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녀는 강지혁과 사귈 때 두 사람은 피임 조치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자궁 손상으로 임신이 어려웠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녀는 임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적어도 그녀와 강지혁 사이에는 아이가 있을 리 없었다. 헤어지더라도 깨끗하게 끊을 수 있었다.하지만... 마음속에는 아련한 아쉬움이 있었다.만약 아이가 있다면 자신과 피를 나눈 가족이 생기는 셈이지만 현재 아이가 없으니 결국 그녀에게는 가족이라고 아무도 없었다.아마 늙어서도 죽을 때까지도 혼자일 것이다.임유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윤이의 이쁘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보고 나서야 그녀의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그녀는 윤이를 안아 올린 후 연속 뽀뽀를 했다. 그리고 생일날 윤이를 초대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특별히 케이크를 사와 윤이와 함께 나눠 먹었다.그리고 이 녀석은 신이 나서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직접 임유진에게 건네주었다. 예쁜 샌들 한 켤레였는데 샌들 끝에는 가죽 리본이 달려 있었고 신발은 흰색인지라 여름옷과 매치하기 쉬워 손이 자주 갈듯했다.신발은 대체로 몽환적인 소녀의 로맨틱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임유진은 넋이 나간 채 신발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종류의 신발을 신어 본지 오래되었다.“이 신발은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랑 비슷해요. 이모도 신으면 예쁜 공주가 될 거예요!”윤이는 신이 나서 말했다.녀석은 지금 말을 아주 유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보통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보다 더 잘하는 데다가 긴 문장까지 말할 수 있었다.임유진은 싱긋 웃더니 윤이가 보는 앞에서 신발을 갈아신었다. 신발은 의외로 사이즈가 딱 맞았다.“윤이야, 고마워. 신발 너무 이쁘다. 이모 너무 마음에 들어.”임유진은 말을 마치고 또 한 번 윤이를 안아 올리고 볼에 뽀뽀를 했다.윤이의 부드러운 볼은 삽시에 붉어지더니 임유진을 보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사랑스럽고 철이 든 아이를 혹시라도 이경빈한테 뺏길까 봐 걱정하는 유미언니도 이해가
눈에 익은 실루엣이 지금 그녀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새까만 눈동자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강지혁!그가 어떻게 그녀의 월세방에 있는 거지?임유진은 깜짝 놀란 채 방 안에 있는 강지혁을 바라보며 순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도 잊었다.강지혁은 입술을 꼭 닫은 채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발걸음 걸음마다 위압감이 느껴졌다.“ 왜? 날 본 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어!’임유진은 씁쓸해서 생각했다.그녀는 헤어지면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 며칠 동안 계속 그와 마주쳤다.그를 볼 때마다 그녀는 헤어질 때의 아픔, 그리고... 술에 취한 그날, 그가 그녀를 구해줬고 그녀는 취해서 그의 품에 안겼던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강지혁 씨, 우리 집엔 웬일이세요?’그녀는 깊게 한숨을 들이쉬고 침착하려고 애썼다.“널 기다렸지.”그는 짤막하게 다섯 글자를 내뱉었다.‘그래, 그의 능력으로 이 집에 들어오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다만... 그녀를 기다렸다니?’“전 더 이상 강지혁 씨랑 할 얘기가 없어요. 헤어질 때 이미 다 얘기했거든요. 그리고 강씨 저택에서 나올 때 제 물건만 갖고 나왔어요.”그는 안색이 이내 어두워졌다. 그녀가 뱉어내는 ‘강지혁 씨’라는 호칭은 그렇게도 귀에 거슬렸다.‘그래, 그녀는 떠날 때 그가 사줬던 물건들을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값어치 없는 물건들만 챙겼을 뿐, 심지어... 그녀가 예전에 그에게 줬었던 사진까지 가져갔다.’“사진은 왜 가져가는데?”그는 싸늘하게 내뱉었다.그녀는 멈칫하더니 즉시 그가 말한 사진이 뭔지 알아챘다.“그건 제 사진이니까요. 헤어진 마당에 강지혁 씨도 제 사진을 보기 싫겠죠. 나중에 쓰레기통에 버리느니 차라리 내가 가지고 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그건 네가 나한테 줬던 거잖아.”“그건 제가 혁이한테 줬던 거죠.”그녀는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혁이는 없고 강지혁만 남았다.그녀의 한마디가 마치 그의 분노 버튼을 누르기라도
