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하예정이 주형인의 집에서 살았을 때, 그녀는 거의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현... 현주야, 나 그냥 아침 먹으러 온 거야.”주형인은 떨어진 포크를 주워 휴지통에 버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서현주에게 이렇게 설명했다.서현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빈이를 쳐다봤다.우빈이도 고개를 들어 서현주를 쳐다봤는데, 그의 작은 얼굴은 하예진과 매우 닮았고, 새까맣고 촉촉한 눈동자가 유난히 귀여운 아이였다.서현주는 곧 우빈이에게서 시신을 돌리고 남편을 쳐다봤다.그러자 주형인은 또 서둘러 설명했다.“방금 가게 일이 너무 바빠서 아무도 우빈이를 돌봐주지 않았어. 그래서 난 그냥 아침을 먹을 때 우빈이를 내 옆에 앉히고 좀 돌봤을 뿐이야. 어쨌거나 우빈이는 내 아들이잖아.”그는 서현주가 우빈이를 언급하거나 보러 오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서현주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녀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항상 우빈이를 보러 가는 것이 정말 싫었다. 시부모님은 늘 우빈이를 언급하며, 그가 주씨 가문의 대를 이을 유일한 보배 손자라고 말했다.주형인도 이혼하기 전에는 우빈이를 쳐다보지도 않더니,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고 아들을 찾아간다. 서현주는 주형인과 하예진의 옛정이 되살아날까 봐 늘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주형인이 서현주와 이혼하고 하예진과 재혼하기를 바라고 있다.서현주는 주형인과 관계를 가진 지 몇 달이나 되었지만 아직 임신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만역 임신하면 시댁 식구들이 더 잘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빠, 나도 오빠를 탓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다음에도 와서 아침을 먹으려면 나도 좀 불러줘요. 나도 예진씨가 만든 아침을 맛본 지 오래됐단 말이에요. 예전에는 오빠가 계속 도시락을 가져와 나한테 줬잖아요.”테이블을 닦던 하예진은 행주를 잡은 손을 멈칫하더니 이내 계속하여 닦았다.예전에 주형인은 늘 늦게 일어나 집에서 아침을 먹
주형인은 서현주를 힐끗 쳐다보더니 장난치는 듯한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어? 아침에 예진이의 가게에서 아침을 먹고 우빈이와 좀 놀았어. 난 자기가 예진이 앞에서 나를 혼내며 망신 줄까 봐 두려웠는데, 우빈이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난 당신이 정한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걸 보고, 애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임정한이 지난번에 서현주의 화장품을 망가뜨린 이후로 서현주는 그 아이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주서인과 주형인이 남매 관계를 끊지 않는 한, 그들은 계속 집에 찾아올 것이고, 그녀도 침실문을 잠글 수밖에 없다.서현주는 주서인의 세 아이는 모두 시부모가 키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부모는 친손자인 우빈이보다도 세 명의 외손주를 더 이뻐한다.임정한이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시부모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마음대로 놀도록 내버려 두었다.서현주는 노인들이 아이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임정한이 집에 돌아가고 나면 시어머니가 항상 그녀에게 방을 치우라고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지저분한 꼴을 보기 싫은 사람이 치우라지, 어쨌든 내 방만 지저분하지 않으면 돼.’서현주가 못 들은 척하자 결국은 시부모가 어질러진 집을 거두었다. 한두 번 집을 거두다 지쳐버린 시부모도 후에는 임정한이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시부모와 시누이와 수없이 싸운 끝에 서현주는 그들보다 더 독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형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제 편으로 만들기만 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난 애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개구쟁이가 싫어요. 우빈이처럼 철이 들고 귀여운 아이는 싫지 않아요. 그렇다고 나의 라이벌인 하예진의 아들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예진인 이젠 당신의 라이벌이 아니야. 우린 이미 이혼했어.”“오빤 재혼할 생각이 없고 하예진은 더더욱 없는 걸 알아요. 하지만 오빠 가족들은 항상 오빠 앞에서 내 흉을 보며 하예진이 더 좋다고 말하잖아요.”주형인이 급히 말했
