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하예정은 화제를 돌렸다.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전태윤은 하예정이 자신의 침묵 때문에 화를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왠지, 그녀가 화를 내지 않자 전태윤은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무슨 얘긴데요?""할머니께서 저희 집에서 주말 이틀 동안 묵고 싶대요. 저더러 당신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꼭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당신은 할머니 친손주인데 어떻게 동의하지 않을 리가 있겠어요?"할머니는 아마 부부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듯했지만, 괜한 생각이었다.그와 전태윤은 오붓한 시간은 없는 이름만 부부인 사이였다.낮에는, 각자 할 일을 했고, 밤에는 각자 따로 잘만 잤다.무슨 일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나 시간은 몹시 적었다.당시 초고속으로 결혼했을 때, 하예정은 자신의 결혼 생활은 파트너와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정말로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살고 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조금 마음이 흔들렸었다. 하지만 자신이 전태윤을 데리러 온 것에, 전태윤이 침묵을 하자 그녀는 피어오른 불씨를 꺼버렸다.계약했던 대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5개월 뒤면, 다시 솔로가 되는 것이다.전태윤은 정말로 할머니가 오지 않았으면 바랏다. 할머니는 능구렁이나 다름없이, 손주들을 골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그와 하예정은 아직 이름만 부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할머니는 일단 오게 되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든 두 사람을 한 침대에서 재우려할 게 뻔했다."우리 주말에도 각자 할 일로 바빠서 할머니 곁에 있어 줄 시간이 없으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본가에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적어도 본가에는 은퇴한 아들, 며느리가 있으니 할머니랑 놀아줄 수도 있고 말이야."전태윤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어쩐지 할머니가 혼자 결정하지 말고 꼭 전태윤에게 물어보라고 끊임없이 당부한다 했더니,
대화가 벽에 가로막힌 듯 뚝 끊겼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묵묵히 창밖의 풍경만 바라봤다.가게에 돌아갔을 때, 하예진도 마침 도착한 참이었다."언니."하예정은 차에서 내리며 언니를 불렀다.고개를 돌린 하예진은 동생 부부를 보자 포동포동한 얼굴에 미소를 띄며 동생에게 물었다. "태윤 씨와 어디 다녀오는 거야?""같이 식사하자고 회사로 데리러 간 거였어. 언니, 어때? 일자리는 찾았어?"차에서 내린 전태윤도 하예진에게 처형이라고 불렀다.하예진은 웃으며 대답하다 동생이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안색이 곧장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못 찾았어. 이력서를 한가득 넣었는데도 대답이 없으면 곧바로 거절하더라고."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가 이제 막 두 살 넘었다는 걸 알고는 나에게 아이가 그렇게 어린데, 일이 많으면 집중이 분산되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더라고. 그 말에 화가 확 차오르더라. 애가 있다고 일에 집중하지 않는 애 엄마가 어딨어?""그래서 나는 아이는 돌봐줄 사람이 있어서 출근 시간에는 일에 완벽히 집중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귀가 먹은 건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언제부턴지 애를 낳고 난 여자는 일을 찾는 데도 차별을 받는 것 같아."하예진은 오전 내내 일자리를 찾느라 지치고 배도 고팠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그러다 시댁에서 욕을 하며, 주형인과 헤어지고 나면 어떻게 살겠냐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사회를 떠난 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장점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니었고, 일을 찾을 수가 없어, 그녀가 회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회사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그녀는 다시 회계팀장이 되기를 바랐지만, 지금 보기에는 무슨 직책이든 일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언니, 괜찮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 맞는 자리가 있을 거야."언니를 달랜 하예정을 팔짱을 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밥부터 먹고,