본질적으로 그녀는 단지 놀음 상대일 뿐이었다.“그건 내 일이야.”그의 싸늘한 목소리는 허공에 퍼지더니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그래, 그의 일이지. 그녀는 물어볼 자격조차도 없었다.’“그럼, 사진만 돌려주면 그만 떠나주는 거죠?”임유진은 깊은 심호흡을 반복하며 감정을 끌어내렸다.그는 몸을 멈칫하더니 눈초리도 따라서 가볍게 흔들렸다. 한참 후에야 입에서 한 글자를 내뱉었다.“어.”“그래요. 돌려줄게요.”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서랍을 뒤져 사진첩을 꺼내고는 그녀가 어릴 적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사진을 찾았다.지금 그녀는 단지 그를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가 이 좁은 방에 머무르는 일분일초마다 그녀의 마음은 따라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그녀는 그를 멀리해야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를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임유진은 사진을 강지혁에게 건넸다.그는 사진을 건네받고 고개를 살짝 젖히더니 혼이 나간 채 손에 들린 사진을 몇 번이고 바라봤다.한편 임유진은 강지혁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한지영이 그의 뺨을 때렸다고 했던 일을 떠올렸다.정말 지영이가 말한 것처럼 그는 그녀 때문에 지영이를 봐준 걸까?“강현수도 여기 온 적 있어?”싸늘한 목소리는 침묵을 깨고 허공에 울려 퍼지면서 생각에 잠겼던 그녀를 깨웠다.“네?”임유진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자 그의 그윽한 시선이 머물렀다.“왔었어?”그는 다시 한번 곱씹었다.“강지혁 씨, 그건 제 프라이버시에요. 사진은 이미 가졌으니 이젠 떠나도 되죠?”임유진은 말을 마치고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했다.다만 그녀의 손이 문고리에 올려지기도 전에 강지혁의 손은 한발 빨리 그녀가 닫친 문을 열려는 것을 가로막았다. 이내 그녀의 온몸으로 그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는 온화한 숨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강현수한테 갈 거야?”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본능적으로 그를 피하려고 했다. 단지 한쪽으로 비켜섰을 뿐인데 그의 손은 이미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품속으로 더욱 끌어
“현수 씨는 적어도 나를 게임 상대로는 안 보겠죠...”강지혁의 속도 모르고 임유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만해, 그만...!’그는 그녀가 강현수 곁으로 갈 거라는 가능성 따윈 듣고 싶지 않았다.강지혁은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의 입을 닫으려는 듯 거칠게 입을 맞춰왔다.임유진은 갑작스럽게 부딪혀 오는 입술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이미 헤어진 사이에 키스가 웬 말인가?‘이런 건 싫어!’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고 강지혁은 그녀가 움직일 수 없게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얼마나 지났을까, 거칠었던 키스가 끝이 나고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댄 다음, 마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강현수한테 가지 마...”그의 목소리에 임유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러고는 그와 선을 그으려고 일부러 썼던 강지혁 씨라는 호칭과 존댓말은 어느새 집어던진 채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화를 냈다.“강지혁,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강지혁의 눈에 아른거리던 애절함은 그녀의 말에 어느새 분노로 바뀌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자그마한 월세방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그때, 무릎 쪽에서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고 임유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서서히 허리를 숙여 손을 무릎 쪽으로 가져다 댔다.그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챈 강지혁이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아니... 아무것도 아니야...”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애써 통증을 참아보려 했다.얼마 전 무릎 통증이 재발한 이후로 또다시 이따금 아프기 시작했다. 가벼운 통증일 때도 있었지만 심하게 아플 때도 있었다.강지혁은 한쪽 무릎을 꿇어 그녀의 치마를 위로 올렸다.“지금 뭐 하는...?!”임유진이 깜짝 놀라 외쳤다.치마를 위로 올리자 거기에는 파스로 도배된 그녀의 무릎이 있었다.“무릎 왜 이래? 아픈 거야?”강지혁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별거 아니야. 조금 있으면 나아. 그보다 사진도 줬으니
