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만들었었는데, 성소현 씨가 갑자기 찾아와서요. 엄청 마음에 들어 하길래 우리는 같이 살기도 하고 언제든지 다시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그냥 선물로 줬어요."그 말을 들은 전태윤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하예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윤 씨, 화난 거예요?"전태윤은 가라앉은 얼굴로 차갑게 대꾸했다. "날 주려던 물건을 내 동의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줬는데, 화내면 안 돼?"그것도 성소현에게 주다니!성소현은 지금 그녀의 남편에게 구애를 하고 있는데, 그건 알기나 하고 있는 걸까? 하예정은 지금 자신에게 줄 마네키네코를 그녀의 정적에게 준 것이다!정말 관대하기 그지없었다!하예정은 아예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국수를 들고 먹으면서 다가왔다. 전태윤의 옆에 붙어 앉은 그녀는 달래듯 말했다. "태윤 씨,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내일 바로 하나 만들어 줄게요, 화내지 마요."전태윤은 가라앉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두 입술을 굳게 닫혀 있었다.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을 알아챈 하예정은 국수를 그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아니면, 제 저녁 양보할까요?"전태윤은 얼굴이 서슬 퍼레졌다. "당신이 먹었던 걸, 나한테 준다고?"그는 아주 가벼운 결벽증이 있어, 다른 사람이 먹었던 걸 절대로 받아먹지 않았다."저도 딱 몇 입밖에 안 먹었어요. 싫으면 말아요, 저 아직 배 안 불렀어요." 하예정은 곧바로 손을 거두며 계속 식사를 이어갔다. "전 참 요리를 잘해요. 평범한 국수도 제 손을 거치니 엄청 맛있어졌네요. 당신은 싫다고 하니, 참 먹을 복도 없는 사람이네요.""하예정, 말 돌리지 마. 우린 지금 마네키네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선물도 다 했는데, 다시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성소현 씨가 어머니랑 같이 바다에 놀러 간다는데 아마 지금쯤 이 도시에 없을지도 몰라요. 게다가 전 성소현 씨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걸요."그런 부자들이 사는 별장은 다 고급진 곳이라 보안 시스템도 아주 철저했
전태윤은 하예정이 들고 있는 그릇을 흘깃 쳐다봤다. 자신은 속상해 죽겠는데 하예정은 맛있게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자신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데 하예정은 옆에서 식사나 이어가고 있었다.정말이지… 조금 눈치가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뭐가 됐든 두 사람은 다른 부부와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감정이 없이 그저 함께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마음속의 불만을 누르며 전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소현 씨라면, 성씨 그룹의 아가씨 말하는 거야? 그 사람이 당신은 왜 찾아간 건데? 두 사람은 언제부터 알고 지낸 거야?"비록 진작에 그 이유를 알고 있었어도 전태윤은 모른 척 물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성소현에게서 알아낸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예정의 앞에서 그는 한 번도 성소현은 거론한 적 없었다.하예정은 자신이 성소현과 알게 된 과정을 전태윤에게 말해주었다.성소현이 말한 것과 일치했다."성소현 씨는 절 찾아와서 저에게 전씨 가문 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토로하면서 구애를 하는데 가족이 응원해 주지 않는다고 속상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어떻게 해야 도련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도 물었고요."그 말에 전태윤은 눈썹을 들썩였다.성소현이 무려 하예정에게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를 물었다니?전태윤은 태연한 얼굴로 하예정을 쳐다봤다. "당신에게 무슨 방법이 있어? 아니면 다른 남자를 좋아해 본 적이 있는 거야?""저한테 무슨 경험이 있겠어요? 제 첫사랑도 시작하자마자 끝나고 그랬는 걸요. 그러니까 사랑 쪽으로 저는 백지장이나 마찬가지예요."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보며 말했다. "물론, 당신보다는 좀 낫죠. 당신이야말로 백지장이에요, 하하. 얼굴 한번 만진다고 당신은 펄쩍 뛰면서 변태 보듯이 절 경계하잖아요."전태윤은 가라앉은 얼굴로 하예정을 노려봤다.하예정은 헤헤 웃으며 식사를 얼른 이어갔다. 이내 식사를 다 마친 그녀는 스스로 칭찬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제가 한 요리지만 참 맛있어요.""우리 내일 국수 먹자."
