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 또래 남자아이들은 이런 장난감 총을 좋아한다.얼마 안 가 윤이 때문에 온 집안이 다 버블로 차버렸고 이에 곽동현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저... 아무래도 윤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요 근처에서 놀다가 반 시간 후 다시 데리고 올게요.”“그럼 부탁해도 될까요?”탁유미가 웃으며 답했다.“그럼요. 저도 윤이랑 노는 게 좋아요.”윤이는 곽동현의 손을 잡고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가버렸다.탁유미는 두 사람이 나간 뒤에야 임유진에게 물었다.“웬일로 저분과 같이 왔어요?”“사건 때문에 얘기 나누러 갔다가 동현 씨가 윤이 선물 고르는 걸 부탁해서 같이 오게 됐어요.”임유진은 옆에 놓인 캐리어를 보면서 물었다.“언제 떠나요?”“3일 뒤에요. 가구 같은 건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저랑 엄마 그리고 윤이는 KTX 타고 갈 거예요.”“그러면 그때 배웅하러 갈게요.”“괜찮아요. 주말도 아닌데 유진 씨는 출근해야죠.”탁유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마음만 받을게요. G 시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유진 씨한테 연락할게요. 그리고 유진 씨가 배웅하러 오면 윤이가 안 가겠다고 할지도 몰라요.”임유진도 옅게 웃었다.“알겠어요. 그럼 조심해서 가요.”“네, 그럴게요.”탁유미는 G 시에 가면 이번에야말로 그토록 원하면 평화 같은 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더 이상 이경빈과는 만나지 않기를 밤마다 빌고 또 빌었다....“경빈 씨, 이 목걸이 어때요?”공수진은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더 잘 보이도록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불빛까지 받아서 그런지 다이아몬드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괜찮네.”이경빈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마음에 들면 사.”“160억이나 하는데 괜찮아요...?”공수진은 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응, 괜찮아.”공수진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그녀는 사실 다이아몬드 목걸이보다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갖고 싶었다.며칠 후에 있을 파티에 두 사람의 결혼 날짜를 알리기로 했지만 그는 아직
탁유미, 그 여자 생각만 하면 이경빈은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별로야.”그는 인상까지 찌푸리며 말했다.“결혼인데 다른 거로 해. 보석이긴 해도 눈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들어.”공수진은 순간 조금 어안이 벙벙해 하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다른 거로 하죠, 뭐. 경빈 씨는 어떤 디자인의 반지가 좋아요?”“반지는 며칠 후에 다시 보러 오는 거로 해. 파티에서 우리 결혼 날짜 발표하고 나서 골라도 안 늦어.”공수진의 눈에 일말의 실망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곧바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알겠어요. 그때 가서 천천히 골라요.”두 사람은 다이아몬드 귀걸이까지 고른 뒤 가게를 나왔다.“먼저 가.”“경빈 씨는요?”공수진이 조금 놀라 물었다.“나는 처리할 일이 있으니까 먼저 들어가. 이따 전화할게.”공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준비한 차에 앉으려다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경빈 씨, 우리 결혼 날짜 말인데요, 정말 그날로 할거예요?”“왜? 무슨 문제 있어? 집안 어르신들이 받아온 날짜잖아. 좋은 날로 받아오셨겠지.”두 집안 어른들이 받아온 날짜인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그녀는 이경빈과 결혼할 것이며 이씨 집안 안주인이 될 것이다.공수진은 그를 향해 웃어 보이고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결혼식은 반년 뒤로 정해졌고 반년 후 그녀는 그토록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그리고 탁유미 그 여자는 이제 끼어들지 못한다!이경빈은 공수진이 떠나는 걸 확인한 후 도로를 따라 걷다가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이곳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성당이었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기도드리는 사람 한 명 없이 무척이나 조용했다.그는 성모 마리아가 아이를 안고 있는 조각상을 바라보았다.전에 탁유미는 이 조각상 앞에서 몇 시간이나 서 있다가 결국에는 눈물까지 흘렸다.그때 그 눈물의 의미에 대해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그냥... 예수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갑자기 떠올라 버렸어... 만약 언젠가 내 자식이
