이 구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상기 되어 있던 용태호의 얼굴이 순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수많은 애인이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용태호를 거부한 애인은 없었다. 여운별의 행동은 용태호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여운별, 죽고 싶어 환장했나. 내가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용태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운별을 대체할 애인을 찾을 수 있었다. 용태호가 여운별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그녀의 하예정과 여운초에 대한 증오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여운별만이 유독 전씨 가문의 세력에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용태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더 반박했다가는 용태호의 심기만 건드릴 것 같아 여운별은 자신을 자책하는 쪽으로 말을 돌렸다.“아니에요. 제가 잘 못했어요. 아직 목소리를 바꾸는 법을 제대로 몰라 그녀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말았어요. 그녀가 의심하는 게 당연해요.”여운별은 여운초가 분명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여운초가 저를 의심하고 있을 때도 전 화내지 않고 참고 있었어요.”“여운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오늘 널 그만 돌아오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넌 이미 들통나고도 남았어.”여운별은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변명을 하려 했지만, 용태호의 차가운 시선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사실, 여운별은 오늘 연회에서 여운초가 상스러운 말로 임유나한테 모욕당하고 있는걸 보며 대리만족감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리고 오늘 여운초의 말에 열 받은 것도 분명했다. 여운별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여운초가 조금만 더 했더라면 자칫 몸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여운초는 여운별의 분노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제대로 발끈하는 여운별이었다.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여운별이 주눅 든 목소리로 입을 뗐다.“태호 씨, 미안해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가 봐요...”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태호도 여운별이 조금은 안쓰러웠는지 마음이 누그러들기 시작했다.“네 잘못만은 아니야. 네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바뀌겠어? 강산은 바뀔 수 있어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고 하잖아. 이 정도까지 해낸 것도 이미 대단한 거야.”“하, 걸 아는 사람이 나한테 그런 요구를 한단 말이야?”여운별은 혹여나 또 용태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혼자 중얼거렸다.사실 그녀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세상 물정 모르는,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인 사람이었다.하지만,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니 이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이 얼마나 사람들의 비호감을 사는지, 심지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심히
전씨 가문을 건드리다니,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는 감히 그럴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임형식은 확신했다.“물론이지. 주의할 테니 걱정하지 마요.”임형식은 이희진의 손을 잡으며 자책에 빠진 아내를 따뜻하게 위로했다.“여보, 자책하지 마요. 자식이 실수하면 우리가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고, 애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면 돼요.”“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도 가끔 실수할 수 있어요. 사람이 성인이나 현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 자책하지 마요.”이희진은 그제야 마음이 풀리는지 한숨을 내쉬었다.“유나가 정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내가 봤을 때 유나는 이미 반성하고 있어요. 우리 애가 본성이 나쁜 애는 아니잖아요. 아마 일시적으로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그랬을 뿐일 거예요. 또 술도 마셨다면서요? 그러니 더 주체가 안 되었겠죠.”임형식은 딸이 이번 실수를 계기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또 아내도 딸애한테 먼 시골 마을로 내려가 생활하면서 그곳에서 선행을 베풀도록 요구했으니......그곳에서 도움을 주면서 선행을 베풀다 보면 딸애 자신도 덕을 쌓게 되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임형식은 그곳에서의 생활이 아마 임유나한테 새로운 충격을 안겨 줄 거라고 예상했다. 딸애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아량이 넓고, 삶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완전히 환골탈태 되어 있기를 기대했다.......한편, 연회가 끝나고 여운별은 용 씨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 안에 있던 용태호는 여운별이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연회에서 있은 일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여운별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가끔씩 와서 자신의 욕구를 풀고 나면 곧바로 떠나던 용태호인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별장에 남아있었다.여운별이 연회에서 돌아왔을 때 용태호는 이미 떠나고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별장을나설 때 분명 떠날 것처
