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밤새 얼음물에 몸을 담근 여운별은 늦은 밤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여씨 사모님은 서둘러 가정의를 불러 약을 처방하여 딸에게 먹인 후 줄곧 딸의 곁을 지켰다.열이 완전히 내리고 나서야 그녀는 안심하고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운초는요? 어젯밤에 돌아오지 않았나요?”큰딸에 관해 물을 때, 여씨 사모님은 방금까지만 하여도 자상하던 얼굴이 갑자기 귀찮은 표정으로 바뀌었다.“장님 주제에 무슨 운이 그렇게 좋은지, 갑자기 성씨 아가씨와 그 시골 여동생이 돕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비도 어미도 없는 촌놈일 뿐인데 재벌가에 기어올랐다고 몸값이 오른 줄 아나 봐요. 그 시골 처녀가 참견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운별이는 무사했을 거예요. 시골뜨기가 손이 얼마나 빠른지... 무예라도 익힌 솜씨였어요.”부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어젯밤 일을 이야기했다.여씨 사모님은 자기 딸을 병들게 하고,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당하게 한 하예정이 극도로 미웠다.“운초는 매일 8시 전에 가게 문 열러 떠나니 이 시간에는 이미 외출한 지 오래야.”여 대표가 담담하게 말했다.“이번에는 운별이도 좀 지나쳤어. 운초는 어쨌든 친언니인데 항상 괴롭히려 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운별이도 이미 스무 살이고 몇 년 후면 시집갈 텐데, 이러면 누가 결혼하려 하겠어?”“우리 운별이가 얼마나 우수하다고요. 우리 집이 돈 없는 집안도 아니고, 시집가고 싶다고만 하면 반드시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남자를 데릴사위로 들일 거예요. 나는 운별이가 다른 집으로 시집가는 것이 아까워요. 아무래도 친정이 시댁보단 훨씬 낫죠. 당신도 좀 운초를 대신해서 말하지 말아요. 그년은 그저 재수 없는 사고뭉치예요. 그년만 아니었어도 운별이의 명성이 나빠지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요, 애초에 확 죽여버렸어야 한다고.”“여보!”여 대표가 차가운 표정으로 부르자 여씨 사모님은 입을 다물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오랜 침묵 끝에 그녀는 다시 입을 뗐다.“그럼,
여씨 사모님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여 대표의 요구대로 후한 선물을 준비하였다.여 대표가 떠난 후 여씨 사모님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전씨 도련님이 시골뜨기인 자기 와이프를 평생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은 단지 신선감에 좋아하겠지만 조금 지나 신선함이 사라지면, 그 큰 사모님 자리를 계속 지킬 수가 있을까?’30분 후, 조 비서가 전태윤에게 내선전화를 걸어와 여 대표가 만나러 왔다고 전했다.묻지 않아도 전태윤은 여 대표가 찾아온 목적이 짐작됐다.그가 여 대표를 찾아가 따지기도 전에, 여 대표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들어오라고 해.”전태윤이 싸늘하게 대답했다.조 비서는 내선 전화를 끊은 후 프런트에게 다시 통지했다.사무실 빌딩 1층의 귀빈실에서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여 대표는 발소리를 듣고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연한 척하며 들어오는 프런트를 바라보았다.“여 대표님, 우리 대표님께서 위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여 대표는 급히 일어나 프런트에게 감사하다고 하고는, 직접 선물을 들고 프런트 뒤를 따라갔다.경호원을 따라오지 못하게 한 건 전태윤에게 그의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대표실에 있던 전태윤은 조 비서와 전화를 끊은 후, 전이진에게 내선전화를 걸어 대표실로 올라오라고 했다.업무상의 일이라고 생각한 전이진은 서둘러 하던 일을 멈추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여 대표보다 한발 먼저 대표 사무실에 도착한 전이진이 사무실 문을 닫으면서 물었다.“형, 무슨 일인데?”“앉아.”전태윤이 동생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전이진이 자리에 앉아 형님의 말을 기다렸지만, 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 무슨 일인데? 형이 말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일인지 모르잖아, 괜히 마음이 뒤숭숭하게.”자신의 최근 업무 내용을 돌이켜 본 전이진은 아무런 오차도 없이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 지었다고 확신하자, 마음이 좀 놓였다.“아무 일 아니야, 넌 그저 앉아있기만 하면 돼.”“...”“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여 대표는 전태윤이 성격이 차갑고 까다로워서 친해지기 어렵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었었다.