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요.”여천우가 사색에 잠긴 듯 말했다.여천우는 부모가 저지른 일을 발견한 후, 처음에 큰 누나의 눈을 치료해주던 의사가 정상사망으로 돌아간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자기 부모가 해쳤는지 의심했다.“근데, 도련님이 어떻게 갑자기 돌아오셨어요?”가정부가 의아해하면서 생각했다.도련님은 이 시간에 대학교에서 근심 걱정 없이 공부해야 할 텐데, 명절도 방학도 아닌 지금 왜 돌아왔을까고.“큰 누나가 걱정돼서 휴가 내고 돌아왔어요.”여천우는 자기가 휴가 내고 왔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큰 누나가 방에 있지요? 들어가 볼래요.”여천우는 당장 달려가서 큰 누나의 눈이 보이는가 확인하고 싶었다.“큰 아씨와 도련님은 모두 방안에 계셔요.”여천우는 가정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문에 도착한 여천우는 준 형부인 전이진이 한 손은 큰 누나의 허리를 감싸안고, 한 손은 큰 누나의 머리를 받쳐 든 채 두 사람이 한창 열렬히 키스 중이었다.이를 본 여천우의 머리는 순식간 공백이 된 듯했다.그의 얼굴은 관우의 얼굴처럼 뻘게져 잽싸가 몸을 돌려 뜨거운 키스 중인 두 사람을 외면했다. 그러는 여천우는 속으로 전이진을 엄청나게 욕했다. 어디 감히 내 집에서 함부로 누나한테 이런 경박한 행동을 해, 딴 사람이 보면 누나를 어떻게 보겠어.한데 여천우 혼자만 이상하게 생각했지, 이 별장에 있는 가정부들은 이미 이런 장면에 익숙하여진 지 오래였다.둘 사이는 이미 약혼한 남, 여 사이인데 키스, 포옹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로 생각했다.설사 둘이서 한방을 같이 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다.전이진과 여운초는 비록 매일 알콩달콩했지만, 마지막 방어선은 넘지 않았다.둘은 한결같이 제일 소중한 것을 첫날밤에 남기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키스 후, 전이진은 사랑하는 여운초의 허리를 놓아줬다. 여운초는 전이진의 가슴에 기대여 가쁜 호흡을 조절했다. 이윽고 전이진은 그들 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여천우를 발견하고 품에 안겨있는 여운초에게 말했다.
여천우가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이진을 흘겨보았다.전이진이 웃으면서 물었다.“천우야, 네가 오늘 어떻게 왔어?”여천우는 전이진이 자기 누나와 친근하게 군데 대해 불만이 있어 얼굴이 불그레 해짐에도 불구하고 반박했다.“이건 제집이에요, 내가 언제 오고 싶으면 언제 와요, 형이 상관할 바는 아닌걸요?”전이진은 성격이 좋아서 여천우와 대들지 않았다.전이진은 여초운와 키스하는 장면을 여천우가 본 걸 알기 때문이다.아마도 처남이 자기 누나한테 경박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누나, 나 천우야.”여천우는 냉큼 큰 누나 곁에 달려가 서서 전이진을 슬쩍 한쪽 편으로 밀어버리고 큰 누나 눈앞에서 제일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누나가 자기의 생김새를 똑똑히 볼 수 있기 위해서였다.누나가 실명했을 때 여천우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초등학교 이학년 학생에 불과하다.지금은 벌써 대학생이다.처남한테 밀려난 전이진은 여전히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천우야, 너희 누나는 지금 눈앞의 물건은 볼 수 있단다. 하지만 똑똑히는 안 보여. 정박사가 그러는데 지금 누나의 시력은 칠팔백 도의 안경을 건 근시가 안경을 벗은 상태와 같단다. 볼 수는 있는데 똑똑히 안 보여.”“네가 좀 더 가까이 와야 누나가 너를 잘 볼 수 있을 거야.”“맞다, 너 뭘 좋아해? 지금 주방에 시켜서 네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시키게.”마침 점심시간이다.여천우는 전이진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누나의 두 눈만 뚫어지게 보면서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누나, 나 좀 봐봐, 내 얼굴 똑똑히 볼 수 있어?”그리고 손으로 자기의 눈을 한번 만지고는 물었다.“누나, 나 방금 손으로 눈 만졌어, 아니면 코 만졌어?”여운초도 조용히 동생을 지켜보았다.여천우는 부모의 좋은 점만 물려받아서 얼굴이 엄청나게 잘 생겼다. 여운초도 어머니를 많이 닮았기에 두 사람은 꽤 닮은 편이다.한참 후, 여운초는 손을 내밀어 여천우의 얼굴을 만졌다. 볼로부터 눈, 코까지 천천히 만지면서 마지막에 이마까지 만지