“필요 없어. 병원 갈 정도는 아니야.”임유진이 그를 잡으며 말했다.“출발해.”강지혁의 명령에 기사는 천천히 차에 시동을 걸어 병원으로 향했다.임유진은 이 상태의 강지혁은 누구도 말릴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말리려는 시도를 접은 채 시트에 기대 앉았다.근 몇 년간 의도치 않게 배운 게 있다면 그건 인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이다.임유진이 아무런 저항도 없자 강지혁은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는 적막 가득한 차 안에서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다. 얼굴은 창백기가 조금 도는 듯했고 시선은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은 무릎 통증을 완화하려는 듯 다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는 건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통을 참는 듯 보였다.“계속 아파?”강지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별로, 너무 아픈 건 아니야.”며칠 전 장시간 서 있었을 때 느꼈던 통증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치료받으러 안 갔어?”“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병원이 아니야.”서심 병원은 VVIP들이 자주 찾는 병원이라 월급 140만 원짜리 변호사 비서가 쉽게 다닐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관절염은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지금의 그녀에겐 부담만 될 뿐이다.“예약은 이제부터 내가 매주 잡아 줄 테니까 꾸준히 치료받아.”그 말에 임유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강지혁은 지금, 마치 두 사람이 아직 연인인 것처럼 그녀를 걱정했다.“나 이제 네 여자친구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내 예약을 대신 잡아줄 이유 없어.”강지혁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그게 뭐? 우리가 헤어진 건 맞는데 내가 네 진료 예약을 잡는 거는 별개야. 우리가 헤어졌어도 네가 원하는 거, 너한테 필요한 거, 나는 아무런 명분 없이도 너한테 해줄 수 있어. 로펌도 네가 원한다면 차려줄 수 있어.”그러자 임유진이 쓰게 웃었다.이건 뭐 이별 선물인 건가?그녀의 두 눈이 예쁜 그의 두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필요 없어.”그가 주는 걸 그대로 받아버리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어느새 병원 앞에 멈춰 섰다. 강지혁은 아까처럼 임유진을 안아 들고 병원으로 들어갔다.의사는 전에 임유진을 치료해줬던 의사였다.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의사가 말했다.“복용하던 약을 갑작스럽게 끊는 바람에 통증이 재발한 것 같네요. 게다가 추운 곳에 오랜 시간 있어 더 욱신거리는 거고요. 관절염은 장기간 꾸준히 치료받아야 합니다. 도중에 약을 끊게 되면 오히려 더 악화할 수도 있어요.”“약 처방부터 해주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매주 진료받으러 오게 할게요.”강지혁이 말했다.“아니요. 그냥 진통제만 처방해주세요.”상반되는 두 사람의 말에 의사는 조금 난감한 얼굴로 강지혁을 바라봤다.“제가 말한 대로 해주세요.”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간호사를 불러 약을 가지고 오게 했다.그리고 강지혁은 곧바로 임유진의 자궁을 치료해줬던 산부인과 전문의까지 불러왔다. 하지만 그걸 본 임유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럴 필요 없어.”강지혁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뭐라고 하려는데 임유진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때는 아이를 원해서 치료받았던 거지만, 지금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굳이 치료받을 필요도 없겠지.”강지혁은 그녀를 뚫어지게 보더니 의사에게 나가라며 손짓을 했다.임유진은 특실 소파에 앉아 또다시 손으로 무릎을 두드렸다.통증은 여전했고 이대로라면 짧게는 2, 3시간, 길게는 7, 8시간까지 통증이 이어질 것이다.그때, 강지혁이 한쪽 무릎을 꿇어 임유진 앞에 자리하더니 그녀를 대신해 무릎과 다리를 마사지해주기 시작했다.예쁜 손이 적당한 힘으로 규칙적이게 움직이는 걸 보면서 임유진은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리고 그와 닿은 부분만 데일 것처럼 뜨거워 났다.“좀 괜찮아?”조용한 공간에 그의 목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려왔다.임유진은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마주치는 시선 속에서 그녀는 언뜻 자신을 향한 그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읽은 것만 같았다.하지만... 걱정이라니, 이제는 눈까지 맛이 간 건가?
