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직 네가 보낸 문자를 못 본 것일 수도 있잖아. 다시 보내 보는 게 어때?"하예정은 잠시 침묵하다 끝내 휴대폰을 들어 카톡을 열어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점심에 같이 식사할래요?"하지만 문자를 보내자 카톡창에는 두 사람이 친구가 아니라는 문구와 함께 그녀의 문자를 전송하려면 친구 추가를 해야 한다는 문구가 떠올랐다.하예정은 그 문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친구가 아니라고?이 속 좁은 전태윤은 무려 또 그녀를 친구 목록에서 삭제를 했다.이번이 두 번째였다!첫 번째는 두 사람이 혼인 신고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신부를 뒷전으로 홀라당 까먹은 뒤 그녀를 삭제한 건, 하예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또 그녀를 삭제했다는 건 그녀가 그에게 미안할 짓을 저질렀다고 확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벌써 갈아탈 사람을 구했다고 쐐기를 박았으니 친구 목록에서 그녀를 삭제한 것이었다.원래 하예정은 먼저 숙이고 들어가 뭐가 됐든 얼굴을 보고 제대로 소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마주하니 그만 화가 치밀었다.그녀도 아직 그를 차단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전태윤이 먼저 그녀를 삭제한 것이다.삭제를 하면 했지, 누가 뭐 겁나?하예정도 화가 치밀어 곧바로 전태윤을 친구 목록에서 삭제했다.그런 뒤 아예 전화번호까지 죄다 차단했다.속에서 열불이 다 치밀었다."예정아,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혹시 태윤 씨가 답장했어?"하예정은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먹을 것만 준비하면 돼. 먹든 말든, 그 사람 알아 하겠지.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심효진이 하예정을 쳐다보자 하예정은 씩씩대며 설명했다."그 사람 나 친구 삭제했어. 나도 홧김에 삭제했고, 아예 전화번호까지 다 차단해 버렸어. 앞으로 내 앞에서 그 사람 이름 꺼내지도 마. 효진아, 넌 제대로 된 남자 만나서 몇 년 연애를 한 뒤에 결혼해. 나처럼 초고속으로 결혼해서
하지만 하예정은 평소 돈을 쓸 때면 이것저것 세세히 따져서 썼다. 큰 가구를 살 때를 제외하면 매일 생활비로 쓰는 지출은 5만 원이 넘지 않았다.이내 전태윤은 추측을 포기했다.어차피 준 돈은 다 쓰라고 준 것이니 상관없었다.전태윤은 하예정에게 화가 나 친구 목록에서 삭제는 했지만, 그녀에게 쓸 돈은 빼고 싶지는 않았다.어찌 되었건 전태윤도 그녀와 계약 기한이 끝날 때까지는 먼저 계약 중단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계약을 위반하면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십몇 분 뒤.전태윤의 휴대폰에 또다시 결제 문자가 도착했다.이번에는 총 4백 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물론, 이 정도 돈은 전씨 가문 도련님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별것 아니었다.그는 그저 이 여자가 갑자기 이렇게 많은 돈으로 금이라도 산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아니면, 자신이 친구 삭제한 것을 알고는 화가 나서, 일부러 그의 돈으로 마구 물건을 사는 걸까?정말이지, 전태윤은 참 수수께끼를 잘 맞췄다. 그의 예상이 맞았다.퇴근 시간까지 아직 십분 남아있었고, 회의도 막바지에 다다라, 전태윤은 아예 회의를 해산했다.평소에는 회의가 끝나면 전태윤이 가장 먼저 회의실을 나섰고 각 임원들은 그제야 밖으로 나갔지만 오늘 전태윤은 제자리에 앉은 채 휴대폰만 볼 뿐, 먼저 회의실을 나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사람들은 서로 눈길만 주고받은 채 누구 하나 먼저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한참이 지나서야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전태윤은 고개를 들어 물었다."다들 퇴근할 생각이 없나 봅니다?"다들 퇴근이야 하고 싶었지만 섣불리 먼저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을 뿐이었다.결국 전혁진이 먼저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인 전혁진이 먼저 선두로 나서자 임원들은 믿을 구석이라도 생긴 듯 얼른 하나둘씩 회의실을 빠져나갔다.소정남은 따라가지 않았다.그는 전태윤의 비서실장으로 매번 회의 때면 전태윤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전태윤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을지 몰라도
"아니, 대표님. 설령 예정 씨가 다른 남자랑 밥을 먹으면서 음식을 집어주는 걸 직접 봤다고 해도 그 남자가 도대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야. 혹시라도 친척이면 어떡해?'전태윤은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김진우야."소정남은 본능적으로 물었다."김진우가 누군데? 아, 맞다. 김씨 그룹 김 대표의 아들이지. 지금은 김씨 그룹에서 후계자 수업받고 있고. 그… 일단 잠깐만 분석 좀 해볼게. 김진우의 친모는 성이 심 씨고, 부인분의 친구도 성이 심씨 잖아."전태윤이 곧장 대답했다."김진우는 심효진의 사촌 동생이야.""그래그래, 그 두 사람 사촌 남매사이지. 부인분은 심효진 씨랑 절친한 친구 사이니까 김진우와는 진작부터 알던 사이겠지. 게다가 김진우보다 나이도 몇 살 많으니까 어쩌면 김진우를 동생으로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하지만 두 사람은 피가 조금도 섞이지 않았잖아. 