여운초는 감정을 사로잡은 후 동생을 힘껏 포옹해 주었다.누나의 품에 안긴 여천우는 매형을 흘끔 쳐다보면서 좀 어색했다. 매형이 질투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예전부터 이 매형이 아주 횡포하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매형인데 동생을 좀 양보하면 어떠냐고 생각했다.어렸을 때, 큰누나는 겉으로 남동생을 냉대하며 본 척도 않지만, 매번 그가 넘어지기만 하면 달려와서 가슴 아파하며 품에 안고 부드럽게 달래주곤 했다.여천우는 기억이 생길 때부터 큰 누나를 유별나게 따랐다.자기가 넘어지면 얼음장처럼 차갑던 누나가 따뜻해진다고 생각했다.그 후로 여천우는 넘어지는 걸 즐겼다. 넘어져야만 누나가 자기를 관심하고 달래도 주고 안아도 주니깐. 기억 속 누나의 품은 얄팍하면서도 따뜻했다.어린 여천우는 왜 엄마는 누나를 미워하고, 누나는 자기를 냉대하는지 잘 몰랐다. 점점 켜면서 그 까닭을 알았다. 누나는 아버지의 친딸이 아니기 때문이다.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지만, 엄마는 누나를 미워했다.누나가 엄마한테 된욕을 먹거나, 물매를 맞을 때마다 여천우가 달려가서 몸으로 막아주곤 했다.그는 엄마가 누나를 학대하거나 누나가 수모를 당하는 걸 보고는 절대로 참지 못하고 나섰다.둘째 누나의 심보도 고약하다. 큰 누나를 두둔하지 못하게 빼돌리려고 여천우를 기숙학교에 보내라고 엄마한테 권했고, 부모가 비록 여천우를 제일 이뻐했지만 큰 누나를 감싸주지 못하게 하려고 끝내는 기숙학교에 보내고야 말았다. 비록 그 학교가 관성에서 제일 비싼 학교이긴 하지만.여천우가 매번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큰 누나한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하지만 끝내는 실명당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마저 잃을 뻔했다. 다행히도 작은고모가 친정에 왔다가 발견하고 큰 누나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목숨을 건졌다.옛일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여천우는 자책감에 못 이기며 큰 누나가 사무치게 그리웠다.“누나.”여천우는 매형이 질투하든 말든 더는 관계치 않고 큰 누나를 힘주어 포옹했다.포옹을 마친 후 여천우가 큰 누나
“알았어."여운초가 동생을 자리에 앉히고 물었다.“근데 왜 갑자기 집에 왔어? 명절도 아니고 방학도 아닌데, 상과 안 해?"지난번 누나랑 통화하고 나서 걱정도 되고 또 눈 치료가 효과가 어떤지 보고 싶어서 며칠 휴가 내고 왔어."“그럼 전화할 줄 모르니? 굳이 휴가까지 내면서 와? 이틀만 자고 얼른 학교 가야지?”여운초가 말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전이진이 말했다.“운초씨, 이참에 천우가 큰 형 결혼식까지 보고 가면 좋잖아."그러자 여운초가 여천우를 보면서 휴가는 며칠 냈냐고 물었다.“한 주일."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은 3일 후에 올리기로 했다.“그럼 큰형 결혼식에 참석한후 학교로 돌아가렴. 앞으로는 큰일 없으면 함부로 휴가 내면 않되, 열심히 공부해서 방학 때 돌아오면 회사로 들어와 실습해."여운초가 여씨 그룹을 물려받을 때부터 독점할 생각을 전혀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여씨 그룹에 남동생의 한 몫이 있다고 생각했다.“누나, 난 회사경영에 관심 없어."여천우는 여씨 그룹에 발들이기 싫었다.왜냐하면, 여씨 그룹에 주인이 둘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여천우가 회사로 들어간다면, 아버지의 옛 부하들은 필연코 그의 편에 줄 설 것이다.누나는 지금 자기편의 사람들을 키우고 있다.그때 가서 설사 두 형제가 싸울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각자의 부하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때 되면 여씨 그룹이 망할 뿐만 아니라 형제도 버성기게 될 거다.게다가 여천우는 정말로 장사에 전혀 취미가 없다.잠자코 있던 여운초가 동생한테 물었다.“그럼 넌 졸업 후에 뭘 할 건가 생각은 해봤니?”“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거니와 촬영도 좋아해. 화가나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여운초는 동생의 말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말했다.“방학하면 우리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들어와, 봉급 줄 테니, 기타는 나중에 다시 봐."“응."여천우가 간단히 대답하고 금방 물었다.“매형의 큰형이 곧 결혼한다고?”전이진이 해석 해줬다.“큰형은 진작 결혼했어, 식을 이