“키... 키스? 내가? 너한테?”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고 많이 당황한 듯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임유진의 표정 변화에 강지혁의 눈빛은 어느새 위험하게 빛났다.“그래, 그날 밤, 그릴앤바 앞에서.”“...”‘그릴앤바?’임유진은 이제 식은땀까지 났다.필름이 끊겨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그 날 술에 취해 키스까지 했다는 건가?“못 믿겠으면 고이준이라도 불러올까?”고이준이라면 항상 곁에 있는 그 비서?그럼 단순히 둘이 있을 때 한 게 아니라 제삼자가 보는 앞에서 했다는 건가?임유진의 얼굴은 이제 데일 것처럼 빨개졌다.“아니면 그 근처 CCTV라도 돌려볼래?”CCTV까지...임유진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아... 아니, 됐어.”그녀는 상당히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술 따위를 마시는 게 아니었다!임유진은 지금 강지혁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 강지혁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는 지금, 마치 그녀밖에 안 보인다는 듯한 얼굴을 했고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에 입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천천히 몸을 그녀에게로 기울였다.덜컥.바로 그때 특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임유진의 약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어마어마한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그녀가 본 건 강지혁이 임유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서 그녀의 무릎을 어루만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잘생긴 얼굴은 임유진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고 그 눈빛에는 욕망과 애절함이 잔뜩 섞여 있었다. 오직 눈앞에 있는 이 여자밖에 안 보이는 듯이...이 남자가 정말 그 강지혁이 맞는 건가?여자에게는 관심 없다던 사람이 맞나?전에 강지혁이 여자를 데리고 병원에 왔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걸 두 눈으로 보게 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한편,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지혁과 임유진은 깜짝 놀랐다.강지혁의 절절한 눈빛은 어느새 차가운 눈빛으로 바뀌었고
이쯤 되니 간호사는 임유진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명품 하나 걸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잣집 아가씨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대체 그녀가 뭐라고 강지혁이 무릎 마사지까지 해주고 약까지 떠먹여 주는 걸까?눈이 제대로 달리 사람이라면 이 여자가 얼마나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한편 임유진은 눈앞에 놓인 약을 보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헤어질 때는 그렇게 잔인하게 통보하듯 얘기했던 남자가 지금은 또 전처럼 세상 다정하게 약을 건네주고 있다.다정함과 잔인함이 공존할 수 있는 단어였던가?그녀는 그에게서 약과 물을 건네받은 후 아무 말 없이 약을 먹었다.그리고 강지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품에 안아 병원에서 나왔다.두 사람이 타고 왔던 차량은 어느새 병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강지혁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려준 후 차 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임유진은 차에 타지 않고 뒤로 한 발짝 멀어지더니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이에 강지혁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녀를 바라봤다.임유진은 마치 눈앞에 있는 남자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와 두 눈을 마주쳐왔다. 그러고는 굳게 닫힌 입을 열어 말했다.“오늘은 고마워. 하지만 이 이상 나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마.”“우리가 헤어진 것 때문에?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가 헤어졌어도 나는 너한테...”강지혁의 말은 그녀의 손에 의해 막혀버렸다.임유진은 자신의 손으로 그의 입술을 막아버리고는 마치 예전의 그녀로 돌아간 듯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혁아, 아마 이렇게 너를 부르는 것도 마지막일 거야.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서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속상함도 느껴. 너는 우리 사이를 그저 게임으로밖에 취급 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어. 나는 정말 진심으로 너와 이번 생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있으려고 했어. 예쁜 자식들도 키우면서.”그녀의 말에는 그 어떠한 원망도, 증오도 없었고 평온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마치 제삼자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날 밤, 임유진과 강지혁은 마치 5년 전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열렬하게 사랑을 나눴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녀가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었다.강지혁은 정사가 끝이 난 후 노곤해진 그녀를 안아 들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욕실로 가 그녀를 깨끗이 씻겼다.