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전태윤을 기다리던 하예정은 괜히 앉아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라떼 두 잔을 주문하며 테이크아웃해달라고 말했다.입구와 가까운 곳에 앉은 그녀는 차를 몰고 온 전태윤을 단박에 알아본 뒤 곧바로 포장한 커피 두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예쁜 얼굴에 미소가 드러나더니 전태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차를 몰고 가까이 온 전태윤은 그녀의 앞에서 멈췄다.다가온 하예정이 조수석에 타고는 안전벨트까지 하자, 전태윤은 그제야 다시 시동을 걸었다."당신 왜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그것도 까만 마스크를요."하예정은 무심하게 물었다.전태윤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마스크를 벗었다. 이미 회사 입구를 벗어났으니 이제 그를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비록 아직 그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전태윤이 설명하지 않자, 하예정도 더 묻지 않은 채 화제를 돌렸다. "커피 마실래요? 당신 주려고 샀어요. 제가 먼저 먹을게요, 다 먹고 나면 제가 운전할 테니 당신 마셔요.""고마워, 난 괜찮아."전태윤은 원래 단 커피는 입에 대지 않았다."그럼 가서 효진이에게 줘야겠네요. 효진이는 라떼 좋아하거든요. 매일마다 점심 먹고 나면 라떼에 디저트 곁들여 먹는 걸 엄청 좋아해요.""여자들은 단 커피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잘 안 마셔, 좋아하지도 않고."하예정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사실 저도 잘 안 먹어요. 많이 먹으면 몸에도 안 좋고요."심효진이 라떼를 시킬 때면 하예정은 보통 과일 주스를 시켰다."오늘은 왜 갑자기 날 데리러 올 생각을 한 거야?"전태윤은 낮고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오기 전에 전화라도 하지. 내가 회사에 없었으면 헛걸음할 뻔했잖아."오늘 그의 스케줄은 마침 점심시간 때쯤에 회사에 있었다.평소였다면 이 시간에 그는 보통 회사에 없었다."식사 시간이 다 됐는데도 일을 해요?"전태윤은 응하고 대답하며 말했다. "대부분 협상은 식사 자리에서 이뤄지지."하예정은 알겠다는 듯 대답하며 말했
"참,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하예정은 화제를 돌렸다.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전태윤은 하예정이 자신의 침묵 때문에 화를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왠지, 그녀가 화를 내지 않자 전태윤은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무슨 얘긴데요?""할머니께서 저희 집에서 주말 이틀 동안 묵고 싶대요. 저더러 당신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꼭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당신은 할머니 친손주인데 어떻게 동의하지 않을 리가 있겠어요?"할머니는 아마 부부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듯했지만, 괜한 생각이었다.그와 전태윤은 오붓한 시간은 없는 이름만 부부인 사이였다.낮에는, 각자 할 일을 했고, 밤에는 각자 따로 잘만 잤다.무슨 일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나 시간은 몹시 적었다.당시 초고속으로 결혼했을 때, 하예정은 자신의 결혼 생활은 파트너와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정말로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살고 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조금 마음이 흔들렸었다. 하지만 자신이 전태윤을 데리러 온 것에, 전태윤이 침묵을 하자 그녀는 피어오른 불씨를 꺼버렸다.계약했던 대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5개월 뒤면, 다시 솔로가 되는 것이다.전태윤은 정말로 할머니가 오지 않았으면 바랏다. 할머니는 능구렁이나 다름없이, 손주들을 골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그와 하예정은 아직 이름만 부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할머니는 일단 오게 되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든 두 사람을 한 침대에서 재우려할 게 뻔했다."우리 주말에도 각자 할 일로 바빠서 할머니 곁에 있어 줄 시간이 없으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본가에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적어도 본가에는 은퇴한 아들, 며느리가 있으니 할머니랑 놀아줄 수도 있고 말이야."전태윤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어쩐지 할머니가 혼자 결정하지 말고 꼭 전태윤에게 물어보라고 끊임없이 당부한다 했더니,