그리고 이제 갓 서른밖에 되지 않았는데 뭐가 다 늙은 나이라는 거지?하예정이 그에게 늙었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자제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전태윤은 아마 하예정의 말에 자극받아 정체가 탄로났을 지도 몰랐다."우리 대표님 나이 안 많아, 늙은 나이가 아니야!"전태윤은 화를 누르며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하예정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대표님 본 적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늙지 않았다는 걸 알아요? 나이가 많지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큰 전씨 그룹을 장악할 수 있겠어요? 비록 전 재계의 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관성에서 전씨 그룹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아요. A 시의 그 무슨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라는 것도 알고요."전태윤이 덧붙였다. "…예진 그룹."A 시의 예진 그룹은 전씨 그룹과 마찬가지로 그 지역의 재계 거물이었다. 예진 그룹 배후에 있는 예씨 가문 역시 억만장자 가문인 데다 그 가문의 실권자 예준성은 전태윤보다도 한 살이 어렸다.예진 그룹은 관성에도 자회가 있었지만 발이 닿는 분야가 전씨 그룹과는 상충되지 않아 꽤 평화로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어느 그룹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대단한 기업이라는 건 알아요. 만약 당신 대표님이 아직 젊다면 어떻게 오래 일한 임직원들을 누를 수 있겠어요? 대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걸 보면 회사에서 주장이 강한 편 아니에요?"전태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하예정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분명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으면 경력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으니 오랜 직원들을 누를 수 없을 게 분명해요."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예정의 분석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았다. 물론 나이 서른이 늙었다고 한다면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저 성소현 씨랑 마음이 너무 잘 맞아요. 그 사람은 용감히 사랑을 쟁취할 줄 알아요. 게다가 전씨 가문 도련님은 또 솔로니까 전 성소현 씨가 진짜 사랑을 추구하는
"제안이 하나 있긴 한데, 나는 성소현 씨 편이라서 내 제안을 당신에게 말할 수는 없어요."하예정은 말을 마치고 수저를 정리하고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간다.전태윤은 주방 문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한참 동안, 전태윤은 일어나서 주방 문 앞에 기대어 서서 조용히 묻는다. "너와 성소현은 단지 처음 만난 사이인데, 왜 그녀 쪽에 서 있어?""성소현 씨와는 처음 만났지만, 당신의 사장과는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누구 편을 들겠어요? 게다가 성소현 씨의 성격이 마음에 드는데, 그래서 그녀를 지지해요, 안되나요?""당신의 사장은 평소에 틀림없이 거만한 사람이겠지만, 그가 성소현 씨한테 정복되어 아내를 총애하는 사람이 되면 다시는 거만해지지 않을 거예요. 이런 줄거리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아이고, 소설까지 쓸 수 있겠네요.""우리 서점은 기본적으로 한가할 때가 많아서 내게 시간이 있어요. 인터넷 쇼핑몰이 장사가 안 되면 소설을 써보는 것도 하나의 길이예요. 성소현 씨가 전 사장에게 구애하는 것을 소설로 써내면 꼭 성공할 거예요!"전태윤: ......얼마나 돈 벌려고 그러는 거야!그녀에게 준 생활비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하루 종일 돈 벌 생각만 해."우리 사장은 성소현에게 정복당하지 않을 거야. 나는 우리 사장 편이다."전태윤은 이제 거짓말하는 데도 능숙해진다. 얼굴도 빨개지지 않고 씩씩거리지도 않는다."아니면, 우리 둘이 내기합시다. 성소현 씨가 성공할 수 있는지 내기하는 게 어때요? 당신이 이기면 당신을 위해 세 가지 일을 해줄게요. 하지만 이 세 가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야죠. 만약 당신이 지면, 당신은 세탁하고 요리하고 청소해야 해요, 어쨌든 집안일을 도맡아 두 달 동안 해야 해요."전태윤이 흔쾌히 승낙한다."나중에 네가 외면하지 않도록 내기 계약을 쓸테니, 우리 사인하자."말을 마치자 전태윤은 몸을 돌려 내기 계약을 쓰러 간다.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데다가 계약까지 작성하자 하예정은 자신감이 좀 없어진다.
