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을 때 제부가 너를 돌봐준다니 우리도 안심했어. 난 정말 네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가 옛날의 예진 언니처럼 살게 될까 봐 걱정했어.”잠시 동작을 멈추던 하예정이 다시 일을 계속했다.“언니의 교훈이 있으니, 나는 절대 언니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항상 정신 차리는 게 좋아. 사랑에 빠져서 자신을 잃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성소현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가 하예정을 만나기 전 유일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예정아, 내 친구가 실연당해서 보러 가야겠어.”“네, 운전 조심하세요.”“내일 너의 고향에 사람을 보내서 이장님과 밭 도급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어, 겸사겸사 너 고향의 망나니 친척들이 요 며칠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봐 줄게.”“좋아요.”투자 문제에서 하예정과 심효진은 성소현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성장한 환경과 신분이 하예정과 심효진보다 훨씬 우월한 성소현이 이끄는 것이 당연하다.“다음날, 내 친구를 불러서 같이 커피를 마시자. 내 친구가 실연당해서 기분이 안 좋으니, 너희들과 같은 성격 밝은 친구를 사귀는 게 좋을거라 생각해.”성소현의 절친도 재벌 집 아가씨지만, 워낙 겸손한지라 아무도 그녀가 재벌 집 아가씨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성소현은 그녀의 절친이 하예정 등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좋아요. 언니가 먼저 가서 친구를 위로해 주세요. 실연이 별거예요? 이 세상에 좋은 남자가 많고 많은데.”“그들은 결혼 얘기가 오갈 정도였어. 몇 년 동안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괴롭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나 가희 보러 갈게.”실연당한 절친 문가희가 걱정된 성소현이 재빨리 가게를 떠났다.전태윤에게 가져다줄 사랑의 저녁을 보온 도시락에 담은 하예정이 심효진에게 말했다. “효진아, 내가 도시락 가져다주고 바로 올게.”“괜찮아, 어서 가, 내가 가게 보고 있을게.”심효진이 흔쾌히 승낙했다.몇 분 후 차를 몰고 관성 중학교를 떠난 하예정은 다른 선물을 살 시간이
“여기가 그쪽이 산 주차 자리예요? 그쪽 차만 여기에 주차할 수 있어요?”하예정은 여운별에게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다.하예정는 이 여씨 가문 막내 아가씨에게 조금도 호감이 없었다.여운별이 건 가래를 떼면서 억지를 부렸다.“여기는 여운초의 꽃가게 입구예요. 난 여운초의 동생이니 당연히 내가 차를 세워야 해요.”“여씨 가문 막내 아가씨께서 여운초가 언니라는 것을 알고 있네요. 그런데 그날 밤, 동씨 가족 연회에서 언니에게 무슨 짓을 했어요?”부모의 총애를 받으며 응석받이로 자라 줄곧 여운초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것을 낙으로 삼는 여운별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언니는 무슨, 저 소경은 내 장난감이야!”하예정은 여운별을 호되게 혼내주고 싶었다.어떻게 이런 여동생이 있을 수 있을까?여씨 사모님은 부모로서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구나.여운초는 선천적으로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열여섯 살에 큰 병을 앓았었는데 마음 독한 여씨 사모님은 그녀를 그대로 놔뒀고, 여 대표는 장사하느라 집에 거의 없었다. 멀리 시집갔던 시고모가 친정으로 돌아와 여운초가 아픈 것을 보고 급히 병원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여운초는 그렇게 앓다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당시 십여 시간의 응급처치 끝에 겨우 여운초의 목숨을 되살렸지만, 시력을 잃고 말았다. 여운초의 눈은 겉보기엔 정상인 같아도 실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하예정 부부는 여운초가 소경인 척하거나, 이미 시력을 회복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으로 추측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었다.하예정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서에 대한 동정이 가득했다.전씨 할머니는 하예정이 이제부터 전씨 가문의 안주인이자 맏동서이니 아래 동서들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맏동서의 책임이자, 전씨 가문 안주인의 책임이니까.“시골뜨기 같으니라고, 경고하는데요, 주차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 낡은 차를 날려버린다고 탓하지 마요.”여운별은 하예정이 몰고 온 5백만 정도의 국산 차를 보고 야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전씨
