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전태윤의 돈을 거절하고 말한다. "결혼 후 돼지 내장을 사 본 적이 없어서 네가 안 먹을 줄 몰랐어요. 근데 이제 알았어요. 다음에는 네 그릇에 넣지 않을게요. 하지만 돈을 안 받을 거고 당신도 걸핏하면 돈을 내놓지 말아요. 당신이 정말 큰 부자처럼 집 지어도 될만큼 돈이 많다고 생각하나요?"정말 그런 재력이 있다면, 수천 만 원의 현금을 꺼내 그녀에게 손쓸 때까지 돈을 세어보게 해라."아까 내가 돼지 내장을 씻는 걸 보고도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말할 줄도 모르고 괜한 낭비했어요......"돈다발 한 묶음을 하예정의 빈 그릇에 넣는다.하예정의 불평은 뚝 그친다.전태윤은 하예정의 그릇에 돈을 넣고는 다시 그녀에게 돈을 돌려줄 기회를 주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하예정은 그릇 안의 돈을 보고, 또 약간 도망치는 듯한 전태윤을 본다. 그는 이미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디딘다."태윤 씨, 지금 나를 구걸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예요?""펑"하는 반응이다.방문이 닫히자 전태윤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하예정은 그릇에 있는 돈을 들고 중얼거린다. "돈이 있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네. 네가 먼저 준 거지, 내가 너한테 달라고 한게 아니야. 돈으로 내 입을 틀어막으면 네가 몇 번이나 할 수 있는지 보자."세어 보니 겨우 30만 원밖에 안 된다."쳇, 고작 30만 원인데, 정말 재력이 있으면 큰돈을 줘야지!"하예정은 또 욕을 한마디한다.전태윤이 돈을 주는 행동은 모욕성이 매우 크다.물론, 만약 전태윤이 자주 이런 방법으로 그녀의 입을 막으려 한다면, 그녀는 여전히 매우 기뻐할 것이다.돈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한 후, 주방을 정리하고, 채소를 담아 가게로 가져가 점심에 먹을 준비를 하고, 하예정도 밖에 나가야 할 것이다.집을 나서자마자 언니로부터 전화를 받는다."언니."언니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길까 봐 하예정은 항상 언니의 전화를 제일 먼저 받는다."예정아, 아직 출근 안 했지?""막 나갔어. 지금 계단을 내
하예진은 이미 아래층에서 여동생을 기다리고 있다.하예진은 아들을 안고 한쪽 팔에 가방을 매고, 한쪽 팔에 배낭을 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새 차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예정이 평소에 보통 전기 자건거를 타기 때문에 하예진이 자동차를 알아차리지 못하다.하예정은 차를 몰고 언니의 곁에 가서 멈춰서서 차창을 누르고 외친다. "언니."하예진이 어리둥절해지자, 곧 웃으며 말한다. "네가 전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줄 알았어."그녀는 매부가 억지로 하예정에게 차 한 대를 사준 것을 알고 있지만, 하예정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예정이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하예정은 차에서 내려 언니의 손에서 가방을 들고 차에 넣으며 말한다. "언니, 필요한 건 다 가지고 있어? 주로 분유와 젖병을 꼭 챙겨야지.""다 가지고 있어."하예진은 우빈을 여동생에게 건네고, 하예정이 우빈을 안아주자 아쉬운 듯 다가가 우빈의 볼에 뽀뽀를 하며 당부한다. "우빈아, 이모 말 잘 들어. 엄마가 곧 돌아올 거야."주우빈은 원래 이모와 친하는데 어머니가 그를 이모에게 맡겨도 울지 않고 작은 손을 흔들며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한다.하예진은 마음이 좀 쓰리다.아직 두 살밖에 안 된 우빈이 너무 어리다. 하예진은 원래 우빈이 유치원에 갈 때까지 그를 돌보다가 다시 직장에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미리 일자리를 찾도록 강요한다."언니, 형부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부부싸움을 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하예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오히려 나한테 생활비를 환불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어. 요즘 집에서 밥을 안 먹으니 미리 지불한 생활비를 그에게 환불해줘야 한다고 말했어."주형인이 지금 하는 모든 일은 하예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그녀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그녀가 얼마나 눈이 멀었길래 그런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을까.불과 3년 만에 미움을 받고 가정폭력도 당했다."언니, 돈을 돌려줬어?