그가 남자를 좋아한다면, 소정남이 제일 먼저 사직하고, 그와 멀리 떨어져 있을 거야.몸에 이상이 있다고?그는 아직 그녀에게 큰 관심이 없다. 만약 관심이 생기고 둘이 진정한 부부가 된다면 두고 보자!한참 동안 전태윤은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고, 힘껏 방문을 닫는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지금 얼마나 불쾌한지 알 수 있다.전태윤이 방문을 닫은 뒤에야 하예정은 몸을 곧게 세운 뒤 그 종이를 들어 구겨 휴지통에 던지며 중얼거린다. "내가 주도면밀하게 생각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 질 거야."이 일은 그녀에게 상대방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기 전에는 쉽게 내기하지 말며 그렇지 않으면 수시로 내기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내기하자고하고 또 마음을 바꾼 것에 대해 하예정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어쨌든 두 사람은 아직 내기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기에 생각을 바꾼 것도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콧노래를 부르며 거실의 불을 끄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큰 침대에 엎드려 잠시 휴대폰을 하다가 겨우 씻고 잔다.다음날 일어나 습관적으로 창가로 가서 두꺼운 커튼을 열고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파고들어 하예정은 몸을 움츠리고 얼른 창문을 닫는다.밖에 하늘이 어둑어둑해서 비가 올 것 같다.방금 그 서늘한 바람이 그녀에게도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음을 알린다.관성과 A시는 같은 성에 있어 기후가 비슷하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는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태양이 살짝 솟아오르면, 기온은 점점 상승하여 또 서늘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날씨가 추워지고 비가 오면, 사람들은 이제 얇은 외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기지개를 켠 후에야 하예정은 씻고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와 주방으로 들어가 전태윤에게 국수를 끓여주려고 한다. 그는 오늘 국수를 먹겠다고 했으니까.냉장고 문을 열자 안에 식재료가 별로 없고 계란 몇 개만 남은 것을 본다. 그녀가 국수를 만들 때 가장 즐겨 먹는 고수는 어젯밤에 다 먹었다.하예정은 먼저 시장에 가서
부부는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전태윤은 아침 달리기를 할 거고 하예정은 전기 자전거를 타서 장보러 시장에 갈 것이다. 하예정이 전기 자전거에 올라탈 때 전태윤은 그녀에게 말한다. "채소를 많이 사 네 서점에 가지고 가. 점심에 요리를 하고 배달 음식을 먹지마.""알았어요.""또 시켜먹으면, 매일 관성 호텔 직원에게 너한테 음식을 배달해 달라고 할게."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노려본다. "돈을 탕진하겠어요!"전태윤은 정색을 한다.멀지 않은 곳에서 지나가는 척하는 경호원은 하예정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할 뻔한다.더 이상 전태윤과 말하기 귀찮아 하예정은 전기 자전거를 타고 간다."좋고 나쁨도 모르는 계집애!"그녀가 멀리 떠나자 전태윤은 비로소 한마디 평한다.하예정은 시장을 구경하고 적지 않은 신선한 채소와 장기간 보관할수 있는 과일들을 사가지고 냉장고에 꽉 채운다. 그리고 감자, 호박, 동과, 양파를 봉지에 담아 바닥에 내려놓는다.아침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전태윤은 하예정의 전적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린다.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하예정은 국수를 만들기 시작한다.그녀는 돼지 내장을 조금 사와서 깨끗이 씻고 조각으로 자른 다음 파 두 개와 고수 한 줌을 씻어서 재료를 준비한 후에야 냄비를 씻기 시작한다.전태윤은 하예정을 쳐다보고는 곧 베란다로 나가 그네 의자에 앉는다. 베란다에서 꽃들이 가득한 것을 보며 그네 의자를 흔들니 아주 편안하게 느껴진다. 어쩐지 그녀는 매일 이곳에서 잠시 앉아 있어야 한다."따릉따릉따릉......"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린다.소정남에서 온 전화이다.전태윤은 전화를 받지만, 주방에 있는 아내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춘다."사장님, 형수님 고향의 친척들이 조정원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형수님을 찾아가 조정하려고 합니다."하예정의 일은 대부분 소정남이 처리한 것인데, 무슨 일이 있는지 그가 제일 먼저 알수가 있다.전태윤의 눈빛은 어둡고 차갑다. 그는 싸늘하게 묻는다. "아직 다