“여운별!”가게에서 일을 보던 여운초가 말다툼 소리를 듣고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여운초는 여전히 그날 밤처럼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여운초의 눈이 어떤지 볼 수 없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운초의 표정도 그날 밤처럼 담담했다.“무슨 소란을 피우는 거지?”자신의 가게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여운초는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두 사람의 위치를 알아내고 자연스럽게 하예정의 앞에 멈춰 서서 그녀를 향해 온화하게 물었다.“혹시 전씨 가문 큰 사모님이세요?”“큰 사모님은 무슨, 시골뜨기지. 두고 바, 이 시골뜨기는 곧 전씨 가문에서 쫓겨날 거야, 난 전씨 도련님이 이런 시골뜨기를 정말 좋아할 거라고 믿지 않아.”여운별은 다른 사람이 하예정을 전씨 큰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야망이 있는 여운별은 얼음처럼 차갑고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전태윤의 짝이 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전씨 가문에 시집가서 전씨 가문 사모님이 되고 싶었다.전씨 가문에는 아홉 명의 도련님이 있으니.여씨 사모님은 여운별보다 두세 살 위인 가장 온화한 성격의 전씨 가문 일곱째 도련님을 여운별의 짝으로 점찍고 남자가 나이가 더 많으면 여운별을 아끼고 보듬어줄 것이라고 말했다.여운별은 제멋대로이고 성격이 더러워서 일곱째 도련님처럼 너그러운 성격으로 포용해야 한다면서.여운별은 만약 자신이 전씨 가문에 시집가서 일곱째 사모님이 된다면, 하예정 같은 시골뜨기와 동서지간이 되고 싶지 않았고, 하예정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그래서 여운별은 다른 사람이 하예정을 큰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장 듣기 싫어한다.“입 다물지 못해!”여운별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여운초는 여운별을 차갑게 꾸짖고는 미안한 마음으로 하예정에게 말했다.“사모님, 미안해요. 운별이는 우리 엄마가 응석받이로 키워 하늘 높은 줄도 모르는 무법천지예요, 개의치 마세요.”“소경 주제에, 감히 나를 꾸짖어? 이번에 아빠가 내가 너를 혼내지 못하게 말렸다고 내 앞에
여운별이 아무리 어리고 경박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동씨 가문 연회에서 여운초를 해치려 했지만 오지랖 넓은 하예정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 그때 여운별은 하예정에게 붙잡혔고 성소현이 그녀에게 약을 탄 술을 강제로 들이부었다. 약효가 발작한 여운별은 연회장에서 바로 옷을 벗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그녀의 엄마가 서둘러 그녀를 집에 데려와 얼음물에 반나절이나 몸을 담게 해서야 약발이 겨우 떨어지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반나절이나 얼음물에 몸을 담근 이유로 고열이 났고 부모님은 속상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럼에도 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앞장서주지 않았다.왜냐하면 시골뜨기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전태윤 대표님이니까.부모님은 그녀에게 여씨 일가의 사업이 관성에 있는 건 아니지만 전씨 도련님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전씨 그룹의 산업은 여러 도시에 널리 분포되어 있어 전씨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전씨 그룹에서 여씨 그룹의 장사를 가로챌 것이고 여씨 일가는 큰코다칠 게 뻔하다.부모님은 그녀가 그날 밤 너무 지나쳤다고 꾸짖기까지 했다. 여운초에게 약을 탄 건 치명적인 잘못이라면서, 아무리 여운초를 망신 주어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하고 싶어도 많고 많은 방법 중에 왜 굳이 연회장에서 꼼수를 부리느냐고 가차 없이 질책했다.그렇게 하면 그녀 자신의 이미지도 망칠뿐더러 자리에 참석한 사모님들이 그녀가 심성이 악하다고 생각해 앞으로 좋은 시댁을 만나기도 힘들다.여운별은 그때 처음 전태윤의 강대함을 깨달았다. 자신을 제일 사랑하는 부모님조차 이토록 괴롭힘을 당했는데 대신 나서줄 수 없다니, 전태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하예정은 그녀를 차갑게 째려보며 더 기고만장하게 말을 내뱉었고 이에 여운별은 살짝 위축됐다.“야 이 촌년아, 너 딱 기다려!”여운별은 하예정에게 으름장을 놓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는데 갈 때 일부러 꽃가게 문 앞에 놓인 화분 몇 개를 발로 차버렸다.하예정은 그녀의 두 다리를 확 분질러버리고 싶었다.전에