조카를 데리고 가게로 돌아온 하예정은 문 앞에 익숙한 차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김진우의 차였다.김진우는 또 사촌 누나에게 먹을 것을 배달해 주러 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침이 아니라 집안의 요리사가 만든 디저트였다. 그는 디저트를 너무 많이 만들어 가족끼리 다 먹지 못해 사촌 누나에게 나눠주러 왔다는 핑계를 댔다.심효진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와 하예정은 모두 먹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고모네 집에는 매일 새로운 디저트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사촌 동생이 가져온 거라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연달아 몇 개나 집어 먹었다.김진우는 사촌 누나가 디저트를 다 먹어 버릴까 봐, 하예정이 가게에 도착하기 전부터 계속 가게 밖을 살피며 물었다. "누나, 예정 누나 오늘 가게 안 와?""올 거야. 좀 늦게?"심효진은 무심하게 대답했다.심효진의 집은 가게와 가까운 탓에 아침에는 보통 그녀가 와서 가게 문을 열고 아침 장사를 책임졌다.그리고 하예정은 밤에 가게를 지키는 편이었다."남편이 있는 여자는 솔로인 여자랑 다른 거야. 예정이는 예전에 언니네 집에서 지내면서 형부에게 불만이라도 생길까 봐 늘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장을 보고 아침 식사 준비하는 등 바쁘게 지냈지. 이제 결혼을 했는데도 하예정은 아직 그대로야. 도무지 가만히 있을 틈이 없어."말을 마친 심효진은 흘깃 동생을 쳐다보며 웃었다. "너도 내가 디저트를 다 먹어 치울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이렇게 많은 걸 내가 아무리 잘 먹는다고 해도 한 번에 다 먹지는 못해. 너희 예정 누나에게도 남겨줄 거야."그 말에 김진우는 얼굴이 붉어졌다. 사촌 누나에게 속마음이 다 들킨 그는 조금 민망해하며 말했다. "예정 누나도 디저트 좋아하잖아. 우리 요리사가 특별히 소희 카페에서 몰래 배워 온 다음 집에서 만들어본 거야. 먹어보니까 전에 만들었던 것보다 더 맛있는 것 같더라고.""소희 카페의 디저트는 확실히 맛있긴 해."심효진은 지난번에 바로 그곳에서 선을 봤었다. 비록 선은
하예정은 조카를 안은 채 김진우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왜 우빈이도 데리고 왔어? 우빈아, 이리 와. 이모가 안아보자." 심효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예정의 품에서 주이빈을 안아 들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주우빈에게 물었다. "우빈아, 디저트 먹을래?"그 말에 주우빈은 자신의 이모를 쳐다봤다."하나만 줘. 너무 많이 먹으면 점심에 밥 안 먹으려고 할지도 몰라."하예정은 김진우의 손에서 기저귀 가방을 받아 든 뒤 카운터 아래에 놓았다."우리 언니, 마음먹었어. 오늘부터 일자리 찾는대. 그래서 우빈이를 나한테 맡긴 거야. 이따가 점심에 다시 온대."심효진은 디저트 하나를 주우빈에게 먹였다.주우빈은 바로 디저트를 받아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더러워요."그 말에 심효진은 디저트를 내려놓고 주우빈을 미니 주방으로 데려가 손부터 씻었다.하예진은 주우빈을 아주 잘 가르쳤다. 아이가 짓궂은 거야, 짓궂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만약 아이가 하루 종일 통나무처럼 조용히 앉아만 있으면 부모는 아이의 지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했다.아이들도 힘들었다. 짓궂으면 혼나고, 짓궂으면 지능을 의심받으니, 참 어려웠다!미니 주방에서 나온 심효진은 주우빈에게 다시 디저트를 건넸고, 디저트를 받은 주우빈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효진 이모.""착하다."심효진도 그저 매번 주우빈을 볼 때에만 결혼을 해 귀여운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혜진 언니는 드디어 한 걸음 내딛은 거야. 나 진우에게 물어봤는데, 진우는 아직 교육 기간이라 재무팀에는 못 들어간대. 그래서 우리 고모부한테도 물어봤지만 고모부는 회사 재무팀에 인원이 비지는 않는다고 하네."그렇게 말하는 심효진은 하예진을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멋쩍어했다.김진우도 따라서 미안한 얼굴을 했다.그는 비록 후계자가 되었지만 아직 나이가 젊은 데다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 당장 그룹을 이어받을 수는 없어 회사 내부의 중요한 부
