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의 부모님과 남동생은 전호영을 응원했고 하루빨리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랐다. 고현은 전호영을 싫어하던 데로부터 받아들이게 되었고 달라붙는 전호영을 떼어내지 못했다.“호영 씨는 내가 여자라는 걸 알고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여자 신분을 밝히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다면 호영 씨는 저한테 이렇게까지 매달리지 않았겠죠. 남들이 뭐라 하든 우리 두 사람의 행복만 신경 쓰고 싶어요. 만약 우리가 정말 결혼하게 된다면 그날은 완전한 여자가 되어 드레스를 입을게요. 그럼 세상 사람들한테 당신이 평범한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나 다름없잖아요.”고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설마 호영 씨가 저한테 여장하라고 강요한 줄 아는 건 아니겠죠?”전호영은 꿈을 꾸는지 조용히 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호영이 주도권을 쥔 줄 알았다. 지난번에 전호영이 고현에게 여성용 선물을 주는 것을 본 사람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고현은 허리를 숙여 전호영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고 단잠에 빠진 전호영의 입술에도 입을 맞추었다. “저는 이만 회사로 가 볼 테니 푹 쉬어요. 저녁에 만약 깨어나면 호영 씨랑 밥을 먹고 아니라면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잡을 거예요.”고현은 침대맡에서 일어나 바지 주머니에 있던 비행기 티켓을 몇 장 꺼내 책상에 올려두었다. 고현이 미리 구매한 비행기 티켓이었다. 내일 아침 8시 20분 비행기로 점심에 관성에 도착해 전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개인 전용 비행기가 있다고 했지만 고현은 결혼식 전에 도착하면 되기에 급히 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에 참가 하기 위해 전씨 가문 개인 전용 비행장에 정착할 비행기만 해도 수백 대일 것이고 소정남과 심효진보다 더 많은 상업계 거장이 오기 때문에 비행장에 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고현에게도 개인 전용 비행기가 있었는데 급한 업무를 볼 때가 아니면 굳이 타지 않았다.고현은 전호영의 로열 스위트룸을 나와 하루
고현은 이윤정을 차갑게 쳐다보고는 뒤돌아갔다. 보디가드중 한 사람은 이윤정 앞을 막고 서서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고 다른 사람은 고현이 안전하게 호텔을 나설 수 있게 보호해 주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호텔 앞에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미 익숙해진 호텔 카운터 직원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하루 호텔의 직원들은 전호영이 수많은 재벌가 아가씨를 제치고 고현의 마음을 얻은 것이 자랑스럽기만 했다.“고현 도련님, 가지 마세요!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갈게요!”이윤정은 고씨 가문 보디가드를 뿌리치고 고현을 따라잡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보디가드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실패한 이윤정은 고현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굳어졌고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질렀다.“고현 도련님, 저는 도련님이랑 같이 관성에 가서 결혼식에 참가하고 싶을 뿐이에요!”이윤정은 고현이 관성에서 열리는 전태윤의 결혼식에 참가할 때 함께할 파트너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현의 파트너로 동행해서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을 보려고 했었다. 비록 전태윤은 연적 전호영의 사촌 형이지만 전태윤의 결혼식에 명성이 자자한 거장이 몰려들기 때문에 미래의 입지를 위해서 반드시 참가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현은 이윤정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보디가드의 보호 속에서 고현은 인행도로를 건넜고 고성 호텔 앞에 세워진 마이바흐에 올라탔다. 고씨 가문 보디가드가 이윤정을 놓아주자 이윤정은 차도를 가로질러 길을 건넜고 깜짝 놀란 운전자들이 브레이크를 밟고는 클랙슨을 마구 눌러댔다.차에 치일 각오까지 한 이윤정은 곧바로 고성 호텔로 향했고 문 앞에 세워진 보디가드 차량과 고현의 차량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또 놓쳤어.”이윤정은 정교한 화장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굴렀다. 고현이 나올 때까지 고성 호텔 앞에서 10여 분 동안 기다렸지만 고현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이윤정은 얼굴을 쓰다듬더니 자신의 몸매를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나 이래 봬도 전호영보다 몸매 하나