“우리 가족이 모두 화목하면 얼마나 좋아요? 나도 인색한 사람이 아니에요. 어쨌든 오빤 우빈의 아빠이고 매달 양육비도 지급하는데 부자간의 정을 유지해야죠. 오빠가 돈을 내서 우빈이를 키우는데 우빈이가 오빠와 전혀 친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손해예요?”“당신 말이 맞아.”“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은지 이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내 배는 아무런 소식도 없어요. 우빈이를 데려와 한동안 살면 내가 임신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 고향에는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애를 낳지 못하다가 애를 한 명 입양해 키우니 얼마 가지 않아 임신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어요.”주형인이 서현주를 칭찬했다.“자기야, 난 역시 자기를 잘못 보지 않았어. 자기는 어쩜 마음이 이렇게도 착해? 현모양처가 따로 없잖아.”“세상에 어떤 여자가 시집가서 잘 살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내가 이렇게 막무가내인 여자로 변한 건 모두 오빠 집안사람들이 나를 너무 못살게 군 탓이에요. 특히 형님은 정말 못됐어요. 오빠와 하예진의 결혼을 망치고, 또 우리 둘을 망치려고 해요. 오빠, 내가 이간질하는 게 아니라 이건 전부 사실이에요. 잘 생각해 봐요, 형님이 하는 모든 일은 남을 해쳐서 자기가 이득 보는 일이잖아요.”“...”“분명히 자신에게 많은 예금이 있으면서도 가게를 차리겠다고 우리한테 몇천만을 빌리러 오고. 형님 같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에요. 빌려주면 절대 돌려받을 수 없어요.”서현주가 주형인에게 주서인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하예진도 예전에 분명 주형인한테 주서인에 대해 불만을 말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이미 마음이 변한 주형인은 자기 누나를 편들었다.주형인이 잠자코 있다가 말을 꺼냈다.“누나보고 앞으로 큰일 없으면 우리 집에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했어.”“형님이 오빠한테 애들 호적을 우리 호적에다 옮기겠다고 하셨죠? 애들이 관성중학교에 다니기 편리하다며. 오빠, 절대 멍청하게 굴지 말아요. 들어오는 건 쉽지만 내보내려면 어려워요. 우리
눈치 빠른 서현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주서인이 아무리 쓰레기라 해도, 주형인의 친누나인 건 변함없으니... 주형인은 누나와 왕래를 끊을 수 없다.우빈이와 더 가까워지면, 이제 그들 부부가 우빈이를 데리고 놀러 가겠다고 해도 하예진은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면 서현주도 그 이름 모를 여자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내 가족의 목숨이 모두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있으니, 날 독하다고 탓하지 마. 난 그저 우빈이를 사람 많은 곳으로 데려가서 상대편 사람들이 손을 쓸 기회를 주는 것뿐이야. 우빈이가 말만 잘 들으면 별일 없을 거야.’서현주는 속으로 저 자신를 위로했다.‘원망하려면 하예정을 원망해야지. 하예정이 그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서 주우빈이 그 화를 입은 것이니. 게다가 그 여자도 우빈이를 이용하여 하예정을 유인하려는 거니 괜찮겠지.’...항상 다른 가게보다 일찍 문을 여는 여운초의 꽃가게는 출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열려있다.여운초는 매일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후 걸음 수를 세면서 가면, 정확히 자신의 가게 앞에 도착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다닌 길이라 이미 익숙해져 있다.여씨 집에도 운전기사가 있지만, 집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는 여운초는 차를 쓸 수 없다.어젯밤, 여씨 가문 별장에서는 아주 재밌는 연극이 벌어졌다.여운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싹수없는 여동생이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얘기를들었다. 작은딸을 편애하는 여운초의 엄마는 울며불며 여운별을 구출할 대책을 상의하러 빨리 돌아오라고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운별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경찰에게 잡혀간 것을 보니, 법을 어긴 것이 틀림없다.예전부터 큰아버지와 어머니가 여운별을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을 보고, 조만간 사고 칠 줄 알았는데, 과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보통 9시에 출근하는 두 명의 직원이 아직 출근하지 않아서 지금 여운초 혼자 꽃가게를 지키고 있다.여운초가 한창 가게 안의 화분을 문밖으