김진우가 떠난 뒤, 심효진은 걱정스레 하예정에게 물었다. "예정아, 너희 언니 또 형부랑 싸운 거야?"하예정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형인은 아직 자기 부모님 집에서 돌아오지도 않았어. 게다가 언니한테 남은 생활비도 다 돌려달래. 이제는 집에서 밥도 안 먹으니까 생활비를 쓸 일도 없다고."심효진은 어이가 없어졌다. "…이런 남자를 남겨둬서 뭐 한대?"잠시 침묵하던 하예정이 말을 이었다. "뭐가 됐든 언니가 자리를 잡아야 그 나중을 생각할 수 있겠지."심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파티 갔던 건 어떻게 됐어? 도씨 가문 도련님한테 마음이 좀 가?""나 지금도 머리 아파."눈을 깜빡인 하예정은 실소를 흘리며 물었다. "설마 일부러 파티에서 술 마시고, 주사 부린 건 아니지?"상류층 사람들은 모두 품위와 교양을 중요하게 여겼다.그런데 심효진이 만약 도씨 가문 사모님의 생일 파티에서 주사를 부렸다면, 재벌가 입문은 거의 길이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주사는 딱히 안 부렸지. 그냥 술을 마신 뒤에 취한 척 바닥에 드러누워서 잠든척 한 것뿐이야. 우리 고모가 다급하게 나를 끌고 가더라고. 내가 보기에 우리 고모 앞으로 다시는 그런 파티에 날 데려가지 않을 것 같아."심효진은 어른들이 그녀를 재벌가에 시집 보내려는 마음을 단념시키기 위해, 전부 내던졌다.단씨 가문 사모님의 생일 파티는 비록 관성의 유명한 사모님들은 참가하지 않았지만, 파티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있는 집안의 사모님들이었다. 그런데 심효진이 그런 곳에서 취한 척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했으니, 외가의 체면까지 전부 깎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같은 바닥 안의 사람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은 탓에 이내, 온 상류 사회에 이야기가 전부 퍼졌다.자신의 신분을 높이 여기는 사모님들은 심효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분명했으니 심효진의 고모와 어머니가 심효진을 재벌가로 시집 보내려던 꿈은 완전히 깨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심씨 가문은 관성 토박이였다. 부자가 된 것도 다 재
주우빈은 디저트를 먹은 뒤 가게에서 놀기 시작했다.기저귀 가방에는 주우빈이 평소 제일 좋아하던 장난감이 들어있었다.그 장난감을 주우빈에게 주자, 주우빈은 자리를 잡고 계속 놀기 시작해 심효진도 감탄하며 하예정에게 말했다. "우빈이 집중령 엄청 좋네.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만 봐도 알겠어.""그건 여기가 낯설어서 그래. 나중에 익숙해지고 나면 온 사방을 어질러 놓을걸?"하예정은 언니를 도와 자주 아이를 본 탓에 주우빈의 장난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도구를 꺼내 그녀의 공예품을 만들 준비를 하며 구시렁댔다. "웬일로 성소현 씨가 내가 만든 이런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 같길래 이미 만든 마네키네코를 선물로 주고 태윤 씨에게는 새로 하나 만들어 줄 생각이었단 말이야. 우리는 부부고 같이 사는데 언제 주든 상관없잖아?""근데 그걸 그 얘기를 듣고 나서는 나한테 화를 내지 뭐야? 내가 사과도 하고 잘못도 인정하면서 달래다가 결국 한 가지 더 선물하겠다고 하고 나서야 화가 풀렸다니까? 나 오늘 꼭 태윤 씨 줄 선물을 다 만들어야겠어. 괜히 퇴근하고 집에 가서 또 그 굳은 얼굴 볼라."심효진이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이미 마네키네코를 전태윤 씨에게 주기로 했으면 그건 그 사람 것이지. 동의도 거치지 않고 성소현 씨한테 줬으니 화내는 것도 당연해.""그래, 내 잘못이야. 그래서 사과도 했잖아. 어젯밤에 돌아왔을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회사에서 무슨 문제라도 있던 게 아닐까?"전태윤은 그저 하예정이 선물한 옷을 입고 출근했음에도 그녀가 알아채지 못한 것에 화를 냈던 것뿐이었다."따릉따릉따릉…"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렸다.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그녀는 전씨 가문 할머니의 전화인 것을 보자 곧장 전화를 받았다."할머니.""예정아, 바쁘니?""괜찮아요,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무리 바빠도 도와드릴게요."결혼하기 전만 해도 하예정은 자주 전씨 가문 할머니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되
하예정이 대답했다. "할머니, 그럴 리가요. 오늘 밤에 제가 말하면 돼요. 그러면 내일 혁진 씨가 바래다주는 거예요, 아니면 저희가 모시러 갈까요?""혁진이 더러 데려다주라고 하면 돼. 아마 오후나 되어서야 갈 수 있을 것 같구나. 주말이면 혁진이는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거든."그녀의 손주들은 주말이어야만 제대로 쉴 수 있었다.할머니도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깰 때까지 두는 편이라, 아이들이 깬 오후에 올 생각이었다."그래요. 할머니 좋아하시는 음식 있어요? 제가 저녁에 해드릴게요."할머니는 오후에 온다니 김진우와의 점심 약속에는 문제가 없었다. 만약 할머니가 오전에 온다면 할머니와 같이 갈 예정이었다. 하예정은 어차피 자신이 사는 것이니 별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네가 하는 건 다 맛있어서 난 좋아." 하예정이 한 요리를 먹어 본 그녀는 남몰래 큰손주는 먹을 복이 있다고 말했었다.온 가족이 다 하예정을 좋게 보고 있었다. 오직 그녀의 큰아들며느리만 하예정이 부모가 없는 시골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있었다.전씨 가문은 이미 충분히 부유해 정략결혼으로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없으니 아이들의 행복만이 중요하다고 할머니는 큰아들 며느리에게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었다.