여운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정 씨가 이렇게 믿으시니 그럼 제가 한번 예쁘게 만들어볼게요.”그녀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하예정을 위해 예쁜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하예정은 숙련된 그녀의 솜씨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운초 씨, 꽃 종류마다 위치를 숙지하고 있죠?”여운초는 꽃꽂이를 하며 그녀에게 대답했다.“저는 앞이 안 보이다 보니 외울 수밖에 없어요. 점원에게 부탁해 매번 물건을 들여올 때마다 종류대로 꽃을 나누고 저에게 일일이 위치를 알려주고 있어요. 가게 연지도 몇 년이 돼서 위치를 거의 다 숙지하고 있으니 오차가 없을 거예요.”하예정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떠보듯이 물었다.“운초 씨 눈 치료 가능한가요?”여운초의 미소가 살짝 가라앉았다.“저는 큰 병을 앓아서 실명하게 됐어요. 그해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실명이 뭐가 대수겠어요, 살아있음에 감사해야죠.”갑작스러운 실명에 그녀는 하마터면 이성을 잃을 뻔했다.하지만 마음으로 이 세상을 들여다보니 인심이 더 잘 보였다. 가끔 보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 마음이었다.하예정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지금은 의학이 발달해서 여건이 허락한다면 기회를 봐서 눈을 치료하세요. 시력을 되찾을 수도 있잖아요.”“저희 고모는 줄곧 제 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수년간 저를 데리고 많은 안과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이대로예요.”그녀에겐 다행히 걱정해 주는 고모가 있다.고모가 셋인데 막내 고모랑 아빠가 사이가 제일 좋아서 여운초도 예뻐해 주고 있다. 나머지 두 고모는 새아빠와 친하게 지낸다. 여씨 그룹의 실세라 돈도 있고 세력도 있어서 당연히 그에게 매달리는 거겠지.하예정은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예정 씨. 저는 인제 실명한 지 십 년째라 어둠에 진작 적응됐어요. 익숙한 환경 속에선 지팡이 없이도 잘 살 수 있어요.”여운초가 되레 하예정을 위로했다.그녀는 하예정을 위해 꽃을 다 고른 후 숙련된 솜씨로 예쁘게 포장해서 하예정에게
하예정은 기어코 4만 원을 여운초의 손에 쥐여줬고 여운초는 지폐를 만지작거리더니 그중 두 장을 하예정에게 돌려줬다.“그럼 절반만 받을게요, 예정 씨.”둘은 아직 친해지지 않아 그다지 친분이 없어 하예정도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운초가 준 2만 원을 받으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운초 씨, 고마워요. 가게 꽃들이 다 너무 이쁘네요. 나중에 필요할 때 운초 씨 가게로 와서 꽃을 사야겠어요.”여운초도 가볍게 웃었다.“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앞으로 예정 씨 필요할 때 미리 전화 주시고 누구한테 선물할지 알려만 주시면 제가 예쁘게 만들어드릴게요. 예정 씨는 가게 와서 꽃만 받아가시면 돼요.”그녀는 카운터 앞으로 돌아가 책상을 짚으며 계산대의 서랍을 열고 명함 한 장 꺼내 하예정이 있는 방향으로 공손하게 건넸다.“예정 씨, 이건 제 명함이에요.”하예정이 다가와 명함을 받으며 말했다.“그럼 앞으로 필요할 때 운초 씨한테 전화할게요. 저 이만 가요.”“네, 조심히 들어가세요.”여운초는 다시 책상을 집고 카운터에서 나와 하예정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녀가 차에 오르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묵묵히 손짓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하예정은 꽃다발을 조수석에 놓고 안전벨트를 맨 다음 여운초에게 말했다.“얼른 들어가세요, 운초 씨.”여운초가 활짝 미소 지었다.하예정의 차가 멀어져 가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그녀도 가게에 들어갔다.몇 분 후 하예정은 여운별이 ‘똥차’라고 맹비난했던 차를 몰고 전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태윤의 차고에 고급 차가 매우 많다. 밸런타인데이에 그녀에게 선물한 새 차도 이 안에 있지만 하예정이 그때 안 받았고 부부가 화해한 후에도 그녀는 차를 바꾸지 않았다.이 차는 전태윤이 선물한 첫차라 그녀에게 의미가 남다르다.전태윤도 그녀에게 차를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무슨 차를 타고 다니든 그녀는 영원히 전태윤의 부인이니까.전씨 그룹에서 구세주로 불리는 대표 사모님이 오시자 한길 막힘 없이 대표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제 막 문을
전이진이 말했다.“나 지금 막 당신네 대표님과 업무를 상의하다가 마침 마주친 거잖아. 내 형수님이기도 한데 맛있는 음식을 해오시면 도련님으로서 많이 먹진 않아도 좀 맛볼 수는 있잖아.”조 비서가 더 크게 웃었다.“그러니까 대표님이 밀쳐버리신 거죠.”감히 호랑이 입에서 음식을 뺏어가려 하다니, 부대표가 하도 대표님 동생이라 사소한 일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다.전이진이 입을 삐죽거렸다.“와이프 있는 게 뭐 그리 대단해? 누군 뭐 장가 못 가는 줄 아나 봐.”“부대표님도 장가가시면 매일 도시락 싸주시는 아내분이 생길 테니 그땐 우리 같은 솔로들을 실컷 따돌리세요.”전이진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할머니는 그에게 신붓감으로 장님을 골라주셨으니 도시락을 싸주기는커녕 되레 그가 와이프에게 밥을 지어줘야 할 듯싶다.“소 이사님은 요즘 얼굴이 화사하고 발걸음이 다 가벼워진 걸 보니 사랑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봐요.”