전태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는 감히 단정할 수 없지만, 그의 성격이 냉담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비즈니스계에 몸담아왔고, 여씨 그룹을 인수한 후, 십여 년의 노력 끝에 작은 기업을 자산 2천 억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비록 그들 여씨 가문의 사업은 모두 외지에 있지만, 여 대표는 여전히 관성에서도 알아주는 인맥이 있는 사람이다.“전 대표님, 작은딸과 와이프 대신 사과하러 왔습니다.”여 대표가 미소를 지으며 해석했다.전태윤이 차갑게 말했다.“나는 여 여사와 아가씨를 본 적이 없습니다.”“전 대표님, 제 와이프와 작은딸이 사모님과 작은 오해가 있은 것 같은데, 제가 이미 그들을 호되게 꾸중했습니다. 작은딸이 열이 나서 제 아내가 돌보느라 직접 사과하러 오지 못하고 제가 그들을 대신해서 사모님께 사과하러 왔습니다.”여 대표가 온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대표님의 동의 없이 감히 사모님을 뵐 수 없어서 사모님께 사과드려도 되는지 먼저 대표님께 허락받으러 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전태윤이 하예정에 대한 보호는 매우 엄격한바, 지금까지 어떤 언론 기자도 감히 하예정을 공개적으로 방해하지 못했다. 몰래 사진을 찍더라도 전태윤의 동의 없이 아무도 감히 인터넷에 올리지 못했다.전이진은 좀 어리둥절해 났다. 여 대표가 형수님한테 미움을 샀는데, 형님이 왜 그를 불렀을까?“직접 사과하실 필요는 없고, 돌아가서 사모님과 딸을 잘 단속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제 와이프가 여운초 아가씨를 좋아해서 친구로 사귀고 싶답니다.”오지랖이 넓은 하예정이 할머니가 전이진의 짝으로 점찍은 여운초를 감싸려고 이 일에 참견한 것이다.하지만 아직 위엄이 결핍한 하예정의 말을 여씨 모녀는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돌아가서 여운초를 찾아 결판을 낼지도 모른다.그러나 전태윤의 말은 여 대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알아듣게 말하였으니 여운초의 처지도 아마 좀 나아
전태윤은 대답하지 않고 냉랭하게 여 대표를 바라보았다.전태윤의 차가운 눈길에 여 대표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여 대표님께선 사과하러 오신 거 맞습니까?”형님이 몇 마디 더해주길 바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고 있는 전이진이 사무실의 짧은 침묵을 깨뜨렸다.여 대표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저의 형수님께선 대범하셔서 보통 크게 따지지 않지만, 우정을 아주 소중히 여기십니다.”여 대표가 얼굴에 웃음을 바르며 말했다.“큰 사모님께선 정이 많으시고 의리를 중히 여기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여 대표님께서 들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다른 일은 없으니 돌아가십시오.”‘더 이상 여기서 연기하지 말고 돌아가지, 그들 전씨 가문은 여씨 가문과 거래도 없는데.’여 대표는 진작부터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었다. 전태윤의 노려보는 눈빛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가 알 수 있으랴.그는 전태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전태윤의 아버지뻘이 되는, 큰 풍파를 겪어본 사람이다. 하지만 전태윤을 마주하면 마치 자신은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이고, 전태윤은 엄숙한 담임 선생님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전이진이 축객 명령을 내리자, 여 대표는 서둘러 작별을 고했다.형제는 모두 일어나서 배웅하지 않았다. 전이진이 조 비서에게 여 대표를 배웅하라고 통보했을 뿐이다.여 대표가 떠난 후, 전이진이 형에게 물었다.“형수님께선 어떻게 여운초를 만나셨고, 또 무슨 일로 그녀 때문에 여씨 사모님과 사이가 나빠진 거야? ”“어젯밤 일이다.”전태윤은 자초지종을 전이진에게 설명했다.“여운초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 너의 형수는 그녀가 너의 미래 와이프라는 것을 알고 이 일에 참견한 거야. 하지만 네 형수 성격으로 여운초가 누군지 몰랐어도 여씨 작은딸이 약을 타는 것을 보면 말렸을 거야.”그런 일을 보고 가만있을 하예정이 아니다.전이진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형, 난 아직 여운초를 본 적도 없어. 그녀는 내 와이프가 아니야!”전태윤은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금방 해가 뜬 것 같았는데 벌써 서산으로 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낮과 밤이 바뀌었다.토요일, 하예정이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나니 전태윤이 일어났다.“내가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까지 기다릴 거지.”전태윤은 그녀의 뒤로 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깨어났을 때 그녀를 볼 수 있는 이런 날들이 좋았다.비록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는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했다.싸움과 냉전, 오해를 겪은 후 전태윤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있다.