이은화의 비서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부대표님, 이 대표님께서 찾으세요. 업무를 중단하고 사무실로 빨리 오라고 하셨어요.”“알겠어요.”이윤미는 전화를 끊고는 부대표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이 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차기 가주로 자리매김했고 이씨 그룹의 부대표로 임명받았다. 앞으로 이윤미가 이씨 가문과 이씨 그룹을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이윤미는 이씨 그룹을 이모의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이 그룹은 원래부터 이윤미의 소유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윤미의 사촌 언니와 하예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윤미는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관성 쪽에서 잠잠할 거라고 생각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은 곧 깨질 것이다. 이윤미는 사촌 언니와 다시 친하게 지내서 하예진 자매한테서 ‘이모’라는 말도 듣고 싶어졌다.이은화의 사무실 앞에 도착한 이윤미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저 이윤미예요.”회사에서는 이은화를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되었다. 이씨 가문 가주 이은화가 허락하지 않는 한, 회사에서 두 사람은 상사와 부하 사이이지 모녀 사이가 아니었다.“들어와.”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는 이은화는 오래전에 받은 청첩장을 지그시 쳐다보았다.“편하게 앉아.”이은화는 이윤미와 함께 소파에 앉았고 청첩장을 책상에 올려놓았다.“관성 전씨 가문에서 보낸 청첩장인가요?”이은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전태윤 도련님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 청첩장을 받기 위해 일부러 관성에 집을 사는 가문도 있는데, 우리 가문은 운 좋게도 도련님한테서 청첩장을 받았어.”이은화는 두 가문이 교류가 적었기에 전태윤이 직접 청첩장을 보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윤정은 고현을 좋아했기에 전호영과 연적이 된 사이가 된 마당에 갑자기 받게 되어서 관성에 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은화는 전태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체면이 구겨질까 봐 걱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괜히 관성에 갔다가 연락 두절
이은화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넌 이곳에 남아서 회사의 일과 가문의 일을 잘 해결하거라. 엄마가 돌아왔을 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으면 좋겠구나.”이은화는 관성에 가서 두 조카의 행방을 조사할 생각이었다. 가문 사람들은 관성의 이경혜가 이은화의 큰조카라고 소문을 퍼뜨렸지만 이은화는 모르는 척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침 관성에 전태윤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야 하니 이참에 제대로 조사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이윤미는 이은화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엄마, 아빠랑 같이 안 가고 혼자 가시게요? 사실 저는 엄마랑 같이 가고 싶었어요. 관성은 번화한 큰 도시니까 기회도 많을 것 같아서요. 그럼 이씨 그룹의 사업을 관성에 가져가서 추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이윤미는 관성에 남몰래 다녀왔지만 이은화는 이윤미가 관성에서의 소비 내역을 발견했다. 다행인 것은 이윤미가 성씨 가문에 다녀온 것을 들키지 않았다. 하예진이 가게를 차려서 방윤림에게 부탁해 축하금을 전달했다. 만약 직접 갔더라면 이경혜를 만난 목적을 들킬 수도 있었다. 이경혜는 이윤미와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를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다.이윤미는 이경혜가 이은화의 사촌 언니라는 것을 이은화가 일부러 숨겼다고 생각했다. 혹은 의심이 들어 관성에 결혼식을 빌미로 가서 조사할 것이 분명했기에 적어도 두 주일 정도 있어야 돌아올 것이다. 이때 이은화가 차분하게 대답했다.“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윤미야, 본사의 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으니 영역을 넓히려는 욕심은 접는 게 좋아. 관성의 각 업계는 이미 포화 상태에 들어섰고 전씨 그룹과 상씨 그룹이 자리 잡고 있고 예진 그룹 지사, 예씨 가문 다섯 번째 도련님이 각자의 영역을 주름잡고 있어서 우리가 낄 자리는 없단다.”이은화가 말을 이었다.“이곳의 흐름만 잡아도 크게 발전할 거야. 예전에 이씨 가문은 강성에서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뒤로 세어봐야 할 정도지. 네가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가문은 재벌가의 행렬에서 곧