장소민은 시어머니가 하예정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녀의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남편 앞에서는 평소에는 전태윤을 가장 예뻐한다고 말하면서 끝내는 전태윤에게 부모도 없고 시골 출신이기도 한 여자를 아내로 들여 전태윤의 발목을 잡는다고, 시어머니에 대해 몇 번이나 구시렁댔었다.앞으로 전태윤의 동생들이 재벌가 아가씨들을 들이게 된다면 시골 출신인 큰형님은 아마 그 무리에 끼지 못할 게 뻔했고, 올케의 존중도 못 받을 게 뻔했다.다행히 전태윤이 하예정과 반년 뒤에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이혼을 하기로 계약을 맺었기에 장소민은 조금 속이 편해질 수 있었다.자신이 낳은 아들이니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예정 같은 사람은 절대
우선 그 비용은 두 어르신의 비상금으로 내고 있었다.하 영감은 아내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가면 아들 손주가 그 돈을 나눠 내라고 당부하며, 두 사람이 먼저 낸 돈을 반드시 두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었는데 돈이 없으면 믿을 곳이 없었다.두 노인은 비록 독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에게 돈이 한 푼도 없으면 아들과 손주들은 자신들에게 잘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옛말에 아들보다는 돈주머니가 더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비록 두 부부는 비상금으로 몇천만 원을 가지고 있지만 아들딸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면 한 집에 적어도 천오백만 원씩은 나눠줄 수 있었다. 공으로 들어오는 돈을 누가 싫어하겠는가?간호사가 어제의 계산서를 가져왔고, 그 종이를 받아 든 하 영감은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 구시렁댔다. "이제 고작 며칠이나 됐다고 전에 냈던 돈을 벌써 다 썼다니."그는 아들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인당 얼마씩 낼지 상의한 다음에 돈 모아서 이 돈 내거라. 괜히 병원에서 재촉할라.""아버지, 두 분 돈 다 쓰신 거예요?" 하씨 집안 첫째가 물었다.하 영감이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왜? 너희들보고 내라니 기분이 나쁘냐? 나랑 네 엄마한테 돈이 얼마나 있다고 이걸 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 엄마가 아프고 나서 지금까지 너희들 중에 돈을 낸 녀석이 있기나 해? 나랑 네 엄마가 너희들을 지금까지 키우고, 성공까지 시켜줬는데, 너희 엄마가 아프니까 병원비를 내는 건 당연한 일 아니더냐?"하씨 집안 첫째가 얼른 말했다. "아버지, 저희가 언제 안 낸다 그랬어요. 엄마가 이번에 얼마를 쓸지 몰라서 그렇죠. 요 며칠 정말 돈이 물 새듯 나가고 있잖아요." 그들은 비록 나름 생활이 폈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매일같이 돈이 물 새듯 나가는 데다 그 돈을 자신들이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첫째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괜히 사람은 가난해도 되지만 아프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그러게, 너희들이
여운별은 잠자코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하긴, 여운초가 이미 제 목소리를 들었으니 다음에 제가 변성하면 더 의심할 거예요. 이제 다들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하지만 하예정은 어떻게 저를 의심했죠? 몇 번 만나보지 못했는데.”용태호는 여운별을 힐끗 쳐다보다가 대답했다.“기억력이 좋거든.”여운별은 말을 잇지 않았다.여운초의 기억력도 아주 좋다.여운초는 10년 가까이 눈이 멀어서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다.“그리고 네 눈먼 장님 언니도...”“태호 씨, 여운초는 이제 장님 아니에요. 진작에 시력을 회복했거든요. 전이진 도련님이 신의의 제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찾아와서 눈을 치료해 주었다고 들었어요.”여운별은 말하다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그 장님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을까!”전이진이 여운초에 접근했을 때 그녀 아직도 장님이었으나 전이진은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때 명해은을 만나러 서원 리조트에 찾아가 여운초의 눈이 멀어서 전이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들쑤시기까지 했다.그러나 명해은은 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돈 쓸 줄만 알면 된다고 당당하게 쏘아붙였다.그녀의 두 고모를 울분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전씨 가문에서 미치광이처럼 떠들지는 못했다.이제 여운초는 시력을 회복했고 또 전이진과 혼인 신고까지 했다. 그녀가 전씨 가문에서의 지위는 더욱 견고해지기만 할 것이다.