식사를 마친 뒤, 하예진은 집으로 가 쉬겠다고 말했다.오전 내내 일자리를 찾느라 그녀는 몹시 피곤했다.일도 못 찾은 데다 적잖이 충격도 받아 그녀는 집으로 가 이력서를 다시 쓸 생각이었다. 지망을 더 넓히면 다른 일자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언니, 내가 바래다줄게."하예진은 자신의 제부를 쳐다봤다.전태윤은 적당히 대답했다. "처형, 전 먼저 회사로 가보겠습니다.""그래요, 운전 조심하고." 하예진은 그에 당부를 건넸다. 그렇게 전태윤이 떠나고 난 뒤에야 그녀는 아직도 자고 있는 아들을 안은 뒤 동생의 차에 탄 뒤 말했다. "태윤 씨 점심 식사 시간이 길지 않으면 넌 그냥 도시락을 회사로 가져다줘. 괜히 왔다 갔다 하게 하지 말고, 점심시간인데 쉴 시간도 없잖아.""알았어."하예정은 시동을 걸었다.그녀는 이제 다시는 전씨 그룹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괜히 언니에게 잔소리만 들을 게 뻔했다. 척 보기에도 언니는 전태윤이라는 제부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전태윤이 회사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오후 업무 시간이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그를 본 비서는 곧장 공경한 태도로 말했다. "대표님, 비서실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고개를 끄덕인 전태윤은 진중한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하며 비서에게 지시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만, 다른 건 다 빼고."그는 아메리카노만 좋아했다.비서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대표님, 오후에는 커피 안 드시지 않아요?"전태윤은 보통 오전에 한 잔 마시고 하루를 버텼다. 만약 오후에 마신다면 밤에 잘 자지 못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보통 마시지 않았다.전태윤은 비서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감히 더 묻지 못한 비서는 전태윤이 사무실에 들어가자 얼른 커피를 내리러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간 전태윤은 소정남이 망원경을 들고 창밖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습에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망원경을 확 뺏어 든 전태윤이 입을 열었다. "내 물건 함부로 건
전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 "예준하는 싸움 실력이 별로야. 그 예씨 가문도 A 시에서는 우리 가문과 마찬가지로 재계 서열 1위인 가문이라 안전을 위해서라도 예준하는 경호원을 더 두는 수밖에 없지. 너도 지금 안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놀라. 만약 예준하의 기세가 부러운 거면 너도 매일 경호원 주렁주렁 달고 다니든지."소정남은 원체 실력이 괜찮아 경호원은 필요 없었다.게다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면 너무 눈에 띄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비서가 노크하고는 들어왔다."대표님, 분부하신 커피 가져왔습니다."비서는 막 내린 커피를 가지고 와 천천히 전태윤 앞에 내려놓았다.비서가 나간 뒤, 소정남은 친구 겸 상사인 전태윤을 놀렸다. "점심에 아내랑 애정행각 하러 다녀오니까 오후에는 일할 정신 없지? 커피 몇 잔 더 하지 그래?"전태윤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애정행각은 무슨 그는 그와 하예정 사이에 또 안 좋은 일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같이 밥 먹으려고 퇴근하는 걸 데리러 온 하예정에게 자신은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았는데도 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아, 전태윤은 하예정이 앞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왜 그래? 안색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설마 부부 싸움한 거야? 내가 보기에 부인분 성격 엄청 좋아 보이던데."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한참을 침묵하던 전태윤은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소정남은 비록 입은 무거웠지만 가십을 너무 좋아했다. 전태윤은 소정남이 아는 게 너무 많아, 어느 날 취해서 자신에 대해 전부 다 이야기를 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그는 또 소정남에게서 하예정과의 어색한 침묵을 해결할 방법을 묻고 싶기도 했다.그리하여 전태윤은 입을 열었다. "나 어쩌면, 조금, 상처를 준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소정남은 두 눈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곧장 물었다. "어떻게 상처를 줬는데? 말해 봐."전태윤은 책상
"동명이 내일 같이 늘 보던 데서 밥 먹자더라. 그 자식은 매번 밥 살 때면 늘 식객당으로 가자고 하네. 거기 음식이 맛있기는 하지만, 가게 옆이 할머님이 차린 소희 카페라 거기 가서 느긋하게 있을 수만 없었다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그건 우리가 예전에 자주 가던 곳이잖아. 동명은 정과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녀석이잖아."예전에 세 사람이 아직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때, 전태윤은 아직 경험을 쌓고 있어 대표도 아니었을 때에는 신분을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탓에 세 사람은 중급 정도 되는 식당에 자주 갔다.소희 카페는 관성에서 제일 크고 제일 세련된 카페였고 그 주변에 있는 것은 옷 가게든 식당이든 격이 너무 떨어지지는 않았다.격이 너무 떨어지면 소희 커페가 끌어오는 손님을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그 카페에서 소비를 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고수입의 직장인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자신을 박하게 대하지 않아, 카페에서 나오면 늘 다른 맛집을 가거나 쇼핑을 하는 탓에 그 번화한 거리는 소희 카페를 중심으로 중고가 상권이 만들어졌다."