“윤미야, 엄마는 네가 앞으로 우리 가문을 부흥시켜서 다시 최고봉의 자리에 오르길 바란다. 그래야만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거야. 지금 각 행사에 참여할 때 사람들이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우리 가문을 욕할지도 몰라.”이윤미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가 평생 노력해도 이씨 가문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지 못했는데 저라고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이씨 그룹 내부의 문제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에요. 하지만 문제가 있는 부서와 부서의 담당자는 오빠들과 가문 어르신의 자손들이죠.”이윤미의 입지에 굳건해지지 못했기에 그 사람들을 이씨 그룹에서 잘라낼 수 없었다.“그분들이 있는 한, 이씨 그룹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어요. 죄다 자신의 재산을 불릴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유리한 일을 하겠어요?”이은화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이윤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은화는 대대로 내려온 원칙을 지키긴 했지만 가주의 자리를 이윤미에게 넘기는 동시에 아들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주었기에 이윤미의 입지가 불안정했다. 다행인 것은 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오기 전에 상업계에서 자신만의 성과를 내었고 사회의 암묵적인 규칙에 익숙해졌기에 오빠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때 이은화가 입을 열었다.“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하는 거야. 윤미야, 이건 내가 너에게 내준 시험과도 같아. 엄마가 자리에서 내려오면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너한테 달렸어. 친오빠도 해임할 만큼 네가 냉철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이 널 얕잡아보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거야. 하지만 상사는 부하를 꽉 잡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베풀기도 해야 한단다. 팽팽한 긴장감을 못 이기고 회사를 나가는 인재들이 종종 있거든.”이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엄마가 혼자 관성에 가서 결혼식에 참가할 동안 너는 가문과 회사를 지켜줘. 몇 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키는 게 힘들었으니 나도 숨 좀 쉬려고... 이번
서원 리조트는 전씨 가문 저택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이은화는 친딸 이윤미를 쳐다보면서 만약 어릴 때부터 가르쳤다면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전씨 할머니의 눈에 들어 전씨 가문 손주며느리 감으로 거론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아직 젊으니 놀러 갈 시간은 많아. 엄마는 늙어서 이번에 한 번 다녀오면 다시는 가지 않을 거란다.”이윤미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엄마, 가서 푹 쉬고 오세요. 이참에 아빠도 데려가면 어때요? 비록 엄마한테 도움 된 건 하나도 없지만 엄마를 웃게 해주는 건 아빠밖에 없잖아요.”이은화는 이윤미를 꾸짖었다.“어느 딸이 아빠를 그렇게 말해? 네 아빠가 아무리 도움이 안 되었어도 아빠가 없었다면 너희들도 이 세상에 없었어.”이윤미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제 말이 틀렸나요? 엄마는 좀 더 좋은 남자를 찾아야 했어요...”“더 능력 있는 남자들은 데릴사위로 오지 않을 거야. 지난번에 네 아빠가 말한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행하고 와서 더 괜찮은 아이를 소개해 줄게. 그 남자는 잘생긴 데다가 애가 순해서 마음에 들더라. 젊었을 때 네 아빠를 보는 것 같더구나. 너도 잘생긴 남자와 결혼하면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어. 봐, 네 형제 중에 못생긴 애가 한 명도 없잖아.”이은화는 예쁘고 잘생긴 자식을 낳은 것이 제일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이윤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엄마, 나 지금 연애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처럼 보여요? 제 입지를 굳힌 다음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볼래요. 그리고 저 지금 서른 살도 되지 않았는데 급하지 않아요. 결혼은 나중에 할 거니까요!”“윤미야, 서른 살이 지나서 하면 애를 낳을 때 힘들어. 엄마 봐봐, 아들 셋을 낳고서야 너처럼 예쁜 딸을 낳았잖아. 너도 그러려면 마흔 살까지 애를 낳아야 해서 엄청나게 힘들 거다. 운 좋게 첫째부터 여자아이를 낳았다면 너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어서 그 뒤로 몇 명을 더 낳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단다.”이윤미가 입을 열었다.“지금은 의학