아마 그의 이런 챙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임유진뿐일 것이다.다 씻은 후 강지혁은 임유진에게 가운을 입힌 후 다시 그녀를 안아 든 채 침대로 걸어왔다.임유진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혁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야. 강현수랑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야?”강지혁이 미간을 살짝 꿈틀거리며 물었다.“우리 다음에는 자세 좀 바꾸는 거 어때? 물론 리드하는 것도 좋지만 생각보다 내가 체력이 없어서.”“...”강지혁은 그녀의 말에 순간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아까 그를 아래에 깔고 멋대로 주도권을 쥐어간 그녀의 행동만 생각하면 지금도 상당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어쩐지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면 그 무엇하나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강지혁은 임유진을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너는 과거의 내가 선택했던 내 아내야. 예전의 내가 그렇게도 널 많이 사랑했다면 지금의 나도 널 사랑할 수 있어.”임유진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정말? 정말 날 사랑할 거야?”“그래. 하지만 절대 날 배신해서는 안 돼. 5년 전처럼 내 곁을 떠나서도 안 되고. 알았어?”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눈가를 어루만졌다.강지혁은 그날 별채에 있는 그의 아버지 앞에서도 그녀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절대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기억을 잃은 강지혁도 역시 아버지의 전철을 밟게 될까 봐 무서운 걸까?“혁아, 내가 널 떠난 건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있어서였을 거야. 절대 원해서 널 떠난 건 아니었을 거야.”임유진은 계속해서 그의 눈가를 매만지며 어머니와 똑 닮았
내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키스는 왜 해?임유진은 그 생각에 울컥하며 키스를 끝내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하지만 강지혁은 그녀가 피할 틈조차 주지 않았고 맹렬하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그러다 임유진이 거의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느낄 때야 천천히 입술을 뗐다.“네가 못 믿는 건 아니고? 내가 널 그렇게 사랑했다는 걸?”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임유진은 방금의 키스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내쉬는 숨은 무척이나 거칠었다.“반대로 물어볼게. 그럼 너는? 너는 날 얼만큼 사랑하는데?”임유진은 귓가에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에 몸이 움찔 떨렸다.강지혁의 두 눈은 감겨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마치 두 사람을 감도는 공기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춰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간신히 진정한 임유진의 호흡이 또다시 흔들리며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잠깐의 침묵 후 강지혁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다시 떠진 그의 눈동자에는 싸늘함만이 감돌고 있었다.“그다지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다는 등의 말을 꺼내지 마. 그리고 네가 날 사랑한다는 말도.”강지혁은 차갑게 말을 내뱉고는 몸을 일으키려는 듯 천천히 그녀에게서 멀어졌다.이에 임유진은 만약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를 보낸다면 평생 이 순간을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래서 그녀는 두 팔을 뻗어 그의 목에 두른 후 더 이상 그가 멀어지지 못하게 했다.“혁아, 날 똑바로 봐!”다급한 그녀의 말에 강지혁의 몸이 멈추더니 이내 조금 놀란 듯한 시선을 그녀에게 보냈다.“내가 널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고? 멋대로 추측하지 마.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도 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렇게 궁금하다면 알려줄게.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임유진은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러고는 강지혁이 했던 키스와 달리 은근하고 유혹적이며 또 절절한 키스를 퍼부었다.키
임유진은 말을 하며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몸을 돌린 순간 한 걸음도 채 내딛지 못하고 강지혁에게 손목이 잡혀버렸다. 그리고 눈앞이 핑 도는 느낌과 함께 어느새 침대에 눕혀져 버렸다.임유진은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겨를도 없이 강지혁의 몸이 그녀에게로 바짝 다가왔다.강지혁은 두 손을 그녀의 몸 바로 옆에 둔 채 얼굴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가져갔다.숨이 거칠고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것이 아주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아까는 그렇게도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 도망가지? 네가 원하는 대로 얘기하고 있잖아.”“네가 흥분을 가라앉히면 다시 얘기하려고 했던 것뿐이야.”임유진이 버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강지혁이 누르는 바람에 좀처럼 상체를 일으키지 못했다.“혁아, 일단 좀 비켜봐.”