“난 저절로 깰 때까지 실컷 잤어요. 일부러 당신을 깨워서 아침 식사를 준비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둘 중 누가 만들든 마찬가지예요.”하예정이 그의 품에서 몸을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정하게 그를 바라보는 하예정의 입가에는 웃음이 어려있었다.“여보, 좋은 아침이에요.”“좋은 아침.”전태윤은 그녀에게 이마를 맞대고 부드럽게 대답하고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이때, 초인종이 울렸다.하예정이 얼른 그를 밀쳤다.“언니가 왔나 봐요.”만약 이모와 심효진이라면, 그녀에게 전화했을 것이다.“내가 가서 문을 열게.”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니나다를까 하예진 모자였다.“처형.”전태윤은 온화한 목소리로 하예진을 부른 후 주우빈을 끌어안았다. 준수한 얼굴에 웃음이 어려 있었다.“우빈아, 이모부 보고 싶었어?”“네. 보고 싶었어요.”주우빈이 대답하면서 전태윤의 어깨에 엎드렸다.“우빈아, 어디 아픈 거니? ”평소와 다르게 열정이 없는 주우빈이 아픈 거로 생각한 전태윤이 급히 주우빈의 이마를 짚어보았으나 체온은 정상이었다.하예진이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내가 자는 우빈이를 깨워 데려와서 그런 거예요.”전태윤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좀 있다가 이모부의 차에서 좀 더 자.”시내에서 하씨네 마을까지는 몇십 킬로미터이다.“언니, 아침 식사가 준비됐어.”하예정이 주방에서 나와 남편 품에서 잠이 덜 깬 우빈이를 받아안았다.“언니, 차를 사든지 해, 그러면 우빈이도 차에서
하예정 자매가 이경혜 일행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하 영감은 아들과 두 손자를 데리고 하예정을 찾아 돈 문제를 상론하려고 관성중학교로 갔다.그는 자기들이 며칠 동안이나 소란을 피웠는데 전씨 일가에서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가만있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어쩌면 하예정은 지금 골머리를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관성중학교에 도착하니 하예정의 가게가 문을 닫았을 줄이야.“왜 문을 안 열었지? 무슨 장사를 이렇게 하는 거야, 벌써 8시가 되었는데?”차에서 내린 하 영감은 서점이 문을 열지 않자, 얼굴색이 어두워지며 하예정이 장사할 줄 모른다고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명이 주변 가게를 둘러보며 할아버지한테 말했다.“할아버지, 오늘 토요일이어서 학교가 쉬는 날이에요. 이 부근 가게들은 모두 학생들 장사예요. 학생들이 쉬는데 문을 열어도 장사가 안 돼요.”“...이전에는 그 망할 계집애가 토요일에도 문을 열었는데, 지금은 부잣집 사모님이 되어 돈도 많으니 가게를 차려서 번 그까짓 돈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거야. 지명아, 만약 그 계집애가 타협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방법을 바꿔서 이 가게를 너희들이 운영하게 해달라고 하자.”“할아버지, 이 가게는 하예정과 그녀의 친구 공동명의인데 주로 그녀의 친구에게 의존해서 꾸린 거예요. 제가 알아보았는데, 그 심씨네는 관성 토박이인데 셋집을 많이 임대해주고 있대요. 그리고 고모는 부잣집에 시집간 사모님이고요. 삼촌, 큰아버지, 사촌들도 모두 매우 능력이 있답니다.”그러니 하예정의 책 가게를 쉽게 뺏을 수 없다.“그 망할 계집애가 무슨 운이 이렇게 좋담?”다른 사람들이 하예정의 운명을 질투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할아버지마저도 그녀를 질투하고 있다.왜냐하면 그녀의 팔자가 아무리 좋아도 하씨 가문에 이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그 계집애 집에 찾아갈까?”하 영감이 제일 아끼는 둘째 손자 하지문에게 물었다. 그는 모든 일에 대해 손자의 뜻을 묻는 게 습관이 되었다.그의 아들들은 그저 기세를 돋구러 따라온
“그럼, 예진이한테 가자, 예진이가 무슨 가게를 연다고 했지?”“토스트 가게요.”“됐어, 그럼 거기 가서 무료로 아침밥을 얻어먹으면 되겠구나.”하예진도 가게를 연다는 것을 알고 난 하 영감은 하예진이 이혼하면서 많은 돈을 나누어 가졌지만, 그의 손자에게 2억 원도 빌려주지 않았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손녀를 욕하고 나서 또 죽은 셋째 아들을 욕하면서, 셋째 아들 부부가 두 불효녀를 낳아서 자기한테 불효를 저지른다고 욕했다.하 영감은 차에 돌아와 하예진의 가게로 가서 무료 식사를 하자고 아들과 손자들을 재촉하였다.앞으로 그들이 관성에 오기만 하면 모두 하예진 가게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돈을 주지 않는대도 하예진도 어쩔 수가 없겠지, 그들은 한 가족이니!하 영감이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하예진의 토스트 가게에 갔더니, 여전히 문이 닫혀 있었다.하 영감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욕을 퍼부었다.“이 망할 두 계집애가 어디가 뒈졌나? 둘 다 가게를 닫고. 장사를 하고 싶지 않으면 너희들한테 맡길 거지.”하지명 등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가게를 닫은 것은 정상인데, 하예진도 가게를 닫았다니. 자매가 어디로 갔을까?