아이가 생겼다는 탁유미의 말은 그저 감정을 이용해 자신을 붙잡으려는 마지막 발악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틀렸다. 애초에 자신은 그녀에게 감정 따위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만큼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이경빈은 마음속으로 이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녀가 피를 뚝뚝 흘리던 그 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탁유미는 그날, 마치 그와의 인연을 모두 잘라내려는 듯했다.얼마나 어렵게 그녀를 다시 찾아냈는데 만약 이대로 또다시 못 보게 된다면...이런 가정을 할 때마다 심장이 욱신거리며 아파 왔다.아직 제대로 복수를 끝내지도 못했는데, 고작 몇 년 옥살이 한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이경빈은 결국 돌고 돌아 그 핑계로 자신을 설득하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야. 그 여자한테 사람 붙여. 그리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알리고.”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쉽게 사라지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탁유미, 날 안 보는 게 네 소원이면, 나는 절대 그 소원이 이뤄지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탁유미의 집에서 나온 후 곽동현은 임유진을 입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가는 길, 곽동현이 물었다.“윤이네 정말 이사 가기로 한 거예요?”“네.”“아쉽네요. 윤이랑은 조금 더 같이 놀고 싶었는데.”곽동현은 진심으로 윤이가 마음에 들었다.“사는 곳이 달라지는 것뿐이에요. 앞으로 쭉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요.”그때 도로 반대편에서 차 한 대가 무섭게 돌진하더니 곽동현의 차가 목적인 듯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뭐야?!”곽동현은 재빨리 핸들을 꺾은 후 브레이크를 밟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그러고는 화가 났는지 안전벨트를 풀고 임유진에게 말했다.“유진 씨는 여기 있어요. 대체 또 어떤 부잣집 도련님이 이런 정신머리로 운전을 하는 건지.”그는 방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차가 한정판 벤틀리에 가격이 어마어마한 차량이라는 걸 알고 있다.곽동현이 운전석에서 내리려는데 임유진이 그의 손을 잡고 제지했다.일부러라도 스킨십은 하지
곽동현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나도 같이 가줄까요?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임유진은 그를 향해 웃어준 후 가볍게 어깨까지 두드렸다.“아는 사람이에요.”그 말에 곽동현은 그제야 아쉬운 듯 손을 풀어주었다.임유진은 차에서 내려 운전기사를 따라 벤틀리 옆으로 다가갔다.운전기사는 직접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고 그녀는 차에 올라탔다. 곽동현은 언뜻 뒷좌석에 정장 차림의 남자가 있는 게 보였지만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다.탁!차 문이 닫히고 벤틀리는 볼일이 끝났다는 양 다시 갈 길을 갔다.홀로 차 안에 남은 곽동현은 지금 궁금한 것투성이였다.대체 뒷좌석에 앉은 남자는 누군지, 그리고 그녀와는 대체 무슨 관계인 건지......임유진은 옆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강지혁은 지금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웃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눈은 차갑지 그지없었다.“저 남자가 정말 마음에 든 거야?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같이 다니는 건가?”무심하게 뱉는 그 말들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때렸다.“너와 상관없는 일이야.”“그래? 차량 대리점 운영한다고 했었나? 규모도 작던데,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도 모르겠다, 그치?”임유진의 몸이 굳이 버렸다.지금 곽동현의 차량 대리점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건가...?그녀는 고작 자신 때문에 곽동현이 이유 모를 불이익을 당하는 건 싫었다.“안 좋아해.”“정말?”강지혁은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감별하듯 집요하게 눈을 맞춰왔다.“내가 동현 씨를 좋아했으면 환경미화원 일할 때부터 진작에 사귀었겠지.”사실 가끔은 만약에라는 가정을 해보기도 한다. 만약 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이 곽동현이었다면 지금쯤 평범한 날들을 보내며 우직하고 성실한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있지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그래. 계속 좋아하지 말아야 할 거야.”강지혁은 말을 마치고 그녀의 왼손을 잡았다.임유진이 깜짝 놀라 바라보자 그는 티슈를 꺼내 들더니 그녀의 왼손을 가볍게 닦아주었다.“아까