전이진은 조 비서 앞에 다가가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여자친구부터 찾고 나서 내게 그런 말을 해.”조 비서도 아직은 솔로이다.“난 이사님이랑 안 비교해. 이사님은 가장 운 좋은 분이야.”소정남과 심효진은 어떠한 역경도 겪지 않고 바로 함께하게 되었고 양가 부모님들도 두 사람을 결혼시키지 못해 안달이니까.심씨 일가는 소씨 일가보다 조건이 달리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집안은 아닌지라 다 같은 재벌 가문에 속한다. 게다가 심효진의 고모는 김씨 일가의 사모님이니 심효진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소정남과 심효진은 집안 조건이 대등하고 둘은 또 다 가십거리에 관심이 많다.전이진은 할머니가 장님 신붓감을 골라준 걸 안 이후로 소정남에게 부탁해 여운초의 조상 3대까지 낱낱이 파헤칠 심정이었지만 끝내 참았다. 소정남이 그의 일을 안줏거리로 삼을까 봐 꾹 집어삼켰다.하지만 전이진은 알까. 소정남이 작정하면 언제든지 그의 일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을...사무실에서 전태윤은 동생을 밖에 내쫓은 후 자연스럽게 하예정의 손에서 꽃다발을 건네받고 싸늘한 표정도
하예정은 정교한 봉투를 건네받으며 활짝 웃었다.“뭔데요?”전태윤이 소파에 앉으며 가볍게 웃었다.“보면 알아.”그는 도시락 뚜껑을 열고 와이프가 해준 사랑의 저녁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하예정은 힐긋 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다 기초제품이네요. 소현 언니가 준 것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전태윤은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가 성소현이 준 화장품을 쓰는 걸 원치 않았다. 하여 터프하게 기초제품을 한가득 샀지만 줄곧 선물하지 못했다.하예정도 그가 그냥 해본 말인 줄 알고 계속 성소현이 준 기초제품들을 써왔다. 전에 혼자 샀던 브랜드 제품들보다 피부에 훨씬 잘 맞았고 역시 돈의 힘이 크긴 컸다.“앞으론 내가 준 것만 써.”전태윤은 사실 여자들이 쓰는 기초제품 브랜드를 잘 모른다. 여자에게 기초제품을 선물한 적이 없으니까. 엄마한테 사적으로 물어보고 엄마의 추천으로 몇몇 브랜드 제품을 골랐다.그의 엄마는 평생 재벌가에서 지내다 보니 사용한 제품도 최상의 제품일 테니까.하예정은 그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이니 당연히 가장 좋은 제품을 써야 한다.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네, 앞으론 태윤 씨가 주는 것만 쓸게요.”“예정아, 함께 먹을래?”“아니요, 일 인분만 준비했어요. 아까 이진 도련님 봤을 때 함께 드시면 분명 모자랄 것 같았는데 다행히 눈치껏 나가주시더라고요.”‘형수님, 저는 형한테 쫓겨난 거잖아요.’전태윤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걔가 눈이 멀지 않았다면 남아서 우리 둘 사이를 훼방하진 않겠지.”하예정은 실소를 터트렸다.그가 맛있게 먹어주자 하예정도 기분이 좋아져 여운초 꽃가게에 갔다가 여운별을 만난 일까지 얘기했다.“운초 씨는 진짜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연기가 아니었어요. 큰 병을 앓고 나서 실명했대요.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하더라고요. 막내 고모가 수년간 운초 씨를 데리고 갖은 안과 병원에 돌아다녔는데 결국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대요. 여운별 씨는 악마가 따로 없어요. 자매지간에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처
하예정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심효진만 여운별과 접촉하지 못했다. 그녀는 여운별에 대해서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가게로 돌아가서 말해요. 여기 너무 추워요. 비가 많이 오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싸늘해요.”하예정은 한쪽 손으로 여운초의 팔짱을 끼고 다른 한 손으로 심효진의 손을 잡고 다시 카운터 앞으로 가서 앉았다.“물 갖다 드릴게요. 아까 호떡 먹었더니 너무 목이 마른 것 같네요. 정씨 아저씨 고향에서 보내온 특산품은 참 맛있어서 자꾸 먹고 싶단 말이죠.”심효진이 물을 따르며 말했다.하예정은 웃으며 여운초를 부축해 앉혔다.여운초가 입을 열었다.“예정 씨, 저 앞을 볼 수 있어요.”예전에는 여운초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익숙한 환경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그녀가 익숙한 환경에서만 정상인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전이진은 항상 “꽃필 무렵”에 전화를 걸어 여운초가 전씨 그룹으로 꽃 배달하게 했다.그 당시 여운초는 전이진이 자신을 괴롭히는 줄로만 알았다.전이진은 늘 여운초를 아내로 여기면서, 그녀가 그를 찾아가는 길을 익숙하게 하고 싶었다.이러한 일들도 전이진이 나중에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그녀가 익숙한 환경에서 정상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운초 씨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않았기도 하고 또 제가 운초 씨 지인이자 형수님이거든요. 제가 운초 씨를 잘 돌보지 못하면 이진 도련님께서 저를 찾아와 따질 거예요. 저는 이진 도련님이 제가 운초 씨한테 놀러 가게 하지 못하게는 게 가장 두려워요.”여운초는 화내는 척했다.“감히 그러기나 하겠어요! 만약 정말 그렇게 행동한다면 제가 이진 씨 귀를 힘껏 잡아당길 거에요.”하예정이 웃으며 물었다.“진짜로 귀를 잡아당겨 봤어요?”여운초가 대답했다.“아니요...”하예정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여운초는 전이진 앞에서 부드럽고 대범한 면만 보였을 뿐 냉혹한 면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비록