대화가 벽에 가로막힌 듯 뚝 끊겼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묵묵히 창밖의 풍경만 바라봤다.가게에 돌아갔을 때, 하예진도 마침 도착한 참이었다."언니."하예정은 차에서 내리며 언니를 불렀다.고개를 돌린 하예진은 동생 부부를 보자 포동포동한 얼굴에 미소를 띄며 동생에게 물었다. "태윤 씨와 어디 다녀오는 거야?""같이 식사하자고 회사로 데리러 간 거였어. 언니, 어때? 일자리는 찾았어?"차에서 내린 전태윤도 하예진에게 처형이라고 불렀다.하예진은 웃으며 대답하다 동생이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안색이 곧장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못 찾았어. 이력서를 한가득 넣었는데도 대답이 없으면 곧바로 거절하더라고."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가 이제 막 두 살 넘었다는 걸 알고는 나에게 아이가 그렇게 어린데, 일이 많으면 집중이 분산되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더라고. 그 말에 화가 확 차오르더라. 애가 있다고 일에 집중하지 않는 애 엄마가 어딨어?""그래서 나는 아이는 돌봐줄 사람이 있어서 출근 시간에는 일에 완벽히 집중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귀가 먹은 건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언제부턴지 애를 낳고 난 여자는 일을 찾는 데도 차별을 받는 것 같아."하예진은 오전 내내 일자리를 찾느라 지치고 배도 고팠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그러다 시댁에서 욕을 하며, 주형인과 헤어지고 나면 어떻게 살겠냐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사회를 떠난 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장점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니었고, 일을 찾을 수가 없어, 그녀가 회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회사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그녀는 다시 회계팀장이 되기를 바랐지만, 지금 보기에는 무슨 직책이든 일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언니, 괜찮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 맞는 자리가 있을 거야."언니를 달랜 하예정을 팔짱을 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밥부터 먹고,
식사를 마친 뒤, 하예진은 집으로 가 쉬겠다고 말했다.오전 내내 일자리를 찾느라 그녀는 몹시 피곤했다.일도 못 찾은 데다 적잖이 충격도 받아 그녀는 집으로 가 이력서를 다시 쓸 생각이었다. 지망을 더 넓히면 다른 일자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언니, 내가 바래다줄게."하예진은 자신의 제부를 쳐다봤다.전태윤은 적당히 대답했다. "처형, 전 먼저 회사로 가보겠습니다.""그래요, 운전 조심하고." 하예진은 그에 당부를 건넸다. 그렇게 전태윤이 떠나고 난 뒤에야 그녀는 아직도 자고 있는 아들을 안은 뒤 동생의 차에 탄 뒤 말했다. "태윤 씨 점심 식사 시간이 길지 않으면 넌 그냥 도시락을 회사로 가져다줘. 괜히 왔다 갔다 하게 하지 말고, 점심시간인데 쉴 시간도 없잖아.""알았어."하예정은 시동을 걸었다.그녀는 이제 다시는 전씨 그룹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괜히 언니에게 잔소리만 들을 게 뻔했다. 척 보기에도 언니는 전태윤이라는 제부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전태윤이 회사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오후 업무 시간이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그를 본 비서는 곧장 공경한 태도로 말했다. "대표님, 비서실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고개를 끄덕인 전태윤은 진중한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하며 비서에게 지시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만, 다른 건 다 빼고."그는 아메리카노만 좋아했다.비서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대표님, 오후에는 커피 안 드시지 않아요?"전태윤은 보통 오전에 한 잔 마시고 하루를 버텼다. 만약 오후에 마신다면 밤에 잘 자지 못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보통 마시지 않았다.전태윤은 비서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감히 더 묻지 못한 비서는 전태윤이 사무실에 들어가자 얼른 커피를 내리러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간 전태윤은 소정남이 망원경을 들고 창밖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습에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망원경을 확 뺏어 든 전태윤이 입을 열었다. "내 물건 함부로 건