갈 거야?""밥을 산다니 당연히 가야지."전태윤의 얼굴에 간만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와 소정남은 이동명과는 우정이 돈독한 편이었다.이동명이 밥을 산다니 얼굴을 내민다기보다는 괜히 집에서 하예정과 어색하게 서로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그럼 나도 갈게. 간만에 주말인데 놀기도 해야지. 밥 먹고 나면 너희 할머니네 카페에 가자. 밤에는 해변에게 바비큐하는 건 어때?"전태윤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바비큐를 할 바에는 차라리 골프를 치는 게 나았다.소정남은 한참 동안 재잘거린 뒤에야 사무실을 나섰다.소정남이 가자, 전태윤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아, 예정이가 말했지?""했어요."전태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나이가 지긋하셔서 그런지 기억력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할머니, 전 이미 할머니의 소원대로 하예정과 결혼했어요. 다른 일에는 절대로 끼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전태윤은 결국 도로 식탁에 앉아, 용기 뚜껑을 다시 열고 좋아하지 않는 스프링 롤을 묵묵히 먹었다.하예정과 함께 살다 보니, 그가 조금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평소에는 먹지도 않았던 간식들도 맛보게 됐다.아침 식사를 마친 전태윤은 베란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그녀가 기르는 화초들을 감상했다.그러다 11시가 되자 울리는 소정남의 재촉 전화에 못 이겨, 전태윤은 방으로 들어가 옷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하예정이 언니의 집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 전태윤은 아내와 마주칠 리가 없다고 생각해, 현대 SUV가 아닌 여느 때처럼 고귀한 롤스로이스를 타고, 여러 대의 경호차의 호위 아래 위풍당당하게 식객당으로 향하였다.도착한 뒤에는 할머니의 카페에 주차를 하고 식당까지는 걸어간다면 큰 소란은 일지 않을 것 같았다.전태윤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동명과 소정남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전태윤을 발견한 그들이 손을 흔들자, 전태윤은 한 무리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안쪽으로 걸어갔다.경호원들은 자연스레 세 사람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면 가까이서 도련님도 보호할 수 있었고, 도련님과 친구들의 식사도 방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오직 이동명과 소남정이 불러야만 그들의 도련님은 기꺼이 이곳까지 행차했다.전태윤 일행이 선택한 자리는 가장 외진 곳으로, 조용한 곳이었다."전태윤, 네가 주문해."이동명은 메뉴판을 전태윤에게 건네주었다.전태윤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자주 와봤잖아. 사장님한테 자주 먹던 걸로 달라고 해.""이번엔 좀 다른 거 먹지 않을래?"소정남이 맞받아쳤다. "얘는 입이 까다로워서 다른 메뉴는 못 먹을걸. 나도 늘 먹던 걸로."이동명은 친한 친구 두 명이 다 늘 먹던 걸로 하려는 것을 보자,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했다."화장실 다녀올게."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호원 한 명도 일어나더니 그의 뒤를 따라갔다.그들은 이곳에 있는 사람이 도련님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도련님에게 반한
자리로 돌아온 전태윤은 덤덤한 표정으로 음식이 올라오자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 친구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전태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하예정이 김진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던 장면뿐이었다."태윤아, 오늘 좀 이상한데?"음식을 한 술 집어 먹은 이동명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전태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는 왜 말도 안 하고 먹기만 해?"소정남도 이동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 "배고파서."전태윤은 아침에 입맛에 맞지도 않는 스프링 롤을 먹은 데다 양도 얼마 되지 않아 진짜로 배가 많이 고팠다.물론 기분은 더더욱 나빴다.기분이 나쁘니, 계속 먹고 먹고 또 먹는 것이었다.하예정이 김진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는 것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써야 하나? 질투를 해야 하나?그는 진작부터, 질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못나지 않은가!전태윤과 하예정은 쇼윈도 부부이며 계약서도 체결한 상태였다.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하예정이 결혼 기간에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김진우와 동거하는 등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눈을 감아줄 수밖에 없었다.전태윤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달랬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윤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하예정과 김진우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두 친구는 전태윤이 할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할머니의 목숨을 구해준 하예정과 결혼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태윤이 배고프다고 말하자 소정남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 지금 유부남이잖아? 