정말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하예정은 불과 몇 분 만에 전태윤이 또 그녀를 도와 한가지 번거로운 일을 해결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하예정은 돼지내장국수를 다 만든 후 큰 그릇 두 개를 든다. 그리고 국수에 식초와 고추장을 조금 넣는다. 너무 매워서 못 먹을까 봐 고추장은 많이 안 넣는다.관성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태윤 씨, 국수를 먹어요."하예정은 자신의 국수 한 그릇을 들고 주방을 나서며 베란다에 있는 전태윤을 부른다.전태윤이 대답하지 않지만 베란다에서 들어온다.식탁에 자신의 국수가 없는 것을 보고 그는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국수를 들어낸다."식초나 고추장을 넣을 거면 스스로 넣어요. 고추장은 우리 언니가 직접 만든 거예요. 언니가 매운 음식을 좋아해요." 자매의 입맛은 다른데, 하예정은 보통 국수를 먹을 때만 고추장을 넣는데 평소에는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하예진은 오히려 맵지 않으면 먹기 싫은데 흰 죽 한 그릇을 먹어도 고추 몇 개를 먹는다. 하예진의 집의 베란다에는 큰 화분이 여러 개 놓여 있는데, 화분 안에 심은 것은 꽃이 아니라 고추이다."나는 식초와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하예정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며 웃으면서 말한다. "매운 거 싫어하는군요. 그러면 다음에 요리를 할 때 고추를 넣어서 너는 바라만 보고 먹을 수 없게 할 거예요."전태윤, "......"잘못하여 그의 작은 약점을 털어놓는다니.하예정은 그가 정색을 하고 엄숙하게 국수를 먹는 모습을 보고 몹시 재미없다고 느낀다. 그와 같이 밥을 먹으면 낭비하기 쉽다.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아침을 먹으며 실검 뉴스를 본다.이리하여 그녀는 매우 빠르게 먹을 수 있는데 국수 뿐만 아니라 국물까지 다 먹는다.하예정은 핸드폰을 접고 주방으로 들어가려고 그릇을 들자 맞은편 남자의 그릇에 국수는 없고 국물은 다 마셔 버렸고 그릇 바닥에 돼지 내장, 파, 고수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본다.전태윤이 출근할 때 업무량이 많아서 배가 고프지 않을까
하예정은 전태윤의 돈을 거절하고 말한다. "결혼 후 돼지 내장을 사 본 적이 없어서 네가 안 먹을 줄 몰랐어요. 근데 이제 알았어요. 다음에는 네 그릇에 넣지 않을게요. 하지만 돈을 안 받을 거고 당신도 걸핏하면 돈을 내놓지 말아요. 당신이 정말 큰 부자처럼 집 지어도 될만큼 돈이 많다고 생각하나요?"정말 그런 재력이 있다면, 수천 만 원의 현금을 꺼내 그녀에게 손쓸 때까지 돈을 세어보게 해라."아까 내가 돼지 내장을 씻는 걸 보고도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말할 줄도 모르고 괜한 낭비했어요......"돈다발 한 묶음을 하예정의 빈 그릇에 넣는다.하예정의 불평은 뚝 그친다.전태윤은 하예정의 그릇에 돈을 넣고는 다시 그녀에게 돈을 돌려줄 기회를 주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하예정은 그릇 안의 돈을 보고, 또 약간 도망치는 듯한 전태윤을 본다. 그는 이미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디딘다."태윤 씨, 지금 나를 구걸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예요?""펑"하는 반응이다.방문이 닫히자 전태윤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하예정은 그릇에 있는 돈을 들고 중얼거린다. "돈이 있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네. 네가 먼저 준 거지, 내가 너한테 달라고 한게 아니야. 돈으로 내 입을 틀어막으면 네가 몇 번이나 할 수 있는지 보자."