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바둑책을 보고 있던 허순철은 갑자기 귀가 찢어질 듯한 급정거 소리를 들었다.허순철이 상황 파악을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한지혜가 숨을 헐떡이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그 모습에 깜짝 놀란 허순철의 눈이 크게 떠졌다.“지혜야, 네가 여기까지는 웬일이니? 미리 말하고 왔으면 맛있는 음식이라도 준비해놨을 텐데.”그는 끼고 있던 돋보기안경을 벗고는 반가운 미소로 한지혜에게 다가갔다.허순철의 호의에 한지혜는 여기까지 오며 쌓아뒀던 화를 차마 터뜨릴 수 없었다.그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물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하는 것 같네요. 뒤늦게 후회해도 제 탓 아닙니다.”말을 마친 한지혜가 뒤돌아 자지를 떴다.마침 허순철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잔뜩 화가 난 채 집을 나서는 한지혜를 발견한 허순철은 의아한 표정으로 허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너희 방금 무슨 얘기 한 거야? 무슨 말을 했길래 지혜가 저렇게 가는 거야?”허가은이 악의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가고 싶었나 보죠. 가든 말든 지혜 씨 마음인데 제가 어떻게 막겠어요?”하지만 그러면서도 허가은의 속마음은 달랐다.‘한지혜, 네까짓 게 나한테서 쉽게 벗
한지혜가 차를 어느 정도 몰고 멀리 벗어나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고선재는 뒤늦게 초라한 모습의 한지혜를 발견하고는 말했다.“지혜 누나, 운전은 내가 할 테니까 정리 좀 하고 있을래?”한지혜가 무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 조금 있다가 집에 가서 씻으면 되니까.”“누나가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허씨 가문 본가도 저렇게 기자들한테 둘러싸여 있는데.”그 말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 한지혜는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었다.허가은이 이렇게까지 한지혜에 대해 조사했으니, 분명 그녀의 집 앞에도 기자들이 숨어 있을 게 뻔했
“허가은, 너 진짜 죽고 싶어? 왜 내 일에 네가 끼어드는데!”난데없이 오빠에게 혼이 난 허가은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빨개졌다.“오빠, 이게 다 오빠를 위한 거잖아. 오빠는 정정당당한 우리 가문의 후계자야. 그런데 대체 뭐가 아쉬워서 자꾸 한지혜만 쫓아다녀? 오빠를 원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한지혜 나고?”화가 치밀어 오른 허연후가 주먹으로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허가은, 지금 당장 실시간 검색어 내려. 안 그러면 너 진짜 죽여버릴 거야!”허가은이 발을 세게 구르며 말했다.“싫어, 난 꼭 한지혜 끝장낼 거야.”
한지혜는 허연후를 보는 순간 그동안의 억울함과 분노가 터져버리고 말았다.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허연후를 노려보며 말했다.“여긴 뭐하러 왔어요? 나 놀리러 온 거예요?”허연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와 한지혜를 와락 끌어안았다.그의 묵직한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오해가 있었어요, 지혜 씨. 지혜 씨를 버린 게 아니에요. 수술하느라 몇 시간 동안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했어요. 실시간 검색어도 내리고 언론에도 해명 끝냈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요.”허연후를 차갑게 밀어낸 한지혜가 냉소를 흘렸다.“그래서요? 왜
허연후는 한지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아이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가은이를 버릇없이 키운 탓이에요. 이번 일은 내가 반드시 지혜 씨 대신 정당하게 처리할 수 있게 노력해볼게요. 절대 지혜 씨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테니까, 화 그만 내고 나랑 같이 돌아가요.”말을 마친 허연후는 한지혜의 손을 잡고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하지만 한지혜는 그에게 잡힌 손을 단번에 홱 뿌리치더니 말했다.“나 건드리지 마요. 내가 왜 당신이랑 같이 가야 하는데요? 내가 당신
어릴 적부터 모범생이었던 고선재가 한때 싸움 실력으로 학교에서 이름 날렸던 허연후를 당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고선재는 자신이 혹여나 한지혜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되었기에 주춤거리며 반격하지 않았다. 반면 허연후는 품에 사람을 안고 있음에도 싸우는 데에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았다. 얼마 안 가 고선재는 허연후의 주먹에 맞아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고선재가 배를 감싸고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에 한지혜는 화가 치솟았다. 그녀는 차가운 눈길로 허연후를 노려보면서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연후 씨, 마지막으로 다시
한지혜는 허연후를 째려보았다. “전 화해를 조건으로 내기하고 싶지 않아요.” “만약 지혜 씨가 고선재 그 자식한테 자신 있다면 저랑 내기하는 걸 두려워할 리가 있을까요? 지혜 씨, 제가 그 누구보다도 더 지혜 씨한테 잘해준다는 걸 알아야 해요.”한지혜는 차갑게 웃었다. “그렇네요, 저한테 잘해준다면서 하마터면 저의 모든 것을 망칠 뻔했죠.” “그건 허가은이 벌인 일이지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착한 사람 모함하지 마세요.” “하지만 허가은은 연후 씨의 동생이잖아요. 게다가 제가 가짜 임신인 걸 연후 씨가 허가은과 말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