“너 같은 사람은 그게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지. 모두 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들은 위에 군림하며 너무나도 쉽게 다른 사람의 목숨줄을 흔들어.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위에 있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자신의 운명조차 손에 쥐지 못해.”그때도 만약 임유진이 그저 그런 집안의 딸이 아닌 부잣집 딸이었다면 교통사고 누명 따위 뒤집어쓰지도 않았을 것이다.애초에 누명을 씌우려는 짓을 감히 하지 못했겠지.감옥에 있을 당시 임유진은 마치 그저 껍데기만 남아있는 사람처럼 그저 하루하루 다른 사람의 눈치만 봐야 했다. 오늘 매 맞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느냐 마느냐는 그녀보다 먼저 들어온 수감자의 손에 달렸으니까.그리고 그 수감자 또한 윗사람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었다.강지혁은 눈앞에 있는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내가 그 기분을 모른다고 어떻게 확신해?”그는 자조하듯 피식 웃었다.임유진과 헤어진 이유가 그녀를 더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가 자신의 운명이 남의 손에 쥐어지는 게 싫어서인데 그가 어떻게 그 기분을 모를 수 있을까.사랑이라는 감정에 너무 깊이 빠져버리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모든 걸 상대방에게 내어주게 된다.임유진은 그의 말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의 표정이 마치 정말 그 기분을 아는 것 같았으니까.하지만 상대는 강지혁인데... 감히 누가 그의 목숨줄을 쥐고 있을 수 있겠는가!“강지혁, 그건 네가 생각해도 웃기는 말인 거 알지?”“혁이라고 부르라 했어.”강지혁은 미간을 위로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어젯밤은 그렇게 나를 끌어안으며 혁이라고 부르더니.”임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왜, 못 믿겠어? 고이준한테 전화해 볼까? 직접 물어봐. 어제 옆에서 똑똑히 들었을 테니까. 아니면 백연신한테 물어보던가.”임유진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어제는... 취해서...”“취해서?”“취해서 헛소리한 거야.”“취중 진담이 아니고?”취중 진담? 대체 어제 취해서 또 무슨 말
강지혁은 그의 입술로 이제 따뜻해진 임유진의 손 위를 간지럽혔다.“나는 너만 원한다면 우리가 제일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갈 수 있어. 네가 강씨 저택에 돌아가기 싫은 거라면 전처럼 너와 같이 이곳에서 살 수도 있고.”임유진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눈앞에 있는 남자는 지나치게 잘생겨 시선을 뗄 수 없었고 검은색 눈동자는 마치 그녀를 삼켜버릴 듯 어둡게 일렁였다. 게다가 그의 입술은 아직도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그와 전처럼 돌아가고 싶은 걸까? 누나 동생처럼 서로를 아끼던 그때로?임유진은 자신에게 물었다.아마 그녀도 어느 정도 그리웠을 것이다. 따뜻하고 그 무엇에도 속박받지 않았던 그때가, 가족 같은 누군가가 곁에 있어 더는 외롭지 않았던 그때가.임유진은 한 번도 그에게 사랑을 바란 적이 없다. 그저 가족 간의 정에 목말랐을 뿐. 멋대로 사랑을 준 건 그였다.한참 뒤, 복잡하게 일렁이던 그녀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강지혁, 우리는 헤어졌고 이제 서로 누나 동생 하던 때로 돌아갈 수도 없어. 누나가 필요한 거라면 다른 사람 찾아봐.”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강지혁의 손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그러니까 곽동현 그 인간이랑은 같이 있을 수 있는데 나랑 있는 건 싫다는 거네?”강지혁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자꾸 그 사람 끌어들이지 마.”“왜? 마음이라도 아파? 안 좋아한다며? 그리고 난 솔직히 이해가 안 가. 어떻게 나랑 헤어지고 그런 남자를 곁에 둘 수가 있지? 곽동현의 뭐가 그렇게 좋은데?”임유진이 또 한 번 곽동현을 두둔하자 강지혁은 기분이 언짢았다.‘동현 씨는 최소한 나한테 진심이었고 나를 존중해줬어. 그리고 동현 씨와 함께라면 또 언제 버려질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겠지.’임유진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이 말을 꾹 삼켰다. 괜한 소리로 곽동현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으니까.“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 그 사람 안 좋아해.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났을 뿐이야.”임유진은 그와 눈을 마주한 채 차분한 말투
