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조카를 안은 채 김진우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왜 우빈이도 데리고 왔어? 우빈아, 이리 와. 이모가 안아보자." 심효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예정의 품에서 주이빈을 안아 들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주우빈에게 물었다. "우빈아, 디저트 먹을래?"그 말에 주우빈은 자신의 이모를 쳐다봤다."하나만 줘. 너무 많이 먹으면 점심에 밥 안 먹으려고 할지도 몰라."하예정은 김진우의 손에서 기저귀 가방을 받아 든 뒤 카운터 아래에 놓았다."우리 언니, 마음먹었어. 오늘부터 일자리 찾는대. 그래서 우빈이를 나한테 맡긴 거야. 이따가 점심에 다시 온대."심효진은 디저트 하나를 주우빈에게 먹였다.주우빈은 바로 디저트를 받아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더러워요."그 말에 심효진은 디저트를 내려놓고 주우빈을 미니 주방으로 데려가 손부터 씻었다.하예진은 주우빈을 아주 잘 가르쳤다. 아이가 짓궂은 거야, 짓궂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만약 아이가 하루 종일 통나무처럼 조용히 앉아만 있으면 부모는 아이의 지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했다.아이들도 힘들었다. 짓궂으면 혼나고, 짓궂으면 지능을 의심받으니, 참 어려웠다!미니 주방에서 나온 심효진은 주우빈에게 다시 디저트를 건넸고, 디저트를 받은 주우빈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효진 이모.""착하다."심효진도 그저 매번 주우빈을 볼 때에만 결혼을 해 귀여운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혜진 언니는 드디어 한 걸음 내딛은 거야. 나 진우에게 물어봤는데, 진우는 아직 교육 기간이라 재무팀에는 못 들어간대. 그래서 우리 고모부한테도 물어봤지만 고모부는 회사 재무팀에 인원이 비지는 않는다고 하네."그렇게 말하는 심효진은 하예진을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멋쩍어했다.김진우도 따라서 미안한 얼굴을 했다.그는 비록 후계자가 되었지만 아직 나이가 젊은 데다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 당장 그룹을 이어받을 수는 없어 회사 내부의 중요한 부
김진우가 떠난 뒤, 심효진은 걱정스레 하예정에게 물었다. "예정아, 너희 언니 또 형부랑 싸운 거야?"하예정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형인은 아직 자기 부모님 집에서 돌아오지도 않았어. 게다가 언니한테 남은 생활비도 다 돌려달래. 이제는 집에서 밥도 안 먹으니까 생활비를 쓸 일도 없다고."심효진은 어이가 없어졌다. "…이런 남자를 남겨둬서 뭐 한대?"잠시 침묵하던 하예정이 말을 이었다. "뭐가 됐든 언니가 자리를 잡아야 그 나중을 생각할 수 있겠지."심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파티 갔던 건 어떻게 됐어? 도씨 가문 도련님한테 마음이 좀 가?""나 지금도 머리 아파."눈을 깜빡인 하예정은 실소를 흘리며 물었다. "설마 일부러 파티에서 술 마시고, 주사 부린 건 아니지?"상류층 사람들은 모두 품위와 교양을 중요하게 여겼다.그런데 심효진이 만약 도씨 가문 사모님의 생일 파티에서 주사를 부렸다면, 재벌가 입문은 거의 길이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주사는 딱히 안 부렸지. 그냥 술을 마신 뒤에 취한 척 바닥에 드러누워서 잠든척 한 것뿐이야. 우리 고모가 다급하게 나를 끌고 가더라고. 내가 보기에 우리 고모 앞으로 다시는 그런 파티에 날 데려가지 않을 것 같아."심효진은 어른들이 그녀를 재벌가에 시집 보내려는 마음을 단념시키기 위해, 전부 내던졌다.단씨 가문 사모님의 생일 파티는 비록 관성의 유명한 사모님들은 참가하지 않았지만, 파티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있는 집안의 사모님들이었다. 그런데 심효진이 그런 곳에서 취한 척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했으니, 외가의 체면까지 전부 깎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같은 바닥 안의 사람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은 탓에 이내, 온 상류 사회에 이야기가 전부 퍼졌다.자신의 신분을 높이 여기는 사모님들은 심효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분명했으니 심효진의 고모와 어머니가 심효진을 재벌가로 시집 보내려던 꿈은 완전히 깨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심씨 가문은 관성 토박이였다. 부자가 된 것도 다 재