여씨 별장 대문 입구에 있는 전 여씨 가문의 큰 아가씨와 둘째 아가씨는 옛날의 오만과 고귀함을 버린 지 오래였다.지금 그들의 몸에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고 반짝이던 비싼 보석들도 보이지 않았으며 들고 다니던 에르메스 가방도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그들 뒤에는 자가용 자동차조차 없이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왔다.빚을 갚기 위해 두 가족은 팔 수 있는 물건들은 다 팔았다.집까지 판 그들은 전세를 맡았다.두 고모가 태어났을 때 여씨 가문은 지금처럼 재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유한 축에 속해서 근심 없이 자랐다.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도 집안이 일떠섰기에 넉넉한 혼숫감을 가지고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며느리에서 할머니가 되었지만, 이제는 부화방탕한 생활로부터 다시 가난뱅이로 돌아가서 고생해야만 했다.나이가 많고 밖에서 일한 경험조차 없는 두 고모는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부밖에 없었다.하지만 청소부의 봉급은 너무 적어서 며칠도 못가서 다 써버리고 없었다.검소함에서 사치로 갈기는 쉽지만, 사치에서 검소함으로 가는 것은 어렵다고들 했다.이 말은 아마도 이 한 쌍의 자매에게 가장 적합한 듯했다.이런 고생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두 고모는 제발 저희를 좀 봐 달라고 여운초한테 절이라도 할 듯이 쫓아왔다.그들은 비로소 여씨 가문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오빠와 형님이 아니라 장인 여운초라는 것을 늦게야 알게 됐다.여운초는 운이 좋게도 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가령 앞 20년 동안을 여운초가 신데렐라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남은 인생은 호의호식하는 부잣집 사모님의 삶을 살 수 있었다.하느님이 그녀에게 내린 보상인 것처럼.“운초야, 문 열어, 우린 네 고모야!”“운초야, 다 우리 잘못이야. 더는 집안 재산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좀 살려줘라!”여운초의 둘째 고모도 큰소리로 외쳤다.여씨 가문의 이웃들은 두 고모가 친정집에 돌아가 가족 재산을 빼앗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여씨 가족
정박사가 신의의 자제면 어때? 신의도 사람인데 고칠 수 없는 질병도 있기 마련이다.“천우야, 천우야!”여운초 뒤에 따라 나오는 사람이 여천우인 걸 발견하자 두 고모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조카가 당연히 조카보다 호락호락할 테니깐.옛날에 그들은 오빠와 형수랑 한 패거리가 되어 여운초를 학대하고 괴롭혔었다. 여운초가 피해를 보고도 가만히 있자 매일 여운초가 죽기만 기다렸다.여운초가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앙심을 품어 그들한테 보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하나뿐인 조카 여천우는 어릴 때부터 두 고모가 애지중지했다.친정집에 유일한 남자애니까.친정집의 재산을 탐내기 전에는 여씨 그룹이 잘되길 바랐다. 그래야 남들이 그들을 업신여기지 못하니깐."천우 부르지 말아요. 걔는 지금 아무런 실권도 없어요."여운초가 걸어 나와서 두 고모 앞에서 문틈 사이로 맞대고 두 눈을 부릅떴다.전이진은 따라 나오지 않았다. 여운초가 혼자 해결할 수 있으니 필요 없다면서 말렸다.전이진은 사랑하는 여운초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러 주방에 갔다.두 고모는 여운초가 앞을 보지 못하는 줄 알고 악독하고 원한이 가득한 눈길로 여운초를 째려보았다.만일 눈빛이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두 고모의 눈빛은 여운초를 천 번, 만 번도 죽였을 거다."그렇게 지독한 눈으로 볼 필요가 없어요."여운초가 쌀쌀맞게 말했다.“눈길로 날 못 죽여요. 너만 힘들지."큰고모는 말문이 막혔다.그는 두 손을 문살 사이로 내밀고 여운초의 눈앞에 대고 흔들어 보았다."큰고모, 손 흔들지 않아도 돼요. 나 다 보이거든. 큰고모 요즘 살 많이 쪘네요. 내 기억 속에 큰고모가 무척 날씬했었는데, 지금은 뚱뚱하고 작달막하네요."큰고모의 키는 원래부터 크지 않았고 약 150㎝밖에 안되었다. 형제 중에서 키가 제일 작았다.그녀의 몸은 옆으로만 퍼지기만 하여 지금은 마침 호박 같았다.큰고모는 여운초의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연실색해서 물었다.“운초야, 너 진짜 볼 수 있어?”'그
돈이 없으면 다시 월세방에서 살까 봐 두려웠고 일자리를 찾으러 나간 자식들은 전씨 그룹에 밉보인 사람이라는 소식이 퍼져서 어느 회사도 감히 고용하지 못했다.“천우야, 고모 대신 잘 좀 얘기해 줘. 고모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니? 네 고모가 운초한테 쫓겨나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여천우는 두 고모가 이 지경이 된 것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여운초는 동정심 따위 없었고 여전히 엄숙한 표정을 한 걸 봐서는 여천우가 관성에 없을 때 고모가 여운초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이 분명했다.“큰고모, 둘째 고모. 우리 집 일은 누나 뜻에 따르기로 했어요. 누나가 고모한테 왜 그러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누나는 악독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은혜는 은혜대로 갚고 원한은 두 배로 갚아 줄 뿐이에요. 