세어 보니 겨우 30만 원밖에 안 된다."쳇, 고작 30만 원인데, 정말 재력이 있으면 큰돈을 줘야지!"하예정은 또 욕을 한마디한다.전태윤이 돈을 주는 행동은 모욕성이 매우 크다.물론, 만약 전태윤이 자주 이런 방법으로 그녀의 입을 막으려 한다면, 그녀는 여전히 매우 기뻐할 것이다.돈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한 후, 주방을 정리하고, 채소를 담아 가게로 가져가 점심에 먹을 준비를 하고, 하예정도 밖에 나가야 할 것이다.집을 나서자마자 언니로부터 전화를 받는다."언니."언니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길까 봐 하예정은 항상 언니의 전화를 제일 먼저 받는다."예정아, 아직 출근 안 했지?""막 나갔어. 지금 계단을 내
우빈이가 툭하면 어린이집에 안 가는 데 익숙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명확하게 일러둬야 한다고 하예정은 생각했다. 이번에는 용정이 모처럼 놀러 왔고 또 용정이 관성에서 친구란 우빈이밖에 없으니, 이번만은 응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우빈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을 약속했다.용정도 따라서 말했다.“아주머니, 다음번에는 제가 여름방학 혹은 겨울방학을 하는 틈을 타서 올 게요. 그러면 누구도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잖아요.”“이모, 지금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서 얘기하면 안 돼요?”우빈이한테는 지금 휴가를 내는 일이 급선무였다.그래야 시름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째려보았다. 전태윤은 일부러 하예정의 시선을 피하여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쳐다보는 척했다. 하혜정은 속으로 남편이 우빈이의 일을 자신한테 떠밀었다고 투덜댔다.“알았어.”하예정은 마지못해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예진이 전화를 받자 하예정이 말했다.“언니, 우빈이가 할 얘기 있대.”그러고 나서 휴대폰을 우빈이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우빈아, 네가 직접 엄마하고 얘기해.”우빈이는 전화를 받아쥐고 하예진에게 휴가를 내려는 사유를 자초지종 말했다.하예진도 하예정과 똑같은 말을 하고 나서 우빈이가 하루 휴가를 내서 모처럼 찾아온 친구랑 노는 것에 응낙했다.그러자 우빈이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돌려준 후 용정의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했다. 그러고는 대결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용정에게 말했다.“용정아, 나 요즘 아주 열심히 무술을 연마했어. 우리 한 번 대결해.”용정이 자신만만해서 말했다.“넌 나한테 질 거야. 나한테 져서 화내면 안 돼. 알았지?”지난 여름방학 때 두 사람이 함께 놀 때 우빈이가 항상 져서 기분이 언짢아했었다.용정은 그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모연정이 용정이보고 우빈이는 손님인데 왜 양보하지 않았냐고 핀잔했다.하지만 용정은 어떻게 양보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 자연스럽게 져주는 법을 모르
전태윤이 말하면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예준성도 뒤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다행히 평소에 우리 두 집이 서로 가깝게 지냈고 또 앞으로 친척이 될 사이니 말이죠. 그렇지 않고야 제가 미안해서 어찌 이렇게 이른 아침에 찾아와서 폐를 끼치겠어요.”별장 구역은 아주 조용했다. 가끔 조깅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였다.“용정이 모처럼 왔는데 한시 급히 친구와 놀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용정의 무술 실력이 아주 많이 는 거 같아요. 아까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과 달리는 속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 우빈이는 아무리 용을 써도 용정을 못 따라잡아요.”“사람마다 다 장점과 약점이 있어요. 용정의 약점은 식탐이 많아요. 매번 집에만 돌아오면 준영이를 얼려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다 해달라 해요. 