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시후는 스쿠터를 타고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했다.그는 엠그란드 회사 주차장 한편에 스쿠터를 세웠다. 시후가 시동을 끄자 곧 그의 맞은 편으로 검은색 벤틀리가 천천히 들어왔다.무심코 고개를 들자 한 젊은 커플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고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남자는 한 눈에 봐도 이지적인 느낌의 미남이었다. 한편, 여자 쪽은 화려하게 빼입고 있었다. 다소 천박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녀 또한 미인이었다. 알고 보니 두 미남 미녀는 유나의 사촌 김혜빈과 그녀의 약혼자 임현우였다.그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맞닥트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시후는 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어째선지 그들에게서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 시후 씨 아니에요~" 시후를 발견한 혜빈이 큰 소리로 불렀다.혜빈은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시후는 소름이 온몸을 타고 퍼지는 것을 느꼈다.아는 척하는 사람을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없었기에, 시후는 예의상 웃으며 물었다. "아, 혜빈 씨... 여기엔 무슨 일로 왔죠?" 혜빈은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 "저희야 엠그란드 그룹 이태리 부회장님을 만나러 왔죠."그리곤 그녀는 임현우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로이드 그룹은 전부터 엠그란드 그룹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거든요. 앞으론 로이드 그룹뿐 아니라 WS 그룹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시후는 로이드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의 사업 파트너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몰랐다. 막 회사를 인수했기에 세부 사상을 검토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현우 씨, 사업 수완이 대단하시네요! 두 분 정말 너무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했다.현우는 시후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이 새끼는 어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지금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을 수 있는
시후도 오늘 처음 부회장을 만났다.그 또한 태리가 놀랍도록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그녀는 늘씬하면서도 볼륨감 넘치는 몸매에 매혹적인 외모, 그리고 당당한 자신감을 가진 27, 28살 정도의 젊은 여성이었다.시후는 태리의 책상에 앉으며 "전 사무실에 자주 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저를 대신해서 앞으로도 회사를 경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제 신원은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당부했다.태리는 지금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시후가 한국 최고의 재벌가인 은 회장의 가족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엠그란드 그룹 따윈 그저 평범한 기업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물론이죠, 회장님. 또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그때였다. 한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부회장님, 로이드 그룹의 임현우 님과 그의 약혼자분께서 만나러 오셨습니다.""지금 VIP를 만나고 있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세요.""임현우를 아시나요?" 시후가 물었다."로이드 그룹은 저희 엠그란드의 파트너사 중 하나입니다. 몇몇 주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이라 이전에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시후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엠그란드 그룹은 로이드와는 그 어떠한 사업 거래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도 중단해주세요. 이 순간 이후로 우리 회사를 통해 로이드 그룹이 한 푼이라도 벌게 된다면, 이태리 씨 당신은 해고입니다."도대체 로이드 그룹의 관계자 중 누가 이토록 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린 거지? 태리는 깜짝 놀라 필사적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지금 바로 직원들에게 로이드 그룹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시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엠그란드 그룹은 저급한 쓰레기와 협업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경비원에게 쫓아내라고 하세요."***사무실 밖에서 임현우와 김혜빈이 걱정하며
