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빈이는 아직 만 3세도 안 된 어린아이라 장난스러운 면도 있었다.주형인은 그날 우빈이를 데리고 부근의 작은 놀이터에 놀러 갔는데, 꼬마 녀석은 장난이 심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칫하면 멀리 달려갔다. 주형인은 아들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놀라서 죽는 줄 알았다.그는 아들은 한 번 데리고 놀러 간 후 두 번 다시 놀러 가고 싶지 않았다.처음조차도 핑계로 댄 거라, 마지못해 아들을 데리고 놀러 간 것이다.우빈이는 떼를 쓰지 않고 아빠에게 물었다.“아빠 출근해요?”“응, 아빠는 출근해서 돈을 벌어야 해.”사실 그는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지금 하예진의 가게가 잘되는 것을 보고, 그는 서현주와 결혼식을 올린 후, 함께 작은 가게를 꾸려 자기가 사장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그러면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로울 테니까.하지만 가게를 열면 전태윤이 계속 손을 쓸지는 모른다.주형인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태윤이 그를 가만두지 않고 그가 아무 일도 못 하게 하는 것이다.그는 정 안 되면 카카오 택시라도 몰 생각이었다. 비록 힘들긴 하지만, 수입이라도 있을 거니까.주형인은 자신이 누군가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네...”우빈이는 아빠가 둘러댄 핑계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엄마는 예전부터 줄곧 그에게 아빠는 매일 출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많이 들어서 그런지, 꼬마 녀석은 아빠가 매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예진은 전남편이 또 찾아온 것을 보고 상대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상대할 시간도 없었다.주형인은 아들을 안고 하예진의 곁으로 다가갔다.“예진아, 나 아직 아침 안 먹었는데 야채 토스트랑 키위주스 해 줄래? ”하예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토스트 몇 개를 손님에게 가져다주던 숙희 아주머니가 주형인의 말을 듣고 한마디 했다.“주형인씨, 주문했으면 먼저 계산부터 해요. 그다음 자리를 찾아 앉아서 기다리면 돼요.”“그래도
우빈이는 아직 장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엄마에게 이모와 이모부를 빼고는 다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주형인은 목이 메어 한참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우빈아, 너 어떻게 아빠랑 동명 아저씨를 비교할 수 있어? 동명 아저씨는 남이고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너 동명 아저씨가 무섭지도 않아?”그러자 우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동명 아저씨는 무섭기는 하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지난번에 아들을 달래 노동명이 하예진을 찾아오기만 하면 그 둘의 사이를 파괴하라 했을 때 아들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주형인은 얼른 아침 식사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우빈이는 고집이 세서 말로 이길 수가 없다.꼬마 녀석이 동명 아저씨는 무섭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상, 아빠인 그가 뭐라 말해도 그 인상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그래, 돈 줄게, 돈 준다! 예진아, 이혼한 후 넌 정말 돈에 빠졌구나. 어떻게 이것저것 다 따져 쪼잔하게? 그래도 우리가 한때는 부부였는데.”주형인은 투덜거리면서 아들을 내려놓고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 하예진에게 건네주었다.“야채토스트랑 키위주스 줘.”하예진은 그의 돈을 건네받고 거스름돈을 찾아주었다.“이혼하기 전에 당신은 나랑 모든 걸 더치페이했어. 난 지금 당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대체 무슨 낯짝으로 공짜로 먹고 마시려 하는 거야?”주형인은 또 목이 메었다.하예진은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다.그들이 더치페이하며 지낸 게 한두 달밖에 안 되고, 이혼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원한을 품고 있다.“나 우빈이 친아빠야.”“여긴 내 가게지 우빈의 가게가 아니야. 당신은 우빈의 아빠지 내 아빠가 아니니, 텃세 좀 그만 부려.”“예진아... 너 정말 많이 변했구나. 말이 많이 날카로워졌어. 이거 예정이한테 배운 거지? 예정이는 이미 재벌 집으로 시집갔는데, 거긴 규칙을 매우 중요시하지 않아? 그런 성격으로 적응할 수나 있겠어? 예정이에게 그 성격 좀 고치라고 설득하는