임유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 사이는 무척이나 가까웠고 강지혁은 그녀에게 가감 없이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나는 지금 충분히 이성적이야.”강지혁이 답했다.그의 코는 거의 그녀의 코와 맞닿을 정도였다.몸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임유진의 체취가 그의 몸을 감싸왔다. 마치 그의 정신을 쏙 빼놓는 게 목적인 것처럼 그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강지혁은 자신이 왜 이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그녀에게 화가 나는지 그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신경이 쓰이는 걸까? 강현수와 그녀의 과거가?“강현수 좋아하지 말고 사랑하지도 마. 알아들었어?”강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난 한번도 강현수를 좋아하거나 사랑한 적이 없어!”임유진이 외쳤다.“네가 사랑하는 사람은 계속 나였다. 뭐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거야?”강지혁이 물었다.“그래.”임유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는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단호하게 외쳤다.“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임유진은 그 말에 멈칫했다.강지혁의 입에서
임유진이 초조한 얼굴로 영상을 바라보던 그때 갑자기 욕실 문이 열리며 강지혁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강지혁은 의자에 앉아있는 임유진을 보더니 조금 놀란 듯 멈칫했다. 그러나 곧바로 그녀 너머로 보이는 영상을 보고는 다시 차가운 얼굴로 돌아왔다.“내 물건에 멋대로 손대도 된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나가.”임유진은 그 말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곧바로 강지혁의 앞으로 걸어갔다.“혁아, 나랑 현수 씨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 현수 씨가 날 좋아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래서 더 확실하게 얘기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너밖에 없었다는 걸.”그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강지혁의 표정은 점점 더 싸늘해져만 갔다.“둘 사이가 어땠는지 듣고 싶지 않아. 잘 거니까 나가. 할 말 있으면 내일 다시 해.”강지혁은 아까 임유진과 강현수가 함께 있는 걸 본 순간부터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임유진에 관한 기억은 다 잊어버린 그지만 그녀가 강현수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는 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지인들을 통해 들은 것도 있고 실제로 파티에서 강현수가 임유진의 이름을 꺼내며 그에게 적대감을 보이기도 했으니까.하지만 그럼에도 예전에는 그런 게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어차피 임유진은 그저 그의 죽은 아내일 뿐이었으니까. 이미 죽은 사람이 강현수와 과거에 썸을 탔든 연애를 했든 알 바 아니었다.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임유진이 아주 멀쩡한 얼굴로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고 그에게 사랑한다며 속삭였다. 심지어 마치 그를 아주 잘 아는 듯이 굴기도 했다.그래서일까, 강지혁은 강현수와 그녀가 함께 있는 모습이 멋대로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치고 불안하기도 하며 더욱이는 심장이 아프게 욱신거리기도 했다.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마치 독처럼 그의 몸 곳곳에 퍼졌다.“아니, 나는 지금 얘기해야겠어.”임유진이 강지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나에 대해 잊었다면 다시 한번 얘기해줄게. 어릴 때
강지혁은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새엄마는 없어.”즉 그렇다는 건 임유진과 이혼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강선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포크를 움직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리고 강선현도 새엄마는 없을 거라는 말을 듣고는 활짝 웃으며 마찬가지로 식사를 마저 했다.저녁 식사가 끝이 난 후 임유진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다 아들과 같이 유치원에서 내준 숙제를 완성했다.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선율 혼자 다 한 거나 다름없었다. 강선율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한 아이였다. 그리고 숙제를 하면서도 한번도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현이는 율이가 숙제를 완성하자마자 임유진을 향해 물었다.“엄마, 나는 언제쯤 오빠랑 같이 유치원에 갈 수 있어?”“다음 주면 현이도 유치원에 갈 수 있어.”임유진의 말에 아이는 활짝 웃으며 방방 뛰었다.임유진은 아이들끼리 놀게 한 후 강지혁을 찾으러 위층 서재로 향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어떻게든 강현수에 관해 얘기해야만 했다.사실 식사를 마치자마자 하고 싶었는데 강지혁은 그녀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마치 잔뜩 삐져있는 아이처럼 말이다.임유진은 서재에 갔다가 강지혁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침실로 향했다. 하지만 침실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때 욕실 쪽에서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임유진은 샤워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강지혁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생각이었다.