엠그란드 그룹의 공식 발표는 한국 경제계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다.WS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의 신임 회장의 취임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로이드 그룹과의 일체의 거래가 중단된 이유가 납득되었다.엠그란드의 새 주인은 로이드 그룹을 홀대하고 있는 듯했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신임 회장인 은회장은 도대체 누구인 것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산총액 300조 원 상당의 엠그란드 그룹을 사들이다니, 이 베일에 싸인 '은 사장'이란 인물의 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한국 굴지의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딸을 시집 보냄으로써 엠그란드 그룹의 신임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무엇보다도 엠그란드 그룹의 1조 원 규모의 호텔 건설 사업 공고는 국내 건축, 디자인 업계를 뒤흔들었다.1조 원...!이 최대 규모의 호텔 건설 프로젝트의 일부라도 입찰을 따낼 수 있다면, 로또 복권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돈을 사랑하는 신옥희 회장을 포함해, 여러 회사들이 당첨의 꿈을 꾸며 로또에 참가했다.신회장은 이번 사업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건 WS 그룹이 메가 프로젝트에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 일만 잘 되면 WS 그룹은 한 단계 레벨 업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옥희 회장은 엠그란드 그룹의 메가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오늘 밤 긴급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미팅엔 일가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다.은시후는 그날 밤늦게 WS 그룹 회장 저택으로 향했다. 신회장이 일가 전원 소집을 명령했기에, 물론 시후도 참석해야 했다!그는 신회장의 회의 주요 의제가 무엇일지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WS 그룹 내에서 유나의 입지를 공고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유나의 사촌 김혜준이 시후를 발견하곤 어김없이 조롱했다. "은시후 이 새끼가 뻔뻔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왔어!?"유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그만해요, 혜준 오빠. 시후 씨는 내 남편이니까 엄연한 WS
유나의 돌발 발언에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모두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유나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지금은 공연히 앞에 나서 봤자 득은 커녕 실 밖에 없는 상황이다.한국 최고의 대기업이 WS 그룹 같은 약소 회사에 눈길도 주지 않을 게 뻔한데, 이런 무모한 도전의 결과는 나와 있었다. 가만히 듣고만 앉아 있을 수 없었던 혜준이 "김유나, 설마 니가 정말 엠그란드 그룹과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라며 비꼬았다.혜빈도 오빠 혜준을 따라 조롱을 이어 갔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나서는 건데? 네가 괜히 설치다가 우리 WS 그룹이 개망신 당하게 될 거라고!""혜빈이 말이 맞아! 유나 네가 엠그란드 그룹에서 쫓겨나기라고 해 봐! 우린 그날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거라고!"온몸의 피가 얼굴로 몰린 듯 유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시후와 결혼한 뒤, 집안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온 식구들은 그녀와 그녀의 부모까지 철저하게 무시하고 조롱해왔다.그런 그녀가 만일 엠그란드 그룹과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집안 내의 입지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더 이상 자신의 부모님이 다른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 사람들의 끊임없는 조롱에 다시 현실로 끌려 내려 왔다.유나는 시후를 노려보며,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지...? 애초에 시후 씨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나를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분노의 화살을 남편에게 돌렸다. 말다툼을 지켜보던 신 회장은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이번 일을 맡을 사람이 없냐 재차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더니, 막상 유나가 나서자 일제히 그녀를 무시하고 말리는 꼴이라니...!줄곧 손녀인 유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오늘 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시작도 안 하려고 하는 일에 유나만
자신의 부모가 남편을 비웃는 것을 보고, 유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아빠. 제가 결정한 일이에요. 시후 씨 탓이 아니라고요. 전 우리 식구가 더 이상 다른 가족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했어요..."유나의 엄마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안 돼! 너희 할머니께서 직접 가셔도 환대하지 않을 텐데, 네가 가서 뭘 하겠다는 거니!"시후는 유나가 부모님과 말다툼하는 걸 지켜보며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들도 내가 엠그란드의 소유주라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을 거야...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잠시만요...!"유나의 모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유나의 엄마가 갑자기 들떠서는 말했다. "어머, 주원이구나! 여기까지 어쩐 일이니?" 그 남자가 바로 유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대현 그룹의 후계자 박주원이다.주원은 싱긋 미소 지으며 "어머님, 엠그란드 그룹과 사업 제안서를 준비한다고 들어서, 유나 씨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아이디어를 주려고 왔어요.""세상에~ 역시 우리 주원이 밖에 없네!"갑작스러운 주원의 방문에 유나의 엄마는 완전히 신이나 서둘러 안으로 들였다. "그래서 주원이가 우리 유나가 엠그란드와 계약을 따내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시후는 완전히 무시한 채. 그는 곧장 유나를 향해 걸어가 상냥하게 말했다. "유나 씨, 이런 큰일이 났는데 왜 저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저희 대현 그룹은 엠그란드 그룹과 연줄이 있어요.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어떻게든 도와드릴게요."사실 박주원의 부친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영향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유나의 환심을 사고 싶었던 것이었다.유나는 주원이 줄곧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원 씨,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이건 제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할게요."라고 정중히 거절했다.유나가 거절하자 유나의 엄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나야... 너 제정신이니? 주원이가 기껏 너를 도와주