여운초가 여전히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저희 가게는 꽃 외에도 비료와 영양흙 등 종류가 다양해요. 뭘 도와드릴까요 손님?”눈앞의 이 여인은, 언제나 미소 띤 얼굴에 온화한 말투로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지만,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일단 좀 둘러볼게요.”전이진은 여운초 곁을 지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 꽃들을 둘러보았다.한 바퀴 돌고 나서 고개를 돌려보던 전이진은 여운초가 줄곧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뒤를 따라다닌 것을 보니 소경인척 하는 것이 아닐까?“손님?”전이진의 가벼운 발소리를 듣지 못한 여운초가 얼굴을 한 방향으로 향한 채 전이진을 불렀다.여운초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진짜 소경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려웠던 전이진은 슬쩍 떠보기로 했다.가게를 한 번 둘러본 전이진은 선인장을 가볍게 들어 카운터에 올려놓고 여운초에게 물었다.“이 화분, 얼마죠?”여운초는 전이진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손님께서 고르신 건 어느 곳에 있던 거죠? 저는 앞이 보이지 않아 번거롭겠지만 한 번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전이진은 여운초의 눈을 쳐다보았다. 여운초가 지금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 않아서 그녀의 눈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크고 예쁜 여운초의 두 눈은 생기가 없었다.“정말 안 보여요? 그런데 방금 어떻게 제 뒤를 계속 정확하게 따라다닌 거죠?”여운초는 바지 주머니에서 검은색 선글라스를 꺼내 다시 착용했다.“저는 청력이 좋아서 미세한 움직임도 다 들려요. 손님의 발소리를 듣고 뒤따라 걸었어요.”전이진도 시각장애인은 볼 수는 없지만 세심하고 청력도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들었다.“그냥 하나 골랐는데 어느 곳인지는 자세히 안 봤어요. 꽃가게 사장님이시니 가게의 꽃에 대해 잘 아시겠죠? 손으로 만져보시고 내가 고른 이 화분이 무슨 꽃인지 알 수 있나요?”그는 할머니가 정말 소경을 짝으로 픽해주셨다고 믿지 않았다.어쨌든 한번 떠보고 싶었다.“화분은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어요.”
결제하려고 휴대폰을 꺼낸 전이진은 카운터에 제로페이 큐알코드가 없는 것을 보고 여운초에게 물었다.“가게에서 핸드폰으로 결제 안되나요?”여운초가 솔직하게 말했다.“저는 볼 수가 없어서 핸드폰 결제를 하지 않아요.”여운초가 휴대폰를 꺼내 전이진에게 보여주었다. 숫자 키가 있는 오래된 휴대폰이라 전화와 메시지만 할 수 있었다.보이지 않는 여운초는 이런 낡은 휴대폰을 사용하여 손으로 숫자 키패드를 만져야만 전화를 할 수 있었고, 스마트폰은 사용할 수 없었다.“제가 가게 앞 게시판에 우리 가게는 현금결제만 가능하다고 붙였어요. 점원이 있을 땐, 점원의 제로페이를 스캔하고, 우리 점원이 다시 저에게 현금을 주면 돼요.”전이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여운초에게 건넸다.여운초는 손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돈을 만진 후, 카운터로 돌아가 서랍을 열었다. 키가 큰 전이진은 카운터의 서랍의 작은 칸마다 다른 액수의 돈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여운초는 능숙한 솜씨로 전이진에게 거스름돈 6천 원을 찾아주었다.“손님, 다음에 또 필요한 거 있으시거든 찾아오세요.”전이진이 거스름돈을 받아 세어보니 액수가 맞았다. 그는 돈을 지갑에 집어 넣으며 물었다.“혹시 명함 있나요? 명함 한 장 주세요. 다음에 제가 전화하면, 배달해 주실 수 있죠? 제가 일이 좀 바빠서요.”“네, 잠시만요.”여운초가 카운터에 있는 작은 상자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전이진에게 건넸다. 전이진은 명함을 살펴보고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선인장을 손에 들었다.“갈게요.”“살펴 가세요.”여운초는 전이진을 가게 문까지 배웅했다.전이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두 번 쳐다보고는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를 몰고 떠났다.전이진이 떠난 후, 가게에 도착한 두 점원은 여운초와 함께 화분을 옮겨 놓았다.“사장님, 이 선인장이 왜 여기에 있어요?”한 점원이 카운터 위에 있는 선인장을 제자리에 놓으면서 여운초에게 물었다.“방금 한 손님이 선인장을 사러 왔는데, 그 화분