하예정 자매는 망나니 친척들이 또 그들을 찾아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그녀들은 차가 막히는 바람에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하씨네 마을에 도착했다.자매는 멀리서 추억 속의 집을 바라보면서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던 추억에 잠겼다.전태윤과 이경혜는 충돌에 대비해 모두 경호원팀을 데리고 왔다.하예정의 집 앞에는 그 많은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마을의 문화광장에 차를 세웠다.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씨 노친의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여기 부리우면 안 돼, 여기는 내 손자의 집이지 그 두 계집애의 집이 아니야. 당장 차를 빼고 이것들을 모두 실어가!”하예정은 오늘 고향에 벽돌과 모래, 돌을 한 트럭 실어 가기로 운전기사와 미리 약속했었다.지금 운전기사가 물건을 싣고 왔는데, 하씨 노친이
“갑부 집안의 큰 사모님인 예정이가 다시 돌아와 집 다툼을 한다고요? 너무 하네요.”어떤 사람은 하예정이 돌아와서 집을 다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자 누군가가 그를 꾸짖었다.“예정의 할아버지가 예전에 그들 자매한테 어떻게 했는지 기억 안 나요? 당연히 돌아와서 싸워야 하지요, 왜 하지문에게 주겠어요?”“하지문을 하유에게 아들로 줬다고 하지 않았던가요?”하유는 하예정의 아버지이다. 마을 사람 중 하유보다 나이가 많거나, 그의 동년배들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하유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하예정 자매도 모른다.하씨 친척들이 하예정 자매를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매에게 알리지도 않고 하유 부부의 묘를 옮겨버려 자매가 부모에게 향도 올리지 못하게 했다.지난번에 하예정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침 하씨 친척들이 마을에 없어서 그녀는 비로소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경옥이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하유와 가혜가 살아있을 때, 그들한테서 하지문을 아들로 데려온다는 말을 들은 적 없어요. 그들이 죽고 나서 그들의 딸을 모두 쫓아낸 후에야 아들로 들어갔다고 말한 것은 분명 남의 집을 차지하려는 속셈이에요. 아들로 인정하려면 말로만 해서는 안 되죠. 그들이 하지문의 호적을 하유의 호적 등본에 옮기기나 했어요? 만약 하지문이 아들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둘째를 아버지로 부를 수 있나요? 둘째 큰아버지라고 불러야죠.”“...”그들은 모두 둘째 손자인 하지문을 편애하는 하 영감 부부가 하지문이 가장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설이 지난 후에야 두 노인을 보러 와도 두 노인은 여전히 하지문을 편애한다.하유의 집과 빈 집터, 밭을 빼앗으려는 것도 바로 하지문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하지문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더 있는데, 하 영감은 그에게 하예정의 집을 무너뜨리고 옆에 있는 빈 집터에 작은 별장을 하나 더 지으면 집터를 다툴 필요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매년 내 셋째 아들 부부의 무덤을
장소민은 문을 닫지 않고 대답했다.“내가 기분은 안 좋았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무슨 일이 생겼어요?”하예정이 관심 있게 물었다.장소민이 먼저 물었다.“물 마실래?”“안 마실래요. 고마워요.”장소민은 다가가서 하예정을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큰일은 아니고, 그냥 여섯째 창빈의 일로 네 아빠와 좀 다투었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집에서 나왔어.”하예정이 말을 건넸다.“그럼 아버님께서 어머님이 여기로 오신 것을 모르신다는 말씀이세요?”장소민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아직 말하지 않았어. 박 집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 나도 좀 진정하려고.”“아버님께서 걱정하실 텐데. 어머님, 창빈 도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먼저 아버님께 우리 집에 있다고 메시지 보내세요. 걱정하시며 찾아다니실지도 몰라요.”장소민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내가 여기로 온 지도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찾아오지 않는데 내 걱정은 아예 안 할지도 몰라.”잠시 후 장소민은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내가 몰래 나왔거든. 내가 외출하는지도 모를걸. 아마 내가 여전히 방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전현민의 성격으로 장소민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장소민은 전현림에 메시지를 보내 전태윤 집에 왔다고 전했다.전현림이 장소민에 수많은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읽기만 했을 뿐 답장하지 않았다.