손목에 남은 붉은색 자국이 마치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웠다.임유진은 눈을 감을 때마다 이 자국 위에 입을 맞췄던 강지혁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3일 뒤, 탁유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직 자고 있는 윤이 얼굴을 바라보았다.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이렇게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벌써 꽉 차는 기분이다.돌이켜보면 그때 아이를 지우지 않은 건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었다. 물론 아이 때문에 두 배로 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그 모든 것이 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그때 탁유미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얼굴의 딸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미야, 짐 정리는 이제 끝이야. 어차피 오후에 출발할 거니까 지금 좀 자 둬.”“잠이 안 와요.”탁유미는 고개를 저었다.“이따가 이삿짐센터도 오기로 했잖아요. 슬슬 일어나야죠.”“G 시에 가게 되면 가게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걱정이 되네.”탁유미 엄마의 얼굴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했다.‘윤이 식당’이 대단히 장사가 잘됐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단골손님도 많아졌기에 수입이 대체로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G 시로 가게 되면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구축해 나가야 하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이곳에서 자리 잡았던 것처럼 거기서도 열심히 하면 되죠.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우리 세 식구 분명히 괜찮을 거예요.”탁유미 엄마는 씩씩한 딸을 보며 마음이 미어졌다.“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엄마랑 윤이가 있는데 내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탁유미는 자신의 엄마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이곳을 떠나는 건 다른 게 아닌 ‘행복’해지려고 가는 것이다....커다란 연회 홀에서는 지금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이경빈은 오늘 이곳에서 공수진과의 결혼 날짜를 발표할 예정이다.전에는 단지 애인 사이인 것만 알렸다면 오늘은 확실히 두 사람이 맺어지게 된다는 일종의 서약과도 같았
“아빠가 이따 결혼 날짜 발표는 경빈 씨가 하는 게 좋겠대요.”“그래.”공수진이 원하는 거라면 다 해줄 수 있다.“그리고 이따 음악이 흐르면 나랑 같이 춤춰요.”“그래.”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이경빈은 발신자를 힐끗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공수진에게 전화 한 통만 하고 오겠다며 연회장 구석 쪽으로 갔다.그에게 걸려온 발신 번호는 탁유미를 감시하려고 보낸 사람의 번호였다.그런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건 탁유미 쪽에 급한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통화 버튼을 누르고 상대방의 말을 듣던 이경빈의 얼굴색이 급속도로 변해버렸다.“대표님, 탁유미 씨가 3시 45분 출발의 KTX 승차권을 구매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아무래도 S 시를 떠나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그리고?”“혼자가 아닙니다.”혼자가 아니라고?탁유미에게는 어머니가 있고 전에 출소했을 때도 어머니와 함께 사라졌었다.그래서 같이 있는 건가?“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그 말에 이경빈은 하마터면 휴대폰을 놓칠 뻔했다.“뭐라고?”“3, 4살 정도 되는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아들? 탁유미에게 아들이라니?!이경빈은 머리가 새하얘졌다.“대표님, 이제 어떡할까요. 못 떠나게 잡을까요, 아니면 이대로 보낼까요?”이대로 그녀가 S 시를 벗어나게 되면 다시 찾는데 또다시 시간이 걸리게 된다.그때 연회장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더니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공수진은 그와 춤을 추기 위해 이경빈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오늘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는 사진을 위해 특별히 기자까지 섭외해 두었다.그리고 오늘이 지나면 그간 인터넷에서 떠돌던 그녀를 향한 동정의 시선들이 단번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이경빈이 휴대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떠나지 못하게 당장 잡아! 그리고 내가 갈 때까지 절대 놓치지 말고!”춤을 추기로 약속했던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회장 밖으로 뛰쳐나갔다.“경빈 씨!”당황한 그녀가 자신도 얼른 따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