전이진이 선인장을 들고 오자 전태윤이 물었다.“네가 산 거야?”“출근하는 길에 「꽃필무렵」 꽃가게에 다녀왔어.”“꽃필무렵?”익숙한 이름이였다. 와이프한테서 들은 것 같은데... 전이진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여운초씨 꽃가게 이름이야. 근데, 가게 이름이 뭐 이래?”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딱 맞는 이름인데, 왜? 간 김에 화분 몇 개 더 사 오지 그래?”전이진은 입을 삐죽거렸다.“꽃을 사러 간 게 아니야, 이 선인장도 마지못해 산 거고.”‘선인장 가시에 손을 찔리게 했는데 아무것도 사지 않을 수는 없잖아?’“컴퓨터 옆에 두려면 둥근 선인장을 사는 게 낫지 않아? 이 선인장은 가시가 길어 찔리기 쉬워.”전태윤은 몇 마디 하고는 전이진을 두고 먼저 로비로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갔다.전이진은 형이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했을 거로 생각했다.몇 분 후.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전이진은 선인장을 한참 쳐다보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여운초의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기억력이 좋은 여운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방금 선인장을 사 가신 손님분이시죠?”“네, 기억하고 있군요.”방금 그 때문에 혼났는데,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여운초는 마음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물었다.“다른 꽃 더 사시려고요?”“아까 깜빡 잊고 있다가 회사에 돌아와서야 생각이 났는데, 난초 하나 가져다줄 수 있나요?”“큰 거로 드릴까요, 작은 거로 드릴까요?”“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배달 되죠?”전이진은 여운초가 난초를 가져오면 그녀가 소경인지 아닌지 다시 한번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제가 사람을 시켜서 보내드릴 테니 주소와 연락처를 주시면 돼요.”전이진은 가게에 점원 두 명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만약 여운초에게 직접 배달해달라고 하면 너무 티 나고 자신이 못돼 보인다.“아니, 됐어요. 점심에 시간 날 때 가서 화분 몇 개 더 고를게요. 제 사무실이
여운초는 매우 뜻밖이었다.전씨 그룹 사람이라고?전씨 그룹의 직원일까, 아니면 전씨 일가의 사람일까?전혀 알 수가 없었다.여운초는 다음에 하예정이 꽃 사러 가게에 오면 그 전화번호를 누가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전이진이 여운초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르는 하예정은 전태윤이 자신을 가게까지 데려다준 후, 심효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도와줄 친구들이 도착하자, 먼저 그녀들에게 자신의 요구에 따라 작은 공예품을 만들어보게 했다.친구들의 솜씨가 서툴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다들 집으로 가져가서 만들도록 가게 창고에서 재료들을 가져다 나누어 주었다.몇몇 친구를 배웅한 후 가게로 들어가려고 돌아서던 하예정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차를 몰고 가게에 막 도착한 성소현이 서점 입구에 차를 세우는 것을 발견했으니까.“예정아, 나 기다리고 있었어?”성소현이 웃으며 하예정에게 걸어갔다. “방금 친구들 배웅하러 나왔다가 언니가 오는 걸 보았어요.”성소현은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보고는 하예정에게 물었다.“바로 네가 말하던 공예품 만드는 거 도와준다는 친구들?”“네, 이제부터 난 훨씬 한가해져 언니와 함께 큰돈을 벌 수 있어요. 참, 저녁에 우리 또 연회에 가야 해요.”연회 말이 나오자 하예정은 지난번 동씨 가문 연회에서 성소현과 자신이 앞으로 동서지간이 될 여운초를 돕느라 여운별의 미움을 산 것을 떠올렸다.응석받이로 자란 여운별은 뜻밖에도 하지철처럼 깡패들을 불러 그녀의 차를 가로막고 부수는 걸 택했다.비록 하예정은 아무 일 없었고 여운별도 경찰서에 보냈지만, 하예정과 여씨 가문의 모순은 점점 더 커졌다.“이 두 사람 낯이 익는데... 너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봐 걱정돼서 일부러 경호원을 붙인 거구나. ”성소현이 가게 입구 의자에 앉아 있는 두 경호원을 바라보며 웃었다.“그건 아니에요, 내가 위험할까 봐 밀착 경호원을 두 명 붙인 거예요.”성소현은 히죽 웃으며 하예정과 함께 서점에 들어갔다.
