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하고 건강 제품 조금 샀어요. 우빈 아빠 몸보신해 줘요.”하예진은 직접 전남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우빈이 아빠라고 불렀다. 주형인을 보러 온 건 우빈이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이 관계가 없으면 하예진은 절대 주형인의 병실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주형인의 부모님도 하예진이 손자 때문에 병문안을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이혼할 때 손자의 양육권을 하예진에게 양도한 것이 정확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우빈이가 줄곧 엄마와 이모와 살고 있었고 양육권을 하예진에게 양도함으로 우빈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더욱이 전보다 더 좋은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주요하게는 하예진이 현재 살고 있는 집에는 싸움과 모순이 없어 우빈의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될 일도 없었다.“서인 언니.”주서인도 병실에 있는 것을 보고 하예진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이혼 뒤 하예진과 시부모님 및 시누이와의 관계가 오히려 정중해진 느낌이다. “서인 언니 몸은 괜찮아졌어요?”하예진이 물었다.“나는 괜찮아졌어. 퇴원 수속도 마쳤고. 형인이가 깼다고 하기에 형부와 함께 부랴부랴 달려온 거야. 감사하게도 형인이 드디어 깨어났어.”주서인이 감격하면서 하예진에게 자리를 권했다.하예진이 병상에 누워있는 주형인을 힐끗 쳐다보니 주서인이 말했다.“형인이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아직 정신이 맑지는 못해. 혼수상태일 때가 많고. 의사가 며칠 지나면 조금 나아질 거라고 했어.”“죽다 살아난 거잖아. 깨어난 것만으로도 기적이야.”주서인이 말하고 나서 다시 하예진에게 물었다.“우빈이는?”“우빈이 어린이집 갔어. 오후 4시 되면 데리러 가야 해요.”주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오늘 개학하는 날이지. 우빈이가 이젠 어린이집도 가게 되고 시간 참 빨리 간다.”남동생이 하예진과 이혼할 때만 해도 우빈이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였다.이젠 우빈이가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한다.“우빈이 적응 잘하고 있어?”주 씨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물
이때 주경진도 따라서 말했다.“예진아, 돈은 남겨서 우빈이 키우는 데 보태. 그걸로도 우리는 고맙게 생각한다.”아들의 명성이 깨졌으니 재혼은 어려울 것이고 서현주와의 결혼도 이제 끝이다.주씨 가문에 손자는 우빈이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주형인의 부모에게는 이 손자가 그 누구보다도 애틋하였다.손자의 행복이 그들에게는 둘도 없는 위안이었다.“가게 매출이 지금 좋아지고 있어 사는 데 지장 없어요. 많지 않으니 이걸로 맛있는 거라고 사서 드세요. 가게에 일이 많아 저는 먼저 돌아갈게요. 주말에 제가 우빈이와 함께 우빈이 아빠 보러 올게요.”하예진은 돈을 억지로 다시 김은희 손에 쥐여주었다.50만이 사실 많지 않은 돈이었다. 김은희가 하는 수 없이 돈을 받아 넣더니 하예진이 사 온 과일바구니를 들고 나와 우빈이 줘라고 하는 것을 하예진이 거절했다. 두 사람이 다시 한바탕 밀고 당기기를 하다 결국 김은희가 다시 병실로 들고 들어갔다.주서인이 봉투를 열어 하예진이 사온 건강 제품을 보면서 말했다.“전부 혈기에 좋은 영양제품이네요. 예진이가 신경 써서 사 왔나 봐요. 우리 가족이 전에는 예진이한테 살갑게 못 했는데 우빈이 봐서 예진이가 병문안을 왔나봐요. 참 고맙네요.”그러면서 다른 봉투를 열어보더니 김은희에게 말했다.“엄마, 저도 다쳐서 입원했다가 방금 퇴원했잖아요. 예진이가 두 개씩 사 왔으니 제가 한 통 가져갈게요.”“예진이 무슨 과일 사 왔어요?”주서인이 엄마 손에서 과일바구니를 받아 열어보니 포도였다. 한 알 따서 먹어보니 싱싱하고 달면서 씨가 없어 껍질 바를 필요도 없었다.“엄마, 형인이 아직 이런 거 못 먹어요. 그리고 과일을 오래 두면 맛없고 요즘 날씨도 더워서 바로 상해요.”“엄마가 조금 가져가고 나머지는 우리 집에 있는 3마리 돼지한테 먹일게요.”하예진이 통 크게 사 온 포도는 제법 비싼 품종이었다. 예전에 산 적 있는데 한 송이에 몇만 원씩 하였다.집에서 사 먹을때는 돈이 아까워서 한 송이밖에 못 샀는데 하예진은 한 바구니
주서인은 성격이 유별났지만 다른 사람의 선의도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녀가 말했다.“게다가 예진이가 왜 돈을 많이 벌려고 하겠어? 다 우리 조카를 위한 거잖아. 우빈의 성씨가 주 씨잖아. 영원히 우리 주씨 집안의 사람인데 제가 왜 망쳐 놓으려고 하겠어?”“예진의 사업이 점점 더 커지기를 기대해도 모자랄 판에. 앞으로 우리 우빈이가 가 사업을 이어받게 되면 마다하지 않고 우리 아들에게도 일자리를 마련해 줄 걸.”주경진 부부는 딸을 째려보았다.부모님의 눈치를 보던 주서인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냥 해본 소리야. 앞으로 일을 누가 알아. 어쩌면 우리 임씨 가문의 사업도 점점 더 좋아질지도 모르잖아. 앞으로 우리 아들도 재벌 2세가 될 수 있을걸.”주서인은 일어나서 과일 주머니에서 포도 한 송이를 꺼내 탁자 위에 놓고는 남은 포도 한 상자와 영양제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부모님께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저도 이제 막 나아지는 중이라 먼저 돌아가 볼게. 