다음 날 아침, 유나는 밤새 준비한 두툼한 제안서를 품에 꼭 안고, 시후와 함께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했다. 유나는 65층짜리 빌딩 앞에 서자, 현 상황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우리 같은 작은 회사가 어떻게 엠그란드 그룹과 협업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1조 원 규모의 사업이다. 지나가던 거지가 1조 원을 달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하지만 유나는 모두의 앞에서 할머니와 약속을 했기에 어떻게든 이번 거래를 성사시켜야 했다.우두커니 서서 발만 내려다보던 유나는 서류 뭉치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시후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유나 씨,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유나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시후 씨는 여기서 기다려 줄래요?"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본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가 걸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시후는 더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태리 씨, 조금 전에 제 아내가 당신을 만나러 올라갔습니다. 태리 씨가 해야 할 일은 아시겠죠?""물론이죠, 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께서 오시면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그러고 보니... 엠그란드 그룹과 대현 그룹이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네,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다수 있습니다. 대현 그룹 쪽에서 이번 호텔 건설 사업 건에 대해서도 협업 요청이 들어와 있는 상황입니다. 사업안 검토를 위해 제안서와 자료도 모두 제출 받은 상태인데 어떻게 할까요?""앞으로 두 번 다시 대현 그룹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그 사이, 유나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부회장님과 만나게 해 달라고 면담 요청을 하고 있었다. 일류 대기업의 부회장인 이태리가 자신과 만나 줄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순간 유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이태리 부회장이 말한 '은 회장'이 만약 내 남편인 '은시후'였다면?이 시나리오를 다시 곱씹어보곤 그녀는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깨달았다.말도 안 돼.시후 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고 시설에서 자랐으니까.그렇지만... 나에게 이렇게 잘해줄 사람이 시후 씨 말고 또 누가 있단 거지? 150억 원도 너무나 큰 데, 300억 원을 그냥 내줬다. 역시…."이태리 부회장님, 혹시 은 회장님 성함이 '은시후'는 아닌가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유나는 조심스레 물었다.어디서 회장의 신상에 대해 흘린 거지? 태리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두근두근.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회장의 엄명 때문에 대중에게도 그의 성만 공개한 상황이었다. 그의 아내와 만난 시점에서 그녀가 회장의 정체를 눈치채면, 자신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질 것이다.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유나 씨, 이 얘기는 여기서 그만했으면 해요. 은 회장님은 한국 유수 가문의 자제분이세요. 제 재량으로 마음대로 회장님의 신원을 밝힐 순 없습니다."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수 가문의 자제라는 말에 의심을 접었다.시후는 고아였지, 그런 명문가 자제는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부회장실을 나왔지만, 유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손에는 WS 그룹과 엠그란드 그룹 사이의 300억 원짜리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아직도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빌딩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시후를 발견하자, 신이 나서 그에게로 달려갔다. "시후 씨! 시후 씨!! 계약, 따냈어요!!"시후는 마음속으로 '제가 회장이니 당연히 계약이 성사되었겠죠.'라고 생각했지만, 놀란 척하며 말했다."정말인가요, 유나 씨?! 정말 유나 씨는 대단해요!!""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엠그란드에서 이 프로젝트를 저희한테 그냥