주우빈은 디저트를 먹은 뒤 가게에서 놀기 시작했다.기저귀 가방에는 주우빈이 평소 제일 좋아하던 장난감이 들어있었다.그 장난감을 주우빈에게 주자, 주우빈은 자리를 잡고 계속 놀기 시작해 심효진도 감탄하며 하예정에게 말했다. "우빈이 집중령 엄청 좋네.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만 봐도 알겠어.""그건 여기가 낯설어서 그래. 나중에 익숙해지고 나면 온 사방을 어질러 놓을걸?"하예정은 언니를 도와 자주 아이를 본 탓에 주우빈의 장난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도구를 꺼내 그녀의 공예품을 만들 준비를 하며 구시렁댔다. "웬일로 성소현 씨가 내가 만든 이런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 같길래 이미 만든 마네키네코를 선물로 주고 태윤 씨에게는 새로 하나 만들어 줄 생각이었단 말이야. 우리는 부부고 같이 사는데 언제 주든 상관없잖아?""근데 그걸 그 얘기를 듣고 나서는 나한테 화를 내지 뭐야? 내가 사과도 하고 잘못도 인정하면서 달래다가 결국 한 가지 더 선물하겠다고 하고 나서야 화가 풀렸다니까? 나 오늘 꼭 태윤 씨 줄 선물을 다 만들어야겠어. 괜히 퇴근하고 집에 가서 또 그 굳은 얼굴 볼라."심효진이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이미 마네키네코를 전태윤 씨에게 주기로 했으면 그건 그 사람 것이지. 동의도 거치지 않고 성소현 씨한테 줬으니 화내는 것도 당연해.""그래, 내 잘못이야. 그래서 사과도 했잖아. 어젯밤에 돌아왔을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회사에서 무슨 문제라도 있던 게 아닐까?"전태윤은 그저 하예정이 선물한 옷을 입고 출근했음에도 그녀가 알아채지 못한 것에 화를 냈던 것뿐이었다."따릉따릉따릉…"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렸다.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그녀는 전씨 가문 할머니의 전화인 것을 보자 곧장 전화를 받았다."할머니.""예정아, 바쁘니?""괜찮아요,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무리 바빠도 도와드릴게요."결혼하기 전만 해도 하예정은 자주 전씨 가문 할머니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되
하예정이 대답했다. "할머니, 그럴 리가요. 오늘 밤에 제가 말하면 돼요. 그러면 내일 혁진 씨가 바래다주는 거예요, 아니면 저희가 모시러 갈까요?""혁진이 더러 데려다주라고 하면 돼. 아마 오후나 되어서야 갈 수 있을 것 같구나. 주말이면 혁진이는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거든."그녀의 손주들은 주말이어야만 제대로 쉴 수 있었다.할머니도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깰 때까지 두는 편이라, 아이들이 깬 오후에 올 생각이었다."그래요. 할머니 좋아하시는 음식 있어요? 제가 저녁에 해드릴게요."할머니는 오후에 온다니 김진우와의 점심 약속에는 문제가 없었다. 만약 할머니가 오전에 온다면 할머니와 같이 갈 예정이었다. 하예정은 어차피 자신이 사는 것이니 별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네가 하는 건 다 맛있어서 난 좋아." 하예정이 한 요리를 먹어 본 그녀는 남몰래 큰손주는 먹을 복이 있다고 말했었다.온 가족이 다 하예정을 좋게 보고 있었다. 오직 그녀의 큰아들며느리만 하예정이 부모가 없는 시골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있었다.전씨 가문은 이미 충분히 부유해 정략결혼으로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없으니 아이들의 행복만이 중요하다고 할머니는 큰아들 며느리에게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었다.장소민은 시어머니가 하예정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녀의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남편 앞에서는 평소에는 전태윤을 가장 예뻐한다고 말하면서 끝내는 전태윤에게 부모도 없고 시골 출신이기도 한 여자를 아내로 들여 전태윤의 발목을 잡는다고, 시어머니에 대해 몇 번이나 구시렁댔었다.앞으로 전태윤의 동생들이 재벌가 아가씨들을 들이게 된다면 시골 출신인 큰형님은 아마 그 무리에 끼지 못할 게 뻔했고, 올케의 존중도 못 받을 게 뻔했다.다행히 전태윤이 하예정과 반년 뒤에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이혼을 하기로 계약을 맺었기에 장소민은 조금 속이 편해질 수 있었다.자신이 낳은 아들이니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예정 같은 사람은 절대
