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어두운 걸 싫어해 잘 때도 불을 켜고 자는 걸 강지혁은 잘 알고 있다.예전에 월세방에 지낼 때 그녀는 뒤로 가면서 한동안 불을 끄고 잘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또다시 불을 켜고 자는 습관으로 돌아간 듯싶었다.강지혁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방에 없나?’막 자리를 뜨려는데 무거운 한숨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있어!’강지혁은 불쑥 걸음을 멈추고 벽을 쓰다듬으며 스위치를 켰다. 순간 방 안이 환하게 빛났다.임유진은 가녀린 체구로 방 안의 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얼굴을 다리 사이에 파묻고는 어깨를 들썩거렸는데 침울한 흐느낌이 간혹 들려왔다.그녀가 지금 우는 걸까?강지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서 그녀를 바라봤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임유진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머리를 살짝 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그를 쳐다봤다.두 눈이 빨갛게 부은 걸 보니 한참 운 듯싶었다.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으로 돼버렸고 가냘프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데 순간 강지혁은 심장을 쿡쿡 찌르듯이 아파졌다.임유진은 좀처럼 울지 않는데 매번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강지혁은 어쩔 바를 몰랐다.“말해, 대체 무슨 일이야?”그는 한참 후에야 제 목소리를 찾았다.임유진은 코를 훌쩍거리며 겨우 말했다.“엄마가...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못 찾겠어. 찾을 수가 없어...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고...”그녀는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집에 돌아온 후 한참 동안 생각해봤지만 아빠가 엄마 무덤을 대체 어디로 옮긴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묘원? 아니면 다른 어떤 매장 가능한 곳이 있을까?찾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두서가 안 잡혔다.나중에 아빠와 새엄마, 그리고 임유라까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해답을 얻지 못했다.그녀는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백억을 달라고? 저 자신을 팔아도 백억은 안 될 텐데!임유진은 문득 강지혁을 빤히 쳐다봤다.
“알아.”임유진은 울먹이며 대답했다. 지금으로선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백억을 구할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이때 강지혁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내가 싫어.”그녀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김빠진 공처럼 축 처지고 눈가에 남은 마지막 생기도 사라졌다.당연히 싫겠지. 그녀가 뭐라고 옆에 있어 주기만 한다면 강지혁이 선뜻 백억을 내놓겠는가.임유진은 속으로 자신을 맹비난했다. 강지혁이 그녀에 대한 호감이 백억 가치나 된다고 여기다니, 그녀는 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강지혁을 잡았던 손도 무기력하게 내려놓았다.강지혁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누나 일단 좀 쉬어야겠어. 사용인한테 먹을 것 좀 가져오라고 할 테니 뭐라도 좀 먹고 자.”말을 마친 강지혁은 방에서 나왔다.커다란 방안에 임유진만 덩그러니 남았다.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을 꼭 감싸 안았다.‘역시... 또 나 혼자야.’외로움과 무기력함은 한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저 자신을 팔겠다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니, 세상 참....강지혁은 곧게 서재로 들어가 고이준에게 전화했다.“오늘 유진의 행적 조사해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토록 힘들어하는 건지.”“네, 알겠습니다.”고이준은 대답을 마치고 한 시간 만에 조사를 마치더니 그에게 전화해 보고드렸다.“무덤을 옮겨?”강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네, 일주일 전에 임유진 씨 아버님이 유진 씨 어머님 무덤을 옮겼어요. 오늘 유진 씨가 성묘하러 갔다가 허탕 쳤다고 합니다. 그 마을 성묘 등록 담당자가 말하기를 유진 씨는 오늘 어머님 무덤을 옮긴 사실을 알게 된 후 매우 격분하며 기어코 산에 오르겠다고 하시더니 하산 후 급히 스쿠터를 타고 떠나갔대요...”고이준은 이어서 임유진이 임씨 일가에 찾아가 이웃들과 나눈 대화를 모조리 강지혁에게 알렸고 또한 그녀가 오늘 아빠와 임유라와 통화한 기록도 알려주었다.“통화목록을 보면 임유진 씨가 가족들에게 무려 38번이나 전화했지만
