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문주와 박천우 부자에게 약이 잔뜩 오른 허연후가 이를 꽉 깨문 채 말했다.“둘이 짜고 괴롭히시겠다는 거지? 알겠어, 두고 봐. 난 무조건 딸 낳을 거야. 조금만 지나면 너희 아들이 내 딸이랑 사귀겠다고 나 찾아와서 무릎 꿇을걸.”곁에서 잠자코 구경 중이던 조수아가 입을 열었다.“연후 씨는 우선 아내부터 얻으셔야겠어요. 그리고 우리 며느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만약 제 며느리가 지혜 딸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지만 다른 사람의 딸이라면 그건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네요.”허연후는 여전히 이를 꽉 깨문 채 대
그 위에는 커다란 글씨가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우리 아빠]글씨로만 봐도 이건 성지원이 아주 어릴 때 썼던 것이다.연필로 쓴 글씨는 오래된 세월을 못 이기고 이미 색이 바래 희미해져 있었다.하지만 조병윤은 그 간단한 몇 글자에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그는 본격적으로 스케치북을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다. 스케치북에는 여러 장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정확히는 성지원이 상상해서 그린 아버지의 모습이었다.처음에는 한없이 어설펐던 그림들이 점점 스케치가 되어갈수록 그림 속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입체적이고 뚜렷해졌다.그 위에는 때
곁에서 그림을 함께 확인한 조수아는 잔뜩 흥분한 채 조병윤의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아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지원이는 절대 반대할 애가 아니라고. 이건 지원이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 저한테 주고 간 거예요. 사실 지원이도 속으로는 아빠랑 고은 아줌마가 같이 살길 바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더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잖아요.”조병윤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수아야, 아빠를 위해 멋진 결혼식을 준비해 주겠니? 고은 아줌마랑 결혼해야겠구나.”보름이 지나자 조병윤과 성고윤은 한 5성급 호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조수아는 엄청난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남자의 말은 정말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분명 딱 한 번만 한다고 약속했던 육문주는 벌써 몇 번을 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녀를 헤집어 놓았다.얼마나 많은 장소와 체위를 바꿨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결국, 지쳐버린 조수아는 육문주의 품 안에 쓰러졌다.온몸의 뼈가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육문주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밑으로 숙여 조수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에 입을 맞추었다.그의 목소리는 허스키했다.“미안
“자꾸 내 와이프 뺏으려고 하지 마. 우리 같이 엄마 잘 돌봐줘야 해. 알겠지?”“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와이프 뺏으려고 안 할 테니까. 저는 그냥 엄마랑 아빠가 빨리 제 여동생을 낳아주길 기다리고 있다고요.”조수아와 육문주는 각자의 업무를 정리하고 아이와 함께 신혼여행 길에 올랐다.그 소식을 들은 한지혜는 질투 섞인 비명을 질렀다.“아아악, 수아야. 나도 정말 가고 싶어. 남편이 없어서 못 가는 게 너무 아쉽다. 흑흑.”조수아가 웃으며 말했다.“지금 찾고 있는 거 아니었어? 내가 돌아왔을 땐 좋은 소식 전해
거실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바둑책을 보고 있던 허순철은 갑자기 귀가 찢어질 듯한 급정거 소리를 들었다.허순철이 상황 파악을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한지혜가 숨을 헐떡이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그 모습에 깜짝 놀란 허순철의 눈이 크게 떠졌다.“지혜야, 네가 여기까지는 웬일이니? 미리 말하고 왔으면 맛있는 음식이라도 준비해놨을 텐데.”그는 끼고 있던 돋보기안경을 벗고는 반가운 미소로 한지혜에게 다가갔다.허순철의 호의에 한지혜는 여기까지 오며 쌓아뒀던 화를 차마 터뜨릴 수 없었다.그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물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하는 것 같네요. 뒤늦게 후회해도 제 탓 아닙니다.”말을 마친 한지혜가 뒤돌아 자지를 떴다.마침 허순철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잔뜩 화가 난 채 집을 나서는 한지혜를 발견한 허순철은 의아한 표정으로 허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너희 방금 무슨 얘기 한 거야? 무슨 말을 했길래 지혜가 저렇게 가는 거야?”허가은이 악의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가고 싶었나 보죠. 가든 말든 지혜 씨 마음인데 제가 어떻게 막겠어요?”하지만 그러면서도 허가은의 속마음은 달랐다.‘한지혜, 네까짓 게 나한테서 쉽게 벗
한지혜가 차를 어느 정도 몰고 멀리 벗어나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고선재는 뒤늦게 초라한 모습의 한지혜를 발견하고는 말했다.“지혜 누나, 운전은 내가 할 테니까 정리 좀 하고 있을래?”한지혜가 무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 조금 있다가 집에 가서 씻으면 되니까.”“누나가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허씨 가문 본가도 저렇게 기자들한테 둘러싸여 있는데.”그 말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 한지혜는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었다.허가은이 이렇게까지 한지혜에 대해 조사했으니, 분명 그녀의 집 앞에도 기자들이 숨어 있을 게 뻔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