여자아이를 많이 낳으면 지금처럼 이윤미한테만 기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윤미가 나간 뒤, 이윤정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옛 추억에 잠겨있던 이은화는 수양딸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들어올 때는 노크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하니?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이은화가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딸이 제일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은화가 이윤정을 편애해서 이렇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이윤정은 이은화의 친딸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20여 년 동안 가르친 딸이 기본적인 예의도 모른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엄마, 죄송해요. 잠깐 잊고 있었어요.”이윤정은 다시 걸어 나가서 사무실의 문을 닫고 노크했다. 이은화가 대답하자 이윤정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은화가 말하기도 전에 소파에 앉아 말했다.“엄마, 혹시 전씨 가문에서 온 청첩장 없었어요?”고현의 파트너로 전태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면 이은화를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청첩장이 있어야 갈 수 있기에 다급히 들어온 것이다.“받았어, 그건 왜 묻는 거지?”“엄마, 저도 같이 가요.”이윤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지금 회사 경영에서 빠졌고 가문의 일도 제가 신경 쓸 것이 아니니 매일 심심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참에 엄마랑 같이 가려고요!”이은화는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고현 도련님이 널 쳐다도 안 보지?”“맞아요, 어쩌나 딱딱하게 구는지 도통 넘어올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요. 엄마,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 거장들이 모이는 장소에 못 가본 지 너무 오래되었단 말이에요.”소문에 의하면 그 결혼식은 관성에서 역대급 규모의 결혼식이 될 것이다. 이윤정은 세계에서 유명한 인사들과 관성의 재벌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기회를 찾고 싶었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조금 전에 비서한테 부탁해서 윤미를 불렀거든. 회사 일은 모두 윤미한테 맡길 생각이고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울 거다. 짧게는 두 주일, 길면 한 달 정도 있
“너를 위해 만든 목걸이 같구나. 내 딸은 뭘 해도 예뻐.”“엄마, 새로운 목걸이를 받았으니 그에 맞는 옷도 필요할 것 같아요.”이은화가 미소를 지었다.“너의 옷방에 태그도 떼지 않은 새 옷들이 걸려있던데, 한 번도 안 입은 옷이 너무 많더구나.”이은화는 은행 카드를 꺼내 이윤정에게 건넸다.“사고 싶은 건 다 사도 되니까 속상해하지 말렴.”카드를 건네받은 이윤정은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역시 엄마가 최고예요!”이은화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넌 내가 업어 키운 아이야.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엄마한테는 내 친자식이나 다름없어. 사실 윤미보다 너한테 더 잘해주잖니.”“하지만 엄마는 윤미가 날 회사에서 내쫓을 때도 가만히 있었잖아요.”이은화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윤정아, 엄마는 너한테 친아버지의 성으로 고치라고 강요하지 않았어. 널 이씨 가문의 사람으로 남겨둔 걸 고맙게 생각하고 다른 건 더 욕심내지 말 거라. 네 친아버지가 욕심내지 않았다면 윤미는 지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야. 네가 내 딸이 받아야 할 사랑을 전부 앗아갔지만 지금은 윤미를 되찾았고 그 당시에 넌 갓난아이였으니 네 탓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 곁에 두었단다. 또한 넌 20여 년 동안 내 딸로 살아왔잖니.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지만 너만큼은 내가 널 많이 예뻐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이윤정은 겁에 질려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엄마,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저는 엄마한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윤미의 것은 탐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엄마가 사준 목걸이에 맞는 옷을 사러 가 볼 테니 엄마도 쉬세요. 저 이만 가볼게요.”이은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윤정은 다급히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탄 뒤에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친자식처럼 생각하기는 무슨, 그깟 돈으로 날 떼어내려는 거면서... 윤미한테 새 차를 사줄 때는 몇억짜리 차를 사주면서 나한테는 고작 몇
용태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더 반박했다가는 용태호의 심기만 건드릴 것 같아 여운별은 자신을 자책하는 쪽으로 말을 돌렸다.“아니에요. 제가 잘 못했어요. 아직 목소리를 바꾸는 법을 제대로 몰라 그녀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말았어요. 그녀가 의심하는 게 당연해요.”여운별은 여운초가 분명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여운초가 저를 의심하고 있을 때도 전 화내지 않고 참고 있었어요.”“여운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오늘 널 그만 돌아오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넌 이미 들통나고도 남았어.”