우선 그 비용은 두 어르신의 비상금으로 내고 있었다.하 영감은 아내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가면 아들 손주가 그 돈을 나눠 내라고 당부하며, 두 사람이 먼저 낸 돈을 반드시 두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었는데 돈이 없으면 믿을 곳이 없었다.두 노인은 비록 독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에게 돈이 한 푼도 없으면 아들과 손주들은 자신들에게 잘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옛말에 아들보다는 돈주머니가 더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비록 두 부부는 비상금으로 몇천만 원을 가지고 있지만 아들딸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면 한 집에 적어도 천오백만 원씩은 나눠줄 수 있었다. 공으로 들어오는 돈을 누가 싫어하겠는가?간호사가 어제의 계산서를 가져왔고, 그 종이를 받아 든 하 영감은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 구시렁댔다. "이제 고작 며칠이나 됐다고 전에 냈던 돈을 벌써 다 썼다니."그는 아들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인당 얼마씩 낼지 상의한 다음에 돈 모아서 이 돈 내거라. 괜히 병원에서 재촉할라.""아버지, 두 분 돈 다 쓰신 거예요?" 하씨 집안 첫째가 물었다.하 영감이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왜? 너희들보고 내라니 기분이 나쁘냐? 나랑 네 엄마한테 돈이 얼마나 있다고 이걸 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 엄마가 아프고 나서 지금까지 너희들 중에 돈을 낸 녀석이 있기나 해? 나랑 네 엄마가 너희들을 지금까지 키우고, 성공까지 시켜줬는데, 너희 엄마가 아프니까 병원비를 내는 건 당연한 일 아니더냐?"하씨 집안 첫째가 얼른 말했다. "아버지, 저희가 언제 안 낸다 그랬어요. 엄마가 이번에 얼마를 쓸지 몰라서 그렇죠. 요 며칠 정말 돈이 물 새듯 나가고 있잖아요." 그들은 비록 나름 생활이 폈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매일같이 돈이 물 새듯 나가는 데다 그 돈을 자신들이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첫째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괜히 사람은 가난해도 되지만 아프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그러게, 너희들이
하 영감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영향은 바로 그가 가장 중시하고 있고, 가장 잘나가던 둘째 손자가 인터넷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에 회사에서 정직을 당한 것이었다.하 영감은 하예정의 반격이 이렇게 힘이 강할 줄은 몰랐다. 무려 하지문을 정직시킬 수 있다니. 하지문은 회사에서 고위직인 사람이었다. 대표 이사를 제외하면 그 아래로 부대표였고 그다음이 바로 하지문이었다. 그런데 본사에서 전화가 한 통 오더니 곧바로 하지문을 정직시켰다.하지문은 무려 연봉이 2억은 되는 사람이었다."아직이요, 지문이가 상사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 물어봤는데 성씨 그룹 대표의 동생이 지문이의 정직을 요구하고 회사에서 쫓아내라고 햇대요. 다행히 지문이에게 능력이 있어서 아직은 정직에 그친 거죠. 완전히 해고를 당한 건 아니니 돌아갈 여지는 있을 거예요."하 영감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 대표의 동생은 왜 지문이를 싫어하는 것이냐? 설마 그 망할 계집이 찾은 뒷배는 아니겠지?""그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재벌가의 아가씨예요. 성씨 가문은 관성에서 두 번째로 큰 가문으로 재산이 몇십조는 되는 집안인 데다 이제는 1위인 전씨 가문을 따라잡을 기세인데 어떻게 하예정의 뒷배일 수가 잇겟어요? 듣자 하니 실시간 검색어가 그 아가씨의 검색어 순위를 밀어서 화가 난 탓에 지문이를 내모는 거래요."지금은 두 개의 검색어가 전부 사라졌다.그 성씨 가문의 아가씨의 화가 풀리고 나면 하지문은 아마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듯싶었다."다 그 망할 계집애 때문이야. 그 계집애 때문에 우리가 큰 손실을 보게 된 거지. 지금은 실시간 검색어가 다 내려갔지?""그래도 화제는 아직 되고 있는 데다 글들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요."하 영감은 또다시 하예정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은 뒤 물었다. "무슨 방송에서 조정할 사람을 찾았느니, 합의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연기라도 해야지. 이 일로 애들이 일을 못 하게 할 수는 없지."하예정이 반격을 시작한 뒤로 아들과 손자들은 일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 손실은 다
