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는 신경질적으로 그를 쏘아보다가 계산대로 향했다.허연후는 선반에서 생강차를 골라 냉큼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아직도 배 아파요? 이따 가서 이거 끓여 마셔요.”말을 마친 뒤 손에 든 물건을 한지혜의 카트 안에 넣었다.한지혜가 계산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이때, 옆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지혜 씨가 이 동네에 산다고 하던데 방금 누가 마트에 들어가는 걸 봤대.”“어디에 있어? 실물 영접해 보고 싶다. 듣기로는 실물이 TV보다 더 이쁘다던데.”팬인 것 같은 두 사람이 핸드폰을 들고 한지혜를 찾느라 두리
허연후는 검은 실크 잠옷을 입고 창가에 비스듬히 기댄 채 손에는 다 태우지 못한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와인 한잔을 여유롭게 돌리고 있다가 한지혜를 향해 잔을 높이 들더니 씨익 미소를 지었다.그 모습에 한지혜는 그를 째려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생강차는 뜨거운 물에 마셔야 효과가 있어요. 그리고 약방에서 핫팩도 샀는데 자기 전에 배에 붙여요. 이따 배달 될 겁니다.]그 말에 한지혜가 재빨리 답장했다.[아니요. 저한테도 다 있어요. 이만 잘래
허가은은 한지혜가 내려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냉큼 다가왔다.그리고 손에 든 물건을 건네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지혜 언니, 이건 제가 직접 고른 디올 립스틱인데요. 언니 피부톤에 딱 맞을 것 같아서 사봤어요. 예전엔 제가 너무 어리석게 굴었죠? 언니가 우리 오빠만 골탕 먹이는 것 같아 너무 짜증 났거든요. 지혜 언니, 어렸을 적 제 잘못들은 모두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전 괜히 저 때문에 두 집안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치 않아요. 지혜 언니네 할아버지가 그 뒤로 이젠 상종을 안 한다면서 저희 할아버지께서 몇 날 며칠 식사도
“지연이가 아침에 전화 왔는데 지혜 씨 초상화가 완성되었다면서 언제 찾으러 올 거냐고 묻더라고요. 지혜 씨 연락처가 없어서 저한테 전화했다면서.”한지혜는 허연후의 손을 살짝 뿌리치며 말했다.“공공장소에서 이러지 좀 말아줄래요?”허연후는 그녀의 말대로 재빨리 손을 놓더니 웃으며 답했다.“알겠어요. 터치하지 않을게요. 저 이따가 출근할 건데 저랑 같이 초상화 보러 가지 않을래요? 지연이가 온 밤 열심히 그렸을 텐데 뭐라도 보상해 주면 좋아할 텐데?”역시나 허연후의 유혹에 한지혜는 단번에 넘어갔다.하지연은 고인우의 동창인데 너
어릴 적부터 두 모녀가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살아왔기에 자기한테도 만약 오빠가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오빠라도 있으면 보호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연도 사실 허연후가 온전히 고인우와 지혜 언니의 체면을 고려해서 그녀에게 이런 배려까지 베푼다는 걸 잘 알고 있다.하지만 꼭 오빠라고 한 번쯤은 부르고 싶었다.단 한 순간이라도 그녀의 곁에 오빠가 있고 그가 보호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보고 싶었다.그녀의 부탁을 들은 허연후는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빨개졌다.그리고 안쓰러운 듯 하지연의 얼굴을
“그리고 얼마 전에야 사실 지연이는 보육원에서 데려온 게 아니라 도박장에서 이겨서 데려온 아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매번 제가 이혼하려고 하면 지연이는 두 번 다시 못 보게 된다고 협박하고 있는 거고요.”그녀의 말에 허연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이게 불법적인 일이란 걸 그 사람은 모르고 있나요?”“근데 제가 증거가 없잖아요. 있다고 해도 전 이 사실을 평생 지연이한테 알려주고 싶지 않아요. 자기 부모가 도박 빚으로 친자식을 내줬단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녀의 말에 허연후는 더 이상
집사가 서둘러 답했다.“도련님께서 특별히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셨어요.”그의 말에 허가은은 화가 난 나머지 이를 꽉 깨물었다.왠지 모르게 허연후는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잘 알지도 못하는 환자에게 이런 은혜까지 베풀 필요가 있었을까?그날 하지연이 허연후와 다정한 모습으로 나가던 기억이 또다시 떠오르자 허가은은 짜증 나 미칠 것 같았다.그러다가 다시 권성은에게 차갑게 말했다.“여기 와서 제 어깨 좀 두드려봐요.”권성은 재빨리 허가은에게 다가가 무릎까지 꿇고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기
다른 한편.한지혜는 촬영장에서 나와 매니저와 한창 업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귓가에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혜야.”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신하준이 마침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한지혜도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여긴 웬일이에요? 이따가 만나기로 했잖아요.”신하준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답했다.“이왕 사귀자고 했는데 많이 만나봐야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겠지?”그는 조수석의 차 문을 열어주면서 한지혜더러 타라고 손짓했다.“공주님, 타시지요.”그의 모습은 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