혹시 우리 누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여천우는 여운초를 굳게 믿기에 두 고모가 먼저 여운초한테 도를 넘는 짓을 해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다. 두 고모의 꼴은 말이 아니었으니 벌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았다.“두 분이 저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죠? 저를 악독하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네요. 내 목숨을 앗아가려고 악독한 마음을 먹은 건 고모잖아요. 저는 저를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가만히 있어요. 하지만 저를 건드리면서 선을 넘는다면 두 배, 세 배 갚아 줄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봐준 거고요.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아닌데 유난 떨지 마세요. 모두 건강한 것 같으니 직접 돈을 벌어도 되잖아요?”김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오늘 같은 지경에 이른 것은 전이진과 여운초의 계획이었다. 여운초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 고모를 내버려둘 수 없었고 당한 것의 두세 배는 돌려주는 성격이었다.“우리는 친고모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당신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두 누나를 깍듯이 모실 거라고요.”“우리 아빠에 대해 말하지 마세요, 두 분 모두 그럴 자격 없으니까요!”여운초는 솟구쳐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누나, 심호흡하면서
여천우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예전에 고모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여운초와 맞설 뻔했지만 정의감이 결국 악의를 짓밟았기에 고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 고모는 여운초의 용서를 빌다가 소용이 없자 여천우와 여운초 사이를 이간질했다.“누굴 원망하고 미워할지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고모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건 다 자초한 일이니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마세요. 아, 저를 탓해도 뭐라 하지 않을게요. 저는 고모가 타락한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거든요. 고모의 것이 아닌 건 절대 빼앗을 수 없고 강제적으로 빼앗는다면 지금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겠죠.”두 고모가 타락한 모습을 본 여운초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었다. 어느 정도 만족한 여운초는 여천우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천우야, 가자.”“여운초, 넌 지옥에 떨어져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거야!”여미란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여운초는 문 앞에서 집사한테 당부했다.“저 사람들이 또 와서 난동을 부리면 뒷마당에서 키우는 셰퍼드 두 마리를 풀어놓으세요. 아, 오늘부터 저랑 천우는 저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으니 외부인이 소란을 피우면 절대 봐주지 마세요.”집사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띠는 여운초를 바라보면서 어쩐지 뿌듯해 났다. 방으로 들어간 여운초는 여천우한테 말했다.“20여 년 전, 우리 아빠가 죽은 뒤 저 사람들은 알면서도 범인을 감싸고 돌았기에 공범이나 마찬가지야. 그때는 내가 두 살밖에 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몰랐고 고소하지 못했어. 지금 하려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서 아무것도 못 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이곳까지 와서 난동을 부리는 걸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 천우야, 네 부모님이 지은 죄는 20여 년 전에 우리 아빠를 죽인 것에 그치지 않고 건달들과 손을 잡고 사람을 납치하고 때린 것도 포함돼. 예전에는 이 일에 대해 말하기 꺼렸지만 오늘 전부 알려줄게.”여운초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기 싫어서 여천우의 부모님이라고 말했다.