성씨 가문 아가씨가 전씨 가문 도련님을 열렬히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 겨우 전씨 가문 도련님과 함께 엮여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는데 그들때문에 화제가 줄었다고 그 아가씨는 화를 낸 것이다.재벌 가문 아가씨는 무슨, 남자를 구경도 못 해 본 게 분명했다!남자 하나 때문에 그들 집안을 짓밟다니, 정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하씨 집안 모두가 힘을 모은다고 해도 그 아가씨를 어떻게 할 방도는 없었다.시내에 와 이런 일을 겪고 나서야 하 영감은 걷는 놈 앞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하 영감은 자신의 손자들이 대단하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손자보다 수십 배는 대단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있었다."왜 그런 것이냐? 전에 이야기를 다 마쳤지 않으냐? 아버지와 네 삼촌이 대본도 다 준비해 놓고 합의할 때, 사람들에게 우리가 진짜로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하예정이 합의하지 않으면 그 애가 나빠 보이게 제대로 연기할 생각이었는데, 왜 갑자기 취소가 된 것이냐?"하씨 집안 할머니도 다급하게 물었다. "지문이가 뭐라니? 그 사람들이 안 도와주겠대?"하지문은 휴대폰 너머로 또 무슨 말을 한 듯, 둘째 아들은 체념한 듯 전화를 끊은 뒤 첫째에게 말했다. "지금은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서지 않는대요. 하는 수 없이 우리가 몇 번 더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어. 지난번에 지명이 더러 동생들 데리고 가라고 했잖아. 젊은 애들이라 좀 충동적으로 나왔나 봐. 여덟째는 하예정의 가게를 부수겠다고 했다지, 뭐야. 그건 합의가 아니라 기름을 붓는 거지.""형, 다 같이 상의해서 어른들인 우리가 직접 하예정을 찾아가 사과하면서 인터넷에 올린 글을 삭제하고 화해했다는 글을 다시 올려달라고 하는 건 어때요? 그래야만 이 사단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인터넷의 힘은 그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났고, 그들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면 이 방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하예정의 가게를
"태윤 씨, 저 지금 당신 회사 아래예요. 아직 퇴근 안 한 거예요? 저 당신이랑 점심 먹으려고 당신 데리러 왔어요. 깜짝 놀랐죠? 기쁘지 않아요?"전태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놀라기는 확실히 놀랐다.하지만 기쁨은, 존재하지 않았다.전태윤의 자제력이 좋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을지도 몰랐다."태윤 씨?"대답이 들리지 않자, 하예정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전태윤은 넥타이를 잡아당겨 풀며 조용히 말했다. "저 이미 퇴근했어요. 근데 클라이언트께서 아직 가지 않으셔서 지금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에요. 아마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아니면 먼저 돌아갈래요? 조금 있다가 제가 가게로 갈게요.""얼마나 걸려요? 저 차를 몰고 온 게 아니라 택시를 타고 왔거든요. 괜찮아요, 저 회사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당신 일 다 하고 나면 같이 가요."전태윤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본 뒤 말했다. "회사 맞은편에 카페 있는데 거기서 기다려요. 조금 있다가 데리러 갈게요."고개를 돌려보니 정말로 카페가 있는 것을 본 하예정은 별다른 생각 없이 전태윤의 말에 따랐다.