전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 "예준하는 싸움 실력이 별로야. 그 예씨 가문도 A 시에서는 우리 가문과 마찬가지로 재계 서열 1위인 가문이라 안전을 위해서라도 예준하는 경호원을 더 두는 수밖에 없지. 너도 지금 안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놀라. 만약 예준하의 기세가 부러운 거면 너도 매일 경호원 주렁주렁 달고 다니든지."소정남은 원체 실력이 괜찮아 경호원은 필요 없었다.게다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면 너무 눈에 띄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비서가 노크하고는 들어왔다."대표님, 분부하신 커피 가져왔습니다."비서는 막 내린 커피를 가지고 와 천천히 전태윤 앞에 내려놓았다.비서가 나간 뒤, 소정남은 친구 겸 상사인 전태윤을 놀렸다. "점심에 아내랑 애정행각 하러 다녀오니까 오후에는 일할 정신 없지? 커피 몇 잔 더 하지 그래?"전태윤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애정행각은 무슨 그는 그와 하예정 사이에 또 안 좋은 일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같이 밥 먹으려고 퇴근하는 걸 데리러 온 하예정에게 자신은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았는데도 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아, 전태윤은 하예정이 앞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왜 그래? 안색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설마 부부 싸움한 거야? 내가 보기에 부인분 성격 엄청 좋아 보이던데."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한참을 침묵하던 전태윤은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소정남은 비록 입은 무거웠지만 가십을 너무 좋아했다. 전태윤은 소정남이 아는 게 너무 많아, 어느 날 취해서 자신에 대해 전부 다 이야기를 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그는 또 소정남에게서 하예정과의 어색한 침묵을 해결할 방법을 묻고 싶기도 했다.그리하여 전태윤은 입을 열었다. "나 어쩌면, 조금, 상처를 준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소정남은 두 눈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곧장 물었다. "어떻게 상처를 줬는데? 말해 봐."전태윤은 책상
"동명이 내일 같이 늘 보던 데서 밥 먹자더라. 그 자식은 매번 밥 살 때면 늘 식객당으로 가자고 하네. 거기 음식이 맛있기는 하지만, 가게 옆이 할머님이 차린 소희 카페라 거기 가서 느긋하게 있을 수만 없었다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그건 우리가 예전에 자주 가던 곳이잖아. 동명은 정과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녀석이잖아."예전에 세 사람이 아직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때, 전태윤은 아직 경험을 쌓고 있어 대표도 아니었을 때에는 신분을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탓에 세 사람은 중급 정도 되는 식당에 자주 갔다.소희 카페는 관성에서 제일 크고 제일 세련된 카페였고 그 주변에 있는 것은 옷 가게든 식당이든 격이 너무 떨어지지는 않았다.격이 너무 떨어지면 소희 커페가 끌어오는 손님을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그 카페에서 소비를 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고수입의 직장인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자신을 박하게 대하지 않아, 카페에서 나오면 늘 다른 맛집을 가거나 쇼핑을 하는 탓에 그 번화한 거리는 소희 카페를 중심으로 중고가 상권이 만들어졌다."갈 거야?""밥을 산다니 당연히 가야지."전태윤의 얼굴에 간만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와 소정남은 이동명과는 우정이 돈독한 편이었다.이동명이 밥을 산다니 얼굴을 내민다기보다는 괜히 집에서 하예정과 어색하게 서로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그럼 나도 갈게. 간만에 주말인데 놀기도 해야지. 밥 먹고 나면 너희 할머니네 카페에 가자. 밤에는 해변에게 바비큐하는 건 어때?"전태윤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바비큐를 할 바에는 차라리 골프를 치는 게 나았다.소정남은 한참 동안 재잘거린 뒤에야 사무실을 나섰다.소정남이 가자, 전태윤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아, 예정이가 말했지?""했어요."전태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나이가 지긋하셔서 그런지 기억력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할머니, 전 이미 할머니의 소원대로 하예정과 결혼했어요. 다른 일에는 절대로 끼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전태윤은 결국 도로 식탁에 앉아, 용기 뚜껑을 다시 열고 좋아하지 않는 스프링 롤을 묵묵히 먹었다.하예정과 함께 살다 보니, 그가 조금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평소에는 먹지도 않았던 간식들도 맛보게 됐다.아침 식사를 마친 전태윤은 베란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그녀가 기르는 화초들을 감상했다.그러다 11시가 되자 울리는 소정남의 재촉 전화에 못 이겨, 전태윤은 방으로 들어가 옷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하예정이 언니의 집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 전태윤은 아내와 마주칠 리가 없다고 생각해, 현대 SUV가 아닌 여느 때처럼 고귀한 롤스로이스를 타고, 여러 대의 경호차의 호위 아래 위풍당당하게 식객당으로 향하였다.도착한 뒤에는 할머니의 카페에 주차를 하고 식당까지는 걸어간다면 큰 소란은 일지 않을 것 같았다.