형인이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저한테 전화해 줘.”“형인에게 보신탕 끓여올게. 몸 좀 돌봐주어야 하니까.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큰 재난 뒤에는 행복이 온다고 하잖아. 몸이 회복되면 그 독한 여자랑 이혼하고 예진이랑 재혼할 수도 있는걸.”“예진이는 지금 부자잖아. 우리 형인이 예진이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다면 우리가 반드시 예진이를 조상처럼 모시면서 그들 혼인 생활을 잘 지지해야 해.”“노동명 씨도 불구가 된 이 상황으로 보면 하예진이 동명 씨에게 시집가지 않을 수도 있어.”주서인은 여전히 대낮에 꿈을 꾸고 있었다. 주형인 하예진과 재혼해서 자신도 그 복을 누리겠다는 뜻이었다.“빨리 나가!”주경진은 병실 입구를 가리키며 딸에게 빨리 꺼지라고 했다.주서인은 그제야 남편과 함께 병실을 떠났다.“쟤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저러고 있어. 아직도 남에게 얹혀서 먹고 살 생각만 해.”주경진은 딸을 욕했다.김은희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저희가 서인을 저렇
하예진은 입원 부를 나올 때 노동명을 보았다.하예진은 멈춰 섰고 노동명과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곧 상대방에게로 걸어갔다.“동명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재활을 마치고 기분 전환하러 나왔다가 당신 새 가게에 가려고 했는데 당신이 마침 차를 몰고 떠나길래 뒤로 따라왔어.”노동명은 솔직히 대답했다.노동명은 하예진이 병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하예진이 전남편 병문안하러 가는 중일 것으로 생각했다.하예진이 주형인과 재결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노동명은 두려워하며 여전히 주형인을 경계했다.하예진이 병원으로 올 때면 그녀의 따라오거나 집에서 걱정하면서 짜증을 냈다.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노동명은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 지금처럼 성격이 매우 변덕스러웠다.노씨 가문의 사람들도 모두 노동명을 조심했고 심지어 그를 매우 아껴주었다. 노동명의 기뻐하기만 한다면 좋을 대로 내버려 두었다.“우빈이 아빠 보러 갔어?”노동명이 물었다.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주머니께서 주형인 씨가 깨어났다고 전화했거든요. 주형인 씨가 깨어나서 ICU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길래 제가 과일과 영양제를 사 들고 병문안하러 왔거든요.”노동명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그래. 우빈이가 유치원에서 나오면 아빠 보이러 갈 거지?”“주말에 데려올 거예요.”하예진은 노동명의 뒤로 갔고 경호원은 말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예진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밀고 나갔다.“깨어났다니, 다행이야.”노동명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어쨌든 우빈의 친아빠니까.”하예진이 대답했다.“네. 동명 씨, 아직 밥 안 드셨죠? 제가 밥 살게요.”“그래. 안 그래도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당신이 밥 사주기를 기다리던 참이야.”하예진이 말을 이었다.“자꾸 이러시면 안 돼요. 배가 고프면 뭐라도 드셔야 해요. 위가 상하지 않게 하루 세끼를 잘 챙겨서 드셔야죠.”“알았어.”“오늘 재활 치료는 어땠어요?”노동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하예진이 위로했다.“서
하예진이 낳은 들이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돌보고 친자식처럼 아껴주었다.비록 하예진은 주형인과 이혼했지만 우빈이를 많은 사람이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환경이라면 우빈이는 분명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오후 4시에 데려올 수 있어요. 아마 3시 반쯤 유치원으로 가면 될 것 같아요. 동명 씨, 오후 시간 되시면 우리 함께 우빈이 데리러 가요. 우빈이가 당신이 데리러 온 걸 보면 기뻐할 거예요.”노동명이 말을 이었다.“난 오전에만 재활 치료하거든. 오후와 저녁에는 할 일도 없어. 집에 앉아 있어도 심심해. 나와서 바람도 쐬면 기분도 좋고.”밖으로 나가면 많은 사람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고 있지만 습관이 된 노동명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이미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지인을 만나도 예전처럼 인사를 나누곤 했다. 더 이상 사람들의 동정이 깃든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노동명은 몸이 불구였지 머리가 불구인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사업을 잘할 수 있었다.노동명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회사로 다시 출근하기로 했다.재활 치료하여 회복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노동명은 노씨 그룹에 수년간의 심혈을 기울여 오늘의 성적을 낸 것이기 때문에 회사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었다.노동명은 노씨 그룹으로 아내를 맞이할 돈을 벌어야 했다. 다리가 나으면 하예진에게 청혼할 계획이었다.한 번 청혼하여 거절당하면 두 번, 세 번 청혼하여 될 때까지 할 셈이었다.두 사람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경호원도 말없이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자나가던 사람이 노동명 일행을 본다면 아마 두 사람이 부부인 줄로 알 것이다.주서인이 입원 병동을 나와서 걷고 있는데 노동명을 밀고 가는 하예진을 보더니 이내 멈춰서 남편을 잡아당기며 물었다.“여보, 저 여자가 예진이 아니에요? 뒷모습이 비슷해 보여요.”“밀고 있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이 노 대표 맞죠? 노 대표랑 사귀는 거 아니에요?”그러자 임수찬이 그 모습을 보면서 대답했다.“예