여운별은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변명을 하려 했지만, 용태호의 차가운 시선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사실, 여운별은 오늘 연회에서 여운초가 상스러운 말로 임유나한테 모욕당하고 있는걸 보며 대리만족감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리고 오늘 여운초의 말에 열 받은 것도 분명했다. 여운별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여운초가 조금만 더 했더라면 자칫 몸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여운초는 여운별의 분노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제대로 발끈하는 여운별이었다.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여운별이 주눅 든 목소리로 입을 뗐다.“태호 씨, 미안해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가 봐요...”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태호도 여운별이 조금은 안쓰러웠는지 마음이 누그러들기 시작했다.“네 잘못만은 아니야. 네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바뀌겠어? 강산은 바뀔 수 있어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고 하잖아. 이 정도까지 해낸 것도 이미 대단한 거야.”“하, 걸 아는 사람이 나한테 그런 요구를 한단 말이야?”여운별은 혹여나 또 용태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혼자 중얼거렸다.사실 그녀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세상 물정 모르는,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인 사람이었다.하지만,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니 이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이 얼마나 사람들의 비호감을 사는지, 심지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심히
전씨 가문을 건드리다니,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는 감히 그럴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임형식은 확신했다.“물론이지. 주의할 테니 걱정하지 마요.”임형식은 이희진의 손을 잡으며 자책에 빠진 아내를 따뜻하게 위로했다.“여보, 자책하지 마요. 자식이 실수하면 우리가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고, 애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면 돼요.”“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도 가끔 실수할 수 있어요. 사람이 성인이나 현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 자책하지 마요.”이희진은 그제야 마음이 풀리는지 한숨을 내쉬었다.“유나가 정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내가 봤을 때 유나는 이미 반성하고 있어요. 우리 애가 본성이 나쁜 애는 아니잖아요. 아마 일시적으로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그랬을 뿐일 거예요. 또 술도 마셨다면서요? 그러니 더 주체가 안 되었겠죠.”임형식은 딸이 이번 실수를 계기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또 아내도 딸애한테 먼 시골 마을로 내려가 생활하면서 그곳에서 선행을 베풀도록 요구했으니......그곳에서 도움을 주면서 선행을 베풀다 보면 딸애 자신도 덕을 쌓게 되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임형식은 그곳에서의 생활이 아마 임유나한테 새로운 충격을 안겨 줄 거라고 예상했다. 딸애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아량이 넓고, 삶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완전히 환골탈태 되어 있기를 기대했다.......한편, 연회가 끝나고 여운별은 용 씨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 안에 있던 용태호는 여운별이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연회에서 있은 일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여운별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가끔씩 와서 자신의 욕구를 풀고 나면 곧바로 떠나던 용태호인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별장에 남아있었다.여운별이 연회에서 돌아왔을 때 용태호는 이미 떠나고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별장을나설 때 분명 떠날 것처