말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엠그란드 그룹의 홈페이지와 SNS 계정을 검색했다.맙소사...엠그란드 그룹 공식 계정에 최근 글이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계약 체결을 알리는 공식 성명에 방 안은 크게 술렁였다.유나가 진짜 거래를 따냈네! 당초 계획안 금액의 두 배잖아!그걸 1시간도 안 돼서 해내다니!어떻게 이게 가능하지?말도 안 돼!김혜준에게 적잖은 충격과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오늘 이 순간까지 지위나 능력 면에서 김유나와 비교할 게 못 되었다.만약 어제 그가 그 일을 수락했다면, 결과가 어찌 되든 김유나가 주목받을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실패가 두려워 거절했다.이번 사업 건을 거절한 건 자기 자신이었지만, 중요한 건 김유나가 성공적으로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배가 아팠다.신옥희 회장은 신이 나서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응! 응! 아주 좋아!! 유나 정말 잘 했어!" 그녀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유나를 연거푸 칭찬했다."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유나는 "이태리 부회장님이 잘 봐주신 덕분이었어요. 부회장님은 우리 WS 그룹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하셨어요."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애초에 엠그란드 그룹의 회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실대로 말 한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게 뻔했다.그 말을 듣고 혜준은 닥치는 대로 다 때려 부수며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유나가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사실 엠그란드 그룹은 WS 그룹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그 말인즉슨, 결국 누가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 아닌가?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다니...!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시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혜준 씨, 우리 내기 아직 기억하죠?"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시후를 바라보는 낯에 경멸이 가득했다.어떻게 내기를 까먹을 수가 있었지? 진 사람은 땅바닥에 엎드려
한 경찰관이 곧바로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경고했다. “배한빈 씨, 만약 계속 현장을 떠나지 않고 파손을 지속하신다면, 강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배한빈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감히 누가 나를 건드릴 수 있나 보자고!”경찰들 역시 그의 신분을 알고 있어, 그가 분노하자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제이크 한은 몸을 돌려 말문을 열었다. “좋습니다, 배한빈 씨. 그렇게 고집을 부리신다면 여기 그대로 계십시오.”배한빈은 제이크 한이 마침내 한 발 양보하자 마음이 조금 풀렸다. 오늘 밤 내내 그에게 억압당하고 있던 터라 굉장히 답답했는데, 이제서야 한 번 이긴 기분이었다. 그러자 그는 냉소를 지으며 거만하게 말했다. “제이크 한, 이번엔 당신을 현명하다고 인정해 주지!”제이크 한은 그의 거만함에 화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 배한빈 씨.. 이렇게 큰 사건이 터졌으니 우리는 대중에게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잠시 후 여러 언론사들이 이곳에 와서 보도를 할 테니, 그때 가서 기자들과 잘 얘기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절대 이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잠깐의 기자회견을 준비할 테니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시면 됩니다.” 이 말을 듣자 배한빈은 속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사실 그는 꼭 여기에 머무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제이크 한이 자신을 내쫓으려 해서 반발심이 생긴 것뿐이었다. 그런데 제이크 한이 여기서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하다니! 배한빈으로선 세상 사람들에게 아들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공개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이런 치욕을 어찌 견디겠는가? 그래서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한테 여기서 허송세월 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당신이나 기자회견 하시고, 난 아들을 찾으러 가겠어!”제이크 한은 냉소를 지으며 비꼬았다. “뭐죠? 내가 가라고 하면 억울하다고 하더니, 갑자기 본인이 제 발로 떠나겠다고 하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배한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있고 싶으면 있는 거지
제이크 한은 배한빈을 늘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배한빈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배한빈의 아버지 배해산이 권력을 빼앗으려 했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제이크 한은 페이셔스 그룹의 원로인 배원중 회장을 존경했기에, 배해산과 그의 아들 배한빈 부자를 경멸했다.반면, 배한빈이 제이크 한을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제이크 한이 워낙 명망 높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지어 백악관에서도 높이 평가 받는 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미국 내에서는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특히, 10년 동안 이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해 현직 대통령에게 표창을 받은 인물로, 커뮤니티에서 거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만약 그가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면, 미국의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컸다. 이 때문에 배한빈은 제이크 한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고, 만약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페이셔스 그룹 역시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이때 제이크 한은 배한빈을 바라보며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배한빈 씨, 지금 당신의 아들이 실종 상태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늘 벌어진 일들에 있어서 당신의 아들이 무고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차갑게 덧붙였다. "당신은 똑똑한 사람일 테니 스스로 잘 생각해 보시죠. 