“가끔 보면 당신 누구 편인지도 모르겠다니까. 우리 주씨 집안이 복이 없다면 당신 임씨 집안도 손실이 크잖아요. 형인이와 예진이가 재혼하면 당신도 이득을 보게 되잖아요.”주서인도 남편에게 뭐라고 한마디 했다.“예정이 남편한테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도 예진이 새 가게에서도 일손이 부족할 텐데 그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잖아요.”“두 사람이 과거처럼 사이가 좋아지면 내가 시누이 신분으로 새 가게를 돌봐주어 하고요. 외부 사람이 도와주는 것보다 낫잖아요?”임수찬도 이익을 얻고 싶었지만 그는 주서인의 생각이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임수찬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림의 떡이야.”말을 마친 임수찬은 아내가 또 꼬집는 것을 피하고자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주서인은 결국 남편의 뒤를 쫓아가 남편을 몇 대 때렸다.주서인 부부는 하예진의 뒤를 계속 따라다니며 하예진과 노동명이 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노동명은 하예진의 차에 몸을 실었고 노동명의 차는 그의 경호원이 몰고 하예진의 차 뒤로 따라 떠났다.“빨리 가요. 우리도 같이 따라가요.”주서인은 또 하예진을 미행하려고 했지만 남편은 따라가기 싫어하면서 입을 열었다.“나 가게로 돌아가야 해. 너 따라가고 싶으면 혼자 따라가. 난 시간 없어. 게다가 예진 씨 뒤를 따라가서 뭐 할 건데?”“예진 씨에게 발견된다면 당신을 더 미워할 뿐이야. 병원으로 처남을 보러 왔다고 해서 처남에게 정이 남아서 찾아왔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우빈이를 위해 보러 온 것뿐일걸.우빈이 아니었다면 예진 씨가 처남이 사고 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안 올걸. 경사 났다고 파티라도 벌였을걸.”처남이 오늘 이런 꼴을 당한 것은 정말이지 필연적인 결과였다.처남이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의사선생님은 처남 부상이 너무 심해서 회복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몸이 다 회복되었다고 해도 앞으로 힘든 일을 하거나 과로하게 일하면 안 된다고 했다.이것이 바로 가정을 배반
그 현수막들은 하루 호텔 앞에 걸려져 있었고 고현이 찾아간다 해도 전호영의 동의 없이는 하루 호텔의 사람들이 현수막을 떼어내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고현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였다.오전 내내 전호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본 고현은 조용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이런 써프라이즈를 준비할 줄은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이따가 고현이 강성의 실시간 검색에 오를 것이 뻔했다.고현은 매체 같은 자원을 이용해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현과 전호영은 신분 때문에 꿈쩍만 해도 실시간 검색에 오르기 일쑤였다.네티즌들은 두 사람의 진도에 대해 자주 물었다.“전씨 셋째 도련님은 고씨 큰 도련님과 사귀었나요?”“두 사람이 정말 함께 한다면 세속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지 않을까요?”“두 분 모두 너무 멋있고 부자인데 정말 아쉬워요. 아마 수많은 여자들이 울걸요.”고현은 호텔로 들어갔다.경호원 팀도 고현의 뒤를 따르며 그녀에게 접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막았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행동에도 경호원들도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고현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진 찍는 것에 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고현은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돌려 다시 걸어갔다.맞은편 하루 호텔로 향한 것이다.하루 호텔로 도착한 고현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전호영이 또 하루 호텔 문 앞 한복판에 커다란 꽃바다를 만들어 놓았고 그 수많은 꽃으로 또 글씨를 새겼기 때문이다.“고현 씨, 당신을 사랑해요.”전호영이 진심일지는 모르지만 그는 사람을 시켜 꽃으로 글씨를 만들었다.아직 사랑이 아닐 수도 있지만 관심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관심 있다는 뜻은 사랑과의 거리도 멀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전호영은 결국 할머니가 파놓은 큰 구덩이에 빨려들고 말았다.고현은 커다란 꽃바다를 보더니 굳은 얼굴로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이 꽃들을 다 부숴버리세요.”“고현 씨, 그만 하세요.”전호영이 호텔에서 걸어 나왔다.하얀 양복 차림을 한