문가희는 미안한 마음으로 여운초에게 말을 건넸다.“운초 씨, 먼저 안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가서 용씨 사모님을 뵙고 올게요.”여운초는 명해은 일행이 이미 양유미에 의해 화려한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도 낯선 사람들을 보더니 다시 문가희에게 물었다.“가희 씨, 혹시 제가 가희 씨와 함께 용씨 사모님을 만나러 가도 괜찮겠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문가희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요. 같이 가요. 그 용씨 사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함께 보러 가죠. 저는 용씨 사모님이라는 분을 들어본 적 없어요.”문가희는 관성 상류 사회에서 정말로 용씨 성을 가진 사람들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 사모님들도도 용씨 성을 가진 사모님들 들어본 적도 없었다.문가희는 정말 궁금했다.“제가 용씨 사모님을 한 번 본 있어요. 근데 제가 본 그 용씨 사모님과 오늘 밤 이분이 같은 사람 일지는 모르겠어요.”문가희는 여운초를 끌고 가다가 여운초의 말을 듣고 의아해하며 물었다.“만난 적 있다고요?”“네, 며칠 전 예정 씨의 서점에서 자신을 용씨 사모님이라고 자칭하는 사모님을 봤거든요. 20대 초반으로 나이가 아주 젊어 보였어요. 온몸은 화려하게 꾸몄고 예정 씨 서점으로 연습 책을 사러 가신 적 있거든요. 중학생인 시동생을 위해 연습 책을 사준다고 했어요.”문가희는 다른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용씨 사모님의 나이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감탄하며 물었다.“20대 초반에 시집갔다고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갔는지 확실히 좀 젊네요.”“제가 보기에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것 같아요. 기껏해야 21살로 보였거든요.”여운별도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여운별의 학업 성적은 여천우큼만 좋지 않았다. 보통 대학에 겨우 붙었지만, 여운별은 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추미자 부부도 여운별을 응석받이로 키웠고 또 집안 형편도 좋아서 설령 그녀가 좋은 학력이 없다고 해도 먹고 입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여 여운별 마음
여운초의 마음속은 일찌감치 벽돌로 높이 싸여져 그깟 소문으로 그녀를 다치게 하지 못했다.두 명의 큰고모와 여운별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전씨 가문의 명성을 훼손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마무리로 지어졌다.전이진이 무조건 그녀 곁에 서서 영원히 그녀를 믿고 지켜주는데 그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맞아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예전에도 사람들이 소현의 험담을 하며 짖궂은 말들을 했잖아요. 근데 운초 씨도 소현이와 친해지고 보니 그 소문이 가짜인 걸 아셨죠?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간에 신경쓰지 말아요. 다들 질투해서 그런거니까.”여운초도 맞장구쳤다.“네. 소현 씨를 질투하는 거죠. 소현 씨 헛소문도 엄청 많이 퍼졌잖아요.”다행히 성소현은 성격이 밝아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제멋대로 행동했다.남들은 단지 성소현이 전태윤에게 구애할 용기가 있는 것을 질투할 뿐이다.미혼인 전태윤은 수많은 여성의 이상형이었지만 그녀들은 전태윤에게 구애할 자신이 없었다.성소현은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공개적으로 전태윤에게 고백하고 추구했다. 성소현이 전태윤을 따라잡을 수 있든 없든 간에 그녀들은 질투심을 감추지 못하고 뒤에서 성소현의 험담을 하며 성소현의 명성을 손상시켰다.그리고 전태윤과 하예정의 부부 관계가 공개된 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뒤에서 성소현를 비웃었는지 모른다.성소현과 하예정이 서로 맞서 싸우기를 바라고만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녀들은 또 한 번 실망했다.성소현은 소탈한 성격이라 사랑에 빠져들었다고 해도 이내 그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그녀는 전태윤이 결혼한 것을 알고 즉시 단념하고 이제는 그녀만의 행복을 찾아 A시의 명문가 예씨 가문으로 시집갈 수 있게 되었다.예준하의 우수함은 관성의 업계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이에 대해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가 다시 일고 있었다.“아가씨.”뒤에서 하인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문가희와 여운초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무슨