장소민이 전현림에 메시지를 보낸 후에야 하예정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창빈 도련님이 왜요?”“예정아, 네가 예전에 창빈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잖아. 창빈이가 지금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난 찬성하지 않았고 네 아빠가 허락했거든.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지지해 주시거든.”전씨 가문의 형제들은 전부 요리할 줄 알았다.이것은 전씨 할머니께서 배양해 주신 결과였다. 어르신은 손자마다 전씨 가문의 보호 없이도 스스로 독립할 줄 알고 자신만의 세계를 꾸밀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형제들은 모두 다재다능하여 만약 어느
늙은이는 어린아이와 다름없다고 하더니만,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듯하다.전씨 할머니는 장난꾸러기였다.곧 차가 중심 별장 입구에 멈추었다.하예정은 우빈을 도와 작은 가방을 메고 싶었지만, 우빈은 스스로 메겠다고 고집했다.“선생님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엄마와 이모도 그렇게 가르쳤어요.”하예정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래, 그래. 내가 그렇게 가르쳤는데도 까먹었네. 맞아.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지.”수많은 사람이 우빈을 사랑해 주었다.하예진 자매는 우빈이가 버릇없이 자랄까 봐 늘 교육을 중시했다.우빈에게 올바른 인생관을 가르쳐 버릇없이 자라지 않도록 말이다.우빈은 자신의 작은 가방을 메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린 후 몸을 돌려 작은 손을 뻗어 하예정을 부축했다.하예정은 우빈의 작은 손을 잡았다. 우빈이가 그녀를 부축하여 차에서 내린 것처럼 시늉했다.“우리 우빈이 최고야.”“이모부께서 저와 이모부는 모두 같은 남자로서 앞으로 엄마와 이모를 보호하고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꺼냈다.“다 큰 어른 같네. 우리 우빈이.”하예정의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녀가 우빈을 친자식처럼 아끼는 것이 헛된 고생이 아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따뜻함을 느꼈다. 그는 우빈에게까지 그녀를 돌봐야 한다고 가르쳤다!우빈은 어릴 때부터 배려심이 많았는데 더 크면 분명 훈남이 될 것이다.장차 어느 집 딸이 복이 있을지 참 기대된다.“오셨어요.”박 집사가 집안에서 마중 나왔다.“집사님, 할머니께서 돌아오셨어요?”하예정이 박 집사에게 물었습니다.“사모님께서 오셨어요. 어르신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거든요.”박 집사는 앞으로 나아가 우빈을 안아 왔다.하예정도 그가 우빈을을 안고 있도록 팔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우빈은 달콤하게 박 집사에게 인사를 건넸다.박 집사는 웃으며 우빈과 인사를 나누고는 녀석을 안고 하예정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박 집사는 걸으면서 목소리를 낮
예준하는 껄껄 웃었다.“그럼, 우리 우빈을 좋아하는 사람이 엄청 많지. 우빈이도 내가 널 좋아해 줄 자리를 남겨 둬야 해. 알았지?”우빈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당연히 남겨두어야죠.”모두가 한바탕 웃었다.막 집에 들어섰을 때, 전태윤의 전화가 걸려왔고 하예정이 이내 받았다.두 사람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전태윤은 그의 아내가 성씨 가문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에는 하예정이 성씨 가문에 올 때면 전태윤도 따라왔지만, 오늘 밤 너무 바빠서 따라오지 않았다.하예정은 친절하게 말했다.“지금 이모 집에서 밥 먹고 이야기 좀 하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저녁에 술 많이 드시지 말고 따듯하게 입고 나가세요. 오늘 기온이 또 내려간다고 하니까.”요즘 기온이 떨었지만, 비도 내린다고 했다.겨울에 비가 오면 더 춥게 느껴진다.“술은 마시지 않을 거야. 내가 밖에서 찬 바람을 쐴 필요도 없어서 밖에 아무리 추워도 나랑 상관없어.”전태윤은 매일 난방이 있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설령 외출하여 사업을 논의하더라도 따뜻한 관성 호텔에서 일을 보았다.기온이 아무리 내려가도 대표 전태윤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예정아, 너 매일 밖에서 뛰어다녀야 하는데 옷을 더 입고 다녀. 우빈에게도 두 벌 더 입히고. 오늘 저녁 접대 자리에 동명이와 함께 가거든.”노동명이 바삐 돌아치는 이유가 바로 이 일 때문이었다.하예정이 대답했다.“알았어요. 제가 세 살짜리 아이도 아니고, 우빈이도 추워지면 저에게 말할 거예요. 스스로 옷을 찾아서 입을 줄도 알아요.”하예정은 우빈을 위해 이미 따뜻한 옷 한 벌을 입혀주었다.“동명 오빠도 잘 돌봐주세요.”“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고. 그럼 먼저 밥 먹어. 이따가 내가 동명이 데리러 가야 하니까.”하예정은 그에게 다시 당부한 뒤 통화를 끝냈다.하예정은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떼어낸 뒤에야 우빈이가 곁에 앉아 그녀가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