여운별은 용태호와 몇 마디만 통화하고는 이내 전화를 끊어버렸다.단지 용태호가 그녀에게 어디에 갔고 언제 집에 돌아가냐고 물었을 뿐이다.전화를 끊은 여운별은 더는 서점에 남아 있지 않고 당장 떠나고 싶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카운터 앞에 앉아있는 세 명의 여인과 서 있는 몇몇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여운별은 마음속으로 너무 질투 났다.이 작은 서점에 여섯 명의 경호원이 있었다. 하예정 일행이 각자 두 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다녔다.여운별도 지금 외출할 때 두 명의 경호원이 따라다니지만, 그 경호원들은 그녀 앞에서는 공손하게 대하고 뒤에서는 그녀를 통제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과 행동은 모두 경호원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야 했기에 하예정 일행의 경호원들과는 성질이 달랐다.여운별이 얼굴을 바꾸자 하예정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의 친언니이지만 여운초는 10년 동안 눈이 멀었고 지금은 시력을 되찾았다고 해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눈앞의 사물을 잘 볼 수 있을 뿐, 조금만 멀어도 잘 보이지 않았다.아마도 도수 높은 근시 사람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다.생각해보니 여운초도 그녀의 현재 모습에 대해 너무 많은 기억이 없을 것이다.여운초가 익숙한 것은 여운별의 목소리뿐이다. 여운별은 이따가 말할 때 일부러 목소리를 바꾸기만 하면 될 일이다.이렇게 생각하며 여운별은 다시 책장으로 돌아가 연습 책 세트를 들고 실수로 한 페이지를 찢은 책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여운별은 그 책들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며칠 동안 배운 음성 변경 능력으로 일부러 말투를 바꾸며 하예정에게 말했다.“모두 얼마죠?”여운초는 여운별이 다가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여운별을 쳐다보았다. 몸매도 목소리도 익숙해서 항상 이 소리가 여운별의 목소리 같다고 느꼈지만, 막상 얼굴을 똑똑히 보니 또 잘못 본 듯했다.여운초는 시력을 되찾은 뒤 여운별과 여러 차례 맞붙어 여운별의 모습을 기억했다.하예정은 가격을 알려주었고 여운별이 결제했다. 그리고 하예정이 그 책들을 주머니에
그러나 심효진이 남인경보다 더 복이 많아 소정남과 눈이 맞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소씨 가문의 경제적 조건은 김씨 가문보다 훨씬 나았다.심효진은 소씨 가문으로 시집갔을 때 명해은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시댁 식구들은 그녀에게 무척 다정하게 잘해주었다.남인경은 젊었을 때 김씨 가문에 시집갔지만, 시어머니에게 무시당해 많은 고생을 했었다. 그러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시름 놓고 편히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여운초도 따라 웃었다가 말했다.“이렇게 말해 주니 두렵지 않은 것 같아요.”“두려울 것 없어요. 예전에 갖은 고생 다 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활에 꽃이 피었고 의지할 곳도 생겼는데 더 두려울 것 없어야죠. 운초 씨, 기억하세요. 운초 씨 배후에는 전씨 가문 전체 사람들이 서 있다는 것을요.”하예정은 큰형수님의 패기를 발휘하여 여운초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운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적군이 쳐들어오면 장군을 보내어 막고, 홍수가 밀려오면 흙으로 둑을 쌓아 막는다고 두려울 것 하나도 없다.“예정 씨, 이 일은 이진 씨에게 절대로 말씀하시면 안 돼요. 제가 잠시 긴장돼서 그래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여운초는 남편에게 사실 좀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그가 알게 되면 더 따라가려고 애를 쓸 것이 분명하니까.전이진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면 또 여운초에게 홀로 남겨둔다고 그를 사랑하지 않느냐며 따질 것이다.여운초는 정말 울지도 웃지도 못할 지경이다.사적으로 전이진은 때때로 좀 유치하다.그것 또한 전이진과 부부가 된 후에야 그런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에는 성숙하고 진지하고 부드럽기만 했는데.“네. 약속드릴게요. 그런데 이진 도련님과 같이 안 가요?”“어머님께서 여자끼리 모이는 모임이라 남자가 거의 없다고 이진 씨에게 따라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진 씨는 또 제가 어머님이랑만 놀러 간다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데 어찌나 웃기는지.”여운초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녀의 말 속에는 행복