번마다 배를 두드리면서 먹어요.”“연정 씨는 애가 하도 많이 먹길래 배에 탈이라도 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다행히도 매일 무술을 연습하느라 많은 열량을 뺐지요. 그렇지 않으면 진작 뚱보가 되었을 겁니다.”“애들은 다 그래요. 크면 저절로 다 낫는 법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저도 어린 시절에 먹길 엄청나게 좋아했대요. 하지만 커서 난 식탐 많은 사람으로 취급받은 적 없어요.”커서는 혼자 통제할 수 있으니 제멋대로 먹지 않았을 뿐이었다.예준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식탐 때문에 손해 볼 수도 있어요.”두 어른과 두 어린이는 반 시간 남짓이 달린 후 방향을 바꿔서 집으로 달렸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할 무렵에 하예정은 이미 일어나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빈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대문 입구로 마중 나갔다.“이모!”두 꼬맹이가 먼저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예정을 본 우빈이는 깡충거리면서 뛰어갔다.용정도 우빈이 뒤를 따라 뛰어갔다.“아주머니.”“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니?”하예정은 용정을 보고 반색하며 맞았다.비록 마당에 세워진 예준하의 차를 보긴 했지만
전태윤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이러니 두 사람이 친구로 될 수 있는 거네요. 두 사람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니 말이죠. 저도 꼭두새벽에 우빈이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함께 조깅하러 나가는 중입니다.”“같이 나가는 건 어때요? 같이 산책해요.”전태윤이 예준성 부자한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제안했다.예준성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럽시다. 어차피 저도 이제 더 잘 수도 없는데요.” 예준성은 용정을 보면서 말했다.“우빈이 데리고 앞에서 놀아야 해.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알았지?”“우빈이더러 용정을 잘 데리고 놀라고 해야죠. 당신들은 멀리서 온 손님이니 응당히 우리가 주인답게 잘 대접해 드려야죠.”두 아이는 진작 손잡고 앞으로 뛰어 가버렸다.예준성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용정은 낯 갈이도 잘 안 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숙해져요. 기억력도 참 좋아요. 한 번 다녀갔던 길은 절대 안 잊어요. 길옆에 있는 화초까지 똑똑히 기억할 수 있어요. 걔는 식물 종류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용정의 스승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의술이 최고인 정 선생님이잖아요.”정겨울은 바빠서 직접 용정을 가르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용정이 신의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약재의 이름을 기억했다.용정의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용정은 성격이 참 좋아요.”“그건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성격이 좋을 땐 좋아도 녀석이 횡포한 면도 있어요. 금방 집에 데리고 왔을 때는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말도 잘 안 하기에 똑똑하지 못한 먹보인가 했어요.”“정말 잘못 봤어요.”예준성이 겉으로는 양아들의 단점을 말하는 것 같지만 두 눈은 애틋한 눈빛으로 가득 찼다. 용정은 예준성을 약간 어려워하기에 여태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저씨라고만 불렀고 모연정을 엄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자신이 모연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모연정을 모 엄마라고 불렀다.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운이 좋은 줄 아세요.
