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코가 시큰거리는 걸 느끼며 한지영을 꼭 끌어안았다.“응, 네가 아이를 낳으면 나는 아이의 두 번째 엄마가 돼줄 거야. 그리고 사랑을 듬뿍 줄 거야...”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임유진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한지영일 것이다.이제까지 한지영이 그녀에게 베푼 은혜를 다 갚는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이번 생은 평생 잘해도 부족할 것이다!...사건 조사를 맡은 뒤로 임유진은 매일같이 병원을 찾았고 자연스럽게 곽동현과 만나는 날도 잦아졌다.같이 식사하는 날도 많아졌지만, 매번 임유진이 더치페이를 원하는 바람에 곽동현은 시원하게 쏘지도 못했다고 한다.“내가 볼 때, 곽동현 씨는 널 좋아하는 게 확실해. 사람도 너무 괜찮고. 마치 따뜻한 남자의 정석이랄까.”어느 한번 한지영은 임유진을 찾으러 왔다가 마침 곽동현과 마주쳐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잠깐 얘기 나눈 게 전부였지만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굴이 잘생긴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 성실하고 우직하며 제일 중요한 건 임유진을 마주할 때마다 쑥스럽게 얼굴을 붉힌다는 것이다.지금 시대에 이러한 순정남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좋은 사람이야. 그래서 동현 씨는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야 해.”한지영이 매번 두 사람을 밀어줄 때면 임유진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까운 사람이라 한지영은 지금 백연신과 식사 데이트 자리에서도 두 사람 생각만 하고 있었다.“무슨 생각해?”그때 백연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지영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백연신의 그 예쁜 얼굴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대체 어느 틈에 이렇게 가까워 진 거야?!’“그... 그게...”말을 하려는데 남자의 얼굴이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바람에 방금 무슨 생각했던 건지도 다 까먹어 버렸다.“응?”백연신이 조금 기분이 안 좋은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너무 섹시해 한지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지영은 숨도 쉬지 않고 서둘러 임유진과 곽동현의 얘기를 전했다. 그러고는 말을 마친 후 한 손으로 턱을 괴더니 백연신을 향해 물었다.“유진이를 좋아하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사건 조사로 만나는 것 뿐인데 매번 집까지 데려다줄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그리고 저번에 물어보니까 집도 반대 방향이래요.”백연신은 한지영이 다른 남자에게 반한 것은 아닌 듯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얼마 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진심으로 사귀게 됐음에도 그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말괄량이 같은 한지영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몰랐고 남자 얼굴에 홀려 그를 화나게 만든 전적도 여러 번 있었으니까.“그 남자가 정말 유진 씨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건 유진 씨 의견도 들어봐야지. 저번에 보니 당분간 연애할 생각은 없어 보이던데.”백연신의 말에 한지영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무룩해졌다.“그렇겠죠? 이게 다 강지혁 때문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둘이 잘 되기 전에 아예 만나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 건데.”한지영은 두 사람이 사귀게 됐을 당시 잘됐다며 축하까지 해준 자신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괜히 옆에서 조급해하지 마. 진짜 인연이라면, 그 남자가 정말 임유진 씨를 좋아하는 거라면 유진 씨도 몇 년 뒤에 마음을 열지 않겠어?”한지영은 그의 말에 조금 머뭇거렸다.“몇 년이요...? 그건 너무 긴데...”이제 2년 뒷면 임유진은 30대에 진입하게 된다. 30대가 늦은 건 아니지만 20대만이 할 수 있는 사랑도 있는 법이다.“너무 길다고?”백연신이 옅게 웃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그깟 몇 년이 긴 것 같아? 10년 아니 20년 혹은 그 이상도 기다릴 수 있어. 그 정도도 못 하면 그건 사랑이 그만큼 깊지 않다는 것뿐이고.”한지영은 진지한 백연신의 말에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한 사람을 좋아하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는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 상대가 백연신이라서 일까?“그럼 연신 씨도 나 그렇게 기다릴 수 있어요?”이건 자기도 모르
한지영은 그의 얼굴에 핀 예쁜 홍조를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세상에, 내가 지금 제대로 본 거 맞지? 백연신이 정말 부끄러워서 얼굴 붉히고 있는 거 맞는 거지?!’그녀는 아주 본능적으로 두 손을 들어 그의 볼을 감싸 쥐었다.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백연신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고 그녀가 매만지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연신 씨 얼굴 지금 엄청 빨개진 거 알아요?”그의 몸은 점점 더 굳어버렸고 이윽고 고개를 홱 하고 돌려버렸다.“아니야.”“뭐가 아니에요. 지금도 봐...”백연신은 이제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고 한지영은 말을 하다 말고 손을 들어 그의 귀까지 매만졌다. 따뜻한 걸 넘어서 거의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그만해.”백연신은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려고 했다.“잠깐만요. 좀 더 만질게요. 기다려 봐요.”한지영은 촉감 놀이에 심취해 지금 자기 행동이 얼마나 야릇하게 느껴지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백연신은 그녀의 손을 지금 당장이라고 떼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반면 그녀의 손길을 조금만 더 느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누군가를 사랑하면 원래 이런 걸까?한지영 앞에만 서면 그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고 모든 신경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갔다.한지영은 여전히 백연신의 뜨거운 볼과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순정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이 남자는 진정 종합선물세트인 걸까?“연신 씨 왜 이렇게 귀여워요.”더는 참지 못한 한지영이 그의 목을 꽉 끌어안더니 있는 힘껏 그의 볼에 뽀뽀해댔다.지금 이곳이 레스토랑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대로 옷까지 벗겨버렸을지도 모르겠다.백연신은 오늘도 한지영 때문에 심장이 남아나지 않는 것 같았다.그렇게 여차여차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는 데 레스토랑 입구에서 마찬가지로 이제 막 밖으로 나가려는 강지혁을 발견했다.한지영은 그를 보고는 바로 얼굴을 굳혔다. 해당 레스토랑은 S 시에서 꽤 유명한 곳으