주형인도 마음속으로 자신 때문에 하예진이 사회와 동떨어져 30대 초반에 평범한 주부로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가정주부에 비해 하예진은 용감한 편이었다. 그녀는 과감하게 주형인과의 혼인 관계를 끝냈다.그리고 아이를 봐서라도 참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이혼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혼하지 않고 부부가 매일 싸우는 것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차라리 이혼하여 아이를 데리고 나와 정성들여 보살피면, 그를 자신감 넘치는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숙희 아주머니는 토스트를 주형인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주형인은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그와 서현주는 지금 달콤한 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비록 약간의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런 모순들도 사라질 것이라고.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그리고 우빈이에게도 토스트를 먹여줬는데, 꼬마 녀석은 포크에 침이 묻어 있다고 아빠와 같은 포크를 쓰는 것을 거부했다. 우빈이는 새 포크를 가져다 달라고 한 후, 스스로 먹기 시작했다.“우리 우빈이 혼자 밥 먹을 줄도 알고, 정말 대단한데? 네 정한 형은 지금도 고모가 밥을 먹여줘야 해.”주형인은 자기 아들이 조카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느꼈다.조금 후, 하예진이 숙희 아주머니에게 다 만든 주스를 주형인에게 가져다 주라고 했다.주형인은 작은 컵을 달라고 한 후 주스를 그 컵에 조금 덜어놓고 우빈이에게 주었다. 부자 둘은 같이 주스 한 컵을 행복하게 나눠 먹었다.어느덧 출근 시간이 지나갔고, 손님들도 점점 줄어들었다.그제야 숙희 아주머니와 하예진은 숨 돌릴 겨를이 생겼다.주형인과 우빈이는 아직도 주스를 다 마시지 못했다. 누가 더 늦은지 겨루기라도 하는 것처럼.하예진은 천천히 테이블을 치우며 전남편이 아들과 감정을 키우는 것을 저지하지 않았다.부모 간의 원한을 어린아이에게 연루시킬 필요가 없다.이때 누군가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하예진과 숙
예전에 하예정이 주형인의 집에서 살았을 때, 그녀는 거의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현... 현주야, 나 그냥 아침 먹으러 온 거야.”주형인은 떨어진 포크를 주워 휴지통에 버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서현주에게 이렇게 설명했다.서현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빈이를 쳐다봤다.우빈이도 고개를 들어 서현주를 쳐다봤는데, 그의 작은 얼굴은 하예진과 매우 닮았고, 새까맣고 촉촉한 눈동자가 유난히 귀여운 아이였다.서현주는 곧 우빈이에게서 시신을 돌리고 남편을 쳐다봤다.그러자 주형인은 또 서둘러 설명했다.“방금 가게 일이 너무 바빠서 아무도 우빈이를 돌봐주지 않았어. 그래서 난 그냥 아침을 먹을 때 우빈이를 내 옆에 앉히고 좀 돌봤을 뿐이야. 어쨌거나 우빈이는 내 아들이잖아.”그는 서현주가 우빈이를 언급하거나 보러 오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서현주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녀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항상 우빈이를 보러 가는 것이 정말 싫었다. 시부모님은 늘 우빈이를 언급하며, 그가 주씨 가문의 대를 이을 유일한 보배 손자라고 말했다.주형인도 이혼하기 전에는 우빈이를 쳐다보지도 않더니,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고 아들을 찾아간다. 서현주는 주형인과 하예진의 옛정이 되살아날까 봐 늘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주형인이 서현주와 이혼하고 하예진과 재혼하기를 바라고 있다.서현주는 주형인과 관계를 가진 지 몇 달이나 되었지만 아직 임신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만역 임신하면 시댁 식구들이 더 잘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빠, 나도 오빠를 탓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다음에도 와서 아침을 먹으려면 나도 좀 불러줘요. 나도 예진씨가 만든 아침을 맛본 지 오래됐단 말이에요. 예전에는 오빠가 계속 도시락을 가져와 나한테 줬잖아요.”테이블을 닦던 하예진은 행주를 잡은 손을 멈칫하더니 이내 계속하여 닦았다.예전에 주형인은 늘 늦게 일어나 집에서 아침을 먹