“지금 우리 가게가 바쁘지 않아서 직접 방문해서 함께 얘기하고 싶어서 왔죠.”여운초가 직접 방문한 것은 주로 동서이자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하예정은 경호원들에게 원래 있었던 몇 개의 화분을 옮겨 내가고 다시 여운초가 가져온 새로운 화분을 교체하라고 지시했다.심효진은 여운초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자, 따뜻한 물 한 잔 마셔요. 오늘은 기온이 내려가서 추워요.”그리고 또 경호원들에게도 따듯한 물 한 잔을 따라 마시라고 했다.이 경호원들은 이미 이 서점에 대해 익숙해졌다.그들은 사모님 세 분이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여운초는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카운터 위의 호떡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하지만 하예정은 그녀에게 먹어보라고 제안했다.여운초는 사양하지 않고 하나 들어서 먹어보았다.여운별은 그 호떡이 분명 맛있을 것으로 추측했다.여운초는 맛있다고 말하지 않고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었다.마지막으로 여운초가 이틀 후에 시어머니 명해은과 함께 연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운초가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예정 씨, 만약 예정 씨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할 수 있었을 텐데. 저의 어머님 앞에서 제가 예의를 갖추어 단아해 보이지만 저 사실 정말 긴장돼요. 저는 연회에 거의 참석해보지 못했거든요.”여운별은 여씨 가문의 큰 딸이다. 그러나 친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친어머니가 계모보다 더 혹독한 사람이었다.그녀는 어려서부터 행복하게 지낸 적 없었다. 열여섯 살 때 친어머니에게 처참하게 당해 어둠 속에서 살게 되면서 여씨 가문에서 하인만도 못한 생활을 했다.그런데 연회에 참석할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친엄마인 추미자는 종종 행사에 참석하고 접대 같은 것도 하지만 보통 여운별을 데리고 세상 물정을 보러 나가곤 했다.여운초가 여씨 가문의 주인으로 되었을 때 눈은 아직 치료되지 않아 연회에 참석하기도 어려웠다.하여
심효진이 대답했다.“맛있어. 먹자마자 내가 맛있게 느껴지더라고.”“우리 반반씩 나누어 먹자.”하예정은 말하면서 주방으로 들어가 주머니 안에서 호떡을 꺼내 심효진에게 나누어 주었다.심효진도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책장 뒤에 숨어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여운별은 어안이 벙벙했다.‘두 사람 혹시 평생 호떡을 먹어본 적 없었어? 검은깨가 있는 호떡이 저리도 맛있나? 두 사람이 반반씩 나누어 먹을 정도라니.’여운별은 그 호떡이 얼마나 맛있는지 무척 궁금했다.다만 그녀는 지금 용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나타나 아직 하예정과 친해지지 않아 그녀에게 호떡을 달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다.“예정 씨, 효진 씨. 안에 계세요?”익숙한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자 책장 뒤에 숨어 있던 여운별은 갑자기 얼굴색이 변했고 문득 긴장해졌다.그 소리는 여운초의 목소리였다!여운초는 막 우산을 쓰고 걸어왔다.그녀 뒤에는 전이진이 그녀를 보호하도록 배정해준 경호원이 따라 들어왔다. 여운초가 전이진과 함께 있지 않은 한, 두 명의 경호원은 항상 그녀를 따라가곤 했다.두 명의 경호원은 손수레를 끌고 있었고 그 위에는 몇 개의 녹색 화분이 놓여 있었다.이것은 하예정이 오늘 아침 서점에 도착한 뒤 여운초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날 때 녹색 화분 몇 개를 배달해 달라고 한 것이다.가게의 원래 있었던 화분 몇 개를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었다.원래 키우던 녹색 화분들이 무성하게 자라자, 하예정은 그것들을 여운초에게 부탁해 꽃가게로 가져가 가지를 치고 화분에 나누어 달라고 했다.여운초는 가게 직원이 꽃을 가져다주는 것을 기다렸다가 동서들에게 녹색 화분 몇 개를 골라 보내왔다.“운초 씨, 우리 여기 있어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전씨 가문의 두 경호원은 여운초를 보더니 공손하게 인사했다.여운별은 책꽂이에 있는 책을 뒤적이다가 결국 책은 땅에 떨어뜨려 소리를 냈다.“죄송해요.”여운별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서둘러 몸을 웅크리고 그 책들을 주워 책꽂이에 다시 놓았다.그리고 계속해서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태아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건 정상이야. 