이희진은 차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대답했다.“여운초, 그녀도 오늘 저녁 그 댁 시어머니와 함께 연회에 참석했더군요. 가희가 우리 유나랑 친분이 있어서 유나한테 그녀를 소개해 줬는데 글쎄 유나가 아직도 전이진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지 뭐예요.”이희진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유나가 글쎄 여운초 면전에서 눈 한번 깜빡 안 하고 아주 대놓고 상스럽고 모욕적인 말들을 하는데, 결국 여운초도 참다못해 마시던 술을 유나 얼굴에 부어버렸어요.”임형식은 딸의 행동에 적잖이 놀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유나가 정말 그런 말들을 했다고요? 평소 우리의 가르침을 아예 귓등으로 들었다는 말이에요?”아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형식은 여운초에 너무 미안했다.“그래서 당신은 유나를 대신해서 사과했어요? 내일 우리 양손 무겁게 직접 그녀를 찾아가서 제대로 사과합시다.”임형식은 임유나가 정확히 어떤 모욕적인 말들을 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화를 낼 정도면 딸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바로 사과했죠. 유나도 사과했어요. 여운초가 하도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 유나를 더 추궁하지 않긴 했지만, 우리까지 그냥 이렇게 넘어가게 둬서는 안 돼요.”자식을 매우 신중하게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지만, 상대에 모욕적인 말들을 했다니, 임형식은 자신이 딸을 잘 못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희진도 잔뜩 화가 나고 심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희진은 속상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우리가 우리 애들을 신중하게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고 애들도 올바르게 잘 자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결국 우리가 부모가 돼서 잘 가르치지 못한 거예요.”“똑같이 전씨 가문 도련님을 좋아했던 성소현을 보세요. 전태윤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바로 마음을 접고 어떤 연락도 집착도 하지 않았어요. 하예정을 괴롭히지도 않았고요. 심지어 둘이 사촌 자매라는 것을 알고는 친자매처럼 더 돈독하게 지내는 것 같더라고요.”이희진은 똑같은
유전자 감정 결과는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짐작컨대 여운초는 그녀의 친아버지의 딸일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여태웅 부부가 여운초를 학대하지도 않을 것이다.하여 추미자가 진작부터 여태웅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지금 생각해보니 명해은은 여태웅 부부가 여운초를 사랑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여운초는 그녀의 작은 고모 여준희와 예전에 여운초를 가장 아끼던 보모의 가르침 하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만약 여태웅 부부가 여운초에게 잘 대해주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들이 여운초를 학대했지만, 여운초는 오히려 강한 성격을 키웠고 올바른 가치관으로 자랐다.그 부부가 지금의 여운초를 보면 아마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저들을 탓하지 마세요. 우리 어머님께서 자식 농사를 잘 지으셔서 그래요. 전씨 가문의 자식마다 훌륭한데 누가 싫어하겠어요? 집에 딸이 있는데 당연히 좋은 시댁을 고르고 싶지 않겠어요? 사위와 사위의 엄마도 골라야 하니까요. 결혼은 원래 두 사람의 일이 아닌 두 가정의 일인걸요. 결혼 후로 부부는 서로의 가정에 어울려야 하고 서로의 생활습관도 적응하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남을 바꿀 생각을 하지 말고 스스로를 먼저 바꾸는 것이 정답이죠.”명해은은 눈웃음만 짓고 있었다.며느리한테서 칭찬을 들으니 웃음이 도무지 걷히지 않았다.명해은은 갈수록 이 며느리를 좋아하고 있다.어둠 속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여운초는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남의 마음을 꿰뚫고 인간성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추었다.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이런 안목이 필요했다.임씨 가문.임형식은 막 술 한 잔을 따라서 부엌에서 나오는데 자동차 소리를 듣게 되었다.그는 그 술잔을 들고 문 앞으로 걸어갔고 곧 아내와 딸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이희진은 화가 난 듯 차에서 내린 뒤 임유나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집안으로 걸어왔다.임유나는 이희진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왔다.‘무슨 일이 있었나?’임형식은 이희진 모녀와 연회에
여운별은 가여운 모습으로 말했다.“태호 씨가 여운초를 도와주라고 하셔서 제가 다 도와드렸잖아요.”여운별이 임유나에게 얼마나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여운초 씨가 그런 말을 할 것은 아마 운별 씨를 시험하려고 한 말일 거예요.”여운별이 말을 이었다.“저도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계속 저를 의심하고 떠보는 것 같았거든요. 다행히도 발견되지 않았어요.”경호원은 차갑게 응했다.“발견하지 말길 바라야죠.”여운별은 연습을 거쳐 듬직해 보이긴 했지만, 그녀의 성격은 이미 굳어져서 여운초와 비교할 수조차 없다. 여운초가 떠보면서 무언가를 발견했을지...경호원은 돌아가서 용태호에게 이 일을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이 떠난 지 30분 후, 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도 여운초를 데리고 돌아갔다.길을 가던 도중에 명해은이 며느리에게 물었다.“가희 씨 말고 또 사귀고 싶은 사람 있어?”여운초가 대답했다.“아직은 없어요. 그 모임에 쉽게 어울리기 쉽지 않더라고요. 