한지영의 도발이 먹혔던 걸까? 강지혁의 발걸음이 멈췄고 얼굴은 서서히 어두워져 갔다.그의 옆에 있던 고이준은 강지혁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심장을 졸였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한지영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임유진이라는 이름은 이제 금기사항과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오늘 한지영은 그 이름을 언급한 것도 모자라 주위 사람들에게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얘기까지 한 것이다!레스토랑 입구의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한지영은 말을 마친 후 만족스러운 듯 백연신의 팔짱을 끼고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백연신은 마치 아이 같은 여자친구의 행동에 저절로 실소를 터트렸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자였다.아까 레스토랑을 나오기 전 백연신은 강지혁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강지혁은 정말 더는 임유진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이제 질릴 대로 질려서 헤어짐을 선택한 걸까?한지영은 강지혁의 변덕 때문이라고 씩씩거리며 얘기했지만 백연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전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봤을 때, 강지혁의 행동 하나하나에 임유진을 향한 사랑과 애정이 녹아있었다.그런데 그런 여자를 이렇게나 쉽게 포기한다고?게다가 한지영이 강지혁의 뺨을 내려쳤을 때는 술에 취한 임유진의 한마디에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던 그였다.두 사람이 헤어진 이 시점에 강지혁은 대체 임유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백연신과 한지영이 떠난 후 고이준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대표님.”“가지.”강지혁은 짧게 두 글자를 내뱉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차에 오른 뒤 고이준이 다시 회사로 향하려고 할 때 뒷좌석에서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봐.”대상이 누군지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고이준은 강지혁이 알고 싶은 사람이 임유진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네, 알겠습니다.”고이준은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임유진의 현재 행방에 관해 물었다.강지혁은 지시를 내린 뒤 시트에 기대앉아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임유진과 곽동현은 지금 병원 근처에 있는 한 백반집에서 식사하고 있다.오늘 임유진은 이재하의 상태를 확인하러 병원에 왔다가 또 곽동현과 마주쳐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자료수집을 하는 동안 곽동현은 그녀 옆에서 자잘한 심부름도 도맡아 하며 그녀에게 도움이 되려고 애썼다.임유진도 곽동현이 아직 그녀를 향한 마음을 접지 않은 것쯤은 눈치챘지만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최대한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쉴 틈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오후 1시를 가리켰고 임유진은 그제야 너무 바쁜 나머지 점심 식사도 못 했다는 걸 알아챘다.물론 곽동현도 그녀를 도와주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다.“오늘은 도와줘서 고마워요. 점심은 내가 살게요.”임유진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곽동현이 웃으며 말했다.“식사는 남자인 내가 사는 게 맞죠.”“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요. 나중에 내가 도움이 되면 그때 동현 씨가 사주는 거로 해요.”곽동현은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병원 근처에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보다는 백반집이나 분식집들이 많았다. 두 사람은 제일 가까이 있는 한 백반집으로 들어갔다.주문한 음식이 나와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곽동현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엄마, 무슨 일이세요? 휴... 신경 쓰지 마시라니까. 그리고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약속 잡은 거 빨리 취소해주세요.”반찬을 집으려던 임유진의 손이 멈칫했다. 그의 어머니가 뭐라고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소개팅이라도 들어온 듯했다.하지만 곽동현은 방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거절을 했다.‘설마... 그게 나는 아니겠지?’임유진은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져 들고 있던 젓가락을 천천히 내려놨다.그녀는 곽동현이 말한 좋아한다는 여자가 자신이 아니길 간절하게 바랐다.사랑에 다쳐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이 상황에 누군가의 호감은 그저 부담으로만 다가올 뿐이었다.곽동현은 통화를 마친 후 조금 민망한 듯 임유진을 바라봤고
“네.”“그럼... 그때 그 동생은요?”그의 말에 임유진의 몸이 굳어버렸다.그가 말한 동생은... 아마 강지혁일 것이다. 한때는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다가 지금은 누구보다 멀리 있는 사람...“원래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갔어요. 그때는 저도 잠시만 데리고 있었던 거라.”임유진은 말을 마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마저 먹었다.곽동현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그때, 마치 그녀를 독점하려 했던 ‘동생’이 이제는 그녀 옆에 없다는 건가? 지금 혼자 있다는 걸 보면 그에게도 기회가 있는 건 아닐까...?