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골적인 말에 조수아는 냉큼 품에서 벗어나더니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오빠도 있는데 부끄럽지 않아?”육문주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던 송학진에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저놈이 지금 안경을 안 써서 아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야.”아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송학진은 육문주의 비아냥거림에 순간 화가 치밀어 단번에 욕설을 퍼부었다.“아예 내가 눈이 멀었다고 말하지 그래? 아무리 시력이 낮아도 고작 0.5밖에 안 되는데 네 면상 정도는 알아볼 수 있거든.”육문주는 조수아의 어깨를 감
필체가 너무 눈에 익었다.어릴 적 주영 이모가 그녀와 박서준에게 글씨를 가르쳐줬는데 그때 봤던 필체와 똑같았다.조수아는 사진 뒤를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이건 누가 쓴 거야?”육문주는 그제야 그 글씨를 발견하고 자세히 읽어보았다.[형제이자 친구로서 고난과 슬픔을 같이 나눠야 한다.]정갈한 필체에 무언의 파워가 느껴졌다.그리고 글씨로만 봐도 그 사람의 청아함과 성격을 알 것 같았다.다만 지금 이 사람한테서 과거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육문주는 아까보다 많이 어두워진 얼굴로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조수아는 그의 말투에서 섭섭함과 억울함을 느낄 수 있었고 쓸쓸한 눈빛도 이제야 눈치챘다.그녀는 살짝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비 온 뒤에야 무지개를 볼 수 있듯이 그런 고난과 역경을 겪어왔으니까 지금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잖아.”“문주 씨, 우리 과거의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우리 감정의 디딤돌이라고 생각해. 그것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이제 서로가 서로한테 대체 불가인 사람으로 되었잖아. 안 그래?”그녀는 다정한 눈빛과 부드러운 손길로 육문주의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의
육문주는 마음이 들끓기 시작했다.어릴 때 혼약을 맺은 육문주와 조수아는 주변 요소로 인해 오랜 기간 떨어지게 되었지만 운명이 그들을 다시 만나게 했다.돌고 돌아 육문주는 조수아의 남편이 되었고 여느 가족처럼 아이도 생겼다.육문주는 조수아와 키스를 하면서 지난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그가 추억에 젖어 감정이 벅차오를 때쯤, 문밖에서 송학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육문주는 그제야 조수아를 놓아주고 살짝 빨개진 눈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면 제대로 하자.”그러자 조수아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항상 상냥하고 털털하던 박주영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건 처음이었다.박주영의 머릿속에는 온통 임다윤의 죄를 입증하고 육문주와 조수아가 안전해지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그 두 사람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박주영은 박서준을 걱정하는 마음과 맞먹게 자책감에 빠졌다.빅주영의 뜻이 견고한 것을 발견한 박경준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돌려 박서준을 바라보았다.“나는 절대 반대야. 네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주영이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가만히 볼 수 없어.”박서준은 복잡한 마음으로 박경준을 바라봤다.“삼촌이 걱정하는 마음 이해
박주영은 집주인처럼 익숙하게 거실 제일 뒤편의 캐비닛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그녀는 구급상자를 뒤적이다 손쉽게 화상약을 찾아냈다.화상약을 찾은 박주영은 자연스럽게 뚜껑을 열어 약을 면봉에 짜 상처 부위에 살살 발랐다.사람들은 집안 구조를 익숙해하는 듯한 박주영에게 놀랐지만 누구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그들은 조용히 그녀의 행동을 관찰했다.치료를 마치고 나서야 박주영의 어두웠던 표정이 풀렸다.박주영은 고개 들어 부드러운 눈길로 육상근을 바라보았다.“너무 심하게 데이지는 않아서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국을 쏟은
박서준이 얼른 시선을 황애자의 손으로 돌리자 손가락에는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그의 입꼬리가 아래로 처지더니 입을 열었다.“수고 많으셨어요. 꼭 배 터지도록 먹을게요.”마음의 벽이 조금 허물어진 박서준을 보며 황애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한다니 다행이네. 많이 먹어. 이 할머니가 다음에도 꼭 해줄게.”조수아는 접시를 들고 박서준에게 건네주며 웃어 보였다.“우리 저기에 앉아서 먹어요.”두 사람이 자리를 옮기려 하는 그때, 육문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수아야. 이제 한 점만 먹고 더는 안 돼.
피곤함에 찌들어 있었던 조수아는 나가 논다는 말에 신나서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이동하는 동안 조수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밖의 야경을 호기심 가득해서 쳐다보았다.그들이 탄 승용차는 시내에서 외곽 쪽으로 빠지더니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났다.결국 조수아는 지쳐서 머리를 흔들거리며 잠에 들었다.얼마간 지났는지 육문주가 그녀를 깨웠다.“자기야, 도착했어.”조수아는 눈을 서서히 뜨자 눈앞에는 온통 암흑으로 깔려 있었다.검은색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자 작은 별들이 자신을 뽐내며 반짝거렸다.어둠이 파란 하늘을 뒤덮고 고즈넉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