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전태윤을 기다리던 하예정은 괜히 앉아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라떼 두 잔을 주문하며 테이크아웃해달라고 말했다.입구와 가까운 곳에 앉은 그녀는 차를 몰고 온 전태윤을 단박에 알아본 뒤 곧바로 포장한 커피 두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예쁜 얼굴에 미소가 드러나더니 전태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차를 몰고 가까이 온 전태윤은 그녀의 앞에서 멈췄다.다가온 하예정이 조수석에 타고는 안전벨트까지 하자, 전태윤은 그제야 다시 시동을 걸었다."당신 왜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그것도 까만 마스크를요."하예정은 무심하게 물었다.전태윤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마스크를 벗었다. 이미 회사 입구를 벗어났으니 이제 그를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비록 아직 그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전태윤이 설명하지 않자, 하예정도 더 묻지 않은 채 화제를 돌렸다. "커피 마실래요? 당신 주려고 샀어요. 제가 먼저 먹을게요, 다 먹고 나면 제가 운전할 테니 당신 마셔요.""고마워, 난 괜찮아."전태윤은 원래 단 커피는 입에 대지 않았다."그럼 가서 효진이에게 줘야겠네요. 효진이는 라떼 좋아하거든요. 매일마다 점심 먹고 나면 라떼에 디저트 곁들여 먹는 걸 엄청 좋아해요.""여자들은 단 커피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잘 안 마셔, 좋아하지도 않고."하예정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사실 저도 잘 안 먹어요. 많이 먹으면 몸에도 안 좋고요."심효진이 라떼를 시킬 때면 하예정은 보통 과일 주스를 시켰다."오늘은 왜 갑자기 날 데리러 올 생각을 한 거야?"전태윤은 낮고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오기 전에 전화라도 하지. 내가 회사에 없었으면 헛걸음할 뻔했잖아."오늘 그의 스케줄은 마침 점심시간 때쯤에 회사에 있었다.평소였다면 이 시간에 그는 보통 회사에 없었다."식사 시간이 다 됐는데도 일을 해요?"전태윤은 응하고 대답하며 말했다. "대부분 협상은 식사 자리에서 이뤄지지."하예정은 알겠다는 듯 대답하며 말했
"참,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하예정은 화제를 돌렸다.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전태윤은 하예정이 자신의 침묵 때문에 화를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왠지, 그녀가 화를 내지 않자 전태윤은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무슨 얘긴데요?""할머니께서 저희 집에서 주말 이틀 동안 묵고 싶대요. 저더러 당신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꼭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당신은 할머니 친손주인데 어떻게 동의하지 않을 리가 있겠어요?"할머니는 아마 부부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듯했지만, 괜한 생각이었다.그와 전태윤은 오붓한 시간은 없는 이름만 부부인 사이였다.낮에는, 각자 할 일을 했고, 밤에는 각자 따로 잘만 잤다.무슨 일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나 시간은 몹시 적었다.당시 초고속으로 결혼했을 때, 하예정은 자신의 결혼 생활은 파트너와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정말로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살고 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조금 마음이 흔들렸었다. 하지만 자신이 전태윤을 데리러 온 것에, 전태윤이 침묵을 하자 그녀는 피어오른 불씨를 꺼버렸다.계약했던 대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5개월 뒤면, 다시 솔로가 되는 것이다.전태윤은 정말로 할머니가 오지 않았으면 바랏다. 할머니는 능구렁이나 다름없이, 손주들을 골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그와 하예정은 아직 이름만 부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할머니는 일단 오게 되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든 두 사람을 한 침대에서 재우려할 게 뻔했다."우리 주말에도 각자 할 일로 바빠서 할머니 곁에 있어 줄 시간이 없으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본가에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적어도 본가에는 은퇴한 아들, 며느리가 있으니 할머니랑 놀아줄 수도 있고 말이야."전태윤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어쩐지 할머니가 혼자 결정하지 말고 꼭 전태윤에게 물어보라고 끊임없이 당부한다 했더니,