“여보, 나도 이십몇 년 간의 남매 정을 생각해서 도와준 거야. 갈 데도 없고 돈도 없는데 불쌍하잖아. 당신이 싫다면 내가 내보낼게.”정일범은 아내 조윤이 엄마한테 이를까 봐 겁이 났다.외도 사실이 들통난 후 윤정이가 오빠들을 도와줬기에 조윤은 윤정이를 무척이나 미워했다.윤정의 처지가 딱하게 된 지금, 조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더욱 심하게 굴 것이 뻔했다.하지만 조윤 탓을 할 수가 없었다. 반병 남짓 남았던 술을 아버지에게 갖다준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조윤은 차갑게 쏘아붙였다.“지금 당장 내보내요. 이후에도 연락하지 말고요, 그 애는 당신들의 동생이 아니잖아요. 당신들의 동생은 윤미라고요. 그 애 친아빠 때문에 당신들이랑 윤미가 이십 년이나 떨어져 살았는데 당연히 그 사람들을 싫어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윤미가 그 집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 사람들이 윤미한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봐요. 일범씨, 당신도 딸을 가진 아빠잖아요. 우리 딸이 다른 집에 바뀌어 가서 학대를 당했다고 생각해 봐요, 어떨 거 같아요?”정일범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곧 하인 부부에게 지시했다. “가서 윤정의 짐을 모두 정리해서 줘.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해, 다시는 여기에 나타나지 말고.”윤미의 둘째 형수랑 셋째 형수도 자기 남편에게 눈치를 주었다.두 남자는 와이프한테 찰싹 붙어 실실 웃어대며 낮은 목소리로 다시는 윤정이를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사과했다.윤정이는 절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이제 진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오빠들도 도와주지 않고 일전한 푼도 없는 상황에 어떡하지?이제 진짜로 친엄마한테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형편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고 시골과 도시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그녀가 시골로 돌아가 생활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돌아가지 않으면 클럽에서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기
이윤정은 조윤을 노려보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조윤은 이윤정에게 더는 해명하지 않고 그 사실을 이윤정에게 알려준 다음 두 동서에게 걱정스레 말했다.“가요. 우리 들어가요. 밖이 추워 죽겠어요.”조윤은 몸을 돌려 뒤따라 나오는 김숙자에게 지시했다.“앞으로 제 동의 없이 이 천한 X을 우리 별장 안에 들여보내지 마세요. 일범 씨가 다시 감히 윤정이를 여기로 끌어들인다면 우리 어머님의 노여움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한 번 물어 보세요.”이윤정은 넋을 잃고 주저앉아버렸다.얼마 후 정일범 형제가 도착했다.그들은 땅바닥에 앉아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 이윤정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손가락 자국들로 가득했고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리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있었으며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옷도 너무 얇게 입어 입술이 퍼렇게 변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정일범은 무척 가슴 아팠다.“윤정아.“세 형제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구경꾼들은 조윤이 자리를 뜨자마자 흩어졌다.물론 이윤정에 대한 소문은 곧 강성에서 널리 퍼졌다.정일범은 양복 외투를 벗어 이윤정의 몸에 걸쳐주었고 그의 두 동생은 이윤정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오빠.”이윤정은 정신을 차리더니 정일범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형수님, 형수님들이 나를 이렇게 때렸어.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내가 오빠들이 바람피울 때 오빠 편을 들었다고 지금 내가 초라해진 틈을 타서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분명 이윤미일 거야. 이윤미와 형수님들이 연합해서 나를 상대하는 거라고. 오빠, 나와 아빠는 단지 오빠가 준 술 반병을 마신 것뿐인데 그렇게... 오빠가 나와 아빠를 함정에 빠뜨릴 리가 없잖아. 그럼 분명 형수님이 우리 술에 약을 탔을 거야.”정일범은 다급하게 이윤정의 말을 끊었다.“윤정아. 이런 일은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 엄마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거든.”정일범도 조윤이 이윤정을 함정에 빠뜨린 사실을 알고 있다.지금 이윤정은 이