“고현 씨, 감동하신 거예요? 이 현수막 내용은 모두 제 진심이에요.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어요.”전호영은 그윽한 눈빛으로 고현을 바라보았다.고현은 몸을 돌려 몇 걸음 걸어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전호영에게 말을 건넸다.“저 현수막들을 빨리 떼어내세요!”“왜 떼요? 그건 고현 씨에 대한 제 사랑인걸요. 제가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에요. 당신이 못 믿길래 제가 여기에 걸어 놓았어요. 날마다 이 현수막들을 게 된다면 마음에 들 수도 있잖아요.”고현은 오랫동안 전호영을 노려보다가 다시 뒤돌아서 걸어갔다.고현은 전호영에 대해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너무 염치없는 녀석이다!전씨 가문은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사람을 키울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고현 씨!”전호영은 바로 고현의 뒤로 쫓아왔고 그녀를 잡아당겼다.고씨 가문의 경호원은 말리려고 했지만 감히 말릴 수가 없었다.경호원 팀은 전호영과 겨뤄보았기 때문에 전호영의 막강한 실력을 알고 있었다.정말로 막으려 해도 막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게다가 경호원 팀은 고 대표가 전호영을 매우 귀찮아했지만 또 전호영에게 진지하게 따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진호 부부도 전호영을 매우 좋아하고 있었다.고현은 힘껏 전호영의 손을 뿌리치고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전 대표, 그만 하세요!”“이 말 외에 다른 하실 말 없으세요?”전호영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고현 씨도 우리와 같은 남자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같은 남자끼리 서로 손 맞잡는 게 뭐가 대수라고 이렇게 민감하게 굴어요? ”“기왕 왔으니 남아서 식사하고 가세요. 제가 살게요.”고현이 차갑게 거절했다.“필요 없어요!”“저 혼자 밥 잘 못 먹는데 우리 함께 식사해요. 제가 고현 씨 좋아하는 음식으로 해드릴게요.”말을 마친 전호영은 다시 고현을 잡아당겼고 고현 역시 그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금세 전호영의 힘센 손에 의해 다시 이끌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고현은 전호영에게 이끌려 가면서 낮고 힘 있는 목소리
“우리 가게에는 유아용 교재가 없어서요. 다른 문구 방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정의 서점은 중학교 앞에 위치해 주 고객층이 중학생이었고 유치원용 책은 들여놓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그럼 잠시 후 다른 문구 방에 가봐야겠어요.”젊은 여자는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들고 나가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예정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아마도 전태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을 때 스치듯 본 적이 있을지 몰랐지만 깊이 알지는 못해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잠시 후 태윤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떤 가문일까? 장남은 결혼했고 작은아들은 중학생이고 막내딸은 유치원이라니...’젊은 여자는 스물한두 살쯤으로 보였고 남편도 젊을 가능성이 컸다. 하예정은 임신 전 상류층 모임에 자주 참석했지만 어느 집안 자제가 그렇게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아는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그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방금 본 여자가 속한 가문은 아직 명문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의 차는 근처에 주차된 흰색 BMW7 시리즈였다. 차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남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경호원과 운전기사인 듯했다.“출발하죠.”여자는 차에 올라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차가 멀리 떠난 후, 그녀는 가게 쪽을 돌아보았다. 하예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못할 거리라고 판단한 순간, 여자는 얼굴을 만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 젊은 여자는 바로 여씨 가문의 둘째 딸, 여운별이었다. 그녀는 현재 용태호의 스폰녀로 지내고 있었지만 사교계에서는 용씨 가문 사모님을 사칭하며 활동 중이었다. 이는 용태호가 모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였다.