동생으로 여긴다고 해도 동생이 될 수는 없어!"소정남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랬다, 설령 입으로는 친동생처럼 여긴다고 해도 혈연관계가 없으면 뭐가 됐든 친동생은 될 수 없었다.잠시 침묵하다 전태윤은 한 마디 덧붙였다."김진우는 하예정을 좋아하고 있어."소정남이 곧장 물었다."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난 남자야, 남자의 직감이 나에게 김진우는 하예정을 좋아하고 있다고 알려줬어. 그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소정남은 그의 상사의 직감을 믿었다."부인분은 알아?"이번에는 전태윤이 할 말을 잃었다.하예정은 김진우가 그녀를 좋아하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김진우에게 잘해주는 건 순전히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시간이 비교적 길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김진우가 커가는 걸 직접 본 데다 김진우는 심효진의 사촌 동생이기까지 했다.그렇게 얽혀 있으니 하예정은 김진우에게 어쩌면 정말로 이성의 감정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정말로 김진우를 동생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주말에 부인분과 김진우가 식사를 할 때, 딱 두 사람만 있었어?"전태
설마 정말로 소정남의 말처럼, 질투를 하고 있는 걸까?그럴 리가?검의 회전의자에 앉은 전태윤은 다시 한번 휴대폰을 꺼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예정의 문자에 답장을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카톡을 연 그는 문득 자신이 이미 하예정을 삭제했다는 것이 떠올랐다.다행히 그는 아직 하예정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잠시 망설이던 그는 용기를 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잠시 후 다시 걸어주세요…""…"전태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휴대폰 전원을 끈 건가?아니면 자신을 차단했나?전태윤은 곧바로 유선전화로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연결이 됐고, 하예정이 받기 전에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하예정이 진짜로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자존심을 내려놓고 부부 사이에 화해를 하려던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차단을 당한 것을 알자 곧바로 원점으로 돌아왔다.그가 먼저 하예정을 삭제했고, 하예정은 곧바로 그를 차단했으니, 그래, 부부끼리 주고받으며 서로 비긴 셈이었다.그냥 이대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전태윤은 다시 하예정에게 연락을 하려고 시도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경호원에 둘러싸여 회사를 나온 그는 식사를 위해 관성 호텔로 향했다.카드를 긁어 화를 풀려던 그 사람은, 금은방에서 한바탕 물건을 사제끼며 몇백만 원을 쓴 뒤에 화를 풀었다.가게로 돌아오니 일자리를 구하던 하예진이 돌아와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오늘도 별다른 성과는 없어 보였다.하예정은 몇백만 원을 주고 산 물건을 감히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괜히 언니 눈에 띄었다간 뭐라고 할지도 몰랐다.심효진은 입이 가벼운 사람이 아니라, 하예정의 동의 없이 두 사람이 오해 때문에 냉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하예진에게 말하지는 않았다."난 네가 태윤 씨를 데리고 와서 같이 먹을 줄 알았어."하예진은 제부는 보이지 않고 동생만 아들을 데리고 차에서 내
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아있는 전태윤을 쳐다봤다. 전태윤의 차가운 얼굴을 본 기사는 얼른 고개를 돌려 운전에 집중했다. 최대한 속도를 조절하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작은 사모님의 차를 뒤따라갔다.강일구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번뜩 떠올라 고개를 돌려 전태윤에게 물었다."도련님, 저희 오늘은 어디로 갑니까?"도련님은 어제까지 로열팰리스로 향했는데 지금은 작은 사모님을 따라가는 걸 보면 발렌시아로 돌아가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전태윤은 잠시 침묵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로열팰리스로 가지. 하지만…"앞쪽에 있는 익숙한 차를 보며 전태윤은 입술만 달싹였다.그는 일단 조용히 하예정의 차가 발렌시아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별장으로 돌아가려는 심산이었다.눈치가 빠른 강일구는 도련님의 뜻을 단박에 알아채고는 기사에게 설명했다.하예정은 뒤쪽에서 차가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관성은 대도시로 깊은 밤이 되었다고 해도 적잖은 차가 주행하고 있어 그녀는 뒤쪽에 전태윤의 차도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비록 그 외제차를 본다고 해도 전태윤의 것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었다.