전태윤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동명과 소정남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전태윤을 발견한 그들이 손을 흔들자, 전태윤은 한 무리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안쪽으로 걸어갔다.경호원들은 자연스레 세 사람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면 가까이서 도련님도 보호할 수 있었고, 도련님과 친구들의 식사도 방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오직 이동명과 소남정이 불러야만 그들의 도련님은 기꺼이 이곳까지 행차했다.전태윤 일행이 선택한 자리는 가장 외진 곳으로, 조용한 곳이었다."전태윤, 네가 주문해."이동명은 메뉴판을 전태윤에게 건네주었다.전태윤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자주 와봤잖아. 사장님한테 자주 먹던 걸로 달라고 해.""이번엔 좀 다른 거 먹지 않을래?"소정남이 맞받아쳤다. "얘는 입이 까다로워서 다른 메뉴는 못 먹을걸. 나도 늘 먹던 걸로."이동명은 친한 친구 두 명이 다 늘 먹던 걸로 하려는 것을 보자,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했다."화장실 다녀올게."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호원 한 명도 일어나더니 그의 뒤를 따라갔다.그들은 이곳에 있는 사람이 도련님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도련님에게 반한
자리로 돌아온 전태윤은 덤덤한 표정으로 음식이 올라오자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 친구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전태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하예정이 김진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던 장면뿐이었다."태윤아, 오늘 좀 이상한데?"음식을 한 술 집어 먹은 이동명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전태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는 왜 말도 안 하고 먹기만 해?"소정남도 이동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 "배고파서."전태윤은 아침에 입맛에 맞지도 않는 스프링 롤을 먹은 데다 양도 얼마 되지 않아 진짜로 배가 많이 고팠다.물론 기분은 더더욱 나빴다.기분이 나쁘니, 계속 먹고 먹고 또 먹는 것이었다.하예정이 김진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는 것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써야 하나? 질투를 해야 하나?그는 진작부터, 질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못나지 않은가!전태윤과 하예정은 쇼윈도 부부이며 계약서도 체결한 상태였다.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하예정이 결혼 기간에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김진우와 동거하는 등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눈을 감아줄 수밖에 없었다.전태윤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달랬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윤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하예정과 김진우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두 친구는 전태윤이 할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할머니의 목숨을 구해준 하예정과 결혼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태윤이 배고프다고 말하자 소정남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 지금 유부남이잖아? 그런데 왜 배를 곯고 다녀? 아내가 아침을 안 차려줘?"평소에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 소정남이 전태윤에게 아침을 먹자고 하면 전태윤은 늘 자신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껏 으스대는 투로 말했었다.소정남이 손을 내밀어 전태윤이 입고 있는 옷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너는 아내도 있으면서 왜 자기가 산 옷을 입고 다니는 거야?"전태윤은 굳은 표정으로 소정남의 손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나와 하예정는 쇼윈도에