대화가 벽에 가로막힌 듯 뚝 끊겼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묵묵히 창밖의 풍경만 바라봤다.가게에 돌아갔을 때, 하예진도 마침 도착한 참이었다."언니."하예정은 차에서 내리며 언니를 불렀다.고개를 돌린 하예진은 동생 부부를 보자 포동포동한 얼굴에 미소를 띄며 동생에게 물었다. "태윤 씨와 어디 다녀오는 거야?""같이 식사하자고 회사로 데리러 간 거였어. 언니, 어때? 일자리는 찾았어?"차에서 내린 전태윤도 하예진에게 처형이라고 불렀다.하예진은 웃으며 대답하다 동생이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안색이 곧장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못 찾았어. 이력서를 한가득 넣었는데도 대답이 없으면 곧바로 거절하더라고."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가 이제 막 두 살 넘었다는 걸 알고는 나에게 아이가 그렇게 어린데, 일이 많으면 집중이 분산되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더라고. 그 말에 화가 확 차오르더라. 애가 있다고 일에 집중하지 않는 애 엄마가 어딨어?""그래서 나는 아이는 돌봐줄 사람이 있어서 출근 시간에는 일에 완벽히 집중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귀가 먹은 건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언제부턴지 애를 낳고 난 여자는 일을 찾는 데도 차별을 받는 것 같아."하예진은 오전 내내 일자리를 찾느라 지치고 배도 고팠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그러다 시댁에서 욕을 하며, 주형인과 헤어지고 나면 어떻게 살겠냐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사회를 떠난 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장점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니었고, 일을 찾을 수가 없어, 그녀가 회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회사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그녀는 다시 회계팀장이 되기를 바랐지만, 지금 보기에는 무슨 직책이든 일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언니, 괜찮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 맞는 자리가 있을 거야."언니를 달랜 하예정을 팔짱을 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밥부터 먹고,
식사를 마친 뒤, 하예진은 집으로 가 쉬겠다고 말했다.오전 내내 일자리를 찾느라 그녀는 몹시 피곤했다.일도 못 찾은 데다 적잖이 충격도 받아 그녀는 집으로 가 이력서를 다시 쓸 생각이었다. 지망을 더 넓히면 다른 일자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언니, 내가 바래다줄게."하예진은 자신의 제부를 쳐다봤다.전태윤은 적당히 대답했다. "처형, 전 먼저 회사로 가보겠습니다.""그래요, 운전 조심하고." 하예진은 그에 당부를 건넸다. 그렇게 전태윤이 떠나고 난 뒤에야 그녀는 아직도 자고 있는 아들을 안은 뒤 동생의 차에 탄 뒤 말했다. "태윤 씨 점심 식사 시간이 길지 않으면 넌 그냥 도시락을 회사로 가져다줘. 괜히 왔다 갔다 하게 하지 말고, 점심시간인데 쉴 시간도 없잖아.""알았어."하예정은 시동을 걸었다.그녀는 이제 다시는 전씨 그룹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괜히 언니에게 잔소리만 들을 게 뻔했다. 척 보기에도 언니는 전태윤이라는 제부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전태윤이 회사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오후 업무 시간이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그를 본 비서는 곧장 공경한 태도로 말했다. "대표님, 비서실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고개를 끄덕인 전태윤은 진중한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하며 비서에게 지시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만, 다른 건 다 빼고."그는 아메리카노만 좋아했다.비서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대표님, 오후에는 커피 안 드시지 않아요?"전태윤은 보통 오전에 한 잔 마시고 하루를 버텼다. 만약 오후에 마신다면 밤에 잘 자지 못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보통 마시지 않았다.전태윤은 비서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감히 더 묻지 못한 비서는 전태윤이 사무실에 들어가자 얼른 커피를 내리러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간 전태윤은 소정남이 망원경을 들고 창밖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습에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망원경을 확 뺏어 든 전태윤이 입을 열었다. "내 물건 함부로 건