가만히 기다리는 게 지루해 방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그녀는 우연히 탁자 위에 있는 자료를 발견했다.자료에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그녀와 강현수의 사진이었다.그리고 자료를 더 자세히 보니 그녀와 강현수가 버스에 함께 있었을 때 났던 기사 내용이 적혀있었다.당시 임유진은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강현수는 그녀의 머리가 창문에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의 머리와 차창 사이에 자신의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강현수는 임유진과 강지혁이 사라진 지 5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자리에 가만히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잘생긴 얼굴에 고통과 실망감이 잔뜩 어려있었다.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그지만 사랑 앞에서는 그 역시 한낱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강지혁은 임유진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온 후 곧바로 그녀의 손을 풀어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강현수와 꽤 많이 얽혀있었나 봐?”“응?”임유진은 묘하게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강지혁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급하게 해명했다.“오해하지 마. 나랑 현수 씨 사이에 네가 오해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오늘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도 몰랐고. 그리고 나는 이미...”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지혁이 그녀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강현수와 과거에 무슨 사이였는지, 지금은 또 어떤지 나한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어. 조금도 궁금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머릿속에 넣어둬. 너는 지금 내 아내고 가문의 안주인이라는 거. 그러니까 강씨 가문을 욕보인다거나 스캔들 터질 만한 일은 만들지 마.”강지혁은 말을 다 마친 후 미련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그리고 임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강씨 가문을 욕보이지 말고 스캔들 터질 만한 일을 만들지 말라고? 그녀와 강현수 사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강지혁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만약 5년 전의 강지혁이었다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아무래도 깊은 오해가 생기기 전에 강지혁에게 제대로 해명을 해야 할 듯하다.임유진은 저녁 식사를 할 때 강지혁과 얘기를 나누며 물꼬를 틀려고 했다. 하지만 강지혁은 식탁에 앉기 전부터 차가운 아우라를 내뿜으며 말 한마디 건네지 말라는 듯이 눈도 마주쳐주지 않았다.그 탓에 식사 분위기는 숨 막힐 듯 싸늘해졌고 임유진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그때 밥을 먹던 현이가 갑자기 그녀를 향해 물었다.“아빠 정말 엄마 사랑하는 거 맞아? 아까 현수 삼촌은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지
강지혁은 강현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임유진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네가 아무리 나보다 더 빨리 만났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어. 내가 임유진을 사랑하지 않아도 임유진은 날 사랑할 수밖에 없고 날 사랑해야만 하며 내 곁에 있어야만 해.”그는 말을 마친 후 갑자기 임유진의 턱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임유진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곧바로 얼굴을 가까이하며 그녀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임유진은 바로 코앞에서 보이는 그의 얼굴과 입술이 맞닿는 감촉에 깜짝 놀라 순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강지혁이 먼저 입을 맞춰왔다. 그것도 강현수와 경호원들 앞에서 말이다.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스킨십하는 걸 그녀는 좋아하지도 않고 굳이 말하자면 불편해하는 편이었는데 강지혁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강지혁이 지금 무슨 이유로 그녀에게 키스한 건지는 몰라도 5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에게 먼저 다가와 키스하는 거라 그녀는 그의 입술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임유진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강지혁과의 키스에 심취해 있었다.강지혁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아까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때 그녀의 심장이 얼마나 아팠는지.강지혁이 그런 말을 하는 게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아팠다.그에게 냉랭한 말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도 있고 당시 그녀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눈앞에 선해 그것 또한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적어도 절벽에서 떨어진 후 병원에서 깨어난 순간 모든 걸 다 잊어버린 상태라 아예 고통의 감정 같은 게 없었지만 강지혁은 최면을 받기 전까지 계속 고통에 시달렸어야만 했을 테니까.