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왜 나는 아무런 기억도 없지?’조수아에게 물어보려고 방문에 들어서려던 순간 조병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문주가 방금 네가 좋아하는 잔치국수 했는데 네 방에 가져오라고 할게. 둘이 먹으면서 대화 좀 나눠봐.”하지만 조수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빠, 저한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아직 문주 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약 이 일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나중에 같이 살게 된다고 해도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벽이 있을 거예요.”그녀의 말에 육문주의 발걸음이 멈춰졌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
하지만 가는 곳곳마다 육문주와의 기억이 되살아나 너무 괴로웠다.두 사람은 예전에 여기 그네에 앉아 입맞춤을 나눴고 드넓은 잔디 위에 누워 햇볕을 쬐기도 했다.그리고 밀크와 같이 마당에서 뛰어놀기도 했다.가는 곳마다 육문주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조수아는 그네에 앉아 밀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밀크야, 나 네 아빠 보고 싶어.”밀크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낑낑거렸다.조수아는 다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이 임다윤의 친아들이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근데 하늘은 참 무심했다.그렇게
케이스 안에는 한 쌍의 커플링이 들어 있었는데 반지 스타일이 마침 조수아한테 프로포즈하려고 준비했던 반지랑 똑같았다.육문주는 지금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랐다.그는 한껏 의아한 얼굴로 반지를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그러다가 핸드폰으로 예전에 쥬얼리 샵 매니저가 보내온 사진과 비교해 보았다.역시나 똑같은 반지다.그 말인즉 조수아는 당시 프러포즈를 받았던 반지를 여기에 묻었다.‘근데 왜 여기에 묻어뒀지?’육문주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분명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 솔직히 믿기 싫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 때문에 육문주의 옷은 어느새 흠뻑 젖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아무런 기색도 없이 단풍나무 아래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조수아는 한지혜와 하루 종일 수다 떨며 놀았더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조수아는 갑자기 송학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엄마 묘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 보러 가고 싶어요.”송학진은 몇 초간 생각하다가 다시 답했다.“넌 지금 임신 중인데 묘지에 음기가 너무 심해 배 속의 아이한테 안 좋아. 엄마가 보고 싶으면 집으로 와. 어차피 여기에 엄마 방이 따
고였던 웅덩이의 물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값비싼 바지를 적셨다.육문주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조수아를 안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그녀의 청춘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 이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수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그는 빗물인지 땀인지 흠뻑 젖은 얼굴로 그녀에게 달려갔다.그리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의 이름을 겨우 불렀다.“수아야.”조수아는 빨개진 눈으로 그의 얼굴을 어루만져주며 울먹거렸다.“문주 씨, 보고 싶었어.”그녀의 이 말 한마디에 육문주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조수아를 품에
그의 노골적인 말에 조수아는 냉큼 품에서 벗어나더니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오빠도 있는데 부끄럽지 않아?”육문주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던 송학진에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저놈이 지금 안경을 안 써서 아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야.”아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송학진은 육문주의 비아냥거림에 순간 화가 치밀어 단번에 욕설을 퍼부었다.“아예 내가 눈이 멀었다고 말하지 그래? 아무리 시력이 낮아도 고작 0.5밖에 안 되는데 네 면상 정도는 알아볼 수 있거든.”육문주는 조수아의 어깨를 감
필체가 너무 눈에 익었다.어릴 적 주영 이모가 그녀와 박서준에게 글씨를 가르쳐줬는데 그때 봤던 필체와 똑같았다.조수아는 사진 뒤를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이건 누가 쓴 거야?”육문주는 그제야 그 글씨를 발견하고 자세히 읽어보았다.[형제이자 친구로서 고난과 슬픔을 같이 나눠야 한다.]정갈한 필체에 무언의 파워가 느껴졌다.그리고 글씨로만 봐도 그 사람의 청아함과 성격을 알 것 같았다.다만 지금 이 사람한테서 과거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육문주는 아까보다 많이 어두워진 얼굴로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조수아는 그의 말투에서 섭섭함과 억울함을 느낄 수 있었고 쓸쓸한 눈빛도 이제야 눈치챘다.그녀는 살짝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비 온 뒤에야 무지개를 볼 수 있듯이 그런 고난과 역경을 겪어왔으니까 지금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잖아.”“문주 씨, 우리 과거의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우리 감정의 디딤돌이라고 생각해. 그것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이제 서로가 서로한테 대체 불가인 사람으로 되었잖아. 안 그래?”그녀는 다정한 눈빛과 부드러운 손길로 육문주의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