하예정과의 통화를 마치고 난 전태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갑자기 쳐들어와 그의 진짜 신분이 탄로날까 그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하예정이 데리러 온 탓에, 전태윤은 접견실로 들어간 뒤 클라이언트와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빠르게 마무리했다.그런 뒤 소정남과 그 몇몇 임원들에게 클라이언트와 함께 관성 호텔로 식사 대접을 하라고 지시했다."전 대표님은 안 가시는 겁니까?"클라이언트가 반사적으로 물었다."급한 일이 있어서, 저는 함께 못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제가 다시 식사 대접하겠습니다."오늘의 이 중요한 클라이언트는 다름이 아니라 A시 제일 재벌 예씨 가문의 다섯째, 예준하였다.예진 그룹은 관성에도 자회사가 있었지만 여태까지 두 그룹은 서로 거래가 별로 없었다. 예진 그룹이 관성에 자회사를 세웠을 때도 눈치껏 해당 지역의 거물들과 케잌 싸움은 하지 않았었기에 자회사는
우빈이가 툭하면 어린이집에 안 가는 데 익숙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명확하게 일러둬야 한다고 하예정은 생각했다. 이번에는 용정이 모처럼 놀러 왔고 또 용정이 관성에서 친구란 우빈이밖에 없으니, 이번만은 응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우빈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을 약속했다.용정도 따라서 말했다.“아주머니, 다음번에는 제가 여름방학 혹은 겨울방학을 하는 틈을 타서 올 게요. 그러면 누구도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잖아요.”“이모, 지금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서 얘기하면 안 돼요?”우빈이한테는 지금 휴가를 내는 일이 급선무였다.그래야 시름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째려보았다. 전태윤은 일부러 하예정의 시선을 피하여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쳐다보는 척했다. 하혜정은 속으로 남편이 우빈이의 일을 자신한테 떠밀었다고 투덜댔다.“알았어.”하예정은 마지못해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예진이 전화를 받자 하예정이 말했다.“언니, 우빈이가 할 얘기 있대.”그러고 나서 휴대폰을 우빈이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우빈아, 네가 직접 엄마하고 얘기해.”우빈이는 전화를 받아쥐고 하예진에게 휴가를 내려는 사유를 자초지종 말했다.하예진도 하예정과 똑같은 말을 하고 나서 우빈이가 하루 휴가를 내서 모처럼 찾아온 친구랑 노는 것에 응낙했다.그러자 우빈이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돌려준 후 용정의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했다. 그러고는 대결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용정에게 말했다.“용정아, 나 요즘 아주 열심히 무술을 연마했어. 우리 한 번 대결해.”용정이 자신만만해서 말했다.“넌 나한테 질 거야. 나한테 져서 화내면 안 돼. 알았지?”지난 여름방학 때 두 사람이 함께 놀 때 우빈이가 항상 져서 기분이 언짢아했었다.용정은 그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모연정이 용정이보고 우빈이는 손님인데 왜 양보하지 않았냐고 핀잔했다.하지만 용정은 어떻게 양보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 자연스럽게 져주는 법을 모르
전태윤이 말하면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예준성도 뒤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다행히 평소에 우리 두 집이 서로 가깝게 지냈고 또 앞으로 친척이 될 사이니 말이죠. 그렇지 않고야 제가 미안해서 어찌 이렇게 이른 아침에 찾아와서 폐를 끼치겠어요.”별장 구역은 아주 조용했다. 가끔 조깅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였다.“용정이 모처럼 왔는데 한시 급히 친구와 놀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용정의 무술 실력이 아주 많이 는 거 같아요. 아까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과 달리는 속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 우빈이는 아무리 용을 써도 용정을 못 따라잡아요.”“사람마다 다 장점과 약점이 있어요. 