한 교차로를 지나려고 할 때, 길옆에 서 있던 일곱 여덟의 청년들이 갑자기 우르를 뛰어나와 하예정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리고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을 때, 차가 아슬아슬하게 멈췄다.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린 하예정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똑똑."그중 한 청년이 그녀의 차 창문을 두드렸다.하예정은 자신이 사람을 친 줄 알고 얼른 차 창문을 내렸다. 그러나 두 눈에 보이는 것은 막내 사촌 동생의 얼굴이었다."너였어?"하예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죽고 싶은 거야? 그렇게 뛰쳐나왔을 때, 내가 제때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알기나 해? 죽고 싶은 거면 미안한데 좀 멀리 떨어져서 죽어. 괜히 내 타이어 더럽히지 말고."그녀의 막내 사촌 동생인 하지철은 이제 열 몇 살밖에 되지 않아 한창 반항하고 세상 무서운
그리고 깊은 밤이 되어 길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을 때, 하예정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가 그녀의 차를 막아선 것이다."얼마를 썼든 그건 나랑 아무 상관 없어. 예전에 당신네들이 돈으로 가족의 연을 끊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키우지 않겠다고 하면서 죽어도 우리가 챙길 필요가 없다고 했었거든. 그때 넌 아직 기억도 없을 때라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있겠지. 돌아가면 내가 올린 글들을 보든지 너희 부모님에게 물어봐.""하지만 너희 부모님은 아마 인정하지 않을 거야. 너희 가족들이 우리 부모님의 목숨으로 맞바꿔 온 보상금을 나눠 가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잘 지낼 수 있었을 것 같아?"하예정은 차가운 얼굴로 하지철의 말에 냉정하게 반박했다."난 몰라, 지금 당장 내려. 셋 셀 때까지 내리지 않으면 차 부숴버릴 거야."하지철은 머릿수를 믿고 오만방자하게 굴었다.그가 데려온 양아치들은 이미 하예정의 차를 단단히 에워싸고 있었다.그 뒤로 한 차가 천천히 따라붙었다.혈기 왕성한 하지철 일행은 요즘 같은 세대에 보통 사람들은 괜히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천천히 뒤로 따라붙은 차들은 안중에도 없었다.일찍이 하예정의 차가 하지철에게 가로막혔을 때부터 운전기사는 속도를 늦추었고 그와 강일구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쳐다봤다.전태윤은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운전기사는 하는 수 없이 속도를 더 늦추는 수밖에 없었다.'도련님은 작은 사모님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서서 구해주려는 걸까?'하예정은 사촌 동생이 데려온 사람 중에 몇몇이 야구 배트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들이 정말로 차를 부술 작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그녀는 차에서 전에 놔뒀던 우산을 챙긴 뒤, 손에 꽉 쥐고는 차문을 여고 내렸다.그리고 그녀가 차에서 내린 순간, 하지철은 일행의 손에서 야구 배트를 빼앗아 들어 그대로 하예정을 향해 휘둘렀다.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하예정은 우선 우선으로 그 야구 배트를 막았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다리를 들어 하지철의 아랫배
실책이었다. 제대로 된 곳을 골랐어야 했다.이곳은 교차로 신호등과 가까운 곳이라 곳곳이 CCTV였다.확실히 그들이 먼저 손을 댄 것이었고 하예정은 반격한 것에 불과했다.일곱 여덞명이나 되는 한 무리의 형제들을 데리고 와 하예정같이 나약한 여자를 하나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하지철은 하예정이 무술을 할 줄 알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왜 그에게 하예정이 무술을 할 줄 안다는 걸 이야기해 주지 않은 걸까?"어떡할래?"하지철은 자신의 귀를 빼내려고 했지만 하예정은 그럴수록 힘을 더 세게 주어, 하지철은 비명만 빽빽 질러대며 욕설을 퍼부었다."하예정, 이거 안 놔? 계속 이렇게 내 귀 잡아당겼다간 우리 엄마아빠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누나라고 해.""퉤, 네가 왜 내 누나야?""그래, 난 네 누나가 아니지. 나도 너 같은 사촌 동생은 필요 없어."하예정이 손에 힘을 주자 하지철은 더 크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철의 일행은 아까부터 하예정의 무술에 깜짝 놀란 데다 지금은 하예정에 전부 두들겨 맞은 터라, 하예정이 하지철의 귀를 잡아당기는 모습을 보자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다들 거기 가만히 있지 못해?!"하예정이 버럭 크게 외치자 그 양아치들은 더 꼼짝도 하지 못했다.하나같이 잔뜩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누님, 저희가 보는 눈이 없어서 실례를 범했어요. 누나, 잘못했어요. 저흰 다 하지철이 돈을 주고 데리고 온 사람들이에요. 이건 다 하지철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누님, 그러니까 저희는 제발 봐주세요."그 양아치들은 하나같이 하예정을 누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하지철은 어이가 없었다.자존심도 없는 자식들.하지철은 하예정에게 잡힌 귀가 너무 아팠다. 이 여자는 정말로 그의 귀를 이대로 뜯어내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갔다."하예정… 누나, 누나. 힘 좀 풀어. 누나라고 부르면 될 거 아니야?"하지철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하지철의 말에 손을 놓은 하예정은 그의 얼굴을 툭툭 두드리며