강지혁은 음식을 들고 그녀 앞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누나, 어머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정말 알고 싶다면 지금 바로 이 음식들 먹는 게 좋을 거야.”임유진은 머리를 번쩍 들고 빨갛게 부은 두 눈으로 그를 의아하게 쳐다봤다.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설마...“우리 엄마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아?”“이거 다 먹으면 알려줄게.”강지혁이 대답했다.임유진은 곧바로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듯 음식을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었다.강지혁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허겁지겁 음식을 삼키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완전히 달랐으니까.다만 이로써 그녀에게 엄마 무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또 더 울었는지 얼굴에 눈물 자국이 흥건했고 두 눈도 아까보다 더 빨갛게 부어올랐다.방금 그가 떠난 후 그녀는 또 울었단 말인가?“천천히 먹어. 누나 아버님이 오늘 어머님 무덤을 남북극에 옮겼다 해도 내가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강지혁이 말했다.“그런데 누나 먹다가 체하면 괜히 시간만 더 낭비할 거야.”임유진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수저를 쥔 손을 머뭇거리다가 확연히 속도를 늦추고 침착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강지혁은 그녀가 다 먹은 후에야 티슈 한 장 뽑아서 자상하게 입 주변을 닦아주었다.“나... 다 먹었어. 엄마 무덤 어디 있대? 얼른 말해줘.”임유진은 초조하고 기대 어린 눈길로, 또 살짝 걱정이 휩싸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마치 이 기대가 무산될까 봐, 실은 그가 엄마 무덤이 어디 있는지 모를까 봐 두려움에 떠는 것만 같았다.강지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다가 채 마르지 않은 눈물도 닦아주었다.“가서 얼굴부터 씻어. 누나 이런 모습을 어머님이 보시면 분명 속상해하실 거야.”강지혁이 말했다.“하지만...”“왜? 내가 어머님 무덤에 안 데리고 갈까 봐?”강지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렇지만 누난 지금 믿을 사람이 나밖에 없어. 오직 나만 누나를 데리고 어머님 무덤에 찾아갈수 있으니까.”그녀는 강지혁을
“나한테 백억을 요구하면서도 왜 직접 내게 어머님 무덤을 찾아달라고 말할 생각은 안 했지?”강지혁이 질문을 이어갔다.임유진은 그의 말을 듣고 흠칫 놀라더니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깨달았다. 아빠에게 진짜 백억을 준다 해도 과연 만족할까? 더 욕심부리면서 또 돈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강지혁의 말처럼 그에게 백억원을 요구하는 것보다 그의 도움을 빌려 엄마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다.아까는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이렇게 단순한 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그럼 지금 날 데리고 가줄 수 있어?”임유진이 초조한 눈길로 물었다. 엄마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만 그녀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급할 거 없어. 일단 좀 쉬어. 졸리면 한잠 자던가.”강지혁이 말했다.다만 임유진이 지금 잘 마음이 있을까! 그녀는 강지혁만 뚫어지라 쳐다봤다.또 15분 남짓 지난 후 강지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전화를 받고 잠시 뒤 말했다.“그래, 알았어. 거기서 기다려. 전에 분부했던 일도 가능한 한 빨리 준비해.”말을 마친 강지혁은 휴대폰을 거둬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임유진에게 말했다.“가자, 이젠.”임유진은 순간 그가 지금 엄마 무덤으로 데려갈 거란 예감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쪼르르 따라갔다.다만 그녀가 탄 차는 S 시 몇몇 묘원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되레 시내의 대형 아파트 단지 쪽으로 질주했다.차가 멈춰선 후 임유진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리둥절한 눈길로 강지혁을 바라봤다.그의 차는 도심 구역의 철거되지 않은 어느 한 마을에 도착했다.“가자.”강지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걸어갔다.임유진은 멍하니 그의 발자취를 따라 들어갔고 어느 한 집 앞에 강지혁의 비서 고이준이 서 있었다.고이준 외에도 경호원 같아 보이는 몇몇 사람이 서 있었다.고이준은 강지혁을 보자 재빨리 다가왔다.“대표님, 여기에요.”강지혁은 그녀를 이끌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이준이 사전에 이 집을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임유진 씨 아버님은 임유진 씨 어머님 유골함을 꺼낸 후 이곳에 와서 3개월 치 집세를 냈습니다. 그 뒤로 바로 다음 날 얼핏 와본 이후로 더는 이곳에 온 적이 없어요.”