그런데 왜 배를 곯고 다녀? 아내가 아침을 안 차려줘?"평소에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 소정남이 전태윤에게 아침을 먹자고 하면 전태윤은 늘 자신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껏 으스대는 투로 말했었다.소정남이 손을 내밀어 전태윤이 입고 있는 옷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너는 아내도 있으면서 왜 자기가 산 옷을 입고 다니는 거야?"전태윤은 굳은 표정으로 소정남의 손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나와 하예정는 쇼윈도에
설령 쇼윈도 부부인 데다 결혼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이동명은 내키지 않았다.전태윤은 두 친구의 말장난에 끼어들지 않고 계속 식사만 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불러 식사를 멈췄다."난 할머니 카페에 가서 쉬고 있을 거니까, 너희 둘은 천천히 먹어."젓가락을 내려놓은 전태윤은 휴지를 뽑아 입을 닦은 뒤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우리도 다 먹었어. 같이 가자."이동명과 소정남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전태윤을 따라 옆에 있는 소희 카페로 가려고 했다.경호원도 식사를 마치고 도련님이 자리를 뜨려고 하자 묵묵히 일어섰다. 그리고 도련님을 경호하면서 조심스럽게 밖으로 따라 나갔다.그들은 하예정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하예정이 김씨 가문의 도련님과 같이 식사를 하고 있고 김씨 도련님은 전태윤 도련님을 만난 적이 있다. 하예정에게 들키면 전태윤 도련님의 신분이 발각될 수 있었다.이동명이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향했다.소정남이 계산을 마친 이동명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명아, 오늘 전태윤이 약간 이상하지 않아? 아니, 올 때는 괜찮았어, 표정도 차갑지 않았고."사람들은 모두 전태윤이 진중하고 차갑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사석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는 차가운 모습보다는 친구들에게 온화하게 대했다."태윤이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부터 표정이 변했어."소정남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돌아서서 가게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화장실에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아봐야겠어."이동명이 소정남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면서 말했다. "뭘 봤든 간에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아직도 그대로 있지 않을 거야. 전태윤은 항상 그런 식이잖아. 별일 없었을 거야."이동명은 무슨 사람이나, 아무 일이 전태윤의 기분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전태윤은 성격이 진중해, 하늘이 무너져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아니야. 분명히 뭘 봤으니까 갑자기 차가워진 거야."소정남은 전태윤이 화장실에서 무엇을 목격했는지 몹시
우빈이가 툭하면 어린이집에 안 가는 데 익숙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명확하게 일러둬야 한다고 하예정은 생각했다. 이번에는 용정이 모처럼 놀러 왔고 또 용정이 관성에서 친구란 우빈이밖에 없으니, 이번만은 응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우빈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을 약속했다.용정도 따라서 말했다.“아주머니, 다음번에는 제가 여름방학 혹은 겨울방학을 하는 틈을 타서 올 게요. 그러면 누구도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잖아요.”“이모, 지금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서 얘기하면 안 돼요?”우빈이한테는 지금 휴가를 내는 일이 급선무였다.그래야 시름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째려보았다. 전태윤은 일부러 하예정의 시선을 피하여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쳐다보는 척했다. 하혜정은 속으로 남편이 우빈이의 일을 자신한테 떠밀었다고 투덜댔다.“알았어.”하예정은 마지못해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예진이 전화를 받자 하예정이 말했다.“언니, 우빈이가 할 얘기 있대.”그러고 나서 휴대폰을 우빈이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우빈아, 네가 직접 엄마하고 얘기해.”우빈이는 전화를 받아쥐고 하예진에게 휴가를 내려는 사유를 자초지종 말했다.하예진도 하예정과 똑같은 말을 하고 나서 우빈이가 하루 휴가를 내서 모처럼 찾아온 친구랑 노는 것에 응낙했다.그러자 우빈이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돌려준 후 용정의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했다. 그러고는 대결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용정에게 말했다.“용정아, 나 요즘 아주 열심히 무술을 연마했어. 우리 한 번 대결해.”용정이 자신만만해서 말했다.“넌 나한테 질 거야. 나한테 져서 화내면 안 돼. 알았지?”지난 여름방학 때 두 사람이 함께 놀 때 우빈이가 항상 져서 기분이 언짢아했었다.용정은 그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모연정이 용정이보고 우빈이는 손님인데 왜 양보하지 않았냐고 핀잔했다.하지만 용정은 어떻게 양보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 자연스럽게 져주는 법을 모르