“알았어요. 제가 지금 태윤 씨 집 앞에 있어요. 집사가 문 열려고 나오네요. 그러면 만나서 얘기해요.”말을 마친 예준성은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은 멍하니 서 있었다.전태윤이 어리둥절하여 머리를 숙여 우빈이를 쳐다보니 마침 우빈이도 머리를 들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이모부, 왜 그래요? 무슨 일 생겼나요?”전태윤은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누군가 우빈이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또 아침 일찍 찾아왔단다.”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혹시 예준하와 성소현의 혼사에 문제가 생겨 예준성이 자신더러 로비스트 되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건 아닐지 생각했다. 하예정은 그럴 재주가 있지만, 자신은 로비스트로 될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이윽고 예준성이 동생이 평소에 타고 다니던 차를 운전해서 대문을 지나 마당에 세웠다.예준성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뒷좌석의 차 문이 열리면서 작고 탄탄한 몸매를 가진 어린애가 차에서 날렵하게 뛰어내리더니 전태윤이 서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뛰어왔다.“우빈아, 우빈아, 내가 왔어!”전태윤이 눈여겨보니 용정이었다.“용정!”용정을 알아본 우빈이는 잡고 있던 전태윤의 손을 뿌리치고 용정이 뛰어오는 방향을 향해 깡충깡충 뛰어갔다.두 꼬맹이는 만나자마자 반갑다는 듯 어른들처럼 상대방한테 커다란 포옹을 해주었다.여름방학 때 작별한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두 아이의 키는 눈에 띄게 컸다.용정은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서 무술을 연마했기에 키가 우빈이보다 훨씬 더 컸으며 신체도 우빈이보다 퍽 탄탄해 보였다.방금 용정이가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을 통하여 전태윤은 용정의 무술 실력이 또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 용정의 무술 솜씨는 우빈이 셋을 합쳐도 못 당할 것이었다. 이 아이는 무술 배우는 방면에서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어?”친구를 만난 우빈이는 기뻐하면서 물었다.“나는 할아버지 따라서 모 엄마와 아저씨 보러 왔어. 사공이 유치원에 일주일 동안 휴가를 신청해
이날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돌아오는 날은 일요일이었다.휴식날인데 우빈이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우빈이는 일어난 후 곧장 하예정이 자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전태윤이 안에서 방문을 열어주었다.“이모부, 이모 일어났어요? 들어가서 이모랑 같이 놀래요.”전태윤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꼬맹이와 화내지 말자고 스스로 가슴을 달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지? 평소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 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더니 쉬는 날만 되면 아주 일찍 일어나더라.”우빈이가 입을 뾰족이 내밀면서 말했다.“이모부, 나는 한 번 깨어나면 더는 못 자요. 나랑 놀아 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심심해요. 이모 찾아와서 노는 수밖에 없어요.”현재 우빈이는 시 중심에 자리 잡은 전태윤의 개인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 서원 리조트에 있을 때는 그나마 함께 놀아 주는 어린이들이 있었기에 이모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우빈이를 부쩍 들어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이모는 아직도 자고 있어. 이모부가 우빈이랑 같이 놀아 줄게. 뭐 놀까?”“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좋지 않을까?”우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싫어요. 혼자 놀면 재미가 없어요. 이모부는 장난감도 안 놀 거잖아요.”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이모부랑 같이 아침 조깅하러 나갈까? 이모부가 가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올 테니 얌전하게 기다려야 해?”그는 우빈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내려놓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신신당부했다.“침실에 들어가서 이모를 깨우면 안 돼. 알았지? 이모부가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우빈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전태윤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서 먼저 운동복 바지부터 바꿔 입고 우빈이가 그사이에 침실에 들어가서 하예정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웃옷을 입으면서 밖으로 나왔다.우빈이가 조용하게 제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야 전태윤은 안도의
윤미라는 아들 노동명이 무서웠다.“알았어. 꾸준히 재활 치료할 거야. 네가 돌아올 때면 내가 2~3m나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참, 언제 돌아올 거야?”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대답했다.“설까지 있을 계획에요. 설날이 되면 제가 돌아갈게요.”“그렇게 오래 있겠다고? 우빈이는 어쩌려고?”“예정이가 돌봐주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우빈이 보러 가주세요. 시간이 없으면 제부한테 부탁해서 우빈이를 저한테 데려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고요.”하예진은 점점 더 바빠질 것이다.당분간 아들 우빈과 함께할 시간이 적을 것이다.“우빈이가 태어날 때부터 예정이가 곁에서 보살펴서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요.”“사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노동명이 한 마디 내뱉었다.우빈이는 핑계일 뿐, 사실 노동명이 그녀가 그리웠다.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리면 노동명은 자신이 하예진이 무척 보고싶을 것으로 예상했다.전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만 그리움의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우빈은 어려서부터 녀석을 키워준 하예정이 있어서 하예진이 곁에 없다고 해도 바로 적응할 수 있지만 노동명은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요즘 그는 매일 하예진을 보는 것에 익숙했다.