여운별은 용태호가 준 인피가면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임무는 하예정에게 접근해 친구가 된 후 용정이라는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엄마, 윤하가 아직 소 대표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은 거 맞죠? 제가 대신 받아주고 싶네요. 소씨네 식구들 성격이 다들 시원시원해서 우리 윤하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윤하도 덜렁덜렁 거리는게 저 집안과 바이브가 맞아요.”윤하 어머니는 혁진에게 말했다. “네 동생 일생의 큰 일이야. 우리가 잘 체크해주고 나머지는 윤하한테 맡겨야지. 지훈한테 시집가는 사람도 윤하도 한평생 같이 살 사람도 윤하 자신이니까 걔가 좋아야 되지. 그리고 윤하 다음은 너랑 혁주야. 너희 둘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엄마, 저 쌀 씻으러 갈게요.” 윤하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혼 잔소리를 했고 혁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런 혁진을 보고 어머니는 몇 마디 나무랐다.연성의 겨울은 눈 내린 광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관성은 아직도 최고 기온이 25도나 되는 여름이어서 길거리에는 반팔티를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하예정은 서점에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관성 호텔에 가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예품을 만들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도 전에 그녀를 도왔던 아기엄마한테 양도했다.지금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고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조금 바빠질 뿐, 다른 시간에는 아주 한가해서 옆 가게 탐방도 자주 하곤 했다. 비록 경호원들이 뒤따르지는 않지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심효진은 소설을 좋아해서 그녀가 서점을 지키고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앉아 소설을 읽곤 했다.하예정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고전 작품 한 권을 골라 읽었지만 자꾸만 하품이 나와 결국 읽기를 포기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지나 책장 앞에 다가가 먼지털이로 책우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사실 먼지가 별로 없었지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했다.그때, 밖으로부터 또깍또깍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처음 보는 젊은 부인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에르메스 백을 들고 있었고
혁진은 거실에서 지훈이 부모님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지훈이 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호탕한 분이셨다. 혁진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다.지훈이 마침 아침밥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기세였다.지훈이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몇 번이나 눈치를 주었다.이 양반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까먹은 거 아니야?여기는 윤하네 집, 예비 사돈댁이라고. 혁진은 예비 며느리 친오빠고, 두 사람이 형제를 맺으면 나중에 아들더러 어떻게 처신하라는 거야. 아주 그냥 엉망진창이네.“아버지, 어머니, 윤하 씨 어머님께서 아침을 준비해 주셨어요. 따뜻할 때 드세요. 저희는 이미 먹었어요.”지훈은 부모님을 주방으로 불렀다. “점심은 여기서 먹어요. 조금 있다가 윤하 씨랑 제가 장 봐 올게요.”지훈이 어머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 나도 나가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싶어. 지훈이 아버지, 당신도 같이 가요. 짐도 들어줄 겸.”남편의 의견을 물어보는 듯했지만 사실상 답정너였다. 집에 두고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장 보고 돌아올 땐 이미 혁진이랑 형제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그래요.”지훈이 아버지는 흔쾌히 대답했다.윤하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며 민망한 듯 말했다. “두 분께서 오시는 줄을 몰라서 제대로 준비 못 했어요. 점심에는 뭘 드시고 싶으세요? 말만 하세요,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가족이라 생각하고 편히 말씀하세요. 내외할 것 없어요.”지훈이 어머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저희 안 그래요. 이제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요. 저희는 뭐든 잘 먹어요. 아무거나 다 돼요.”“사돈, 윤하는 정말 훌륭한 아가씨예요. 저희 지훈이랑은 비교가 안 돼요. 지훈이 때문에 저희 두 사람 속 많이 태웠어요.”지훈이 어머니는 실수도 사돈이라고 불렀지만 윤하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과찬이세요. 저희 윤하도 속 썩일 때가 많았어요. 지훈이야말로 성숙하고 성격도 온화하고 너그럽고 유망한 청년이죠. 저희 윤하보다 훨씬 나은 걸