주형인은 서현주를 힐끗 쳐다보더니 장난치는 듯한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어? 아침에 예진이의 가게에서 아침을 먹고 우빈이와 좀 놀았어. 난 자기가 예진이 앞에서 나를 혼내며 망신 줄까 봐 두려웠는데, 우빈이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난 당신이 정한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걸 보고, 애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임정한이 지난번에 서현주의 화장품을 망가뜨린 이후로 서현주는 그 아이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주서인과 주형인이 남매 관계를 끊지 않는 한, 그들은 계속 집에 찾아올 것이고, 그녀도 침실문을 잠글 수밖에 없다.서현주는 주서인의 세 아이는 모두 시부모가 키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부모는 친손자인 우빈이보다도 세 명의 외손주를 더 이뻐한다.임정한이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시부모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마음대로 놀도록 내버려 두었다.서현주는 노인들이 아이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임정한이 집에 돌아가고 나면 시어머니가 항상 그녀에게 방을 치우라고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지저분한 꼴을 보기 싫은 사람이 치우라지, 어쨌든 내 방만 지저분하지 않으면 돼.’서현주가 못 들은 척하자 결국은 시부모가 어질러진 집을 거두었다. 한두 번 집을 거두다 지쳐버린 시부모도 후에는 임정한이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시부모와 시누이와 수없이 싸운 끝에 서현주는 그들보다 더 독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형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제 편으로 만들기만 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난 애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개구쟁이가 싫어요. 우빈이처럼 철이 들고 귀여운 아이는 싫지 않아요. 그렇다고 나의 라이벌인 하예진의 아들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예진인 이젠 당신의 라이벌이 아니야. 우린 이미 이혼했어.”“오빤 재혼할 생각이 없고 하예진은 더더욱 없는 걸 알아요. 하지만 오빠 가족들은 항상 오빠 앞에서 내 흉을 보며 하예진이 더 좋다고 말하잖아요.”주형인이 급히 말했
“우리 가족이 모두 화목하면 얼마나 좋아요? 나도 인색한 사람이 아니에요. 어쨌든 오빤 우빈의 아빠이고 매달 양육비도 지급하는데 부자간의 정을 유지해야죠. 오빠가 돈을 내서 우빈이를 키우는데 우빈이가 오빠와 전혀 친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손해예요?”“당신 말이 맞아.”“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은지 이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내 배는 아무런 소식도 없어요. 우빈이를 데려와 한동안 살면 내가 임신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 고향에는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애를 낳지 못하다가 애를 한 명 입양해 키우니 얼마 가지 않아 임신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어요.”주형인이 서현주를 칭찬했다.“자기야, 난 역시 자기를 잘못 보지 않았어. 자기는 어쩜 마음이 이렇게도 착해? 현모양처가 따로 없잖아.”“세상에 어떤 여자가 시집가서 잘 살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내가 이렇게 막무가내인 여자로 변한 건 모두 오빠 집안사람들이 나를 너무 못살게 군 탓이에요. 특히 형님은 정말 못됐어요. 오빠와 하예진의 결혼을 망치고, 또 우리 둘을 망치려고 해요. 오빠, 내가 이간질하는 게 아니라 이건 전부 사실이에요. 잘 생각해 봐요, 형님이 하는 모든 일은 남을 해쳐서 자기가 이득 보는 일이잖아요.”“...”“분명히 자신에게 많은 예금이 있으면서도 가게를 차리겠다고 우리한테 몇천만을 빌리러 오고. 형님 같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에요. 빌려주면 절대 돌려받을 수 없어요.”서현주가 주형인에게 주서인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하예진도 예전에 분명 주형인한테 주서인에 대해 불만을 말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이미 마음이 변한 주형인은 자기 누나를 편들었다.주형인이 잠자코 있다가 말을 꺼냈다.“누나보고 앞으로 큰일 없으면 우리 집에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했어.”“형님이 오빠한테 애들 호적을 우리 호적에다 옮기겠다고 하셨죠? 애들이 관성중학교에 다니기 편리하다며. 오빠, 절대 멍청하게 굴지 말아요. 들어오는 건 쉽지만 내보내려면 어려워요. 우리