그냥 단순한 자선 행사인데, 당신의 아들이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벌일 필요가 있었을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지 않나요?"배한빈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비록 남을 깔보는 성격이었지만, 그 역시도 똑똑한 편이었다. 그래서 배한빈은 뭔가 아들이 일을 이 정도로 과하게 벌인 것이 확실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장 수상한 점은 제이크 한이 언급한 것뿐만 아니라, 사건의 성격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었다. 배한빈은 그의 아들 배호영이 평소에 자선 활동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족이 자선 행사를 열 때마다 배호영은 참여조차 꺼렸는데,
잠시 멈칫한 후, 제이크 한은 다시 말했다. “오늘 밤 이곳에 있는 모든 직원들을 전부 조사할 것이며, 인원이 줄어들지 않았는지 특히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한다. 각 직원들이 서로를 확인하여 누가 빠졌는지 알아내도록 해!”사람들은 즉시 지시에 따랐고, 제이크 한은 이어 시후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현장에 있던 간접적인 증인이니, 비록 직접 목격자는 아니지만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잠시 후 경찰차를 타고 함께 경찰서로 가서 진술서를 작성해 주시면 좋겠습니다.”시후는 대답했다. “혜리 씨는 공인이라 경찰서를 드나들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언론에서 어떻게 허위 기사를 만들어내 눈길을 끌지 모릅니다.. 그러니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시후는 제안했다. “일단 저희들이 먼저 호텔로 돌아가면 어떻겠습니까? 진술서가 필요하시면 호텔로 오시면 되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성심껏 협조하겠습니다.”제이크 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좋겠군요. 현장 조치가 끝나면 호텔로 방문하겠습니다.”시후는 “그럼 지금 나가도 되나요?”라고 물었다.“물론입니다.”그러자 옆에서 배한빈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내 아들은 아직 행방불명 상태야! 내 아들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여길 떠날 수 없어!”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 때문에요?” 그러고 나서 그는 더 이상 배한빈과 대화하지 않고 바로 제이크 한을 향해 말했다. “경감님, 저는 이번 사건이 사전에 계획된 음모라고 강하게 의심합니다. 특히 페이셔스 그룹이 크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배한빈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뭐라고?!”시후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페이셔스 그룹이 크게 의심스럽다고요!”배한빈이 화가 나서 뭔가 소리치려던 찰나, 제이크 한이 매우 진지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시후는 진지하게 설명했다. “이번 일 자체가 매우 이상하니까요. 페이셔스 그룹의 그 젊은 도련님이라는 자가 혜리 씨를 자선 파티에 초대했고, 혜리 씨가 특
시후는 배한빈의 극도로 적대적인 시선을 느끼고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가 보기에 이 남자는 배원중과 닮은 점이 많아 보였다. 방 안에서 들은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시후는 이 사내가 바로 배호영의 아버지, 바로 배한빈임을 확신했다.현재 배한빈은 극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그는 시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따져 물었다. "아까 내가 문 열라고 했을 때, 왜 열지 않았지?"시후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을 몰라서죠. 당신이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이렇게 긴급한 상황에서 경찰이 아닌 사람을 내가 믿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배한빈은 답답한 듯 말했다. "나는 페이셔스 그룹의 배한빈이라고 한다. 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건가?"시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왔고, 당신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들을 찾는 것이지 여기서 나에게 위세를 부릴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럴 시간에 아드님의 행방을 찾는 게 더 나을 겁니다.""너..!?" 배한빈은 너무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분노를 억누르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 "방금 전에 뭘 봤는지 어서 말해!"시후는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일에 대해 나는 법적 권한을 가진 경찰에게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습니다."배한빈은 평생 동안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순간적으로 이 젊은이를 당장 보디가드에게 명령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제이크 한이 옆에 있음을 떠올리자 화를 참아야 했다.이때 제이크 한이 시후를 보며 물었다. "젊은이, 나는 뉴욕 경찰청의 경감입니다. 나에게 본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까?"시후는 바닥에 쓰러진 시체 일곱 구를 가리키며 얼굴을 찌푸린 채 말했다. "뭘 봤겠습니까? 당연히 문을 열자마자 죽은 사람들을 봤겠죠! 미국에 오기 전에는 치안이 정말 좋은 줄 알았는데, 문을 열고 보니 죽은 사람들이 잔뜩 있