저를 데리고 놀기를 원하지 않는데 저도 일부러 끼어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몇몇 유명 연예인들은 여운초에게 악의가 없었지만 공손한 태도만 보였다. 단지 그뿐이었다.여운초도 일부러 그들과 사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녀들과 친하지 않고 그녀들도 그녀에 대해 잘 몰랐다.앞으로 또 접촉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서로에 대해 깊이 알아본 후 사귈 가치가 있다면 여운초는 그녀들과 친구가 될 것이다.깊이 사귈 가치도 없다고 느끼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사이일 뿐입니다.관성 상류 사회를 거닐면서 여운초는 많은 친구가 필요 없었다.그렇다고 외롭지도 않았다.그녀의 동서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내 친구들이 네가 정말 훌륭하다고 내 앞에서 널 칭찬하더라.”여운초는 가볍게 웃었다.“어머님의 체면이 깎이지 않았다니 다행이네요.”명해은은 웃으며 칭찬했다.“그럴 리가. 우리 며느리가 최고야.”명해은은 여운초가 전이진이 곁에 없을 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했지만, 오늘 밤에 지켜
여운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집에 일이 생겨서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다시 약속을 잡죠. 가희 씨, 혹시 연락처를 주실 수 있으세요?”문가희는 거절하지 않고 그녀와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다.여운별이 두 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양유미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양유미는 여전히 집사에게 여운별을 밖으로 배웅하게 했다.차에 올라타자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여운별의 얼굴에 있던 부드러운 표정이 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끊임없이 여운초를 욕하고 있었다.경호원들은 여운초를 무시했다. 그녀가 욕설을 퍼부어도 내버려 두었다.“열받아 죽겠어. 장님! 두고 봐. 언젠가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게 해줄 테니까. 때 되면 반드시 죽기보다 못한 삶을 해줄 테니까.”여운별은 다른 사람을 욕할 때마다 그 몇 마디만 반복했다.“사모님, 조금 전에 하마터면 들킬 뻔했어요.”경호원 한 명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여운별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얼어 죽을 장님이 말이 얼마나 듣기 싫게 하는지 몰라서 그래요. 자꾸 제 험담을 하잖아요. 제가 먼저 도와주었는데도 제 험담을 했다니까요. 제가 임유나와 같은 부류라면서, 사고뭉치에 안중에 사람도 두지 않고 오만한 사람으로 말한 거 있죠? 제가 언제 사고를 치고 사람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고... 제가 안중에 사람도 없으면 제게 평소에 본 것들은 영혼이란 말이에요?”여운별은 씩씩거리면서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태호 씨의 말을 기억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정말로 임유나 씨를 도와 그 얼어 죽을 장님을 심하게 혼내주고 싶었어요.”경호원이 차갑게 말했다.“사모님께서 용 사장님의 말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하마터면 우리 사장님의 일을 망칠뻔하셨어요. 사모님께서 구미호도 아니시고 목숨이 9개가 없으시잖아요.”여운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행히 그녀는 성질을 억눌러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다.용태호를 망칠 일이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여운별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현재 그녀
남들에게 고통을 주려 한다면 되려 그 고통 때문에 본인이 불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다.설령 불구덩이에 빠지지 않더라고 형을 선고받으면 감옥에 가게 될 것이고 전과가 남게 되어 인생에 오점이 생길 것이 뻔하다.여운초 일행을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곧 흩어졌다.다들 조금 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여운초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명해은은 연회에서 남들에게 괴롭힘 당할 때 바로 반격하는 모습을 보고 시름을 놓았다.양유미는 다시 사모님들을 집안으로 초대했다.전씨 가문의 사모님들이 떠난 후, 여운별은 여운초의 곁으로 다가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운초 씨, 가희 씨. 함께 앉아도 될까요?”“사모님, 얼른 앉으세요.”문가희는 용씨 사모님이 방금 여운초를 위해 나서는 모습을 보더니 곧 용씨 사모님에게 호감을 느꼈다.젊은 사람들끼리 더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용씨 사모님은 비록 이미 시집갔지만, 매우 젊었다. 연회에서 그녀는 다른 사모님들과도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여운초는 예의를 갖추며 여운별에 인사했다.“제가 아직 약을 먹고 있어서 술을 못 마시거든요. 임유나 씨가 저를 그렇게 말하니 제가 유나 씨 몸에서 제 여동생의 그림자를 봤다니까요. 제 여동생도 사고뭉치예요.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니거든요. 우리 엄마가 너무 사랑해주셔서 망쳐놓은 거죠. 우리 엄마가 문씨 사모님의 총명함을 절반만 나누어 가졌더라면 제 여동생도 오늘과 같은 상황에 부닥치지 않았을 텐데.”참아야 하느니라!꾸욱 참아야 한다!화내지 말아야 한다!화가 나면 허점을 드러나게 된다.지금 여운별은 용씨 사모님이지, 여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도 아니고 여운초의 여동생도 아니다.여운초는 그녀의 여동생 잘못을 말했을 뿐 용씨 사모님과는 무관하며 아무런 관계도 없다.여운별은 마치 여운초가 그녀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그녀 앞에서 여동생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 같다고 느꼈다.문가희는 여운초 자매가 암투를 벌이고 있다