“감사합니다.”여운초는 감사하다고 인사했다.양유미는 명해은에게 말을 건넸다.“해은 씨 며느리의 목소리도 너무 듣기 좋아요.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요. 당신 세 사람 모두 며느리가 생겼으니 행복하겠네요. 저는 며느리도 없고 사위도 없단 말이에요.”양유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두 아들과 딸 한 명을 바라보았다.막내아들은 아직 스무 살 남짓이 되어 내버려 둘 수 있지만, 장남과 딸은 모두 결혼 적령기에 들어섰지만, 아직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았다.양유미의 딸 문가희는 마침 성소현의 절친이었다.양유미는 사교성이 좋아서 이경혜뿐만 아니라 명해은 일행과도 너무 잘 어울려 다니면서도 두 가문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았다.문가희는 한때 신분을 숨기고 연애를 한 적이 있었지만, 상대방 남자는 적게 분투하고 빨리 출세하기 위해 다른 집 여자를 선택하고 문가희를 포기했다.하지만 그 남자는 문가희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적게 분투하고 출세하기 쉬운 길인 줄 몰랐을 것이다.문가희가 실연당했을 때, 성소현은 종종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위로해주었다.하예정과 심효진도 성소현을 통해 문가희를 만났지만 만남 횟수가 적어서 서로 잘 알지는 못했다.문씨 가문에서 연회를 열 때 성소현도 당연히 초대받았지만, 성소현은 예준하와 예진 리조트로 돌아가야 했기에 오늘 밤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이미 사랑의 아픔에서 벗어난 문가희는 여운초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웃고 있었다.문씨 가문의 큰 도련님은 침착한 표정으로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양유미의 말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가요. 우리 방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가희야, 운초 씨를 잘 모셔.”양유미는 웃으며 사모님들을 집으안로 초대하고 딸 문가희에게는 여운초와 함께 얘기 좀 나누라고 분부했다. 문씨 가문의 두 도련님은 함께 길을 걷다가 그들의 아버지를 따라 다른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문가희와 여운초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천천히 걸었다.문가희는 여운초가 시력은 회복했지만, 아직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
명해은은 곧 창문을 누르고 운전 기사에게 다시 계속해서 차를 몰아라고 분부했다.“어르신이 어린애 같다니까.”명해은이 중얼거렸다.여운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할머니께서 즐거우시면 됐죠. 할머니께서 매일 행복해하세요. 늘 인생은 불과 몇십 년밖에 없는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야 이 세상에 온 보람이 있다고 말하곤 하세요.”명해은은 전씨 할머니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녀가 애초에 전씨 가문에 시집간 것은 남편과 마음이 맞은 것도 있었지만 시부모님의 인품과 전씨 가문의 가풍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이 가문에 시집오게 되었다.사실이 증명했다시피 명해은은 시집을 잘못 가지 않았다.그녀가 전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전혀 억울한 일이 없었다.시부모님은 아들보다 며느리들에게 더 잘해 주셨기 때문이다.심지어 며느리들이 아이를 낳아도 그들이 걱정할 필요 없이 시부모님이 직접 키워주셨다.전태윤 세대의 아홉 형제는 전지율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명은 전부 전씨 할머니 부부께서 키우셨다.전지율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전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아직 어린 아기였다.하지만 전지율도 그의 형들을 보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못지않을 것이다.여운초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말씀이 맞은 것 같아요. 인생은 고난과 비바람으로 가득 차 있고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죠. 하여 인생을 웃으면서 살아야만 무지개를 맞이할 수 있는걸요.”명해은은 한참 동안 여운초를 쳐다보다가 웃으며 손을 뻗어 운초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할머니께서 왜 널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모두 강인하고 인생의 비바람에 맞선다고 해도 웃으며 맞이할 사람들이다.오늘 밤 연회를 여는 그 사모님은 그녀가 사는 큰 별장에서 모이자고 약속했다.명해은 일행이 별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차량이 천천히 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주인집에서는 들어오는 손님들이 차량을 잘 세우도록 입구에 여러 사람을 배정했다.명해은의 차량