여운별은 잠자코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하긴, 여운초가 이미 제 목소리를 들었으니 다음에 제가 변성하면 더 의심할 거예요. 이제 다들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하지만 하예정은 어떻게 저를 의심했죠? 몇 번 만나보지 못했는데.”용태호는 여운별을 힐끗 쳐다보다가 대답했다.“기억력이 좋거든.”여운별은 말을 잇지 않았다.여운초의 기억력도 아주 좋다.여운초는 10년 가까이 눈이 멀어서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다.“그리고 네 눈먼 장님 언니도...”“태호 씨, 여운초는 이제 장님 아니에요. 진작에 시력을 회복했거든요. 전이진 도련님이 신의의 제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찾아와서 눈을 치료해 주었다고 들었어요.”여운별은 말하다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그 장님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을까!”전이진이 여운초에 접근했을 때 그녀 아직도 장님이었으나 전이진은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때 명해은을 만나러 서원 리조트에 찾아가 여운초의 눈이 멀어서 전이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들쑤시기까지 했다.그러나 명해은은 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돈 쓸 줄만 알면 된다고 당당하게 쏘아붙였다.그녀의 두 고모를 울분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전씨 가문에서 미치광이처럼 떠들지는 못했다.이제 여운초는 시력을 회복했고 또 전이진과 혼인 신고까지 했다. 그녀가 전씨 가문에서의 지위는 더욱 견고해지기만 할 것이다.내일 저녁에 여운초는 명해은을 따라 연회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예전에는 상류층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추미자는 여운별을 데리고 참석했지만, 여운초는 절대 데려가지 않았었는데...여운별이 여운초를 심하게 괴롭혔을 때 여운초가 평생 관성의 상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비꼬기까지 했다.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지금은 여운별은 상류 사회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여운초는 전이진의 어머니가 데리고 다니며 접대하고 교제하고 있다!여운초는 지금도 여씨 가문의 모든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여운별은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용태호는 로비의 소파에 앉아 손에 술 한 잔을 들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술을 맛보았다.발소리를 듣고도 그는 여운별을 쳐다보지 않았다.여운별은 다가와 가방을 내려놓고 용태호의 옆에 앉으며 애교스럽게 소리쳤다.“태호 씨.”용태호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여운별은 깜짝 놀랐다.또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나?“식사하셨어요?”여운별은 더는 애교를 부리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식사하셨어요?”용태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몸을 뒤로 젖혔다.“테이블 위에 있는 그 초대장은 네가 내일 저녁 연회에 참석할 때 사용될 거야. 그리고 저기, 너에게 드레스 몇 벌과 보석 몇 세트를 사 놓았어. 마음에 드는 치마를 골라 입어.”용태호는 1인용 소파 위를 쳐다보았다.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그 소파 위에 여러 개의 정교한 가방과 몇 개의 크고 빨간 선물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여운별은 먼저 그 초청장을 들어 펼쳐 보았다.그리고 다시 일어나 드레스와 보석들을 살펴보았다.드레스는 화려하고 정말 예뻤다. 보석은 말할 것도 없이 아주 빛났다.여운별은 좋은 물건들을 본 적도 있고 사용한 적도 있지만, 용태호의 큰 씀씀이 앞에서는 여전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호 씨, 고마워요.”씀씀이가 이토록 대범한 것으로 보면 용태호의 자산은 아마도 전태윤과 전이진을 능가할 것이다.여운별은 만약 용태호를 도와 일을 성사시켜 그의 마음에 들어서 아이까지 낳는다면 앞으로 자신이 정말 용씨 사모님으로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하예정과 여운초보다 더 잘 살아야 했다.그녀는 용태호가 준 선물을 마주하더니 용태호에게서 받은 공포를 단번에 잊은듯했다.용태호 또한 항상 그녀의 목을 조르고 살벌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땐 단지 그녀에게 경고만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용태호는 웃으며 물었다.“좋아해?”“좋아해요. 태호 씨,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밤 반드시 잘할게요. 절대 허점을 드러내지 않고 잘해 볼게요.”용태호는 그녀
그와 동시, 용씨 별장.여운별은 이미 용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용태호가 그녀에게 사준 별장에도 용씨 성을 붙여주었다.그녀는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별장으로 돌아갔다.차는 여운별을 태워 별장 안으로 들어갔고 별장 내부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여운별은 곧 용태호가 왔을 것으로 추측했다..여운별은 자기도 모르게 좀 긴장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이제 그녀는 용태호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처음에 그녀는 앞으로 진짜 용씨 사모님을 대신해 용태호를 정복하면 그가 자신에게 고분고분해 질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난번, 용태호는 여운별의 목을 졸라 죽일 뻔했다. 