“넌 내 남편의 친동생이 아니야. 혈연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내 남편이 널 여기로 데려와 살면서도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첩을 이 별장에 몰래 감춘 게 아니면 뭔데! 이 별장은 우리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사주신 신혼 별장이고 부동산 소유증 위에도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나도 알 권리가 있어. 둘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내 남편이 몰래 여기로 널 데려온 것으로 보면 너희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조윤은 이윤정이 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이유를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이윤정에게 죄를 덮어씌웠다.이윤정은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억울하다고 누군가의 음모에 말려든 것이라고 울부짖을 뿐 감히 다른 말은 내뱉지 못했다.이런 모습은 오히려 사람들이 조윤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했고 이윤정을 보는 눈빛에는 혐오와 비난이 물들게만 했다.어떤 사람들은 이씨 가문의 예전 집사였던 이윤정의 친아버지가 나쁜 심보로 딸을 바꾸는 바람에 진정한 이씨 가문의 후계자인 이윤미가 고생하고 구박받으면서 자랐다고 여겼다. 하여 그 집사의 근본적인 인성부터 나쁘다고 비난했고 따라서 이윤정도 그 집사의 핏줄을 이어받아 아무리 이씨 가문에서 자랐다고 해도 환경과 상관없이 그 유전자가 나쁘다고 수군댔다.뿌리에서부터 상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이윤정은 악랄한 표정으로 과거 그녀의 비위를 맞추던 조윤 일행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이제 만족해? 당신들은 날 무너뜨리고 싶어서 날 당신들의 계략에 빠지게 한 거지? 당신들이 진범이지?”사건이 일어난 뒤로 이윤정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약을 타서 자신을 모함한 사람이 바로 조윤 일행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의 술은 정일범이 준 술이고 가져왔을 때 이미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그럼 정일범이 아니라면 분명 조윤일 것이다.조윤은 차가운 웃음을 날렸다.“윤정아,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울어도 소리쳐도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엄청 화나지? 얼마 전에 우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 안
예전에는 우아하고 오만하던 이씨 가문의 후계자였던 이윤정은 지금은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강아지처럼 어디로 가나 사람들에게 쫓겨나고 욕만 먹었다.“윤정이는요?“조윤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뒤 정원에서 그네에 앉아 계세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대로 한참을 앉아 계세요.”김숙자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조윤 일행은 기세등등하게 뒤 정원으로 걸어갔다.김숙자는 정일범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하다가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알렸다. 그녀의 남편도 정일범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했다.결국, 두 사람은 정일범에게 전화를 걸었다.“큰 도련님, 큰사모님께서 둘째 사모님과 셋째 사모님과 함께 여기로 와서 다짜고짜 둘째 아가씨가 여기에 머물고 계시는지 물어보셨어요. 지금은 뒤 정원으로 둘째 아가씨 찾으러 가셨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큰 도련님, 얼른 돌아오세요.”정일범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어떻게 아셨대요? 지금 바로 돌아갈게요.”조윤은 지금 이윤정을 무척 원망하고 있어서 과거의 감정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만약 정일범이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이윤정은 아마 조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김여희와 박수아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정일범은 두 남동생도 불러 함께 별장에 갔다.김숙자 부부는 정일범과의 통화를 마친 뒤로 밖으로 나갔는데 이윤정의 울부짖음과 욕설 소리를 들었다. 물론 욕설 퍼붓는 사람들은 조윤 일행이었다.김숙자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서둘러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대로 달려갔다.조윤 일행과 이윤정의 소리가 너무 컸는지 이웃들은 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걷다 보니 결국 정일범 별장 입구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역시 남의 가십거리를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인가 보다.이윤정이 아무리 오만하고 조윤 일행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고 해도 그녀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이윤정은 조윤에게 머리채까지 잡혀 비참하게 뒤 정원으로부터 앞 정원까지 끌려갔다.아파 죽을 지경이다!김