나도 가끔은 느끼기도 해. 하지만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아서 착각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말은 이렇게 했지만, 하예정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심효진의 배를 만지려 했다.심효진은 카운터로 돌아와 하예정이 만지도록 허락했다. 배 속의 아기는 잠을 자고 있는지 하예정이 어루만졌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마 자고 있을 거야. 아침에 깨어나면 난 분명하게 아기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거든. 정남 씨도 만져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라고. 아기와 오랫동안 소통하더니 아기가 피곤했는지 자고 있어.”하예정은 웃으며 손을 거두어들였다.하예정도 곧 태아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심효진을 부러워할 필요 없었다.이때 밖에서 하이힐 발소리가 들렸다.곧 한 젊은 여인이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어제 책을 사가던 그 젊은 여인이었다. 즉 얼굴이 바뀐 여운별이었다.여운별이 들어오는 것을 본 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안녕하세요, 연습 책을 더 사려고요?”여운별은 심효진을 쳐다보고는 다시 하예정에게 시선을 돌렸다.“어제 가게에서 산 연습 책들이 시동생이 매우 유용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오늘 저에게 한 세트 더 사달라고 친구에게 선물하겠다고 해서 오늘 한 세트 더 사러 왔어요.”하예정은 일어나서 준비된 연습 책을 가지러 가며 말했다.“그럼요. 정말 유용할 거예요. 관성의 많은 중학교 학생들 모두 이 자료를 사용하거든요.”여운별은 하예정을 따라다니다가 하예정의 손에 쥔 호떡 반 조각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비방했다.‘전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사람이 여기서 이런 싸구려 따위 호떡이나 먹고... 쯧쯧.’농촌에서 나온 시골뜨기가 나뭇가지에 올라가도 날지는 못하는 법이다.여운별은 마음속으로 하예정을 경멸하고 싫어했다.하예정은 운이 좋아 전태윤과 결혼하여 갑부의 사모님으로 되었다고 여겼다. 관성에서는 갑부인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 사상이 전부 개방적이라서 자식
정씨 아저씨는 이제 돈을 벌 수 있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정씨 아주머니가 주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의 지갑은 여전히 정씨 아주머니가 단단히 관리하고 있었다. 또한, 정씨 아저씨는 그렇게 관리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심효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요즘엔 정씨 아주머니가 욕도 덜 하죠? 욕하는 소리도 잘못 들은 것 같은데.”정씨 아저씨는 재빨리 심효진을 향해 말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효진아.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안 돼. 아주머니는 귀가 매우 밝아서 들을 수 있거든. 바로 달려와서 날 욕할지도 몰라. 설마 욕하는 소리 듣고 싶은 건 아니지?”심효진과 하예정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그럼 나 갈게.”정씨 아저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떠났다.하예정은 정씨 아저씨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심효진에게 말을 건넸다.“난 정씨 아저씨가 정말 부러워. 언제나 즐겁잖아.”낙관적인 마음을 가지면 삶은 살수록 더 나아질 것이다.“정씨 아저씨 부부는 사이가 좋고 가정도 화목하지. 비록 작은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넉넉하게 행복하게 보내고 있잖아.”심효진은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고 카운터 앞에 앉았다. 카운터 위에 떡 한 봉지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떡은 꽤 컸고 위에는 많은 참깨가 있었다.“호떡을 샀어?.”심효진은 손을 뻗어 호떡을 집어 한입 물더니 연신 칭찬했다.“꽤 맛있네.”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떡 한 조각을 집어 들고 먹으며 말했다.“맛 좀 보자. 내가 산 게 아니라 정씨 아저씨가 보내준 거야. 아저씨의 고향 특산품이라고 했어. 마침 고향 친구가 와서 고향의 특산품을 좀 가져와서 우리에게 맛을 좀 보여주려고 가져오셨거든.”하예정은 맛을 보더니 심효진의 말에 동의했다.이 떡은 그녀들이 예전에 샀던 호떡과는 좀 달랐다. 정말 맛있었다.역시 특산품다웠다.“회사로 간 줄 알았는데. 소현 언니도 회사에 있지?”심효진은 케이크를 깨물며 물었다.하예정은 말하면서 웃고 있었다.“응, 지금은 기본적으
