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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말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엠그란드 그룹의 홈페이지와 SNS 계정을 검색했다.

맙소사...

엠그란드 그룹 공식 계정에 최근 글이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계약 체결을 알리는 공식 성명에 방 안은 크게 술렁였다.

유나가 진짜 거래를 따냈네! 당초 계획안 금액의 두 배잖아!

그걸 1시간도 안 돼서 해내다니!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말도 안 돼!

김혜준에게 적잖은 충격과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오늘 이 순간까지 지위나 능력 면에서 김유나와 비교할 게 못 되었다.

만약 어제 그가 그 일을 수락했다면, 결과가 어찌 되든 김유나가 주목받을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실패가 두려워 거절했다.

이번 사업 건을 거절한 건 자기 자신이었지만, 중요한 건 김유나가 성공적으로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배가 아팠다.

신옥희 회장은 신이 나서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응! 응! 아주 좋아!! 유나 정말 잘 했어!" 그녀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유나를 연거푸 칭찬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

유나는 "이태리 부회장님이 잘 봐주신 덕분이었어요. 부회장님은 우리 WS 그룹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애초에 엠그란드 그룹의 회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실대로 말 한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게 뻔했다.

그 말을 듣고 혜준은 닥치는 대로 다 때려 부수며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유나가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

사실 엠그란드 그룹은 WS 그룹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말인즉슨, 결국 누가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 아닌가?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다니...!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시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혜준 씨, 우리 내기 아직 기억하죠?"

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시후를 바라보는 낯에 경멸이 가득했다.

어떻게 내기를 까먹을 수가 있었지? 진 사람은 땅바닥에 엎드려 사과해야 했다.

유나가 계약을 따냈기 때문에 그가 진 것은 명백했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저 루저한테 만큼은 굽실거릴 수 없어! 죽었다 깨어나도 난 못 해!'

그는 이를 악물고 비웃었다. "은시후, 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넌 우리 집에 들어와 얹혀사는 쓸모 없는 인간일 뿐이라고! 그런 너한테 내가 절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시후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전 쓸모 없는 인간이지만, 내기는 내기이니까요. 그리고 그 때 얘기했죠? 누구든 이 내기를 번복한다면, 그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그는 의도적으로 '할머니'를 강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옥희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혜준을 힐끗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좋겠어?"

혜준은 당황해서 "할머니! 저 녀석은 그저 저에게 망신을 주고 싶어서 할머니를 거들먹거리는 것뿐이에요!"

시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혜준 씨, 할머님께 도와 달라고 비는 것도 그 정도로 해 두시죠. 모두의 앞에서 가족을 걸고 약속을 했는데, 그걸 어기면 비난 받을 거예요. 혹시 할머님께 무슨 일이 정말 있기를 바라는 건가요?"

"할머니, 저 녀석 말은 무시하세요!"

신옥희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혜준에게 말했다. "내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거 알지? 하느님께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하셨어."

"할머니....."

정말로 할머니가 화가 났다. 할머니가 도와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혜준은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자 약속 지키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고 신 회장은 테이블을 탁탁 쳤다. "약속할 땐 언제고 불리해지니까 이제 와서 거짓말하는 거니?"

"할머니 그게 아니라..." 혜준은 머뭇거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쥐어짰다.

만약 그가 약속대로 내기에서 진 걸 인정하면, 체면을 구기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가 내기를 번복해서 할머니를 이 이상 화나게 하면, 체면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올린 지위와 명성을 한순간에 잃게 될 것이다.

결심이 섰는지 그는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그래..! 약속을 지키는 게 나아."

시후는 그가 자기 앞에 무릎 꿇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혜준은 시후에게 천천히 힘겹게 걸어갔다. 그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그는 수치심에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자 자연스럽게 그의 무릎이 지면에 닿았다.

쿵!

분주한 구경꾼들 중에는 조용히 휴대폰을 집어 든 이들도 있었다.

혜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나서 그는 상체를 숙여 바닥에 머리를 대었다.

"뭐라고? 잘 안 들리네요."

굴욕을 참으며 혜준은 다시 고개 숙여 큰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시후는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장이라도 저 재수 없는 낯짝과 몸뚱어리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은 맘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견디면 끝난다.

그래서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유나가 못할 거라고 단정 짓지 말았어야 했어..."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시후는 상쾌한 봄바람이 그의 몸을 스치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오늘 김혜준이 자신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듦으로써, 오랫동안 품어왔던 원한이 사라지는 듯했다. 지금 눈 앞의 광경에 너무나도 후련했고, 좀처럼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모든 일을 바라보던 유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자신의 남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어제 혜준과 내기를 할 때의 그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시후가 자신이 이길 걸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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