예준하가 우빈에게 물었다.“아저씨는 시간이 없어서 이모가 저를 데리러 왔어요. 그리고 아기 보러 왔는데 아기가 잠들어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어요.”우빈은 말주변도 좋고 발음도 똑똑했다.예준하는 이 녀석이 용정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모연정이 용정을 금방 입양했을 때 한 살 남짓했을 때였는데 옹알옹알 말도 잘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3살이나 되었다. 녀석은 작은 어른처럼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똑똑했다.용정의 기억력이 아주 좋은 점이 가장 의외였다.그러나 예준하가 우빈을 처음 만났을 때 우빈은 너무 어리고 말도 서툴렀다. 그러나 지금은 똑똑한 개구쟁이로 변했다.예준하는 그와 성소현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도 우빈과 용정처럼 똑똑하고 영리하기를 바랐다.“아기가 아직 어려서 잠을 많이 자거든. 좀 더 크면 우빈과 잘 놀 수 있을 거야.”우빈이 대답했다.“네, 이모도 그랬어요. 아저씨는 바쁘지 않죠? 제가 매번 이모를 보러 올 때마다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아요.”우빈의 눈에는 전태윤과 노동명 그리고 소정남이 가장 바빠 보였다.노동명은 다리가 여전히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서라도 회사로 일하러 갔다.하예정처럼 아주 바빴다.하지만 예준하는 바쁘지 않아 보였다. 만약 바쁘다면 매번 예준하를 볼 수 없었을 테니까.예준하는 웃으며 말했다.“나도 바쁘거든. 그런데 네 소현 이모가 여기로 혼자 오는 게 걱정돼서 일하던 중간에 여기로 데려다준 거야.”우빈은 작은 얼굴을 쳐들고 순진하게 말했다.“그럼 아저씨도 소현 이모에게 경호원을 보내주세요. 우리 예정 이모도 경호원들이 따라다니거든요. 태윤 이모부가 그렇게 해야만 안심하고 일할 수 했어요. 그리고 우리 이모가 나쁜 사람도 때려눕힐 수 있어요. 엄청 대단한걸요. 저는 우리 이모가 가장 좋아요.”예준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래. 네 이모는 정말 대단하구나. 소현 이모도 싸움할 줄 아는데 난 여전히 걱정되어서 여기까지 데려다줬어. 겸사겸사 여기에서 밥 먹을 겸.”그러자 우빈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
이경혜가 웃었다.“맛있지? 호호호...”말하는 사이에 성소현과 예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가 돌아왔나 봐요.”하예정이 말했다.우빈은 성소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안고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그가 넘어질까 봐 걱정된 하예정이 얼른 일어나 따라갔다.이경혜는 따라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 고개를 돌려 하예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이경혜의 얼굴의 웃음기는 이내 사라졌다. 그녀는 일찍 돌아간 여동생 이경희를 떠올렸다.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경혜는 자신의 부모님 모두 살아계신다면 대가족이 함께 떠들썩하게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고 동생이 일찍 죽지도,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여동생이 이 세상에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 당시 어머니의 특별 비서님은 살아계실지...’이은숙의 특별 비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이경혜가 쓸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찾았지만 결국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사람들이 그 노련한 특별 비서에 대해 기억은 없었지만, 이경혜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으로 그린 초상화가 맞을지도 모른다.이은화는 수십 년 동안 그 특별 비서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찾지 못했다.이은화가 그 비서에 대한 인상이 더 깊을 것이다.게다가 만약 살아있다고 해도 나이가 많아서 그 당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이경혜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견고한 눈빛으로 속으로 돌아가신 엄마에게 말했다.‘엄마, 제가 반드시 엄마 대신 복수할 거예요. 우리 재산도 반드시 전부 되찾을 거에요! 엄마, 하늘나라에서 꼭 우리 예진이가 강성에서 무사히 우리의 모든 것을 되찾도록 도와주세요! 예진이는 엄마 외손녀예요. 그리고 여동생은... 제가 지켜주지 못했어요.’여동생만 생각하면 이경혜는 마음이 무거워진다.밖에 있던 성소현은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우빈을 안아 들어 올려 두 바퀴 돌았다. 우빈은 기쁘게 웃으며 성소현에게 말했다.“이모! 더 높이 해줘요! 더요!”성소현