용정의 약점은 식탐이 많아요. 매번 집에만 돌아오면 준영이를 얼려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다 해달라 해요. 번마다 배를 두드리면서 먹어요.”“연정 씨는 애가 하도 많이 먹길래 배에 탈이라도 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다행히도 매일 무술을 연습하느라 많은 열량을 뺐지요. 그렇지 않으면 진작 뚱보가 되었을 겁니다.”“애들은 다 그래요. 크면 저절로 다 낫는 법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저도 어린 시절에 먹길 엄청나게 좋아했대요. 하지만 커서 난 식탐 많은 사람으로 취급받은 적 없어요.”커서는 혼자 통제할 수 있으니 제멋대로 먹지 않았을 뿐이었다.예준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식탐 때문에 손해 볼 수도 있어요.”두 어른과 두 어린이는 반 시간 남짓이 달린 후 방향을 바꿔서 집으로 달렸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할 무렵에 하예정은 이미 일어나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빈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대문 입구로 마중 나갔다.“이모!”두 꼬맹이가 먼저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예정을 본 우빈이는 깡충거리면서 뛰어갔다.용정도 우빈이 뒤를 따라 뛰어갔다.“아주머니.”“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니?”하예정은 용정을 보고 반색하며 맞았다.비록 마당에 세워진 예준하의 차를 보긴 했지만
전태윤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이러니 두 사람이 친구로 될 수 있는 거네요. 두 사람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니 말이죠. 저도 꼭두새벽에 우빈이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함께 조깅하러 나가는 중입니다.”“같이 나가는 건 어때요? 같이 산책해요.”전태윤이 예준성 부자한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제안했다.예준성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럽시다. 어차피 저도 이제 더 잘 수도 없는데요.” 예준성은 용정을 보면서 말했다.“우빈이 데리고 앞에서 놀아야 해.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알았지?”“우빈이더러 용정을 잘 데리고 놀라고 해야죠. 당신들은 멀리서 온 손님이니 응당히 우리가 주인답게 잘 대접해 드려야죠.”두 아이는 진작 손잡고 앞으로 뛰어 가버렸다.예준성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용정은 낯 갈이도 잘 안 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숙해져요. 기억력도 참 좋아요. 한 번 다녀갔던 길은 절대 안 잊어요. 길옆에 있는 화초까지 똑똑히 기억할 수 있어요. 걔는 식물 종류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용정의 스승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의술이 최고인 정 선생님이잖아요.”정겨울은 바빠서 직접 용정을 가르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용정이 신의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약재의 이름을 기억했다.용정의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용정은 성격이 참 좋아요.”“그건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성격이 좋을 땐 좋아도 녀석이 횡포한 면도 있어요. 금방 집에 데리고 왔을 때는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말도 잘 안 하기에 똑똑하지 못한 먹보인가 했어요.”“정말 잘못 봤어요.”예준성이 겉으로는 양아들의 단점을 말하는 것 같지만 두 눈은 애틋한 눈빛으로 가득 찼다. 용정은 예준성을 약간 어려워하기에 여태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저씨라고만 불렀고 모연정을 엄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자신이 모연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모연정을 모 엄마라고 불렀다.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운이 좋은 줄 아세요.