배한빈은 아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 혜리를 만나려 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아들이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번 행사를 준비했던 이유가 그녀를 겨냥한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일본 닌자들이 그 틈을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래서 그는 혹시 혜리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그녀가 배후에서 이 모든 일을 주도한 건 아닌지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호텔 책임자에게 말했다. “혜리에게 문을 열라고 해. 물어볼 말이 있다.”호텔 책임자는 급히 말했다. “대표님, 조금 전 혜리 씨의 측근이 경찰이 올 때까지는 문을 열지 않겠다고 전했습니다.”“뭐?!” 배한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건가? 여기가 우리 페이셔스 그룹의 영역이라는 것을?!”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VIP실 문에 발길질을 하며 소리쳤다. “문을 여시죠!”그러자 안에서 시후가 말했다. “우리는 경찰과만 이야기하겠습니다. 관계없는 사람은 저 멀리 물러서세요! 그리고 무례한 자는 더 멀리 떨어지십시오!”배한빈은 이를 듣고 곧바로 격노했다. 지금 자신의 아들이 실종되어 이미 속이 뒤집힌 상태인데, 모르는 녀석이 문 뒤에서 자신을 조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며 소리쳤다. “감히 나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내가 누군지 알고는 있나?”시후는 경멸스럽게 대답했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아. 당신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지도록 해. 우리는 경찰과만 이야기하겠어. 다른 사람은 대통령이라도 소용없다고!”배한빈은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디에서든 항상 최고라고 존중 받는 자신이 지금 무명의 남자에게 무시당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곳에서 본 모든 것을 고스란히 말하는 것이다. 경찰 같은 것은 필요 없어! 이곳은 페이셔스 그룹의 영역이다. 뉴욕 경찰 따위가 감히?!”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중년 남자가 불쾌한 목소리
'일본 닌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배한빈의 첫 번째 생각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전에 부하들에게 일본 닌자들을 처리하라고 지시한 경험이 있었고, 따라서 그의 생각에 일본 닌자는 결코 페이셔스 그룹에 맞설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배한빈의 아들을 납치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그래서 배한빈은 나동오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일본 닌자가 맞아?”“확실합니다!” 나동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수리검 같은 무기는 일본인이 아니면 쓰지 않고, 이런 즉사성 독약 역시 그들만 쓰는 무기입니다.”배한빈은 냉정하게 말했다. “이런 투척 무기와 즉사성 독약을 쓰는 이들이 없다는 말인가?”나동오는 서둘러 말했다. “대표님, 물론 예전에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이런 무기를 쓰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것들이 존재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사실상 이런 비열한 암살 무기는 이제 더 이상 무술계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사실 20세기 이후 전 세계가 검과 창 같은 무기 제거 열풍에 휩싸였지만, 유독 일본 닌자들은 그 전통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무기는 이제 그들만 사용하고 있지요.”배한빈은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자신의 비서에게 지시했다. “즉시 집에 연락해서 보낼 수 있는 인원들을 전부 파견해. 닌자들을 반드시 찾아내고, 호영이를 무사히 데려와야 해!”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리고 뉴욕의 모든 조직과 단체에 통보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는 정보의 가치를 따져 1천만에서 5천만 달러까지 보상하겠다고. 만약 누군가 내 아들을 구출해 준다면 1억 달러로 보상하고, 아들을 구함과 동시에 닌자들을 체포한다면 2억 달러를 보상하겠다고!”비서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곧바로 진행하겠습니다!”배한빈은 다시 자신의 보디가드 장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 선생, 당신과 당신의 형제들도 도와 호영이를 구할 수 있는
말을 마친 후, 시후는 다시 말했다. "혜리 씨의 안전을 위해 지금부터 이 문은 닫겠습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시후는 방 문을 쾅 닫았다.그 시각, 혜리와 계약을 맺은 보안 회사의 외부 보디가드들도 이 소란을 듣고 달려왔다. 그들은 6명의 동료가 사망한 모습을 보며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고, 호텔 측에 설명을 요구했다.호텔 책임자가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으나, 그 역시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간신히 침착함을 유지하며 보디가드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사건이 경찰에 보고되고 소문이 퍼지면 페이셔스 그룹의 큰 치부가 될 수 있기에,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책임을 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미국인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곧바로 911에 신고했다. 호텔 책임자는 상황이 완전히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배호영의 아버지인 배한빈에게 연락을 취했다.그 시각, 배한빈은 맨해튼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몇몇 사업 파트너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아들이 실종되었고, 그것도 자신의 호텔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그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거리는 호텔과 5km도 채 되지 않았지만, 배한빈은 헬기를 타고 빠르게 현장으로 향했다.