“아, 있어요. 그런데 어린아이예요. 연정 씨 양자인데 용정이라고 해요. 근데 어린아이일 뿐인데... 참! 생각났어요. 지난번에 연정 씨가 남편이 용정을 데리고 놀러 왔을 때 정남 씨가 태윤 씨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 있어요. 엄청 대단한 거물이 관성에 나타났는데 재빨리 떠났다고 했어요. 어디에서 왔는지 성씨가 뭔지도 조사하지 못했다고 했어요.”용정의 출신을 떠올리며 하예정은 그녀의 상상력을 발휘했다.“이모, 혹시 그 사람이 관성에 한 번 온 게 아닐까요? 예씨 가문을 이용해 관성에서 수작을 부려 무언가 꾸미려는 게 아닐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무언가를 하려면 A시로 가야 할 텐데요.”만약 용정을 노리고 온 것이라면 관성에서 계략을 꾸면 안 될 텐데 말이다.그리고 만약 지난번에 갑자기 나타난 그 거물이 용정을 노리고 왔다면 진작에 손을 썼을 것이다. 용정의 원수는 예씨 가문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다만 정겨울 뒤에 서 있는 신의 의사 일행을 두려워할 뿐이다.이경혜는 용정의 출신을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기에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녀는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이해할 수 없으면 그만둬. 너무 신경 쓰지 마. 여러 번 만난 것은 우연일 수 있지. 정 생각난다면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차라리 연락처를 요구해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조사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 사모님이 운별 씨와 상관있든 없든 지내다 보면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될 거야. 그런데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해. 배 속의 아기도 잘 보호하고.”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알겠어요. 용씨 사모님이 경호원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처럼 저도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안전해요. 저도 싸움할 줄 알고요.”“가장 좋은 방법은 운초 씨가 나서서 허점을 찾는 건데. 용씨 사모님과 여운별 씨가 동일 인물이라면 운초 씨가 그녀의 친동생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가장 쉽게 허점을 찾을 수 있을걸.”“운초 씨의 시력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그래도 허점을 발
이경혜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내가 관성에서 수십 년을 살았거든. 네 이모부에게 시집가면서부터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많은 사모님과 재벌가 아가씨들을 알고 있어. 근데 용씨 사모님이라고 들어본 적 없어.”하예정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관성의 사람은 아니라고 했어요. 단지 관성에 조금 머문다고 했고 사업도 모두 외지에 있다고 했어요. 남편도 조용하게 움직이는 편이라서 연회에도 잘 참석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어요.”이경혜가 말했다.“그래도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사람과 교제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관성의 사람이 아닌데 관성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산다고 해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았을 텐데. 난 용씨 가문이라고 들어본 적 없어.”“아마도 재산이 너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상류 사회층에 다다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이경혜가 물었다.“근데 이 사람을 조사봐서 뭐 하려고? 무슨 문제라도 있어?”하예정은 용씨 사모님을 알게 된 과정을 이경혜에게 알려주었다.“저는 그 사모님을 볼 때마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왠지 자꾸 여씨 가문의 여운별을 닮았다고 생각하거든. 운초 씨도 많이 닮았다고 했어요. 운초 씨는 여운별과 20년 넘게 자매로 지냈기에 여운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거든요. 그 용씨 사모님의 몸매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여운별과 비슷하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용씨 사모님은 여운별이 아니란 말이에요. 여운별이 돈이 없어서 늘 운초 씨를 찾아가 돈을 달라고 난리 치고 있거든요. 며칠 전에도 우리 시댁에 가서 돈 달라고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이경혜가 말을 건넸다.“몸매도 비슷하고 목소리도 비슷한데 얼굴이 비슷하지 않다고? 여운별 씨가 다시 나타난 것으로 보면 성형하지는 않았을 거고. 성형하면 한동안은 나오지 못하거든. 그럼 말투와 행동은 어땠어?”“부드럽고 단아해요. 말할 때도 잘 웃고. 근데 어딘가 매우 어색하다고 느껴져요. 그렇다고 흠을 잡으려 해도 흠잡을 곳은 없고요.”이경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몇 번 만난 사람일 뿐
