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을 틀자 허가은의 찢어 질 듯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한지혜, 이 여우 같은 계집애. 온 밤 우리 오빠한테만 매달리다니. 정말 얄미워 죽겠어.”“싫은데? 우리 오빠한테 자꾸 들이대는 모습을 내가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 그런다. 이거 정말 보기 드문 나쁜 X이네. ”“한지혜, 네가 일부러 날 강에 빠뜨리는 모습을 우리 오빠가 보고도 과연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한지혜는 녹음을 하나하나 사람들에게 들려줬다.허가은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두 주먹을 꽉 쥔 채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다
한건우는 그런 딸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 그는 한지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됐어. 웃고 싶지 않으면 애써 웃으려 안 해도 돼. 아빠는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지금 아주 속상하다는 거 알고 있어. 이게 다 허씨 가문 때문이야. 허씨 가문에 어떻게 그런 여우 같은 여인이 있는 거야? 아주 화근이네!”“아빠, 전 괜찮아요.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화를 내시면 어떡해요? 할아버지는 허 씨 할아버지와 오랫동안 목숨을 나눠온 전우잖아요. 아까 그 일 때문에 우리 두 가문이 이대로 멀어지면 어떡하죠?”“무서울 게 뭐
한지혜의 물음에 고인우는 당황한 기색으로 눈길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그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한지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 그 정도로 좋아? 사귀면 꼭 누나에게 보여줘야 한다.”“알겠어요. 누나, 만두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한편.허씨 가문 저택.허연후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뒷문을 열고 무작정 허가은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잡고 안으로 끌고 갔다.허가은이 쌕쌕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연후를 따라가다가 토끼처럼 빨개진 두 눈으로 허연후를 바라보며
“허허. 한용건이 진짜 화났나 보네. 그럴 필요까지 있냐? 애들이 좀 티격태격 한 걸 가지고 말이야. 정말 속이 좁군.”허연후는 허가은의 잘못을 감싸주기만 하는 허순철 때문에 기가 막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허가은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오늘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이제부터 나한테는 동생이 없는 거로 알아. 이 집도 더는 돌아올 필요가 없고.”허가은은 허연후가 진짜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뒤늦게 두려움이 우르르 몰려왔다. 만약 허연후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의 얼굴을 볼
말을 마친 뒤 허연후는 한지혜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을 치려 했다.이에 한지혜는 빠른 속도로 손을 빼내고 냉정한 눈빛으로 허연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연후 씨, 허가은 씨에게 어떤 벌을 주던 제가 알 바 아니에요. 그건 연우 씨가 신경 써야 할 일이죠. 어제 가은 씨가 저를 욕할 때 저는 손찌검을 했고 저를 헐뜯는 유언비어를 인터넷에 올렸을 때는 제가 직접 증거를 찾아서 명예를 회복했어요. 총체적으로 보면 제가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용서해줄 마음은 없으니까 그렇게 아세요. 연후 씨와 더 다투기 싫으니까 저와 멀리
한지혜는 고인우에게 물을 건네주며 나긋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물었다.“얼른 물 마셔. 너 그러다 진짜 체하겠다.”고인우는 양 볼에 가득 찬 만두를 목구멍으로 넘기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물을 한껏 많이 마시고서야 비로소 만두를 전부 삼킬 수 있었다.허연후는 만두가 목에 걸려 힘들어하는 고인우를 보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씩 미소 지었다.“더 드실래요? 제가 더 먹여 드릴게요.”한지혜가 미간을 찌푸린 채 허연후를 째려보며 경고했다.“인우 괴롭히지 마세요.”허연후는 무고한 척하며 자기가 상처받은 것처럼 억울한
허연후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자애에게 물었다.“너 혹시 삼장병 있니?”여자애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눈을 깜박이는 것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이 상황에 허연후는 여자애의 가방 속에서 약통을 꺼내 설명서를 보고서야 자기의 추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그는 약통에서 알약 두 알을 꺼내 여자애에게 먹이고 진지하게 말했다.“너 지금 위급한 상황이야. 바로 병원 가야 해.”그리고 여자애를 품에 안고 차를 주차해둔 곳으로 달려갔다. 여자애는 허연후의 옷자락을 쥐고 젖먹
한지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우리 인우는 정말 착한 애라니까. 걱정하지 마. 누나는 이미 기분이 충분히 좋아졌어. 얼른 돌아가서 네 친구 만나러 가보자.”두 사람은 즉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병원에 도착해서야 두 사람은 허연후가 먼저 병원비를 대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인우가 허연후에게 연신 감사 의사를 표시하며 물었다.“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병원비 얼마에요? 제가 보내드릴게요.”허연후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반문했다.“고인우 씨는 그 여자애와 무슨 관계죠? 왜 이렇게나 도움을 많이 주시