"그래, 맞아. 나 독하고 매정해. 그러는 너희는 의리가 그렇게 넘치니? 당시에 너희 부모가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전에는 몰랐다고 해도 지금도 모르겠니? 지나갔다고 내가 따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본대, 나한테 어떻게 대했었는지 난 다 기억하고 있어. 평생 기억할 거야!"하지철은 입술을 달싹이며 반박하려 했지만,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결국, 바닥에서 기어 일어난 그는 곧바로 도망치려 했다.곧바로 뒤쫓아간 하예정은 발로 그를 걷어차 바닥에 쓰러트린 뒤 거칠게 옷자락을 잡고 질질 끌고 왔다. 바닥에 엎어진 채 질질 끌려가던 하지철은 피부가 바닥에 쓸려 빼액 소리를 질러댔다.하지철을 그의 형제들 무리에 집어 던진 하예정이 경고하며 말했다."경고하는데 얌전히 여기서 경찰 아저씨가 너희들을 구해주러 오길 기다리는 게 좋을 거야. 감히 도망치는 녀석 있으면 가만 안 둘 줄 알아."하예정의 사나운 모습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도망치지 못했다.하지철은 끊임없이 하예정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하예정은 굳은 얼굴로 경고했다."한 마디만 더 욕지거리했다간 돼지머리가 될 정도로 부어서 제사상에 올라가는 수가 있어."그 말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하지철은 덜덜 떨며 감히 한마디도 더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조상을 있는 대로 죄다 욕했다.그녀의 조상은 자신의 조상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하지철은 망각하고 있었다.정말 불효막심한 후대들이었다.저승길로 간 조상들은 때아닌 안부 인사에 당장이라도 자신들의 안부를 묻는 후대를 데리고 갈 기세였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완전히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것을 지켜봤다. 그가 나서서 구해줄 기회도 없었다. 물론, 설령 하예정이 정말로 밀리고 있다고 해도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기껏 해 봐야 강일구를 제외한 경호원들에게 내려서 하예정 대신 손을 보라고 하는 수준에 그쳤다.그는 하예정이 킥복싱을 배운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싸움을 잘하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혹시라도 그녀가 다치기라도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
“윤하 씨, 이 꽃다발... 제 말은 윤하 씨가 이 꽃다발을 받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소지훈은 용기를 내어 정윤하에게 물었다.정윤하는 닭 날개를 다 먹고 또 오징어구이를 먹으며 대답했다.“무슨 생각이요?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누가 키운 꽃인지 정말 아름답고 좋네요. 저 보고 꽃을 키우라고 하면 이 꽃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정윤하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꽃다발을 받고 보니 장미꽃 떡이 생각났어요. 갑자기 꽃 떡을 떠올리니 너무 먹고 싶네요. 지금 바로 주문해서 먹어야겠어요.”정윤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인터넷으로 꽃 떡을 사려고 했다.“제가 사드릴게요. 지금 여행 중인 친구가 있는데 꽃 떡 좀 가져다 달라고 하면 돼요. 훨씬 맛있을 거예요.”정윤하가 말을 건넸다.“그들이 현장에서 만들어서 팔지 않는 한 산 것과 인터넷에서 사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을걸요. 현장에서 만든 것이 맛있다고 들어는 봤는데. 내년에 시간이 나면 저도 여행 가서 현장에서 구운 꽃 떡을 먹어봐야겠어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부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즉시 청주성으로 날아가서 꽃 떡을 만드는 것을 배워 정윤하에게 신선한 꽃 떡을 맛보게 하라고 지시했다. 단, 정윤하가 여행을 가지 않고도 신선한 꽃 떡을 먹을 수 있도록 반드시 청주성의 맛과 똑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적어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보다 맛있을 테니까.정윤하는 토픽 X 이라는 앱을 즐겨 사용하는 데 정말 싸다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에게 그 앱에서 물건을 사지 말라고 수없이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소지훈이 역시 부자답다고 말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일반인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결국 침묵을 선택했고 그녀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주었다.“정말 주문하셨어요?”정윤하는 소지훈이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소지훈이 대답했다.“네. 주문해드렸으니 받을 때까지 기다리시면 돼요.”그는 먼저 정윤하에게 인터넷으로