이경혜는 말을 하면서 두 사람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유청하 모자는 모두 잠들어 있었다. 이를 본 하예정은 들어가는 이경혜를 막으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이모, 편히 쉬게 해요.”이경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우빈은 조금 실망한 모양이다.그는 동생과 잠시 놀아주려고 했다.1층으로 돌아온 우빈은 소파에 앉아 간식을 조금 먹으면서 홀에서 혼자 놀았다.성씨 가문에도 몇 가지 장난감이 있었다. 이는 우빈이가 평소에 성씨 가문에 놀러 왔을 때 성소현이 사준 장난감이었는데 집에 가져가지 않았다.지금은 새로 산 장난감들이 더 많아졌다. 아마도 어린 동생을 위해 사 온 장난감인 듯하다.우빈은 먼저 놀고 있었다.“이모, 제가 사람 한 분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요.”이경혜는 조카딸을 바라보며 물었다.“누구? 누구에 관해 물어보려고?”이경혜는 전태윤에게 물어보면 모두 해결될 문제를 자신에게 왜 물어보는지 의아해하며 하예정을 바라보았다.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여자 한 분에 대해 알아보려고요. 태윤 씨는 여자에게 관심 없어서 제가 물어본다고 해도 남편이 또 공을 들여 알아봐야 하잖아요.”이경혜는 담담하게 웃었다.“하긴, 태윤 씨가 너에 대한 감정은 유난히 한결같지. 너희들이 이렇게 행복하고 사는 것처럼 소현과 준하 씨도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성기현은 줄곤 이경혜의 곁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그러나 성소현은 멀리 시집가야 했다.예준하는 지금 성소현에게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잘해주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성소현을 위해 데릴사위로 장가오고 싶을 마음도 있었다.예준하는 일찍 성씨 가문의 저택 옆에 큰 별장을 구매하고는 앞으로 관성에 오래 머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성소현이 친정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이상 가까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기나긴 인생길에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이모,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준하 씨는 분명 소현 언니에게 잘해주실 거예요. 두
“큰이모.”하예정은 웃으며 이경혜를 불렀다.이경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늘은 네가 우빈이를 데리러 갔구나?”“네. 동명 씨가 오후 내내 바빴거든요. 저는 요즘 반쯤 일하고 반쯤 쉬는 상태라 시간이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다녀왔어요.”그러면서 하예정은 우빈을 받아 안으려고 손을 뻗으며 말했다.“우빈아, 이제 네가 스스로 걸어야지. 계속 안겨 있으면 이모할머니 힘드실 거야.”그러자 이경혜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괜찮아, 내가 안고 들어갈게. 우빈이가 부쩍 크긴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잖니. 이 정도는 전혀 힘들지 않아.”그럼에도 우빈이는 고분고분 이경혜의 품에서 내려와 작은 발을 바닥에 내디뎠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이모할머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엄마와 작은이모가 늘 당부했었다. 이모할머니는 연세가 많으니 어린아이처럼 계속 안겨 있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이경혜는 우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우리 우빈이는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나.”“이모할머니, 그럼 다른 때는 안 예뻐요?”아이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이경혜는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아니야, 우리 우빈이는 언제나 예쁘고 사랑스럽지.”하예정도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우빈이는 가끔 어른스럽다가도, 또 어떤 때는 천진난만해서 너무 귀여워요.”이경혜는 우빈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하예정과 함께 안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우빈이는 똑똑한 아이야. 하지만 아직은 어리니까 장난도 치고 말썽도 부릴 때가 있지. 어린아이가 매일 조용하기만 하면 오히려 걱정되지 않겠니?”“네 그이도 어릴 때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어. 예의는 바르지만 말수가 적었고 표정도 늘 딱딱했지. 눈빛마저 차가워서 어린애 같지가 않았어. 그때부터 나는 네 이모부에게 말했어. 전태윤 쟤는 크면 분명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이 될 거라고 말이야.성씨 가문과 전씨 가문은 한때 앙숙 같은 사이였지만,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다 보니 서로의 소식을 놓칠 수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