전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 "예준하는 싸움 실력이 별로야. 그 예씨 가문도 A 시에서는 우리 가문과 마찬가지로 재계 서열 1위인 가문이라 안전을 위해서라도 예준하는 경호원을 더 두는 수밖에 없지. 너도 지금 안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놀라. 만약 예준하의 기세가 부러운 거면 너도 매일 경호원 주렁주렁 달고 다니든지."소정남은 원체 실력이 괜찮아 경호원은 필요 없었다.게다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면 너무 눈에 띄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비서가 노크하고는 들어왔다."대표님, 분부하신 커피 가져왔습니다."비서는 막 내린 커피를 가지고 와 천천히 전태윤 앞에 내려놓았다.비서가 나간 뒤, 소정남은 친구 겸 상사인 전태윤을 놀렸다. "점심에 아내랑 애정행각 하러 다녀오니까 오후에는 일할 정신 없지? 커피 몇 잔 더 하지 그래?"전태윤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애정행각은 무슨 그는 그와 하예정 사이에 또 안 좋은 일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같이 밥 먹으려고 퇴근하는 걸 데리러 온 하예정에게 자신은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았는데도 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아, 전태윤은 하예정이 앞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왜 그래? 안색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설마 부부 싸움한 거야? 내가 보기에 부인분 성격 엄청 좋아 보이던데."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한참을 침묵하던 전태윤은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소정남은 비록 입은 무거웠지만 가십을 너무 좋아했다. 전태윤은 소정남이 아는 게 너무 많아, 어느 날 취해서 자신에 대해 전부 다 이야기를 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그는 또 소정남에게서 하예정과의 어색한 침묵을 해결할 방법을 묻고 싶기도 했다.그리하여 전태윤은 입을 열었다. "나 어쩌면, 조금, 상처를 준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소정남은 두 눈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곧장 물었다. "어떻게 상처를 줬는데? 말해 봐."전태윤은 책상
"동명이 내일 같이 늘 보던 데서 밥 먹자더라. 그 자식은 매번 밥 살 때면 늘 식객당으로 가자고 하네. 거기 음식이 맛있기는 하지만, 가게 옆이 할머님이 차린 소희 카페라 거기 가서 느긋하게 있을 수만 없었다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그건 우리가 예전에 자주 가던 곳이잖아. 동명은 정과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녀석이잖아."예전에 세 사람이 아직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때, 전태윤은 아직 경험을 쌓고 있어 대표도 아니었을 때에는 신분을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탓에 세 사람은 중급 정도 되는 식당에 자주 갔다.소희 카페는 관성에서 제일 크고 제일 세련된 카페였고 그 주변에 있는 것은 옷 가게든 식당이든 격이 너무 떨어지지는 않았다.격이 너무 떨어지면 소희 커페가 끌어오는 손님을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그 카페에서 소비를 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고수입의 직장인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자신을 박하게 대하지 않아, 카페에서 나오면 늘 다른 맛집을 가거나 쇼핑을 하는 탓에 그 번화한 거리는 소희 카페를 중심으로 중고가 상권이 만들어졌다."갈 거야?""밥을 산다니 당연히 가야지."전태윤의 얼굴에 간만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와 소정남은 이동명과는 우정이 돈독한 편이었다.이동명이 밥을 산다니 얼굴을 내민다기보다는 괜히 집에서 하예정과 어색하게 서로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그럼 나도 갈게. 간만에 주말인데 놀기도 해야지. 밥 먹고 나면 너희 할머니네 카페에 가자. 밤에는 해변에게 바비큐하는 건 어때?"전태윤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바비큐를 할 바에는 차라리 골프를 치는 게 나았다.소정남은 한참 동안 재잘거린 뒤에야 사무실을 나섰다.소정남이 가자, 전태윤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아, 예정이가 말했지?""했어요."전태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나이가 지긋하셔서 그런지 기억력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할머니, 전 이미 할머니의 소원대로 하예정과 결혼했어요. 다른 일에는 절대로 끼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전태윤은 결국 도로 식탁에 앉아, 용기 뚜껑을 다시 열고 좋아하지 않는 스프링 롤을 묵묵히 먹었다.하예정과 함께 살다 보니, 그가 조금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평소에는 먹지도 않았던 간식들도 맛보게 됐다.아침 식사를 마친 전태윤은 베란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그녀가 기르는 화초들을 감상했다.