내일 저녁에 여운초는 명해은을 따라 연회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예전에는 상류층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추미자는 여운별을 데리고 참석했지만, 여운초는 절대 데려가지 않았었는데...여운별이 여운초를 심하게 괴롭혔을 때 여운초가 평생 관성의 상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비꼬기까지 했다.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지금은 여운별은 상류 사회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여운초는 전이진의 어머니가 데리고 다니며 접대하고 교제하고 있다!여운초는 지금도 여씨 가문의 모든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여운별은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용태호는 로비의 소파에 앉아 손에 술 한 잔을 들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술을 맛보았다.발소리를 듣고도 그는 여운별을 쳐다보지 않았다.여운별은 다가와 가방을 내려놓고 용태호의 옆에 앉으며 애교스럽게 소리쳤다.“태호 씨.”용태호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여운별은 깜짝 놀랐다.또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나?“식사하셨어요?”여운별은 더는 애교를 부리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식사하셨어요?”용태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몸을 뒤로 젖혔다.“테이블 위에 있는 그 초대장은 네가 내일 저녁 연회에 참석할 때 사용될 거야. 그리고 저기, 너에게 드레스 몇 벌과 보석 몇 세트를 사 놓았어. 마음에 드는 치마를 골라 입어.”용태호는 1인용 소파 위를 쳐다보았다.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그 소파 위에 여러 개의 정교한 가방과 몇 개의 크고 빨간 선물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여운별은 먼저 그 초청장을 들어 펼쳐 보았다.그리고 다시 일어나 드레스와 보석들을 살펴보았다.드레스는 화려하고 정말 예뻤다. 보석은 말할 것도 없이 아주 빛났다.여운별은 좋은 물건들을 본 적도 있고 사용한 적도 있지만, 용태호의 큰 씀씀이 앞에서는 여전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호 씨, 고마워요.”씀씀이가 이토록 대범한 것으로 보면 용태호의 자산은 아마도 전태윤과 전이진을 능가할 것이다.여운별은 만약 용태호를 도와 일을 성사시켜 그의 마음에 들어서 아이까지 낳는다면 앞으로 자신이 정말 용씨 사모님으로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하예정과 여운초보다 더 잘 살아야 했다.그녀는 용태호가 준 선물을 마주하더니 용태호에게서 받은 공포를 단번에 잊은듯했다.용태호 또한 항상 그녀의 목을 조르고 살벌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땐 단지 그녀에게 경고만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용태호는 웃으며 물었다.“좋아해?”“좋아해요. 태호 씨,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밤 반드시 잘할게요. 절대 허점을 드러내지 않고 잘해 볼게요.”용태호는 그녀
그와 동시, 용씨 별장.여운별은 이미 용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용태호가 그녀에게 사준 별장에도 용씨 성을 붙여주었다.그녀는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별장으로 돌아갔다.차는 여운별을 태워 별장 안으로 들어갔고 별장 내부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여운별은 곧 용태호가 왔을 것으로 추측했다..여운별은 자기도 모르게 좀 긴장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이제 그녀는 용태호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처음에 그녀는 앞으로 진짜 용씨 사모님을 대신해 용태호를 정복하면 그가 자신에게 고분고분해 질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난번, 용태호는 여운별의 목을 졸라 죽일 뻔했다. 용태호의 살벌하고 음흉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놀라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용태호가 여운별에게 맡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그가 정말로 여운별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감히 다른 생각을 가져 용태호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테니까.용태호는 금전적인 방면에서는 매우 대범했다. 아름다운 옷과 보석 세트들은 물론, 돈도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이 주었다.그가 별장으로 오지 않아도 수시로 그녀에게 용돈을 자주 주었다.만약 용태호에게 목이 졸리지 않았다면 여운별은 아마 용태호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했을 것이다.