용태호의 살벌하고 음흉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놀라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용태호가 여운별에게 맡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그가 정말로 여운별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감히 다른 생각을 가져 용태호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테니까.용태호는 금전적인 방면에서는 매우 대범했다. 아름다운 옷과 보석 세트들은 물론, 돈도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이 주었다.그가 별장으로 오지 않아도 수시로 그녀에게 용돈을 자주 주었다.만약 용태호에게 목이 졸리지 않았다면 여운별은 아마 용태호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했을 것이다.“사모님, 집에 도착했습니다.”차를 멈춘 뒤에도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여운별이 움직이지 않자 경호원은 조용히 몇 분을 더 기다렸다. 그러나 여운별이 여전히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앉아있자 경호원은 고개를 돌려 일깨워줄 수밖에 없었다.“집에 도착하셨습니다.”.그러나 이곳은 여운별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여운별이 속으로 발악했다.그녀의 집은 여씨 가문의 대별장으로 그곳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자라왔던 곳이다.그러나 지금 여운초에게 점령당했다. 그리고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집이 정말로 여운초의 명의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와 남동생을 데리고 그곳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한때 모든 노동자
“이모, 엄마 여기 너무 추워요. 바람도 너무 세요.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바람에 날아갈 뻔했어요.”녀석은 과장되게 말했다.“그럼 옷을 좀 다 입어. 바람에 날아가면 안 되니까. 우빈이가 날아가면 이모가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할지 모르잖아.”우빈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이모, 거짓말이에요. 바람이 너무 센 건 맞지만 저를 날려 보낼 수 없는걸요. 저는 다 커서 바람이 저를 날려 보낼 수 없어요. 하지만 정말 추워요. 엄마는 여기에 눈이 올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눈이 오지 않아요.”강성은 관성보다 확실히 많이 추웠다.다행히 하예정이 우빈의 여행 가방에 두꺼운 옷 몇 벌을 쑤셔 넣었다.“저와 아저씨는 이미 엄마의 새 차에 올랐어요. 차에는 히터가 켜져 있어서 지금은 그렇게 춥지 않아요. 게다가 아저씨가 저를 안아 주시니 저는 더 따뜻해졌어요.”“다행이네. 그럼 이따가 차에서 내릴 때 외투를 더 입는 것을 잊지 마. 이모가 너의 여행 가방에 두꺼운 옷을 넣어놓았거든. 그리고 날씨가 추운데 엄마한테 천천히 운전하라고 하고.”“엄마가 운전하는 게 아니라 일구 삼촌이 운전하고 계세요.”우빈은 강일구와 가장 친했다.그리고 강일구는 하예진을 따라 강성으로 와서 그녀를 보호하도록 했다.우빈은 공항에서 강일구를 만났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우빈은 강일구가 그를 여러 번 껴안고 돌게 하는 바람에 노동명이 하마터면 질투할 뻔했다.“강일구 아저씨 운전 실력이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에 이모께서 안심하라고 전해달래요.”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일구 아저씨가 운전하시니, 그럼 이모가 안심해도 되겠네. 그럼 우빈이 엄마는?”“제 옆에 계세요.”우빈은 하예진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그리고 노동명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너무 추워요. 저를 다시 꼭 안아 주세요. 아저씨 품이 너무 따뜻해요.”노동명은 코트를 펼쳐 녀석을 코트 안에 감쌌다.“공항에서 엄마 집까지 거리가 좀 있어. 먼저 좀 자. 도착하면 깨워줄게.”노동명과 하예
그러나 하예정은 어르신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태윤 씨가 호영 도련님과 고 대표님께서 휴가를 떠나 보름 만에 돌아온다고 했어요. 할머니께서 지금 가시면 놀러 갈 수 있지만, 혼담을 꺼내려면 주인이 집에 없을 때 가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현장의 어르신들은 순간 멍하니 할 말을 잃었다.“그럼 애들이 돌아오면 그때 혼담을 꺼내러 가자. 우리도 가서 고 이사님 부부와 친해져야지.”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아직도 매우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세요?”“전화로는 통화를 많이 했을 뿐 만나본 횟수가 적거든.”하예정은 할 말이 없었다.쌍방의 부모님들은 전화상으로만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만나본 횟수는 많지 않았다.주로 거리가 좀 멀었기 때문이다.“식사하세요.”전태윤이 부엌에서 나와 소리쳤다.전씨 할머니께서 집에 계시니 남자들은 요리하고 여자들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기를 기다렸다.평생 딸을 낳아보지 못한 전씨 할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아꼈다.손녀가 또 태어나지 못한다면 손자며느리를 손녀로 여기면서 사랑해줄 것이다.전태윤은 꿈에서도 아내의 배 속의 아기가 딸이 되고 싶었다.