뉴욕 경찰국 NYPD 역시 WF 호텔에서 일어난 7명 사망 사건의 신고를 접수하고는 대규모 경찰 병력을 현장으로 파견했다. 그와 동시에 고위급 인사들이 경찰 헬리콥터를 타고 사건 조사를 주도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했다.몇 분 뒤, 배한빈은 불안한 얼굴로 현장에 도착했고, 호텔 책임자는 직원들과 함께 그를 맞이하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대표님, 잘못했습니다. 벌을 주십시오.."배한빈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을 들어 책임자의 뺨을 때리고는, 아주 어두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호텔 책임자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대표님, 저도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호영
뉴욕 한인회의 회장인 김사년이 연설을 막 끝내고 배호영에게 연설을 부탁하려던 순간, 현장에 갑작스러운 소란이 발생했다.페이셔스 그룹의 부하들과 호텔 직원들이 시후의 외침 소리에 이끌려 그쪽으로 몰려가자, 그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혜리를 보호하던 6명의 보디가드가 현장에서 즉사했고, 배호영의 비서 손진호 역시 처참하게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호영 본인은 행방 불명된 상태였다.배호영의 몇몇 보디가드는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들은 도련님이 페이셔스 그룹이 관리하는 호텔에서 실종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그 중 보디가드 중 한 명인 나동우라는 중년 남성은 배원중의 경호원인 원서훈의 조카로, 배호영의 안전을 담당하는 무술 고수였다. 하지만 배호영은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그를 여러 가지 이유로 쫓아내곤 했으며 종종 계획을 바꿔 그를 따돌리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동우는 배호영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고, 결국 원서훈에게 자신을 대신할 다른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원서훈은 그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지만, 당분간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만 참아 달라고 당부했다. 오늘의 자선 만찬 행사에서도 나동우는 배호영을 가까이서 보호하려 했으나, 배호영이 그를 연회장에만 머물게 했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만약 큰일이 났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그는 경솔하게 연회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나동우는 VIP실 앞에 급히 도착했고, 현장에 있는 시신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한눈에 이 시신들에 꽂혀 있는 단검이 닌자들의 전용 무기임을 알아챘다. 그는 즉시 물었다. "누가 이곳을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까?"문가에 서 있던 시후가 대답했다. "제가 발견했습니다!"나동우는 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시후는 그의 강경한 태도에 한 발 물러서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당신들이 감히 우리
배호영은 닌자들이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 혜리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혜리를 보내면 다시 이런 기회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진호에게 말했다. "가자, 같이 가보자고!"지금 배호영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혜리를 붙잡아 놓고, 그 후에 닌자들에게 연락해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자신을 겨냥한 함정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은 자신의 페이셔스 그룹이 운영하는 장소였기에 자신의 영역 안에서 위험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손진호와 함께 급히 VIP실로 걸음을 옮겼다.배호영이 VIP실에 도착하자, 혜리가 시후를 포함한 사람들의 동행 하에 VIP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혜리를 보자마자 물었다. "아니, 혜리 씨! 왜 그러시는 겁니까?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떠나시려고요? 제가 곧 무대에 올라 인사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그때 혜리 씨를 특별 게스트로 소개할 예정이었어요. 혜리 씨가 지금 떠나시면 제가 무대에서 체면이 서지 않는데...."혜리는 말없이 그를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 눈빛은 배호영을 움찔하게 만들었다.그때, 시후가 냉소하며 말했다. "배호영 씨,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되니 걱정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은 무대에 설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배호영은 놀라서 되물었다. "무, 무슨 말이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호영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의 비서 손진호는 앞으로 쓰러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손진호가 바닥에 엎어지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배호영은 깜짝 놀라 손진호의 등을 보니, 네 개의 새까만 단검이 꽂혀 있었다. 그 단검은 바로 닌자 핫토리 카즈오가 던진 수리검이었다!배호영은 놀라움과 공포에 휩싸여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뒤에서 누군가 그를 순식간에 제압했고, 목에 강한 충격을 받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