고이준이 말했다.“또한 임유진 씨 아버님은 어떠한 묘원에도 연락한 적 없고 묘지를 새로 산 적도 없어요.”임유진은 고개를 푹 떨구고 유골함만 빤히 쳐다봤다.아빠는... 애초에 엄마의 무덤을 옮길 생각이 없었다. 오직 이걸로 그녀를 협박할 의도였다.그녀를 협박해 충분한 이득을 갈취하면 아마도 이 유골함을 돌려줄지도 모른다.그렇게 되면 아빠도 묘지 살 돈이 생기니까!돌아가신 엄마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이 죽은 후 이런 식으로 자신을 대한 걸 알았다면 어떤 심정일까?죽은 사람마저... 이용하려 하다니!임유진은 그 순간 가소롭기도 하고 한없이 슬플 따름이었다.코끝이 시큰했지만 이번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전에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고갈된 듯싶었다.“고마워요.”그녀는 고개 들어 강지혁에게 말했다. 강지혁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엄마의 유골함을 못 찾았을 테니까.“아직은 고맙다고 말하기 일러.”강지혁이 옆에 있는 고이준에게 머리를 돌렸다.“다 준비됐어?”“네.”고이준이 대답했다.강지혁은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어머님 유골함 챙겨.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어머님을 편히 땅에 묻어두시는 거야.”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강지혁을 멍하니 바라봤다.“가자, 내가 다 준비해놨어.”짤막한 한마디지만 그녀 마음이 훨씬 안정되었다.마치 강지혁만 있으면 그녀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만 같았다.임유진은 강지혁을 따라 임대 주택에서 나와 차에 탔다.차는 다시 S 시의 꽤 유명한 묘원에 도착했다.이곳은 위치도 좋고 교통도 편리하며 설계가 잘 되어 있어서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웠다.강지혁은 그녀와 함께 그중 한 빈 묘지 앞에 도착했고 유니폼을 입은 몇몇 직원들이 이미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일꾼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도 있었다.임유진
“아니야, 여기도 너무 좋아!”임유진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가 임유진 엄마를 위해 마련한 묘지는 이 묘원에서 단독으로 있는 곳이지 다른 묘지와 나란히 있는 곳이 아니다.만약 집으로 표현한다면 나란히 있는 묘지는 아파트 단지에 가깝고 그가 지금 선택한 이 묘지는 단독주택과 같다.이곳은 나무들이 줄지은 독립적인 작은 공간이고 묘지 앞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심지어 돌을 쌓아 만든 스톤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어 성묘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다행이네.”강지혁이 말했다.“그럼 어머님 유골함을 여기 넣어둬.”임유진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쪼그리고 앉아 엄마 유골함을 묘비 앞에 있는 유골 전용 공간에 넣어두었다. 이어서 일꾼들이 슬레이트를 덮고 시멘트를 부어 꼼꼼하게 밀봉했다.한편 묘원의 직원들은 계약서 한 부를 임유진에게 건넸는데 이 묘지에 관한 계약서였다.계약 시간은 50년이고 위에 적힌 비용을 본 순간 그녀는 입이 쩍 벌어졌다. 설사 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어도 그녀의 능력으론 평생 벌어도 지급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비용은 강지혁 씨께서 이미 지급하셨으니 임유진 씨는 이 계약서에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묘원 직원이 말했다.그녀는 강지혁에게 또 한 번 큰 신세를 졌다.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펜을 들어 계약서에 서명했다. 지금으로선 그 미약한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니까.묘원 직원과 일꾼들이 떠난 후 강지혁은 고이준에게 국화꽃과 제사 지낼 음식, 과일을 꺼내라고 했다.“아직 어머님께 인사도 못 드렸겠는데 지금 인사드려.”그는 말하면서 몸을 움츠리고 앉아 음식과 과일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생화도 조심스럽게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임유진은 생화를 안고 눈앞의 묘비를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가 이젠 이곳에서 편히 쉴 수 있으니 그녀도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비록 엄마가 돌아가셨지만 고이 잠드실 안식처가 있으니 그녀도 정신적인 의지가 생긴 것 같았다.임유진은 묘비 앞에서 공손하게 세 번 큰절을 올린 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속 깊이 간직해