여운초는 강인함과 인내심의 대표였다. 임유나가 근거 없는 말로 지껄여도 현장의 사람들은 임유나의 입이 너무 싸다고 생각했고 허튼소리만 해댄다고 여겼다.만약 이희진이 다가와서 임유나를 혼내주지 않았다면, 임유나가 계속 술주정을 부렸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임유나가 여운초를 괴롭힌 이유가 바로 전이진을 짝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하지만 다들 임씨 가문의 딸이 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에게 구애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었다.그냥 계속 짝사랑만 했을 뿐이다.어쩐지 여운초를 질투하더라니!“사모님, 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제가 딸을 잘못 가르쳐서. 내일 다시 딸을 데리고 댁으로 가서 사과드리겠습니다.”이희진은 딸이 진심으로 사과한 뒤 다시 한번 여운초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그리고 구경꾼들에게 말했다.“조금 전에 제 딸이 한 말은 모두 근거도 없는 말들이에요. 유미가 전씨 가문의 사모님을 질투해서 허튼소리를 한 겁니다. 제 딸은 제가 교육할 테니 우리를 교훈으로 삼아 이 소문을 외부로 흘러나가게 하지 말아주세요. 여러분이 이 소문을 퍼뜨린다면 아마도 그 결과를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시면 형을 선고받아야 하죠.”이희진은 사람들에게 경고한 뒤 임유나를 데리고 양유미와 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에게 사과했다.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양유미는 주인으로서 반응해야 했다. 그리고 집사에게 이희진 모녀를 배웅하도록 지시했다.“운초야, 괜찮아?”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이 여운초 곁으로 다가가 관심 있게 물었다.“괜찮아요. 임유나 씨야말로 일이 있겠죠. 저를 모함하길래 와인을 뿌렸어요.”명해은이 칭찬했다.“잘했어. 넌 너무 착해. 다음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뺨을 때려!”장소민도 맞장구쳤다.“맞아. 뺨 때려줘야 해. 남을 건드릴까 봐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린 남을 괴롭히지 않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사람은 아니야.”여운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약 임유나가 한 말이 외부로 흘러나간다면 여운초는 반드시 법률의 무기를 들고 자신을 위해 정의를 요구할 것이다.임유나가 법의 처벌을 받게 할 것이다.다른 사람들도 여운초에게 고소당하고 싶다면 말하던가! 여운초는 반드시 끝까지 추궁할 것이니까.임유나가 이희진을 쳐다보자 이희진이 다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희진은 계속해서 딸을 꾸지람했다.“사모님 말 들었어? 사모님께서 마음이 넓으셔서 잠시 따지지 않으신대. 사모님이 착하셔서 하는 행동인데 따지지 않는다고 해서 또 시름 놓거나 교훈을 얻지 못하면 안 돼. 헛소리하면 남들한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너 자신도 상처를 입을 수 있어. 그리고 아빠와 엄마에게도 잘못하게 되고. 네가 이렇게 함부로 말할 때마다 남들은 너를 잘 가르치지 못한 우리를 욕할 거야. 너와 같이 말썽을 피우고 헛소문만 퍼뜨리는 딸을 키웠다고 말이야. 하긴, 엄마가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네가 오늘 밤과 같은 잘못을 저질렀지. 사모님, 오늘 정말 미안하게 됐어요. 내일 선물을 들고 댁으로 사과하러 찾아뵐게요.”임유나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그녀가 충동적으로 몇 마디 한 탓으로 자신의 체면을 구겼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명성도 손상시켰다.그랬다. 남들이 임유나를 언급할 때마다 그녀의 부모님도 입에 올렸다.그들은 임유나의 부모님이 딸을 잘 가르치지 못한다고, 그들 임씨 가문의 가정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임유나가 가 여운초의 음란 소문을 퍼뜨리면 여운초가 화가 날 것은 물론 그녀의 명성도 손상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일부러 인터넷에 올린다면 여운초는 심지어 사이버 폭행을 당할 것이다.임유나가 입으로 가볍게 한 몇 마디 말이 여운초에게 주는 상처는 누구도 상상도 할 수조차 없다.여운초가 그녀를 쉽게 용서하지 않고 고소하면 임유나는 분명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갈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그들 임씨 가문은 이로 인해 여씨 가문과 전씨 가문을 건드리게 된 셈인데 전이진이 과연 임유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