“사모님, 집에 도착했습니다.”차를 멈춘 뒤에도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여운별이 움직이지 않자 경호원은 조용히 몇 분을 더 기다렸다. 그러나 여운별이 여전히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앉아있자 경호원은 고개를 돌려 일깨워줄 수밖에 없었다.“집에 도착하셨습니다.”.그러나 이곳은 여운별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여운별이 속으로 발악했다.그녀의 집은 여씨 가문의 대별장으로 그곳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자라왔던 곳이다.그러나 지금 여운초에게 점령당했다. 그리고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집이 정말로 여운초의 명의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와 남동생을 데리고 그곳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한때 모든 노동자
“이모, 엄마 여기 너무 추워요. 바람도 너무 세요.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바람에 날아갈 뻔했어요.”녀석은 과장되게 말했다.“그럼 옷을 좀 다 입어. 바람에 날아가면 안 되니까. 우빈이가 날아가면 이모가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할지 모르잖아.”우빈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이모, 거짓말이에요. 바람이 너무 센 건 맞지만 저를 날려 보낼 수 없는걸요. 저는 다 커서 바람이 저를 날려 보낼 수 없어요. 하지만 정말 추워요. 엄마는 여기에 눈이 올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눈이 오지 않아요.”강성은 관성보다 확실히 많이 추웠다.다행히 하예정이 우빈의 여행 가방에 두꺼운 옷 몇 벌을 쑤셔 넣었다.“저와 아저씨는 이미 엄마의 새 차에 올랐어요. 차에는 히터가 켜져 있어서 지금은 그렇게 춥지 않아요. 게다가 아저씨가 저를 안아 주시니 저는 더 따뜻해졌어요.”“다행이네. 그럼 이따가 차에서 내릴 때 외투를 더 입는 것을 잊지 마. 이모가 너의 여행 가방에 두꺼운 옷을 넣어놓았거든. 그리고 날씨가 추운데 엄마한테 천천히 운전하라고 하고.”“엄마가 운전하는 게 아니라 일구 삼촌이 운전하고 계세요.”우빈은 강일구와 가장 친했다.그리고 강일구는 하예진을 따라 강성으로 와서 그녀를 보호하도록 했다.우빈은 공항에서 강일구를 만났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우빈은 강일구가 그를 여러 번 껴안고 돌게 하는 바람에 노동명이 하마터면 질투할 뻔했다.“강일구 아저씨 운전 실력이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에 이모께서 안심하라고 전해달래요.”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일구 아저씨가 운전하시니, 그럼 이모가 안심해도 되겠네. 그럼 우빈이 엄마는?”“제 옆에 계세요.”우빈은 하예진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그리고 노동명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너무 추워요. 저를 다시 꼭 안아 주세요. 아저씨 품이 너무 따뜻해요.”노동명은 코트를 펼쳐 녀석을 코트 안에 감쌌다.“공항에서 엄마 집까지 거리가 좀 있어. 먼저 좀 자. 도착하면 깨워줄게.”노동명과 하예
그러나 하예정은 어르신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태윤 씨가 호영 도련님과 고 대표님께서 휴가를 떠나 보름 만에 돌아온다고 했어요. 할머니께서 지금 가시면 놀러 갈 수 있지만, 혼담을 꺼내려면 주인이 집에 없을 때 가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현장의 어르신들은 순간 멍하니 할 말을 잃었다.“그럼 애들이 돌아오면 그때 혼담을 꺼내러 가자. 우리도 가서 고 이사님 부부와 친해져야지.”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아직도 매우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세요?”“전화로는 통화를 많이 했을 뿐 만나본 횟수가 적거든.”하예정은 할 말이 없었다.쌍방의 부모님들은 전화상으로만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만나본 횟수는 많지 않았다.주로 거리가 좀 멀었기 때문이다.“식사하세요.”전태윤이 부엌에서 나와 소리쳤다.전씨 할머니께서 집에 계시니 남자들은 요리하고 여자들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기를 기다렸다.평생 딸을 낳아보지 못한 전씨 할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아꼈다.손녀가 또 태어나지 못한다면 손자며느리를 손녀로 여기면서 사랑해줄 것이다.전태윤은 꿈에서도 아내의 배 속의 아기가 딸이 되고 싶었다.그렇게 되면 그의 딸은 전씨 가문의 가장 사랑스러운 보물로 될 것이다. 조상처럼 모셔야 하느니라!그러다가도 두 사람이 오랫동안 이 아이를 품었다는 생각에 딸이든 아들이든 전태윤은 태연하게 생각하기로 했다.하예정이 낳은 아이가 꼬리가 달린 아이라 할지라도 전씨 가문의 첫 손자이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랄 테니까.여자들은 몸을 일으켜 식사하러 갔다.“할머니.”전창빈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그는 웃으며 전씨 할머니와 인사했다.전씨 할머니는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그래도 먹을 복이 있나 보다.”“할머니께서는 늘 먹을 복이 많았거든요.”하예정은 할머니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할머니, 천천히... 조심하세요.”할머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야말로 조심해.”전씨 할머니의 시선은 하예정의 배 위에 떨