어두운 밤, 달빛이 드리운 강지혁의 실루엣은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아름다운 윤곽의 목선과 얼굴 옆 라인, 그리고 선명한 귀까지 그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임유진은 심지어 그의 귀마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강지혁이 허리를 곧게 펴고 그녀를 마주 보자 임유진은 순간 무언가로 가슴을 망치질하듯이 움찔했다.달빛에 드리워진 그의 눈동자는 마치 한 나무를 가득 채운 복숭아 꽃잎이 연못에 우수수 떨어져 잔잔한 은빛 물결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고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거문고의 현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만 같았다.순간 임유진의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으로 돼버렸고 두 눈엔 오직 강지혁만 가득 찼다.황홀한 그 얼굴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하느님이 정성을 기울인 걸작과도 같았다.“왜 그래?”그녀의 귓가에 드디어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화들짝 놀란 임유진은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방금 강지혁에게 홀딱 반해버렸다.“아니야... 아무것도.”임유진은 횡설수설 대답했다.“그래, 그럼 이만 돌아가자. 앞으로 어머님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보러 와. 누나 아버님이 이곳을 알게 된다 해도 더는 유골함을 딴 곳에 못 가져가.”강지혁은 말하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임유진은 자신에게 선뜻 내민 손을 보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그 손을 맞잡았다.“고마워.”그녀는 오늘 밤 두 번째로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처음엔 강지혁이 그녀 엄마의 유골함이 어디 있는지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두 번째는 엄마의 유골함을 고이 모실 묘지를 마련해줘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정말 그렇게 고맙다면 날 좀 더 좋아해 주던가.”강지혁이 말했다.순간 임유진은 숨이 멎을 것 같고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강지혁을 따라 묘원에서 나왔다.두 사람이 나란히 차에 탄 후 임유진은 창밖의 멀어져가는 묘원을 바라보며 줄곧 마음을 짓눌렀던 큰 바위도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오늘부로 엄마는 고이 잠드실
그녀가 강지혁을 쳐다보는 눈빛은 어느 한순간 그에게 푹 빠져들고 더없이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금세 또 애써 그에게서 멀어지려는 듯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은 어떤 이유로 갈등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녀는 한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의 뜨거운 시선 속에서 얼굴만 점점 더 빨개졌다.“왜 날 안 봐? 나 좀 봐줘, 누나!”강지혁이 가까이 다가오며 뜨거운 숨결을 내뿜었다. 그녀는 마치 그의 목소리에 홀린 듯 저도 모르게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강지혁은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는데 갈증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훤칠한 이마를 드러냈지만 그녀 머릿속엔 여전히 기억 속의 ‘혁이’가 끊임없이 겹쳐졌다.애초의 혁이도 이런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으니.“누나는 날 조금이라도 좋아해?”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임유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임유진은 가슴이 찔린 듯 입을 열고 부인하려 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또다시 꽉 막혀버렸다.‘난... 지혁이를 좋아할까?’임유진이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그가 그저 혁이였다면 동생으로만 생각한 게 아니라 진짜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지혁이라면...“누난 날 좋아해.”그는 단호한 말투로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그녀의 표정은 이미 그에게 원하는 대답을 준 것만 같았다.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올렸고 두 눈에도 흡족한 듯한 미소가 번졌다.임유진은 그런 그의 미소가 너무 예뻐 보였다....강씨 저택에 돌아간 후 그녀는 강지혁을 따라 거실로 들어가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저기... 오늘 나를 이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내가 어떻게 보답했으면 좋겠어?”세상이 늘 그렇듯 얻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기에 그가 진짜 어떠한 보답을 원해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강지혁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어떻게 보답해줄 건데? 영원히 내 옆에 있어 줄래?”임유진은 입술을 살짝