원래부터 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던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특별한 사정을 알고 나서 더욱 자신의 사윗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윤하와 결혼을 하게 되면 지훈은 그녀를 더욱 소중히 아낄 것이 분명했기에 윤하 어머니는 딸이 멀리 관성에 시집가서 마음고생할 거라는 걱정이 사라졌다.윤하와 어머니는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지훈이 부모님을 대접할 아침을 준비했다.지훈도 주방으로 들어와 일손을 도왔다.“지훈 씨, 안 도와줘도 돼요. 가서 부모님이랑 얘기 나눠요.”윤하는 지훈을 밀어냈다.“부모님이 저더러 도와주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저를 또 저쪽으로 보내시면 어떻해요?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해요? 아차! 아버님이랑 큰형님이 안 보이시는데 아직 주무시나요? 아니면 도장에 일찍 나가셨어요?”지훈은 그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물어보았다. 아까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두 사람 볼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공항에 갔어. 이쯤 되면 아마 비행기에 올랐을 거야.”윤하 어머니가 대답했다.지훈은 별생각 없었다. 고백도 했고 부모님도 인사하러 오셨고 지금은 그저 윤하의 답변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지훈도 내심 많이 긴장됐다.그도 윤하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도 사주고 고백 후에 도망치지도 않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윤하가 명확히 대답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거절할 수도 있기에 두려웠다.윤하가 설령 거절한다고 해도 지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질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평생 그 한 사람한테만 마음을 줄 그런 사람이었다. “어머님, 준비 많이 하시지 마세요. 두 분 간단히 요기하면 돼요. 제가 이따가 두 분 호텔로 모셔다드릴 거예요. 거기서 식사하시면 돼요.”“귀한 손님들이 멀리서 오셨는데 점심은 내가 대접해야지. 외식할까 아니면 집에서 먹을까?”윤하 어머니는 물었다.“집에서 먹으면 윤하랑 혁진이는 오늘 도장 나가지 말고 장 좀 봐줘
윤하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윤하를 보며 물었다. “뭐라고? 불감증?”“지훈 씨가 질병이 있는데 불감증이래요. 근데 나한테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건 치료가 잘되지 않는 병이고요. 운명인가 보죠 뭐.”“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이런 병은 또 처음 들어봤어. 그럼 네가 지훈이 한테 시집가면 걔가 변심할 걱정도 없고 바람피울 걱정도 없는 거잖아.”윤하는 대답했다. “뭐 그런 셈이죠. 지훈 씨가 그러는데 다른 여자들이랑 있을 때에는 진짜 아무 반응이 없대요. 부모님이 사정을 알고 나서 계속 선을 보게 했는데 지훈 씨가 안 나갔어요. 또 부모님이 젊은 여자들 사진도 많이 보여줬대요. 혹시나 병이 좀 나아질지 해서요. 그런데 아무 효과가 없는 거죠.”윤하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모두 엄마에게 털어놨다.“지훈 씨 부모님이 마음이 급하셔서 지훈 씨가 어떤 여성분에게 눈길을 한 번 더 줬다 하면 혹시나 그 분한테 반응이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윤하 어머니는 들을수록 의아했다. “그럼 걔는 어떻게 너한테만은 다르다고 확신하는 거야?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윤하 어머니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윤하야, 지훈이가 너한테 진심이든 아니든 결혼하기 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해. 여자는 자신을 아껴야지. 내가 책이랑 동영상에서 많이 봤는데 어떤 여자애들이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는 바람에 시댁에서 업신여겨 예물을 적게 주거나 아예 안 주는 집안도 있대. 이런 집에 시집가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거야.”“엄마가 옛날 사람이라서 요즘 젊은이의 사상을 못 따라는 게 아니라 딸 가진 엄마로서 내 딸이 시댁에서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그러니 절대 결혼 전에 사고 치지 마. 약혼했다고 해도 안돼. 혼인 신고를 해야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거야. 그때가 되면 결혼식을 올리든 안 올리든 엄마도 관여하지 않을 거야.”윤하 어머니는 윤하가 충동적인 행동을 할까 봐 걱정했다. 윤하는 나이도 어리고 연애 경험이 적은 것에 비해 지훈은 비록 여자