무수히 많은 생각이 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한편, 식당 안의 두 사람은 지금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가 전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백반집 근처에 정차된 검은색 차 안에서 강지혁은 두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고이준은 지금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그저 몹시도 두려운 눈빛으로 백미러로 보이는 강지혁과 식당 안의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몇 분 전 임유진의 행방을 찾아낸 후 강지혁은 바로 고이준에게 그곳으로 향할 것을 명했고 그 뒤로 줄곧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다.대체 언제까지 보려는 거지?!고이준은 지금 임유진이 눈앞의 남자와 빨리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식사를 마친 후 곽동현은 임유진을 로펌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어차피 나도 그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이러는 거니까 부담가질 필요 없어요.”“그럼... 알겠어요.”임유진은 그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은 차에 올라탔다.달리는 차 안에서 곽동현은 임유진에게 이재하가 받을 수 있는 보상액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었다.“아마 아주 적을 거예요.”임유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현재 알아본 바에 따르면 가해자 명의 아래 있던 자산은 진작에 다른 곳에 옮겨졌고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어요.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가해자 명의의 다른 자산을 찾지 못하면 소송에서 이
헛된 기대에 희망을 품게 하는 것만큼 잔인한 행동은 없을 테니까.마치 그때 누군가가 자신을 이미 타깃으로 정한 것도 모르고 감옥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의는 살아 있다고 믿었던 그녀처럼...곽동현은 그녀의 말에 조금 머쓱했지만, 곧바로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얘기했다.“물론... 내가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거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만약 그때 유진 씨를 알았더라면 나는 무슨 짓을 해서든 도우려고 했을 거예요.”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임유진은 몸을 돌려 진지한 눈으로 곽동현을 바라봤다.그는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그런 남자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일을 겪어보니 평범한 것만큼 소중한 것도 없었다.“동현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어울리지 않아요. 나는 이미 사랑과 결혼에 기대가 없는 사람이고 지금은 그저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요.”“난 기다릴 수 있어요. 유진 씨가 다시 사랑이 하고 싶고 결혼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곽동현은 용기를 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쥔 그의 손은 그 무엇보다도 단단했고 그녀만 바라보겠다는 듯한 그의 눈은 그 무엇보다도 올곧았다.이 손은 강지혁과는 다른 따뜻하고 포근함이 묻어있는 그런 손이다.하지만...“아니요. 기다리지 마세요. 나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동현 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아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쌍방이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나는 동현 씨를 좋아하지 않아요.”곽동현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하게 변해갔다.아마 임유진이 이다음으로 하는 말은 더 잔인하게 들릴 것이다.애초부터 곽동현은 그녀가 옥살이하고 나온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편견 없이 그녀를 대했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그는 정말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고 인간적으로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만약 이대로 그를 선택하게 되면 아마 그가 주는 따스함 아래 아무런 걱정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 유진 씨가 좋아요. 내가 유진 씨에게 대단한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진 씨에게 안정적인 행복은 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유진 씨를 지킬 거고요. 유진 씨는 어떻게 우리는 안 될 거라고 그렇게 단정을 지을 수 있어요? 나와 연애를 해본 것도 아니잖아요. 아직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르잖아요.”떨리는 목소리는 그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고백하고 있는지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임유진은 아직 이 세상에 누군가는 자신을 이렇게나 좋아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곽동현은 여태껏 그 무슨 이유에도 굴하지 않고 줄곧 그녀를 좋아해 줬고 그녀가 가장 볼품없을 때 색안경을 끼지 않고 그녀를 존중해줬다.임유진은 그를 밀어내지 않고 그의 품에 자신을 맡겼다. 너무나도 따뜻한 품이었다.하지만 그 품이 너무 따뜻해서 곽동현이 언젠가는 이 따뜻함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를 만나기를 바랐다.“동현 씨, 나 좋아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나는 이렇게 동현 씨 품에 안겨 있어도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 못해요. 이런 나인데 굳이 연애까지 해볼 필요가 있을까요?”임유진의 말에 곽동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그녀를 끌어안고만 있었다.한편 멀지 않은 곳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그리고 차 안에 남자는 곽동현과 임유진이 껴안는 모습을 보고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늦은 저녁, 임유진은 자신의 월세방 침대에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그녀의 머리맡에는 스탠드가 켜져 있었다. 강씨 저택에서 나온 뒤로 불을 켜고 자는 습관이 또 시작된 것이다.스탠드의 불빛 아래의 임유진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때 월세방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누군가가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현관문 쪽의 자동 센서 등이 켜지자 강지혁의 잔뜩 가라앉은 얼굴이 드러났다.강지혁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가 잠이 든 임유진의 얼굴을 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