전태윤이 말하면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예준성도 뒤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다행히 평소에 우리 두 집이 서로 가깝게 지냈고 또 앞으로 친척이 될 사이니 말이죠. 그렇지 않고야 제가 미안해서 어찌 이렇게 이른 아침에 찾아와서 폐를 끼치겠어요.”별장 구역은 아주 조용했다. 가끔 조깅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였다.“용정이 모처럼 왔는데 한시 급히 친구와 놀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용정의 무술 실력이 아주 많이 는 거 같아요. 아까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과 달리는 속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 우빈이는 아무리 용을 써도 용정을 못 따라잡아요.”“사람마다 다 장점과 약점이 있어요. 용정의 약점은 식탐이 많아요. 매번 집에만 돌아오면 준영이를 얼려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다 해달라 해요. 번마다 배를 두드리면서 먹어요.”“연정 씨는 애가 하도 많이 먹길래 배에 탈이라도 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다행히도 매일 무술을 연습하느라 많은 열량을 뺐지요. 그렇지 않으면 진작 뚱보가 되었을 겁니다.”“애들은 다 그래요. 크면 저절로 다 낫는 법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저도 어린 시절에 먹길 엄청나게 좋아했대요. 하지만 커서 난 식탐 많은 사람으로 취급받은 적 없어요.”커서는 혼자 통제할 수 있으니 제멋대로 먹지 않았을 뿐이었다.예준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식탐 때문에 손해 볼 수도 있어요.”두 어른과 두 어린이는 반 시간 남짓이 달린 후 방향을 바꿔서 집으로 달렸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할 무렵에 하예정은 이미 일어나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빈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대문 입구로 마중 나갔다.“이모!”두 꼬맹이가 먼저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예정을 본 우빈이는 깡충거리면서 뛰어갔다.용정도 우빈이 뒤를 따라 뛰어갔다.“아주머니.”“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니?”하예정은 용정을 보고 반색하며 맞았다.비록 마당에 세워진 예준하의 차를 보긴 했지만
전태윤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이러니 두 사람이 친구로 될 수 있는 거네요. 두 사람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니 말이죠. 저도 꼭두새벽에 우빈이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함께 조깅하러 나가는 중입니다.”“같이 나가는 건 어때요? 같이 산책해요.”전태윤이 예준성 부자한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제안했다.예준성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럽시다. 어차피 저도 이제 더 잘 수도 없는데요.” 예준성은 용정을 보면서 말했다.“우빈이 데리고 앞에서 놀아야 해.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알았지?”“우빈이더러 용정을 잘 데리고 놀라고 해야죠. 당신들은 멀리서 온 손님이니 응당히 우리가 주인답게 잘 대접해 드려야죠.”두 아이는 진작 손잡고 앞으로 뛰어 가버렸다.예준성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용정은 낯 갈이도 잘 안 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숙해져요. 기억력도 참 좋아요. 한 번 다녀갔던 길은 절대 안 잊어요. 길옆에 있는 화초까지 똑똑히 기억할 수 있어요. 걔는 식물 종류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용정의 스승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의술이 최고인 정 선생님이잖아요.”정겨울은 바빠서 직접 용정을 가르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용정이 신의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약재의 이름을 기억했다.용정의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용정은 성격이 참 좋아요.”“그건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성격이 좋을 땐 좋아도 녀석이 횡포한 면도 있어요. 금방 집에 데리고 왔을 때는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말도 잘 안 하기에 똑똑하지 못한 먹보인가 했어요.”“정말 잘못 봤어요.”예준성이 겉으로는 양아들의 단점을 말하는 것 같지만 두 눈은 애틋한 눈빛으로 가득 찼다. 용정은 예준성을 약간 어려워하기에 여태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저씨라고만 불렀고 모연정을 엄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자신이 모연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모연정을 모 엄마라고 불렀다.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운이 좋은 줄 아세요.