“예진아,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내가 혼자 널 보러 가도 돼? 걱정하지 마. 우리 집에 개인 비행기가 있어서 내가 그 비행기를 타고 경호원들과 함께 가면 돼. 경호원들이 날 돌봐줄 거야. 네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거고. 널 보러 갈 뿐이야. 너랑 밥 먹고 얘기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주말마다 널 보러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게. 나도 출근해야 하니까.”하예진은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럼 주말에 우빈이도 데리고 오세요.”“난 너와 단둘이 주말을 보내고 싶은데 우빈이 녀석도 데리고 가야 해?”하예진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동명 씨가 혼자 온 걸 알게 되면 우빈이가 삐질걸
“앞으로 더는 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저는 단 한 번도 동명 씨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제가 돼지처럼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도 동명 씨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처럼요.”노동명은 급히 끼어들었다.“넌 못생기지 않았어. 전혀! 예전에 통통할 때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거든. 복스러워 보였어.”“못생긴 거 맞아요. 저는 거울만 봐도 뚱뚱한 제가 너무 싫었어요.”바보 같은 짓은 한 번만 하면 충분했다. 하예진은 다시는 예전처럼 폭식하지 않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살을 빼기 전에 하예진은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지방간뿐만 아니라 요산 수치도 높았다.체중 감량 후 요산뿐만 아니라 지방간 수치도 모두 많이 좋아졌다.“하예진아, 우빈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옷도 사줬는데 나한테는 뭐 사준 거 없어?”노동명이 화제를 바꾸어 질투하기 시작했다.“동명 씨는 부족한 게 없잖아요. 우빈이는 아이라서 너무 빨리 커요. 해마다 새 옷을 사줘야 하지만 동명 씨는 이젠 다 큰 성인이라 작년의 옷을 올해에도 입을 수 있잖아요. 돌아가게 되면 강성의 특산 제품을 가져다드릴게요.”노동명은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빈이는 크면 남의 집 남편으로 되어 우빈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게 될걸. 결국,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을 텐데 나를 더 관심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새 옷 사줘. 네가 사준 옷이면 난 다 좋아.”하예진은 하예정에게 거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지난번 하예진은 재혼하고 싶지 않다며 노동명의 감정을 거절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이 시집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나 다름없다. 모두의 눈에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보였다.노동명도 자연스레 하예진의 남편 역할을 하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여생을 함께하려고 한다.하예정이 끝까지 노동명에게 시집가지 않더라도, 그가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남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선물을 너무 받고 싶었다. 가격을 따지
이윤미가 말을 꺼냈다.“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을 뿐이에요. 사람들을 몰래 예진 씨를 따르라고 한 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뒤를 따라가서 예진 씨의 몸매를 익히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앞으로 예진 씨가 변장하더라도 그녀의 몸매에 대한 인상으로 분장한 예진 씨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예진 씨와 만날 때마다 예진 씨의 안전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니까요.”“만약 그녀가 저를 만나러 오는 도중에 사고가 나면 하예정 일행은 아마 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예진 씨가 강성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몰래 그녀를 도와주세요. 그저 우리 엄마와 그 늙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도와주면 돼요.”이윤미가 말하는 늙은 남자는 정군호가 아닌 이은화의 특별 비서였다.방윤림은 예의 갖추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밤이 점점 깊어지는데 얼른 돌아가세요.”이윤미는 한숨을 쉬었다.“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집에는 따뜻함이 없어요.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눈치 보면서...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방윤림은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랐다.주인의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일개 비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이윤미는 곧 방윤림과 함께 떠났다.한 시간 후.하루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한 뒤 가발을 쓰고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이윤미가 선물한 인간 얼굴 가죽을 쓰기 아까웠다.그렇게 전업적인 도구는 가장 필요한 곳에 써야 낭비하지 않는다.하루 호텔은 전호영이 강성에서 소유하고 있는 호텔 본점이다. 하예진이 분장한 이유는 전호영에게 폐를 끼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 그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가죽을 쓸 필요 없었다.하예정은 그녀가 묵고 있던 룸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근 뒤에야 휴대전화를 꺼내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노동명이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주무세요?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