죽음은 늘 그렇다. 항상 살아있는 사람이 더 괴로운 게 바로 죽음이었다.강지혁은 그녀를 너무나도 많이 사랑했기에 지금 이렇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게 된 것이다.강현수는 주먹을 꽉 말아쥔 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임유진은 강지혁이 혹시 오해라도 할까 봐 괜히 심장이 철렁했다.“마침 잘 왔네. 네가 한번 말해봐. 너 그때 분명히 나한테 유진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 안 그래, 강지혁?”강현수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강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리고 강지혁은 그의 시선을 받으며 입을 꾹 닫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갑작스러운 대치상황에 임유진은 서둘러 팔을 빼기 위해 버둥거렸다. 하지만 강현수가 너무나도 꽉 잡고 있는 바람에 도저히 팔을 뺄 수가 없었다.현이는 무서운 분위기에 많이 놀란 건지 창백한 얼굴로 임유진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녀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그때 강지혁이 한쪽 입꼬리를 위로 올리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맞아, 그랬지. 그런데 그게 뭐?”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하더니 이내 임유진을 잡고 있던 강현수의 손목을 억세게 잡았다.“내가 네 앞에서 뭐라고 했던 임유진이 내 아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내가 놓지 않는 한 임유진은 어디도 못 가.”“만약 유진이가 떠나겠다고 하면 그게 아무리 너라도 막을 권리는 없어!”강현수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만약 임유진이 떠나겠다고 하면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도울 것이다.소중한 이를 강지혁에게 보냈던 건 강지혁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강지혁은 지난번에 봤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임유진을 사랑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만약 강지혁이 정말 임유진을 마음속에서 지운 거라면 더 이상 임유진을 그의 옆에 둘 수 없다.“내가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직접 시험해보면 되겠네.”강지혁은 강현수를 향해 차가운 말을 내뱉고는 이내 뒤에 있는 기사에게 지시를 내렸다.“애를 집 안으로 데려가.”기사는 그 말에 강선현을 안으려는 듯 앞으로 다가갔다.“아가씨, 이리로 오세요.”하지만 현이는 떠날 생각이 없는 듯 임유진의 손을 꽉 잡은 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이에 임유진이 아이를 설득했다.“우리 현이 착하지. 현수 삼촌이랑 할 얘기가 있
강현수는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고는 천천히 몸을 바로 세우고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살아있었는데 왜 5년간 아무런 소식도 주지 않은 거야? 난 정말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네 장례식에 참가했을 때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아?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냐고.”강현수는 당시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차라리 그녀가 떨어졌던 절벽에서 투신할까도 생각했었다.“미안해요. 의도치 않게 걱정을 끼쳤네요.”임유진이 말했다.그녀를 바라보는 강현수의 두 눈은 이미 잔뜩 빨개져 있었다.“아니야.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정말... 너무 다행이야.”강현수는 말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와 닿으려고 했다. 임유진이 정말 살아있는 게 맞다는 것을, 그의 환각이나 상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임유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틀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이에 강현수의 손이 허공에서 움찔하고 멈췄다.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명백한 거절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강현수는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강지혁 때문이야?”“네.”임유진이 답했다.“계속해서 나한테 말 편히 하지 않는 것도 강지혁 때문이고?”“나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고 나는 여전히 혁이를 사랑하고 있어요.”강현수는 그 말에 허탈하고도 조금 슬픈 웃음을 터트렸다.“5년이야. 5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주지 않았으면서, 강지혁 보러 찾아오지도 않았으면서 여전히 강지혁을 사랑한다고? 정말 사랑했으면 더 빨리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니야?”임유진은 강현수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돌아오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났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혁이고 내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면 그것 또한 혁이 옆이에요. 현수 씨 말대로 5년이나 지났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날 잊어버리고 나한테 시간이든 뭐든 쓰지 말아줘요. 그럴 가치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강현수의 눈에 고통의 감정이 스쳐 갔다.“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