“알았어요. 제가 지금 태윤 씨 집 앞에 있어요. 집사가 문 열려고 나오네요. 그러면 만나서 얘기해요.”말을 마친 예준성은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은 멍하니 서 있었다.전태윤이 어리둥절하여 머리를 숙여 우빈이를 쳐다보니 마침 우빈이도 머리를 들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이모부, 왜 그래요? 무슨 일 생겼나요?”전태윤은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누군가 우빈이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또 아침 일찍 찾아왔단다.”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혹시 예준하와 성소현의 혼사에 문제가 생겨 예준성이 자신더러 로비스트 되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건 아닐지 생각했다. 하예정은 그럴 재주가 있지만, 자신은 로비스트로 될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이윽고 예준성이 동생이 평소에 타고 다니던 차를 운전해서 대문을 지나 마당에 세웠다.예준성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뒷좌석의 차 문이 열리면서 작고 탄탄한 몸매를 가진 어린애가 차에서 날렵하게 뛰어내리더니 전태윤이 서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뛰어왔다.“우빈아, 우빈아, 내가 왔어!”전태윤이 눈여겨보니 용정이었다.“용정!”용정을 알아본 우빈이는 잡고 있던 전태윤의 손을 뿌리치고 용정이 뛰어오는 방향을 향해 깡충깡충 뛰어갔다.두 꼬맹이는 만나자마자 반갑다는 듯 어른들처럼 상대방한테 커다란 포옹을 해주었다.여름방학 때 작별한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두 아이의 키는 눈에 띄게 컸다.용정은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서 무술을 연마했기에 키가 우빈이보다 훨씬 더 컸으며 신체도 우빈이보다 퍽 탄탄해 보였다.방금 용정이가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을 통하여 전태윤은 용정의 무술 실력이 또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 용정의 무술 솜씨는 우빈이 셋을 합쳐도 못 당할 것이었다. 이 아이는 무술 배우는 방면에서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어?”친구를 만난 우빈이는 기뻐하면서 물었다.“나는 할아버지 따라서 모 엄마와 아저씨 보러 왔어. 사공이 유치원에 일주일 동안 휴가를 신청해
이날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돌아오는 날은 일요일이었다.휴식날인데 우빈이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우빈이는 일어난 후 곧장 하예정이 자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전태윤이 안에서 방문을 열어주었다.“이모부, 이모 일어났어요? 들어가서 이모랑 같이 놀래요.”전태윤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꼬맹이와 화내지 말자고 스스로 가슴을 달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지? 평소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 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더니 쉬는 날만 되면 아주 일찍 일어나더라.”우빈이가 입을 뾰족이 내밀면서 말했다.“이모부, 나는 한 번 깨어나면 더는 못 자요. 나랑 놀아 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심심해요. 이모 찾아와서 노는 수밖에 없어요.”현재 우빈이는 시 중심에 자리 잡은 전태윤의 개인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 서원 리조트에 있을 때는 그나마 함께 놀아 주는 어린이들이 있었기에 이모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우빈이를 부쩍 들어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이모는 아직도 자고 있어. 이모부가 우빈이랑 같이 놀아 줄게. 뭐 놀까?”“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좋지 않을까?”우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싫어요. 혼자 놀면 재미가 없어요. 이모부는 장난감도 안 놀 거잖아요.”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이모부랑 같이 아침 조깅하러 나갈까? 이모부가 가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올 테니 얌전하게 기다려야 해?”그는 우빈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내려놓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신신당부했다.“침실에 들어가서 이모를 깨우면 안 돼. 알았지? 이모부가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우빈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전태윤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서 먼저 운동복 바지부터 바꿔 입고 우빈이가 그사이에 침실에 들어가서 하예정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웃옷을 입으면서 밖으로 나왔다.우빈이가 조용하게 제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야 전태윤은 안도의
윤미라는 아들 노동명이 무서웠다.“알았어. 꾸준히 재활 치료할 거야. 네가 돌아올 때면 내가 2~3m나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참, 언제 돌아올 거야?”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대답했다.“설까지 있을 계획에요. 설날이 되면 제가 돌아갈게요.”“그렇게 오래 있겠다고? 우빈이는 어쩌려고?”“예정이가 돌봐주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우빈이 보러 가주세요. 시간이 없으면 제부한테 부탁해서 우빈이를 저한테 데려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고요.”하예진은 점점 더 바빠질 것이다.당분간 아들 우빈과 함께할 시간이 적을 것이다.“우빈이가 태어날 때부터 예정이가 곁에서 보살펴서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요.”“사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노동명이 한 마디 내뱉었다.우빈이는 핑계일 뿐, 사실 노동명이 그녀가 그리웠다.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리면 노동명은 자신이 하예진이 무척 보고싶을 것으로 예상했다.전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만 그리움의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우빈은 어려서부터 녀석을 키워준 하예정이 있어서 하예진이 곁에 없다고 해도 바로 적응할 수 있지만 노동명은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요즘 그는 매일 하예진을 보는 것에 익숙했다.