그렇게 되면 그의 딸은 전씨 가문의 가장 사랑스러운 보물로 될 것이다. 조상처럼 모셔야 하느니라!그러다가도 두 사람이 오랫동안 이 아이를 품었다는 생각에 딸이든 아들이든 전태윤은 태연하게 생각하기로 했다.하예정이 낳은 아이가 꼬리가 달린 아이라 할지라도 전씨 가문의 첫 손자이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랄 테니까.여자들은 몸을 일으켜 식사하러 갔다.“할머니.”전창빈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그는 웃으며 전씨 할머니와 인사했다.전씨 할머니는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그래도 먹을 복이 있나 보다.”“할머니께서는 늘 먹을 복이 많았거든요.”하예정은 할머니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할머니, 천천히... 조심하세요.”할머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야말로 조심해.”전씨 할머니의 시선은 하예정의 배 위에 떨
전현림이 황급히 말했다.“엄마, 이따가 소민이랑 쇼핑하러 갈게요. 우리 여보가 좋아하는 무엇이든 살 거예요. 소민이가 행복하기만 되니까요.”전씨 할머니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할아버지가 될 사람인데 먼저 자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해.”“엄마, 저는 항상 태윤이와 창빈의 본보기거든요.”“두 사람 다 부엌에 가서 막내를 도와 얼른 밥해.”“엄마, 밥 드세요! 창빈이가 진작에 다 준비했어요!”전현림은 자랑스러운 듯 소리쳤다.전씨 할머니는 전태윤을 곁눈질했다.전현림은 멋쩍게 웃더니 전태윤에게 눈빛을 보냈다. 전현림 부자는 그제야 모두 주방으로 향했다.두 남자를 떼어낸 할머니는 표정을 바꾸어 웃으며 장소민과 하예정에게 말했다.“좀 이따가 우리 셋이 함께 쇼핑하러 나가자. 나도 오랜만에 쇼핑하지 못했는데 우리 증손녀에게 옷 몇 벌 사줘야겠다.”장소민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우리 치마 몇 벌 더 사 와요.”하예정도 바로 말을 이었다.“할머니, 어머님.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꼭 딸이라고 장담 못 해요.”전씨 할머니와 장소민은 동시에 하예정을 쳐다보았다.하예정은 바로 수그러들었다.“네. 가요. 가요.”어르신들께 환상을 드리는 것도 나을듯싶다.아기가 태어나 환상이 깨지는 순간 하예정을 탓할 수는 없으니까.하예정은 늘 아들을 낳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전씨 가문에서 몇 대째 딸이 태어나지 못했는데, 과연 하예정이 정말 운 좋게 첫 아이로 딸을 낳을 수 있을까!우빈도 그녀의 배 속에 있는 동생이 남동생이라고 했다.“참, 우빈은?”전씨 할머니는 그제야 우빈이 녀석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왠지 집으로 돌아온 뒤로 뭐가 빠졌다고 생각되었는데. 우빈이가 없네.”“동명이가 데려갔어?”하예정이 대답했다.“우빈이가 할머니께서 이제야 자신이 생각난다는 사실을 알면 울어버릴걸요? 할머니께서 늘 우빈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돌아오신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생각나셨잖아요.”“주말이라 우빈은 동명 오빠를 따라 강성으로
“우리 형제들은 전부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는데 할머니께서 저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교육 성과를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겠네요.”전씨 할머니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셨다. 그녀의 보배로운 장손은 말주변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이는 확실히 전부 할머니의 업적이었다. 전씨 할머니가 전태윤에게 하예정이라는 손자며느리와 결혼시켜주었기 때문이다.하예정의 웃음은 멈춘 적 없었다.전씨 할머니가 전태윤과 말다툼할 때마다 하예정은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고 있었다.“예정아, 우리 태윤이와 말하지 말자. 종일 굳은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다니, 너니까 태윤이와 함께 할 수 있지, 다른 여자들은 아마 멀리 쩍 피했을 거야. 애들도 밤에 태윤이를 보면 무서워서 울어버릴걸.”전태윤의 얼굴은 온통 잿빛으로 변해버렸다.“아니에요. 저는 태윤 씨가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전혀 무섭지 않거든요. 저에게 엄청 부드럽고 다정하게 자상하게 대해줘요. 저는 마음에 무척 드는걸요.”전태윤은 또 이내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역시 아내밖에 없네.”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쯧쯧... 싱글들이 너희들을 보면 얼마나 괴롭겠어.”“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싫으세요?”전태윤이 되물었다.전씨 할머니는 너무 행복한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좋지. 너무 좋지. 네가 예정이와 결혼하니 내가 너무 기뻐. 아이고, 누가 처음에 절대로 예정이를 사랑할 리가 없다고, 절대로 아내로 삼지 않겠다고 맹세했는지 몰라...”전태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할머니를 나무랐다.“할머니, 옛날 일은 좀 끄집어내지 마세요.”하예정은 으쓱하며 말을 꺼냈다.“제 남자는 절대로 제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해요.”“난 너의 그 패기가 너무 좋아!”그렇게 두 여자는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전태윤을 뒤로한 채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전태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전태윤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전씨 할머니는 정말 개구쟁이다.또한,