“알았어요. 제가 지금 태윤 씨 집 앞에 있어요. 집사가 문 열려고 나오네요. 그러면 만나서 얘기해요.”말을 마친 예준성은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은 멍하니 서 있었다.전태윤이 어리둥절하여 머리를 숙여 우빈이를 쳐다보니 마침 우빈이도 머리를 들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이모부, 왜 그래요? 무슨 일 생겼나요?”전태윤은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누군가 우빈이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또 아침 일찍 찾아왔단다.”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혹시 예준하와 성소현의 혼사에 문제가 생겨 예준성이 자신더러 로비스트 되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건 아닐지 생각했다. 하예정은 그럴 재주가 있지만, 자신은 로비스트로 될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이윽고 예준성이 동생이 평소에 타고 다니던 차를 운전해서 대문을 지나 마당에 세웠다.예준성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뒷좌석의 차 문이 열리면서 작고 탄탄한 몸매를 가진 어린애가 차에서 날렵하게 뛰어내리더니 전태윤이 서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뛰어왔다.“우빈아, 우빈아, 내가 왔어!”전태윤이 눈여겨보니 용정이었다.“용정!”용정을 알아본 우빈이는 잡고 있던 전태윤의 손을 뿌리치고 용정이 뛰어오는 방향을 향해 깡충깡충 뛰어갔다.두 꼬맹이는 만나자마자 반갑다는 듯 어른들처럼 상대방한테 커다란 포옹을 해주었다.여름방학 때 작별한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두 아이의 키는 눈에 띄게 컸다.용정은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서 무술을 연마했기에 키가 우빈이보다 훨씬 더 컸으며 신체도 우빈이보다 퍽 탄탄해 보였다.방금 용정이가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을 통하여 전태윤은 용정의 무술 실력이 또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 용정의 무술 솜씨는 우빈이 셋을 합쳐도 못 당할 것이었다. 이 아이는 무술 배우는 방면에서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어?”친구를 만난 우빈이는 기뻐하면서 물었다.“나는 할아버지 따라서 모 엄마와 아저씨 보러 왔어. 사공이 유치원에 일주일 동안 휴가를 신청해
이날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돌아오는 날은 일요일이었다.휴식날인데 우빈이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우빈이는 일어난 후 곧장 하예정이 자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전태윤이 안에서 방문을 열어주었다.“이모부, 이모 일어났어요? 들어가서 이모랑 같이 놀래요.”전태윤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꼬맹이와 화내지 말자고 스스로 가슴을 달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지? 평소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 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더니 쉬는 날만 되면 아주 일찍 일어나더라.”우빈이가 입을 뾰족이 내밀면서 말했다.“이모부, 나는 한 번 깨어나면 더는 못 자요. 나랑 놀아 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심심해요. 이모 찾아와서 노는 수밖에 없어요.”현재 우빈이는 시 중심에 자리 잡은 전태윤의 개인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 서원 리조트에 있을 때는 그나마 함께 놀아 주는 어린이들이 있었기에 이모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우빈이를 부쩍 들어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이모는 아직도 자고 있어. 이모부가 우빈이랑 같이 놀아 줄게. 뭐 놀까?”“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좋지 않을까?”우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싫어요. 혼자 놀면 재미가 없어요. 이모부는 장난감도 안 놀 거잖아요.”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이모부랑 같이 아침 조깅하러 나갈까? 이모부가 가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올 테니 얌전하게 기다려야 해?”그는 우빈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내려놓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신신당부했다.“침실에 들어가서 이모를 깨우면 안 돼. 알았지? 이모부가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우빈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전태윤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서 먼저 운동복 바지부터 바꿔 입고 우빈이가 그사이에 침실에 들어가서 하예정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웃옷을 입으면서 밖으로 나왔다.우빈이가 조용하게 제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야 전태윤은 안도의
윤미라는 아들 노동명이 무서웠다.“알았어. 꾸준히 재활 치료할 거야. 네가 돌아올 때면 내가 2~3m나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참, 언제 돌아올 거야?”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대답했다.“설까지 있을 계획에요. 설날이 되면 제가 돌아갈게요.”“그렇게 오래 있겠다고? 우빈이는 어쩌려고?”“예정이가 돌봐주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우빈이 보러 가주세요. 시간이 없으면 제부한테 부탁해서 우빈이를 저한테 데려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고요.”하예진은 점점 더 바빠질 것이다.당분간 아들 우빈과 함께할 시간이 적을 것이다.“우빈이가 태어날 때부터 예정이가 곁에서 보살펴서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요.”“사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노동명이 한 마디 내뱉었다.우빈이는 핑계일 뿐, 사실 노동명이 그녀가 그리웠다.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리면 노동명은 자신이 하예진이 무척 보고싶을 것으로 예상했다.전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만 그리움의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우빈은 어려서부터 녀석을 키워준 하예정이 있어서 하예진이 곁에 없다고 해도 바로 적응할 수 있지만 노동명은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요즘 그는 매일 하예진을 보는 것에 익숙했다.