“예진아,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내가 혼자 널 보러 가도 돼? 걱정하지 마. 우리 집에 개인 비행기가 있어서 내가 그 비행기를 타고 경호원들과 함께 가면 돼. 경호원들이 날 돌봐줄 거야. 네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거고. 널 보러 갈 뿐이야. 너랑 밥 먹고 얘기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주말마다 널 보러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게. 나도 출근해야 하니까.”하예진은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럼 주말에 우빈이도 데리고 오세요.”“난 너와 단둘이 주말을 보내고 싶은데 우빈이 녀석도 데리고 가야 해?”하예진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동명 씨가 혼자 온 걸 알게 되면 우빈이가 삐질걸
“앞으로 더는 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저는 단 한 번도 동명 씨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제가 돼지처럼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도 동명 씨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처럼요.”노동명은 급히 끼어들었다.“넌 못생기지 않았어. 전혀! 예전에 통통할 때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거든. 복스러워 보였어.”“못생긴 거 맞아요. 저는 거울만 봐도 뚱뚱한 제가 너무 싫었어요.”바보 같은 짓은 한 번만 하면 충분했다. 하예진은 다시는 예전처럼 폭식하지 않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살을 빼기 전에 하예진은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지방간뿐만 아니라 요산 수치도 높았다.체중 감량 후 요산뿐만 아니라 지방간 수치도 모두 많이 좋아졌다.“하예진아, 우빈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옷도 사줬는데 나한테는 뭐 사준 거 없어?”노동명이 화제를 바꾸어 질투하기 시작했다.“동명 씨는 부족한 게 없잖아요. 우빈이는 아이라서 너무 빨리 커요. 해마다 새 옷을 사줘야 하지만 동명 씨는 이젠 다 큰 성인이라 작년의 옷을 올해에도 입을 수 있잖아요. 돌아가게 되면 강성의 특산 제품을 가져다드릴게요.”노동명은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빈이는 크면 남의 집 남편으로 되어 우빈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게 될걸. 결국,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을 텐데 나를 더 관심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새 옷 사줘. 네가 사준 옷이면 난 다 좋아.”하예진은 하예정에게 거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지난번 하예진은 재혼하고 싶지 않다며 노동명의 감정을 거절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이 시집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나 다름없다. 모두의 눈에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보였다.노동명도 자연스레 하예진의 남편 역할을 하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여생을 함께하려고 한다.하예정이 끝까지 노동명에게 시집가지 않더라도, 그가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남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선물을 너무 받고 싶었다. 가격을 따지
이윤미가 말을 꺼냈다.“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을 뿐이에요. 사람들을 몰래 예진 씨를 따르라고 한 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뒤를 따라가서 예진 씨의 몸매를 익히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앞으로 예진 씨가 변장하더라도 그녀의 몸매에 대한 인상으로 분장한 예진 씨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예진 씨와 만날 때마다 예진 씨의 안전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니까요.”“만약 그녀가 저를 만나러 오는 도중에 사고가 나면 하예정 일행은 아마 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예진 씨가 강성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몰래 그녀를 도와주세요. 그저 우리 엄마와 그 늙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도와주면 돼요.”이윤미가 말하는 늙은 남자는 정군호가 아닌 이은화의 특별 비서였다.방윤림은 예의 갖추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밤이 점점 깊어지는데 얼른 돌아가세요.”이윤미는 한숨을 쉬었다.“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집에는 따뜻함이 없어요.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눈치 보면서...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방윤림은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랐다.주인의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일개 비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이윤미는 곧 방윤림과 함께 떠났다.한 시간 후.하루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한 뒤 가발을 쓰고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이윤미가 선물한 인간 얼굴 가죽을 쓰기 아까웠다.그렇게 전업적인 도구는 가장 필요한 곳에 써야 낭비하지 않는다.하루 호텔은 전호영이 강성에서 소유하고 있는 호텔 본점이다. 하예진이 분장한 이유는 전호영에게 폐를 끼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 그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가죽을 쓸 필요 없었다.하예정은 그녀가 묵고 있던 룸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근 뒤에야 휴대전화를 꺼내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노동명이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주무세요?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