“눈이 보고 싶으면, 아기가 태어난 후에 가서 눈을 구경시켜 줄게.”“네.”부부는 장거리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다들 너무 바빴다.전태윤 부부의 차가 막 별장에 들어가 주차되었을 때 전씨 할머니도 돌아왔다.전태윤은 차에서 내려 전씨 할머니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자 할머니께 말을 건넸다.“할머니, 우리를 잊으신 건 아니네요. 예정이가 임신해서 돌봐주러 오시겠다고 하셨으면서 집에 자주 안 오시고. 자꾸 어디로 도망가시는 거예요? 어느 집 어르신이 할머니처럼 말을 안 들어요? 나이가 드셔서도 여기저기 뛰어다니시고. 전화를 걸어도 몇 마디 못 하고 짜증스럽게 끊어버리시잖아요.”전씨 할머니는 손자의 불만에도 화를 내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뛰어다니는 게 좋다고 생각되지 않아? 내 건강이 좋다는 의미잖아. 내가 만약 침대에서 꿈쩍도 못 하고 누워만 있다면 너희들이 더 골치 아플걸.”“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우리 할머니는 그러실 리가 없거든요.”하예정이 말했다.전태윤도 엄숙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손자며느리가 다가오자 전씨 할머니는 즉시 표정을 바꾸어 억울하고 두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빨리 하예정의 뒤로 숨어서 전태윤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뒤로 숨어 주눅이 드는척했다.“예정아, 태윤이가 조금 전에 잘 욕했어. 자꾸 옛 친구들과 놀기만 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자꾸 잔소리해.”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전씨 할머니는 또 연기의 달인으로 변신했다.하예정은 할머니의 연기에 맞춰주며 한편으로는 전씨 할머니를 보호하면서 전태윤을 나무랐다.“옛 친구들과 모여서 놀았을 뿐인데 왜 그래요?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뭐라고 자꾸 하지 마세요.”그리고 돌아서면서 다시 전씨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할머니, 밖에서 너무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나이도 점점 많아지시고 하니 안전에 유의하셔야죠. 그래야 우리도 시름 놓죠
전태윤은 마음이 아팠다.“관리하기 싫으면 상관하지 마. 내가 도와서 지켜보면 되니까. 예정아, 난 네가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하예정의 손이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여보, 당신을 볼 때마다 저는 할머니께 항상 감사드려요. 이렇게 훌륭한 당신과 결혼하게 해주셔서. 그리고 당신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려요. 저를 미워한 적도 없을뿐더러 제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한 적도 없어서. 태윤 씨가 나 힘들어하는 걸 가슴 아파 하는 것도 알아요. 저는 이미 당신과 결혼한 이상 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서 제가 짊어질 짐은 전부 질 거예요. 피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을 거예요. 태윤 씨도 충분히 바쁠 텐데 제가 어찌 또 도와달라고 하겠어요.”하예정은 자신 있게 또 말했다.“모든 것을 잘 해낼 거예요. 제가 불평을 털어놓는 것도 아닌걸요. 알잖아요. 제가 사업에 관심이 엄청 많다는걸.”전태윤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품에 안고 부비부비한 뒤에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익숙해지면 나아질 거야. 우리 엄마도 봐봐. 수십 년 동안 관리해왔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져서 엘리트 직원들도 많이 배양하셨잖아. 지금은 장부만 잘 확인하면 그뿐이거든. 너도 이제 우리 가문에 들어왔으니 아기가 태어나면 장차 적응해서 너만의 심복을 키워 우리 엄마처럼 믿을만한 부하 직원에게 맡겨.”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어머님께 배울게요. 빨리 일 보세요. 일 끝나면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어요. 어머님께서 방금 메시지로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셨어요. 창빈 도련님께서 직접 요리한다고 하셨는데.”전창빈은 곧 멀리 떠나야 했기에 그로 인해 싸운 부모님께 보상해드릴 겸 함께 식사하러 왔다.이번 주말에도 부모님을 잘 모시다가 월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원림성의 A시로 날아가 선우씨 가문에 가정 요리사에 지원할 계획이다.멀리까지 가서 요리사로 되는데 전창빈은 선우민아가 그를 채용하지 않을까 봐 그녀에게 자신이 전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