이윤미는 다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형수님, 그리고 윤정에게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고 대표님이 사실 여자라고 전해주는 것을 잊지 마세요.]조윤은 놀란 듯 되물었다.[윤미야, 사실이야? 고 대표님이 호영 도련님을 위해 치마를 입은 거 아니었어?”이윤미가 웃으며 회답했다.[형수님들은 고 대표님 성격을 몰라서 그래요. 고 대표님이 만약 정말로 남자라면 치마를 입고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을 거예요. 윤정이 보고 단념하라고 전해주세요.]이윤미는 더는 답장하지 않았다.이윤미는 이윤정이 자신이 이씨 가문에 돌아온 후에도 오만하게 굴더니 지금 어떻게 날뛰는가 지켜보고 싶었다. 지금 또 조윤 일행이 이윤정을 꽉 물고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으니 이윤정이 다른 재벌가의 내연녀로 되지 않는 한 친부모를 찾아 생활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이윤정은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으니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조윤 일행이 한 일을 이윤미도 다 알고 있었지만, 이윤정을 괴롭히는 것을 눈감아주면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쨌든 이윤미한테도 유리했기 때문이다.이씨 가문의 가족들은 언젠가 정리될 것이다. 물론 한집안의 사람들부터 없애버릴 것이다.조윤은 두 동서에게 말을 건넸다.“가요. 그 천한 X을 찾아 결판을 내러 가요. 무슨 자격으로 제 신혼집에서 머물고 있는지.”그 별장은 이은화가 조윤 부부를 위해 마련한 신혼집이고 부동산 소유증에도 그녀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정일범은 그녀의 허락도 없이 이윤정을 그 별장에 살게 했다. 이은화의 명령도 무시한 채 그는 여전히 이윤정을 돕고 있었다.이윤정은 더는 이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조윤의 신혼집은 이씨 가문 저택에서 차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로 그리 멀지 않았다.이은화는 세 아들이 결혼할 때 신혼집을 마련해 주었다. 신혼집은 이씨 가문 저택에서 너무 멀지 않아 아들들이 자주 와서 이은화를 볼 수 있게끔 했다. 그러나 정일범 형제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이씨 가문 저택에 머물며 신혼집은 휴가를 보낼 때만 사용되었다.얼마 지나
울화가 치밀어 올라 미칠 지경이었지만 조윤은 이성을 되찾았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구지?”박수아가 잠시 고민하더니 떠보는 식으로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방금 오신 분 아닐까요?”하예진을 말하고 있었다.바로 하예진이 꾸민 일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씨 가문 내부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조윤은 그 사진들을 봉투에 넣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 사진들을 다니 꺼내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이윤미에게 보내면서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윤미야, 방금 이 봉투를 받았는데 이 안에 있는 사진들은 네가 찍은 거야?]조윤도 사실 마음속으로 하예진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하지만 이윤미에게 물어보는 척하면서 떠볼겸 그녀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어쨌든 이씨 가문은 이윤미에게 넘겨질 테니까.조윤 일행의 남편들은 이미 희망이 없지만, 그녀들의 자녀도 살아가야 했기에 이윤미의 보살핌에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윤미가 딸을 낳지 못한다면 아마 조카딸 중에서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들의 딸에게도 희망이 생기게 된다.조윤의 딸은 올해 9월 중학교에 갓 입학해 강성에서 가장 좋은 사립 학교에 다니고 있다. 기숙 학교라 집과 매우 가깝지만 학교에서 생활해야 했고 평소에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성적도 무척 좋고 이윤미와 좀 닮은 편이라 이윤미도 그 조카딸을 무척 예뻐했다.곧 이윤미가 회답했다.[형수님, 제가 찍은 것이 아니에요. 저는 이윤정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 저를 찾아오지도 않았기도 했고 저도 당분간 윤정을 지켜볼 시간이 없었어요. 여기가 어디예요?”이씨 가문에 사고가 생겨 혼란스러운 탓으로 이윤미는 미래의 가주로서 땅에 발을 붙일 새도 없이 바빴다.조윤도 이윤미의 말을 믿기로 했다.[내가 네 오빠에게 시집갔을 때 어머님께서 마련해주신 신혼집이야. 평소 아이들이 방학이 되어야만 그 별장에 가서 며칠 지내다가 오곤 했거든. 그런데 지금 네 오빠가
이윤정은 여전히 화사한 옷차림으로 한가롭게 작은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 정원에는 그네도 설치되어 있었다.김여희와 박수아는 모두 이 작은 정원이 익숙하게 느껴졌다.조윤의 싸늘한 표정으로 사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정원은 너무 익숙한 정원이었다.그 당시 조윤이 정일범에게 시집갈 때 이은화가 조윤 부부에게 마련해준 신혼집이었다. 부동산 소유증에는 지금도 조윤과 정일범의 이름이 적혀있다.결혼 후 조윤 부부는 이씨 가문의 큰 저택에 머물게 되면서 그 작은 별장은 가끔 휴가를 보낼 때마다 잠시 머물렀다.이윤정 그녀의 신혼집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묻지 않아도 정일범이 벌인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형수님, 이...이 사진들은 누가 보내왔을까요?”김여희는 동정 어린 눈으로 조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만약 그녀의 남편이 이윤정을 그 별장에 머물게 한다면 김여희는 아마 남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김여희는 남편 형제들이 이윤정을 끔찍이도 아끼는 걸 생각하면서 이번에 정일범이 이윤정을 받아주게 되면 다음에는 그녀의 남편 혹은 박수아의 남편이 이윤정을 챙겨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생각한 김여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이씨 가문으로 처음 시집왔을 때 김여희의 남편 정일군이 이윤정을 무척 귀여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그닥 내키지 않았다.이윤정 또한 성인이 되었는데도 정일범 형제들에게 찰싹 달라붙으며 과분한 행동하는 것을 보며 마땅하지 않다고 여겼다.그러나 시댁은 여자가 후계자 자리를 이어받아야 하는 것을 떠올렸고 이윤정이 미래의 가주로 될 것을 고려하여 조윤 일행은 하는 수없이 시누이 이윤정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있었다.하여 김여희도 뭐라고 말하기가 난처했다.그러다가 이윤정이 그들의 친 시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은화가 여전히 이윤정을 아끼고 오히려 친딸 이윤미에게 냉담하게 대하며 심지어 욕까지 했다. 그 광경을 보더니 김여희는 조윤과 박수아처럼 이윤정에게 잘 대해야 한다고 느꼈다.이윤미는 시