모두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소 대표님한테 매수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소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윤하에게 잘 어울려요.”코치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도 우리 윤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주로 만나본 젊은 남자들이 우리 말고는 좋은 남자가 없어서 그래요. 게다가 사장님과 사모님도 얼마나 걱정하세요. 만약 소 대표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도 반대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소 대표님과 윤하가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 윤하가 왠지 소 대표님께 남녀 간의 정이 없다고 느껴져요. 윤하가 우리를 대한 것처럼 똑같이 소 대표님을 대하는 것 같아요.”정혁주는 코치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도장에는 여성 후배들도 많지만 유독 정윤하가 정혁주를 무척 걱정시켰다.정윤하는 습관적으로 남자들과 형제 사이로 지냈기에 그들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그들도 정윤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상대방이 무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개를 받을 남자들은 정윤하의 “명성”을 듣더니 심지어 몰래 도장에 가서 정윤하를 지켜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막강한 실력을 보더니 정윤하를 다스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결국 투항하게 되었고 다른 맞선남들과 마찬가지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이로 하여 뒷부분의 맥락은 그대로 뚝 끊기게 되었다.정혁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너희도 사실 소 대표님의 재력에 넘어간 거야. 나조차도 좋게 느껴지는데 너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소 대표님의 재력이 정말 좋은 건 사실이야. 우리도 자기도 모르게 속아 넘어간 거지. 그런데 소 대표님은 꽤 좋은 사람이긴 해. 우리 윤하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너희들도 장난치고 있는 걸 알기에 나도 너희들 탓하지 않아. 우리 전부 윤하를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 내가 소 대표님을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그분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너희들의 말처럼 윤하 계집
“들어가요. 밖이 너무 추워요.”정윤하는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는 소지훈을 도장으로 가자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를 따라갔다.도장의 사람들은 정윤하가 꽃다발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두 사람이 썸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 꼬맹이들조차 정윤하가 안고 있는 그 꽃다발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정윤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코치님, 이 꽃다발이 정말 아름다워요.”“코치님, 바비큐 드실래요? 우리 거의 다 먹었어요.”“코치님, 지훈 아저씨가 선물한 꽃이죠? 왜 코치님께 꽃을 주세요?”정윤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많이 먹어. 다 먹어도 돼. 지훈 아저씨가 나에게 따로 준비해 줬거든. 너희 지훈 아저씨가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에 있는 꽃이 너무 예뻐서 나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선물해줬어. 어때? 예쁘지? 나도 이 꽃다발이 너무 예뻐서 좋아.”학생들은 꽃다발이 예쁘다고 연신 칭찬했다.정윤하의 사제들은 헤벌쭉한 정윤하를 보고는 또 여우처럼 웃고 있는 소지훈을 보더니 결국 모두 정혁주를 일제히 쳐다보았다.정혁주는 정윤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평소에 앉던 테이블에 앞에 앉아 바비큐를 먹으며 보이차도 곁들여 마셨다.“선배님.”몇몇 코치들이 정혁주에게 다가가더니 그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궁금한 듯 물었다.“소 대표님이 우리 윤하에게 고백한 거예요? 그런데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정윤하의 표정을 보면 고백받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소 대표님이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의 꽃이 예쁜 것을 보고 윤하에게 선물했다고 하던데, 이런 어설픈 이유도 윤하가 믿다니, 참! 저렇게 멍청한 꼴을 보니 사람들에게 팔려가도 돈을 세어줄 기세인데.”“윤하가 종일 우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남자답고 털털해서 그래요. 소 대표님만큼 신중하지 못하잖아요. 소 대표님이 윤하에게 직접 고백하지 않는 한 윤하는 분명 별생각 하지 않을걸요.”