눈치 빠른 서현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주서인이 아무리 쓰레기라 해도, 주형인의 친누나인 건 변함없으니... 주형인은 누나와 왕래를 끊을 수 없다.우빈이와 더 가까워지면, 이제 그들 부부가 우빈이를 데리고 놀러 가겠다고 해도 하예진은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면 서현주도 그 이름 모를 여자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내 가족의 목숨이 모두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있으니, 날 독하다고 탓하지 마. 난 그저 우빈이를 사람 많은 곳으로 데려가서 상대편 사람들이 손을 쓸 기회를 주는 것뿐이야. 우빈이가 말만 잘 들으면 별일 없을 거야.’서현주는 속으로 저 자신를 위로했다.‘원망하려면 하예정을 원망해야지. 하예정이 그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서 주우빈이 그 화를 입은 것이니. 게다가 그 여자도 우빈이를 이용하여 하예정을 유인하려는 거니 괜찮겠지.’...항상 다른 가게보다 일찍 문을 여는 여운초의 꽃가게는 출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열려있다.여운초는 매일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후 걸음 수를 세면서 가면, 정확히 자신의 가게 앞에 도착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다닌 길이라 이미 익숙해져 있다.여씨 집에도 운전기사가 있지만, 집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는 여운초는 차를 쓸 수 없다.어젯밤, 여씨 가문 별장에서는 아주 재밌는 연극이 벌어졌다.여운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싹수없는 여동생이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얘기를들었다. 작은딸을 편애하는 여운초의 엄마는 울며불며 여운별을 구출할 대책을 상의하러 빨리 돌아오라고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운별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경찰에게 잡혀간 것을 보니, 법을 어긴 것이 틀림없다.예전부터 큰아버지와 어머니가 여운별을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을 보고, 조만간 사고 칠 줄 알았는데, 과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보통 9시에 출근하는 두 명의 직원이 아직 출근하지 않아서 지금 여운초 혼자 꽃가게를 지키고 있다.여운초가 한창 가게 안의 화분을 문밖으
여운초가 여전히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저희 가게는 꽃 외에도 비료와 영양흙 등 종류가 다양해요. 뭘 도와드릴까요 손님?”눈앞의 이 여인은, 언제나 미소 띤 얼굴에 온화한 말투로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지만,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일단 좀 둘러볼게요.”전이진은 여운초 곁을 지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 꽃들을 둘러보았다.한 바퀴 돌고 나서 고개를 돌려보던 전이진은 여운초가 줄곧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뒤를 따라다닌 것을 보니 소경인척 하는 것이 아닐까?“손님?”전이진의 가벼운 발소리를 듣지 못한 여운초가 얼굴을 한 방향으로 향한 채 전이진을 불렀다.여운초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진짜 소경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려웠던 전이진은 슬쩍 떠보기로 했다.가게를 한 번 둘러본 전이진은 선인장을 가볍게 들어 카운터에 올려놓고 여운초에게 물었다.“이 화분, 얼마죠?”여운초는 전이진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손님께서 고르신 건 어느 곳에 있던 거죠? 저는 앞이 보이지 않아 번거롭겠지만 한 번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전이진은 여운초의 눈을 쳐다보았다. 여운초가 지금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 않아서 그녀의 눈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크고 예쁜 여운초의 두 눈은 생기가 없었다.“정말 안 보여요? 그런데 방금 어떻게 제 뒤를 계속 정확하게 따라다닌 거죠?”여운초는 바지 주머니에서 검은색 선글라스를 꺼내 다시 착용했다.“저는 청력이 좋아서 미세한 움직임도 다 들려요. 손님의 발소리를 듣고 뒤따라 걸었어요.”전이진도 시각장애인은 볼 수는 없지만 세심하고 청력도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들었다.“그냥 하나 골랐는데 어느 곳인지는 자세히 안 봤어요. 꽃가게 사장님이시니 가게의 꽃에 대해 잘 아시겠죠? 손으로 만져보시고 내가 고른 이 화분이 무슨 꽃인지 알 수 있나요?”그는 할머니가 정말 소경을 짝으로 픽해주셨다고 믿지 않았다.어쨌든 한번 떠보고 싶었다.“화분은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