“할머니, 어디 가시려고요?”소정남은 전씨 할머니가 나가려는 것을 보면서 묻고 있었다.전씨 할머니가 대답하셨다.“너무 오래 나가 놀았는데 산기슭에 있는 옛 친구들을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카드놀이도 해야지.”전씨 할머니는 귀부인티를 내지 않고 산기슭에 있는 노동자들의 부모님들과 잘 어울려 다니셨다.그 할머니들도 전씨 할머니와 이런저런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이야기들 나누렴. 난 나가야겠어. 좀 이따가 밥 먹을 때 날 부를 필요 없어. 사람을 시켜 산기슭에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해. 옛친구들과 함께 먹게. 어묵 같은 거 있으면 더 좋고.”“할머니,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 음식은 적게 드세요.”전씨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알았어. 안 먹을게.”“제가 할머니께 드시지 말라고 하면 할머니께서는 저를 욕하시더니 왜 예정이가 드시지 말라고 하면 바로 수긍하세요?”전태윤이 일부러 투덜거렸다.그는 전씨 할머니가 손자며느리가 생겼다고 손자를 안중에 두지도 않으신다고 불평했다.전씨 할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를 떠나셨다.할머니는 하예정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듯했다.그러나 손자는 너무 많아서 그다지 소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떠들썩한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저녁 6시가 넘으니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은 여운초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하러 집을 나섰다.전이진은 리조트 입구까지 배웅하며 끊임없이 명해은에게 당부했다.“엄마, 우리 운초 씨를 잘 돌봐주세요. 남들이 괴롭힘당하게 하지 말고요.”“알았어. 누가 감히 우리 며느리를 건드리면 내가 가장 먼저 그녀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명해은은 전이진의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있었다.전이진은 또다시 들이밀었다.“아니면 제가 따라갈래요.”“네 아버지랑 다 집에 있는데 네가 따라가서 뭐 하게?”명해은은 운전 기사에게 차를 몰아라고 지시했고 창문을 눌러 아들에게 고개를 내밀어 말을 건넸다.“날도 어두워지고
전창빈은 할머니께 말씀드렸다.“할머니께서 조금 전에 저 보고 할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집에 방금 돌아오셨는데 물도 아직 한 모금 마시지 않으시고 바로 내려가셔서 카드놀이도 이야기도 나누시겠다고 하시다니.”하예정도 말했다.“할머니, 그 할머니들도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께서도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 그 할머니들의 돈을 전부 따버리면 안 돼요.”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돈 내기하는 거 아니야. 카드놀이에서 지는 사람의 얼굴에 낙서하면서 노는 거지. 누가 얼굴에 가장 많이 그려지는지 지켜보면서 노는 거야.”현장의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노인네의 세계를 그들은 아직 잘 모른다.어르신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재치다.곧, 소정남과 심효진 부부, 그리고 소정남 부모님도 함께 들어왔다.집안이 더 시끌벅적해졌다.전씨 할머니는 소정남의 아버지 소균혁을 보더니 물었다.“셋째야, 당신 집 맏이가 사돈집에 갔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안 왔어?”소정남의 아버지는 형제 중 셋째였다.전씨 할머니는 예전부터 줄곧 소균혁을 셋째라고 불렀다.“설전에야 돌아온다고 하셨어요.”소지훈은 정윤하에게 고백했고 정윤하도 소지훈에게도 약간의 관심이 가진 듯 했다.소지훈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정윤하는 수차례의 고민 끝에 결국 소지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며칠 만에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소균성 부부는 연성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듯했다.하마터면 홀아비가 될 뻔한 아들이 드디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생겼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소균성 부부의 마음에 걸려 있던 큰 돌도 마침내 땅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하여 너무 기뻐서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비록 관성이 매우 춥고 가끔 눈이 온다고 해도 소균성 부부는 따뜻한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차라리 정씨 가문에 틀어박혀 불을 쬐고 싶어 했다.세 식구가 정씨 가문 사람들이 정윤하와 소