이희진은 차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대답했다.“여운초, 그녀도 오늘 저녁 그 댁 시어머니와 함께 연회에 참석했더군요. 가희가 우리 유나랑 친분이 있어서 유나한테 그녀를 소개해 줬는데 글쎄 유나가 아직도 전이진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지 뭐예요.”이희진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유나가 글쎄 여운초 면전에서 눈 한번 깜빡 안 하고 아주 대놓고 상스럽고 모욕적인 말들을 하는데, 결국 여운초도 참다못해 마시던 술을 유나 얼굴에 부어버렸어요.”임형식은 딸의 행동에 적잖이 놀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유나가 정말 그런 말들을 했다고요? 평소 우리의 가르침을 아예 귓등으로 들었다는 말이에요?”아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형식은 여운초에 너무 미안했다.“그래서 당신은 유나를 대신해서 사과했어요? 내일 우리 양손 무겁게 직접 그녀를 찾아가서 제대로 사과합시다.”임형식은 임유나가 정확히 어떤 모욕적인 말들을 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화를 낼 정도면 딸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바로 사과했죠. 유나도 사과했어요. 여운초가 하도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 유나를 더 추궁하지 않긴 했지만, 우리까지 그냥 이렇게 넘어가게 둬서는 안 돼요.”자식을 매우 신중하게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지만, 상대에 모욕적인 말들을 했다니, 임형식은 자신이 딸을 잘 못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희진도 잔뜩 화가 나고 심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희진은 속상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우리가 우리 애들을 신중하게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고 애들도 올바르게 잘 자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결국 우리가 부모가 돼서 잘 가르치지 못한 거예요.”“똑같이 전씨 가문 도련님을 좋아했던 성소현을 보세요. 전태윤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바로 마음을 접고 어떤 연락도 집착도 하지 않았어요. 하예정을 괴롭히지도 않았고요. 심지어 둘이 사촌 자매라는 것을 알고는 친자매처럼 더 돈독하게 지내는 것 같더라고요.”이희진은 똑같은
유전자 감정 결과는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짐작컨대 여운초는 그녀의 친아버지의 딸일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여태웅 부부가 여운초를 학대하지도 않을 것이다.하여 추미자가 진작부터 여태웅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지금 생각해보니 명해은은 여태웅 부부가 여운초를 사랑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여운초는 그녀의 작은 고모 여준희와 예전에 여운초를 가장 아끼던 보모의 가르침 하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만약 여태웅 부부가 여운초에게 잘 대해주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들이 여운초를 학대했지만, 여운초는 오히려 강한 성격을 키웠고 올바른 가치관으로 자랐다.그 부부가 지금의 여운초를 보면 아마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저들을 탓하지 마세요. 우리 어머님께서 자식 농사를 잘 지으셔서 그래요. 전씨 가문의 자식마다 훌륭한데 누가 싫어하겠어요? 집에 딸이 있는데 당연히 좋은 시댁을 고르고 싶지 않겠어요? 사위와 사위의 엄마도 골라야 하니까요. 결혼은 원래 두 사람의 일이 아닌 두 가정의 일인걸요. 결혼 후로 부부는 서로의 가정에 어울려야 하고 서로의 생활습관도 적응하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남을 바꿀 생각을 하지 말고 스스로를 먼저 바꾸는 것이 정답이죠.”명해은은 눈웃음만 짓고 있었다.며느리한테서 칭찬을 들으니 웃음이 도무지 걷히지 않았다.명해은은 갈수록 이 며느리를 좋아하고 있다.어둠 속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여운초는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남의 마음을 꿰뚫고 인간성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추었다.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이런 안목이 필요했다.임씨 가문.임형식은 막 술 한 잔을 따라서 부엌에서 나오는데 자동차 소리를 듣게 되었다.그는 그 술잔을 들고 문 앞으로 걸어갔고 곧 아내와 딸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이희진은 화가 난 듯 차에서 내린 뒤 임유나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집안으로 걸어왔다.임유나는 이희진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왔다.‘무슨 일이 있었나?’임형식은 이희진 모녀와 연회에
여운별은 가여운 모습으로 말했다.“태호 씨가 여운초를 도와주라고 하셔서 제가 다 도와드렸잖아요.”여운별이 임유나에게 얼마나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여운초 씨가 그런 말을 할 것은 아마 운별 씨를 시험하려고 한 말일 거예요.”여운별이 말을 이었다.“저도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계속 저를 의심하고 떠보는 것 같았거든요. 다행히도 발견되지 않았어요.”경호원은 차갑게 응했다.“발견하지 말길 바라야죠.”여운별은 연습을 거쳐 듬직해 보이긴 했지만, 그녀의 성격은 이미 굳어져서 여운초와 비교할 수조차 없다. 여운초가 떠보면서 무언가를 발견했을지...경호원은 돌아가서 용태호에게 이 일을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이 떠난 지 30분 후, 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도 여운초를 데리고 돌아갔다.길을 가던 도중에 명해은이 며느리에게 물었다.“가희 씨 말고 또 사귀고 싶은 사람 있어?”여운초가 대답했다.“아직은 없어요. 그 모임에 쉽게 어울리기 쉽지 않더라고요. 저를 데리고 놀기를 원하지 않는데 저도 일부러 끼어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몇몇 유명 연예인들은 여운초에게 악의가 없었지만 공손한 태도만 보였다. 단지 그뿐이었다.여운초도 일부러 그들과 사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녀들과 친하지 않고 그녀들도 그녀에 대해 잘 몰랐다.앞으로 또 접촉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서로에 대해 깊이 알아본 후 사귈 가치가 있다면 여운초는 그녀들과 친구가 될 것이다.깊이 사귈 가치도 없다고 느끼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사이일 뿐입니다.관성 상류 사회를 거닐면서 여운초는 많은 친구가 필요 없었다.그렇다고 외롭지도 않았다.그녀의 동서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내 친구들이 네가 정말 훌륭하다고 내 앞에서 널 칭찬하더라.”여운초는 가볍게 웃었다.“어머님의 체면이 깎이지 않았다니 다행이네요.”명해은은 웃으며 칭찬했다.“그럴 리가. 우리 며느리가 최고야.”명해은은 여운초가 전이진이 곁에 없을 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했지만, 오늘 밤에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