“만약 우리 전씨 가문에서 딸을 낳는다면 정말 큰일을 해낸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몇 대 걸친 조상들조차도 무척 기뻐하실걸요.”소정남은 한참을 침묵을 지키다가 전이진에게 말했다.“당신들 전씨 가문 위에 있는 조상들은 아마 너무 기뻐서 죽을지도 몰라요.”전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저는 그냥 비유한 것뿐인데.”소정남의 과시하는 말을 듣던 전이진은 마음속으로 무척 부러워했다.결혼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전이진은 자신의 아기를 갖고 싶었다. 여자든지 남자든지를 막론하고 아기가 아기를 가져 아빠로서의 맛을 보여주기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아빠가 되기까지 2~3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여운초의 몸은 아직 조리가 잘 안 되었기에 전이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임신을 할 수 없을 것이다.전이진은 여운초가 마음속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그녀 앞에서 아이를 좋아하는 모습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일단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지금 이대로도 너무 좋고 행복했다.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두 사람의 사무실은 같은 층에 있었다.하여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전이진은 여운초가 선물한 꽃다발을 안고 엘리베이터를 나서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소정남의 미소는 전이진보다 더 밝았다.같은 층에 있는 다른 직원들은 두 명의 거물이 저마다 밝게 웃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두 사람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저리도 찬란하게 웃는지 의아했다.전이진은 품에 꽃다발을 안고 엘리베이터를 나섰기 때문에 분명 여운초에게서 꽃다발을 선물 받을 것으로 추측하며 이해할 수는 있었다.‘그런데 소정남은 왜 기뻐하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쾌하게 웃지?’하지만 두 분의 기분이 좋으니, 그 층 직원들도 따라서 마음을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상사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들은 조심스레 일해야 했다.두 상사가 웃음꽃을 피우는데 두 분의 아내는 어떨지...소정남은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 출근해야 했고 심효진도 자연스럽게 서점에
심효진의 말처럼 남자들도 가끔 선물을 주거나 꽃다발을 주기도 해야 한다. 남자들도 선물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져 더욱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 그녀들에게 돈을 퍼부어 준다고 했다.여운초는 심효진이 남편을 잘 다룰 줄 알기에 자신과 하예정 모두 그녀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고 여겼다.하예정은 심효진이 매일 연애 소설을 읽는데, 많이 읽으니 이렇게 현실 생활에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여운초는 예전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명작을 읽었지만, 나중에는 눈이 멀어서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하여 책을 읽는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맹인 학교가 있지만, 추미자는 그녀를 보내지 않는다. 의붓아버지이자 큰아버지인 여태웅은 여운초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듯했지만, 사실 그녀의 생사에 신경 쓰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하여 여운초는 대학에도 가지 못했다.이제 시력을 되찾았고 여운초는 다시 책을 들고 공부하여 대학 입시 시험을 치러서 그녀의 대학 꿈을 이루고자 한다.하지만 연말이 지나야 준비할 수 있다.지금 여운초의 눈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정겨울은 여운초에게 사업에 대한 일을 처리하더라도 눈을 주의해서 사용해야 하며, 과도하게 눈을 사용하지 말아야 만이 시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당부했다.책을 다시 쥐고 공부하려면 당분간은 접어두어야 한다. 아니면 전이진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늦었지만 큰형이 전화 오지 않은 것으로 보면 아마 급한 일도 없을 거야. 큰형과 소정남 씨가 모두 회사에 있어서 하늘이 무너져도 두 사람은 키가 커서 견딜 수 있을 거야.”소정남의 이틀간 휴가는 이미 끝났다.오늘 다시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전이진도 전태윤이 자신에게 이틀간 휴가를 주었으면 했다. 그러면 여운초와 잘 지낼 수 있을 텐데.전이진은 자기 일을 생각하더니 상상만 하고 있었을 뿐 그런 사치가 현실이 되기를 감히 기대하지도 않았다.“여보, 오후에 데리러 올게. 우리 같이 집에 가자.”“응. 알았어.”여운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