“여보, 오늘 밤은 내가 선물한 보석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가.”“보석 반지만 이진 씨가 선물한 걸 착용하면 되잖아.”전이진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래, 그럼. 이것만은 우리 엄마에게 양보할게.”여운초는 웃긴다는 듯 그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참, 당신과 형수님께서 용씨 사모님도 오늘 밤 연회에 참석한다고 하던데.”전이진은 문득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목소리와 몸매가 여운별과 닮은 그 젊은 사모님을 언급하자 여운초의 웃고 있던 얼굴이 굳어졌다.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마침 잘 지켜볼 수 있게 됐네.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지켜보면 허점을 잡히기 마련이야.”“내가 시간 날 때 사람 시켜서 알아봤거든. 근데 그 사모님이 정말로 용씨 사모님이더라고. 남편이 정말로 용씨였어.”“응.”여운초는 용씨 사모님이 여운별이라고 의심은 하고 있지만, 증거는 없었다.만약 용씨 사모님과 여운별이 같은 사람이라면 분명 음모일 것이다. 만약 음모라면 배후에는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 모든 상황을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여운초는 10년 동안 어둠 속에서 살면서 인간성을 꿰뚫어 보게 되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지금 여운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다.그녀의 친어머니마저도 그녀가 죽기를 원했기에 그녀는 정말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나와 여운별은 20년 동안 자매로 지내면서 많은 일이 있었거든. 남들이 모르는 여운별의 사소한 습관들도 난 전부 잘 알고 있어. 아마 여운별 본인도 모를 수도 있어. 내가 몇 번만 더 만나고 접촉해 보면 분명 허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용씨 사모님도 우리 앞에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만약 정말로 여운별이 가장한 거라면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생활 습관은 고칠 수 없을 거야.”전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동일 인물이 옳든 아니든 용씨 사모님의 실체를 알기 전에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해.”“나도 알아. 아주버님과 형수님이 곧 돌아오실 거야.
그랬다. 전태윤도 하예정과 딸을 낳고 싶었다.특히 그가 매일 예지연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때마다 늘 딸이 갖고 싶었다.예준성의 그 보배 딸은 점점 더 귀여워지고 있었다. 옥같이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에 눈도 어찌나 동그란지 여기저기 눈동자를 굴려서 볼 때면 앞으로 분명 똑똑한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예준성도 매일 SNS에 그의 보물단지 예지연의 사진을 몇 번이고 올린다.물론, 매일 예씨 가문의 대표 SNS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예준성은 소중한 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아까워했다. 심지어 A시 사람들은 예씨 가문의 손자 세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있다.예지연이 너무 어려서 어른들의 보호를 잘 받고 있었기에 언론에 아이의 정면 거의 찍히지 못했다.전태윤도 예준성의 SNS를 볼 수 있는 것도 하예정과 모연정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 때문이지, 그와 예준성의 친분으로는 볼 수 없었다.그는 예준성이 전씨 가문이 딸을 낳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의 소중한 딸을 자랑한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때때로 예준성이 영상을 보내면 전태윤은 예준성이 보낸 영상을 반복해서 보곤 한다. 심지어 영상 속으로 들어가 예지연을 집으로 데려가 그의 딸로 삼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고 있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그들은 할머니 일행이 돌아오면 모두 서원 리조트로 출발하려고 했다.어젯밤에 리조트로 돌아온 전이진 부부는 지금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다.여운초가 연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고 전이 진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가끔 여운초가 남편에게 물었다.“이진 씨, 이 드레스를 입으면 어때?”“좋은데. 당신은 어떤 옷을 입어도 너무 예쁘고 너무 어울려.”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는 일어나서 여운초의 등 뒤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여보,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우리 엄마와 함께 있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거야.”“처음으로 당신 아내의 신분으로 어머님을 따라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