“어휴, 윤하가 소개팅마다 실패하고 시집을 못 가는 데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정혁주는 아예 보이차 한 병씩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보이차를 나누어 주면서 소지훈은 학생들이 정윤하 앞에서 좋은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매번 큰돈을 퍼부었다.소지훈은 도장으로 올 때마다 도장의 사람들에게 맛 나는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또 각자의 몫도 전부 챙겨주었으며 심지어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사 올 때도 있었다.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도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정윤하의 말대로 그녀의 수입으로 전체 도장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사주면 몇 번이나 사줄 수 있겠는가!정혁주는 도장의 여러 코치 중에서 수입이 가장 높지만, 소지훈처럼 돈이 많지 않았다.역시 대기업 대표답다!정혁주가 보이차를 나누어 줄 때 밖에 서 있는 두 바보를 유의하여 보며 마음속으로 소지훈은 아마 정윤하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연성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서 왔을 것이다.소지훈은 지금 출장 중이지만 저녁에 약속도 없이 도장으로 온 것을 보면 아마 출장할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정씨 저택에 남아서 설을 쇠려고 하는 모양인데...정윤하를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소지훈은 정윤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작은 도움을 받았지만, 소지훈은 기어코 그녀가 자신의 은인이라고 외치며 다녔다.정혁주는 정윤하가 오지랖이 넓고 너무 빨리 움직여 소지훈을 도와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지훈의 실력으로 그날 밤 그 건달들 정도는 아주 쉽게 때려눕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소지훈의 상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게 정윤하는 소지훈의 생명의 은인으로 되었다.그리고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연애사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본 소지훈은 천 리 길을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정씨 가문은 관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성 전씨 가문의 명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몇 번만 뒤져봐도 관성 전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실 시간은 아직 이르다. 다만 겨울에는 낮이 짧고 밤이 길어서 빨리 어두워질 뿐이다.정윤하의 수업도 마침 끝났다.“지훈 아저씨 오셨어.”한 학생이 소지훈의 차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밖으로 나오지 마. 바람이 많이 불어.”소지훈은 웃으면서 소리쳤지만, 학생들은 모두 뛰쳐나갔다.소지훈은 이내 사 온 간식 몇 봉지를 큰 학생들에게 건네고 포장된 바비큐는 조금 작은 학생들에게 건네주어 도장 안으로 들여보냈다.정윤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면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소지훈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아저씨가 오시기 전에는 제가 도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이제 아저씨가 가장 인기가 많네요.”정혁주도 따라 나와 정윤하의 말을 이었다.“너무 인색한 거 아니야? 소 대표님처럼 시원스럽게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다들 다시 널 좋아하게 될걸.”“내가 인색한 게 아니라 월급이 쥐꼬리밖에 안 되는데 음식을 몇 번 정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는 회사의 대표잖아. 난 절대로 이 방면에서 아저씨와 다투지 않을 거야. 이런 일들은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 음? 눈이 오는 것 같아.”정혁주도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눈이 오는 것 같긴 하네. 근데 뭐가 이상해? 겨울이 되면 눈이 자주 올 텐데, 정상이잖아.”“형님, 얼른 오세요. 보이차 몇 상자 드릴게요. 바비큐를 사 왔는데 혹시라도 학생들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될까 봐 몇 상자 사 왔어요.”소지훈은 보이차 상자를 들면서 정혁주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정혁주는 차를 향해 다가갔고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소지훈이 그들 정씨 가문의 저택에 오래 머문 덕분으로 정씨 집안 가족들이 소지훈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를 잘 알게 되었다.소지훈은 냉혹한 면과 부드러운 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냉혹한 면을 정씨 가문의 가족들 앞에서 보여준 적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그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