전현림이 황급히 말했다.“엄마, 이따가 소민이랑 쇼핑하러 갈게요. 우리 여보가 좋아하는 무엇이든 살 거예요. 소민이가 행복하기만 되니까요.”전씨 할머니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할아버지가 될 사람인데 먼저 자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해.”“엄마, 저는 항상 태윤이와 창빈의 본보기거든요.”“두 사람 다 부엌에 가서 막내를 도와 얼른 밥해.”“엄마, 밥 드세요! 창빈이가 진작에 다 준비했어요!”전현림은 자랑스러운 듯 소리쳤다.전씨 할머니는 전태윤을 곁눈질했다.전현림은 멋쩍게 웃더니 전태윤에게 눈빛을 보냈다. 전현림 부자는 그제야 모두 주방으로 향했다.두 남자를 떼어낸 할머니는 표정을 바꾸어 웃으며 장소민과 하예정에게 말했다.“좀 이따가 우리 셋이 함께 쇼핑하러 나가자. 나도 오랜만에 쇼핑하지 못했는데 우리 증손녀에게 옷 몇 벌 사줘야겠다.”장소민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우리 치마 몇 벌 더 사 와요.”하예정도 바로 말을 이었다.“할머니, 어머님.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꼭 딸이라고 장담 못 해요.”전씨 할머니와 장소민은 동시에 하예정을 쳐다보았다.하예정은 바로 수그러들었다.“네. 가요. 가요.”어르신들께 환상을 드리는 것도 나을듯싶다.아기가 태어나 환상이 깨지는 순간 하예정을 탓할 수는 없으니까.하예정은 늘 아들을 낳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전씨 가문에서 몇 대째 딸이 태어나지 못했는데, 과연 하예정이 정말 운 좋게 첫 아이로 딸을 낳을 수 있을까!우빈도 그녀의 배 속에 있는 동생이 남동생이라고 했다.“참, 우빈은?”전씨 할머니는 그제야 우빈이 녀석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왠지 집으로 돌아온 뒤로 뭐가 빠졌다고 생각되었는데. 우빈이가 없네.”“동명이가 데려갔어?”하예정이 대답했다.“우빈이가 할머니께서 이제야 자신이 생각난다는 사실을 알면 울어버릴걸요? 할머니께서 늘 우빈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돌아오신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생각나셨잖아요.”“주말이라 우빈은 동명 오빠를 따라 강성으로
“우리 형제들은 전부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는데 할머니께서 저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교육 성과를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겠네요.”전씨 할머니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셨다. 그녀의 보배로운 장손은 말주변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이는 확실히 전부 할머니의 업적이었다. 전씨 할머니가 전태윤에게 하예정이라는 손자며느리와 결혼시켜주었기 때문이다.하예정의 웃음은 멈춘 적 없었다.전씨 할머니가 전태윤과 말다툼할 때마다 하예정은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고 있었다.“예정아, 우리 태윤이와 말하지 말자. 종일 굳은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다니, 너니까 태윤이와 함께 할 수 있지, 다른 여자들은 아마 멀리 쩍 피했을 거야. 애들도 밤에 태윤이를 보면 무서워서 울어버릴걸.”전태윤의 얼굴은 온통 잿빛으로 변해버렸다.“아니에요. 저는 태윤 씨가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전혀 무섭지 않거든요. 저에게 엄청 부드럽고 다정하게 자상하게 대해줘요. 저는 마음에 무척 드는걸요.”전태윤은 또 이내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역시 아내밖에 없네.”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쯧쯧... 싱글들이 너희들을 보면 얼마나 괴롭겠어.”“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싫으세요?”전태윤이 되물었다.전씨 할머니는 너무 행복한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좋지. 너무 좋지. 네가 예정이와 결혼하니 내가 너무 기뻐. 아이고, 누가 처음에 절대로 예정이를 사랑할 리가 없다고, 절대로 아내로 삼지 않겠다고 맹세했는지 몰라...”전태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할머니를 나무랐다.“할머니, 옛날 일은 좀 끄집어내지 마세요.”하예정은 으쓱하며 말을 꺼냈다.“제 남자는 절대로 제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해요.”“난 너의 그 패기가 너무 좋아!”그렇게 두 여자는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전태윤을 뒤로한 채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전태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전태윤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전씨 할머니는 정말 개구쟁이다.또한,