지훈은 그저 그들에게 손주를 안겨주는 도구로 몰락할지도 모른다.“고구마가 이렇게나 많아요? 그럼 군고구마 만들어 먹어요. 밖에서 사면 한 개에 삼천 원 정도 하잖아요, 너무 비싸요.”윤하는 역시나 고구마를 보고 기뻐했다.윤하는 차 문이 열려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혀를 내둘렀다.”이게 전부 다 고구마예요?”고구마인지 곤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도 물건들을 나르기 시작했다.곧 혁진이 도와주러 나왔다.그렇게 세 젊은이는 몇 번을 왕복해서 겨우 차 안에 가득했던 농산품들을 거실로 옮겨갔다. 값비싼 삼과 제비집도 그중 어느 안에 들어있었다.지훈은 부모님이 정말로 농산품만 갖고 온 줄 알았다.소씨 집안에서 가지고 온 선물들을 윤하 어머니께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방문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었다.지훈이 부모님이 방문한 탓에 윤하와 혁진은 도장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접대를 도왔다. 소씨 가주 내외가 아침을 못 드신 걸 알고 윤하 어머니는 윤하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했다.윤하는 그 틈을 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아버지랑 큰오빠는 이렇게 일찍 도장으로 나갔어요? 두 사람한테 전화했었는데 둘 다 안 받던데요.”윤하 어머니는 밖을 한번 힐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아버지랑 혁주가 관성에 갔어. 지훈이 집안에 대해 좀 알아보려고. 근데 지훈이 부모님이 여기로 오실 줄 누가 알았겠니?”“저 아직도 고민 중인데 둘이서 벌써 관성에 갔다고요?”“그러니까 네가 고민이 끝나기 전에 미리 알아보는거지. 네가 시집살이 안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시름 놓고 너희 둘을 미뤄줄 거 아니야.”윤하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훈이 부모님을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 두 분이 너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소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처음 집에 인사 온다고 농산품들을 가지고 온 것 봐. 다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우리한테 맞춰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너를 중요시한다는 거야. 그
사실 지훈도 부모님 몰래 일을 꾸몄으나 두 분이 보통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서 지훈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집 문 앞에서 지켜보던 윤하 어머니는 딸과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지훈이랑 아주 비슷한 걸 보고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그러고는 얼른 문을 활짝 열었다.지훈 어머니는 윤하 어머니를 보자마자 하마터면 사돈이라고 부를뻔했지만 너무 이른 감이 있어 당황하실까 봐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되려 삼켰다.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이 오실 줄은 생각 못 했다.아들과 남편이 방금전에 관성으로 출발했는데 두 분이 집에 찾아오시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관성에서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볼 때 마주치거나 들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정씨 집안 식구들은 지훈이 마음에 들었다. 지훈이 집안 사람들까지 인품이 좋으신 분이라면 멀기는 멀어도 윤하를 소씨 집안으로 시집 보낼 의향이 있었다.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훈의 질병이었다. 어젯밤, 두 형제는 지훈에게 이게 관해 물어보지 않았고 윤하도 가족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윤하가 지훈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윤하 어머니는 짐작했다.전에 질병이 있었다가 이제는 다 완치됐을 가능성도 있었다.두 집안 어르신이 만나고 나서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 두 분 다 성격이 좋으시고 친근하신 걸 느꼈다.사돈 될 분들한테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왔다. 행여나 너무 부유해 보여 정씨 집안에서 윤하를 시집 안 보내겠다고 하면 아들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정씨 집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두 가문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정씨 집안이 손해 보는 셈이었다. 지훈은 이제 중년이 다 된 아저씨이고 윤하는 아직 꽃다운 어린 아가씨이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소씨 집안 가주라는 기세 없이 자세를 낮추어 얘기했다.윤하 어머니와 혁진은 두 분을 대접하고 있고 윤하는 지훈을 도와 짐 나르러 갔