“예진아,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내가 혼자 널 보러 가도 돼? 걱정하지 마. 우리 집에 개인 비행기가 있어서 내가 그 비행기를 타고 경호원들과 함께 가면 돼. 경호원들이 날 돌봐줄 거야. 네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거고. 널 보러 갈 뿐이야. 너랑 밥 먹고 얘기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주말마다 널 보러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게. 나도 출근해야 하니까.”하예진은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럼 주말에 우빈이도 데리고 오세요.”“난 너와 단둘이 주말을 보내고 싶은데 우빈이 녀석도 데리고 가야 해?”하예진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동명 씨가 혼자 온 걸 알게 되면 우빈이가 삐질걸
“앞으로 더는 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저는 단 한 번도 동명 씨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제가 돼지처럼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도 동명 씨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처럼요.”노동명은 급히 끼어들었다.“넌 못생기지 않았어. 전혀! 예전에 통통할 때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거든. 복스러워 보였어.”“못생긴 거 맞아요. 저는 거울만 봐도 뚱뚱한 제가 너무 싫었어요.”바보 같은 짓은 한 번만 하면 충분했다. 하예진은 다시는 예전처럼 폭식하지 않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살을 빼기 전에 하예진은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지방간뿐만 아니라 요산 수치도 높았다.체중 감량 후 요산뿐만 아니라 지방간 수치도 모두 많이 좋아졌다.“하예진아, 우빈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옷도 사줬는데 나한테는 뭐 사준 거 없어?”노동명이 화제를 바꾸어 질투하기 시작했다.“동명 씨는 부족한 게 없잖아요. 우빈이는 아이라서 너무 빨리 커요. 해마다 새 옷을 사줘야 하지만 동명 씨는 이젠 다 큰 성인이라 작년의 옷을 올해에도 입을 수 있잖아요. 돌아가게 되면 강성의 특산 제품을 가져다드릴게요.”노동명은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빈이는 크면 남의 집 남편으로 되어 우빈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게 될걸. 결국,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을 텐데 나를 더 관심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새 옷 사줘. 네가 사준 옷이면 난 다 좋아.”하예진은 하예정에게 거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지난번 하예진은 재혼하고 싶지 않다며 노동명의 감정을 거절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이 시집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나 다름없다. 모두의 눈에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보였다.노동명도 자연스레 하예진의 남편 역할을 하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여생을 함께하려고 한다.하예정이 끝까지 노동명에게 시집가지 않더라도, 그가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남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선물을 너무 받고 싶었다. 가격을 따지
이윤미가 말을 꺼냈다.“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을 뿐이에요. 사람들을 몰래 예진 씨를 따르라고 한 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뒤를 따라가서 예진 씨의 몸매를 익히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앞으로 예진 씨가 변장하더라도 그녀의 몸매에 대한 인상으로 분장한 예진 씨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예진 씨와 만날 때마다 예진 씨의 안전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니까요.”“만약 그녀가 저를 만나러 오는 도중에 사고가 나면 하예정 일행은 아마 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예진 씨가 강성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몰래 그녀를 도와주세요. 그저 우리 엄마와 그 늙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도와주면 돼요.”이윤미가 말하는 늙은 남자는 정군호가 아닌 이은화의 특별 비서였다.방윤림은 예의 갖추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밤이 점점 깊어지는데 얼른 돌아가세요.”이윤미는 한숨을 쉬었다.“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집에는 따뜻함이 없어요.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눈치 보면서...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방윤림은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랐다.주인의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일개 비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이윤미는 곧 방윤림과 함께 떠났다.한 시간 후.하루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한 뒤 가발을 쓰고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이윤미가 선물한 인간 얼굴 가죽을 쓰기 아까웠다.그렇게 전업적인 도구는 가장 필요한 곳에 써야 낭비하지 않는다.하루 호텔은 전호영이 강성에서 소유하고 있는 호텔 본점이다. 하예진이 분장한 이유는 전호영에게 폐를 끼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 그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가죽을 쓸 필요 없었다.하예정은 그녀가 묵고 있던 룸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근 뒤에야 휴대전화를 꺼내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노동명이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주무세요?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