“눈이 보고 싶으면, 아기가 태어난 후에 가서 눈을 구경시켜 줄게.”“네.”부부는 장거리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다들 너무 바빴다.전태윤 부부의 차가 막 별장에 들어가 주차되었을 때 전씨 할머니도 돌아왔다.전태윤은 차에서 내려 전씨 할머니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자 할머니께 말을 건넸다.“할머니, 우리를 잊으신 건 아니네요. 예정이가 임신해서 돌봐주러 오시겠다고 하셨으면서 집에 자주 안 오시고. 자꾸 어디로 도망가시는 거예요? 어느 집 어르신이 할머니처럼 말을 안 들어요? 나이가 드셔서도 여기저기 뛰어다니시고. 전화를 걸어도 몇 마디 못 하고 짜증스럽게 끊어버리시잖아요.”전씨 할머니는 손자의 불만에도 화를 내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뛰어다니는 게 좋다고 생각되지 않아? 내 건강이 좋다는 의미잖아. 내가 만약 침대에서 꿈쩍도 못 하고 누워만 있다면 너희들이 더 골치 아플걸.”“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우리 할머니는 그러실 리가 없거든요.”하예정이 말했다.전태윤도 엄숙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손자며느리가 다가오자 전씨 할머니는 즉시 표정을 바꾸어 억울하고 두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빨리 하예정의 뒤로 숨어서 전태윤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뒤로 숨어 주눅이 드는척했다.“예정아, 태윤이가 조금 전에 잘 욕했어. 자꾸 옛 친구들과 놀기만 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자꾸 잔소리해.”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전씨 할머니는 또 연기의 달인으로 변신했다.하예정은 할머니의 연기에 맞춰주며 한편으로는 전씨 할머니를 보호하면서 전태윤을 나무랐다.“옛 친구들과 모여서 놀았을 뿐인데 왜 그래요?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뭐라고 자꾸 하지 마세요.”그리고 돌아서면서 다시 전씨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할머니, 밖에서 너무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나이도 점점 많아지시고 하니 안전에 유의하셔야죠. 그래야 우리도 시름 놓죠
전태윤은 마음이 아팠다.“관리하기 싫으면 상관하지 마. 내가 도와서 지켜보면 되니까. 예정아, 난 네가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하예정의 손이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여보, 당신을 볼 때마다 저는 할머니께 항상 감사드려요. 이렇게 훌륭한 당신과 결혼하게 해주셔서. 그리고 당신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려요. 저를 미워한 적도 없을뿐더러 제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한 적도 없어서. 태윤 씨가 나 힘들어하는 걸 가슴 아파 하는 것도 알아요. 저는 이미 당신과 결혼한 이상 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서 제가 짊어질 짐은 전부 질 거예요. 피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을 거예요. 태윤 씨도 충분히 바쁠 텐데 제가 어찌 또 도와달라고 하겠어요.”하예정은 자신 있게 또 말했다.“모든 것을 잘 해낼 거예요. 제가 불평을 털어놓는 것도 아닌걸요. 알잖아요. 제가 사업에 관심이 엄청 많다는걸.”전태윤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품에 안고 부비부비한 뒤에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익숙해지면 나아질 거야. 우리 엄마도 봐봐. 수십 년 동안 관리해왔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져서 엘리트 직원들도 많이 배양하셨잖아. 지금은 장부만 잘 확인하면 그뿐이거든. 너도 이제 우리 가문에 들어왔으니 아기가 태어나면 장차 적응해서 너만의 심복을 키워 우리 엄마처럼 믿을만한 부하 직원에게 맡겨.”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어머님께 배울게요. 빨리 일 보세요. 일 끝나면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어요. 어머님께서 방금 메시지로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셨어요. 창빈 도련님께서 직접 요리한다고 하셨는데.”전창빈은 곧 멀리 떠나야 했기에 그로 인해 싸운 부모님께 보상해드릴 겸 함께 식사하러 왔다.이번 주말에도 부모님을 잘 모시다가 월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원림성의 A시로 날아가 선우씨 가문에 가정 요리사에 지원할 계획이다.멀리까지 가서 요리사로 되는데 전창빈은 선우민아가 그를 채용하지 않을까 봐 그녀에게 자신이 전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