지훈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윤하 씨는 언제든지 예뻐요. 긴장하지 말아요, 저희 부모님 그렇게 어려운 분들 아니세요.”“긴장 안 했거든요. 처음 뵈는 자리니까 잘 꾸미지 않더라도 예의는 갖춰야 하니까요. 제가 문 열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하는 지훈보다 먼저 뛰어가 문을 열었다.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문 앞에 서 있었다.윤하가 문을 열자 차에 앉아 계시던 분이 창문을 내리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중년 여성분이셨는데 지훈과 많이 닮아서 누가 봐도 소지훈 어머니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윤하는 내심 지훈의 어머니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관리를 아주 잘하셔서 겉보기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같이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면 전혀 모자같이 보이지 않았다.지훈 어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걸어오며 물었다. “아가씨가 윤하 씨구나. 사진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소지훈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어머님, 안녕하세요.”윤하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지훈도 윤하를 따라 인사 한마디 건넸다.지훈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윤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고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고 아들이랑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훈 어머니는 첫눈에 바로 윤하가 마음에 들었다.자기 아들을 구해준 유일한 여자애라고 생각해서 사진을 볼 때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고 흡족해하셨다.지훈이 아버지도 차에서 내렸다.“윤하 씨, 안녕하세요, 저는 지훈이 애비되는 사람입니다.”지훈이 아버지는 평소에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말하시지만 그 순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윤하는 아버님께도 인사를 건네고 두 분을 집안으로 모셨다. “아버님, 어머님,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요, 밖이 추워요.”“좋아요.”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지훈의 아버지는 차 키를 아들에게 던져주고는 말했다.” 차 안에 있는 물건들 집으로 옮겨와.”“두 분 편히 오시면 돼요, 뭘 들고 오시지 마
지훈의 아버지는 시계를 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찍 오긴 한 것 같아. 여름이면 이쯤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을 텐데. 차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노크하러 갈까?”지훈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먼저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일어나라고 해야겠어요.”그는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윤하와 입술이 닿는 그 순간, 고막을 찌르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지훈은 단꿈에서 깨어났다. 지훈은 키스의 여운에 입술을 문지르다 정신이 번쩍 들어 그제야 자신이 꿈꾸었음을 알았다. 윤하는 지훈의 고백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눈치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달콤한 꿈이 산산조각 나자 지훈은 순간 화가 났다.핸드폰을 집어 든 지훈은 발신인을 확인하지 않고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세요? 왜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거세요? 큰 일이 아니라면……”“아니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구냐고? 네 엄마야, 나 지금 윤하네 집 앞이야. 빨리 나와 문 열어. 아니면 내가 들어가서 혼쭐을 내줄 거니까.”지훈도 한 성깔 하는데 지훈의 어머니는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말 몇 마디로 바로 지훈을 수그러들게 했다.지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요? 지금 집 앞이라고요? 아버지도 같이 있어요?”두 분이 오신다고는 했지만 진짜로 오실 줄 몰랐고 또 이렇게 일찍 올지도 몰랐다.“아버지도 옆에 계셔. 대문이 아직 안 열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다들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보지? 아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지훈은 침대에서 굴러 내려오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일찍 오신 거예요? 아버지가 오신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아직 이르다고 말했잖아요, 윤하 씨가 엄마아빠를 만나면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가 내려가서 문 열어줄게요.”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정작 부모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지훈은 엄마에게 당부 몇 마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