그러다 11시가 되자 울리는 소정남의 재촉 전화에 못 이겨, 전태윤은 방으로 들어가 옷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하예정이 언니의 집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 전태윤은 아내와 마주칠 리가 없다고 생각해, 현대 SUV가 아닌 여느 때처럼 고귀한 롤스로이스를 타고, 여러 대의 경호차의 호위 아래 위풍당당하게 식객당으로 향하였다.도착한 뒤에는 할머니의 카페에 주차를 하고 식당까지는 걸어간다면 큰 소란은 일지 않을 것 같았다.전태윤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동명과 소정남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전태윤을 발견한 그들이 손을 흔들자, 전태윤은 한 무리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안쪽으로 걸어갔다.경호원들은 자연스레 세 사람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면 가까이서 도련님도 보호할 수 있었고, 도련님과 친구들의 식사도 방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오직 이동명과 소남정이 불러야만 그들의 도련님은 기꺼이 이곳까지 행차했다.전태윤 일행이 선택한 자리는 가장 외진 곳으로, 조용한 곳이었다."전태윤, 네가 주문해."이동명은 메뉴판을 전태윤에게 건네주었다.전태윤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자주 와봤잖아. 사장님한테 자주 먹던 걸로 달라고 해.""이번엔 좀 다른 거 먹지 않을래?"소정남이 맞받아쳤다. "얘는 입이 까다로워서 다른 메뉴는 못 먹을걸. 나도 늘 먹던 걸로."이동명은 친한 친구 두 명이 다 늘 먹던 걸로 하려는 것을 보자,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했다."화장실 다녀올게."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호원 한 명도 일어나더니 그의 뒤를 따라갔다.그들은 이곳에 있는 사람이 도련님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도련님에게 반한
자리로 돌아온 전태윤은 덤덤한 표정으로 음식이 올라오자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 친구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전태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하예정이 김진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던 장면뿐이었다."태윤아, 오늘 좀 이상한데?"음식을 한 술 집어 먹은 이동명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전태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는 왜 말도 안 하고 먹기만 해?"소정남도 이동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 "배고파서."전태윤은 아침에 입맛에 맞지도 않는 스프링 롤을 먹은 데다 양도 얼마 되지 않아 진짜로 배가 많이 고팠다.물론 기분은 더더욱 나빴다.기분이 나쁘니, 계속 먹고 먹고 또 먹는 것이었다.하예정이 김진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는 것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써야 하나? 질투를 해야 하나?그는 진작부터, 질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못나지 않은가!전태윤과 하예정은 쇼윈도 부부이며 계약서도 체결한 상태였다.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하예정이 결혼 기간에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김진우와 동거하는 등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눈을 감아줄 수밖에 없었다.전태윤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달랬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윤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하예정과 김진우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두 친구는 전태윤이 할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할머니의 목숨을 구해준 하예정과 결혼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태윤이 배고프다고 말하자 소정남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 지금 유부남이잖아? 그런데 왜 배를 곯고 다녀? 아내가 아침을 안 차려줘?"평소에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 소정남이 전태윤에게 아침을 먹자고 하면 전태윤은 늘 자신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껏 으스대는 투로 말했었다.소정남이 손을 내밀어 전태윤이 입고 있는 옷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너는 아내도 있으면서 왜 자기가 산 옷을 입고 다니는 거야?"전태윤은 굳은 표정으로 소정남의 손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나와 하예정는 쇼윈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