그러나 전호영이 공개적으로 고현을 구애했고 강수빈은 다른 연모자들과 함께 전호영과의 말싸움에서 진 뒤로 마음을 바로 접어버렸다.원래 연적도 많은 데다 전호영까지 한 명 더 추가되니 강수빈은 자신이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어 진작에 단념하고 목표를 바꾸었다.이제 그녀도 새로운 애인이 생겼는데, 남서연이 기어코 그녀를 끌고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와서 사실을 확인하려 들었다.강수빈은 무척 놀랐지만, 지금은 그녀와 무관한 일로 되었다.“이런 소문은 직접 와서 확인해 봐야 하는 법이야. 그래야 남들에게 말할 때도 설득력이 있지.”강수빈은 정색하며 물었다.“엄마는 단지 사실을 확인해서 이 소문을 퍼뜨리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그만 말해. 집사님이 나오셨어.”남서연은 강수빈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이 소문의 진실의 여부를 알아보러 온 이유가 바로 소문을 퍼뜨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집사는 재빨리 걸어 나와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남서연 모녀에게 진미리의 뜻을 전했다.곧 집사가 별장으로 돌아갔다.“실외 주차장에 차들이 꽉 차 있는 거로 보니 아마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 모양이야. 딸, 가자. 들어갈 생각은 접어야겠어. 고씨 가문의 큰 사모님 자리는 아마도 희망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도 좀 편해지네. 고빈 도련님한테는 관심 있어? 그분은 진정한 남자거든.”“엄마, 저 좋아하는 사람 있거든요.”강수빈은 몸을 돌려 그녀의 차로 향했고 더는 남서연과 함께 남의 집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싫었다.고빈은 바람둥이인데 그를 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고빈은 사실 바람둥이가 아닌데도 말이다.이씨 가문의 저택.정원에서는 이씨 가문의 세 사모님이 그네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녀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거로 보니 아마도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이윤정을 이씨 가문의 저택에서 쫓아내 복수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은화의 마음속에도 답이 생겼을 것이다.조윤 일행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더니 그녀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따지러 온 게 아니잖아. 다만 현이가 여자아이라서 시름을 놓았을 뿐이야. 전에 현이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다고 들었을 때 너희들도 여의치 않다고 들었어. 외출하면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도 고현에 관한 얘기를 물어보곤 했거든. 우리 가문의 청년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행복하게 연애를 하는데도 사람들은 고현이 정말로 게이가 아니냐고 수소문하잖아.”고정호가 말했다. 그는 따지러 온 것이 아니라, 확인하려고 온 것뿐이다.사촌 조카의 말처럼 그것은 단지 고진호 부부의 집안일일 뿐 외부인과는 무관한 일이다. 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면 될 일이다.고진호는 그의 딸의 동성 연애설이 고씨 가문의 다른 친척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고진호 부부가 고현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소문났을지는 모르지만 그간 고정호는 고진호를 찾아와서 고현의 일에 참견하지는 않았다.친척들도 고진호 부부가 자식들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식들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현이 정말 동성애자라고 해도 고진호 부부는 여전히 딸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아마 이런 상황을 알았기 때문에 고정호도 이 일에 관해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현이가 게이가 아닌 이상 현이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과 함께한다면 명분이 제대로 서겠네. 앞으로 누가 감히 내 앞에서 내 조카 손자를 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어.”친척들도 고정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우리 가문의 젊은이들에게 누를 끼쳐 죄송해요.”고진호는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우리 빈이가 장가갈 걱정 안 해도 좋겠네. 남들이 빈의 취향을 의심하면 상대를 바꾸면 그뿐이야. 우리 빈이가 정상이라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앞으로 현이가 시집가면 결혼식은 반드시 성대하게 치러야죠. 화려하게 꾸며서 모든 사람에게 우리 현이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죠.”“그럼요. 그럼요.”모두 제각기 맞장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