그 말을 들은 송학진은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이 작은 아이가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차서윤과 그녀의 딸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림을 꼭 끌어안고 큰 손으로 아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늘 밤은 아저씨가 같이 있어 줄게.” 그는 아림을 다른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 감고 자. 아저씨는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정말 짐승 같은 놈이네!그는 바로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말했다. “너희 엄마는 괜찮아. 술을 많이 마셔서 탈수된 거야. 링거 맞으면 금방 나을 거니까. 조금 있으면 엄마를 볼 수 있을 거야. 알겠지?”아림은 이해심이 깊은 아이였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저씨, 제가 암호를 하나 알려줄게요. 제가 문을 열어줄 때 그 암호를 말해야 문을 열어줄 거예요. 아니면 절대 문을 열지 않아요.”그 말을 듣고 송학진은 이 아이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아이가 자주 혼자 집에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얇은 검은 천 아래로 드러난 여자의 새하얀 피부가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몸을 자꾸 비틀며 저항하는 듯했지만 어쩐지 보는 이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본 송학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거칠게 벗겨냈다. 막 꾸짖으려던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눈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멈칫했다. 그녀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으며 이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간신히 힘을 내어 부드럽고 연약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저를 건드
송학진은 즉시 아버지를 위로하며 말했다. “아버지, 인제 그만 우세요. 우리 작은 공주님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게 우리가 수아에게 못 줬던 사랑을 아이들에게 두 배로 주면 되잖아요.” “그래! 내 돈은 전부 세 아이한테 쓰겠다. 어차피 너는 결혼도 못 할 테니 네 몫으로 남겨둘 필요도 없겠지.”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결혼을 못 한다니요? 언젠가 아내랑 아이들까지 데리고 올지 누가 알아요?” 이 말을 듣고 육문주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천우가 너랑 아림 엄마랑 잘되
송학진은 바로 일어나 송군휘를 부축하며 말했다.“아빠, 급해 마시고 제가 부축할 테니 함께 마중 나가요.”“그래. 빨리 가자.”두 사람이 별장에서 나오자 조수아와 육문주는 이미 아이를 안고 차에서 내린 뒤였다.송군휘와 송학진이 다가오는 것을 본 조수아는 순간 눈빛이 어두워지며 송학진을 불렀다.“오빠.”그리고 이내 시선을 다시 송군휘 쪽으로 돌렸다.초점 없는 눈으로 조수아와 육문주의 방향을 보고 있는 송군휘는 많이 늙은 것 같았다.송군휘는 어색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웃고 있었다.조수아는 겨우 입을 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천우는 조수아가 깨어나자 즉시 그녀의 품에 안기며 얼굴에 뽀뽀하고 말했다.“조금 있으면 유치원에 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엄마를 온종일 볼 수 없으니까 지금 많이 봐두는 거예요.”조수아는 천우를 껴안고 뽀뽀를 하며 말했다.“그럼 엄마도 우리 천우 온 하루 뽀뽀 못 해주니까 많이 해줘야지.”조수아의 사랑에 천우는 행복한 얼굴로 그녀의 목을 껴안고 ‘깔깔’ 웃어댔다.마침 방문을 열고 이 화면을 본 육문주는 천천히 걸어 들어와 천우의 엉덩이를 툭툭 치고 웃으며 말했다.“뭐 하는 거야? 나 없는 사이에 내 와이프한테 몰래 뽀뽀하는
육문주의 말에 조수아는 놀라며 물었다.“언제 찾았어? 왜 말을 안 한 거야?”육문주는 예쁘장한 조수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진작에 찾았었는데,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 못 했어.”워낙 민첩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던 조수아는 금방 눈치를 채고 물었다.“왜?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조수아는 육문주가 알고 있었음에도 말하지 않았다는 건, 기증자가 무조건 조수아와 관계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육문주가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겠지.’머릿속에서
천우의 진지한 모습이 웃긴 육문주는 천우의 볼을 꼬집고 웃으며 말했다.“남아일언 중천금이 맞아. 그래서 나도 지켜야 해. 네 외삼촌한테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나도 말 못 해. 빨리 자.”육문주는 천우를 눕혀놓게 이불을 잘 덮어준 뒤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조용히 말했다.“감정적인 일은 강요할 수 없어. 네 외삼촌이 만약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면 이미 만났을 거야. 그런데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낸다는 건 아직 그 사람을 잊지 못했다는 거겠지? 우리는 방관자로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어.
아림은 알 듯 말 듯 큰 눈을 몇 번 깜박이며 작은 두 손은 서로 손가락을 마주 대고 실망한 듯 말했다.“아쉽다. 아저씨처럼 좋은 남자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데.”아림은 차서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위로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요. 내가 꼭 더 좋은 남편을 찾아줄래요.”차서윤은 웃으며 말했다.“됐어. 얼른 씻고 자. 엄마는 해야 할 일이 있어.”침대에 혼자 누워 있던 아림은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아 곧바로 일어나 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천우는 전화를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